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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4-11 (일) 08:40
분 류 요한복음
첨부#1 2021년_요한복음_제5강-1.hwp (29KB) (Down: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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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요한복음 제5강]참된 예배
2021년 요한복음 제5강
                           참된 예배
말씀 요한복음 4장 1절 26
요절 요한복음 4장 23절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현대인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목마른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이 목마름은 주로 물질, 인기, 권력, 사랑 등등 소유에 대한 목마름입니다. 많은 것을 소유하였어도 더 소유하고자 하는 갈증은 더 심해져만 가는 것입니다. 그 결국은 허무입니다. 절망입니다. 파멸입니다. 본문에는 목마른 두 사람이 나옵니다.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남편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고 예수님은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한 타는 목마름이 있었습니다. 우물가에서 펼쳐진 사랑과 영혼의 대화를 통하여 이 여인은 참 남편이신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이 주시는 생수를 마심으로 예수님께 예배드림으로 목마름이 해결되었습니다. 사마리아에서 가장 비천했던 이 여인이 이 지역에서 가장 고귀한 여인이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목마름의 원인이 무엇인지 발견하고 예수님을 참 남편으로 만나고 하나님 아버지께 참된 예배를 드리므로 내면에서 솟아나는 기쁨과 만족을 누리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제자를 삼고 세례를 베푸시는 것이 요한보다 많다 하는 말을 바리새인들이 들은 줄을 주께서 아신지라. 예수께서 친히 세례를 베푸신 것이 아니요 제자들이 베푼 것이라.‘ 가나 혼인잔치에서 기적을 행하시고 성전을 깨끗케 하신 사건으로 인해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주변에 빠르게 퍼졌습니다. 예수님께 나와서 세례를 받으려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 요한보다 많게 되었습니다. 세례요한의 율법의 시대가 저물고 예수님의 은혜의 시대가 도래 하는 과도기였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경계가 한층 강화되고 충돌이 예상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종교지도자들과 다투기보다 제자들을 키우며 복음 역사에 힘쓰고자 그곳을 떠나 갈릴리로 가고자 하셨습니다. 3 4절을 보십시오.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새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예수님은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가고자 하셨습니다.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꼭 통과해야 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담고 있는 말씀입니다. 갈릴리는 유대 북쪽에 위치한 지역으로 유대에서 갈릴리로 가는 길은 세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위로 직진하는 길 왼쪽으로 돌아가는 길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길. 가장 빠르고 손쉬운 길은 사마리아를 통과하여 가는 길입니다. 그런데도 유대인들은 굳이 오른쪽 요단강을 따라 돌아서 가는 먼 길로 다녔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최단거리로 가는 것을 선호합니다. 절대 돌아가고자 하지 않죠. 그럼에도 유대인들이 사마리아 지역을 통과 하지 않고 돌아가는 이유는 이들과의 접촉을 피했기 때문이죠. 이에는 역사적 배경이 있습니다. 솔로몬 사후에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분열되었습니다. 남 유다는 예루살렘에서 예배드리고 그래도 신앙의 순수성을 지켰는데 북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여로보암이 여러 우상들을 섬겼고 이에 대한 심판으로 BC 722년 앗수르에 의해 북이스라엘은 멸망했습니다. 많은 백성들을 포로로 끌고 가고 그곳에 있는 이방인들을 이주시켜 와서 섞이게 되면서 사마리아인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남 유다는 바벨론에 멸망당하지만 포로 귀환 이후 성전을 다시 건축 하는데 사마리아인들이 참여를 원했지만 거절당하고 이들은 그리심 산에서 따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서로 상종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서로 미워하고 대립하던 때에 예수님은 갈릴리로 가시면서 사마리아 지역을 반드시 통과 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사마리아 땅에도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5절 6절을 보십시오.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시쯤 되었더라.’ 