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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1-24 (일) 07:49
분 류 마태복음
첨부#1 2021년_마태복음_제40강-1.hwp (32KB) (Down: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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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마태복음 제40강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2021년 마태복음 제40강                                           김반석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말씀 / 마태복음 26:31-27:10
요절 / 마태복음 26: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

오늘 말씀은 십자가의 죽음 앞에서 기도로 승리하신 예수님과 기도하지 않아 실패한 제자들의 모습이 대조되어 나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뜻을 100% 이뤄드리고 구속 역사를 완성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기도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에 있어서 기도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기도에 온 힘을 기울이기는 쉽지 않습니다. 기도를 방해하는 장애물들과 마귀의 시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를 잘 배워 승리하는 사명인의 인생 살기를 기도합니다.

Ⅰ.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26:31~39)
예수님이 유월절 식사를 마치시고 제자들과 함께 감란산으로 가시는 중에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이 체포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면 제자들은 실족하여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슥13:7절을 인용한 것으로 예수님의 죽음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뤄지고 있음을 가르쳐 줍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제자들은 도망가게 되지만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셔서 먼저 갈릴리로 가서 그들을 다시 만날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을 듣고 베드로는 모두 주님을 버릴지라도 자신은 결코 버리지 않겠다고 큰 소리쳤습니다. 그는 의리의 사나이로 자기 의가 강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베드로에게 오늘 밤 닭이 울기 전에 세 번 나를 부인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주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로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다고 장담했습니다. 베드로에게 질 수 없다고 생각한 다른 제자들도 이구동성으로 말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만일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면 자신들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겸손하게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연약함을 인정하지 않아 결국 예수님의 말씀대로 베드로는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부인하고 제자들은 전부 도망가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의 배신을 구체적으로 말씀하심으로 그들이 나중에라도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리고 처음 제자들을 부르셨던 갈릴리에서 이들과 재회하심으로 새 출발하기를 바라셨습니다.
36절을 보십시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보통 사람들은 슬프고 절망적인 상황에 처하면 자포자기하고 잠을 자거나 아예 잠수를 탑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평소 습관대로 기도하러 ‘겟세마네’로 가셨습니다.(눅22:39,40) 이곳은 예루살렘 동쪽에 있는 동산으로 감람나무(올리브나무)가 많아 ‘감람산’ 또는 올리브기름을 짜는 곳이 있어서 ‘올리브 산’으로도 불립니다. 예수님은 이곳에서 기름을 짜듯이 피와 같은 땀을 짜시면서 간절히 기도하고자 하셨습니다. 먼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기도의 동역자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고민하고 슬퍼하시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37,38) 얼마나 힘드셨으면 ‘내 마음이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말씀하셨겠습니까?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시지만 완전한 인간이기도 하십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것은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니라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온전히 희생하시는 것입니다. 인류의 죄를 지고 스스로 죄인의 모습이 되어 채찍에 맞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피를 쏟으시며 극심한 육체의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을 생각하면 두려움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습니다. 더군다나 하나님의 저주와 버림받는 정신적인 고통을 생각하면 슬픔과 절망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27:46)’ 하며 절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견디기 힘든 십자가의 죽음 앞에서 인간이 느끼는 고통과 두려움을 다 느끼셨습니다. 예수님은 지금까지 강한 사탄의 세력과 싸우시고, 큰 권세를 가진 종교지도자들과 싸우시는 강한 용사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한 인간으로서 연약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제자들에게 다 보여주셨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연약한 모습을 남들에게 보여주면 무시당하고 자존심이 상할 것 같아 강하고 담대한 모습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진솔한 모습을 보여주심으로 제자들이 자신의 연약한 모습을 깊이 깨닫도록 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제자들이 예수님을 본받아 깨어 기도함으로써 연약함을 극복하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도록 돕고자 하셨습니다.
