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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휴화산
작성일 2021-03-13 (토) 18:44
분 류 요한복음
첨부#1 2021년_요한복음_제2강-1.hwp (30KB) (Down: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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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요한복음 제2강]보라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2021년 요한복음 제2강

                         보라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말씀: 요한복음 1: 19-51
요절: 요한복음 1: 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공생애 첫 일주일 동안의 이야기입니다. 본문은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이 증언하는 내용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보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감격적으로 외쳤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첫 제자들은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 ‘와보라.’ 또한 감격적으로 초청했습니다. 그들의 증언을 통해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 배울 수 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공생애 첫 사역으로 제자들을 만난 것입니다. 제자들을 어떻게 만나고 부르시는가 하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제 1장,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라 (19-34)
19 20절을 보십시오.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 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언이 이러하니라.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대.’ 세례 요한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외치자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나아와 회개하고 세례 받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불안해진 유대 지도자들은 세례요한의 정체를 알아보기 위해 조사단을 보냈습니다. 말라기 선지자 이후 400년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가 없었습니다. 백성들은 영적으로 목말라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세례요한의 출현은 실로 큰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광야에서 회개의 메시지를 선포하는 세례 요한의 모습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혹 메시아가 아닌가 기대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제사장들과 레위 인들을 보내어 그가 메시아인가 그리스도인가 확인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분명히 대답하였습니다. 21 22절을 보십시오. 그들은 세례요한에게 그러면 네가 엘리아냐 질문했습니다. 또 세례 요한의 모습과 사역이 엘리아와 비슷했습니다. 그래서 네가 엘리아냐 라고 질문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나는 아니라’ 분명하게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네가 그 선지자냐? 모세가 예언했던 그 선지자냐? 라고 질문 했을 때 역시 ‘아니라’라고 단호하게 부인하였습니다. 그러자 도대체 너는 누구냐? 너의 정체를 밝히라고 추궁하는 이들에게 요한은 조금도 망설임 없이 대답합니다. 23절을 보십시오. ‘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 로라 함이라.’ ‘나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다.’ 이사야서 40장 3절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세례요한은 바로 이 예언의 말씀을 기초로 자신의 정체성을 밝혔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보다 먼저 와서 사람들을 회개시키고 예수님을 영접할 마음준비를 시키는 소리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을 통하여 참된 증거자의 자세를 배웁니다. 참된 소리는 주인의 뜻을 정확하고 분명하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소위 잡소리를 빼는 것이죠.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니고 주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소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소리로서 정체성을 잊어버리고 자꾸 자신이 무엇인가 되려고 합니다. 튀려고 하죠. 결혼식장에서 들러리나 하객이 신랑 신부보다 멋있게 꾸미고 튀면 민폐입니다. 수수하게 옷을 입고 가야 합니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우리는 진리를 증거하고 사라지는 소리입니다. 누군가의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는 바람입니다. 코끝을 스치는 향기입니다. 상한 마음을 어루만지는 따스한 손길입니다. 25절을 보십시오. 그러자 그들은 무슨 자격으로 세례를 주느냐? 자격증을 보자고 시비를 걸었습니다. 당시 세례는 이방인이 유대교로 개종 할 때 주었습니다. 산헤드린에서 자격을 위임받은 자들이 주었습니다. 무슨 자격으로 유대인들에게 세례를 주느냐 시비를 거는 것입니다. 그들은 바리새인들이 보낸 자들이었습니다. 26 27 절을 보십시오. ‘요한이 대답하되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하더라.‘ 세례 요한은 따져 묻는 제사장들과 레위 인들에게 한 마디 변명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주는 물세례는 주의 길을 예비하는 것이고 우리를 구원할 그리스도께서 오시는데 나는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에 노예 중에서도 가장 비천한 노예가 주인의 신발 끈을 풀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은 그리스도의 하찮은 종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요한은 자신을 향한 사람들의 시선을 온전히 예수님께로 돌려놓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받으면 그것에 매여서 예수님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은 마치 마약 같아요. 한번 맛을 보고 취하면 끊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를 섬길 때 사람들이 알아주기라도 하면 열심히 하다가 알아주지 않으면 시들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요한으로부터 ’나는 아니라‘, ’나는 단지 소리에 불과하다‘라는 참된 증거자의 겸손한 자세를 배워야겠습니다.