사마리아 지역에 들어가신 예수님은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렀습니다. 중동의 작렬하는 뜨거운 태양 아래서 먼 길을 걸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너무 피곤하여 우물곁에 그대로 털썩 주저앉으셨습니다. 그때가 여섯시 즉 정오 낮 12시로 가장 더울 때였습니다. 예수님이 왜 사람들의 비난을 감수하고 육신의 피곤함을 감수하고 이곳까지 오신 것입니까. 잃어버린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하늘에서 오신 선한 목자이십니다. 피곤과 갈증을 무릅쓰고 유대 광야를 거쳐 사마리아 땅 우물가에서 털썩 앉으셔서 기다리시는 주님은 지금 나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계십니다. 10년 20년 30년을 기다리셨죠. 우물가에서 캠퍼스에서 도서관에서 교회에서 기다리시죠. 7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우물가에서 쉬고 계실 때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우물가로 물을 길러 왔습니다. 당시 여인들은 더운 낮을 피하여 아침과 저녁 시간 선선할 때 우물가로 와서 물을 길렀습니다. 우물가에서 여인들은 서로 수다를 떨었고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이곳에서 각종 정보를 얻고 각종 소문들은 이곳에서부터 퍼져나갔습니다. 하지만 이 여인은 모두 낮잠 자고 있는 정오에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여 홀로 물 길러 왔습니다. 햇살의 따가움 보다 사람들의 눈총이 더 따가 왔기 때문이죠. 부끄러운 사연이 있는 여자였기 때문이죠. 다섯 남자와 결혼하였고 지금도 다른 한 남자와 동거 중이었습니다. 당시에 유대인은 사마리아인을 무시 하였고 사마리아 남자들은 사마리아 여자들을 무시 하였습니다. 사마리아 여자들은 바로 이 여인을 무시 하였습니다.이 여인은 고독하였고 소외 되었습니다. 마음에는 깊은 상처가 있었습니다. 이 여인과 예수님 사이에는 높은 장벽이 놓여 있었고 공통점이라고는 1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신 창조주이십니다. 전혀 무관한 예수님과 여인 사이를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절대적인 관계를 창조하십니다. 예수님은 먼저 두터운 장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아쉬운 부탁을 했습니다. 단 하나의 공통점 공통 관심사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의 목이 마르셨고 여인은 영혼의 목이 말랐습니다. 둘 다 물을 마시기를 원했습니다. 예수님은 겸손하게 아쉬운 부탁을 했습니다. 러시아 선교 초창기에 러시아 대학생 양들에게 러시아어 설교 문을 교정 해달라고 아쉬운 부탁을 하였을 때 양들이 선교사들을 도와주다가 말씀 받고 은혜 받고 변화되어 개척 조상들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비천하고 부담스러운 여인에게 눈높이를 맞추셨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 이러라. 이 여인은 깜짝 놀랐습니다.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않는 유대의 젊은 남자가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말을 걸다니. ’어찌하여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톡쏘아부쳤습니다. 분위기가 썰렁해졌습니다. 보통 이런 분위기가 되면 대화를 이어가기 힘들지만 예수님은 이 여인의 말에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예수님은 이 불쌍한 여인이 하나님의 선물과 하나님이 누구인지 알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은 구원과 영생입니다. 네게 물을 좀 달라하는 이는 메시아를 가리킵니다. 이 여인이 하나님의 선물과 메시아를 몰랐기 때문에 지금까지 외롭고 목마른 인생을 살 수밖에 없다고 진단하신 것입니다. 동서고금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다 선물을 좋아합니다. 선물 이야기 하면 누구나 관심을 갖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주는 선물은 대가를 요구하는 부담스러운 것입니다. 비싸고 값진 것이라면 뇌물일 가능성이 크고요. 하지만 주님은 우리에게 대가 없이 최고의 선물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관심 가져야 할 것은 하나님의 선물과 이런 선물을 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좀 전에 물을 달라 하더니 이제는 물을 주겠다고 하니 더운 날 물을 먹지 못해 정신이 나갔나 생각했을 것입니다. 11, 12절을 보십시오. 여인은 예수님이 주시겠다고 하는 생수를 자연의 물로 오해했습니다. 물길을 그릇도 없고 물은 깊은데 어떻게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가.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큽니까? 혹시 사기꾼 아니에요? 이 여인은 야곱이 준 우물을 사랑하고 있고 이 우물을 준 조상 야곱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습니다. 또한 야곱은 일편단심 한 사람 라헬만 사랑했고 그녀를 얻기 위해 14년을 봉사했습니다. 이 여인에게 야곱은 존경과 선망의 대상이었을 것입니다. 남 유다는 사마리아를 이방인 보다 더 무시하고 원수로 여겼지만 사마리아인들은 스스로 신앙의 자부심이 강했습니다. 이들은 모세오경 만 믿었고 비록 혼합 종교가 되었지만 야곱의 후손이라는 하나님의 택함 받은 백성이라는 자부심을 붙들고 그리심 산에서 예배드리며 살았습니다.