다 함께 39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예수님은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에 처하셨을 때 절망하고 도망가기보다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 겸손한 자세와 복종하는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내 아버지여' 이는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대한 깊은 사랑과 신뢰를 갖고 계심을 말해줍니다. 우리는 힘들고 답답하고 괴로운 상황에 처하게 되면 하나님께 섭섭한 마음을 품고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기를 잘 합니다. "하나님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을 주십니까?" 하며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대해 섭섭한 마음과 원망하는 마음을 품을 때 사랑과 신뢰의 관계가 깨어지고 진실된 기도를 할 수 없게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된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신뢰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께 마음의 고통을 그대로 토로하셨습니다.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여기서, ‘이 잔’은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할 수만 있으면 끔찍한 십자가 형벌만큼은 피하고 싶으셨습니다. 그래서 만일 다른 방법이 있다면 그렇게 해주시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도 사명을 감당하다가 힘든 상황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께 나아가서 솔직하게 토로해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사랑하는 자녀들의 토로를 결코 외면하지 않고 다 들어주십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겨 다니며 환난과 고통과 두려움과 죽음의 위기에 빠질 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하나님은 그의 기도에 응답하사 모든 환난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시34:6)    
39b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예수님은 이 잔을 지나가게 해 달라는 기도에 머물지 않으시고 한 걸음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셨습니다. 기도하시는 가운데 관점이 자기에서 하나님께로 옮겨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위대한 반전입니다.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이는 위대한 자기 부인입니다.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이는 위대한 순종입니다. 예수님도 인간적으로는 죽음의 쓴 잔을 피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적인 생각을 내려놓고, 자신의 의지를 ‘아버지의 뜻’에 전적으로 복종시킴으로써 하나님의 뜻에 절대적으로 순종하고자 결단하셨습니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이것이 겟세마네 기도의 핵심이요, 우리가 배워야 할 기도의 자세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이뤄드리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주기도문에서도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도록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6:10) 예수님은 지금까지 하나님의 뜻을 이뤄드리는 인생을 사셨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것으로 하나님의 뜻을 100% 다 이뤄드리고자 하신 것입니다.(요19:30)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는 계속됩니다. 다 함께 42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예수님의 첫 번째 기도는 자기를 부인하고자 몸부림치는 기도였습니다. 두 번째 기도에서는 첫 번째 기도보다 진전하여 죽음의 잔을 피하고 싶은 욕망을 포기하셨습니다. 그리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만을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자신이 마시는 죽음의 쓴 잔은 감당하기 힘든 것이지만 하나님의 뜻이라면 기꺼이 순종하고자 하셨습니다.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십자가의 잔을 마셔야 된다는 운명적인 생각의 표현이 아닙니다. 철저한 자기 부인과 절대적인 복종을 통해 인류 구원 역사가 완성된다는 하나님의 뜻을 기쁨으로 영접하고,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십자가의 잔을 마시겠다는 내적인 결단이요 확신에서 나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같은 내용의 기도를 세 번씩이나 하시므로 육신의 연약함을 이시기고, 십자가를 감당할 믿음과 힘을 덧입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한다고 하지만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답변만 하면 돼)’ 식의 기도를 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해놓고 하나님이 그것에 응답해주시기만을 바랍니다. 대학에 합격하게 해 주세요. All A학점과 장학금을 받게 해주세요. 내가 원하는 곳에 취직하게 해주세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하게 해주세요. 물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 아버지께 내가 원하는 것을 주시도록 기도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 것을 이미 정해놓고 그것을 들어주시면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사랑을 믿겠다고 하고, 들어주지 않으시면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원망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도 바울은 육체의 질병으로 인한 괴로움으로 그것이 자신의 육체에서 떠나가게 해달라고 주님께 세 번이나 간구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자신의 소원대로 들어주지 않으셨다고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크게 기뻐하고 감사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자신의 육체에 가시를 주신 것으로 영접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바울은 겸손히 하나님만을 의지하므로 하나님의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히 드러나는 승리의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고후12:7~10) 사명인으로 부르심 받은 우리도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를 배워야 하겠습니다.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 기도는 들어주시면 감사하고, 안 들어주셔도 어쩔 수 없다는 자포자기식의 기도가 아닙니다. 나에게 두신 하나님의 선한 뜻과 사랑을 전폭적으로 신뢰하고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그것을 이뤄드리겠다는 결단의 고백인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시도록 간구하기보다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그것을 알게 해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뜻을 이뤄드릴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아무리 오랫동안 기도를 하고, 수시로 기도를 해도 자기 뜻이 이뤄지기만을 고수한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주시지 않을 때는 나에게 더 깊은 뜻을 두시고,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한 것임을 영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가운데서도 나를 변함없이 사랑하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뤄주시기 때문입니다.(롬8:38,39)