29절을 보십시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이튿날 세례 요한은 자기에게 나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라고 감격적으로 외쳤습니다. 세례요한의 증거의 핵심은 이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다. 라는 것이죠. 세례 요한의 증거를 통해서 사람에게 제일 중요하고도 시급한 것은 죄 문제 해결이라는 것을 배웁니다. 예수님은 배고픈 백성들에게 떡을 주기위해 오지 않으셨습니다. 로마 압제 하에서 백성들에게 자유를 주기위해 오신 것도 아닙니다. 아프고 병든 자들의 병을 고쳐주는 의사로 오신 것도 아닙니다. 오직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구원과 영생을 주시기 위해 오신 그리스도 이십니다. 원래 하나님이 창조한 이 세상은 낙원이었습니다. 아담 타락 이후 죄와 사망이 들어왔습니다. 더 이상 죄악된 인간이 거룩한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었습니다. 성경은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려면 대속제물 어린양의 피가 필요했습니다. 어린양의 피는 구원의 예표였습니다. 출애굽 당시 장자재앙으로 애굽이 초토화될 때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른 이스라엘은 구원받았습니다. 그 이후로 구약 시대 내내 어린양의 피가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불완전한 것이었죠. 때가 되자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 예수님을 어린 양으로 보내셨습니다. 십자가의 희생제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완전한 희생제물 완전한 대속제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사야서 53장 5절 6절은 말합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십자가에 못 박히는 그 아픔을 참으시고 피와 물이 다 쏟아져 나가는 그 고통을 감내 하셨습니다. 왜 이렇게 하신 것입니까? 우리의 죄, 세상 죄 때문입니다. 일생을 살면서 짓는 한 사람의 죄가 얼마나 큰 것입니까? 칼 하임은 한 사람의 죄가 얼마나 무거운가 하는 것을 양팔 저울에 비유했습니다. 한 쪽에는 한 사람의 죄를 올려놓고 다른 쪽에는 지구를 올려놓았는데 저울이 한 사람의 죄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하물며 세상 사람들의 모든 죄는 얼마나 큰 것입니까? 그러나 사람들은 죄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죄 짓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여깁니다. 자신의 죄에 대해 언급하는 것조차 듣기 싫어합니다. 무시합니다. 그러나 죄는 암이나 에이즈나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것입니다. 로마서 6장 23절,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죄를 놔두면 영 육간에 죽게 됩니다. 그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요? 바로 죄 문제입니다. 누구든지 지옥체험을 해본다면, 불치의 병에 걸린다면 죄와 죽음에 대해 심판에 대해 구원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의 희생으로만이 우리는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다른 어떤 길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단 한 번의 십자가에서의 죽으심으로 나의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의 죄까지 세상의 모든 죄까지 깨끗하게 씻으셨습니다. 만성 신부전 환자는 더러운 피를 거르기 위해 때마다 혈액투석을 합니다. 이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닙니다. 혈액투석은 매번 어린양의 피를 바치는 것과 같습니다. 만성신부전 환자는 단 한 번의 신장 이식 수술로 이 고통에서 해방됩니다. 이처럼 단 한 번의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신 주님의 은혜로 어린양 되신 예수님의 피의 은혜로 우리는 구원 받고 거룩하게 되는 것입니다. 죄로 더럽혀진 더러운 피는 주님이 주신 새로운 신장으로 거룩하게 걸러지는 것입니다. 더 이상 어린양을 잡을 필요가 없게 된 것입니다. 무엇을 바라보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죄악 된 세상을 바라보고 낙심할 필요 없습니다. 물질주의가 판치는 세상을 바라보고 근심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연약한 자신을 바라보고 절망할 필요 없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덧입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님의 피만이 죄의 사슬을 끊을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어떤 몹쓸 죄인의 죄도 사하며 어떤 내면의 병도 고치는 특효약입니다. 예수님의 피는 사람을 근본적으로 변화하여 새 인생 살게 합니다. 예수님의 피는 과거 운명주의에 울던 서 이삭 선교사님을 킬링필드의 땅 운명주의의 나라 캄보디아의 영혼을 섬기는 목자로 변화시켰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사람들의 인정과 사랑을 구하던 송 준영 형제님을 변화시켜서 양들을 진심과 사랑으로 섬기는 목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영적 무기력에 빠져 있습니까? 어린양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고난가운데 있습니까? 어린양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피곤함을 느낀다면 피 흘리기까지 분투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바라보십시오. 우리의 영혼은 하루라도 하나님의 어린양을 묵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는 신선한 공기를 마시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맑은 물을 마시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어린양의 피가 없는 신앙은 생명이 없는 신앙입니다. 또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라고 날마다 외쳐 증거 해야 합니다. 요즘은 아무도 외치지 않습니다. 우리가 외쳐야 합니다.’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라.‘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보라.‘ 30 절을 보십시오. 세례요한은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났고 예수님보다 먼저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은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나보다 먼저계신 분이라고 했습니다.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신 분이기 때문에 자신보다 앞섰다고 강조한 것입니다.

31, 32 절을 보십시오.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었을 때 예수님도 오셔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세례 받을 때 하늘에서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말씀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비둘기같이 하늘에서 내려 오셨습니다. 이를 통해 세례요한은 예수님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심을 알았습니다. 물세례는 하나님 앞에서 진실 되게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만나기위해서는 물세례가 필요합니다. 성령세례는 성령 안에서 옛 사람이 죽고 새사람으로 태어나는 역사입니다. 말씀 앞에 회개할 때 성령께서 친히 역사 하는 것입니다. 거듭나는 역사입니다.

제 2장, 와 보라(35-51)
35절을 보십시오. 이튿날 세례 요한이 두 제자 즉 요한과 안드레와 같이 있을 때 예수님에 대해서 또 다시 ‘보라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라고 증거 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이들은 세례요한을 떠나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38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과 두 제자가 나누는 대화가 심상치 않습니다. 무엇을 구하느냐? 어디 계십니까? 와보라. 대화가 좀 이상하죠. 예수님은 무엇을 구하느냐 물으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동기가 무엇인지 분명히 하도록 예수님을 따르는 동기를 순수하게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나는 무엇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는가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자기중심적인 소원을 갖고 예수님을 따르고 있지 않은지, 물질적인 축복을 받기 위함인지,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함인지,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함인지. 우리는 예수님을 배우고자 예수님을 닮고자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한 가지 소원을 갖고 예수님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 랍비여 어디 계십니까? 당시 제자가 될 사람이 스승을 찾아갈 때 이런 질문을 하였습니다. 즉 예수님을 만나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39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날 함께 거하니 때가 10시쯤 되었더라.’ ‘와보라’ 이는 엄청난 축복의 초청의 말씀입니다. 제자가 훌륭한 스승에게 가서 보고 배우는 것은 인생을 바꾸어놓는 큰 축복입니다. 요즘 오디션 프로그램이 인기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원하지만 치열한 경쟁을 뚫고 오디션에 합격하는 자는 소수입니다. 그 후에도 데뷔하기 위해 피나는 훈련을 합니다. 이들 중에 극소수만이 대중들 앞에 서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족한 우리를 자격 없는 우리를 초청 하십니다. 오디션 보시지 않습니다. ‘와 보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제 10시는 오후 4시를 가리킵니다. 그날 첫 번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거했습니다. 즉 예수님과 함께 하루 수양회를 가진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영안이 열렸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저자 요한은 이 요한복음을 쓸 당시에는 70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그 날의 감동이 너무나 벅차고 뜨거웠던 것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날의 감동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가 10시쯤 되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40절 41절 보십시오. 안드레를 보십시오. 얼마나 뜨거웠고 얼마나 감격 했으면 날이 새자마자 자기 형제 베드로에게 달려가서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형 우리가 그토록 찾고 또 찾았던 메시아를 만났어.’ 라고 큰소리로 외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다양한 만남이 있죠. 만나서는 안 되는 만남이 있고 꼭 필요한 만남이 있습니다. 아합과 이세벨 같은 만나서는 안 될 만남, 룻과 보아스처럼 좋은 만남. 꼭 필요한 만남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만나는 것입니다. 42절 보십시오. 안드레는 그의 형 베드로를 예수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안드레는 하루 사이에 그의 신앙이 깊어졌으면 얼마나 깊어졌겠습니까. 하지만 그는 증거 했습니다. 증거 하는 영성의 소유자였습니다. 왜 신앙생활을 오래 했는데도 예수님을 증거 하지 못합니까? 생각이 복잡하기 때문이죠. 요즘 교회에 대한 비판이 많은데 성경 공부 초청하면 욕먹지 않을까? 예수님을 증거 하면 친구를 잃어버리지 않을까? 미리 걱정합니다. 안드레가 베드로를 데려가지 않았으면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오병이어를 갖고 있던 소년을 예수님께 데리고 나왔습니다. 데려오지 않았으면 오병이어의 기적은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데려 오기만 하면 누구든지 변화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겠습니다. 새 학기 요한복음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을 새롭게 만나고 예수님을 증거 하는 자 예수님께로 데려오는 자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42절 다시 보십시오.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예수께서 보시고 장차 게바라 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반석이라는 뜻입니다. 현재는 모래알 같은 시몬이지만 장차 교회의 반석 같은 베드로가 되리라는 소망의 말씀이죠. 예수님의 소망대로 시몬은 게바 베드로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사람은 이름이 바뀌고 인격이 바뀝니다. 야곱은 이스라엘로, 사울은 바울로, 문 아림은 문 대범으로, 함 동수는 함 바나바로 바뀌었습니다. 내 힘과 의지로 되지 않죠. 예수님이 나를 반석으로 빚으시는 거죠.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모래알 같은 나를 반석 같은 믿음의 사람으로 키워 주십니다. 