이런 기도는 하루아침에 나올 수 없습니다. 눅22:39절에 보면 예수님은 습관을 따라 감란산에 가서 기도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부터 기도에 힘쓰셨습니다. 낮에는 힘써 사역을 감당하시고, 밤에는 감람산에 가서 기도하셨습니다.(눅21:27) 연약한 육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뤄드리기 위해 새벽기도, 금식기도, 철야기도 등 기도에 힘쓰셨습니다. 이런 기도 생활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시며 위로부터 주시는 능력과 지혜를 덧입고 승리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저절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평소에 기도하는 습관이 쌓이면서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고, 기도하는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법을 배우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5:8절은,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웠다.”고 증거합니다. 순종은 체질적으로 타고 나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을 만날 때 회피하지 않고, 겟세마네의 기도를 통해 자기를 부인하는 영적인 진통을 겪을 때 비로소 순종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올리브기름을 짜듯이 심령을 쥐어짜는 기도의 싸움을 통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자 하셨습니다. 눅22:44절에서는 땀을 흘리시며 얼마나 필사적으로 기도하셨는지 그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과 같다고 했습니다. 어떤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몰라 답답할 때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지만 복종하지 못해 고통스러울 때가 있습니까? 이때 하나님께 나가 부르짖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부르짖는 자들에게 약속하십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요, 하나님과의 대화요, 축복의 통로입니다. 우리가 힘들고 괴로울수록 때를 따라 도우시는 은혜를 받기 위하여 담대하게 하나님 앞에 나가 눈물로 부르짖으며 기도하는 종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의 눈에서 눈물을 씻어주시고, 참된 위로와 기쁨과 능력을 주셔서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솟아오르듯 생명력이 충만한 삶을 살게 하실 것입니다.(사40:29~31)

Ⅱ. 기도하지 않은 제자들(26:40~27:10)
예수님은 첫 번째 기도를 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연약한 모습을 보여주시면서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하시며 기도를 부탁하셨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무엇을 했습니까? 최후만찬에서 양고기를 너무 많이 먹고 포도주를 너무 많이 마셨는지 깊은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40a) 예수님은 이들을 깨우시며 안타까운 심정으로 말씀하셨습니다. 40b,41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서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제자들은 불과 몇 시간 전만 하더라도 주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어도 절대로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한 시간도 주님과 함께 깨어 기도하지 못하고 잠에 골아 떨어졌습니다. 깨어 기도하지 않을 때 그것으로 끝나는 젓이 아니라 사탄의 시험에 빠지게 됩니다. 벧전5:8절은 말씀합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사탄은 강하고 간교합니다. 이런 사탄이 쉬지 않고 우리를 시험합니다. 이 시험은 유혹으로서 달콤하고 힘이 있어 우리의 힘과 지혜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습니다. 사탄은 기도하지 않고 큰 소리치는 자를 좋은 먹이감으로 삼아 넘어뜨리고자 공격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 안에서 항상 열심히 기도하고 간구하며 언제나 깨어 정신을 차리고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엡6:18) 우리가 깨어 기도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육신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기도하고자 하는 마음은 있지만 연약한 육신 때문에 시험에 빠지고 넘어지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새해가 되면서 올해는 기도에 힘쓰겠다고 다짐하고 거창한 계획을 세우지만 용두사미로 끝나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음은 원하지만 육신이 연약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합리화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육신이 연약하기 때문에 더 깨어 기도함으로써 연약함을 극복하고 승리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육신의 약함을 극복하는 길은 깨어서 기도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깨어 기도하는 자에게 성령을 부어주셔서 사탄의 시험을 이기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43절을 보십시오.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피곤함일러라.” 제자들은 깨어 기도하지 못하여 육신의 약함에 무릎을 꿇고 또 잠들어 버렸습니다. 그날따라 눈꺼풀이 얼마나 무거운지 계속 눈이 감겼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를 부탁하셨지만 그들은 깨어 기도하는 데 철저하게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반면 기도의 싸움에서 승리하신 예수님은 마음의 고민과 두려움이 사라지고, 확신과 용기로 충만해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자세로 십자가를 맞이하십니다.(46)
산헤드린 공회에서 파송된 큰 무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칼과 몽치를 갖고 와서 예수님을 잡으려 했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뤄드리기 위해 스스로 체포 당하셨습니다.(50) 그후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끌려 가셔서 심문을 받으실 때 거짓 증언들 앞에서도 일체 변명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성경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사람 앞에서 잠잠한 양처럼 침묵하셨습니다.(사53:7) 그러나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는 대제사장의 질문에는 “네가 말하였느리라.” 하시며 자신이 그리스도이심을 분명하게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 승천하여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심판주로서 오는 것을 그들이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64) 대제사장과 공회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예수님이 신성을 모독했다는 죄를 뒤집어 씌워 사형을 언도 했습니다.