주님은 나의 중심을 보시고 나에게 소망 두시고 키워 주십니다. 현재 나의 부족한 모습을 보고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의 소원에 나를 맡기면 되는 것입니다. 43, 44 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빌립을 보자마자 나를 따르라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빌립은 예수님의 영적 권위에 압도되어 즉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 받은 빌립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친구 나다나엘에게 가서 예수님을 증거 한 일이었습니다.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여러 선지자들이 기록한 그 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들은 구약성경을 의미합니다. 빌립은 구약성경에서 예언된 그 메시아를 만났다고 힘차게 증거 했습니다. 빌립은 자신이 만난 예수님은 수 천년동안 이스라엘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메시아라는 확신을 가지고 증거 한 것입니다. 하지만 빌립의 증거를 들은 나다나엘의 반응은 부정적이고 냉소적이었습니다. ‘나사렛이라구?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냐고 말 같은 소리를 해야지.’ 당시 갈릴리는 척박한 땅이었습니다. 미래가 없고 희망이 없고 비전이 없는 곳이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마지막 카드를 꺼냈습니다. 와보라 팔짱을 끼고 나다나엘을 예수님께로 데리고 갔습니다. 47 48절을 보십시오.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라는 말은 다른 사람을 속이는 간교함이 없는 진실 되고 정직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참 이스라엘이란 뜻은 변화되기 전 야곱이 아니고 변화된 후의 이스라엘 같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크게 칭찬하신 것입니다. 자신을 정확히 알고 칭찬해 주시는 예수님으로 인하여 놀라면서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나다나엘은 ‘나를 알아주시는 분이 있네. 1세기 최고의 순수와 정직은 나다나!’ 48 49절을 보십시오. ‘빌립이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 보았노라.‘ 나다나엘이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무엇을 했을까요? 더워서 쉬고 있었을까요? 그랬다면 놀랄 일도 아니었겠죠.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말씀을 보았을 것입니다. 가난하고 비전 없는 시대문제를 놓고 간절히 기도 했을 것입니다. 자신의 해결되지 않는 죄 문제 내면 문제를 놓고 통곡하며 기도했을 것입니다. 저희 민족을 돌아보아 주십시오.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아무도 자신을 보지 못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를 다 알고 계시다니 그는 깜짝 놀랐습니다. 나다나엘은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이십니다. 고백했습니다. 50절 51절 보십시오.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일을 보리라.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야곱이 꿈에 사닥다리가 하늘에 연결되고 오르락내리락 하는 천사들을 보았듯이 하나님의 아들이 죽음을 이기시고 사망 권세를 파시고 부활하심으로 천국 문을 여시는 것을 볼 것이라는 것이죠. 요즘 젊은이들은 나다나엘 같이 시대문제로 내면 문제로 고민하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교회와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관을 갖고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칭찬과 격려가 필요합니다. 비전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필요합니다. ’와 보라.‘ 예수님을 소개할 때 그들은 예수님을 만나고 모든 방황을 마치고 새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사라 굴잔 자매님은 예수님을 만난 후 와보라 양들을 초청하는 역사를 모범적으로 섬기고 있어서 은혜가 됩니다. 특히 다국적 양들에게 다국적 언어로 요청하고 있습니다. 와보라! come and see! 쁘리찌 이 빠 스마트리! 우리 가운데 와 보라 초청하는 역사, 요한복음 일대일 역사 일어나길 기도합니다.

저는 아무도 와보라 초청하지 않았지만 여름 수양회 안내 포스터를 보고 제 발로 참석하였습니다. 그곳에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변화되었습니다. 주님께 받은 은혜와 감격으로 캠퍼스를 누비며 와보라 양들을 초청하고 섬기는 목자의 인생을 출발했습니다. 당시에 은혜와 감격과 감사로 뜨거웠던 것을 기억해요. 지금은 은혜보다는 의무감으로 신앙생활하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제가 다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바라보고 증거 하는 인생을 살며 뜨거움을 회복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입니다. 우리가 매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바라보고 은혜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 예수님을 세상에 증거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세상의 헛된 것을 바라보고 있는 자들에게 이 예수님을 바라보도록 도와야겠습니다. 와보라 생동감 넘치는 봄 학기 역사 섬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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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0 골로새서 [2021년 신년 제3강]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관리자 2021-01-09 194
679 골로새서 [2021년 신년 제2강]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라 관리자 2021-01-03 188
678 골로새서 [2021년 신년 제1강]만물의 으뜸이 되신 그리스도 관리자 2020-12-27 211
677 누가복음 [2020년 성탄 제2강]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 관리자 2020-12-20 170
676 누가복음 [2020년 성탄 제1강]영원한 왕, 무궁한 나라 관리자 2020-12-13 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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