한편 바깥 뜰에 앉아서 동정을 살피던 베드로는 자기가 예수와 한패라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맹세까지 하면서 정말 그 사람을 모른다고 딱 잡아떼었습니다. 바로 그때 세 번이나 거짓말을 하는 베드로를 참다 못해 닭이 울었습니다. 베드로는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밖으로 나가 심히 통곡했습니다.(75) 인간의 연약함을 모르고 큰소리치며 기도하지 않은 베드로는 철저히 실패했습니다. 또한 유다는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결박하여 총독 빌라도에게 넘긴 것을 보고 양심의 가책을 느껴서 목매달아 자살하였습니다.(7:5)

저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안암 센터에 있을 때부터 지금까지 몸이 심하게 아프거나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25년 이상 새벽기도를 꾸준히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 나가 기도할 때 저는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것들을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능히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인생의 중요한 방향을 결정할 때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를 배우게 하시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순종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저는 원래 아기자기하고 소시민적인 삶을 추구하던 자였기 때문에 선교라는 말에 심한 거부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두 아들이 어렸을 때 짧은 간격으로 병원에 입원하는 사건을 통해 후유증 없이 낫게 해 주시면 선교사로 나가겠다고 서원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사 두 아들이 후유증 없이 건강하게 잘 자라게 해주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선교에 대한 부담으로 서원을 갚는 것을 계속 미뤘습니다. 동역자가 일본에 나갈 수 있는 시험에 응시할 때마다 겉으로는 응원하는 척 하였지만 속으로는 불합격하기만을 간절히 바랐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제게 1998년 세계선교보고대회에서 고 이사무엘 선교사님의 메시지, 벧전 4: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말씀을 주셨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고난 없이 편하게 살고자 하는 마음을 부인하고,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삶을 살고자 방향 잡고 선교사로 나갈 것을 결단했습니다. 항상 동역자의 푸시만 받고 살았었는데, 이 말씀을 영접하고 동역자에게 다시 일본으로 나갈 수 있는 시험을 보라며 처음으로 푸시도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동역자는 건강이 안 좋아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최악의 상태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뤄드리고자 하는 저희들의 간절한 기도를 받으시고 극적으로 합격하여 선교사로 나가 복음 역사에 충성하는 삶을 살도록 은혜 주셨습니다.
또한 저희 가정은 여름에는 엄청 덥고 평소 바퀴벌레도 많이 나오는 허술한 집에서 살고 있었는데, 고등학생이 된 장남이 우리도 아파트에서 살면 안 되냐며 힘들어 하였습니다. 물질이 없던 저희는 대출을 받아 오래되어 당시 가장 저렴했던 청량리의 아파트로 이사했습니다. 하지만 늘 하나님 역사를 섬기기에 좋은 센터 근처로 이사하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그래서 센터 옆으로 갈 수 있는 가격까지 오르면 집을 팔고 이사하겠다고 서원기도를 했습니다. 수년이 지난 후 재건축 바람이 불면서 아파트 값이 하루가 다르게 상승하여 이사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때부터 심한 갈등이 되었습니다. 1,2년만 더 기다리면 최소한 두 배 이상 오를 텐데 지금 팔고 가기에는 너무 아쉬웠습니다. 주위 사람들도 왜 그걸 팔려고 하느냐며 극구 만류했습니다. 저는 매일 기도는 하면서도 물질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께 한 서원을 갚는 것이 정말 힘들었습니다. ‘물질이냐 하나님이냐? 지금이냐 나중이냐?’를 놓고 계속 저울질을 했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은 야곱이 에서와의 인생 문제가 해결되자 서원기도한 대로 벧엘로 올라가지 않고, 숙곳에 안주하며 은혜를 감당하지 않았던 사건을 생각나게 하셨습니다. 현실의 유익을 위해 하나님과의 약속을 쉽게 깨트리려고 하는 천박한 내면에 탐심이 자리 잡고 있음을 깨닫고 회개하게 도와주셨습니다. 그리고 수억 원의 물질보다 하나님께 드린 서원을 갚을 수 있는 믿음을 주시고, 이사하게 도와주셨습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어리석은 결정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주님과의 약속을 지키고 믿음을 지켜 승리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근래에는 명퇴를 할까 정년까지 갈까 고민이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일주일에 수업은 7시간만 하고, 큰 상담실을 혼자 쓰고 있어서 누구보다 편하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음 한편으로는 한 살이라도 나이를 더 먹기 전에 하나님 역사를 더 섬기고자 하는 소원도 있었습니다. 두 마음이 제 안에서 싸우고 있어 쉽게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이 문제를 위해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은 쉽고 편한 것을 추구하는 마음을 부인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참여하는 인생을 살도록 명퇴를 선택하게 도와주셨습니다. 제가 앞으로 또 어떤 일을 만날지 모르지만 그때마다 겟세마네 동산으로 올라가겠습니다. 거기서 기도의 씨름을 하는 가운데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 앞에서 간절히 기도하시므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구원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기도는 내가 원하는 것만을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두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는 힘을 덧입는 통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의 골방에 들어가 은밀한 중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할 때 다 들어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마6:6) 우리가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를 잘 배워 깨어 기도하므로 육신의 연약함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뤄드리는 승리의 인생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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