13, 14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예수님은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잠시 만족이 있지만 다시 목마르다고 하십니다. 야곱의 우물은 세상에서 우리의 노력으로 얻는 물입니다. 사람들은 야곱의 우물을 통해서 목마름을 해결하려고 하죠. 어떤 야곱의 우물이 있죠? 어떤 목마름이 있죠? 이성의 사랑에 대한 목마름입니다. 이성의 사랑은 처음에는 청량음료 같이 톡 쏘는 즐거움이 있지만 얼마안가 실망합니다. 다른 사람을 찾아 나섭니다. 평생 찾아다니는 사람들도 있어요. 어떤 사람은 할아버지가 되었는데도 찾아다닙니다.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의 목마름이 있습니다. 처음 인정과 칭찬을 받으면 살맛이 나나 다음에는 더 큰 인정을 해 줘야 만족합니다. 인정받는 사람이나 인정해 주는 사람이나 곤란해집니다. 요즘은 물질에 대한 목마름이 큽니다. 젊어서부터 내 집 마련이 인생의 목표입니다. 그러나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면 더 크고 더 입지 좋은 아파트를 원합니다.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달려가지만 절망 가운데 탄식하며 세상을 떠나는 것입니다. 목마름을 채우기 위해 애쓰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과 같이 아무리 채워도 만족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에도 왜 여전히 목말라 하는 것입니까? 왜 야곱의 우물을 전전 하는 것입니까? 이런 목마름의 원인을 예레미야 선지자는 예레미야서 2장 13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 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 들이니라. 아모스 선지자는 아모스서 8장 11절에서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요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갈이라.‘ 라고 했습니다. 생수의 근원 되신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할 때 무엇을 해도 참 만족이 없고 참 기쁨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우리에게 갈증을 더할 뿐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시는 물을 마시면 그 물은 속에 들어가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됩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영생수를 마시면 참 만족을 누립니다. 기쁨이 넘치고 힘이 넘칩니다. 몸과 마음이 젊어집니다. 그러나 중독성은 없습니다. 더 이상 야곱의 우물가를 전전하지 않게 됩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이 여인은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 않게 하옵소서. 물 길러 오지 않게 하옵소서.‘ ’생수를 주십시오. 제발 주십시오.‘ 여인의 이런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합니다. 반면에 니고데모는 거듭나야 하겠다는 중요한 말을 듣고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이성으로 판단하고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주여 거듭나게 도와주십시오.‘ 라고 간구 했어야 했습니다. 생수를 주십시오. 제발 저에게 주십시오. 간절히 구하는 자세를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목마르지도 않고 또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라고 말한 것을 볼 때 이 여인이 그동안 대낮에 물 길러 오는 삶이 얼마나 지치고 피곤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우물가에 물 길러 오는 고단한 삶은 바로 우리의 고된 삶의 모습입니다. 형제들의 삶의 현주소는 어떻습니까? 대학입시의 첫 관문을 뚫고 무사히 졸업을 하면 취업과 직장생활 이라는 더 큰 정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경쟁하고 윗사람에게 야단맞고 가기 싫어도 먹고 살기 위해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자매들은 어떻습니까? 결혼하면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니죠. 행복 끝 고생 시작입니다. 신혼의 콩깍지가 벗겨지면 남편의 허물이 보이죠. 속을 썩입니다. 아이 낳고 키우는 것이 만만치 않습니다. 때로는 잠을 설치기도 하고 아기가 아프기라도 하면 뜬눈으로 밤을 새웁니다. 이렇게 어렵게 키워 사춘기가 되니까 이제는 아이들이 컨트롤이 안 됩니다. 웬수가 따로 없습니다. 우리네 고단한 삶의 모습이 이러합니다. 이것이 우리네 인생이지요. 16절을 보십시오. ’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예수님은 갑자기 여인에게 네 남편을 불러오라고 하십니다. 남편과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과는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것도 왜 이 시점에 남편 문제를 꺼내는 걸까요? 처음부터 네 남편을 불러 오라라고 했으면 이 여인은 도망갔을 것입니다. 먼저 죄 문제를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죄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여인의 목마름의 문제는 남편 문제였습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영생 수를 마시기 위해서는 먼저 죄 문제를 들고 나오도록 회개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네 남편을 불러 오라 말씀하십니다. 내 마음속에 숨겨 놓은 거짓 남편이 누구입니까? 부끄러움 체면 벗어 버리고 주님을 새롭게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17절에서 19절을 보십시오. ‘남편이 없나이다.’ 여인은 자신의 부끄러운 치부를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 남편이 없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여자에게 ‘거짓말 하지마 남편을 다섯이나 바꿨잖아’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 제대로 된 남편 한 사람도 못 만났지.’ 여인의 어려운 형편을 말 못할 고민을 이해하시고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하며 받아 주셨습니다. 이 여인은 야곱과 같은 남편을 만나고자 하다가 남편을 다섯이나 바꿨습니다. 남편들은 다 도둑놈들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좋아보였습니다. 그러나 살아보니 한결같이 다 실망 이었습니다. 바람꾼 사기꾼 폭력꾼 술꾼 노름꾼이었습니다. 지금 같이 살고 있는 연하남도 언제 떠날지 모르는 철부지였습니다. 여인은 예수님께서 자신이 행했던 모든 과거를 말씀하시자 예수님을 영적으로 바라보기 시작 했습니다. 여인은 예수님을 선지자로 고백 했습니다. 이는 자신의 죄를 고백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물이 대화의 주된 내용이었지만 죄 문제를 해결한 뒤부터는 주된 관심사가 예배로 바뀌었습니다. 이 여인은 남편을 다섯 번이나 바꿀 정도로 진심과 열정 능력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의 진심과 열정을 바칠 대상을 찾지 못해서 방황하고 있었고 이는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남으로 해결되는 것입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을 선지자로 확신한 이 여인은 목마름 문제에서 이제 예배 문제에 대해 질문 합니다. 왜 화제를 남편 문제에서 예배 문제로 돌렸을까요? 남편 문제와 예배 문제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일까요? 지금까지 이 여인이 방황하고 목마른 인생을 사는 이유는 예배의 대상을 잘못 찾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여인은 참된 예배를 드리고 싶었지만 어디서 어떻게 드려야 할지 몰랐습니다. 21- 24절에서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참된 예배를 가르쳐 주십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리심 산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주장했고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드려야 참된 예배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예배의 때와 대상이 중요함을 강조하십니다. 대상은 하나님 아버지께 드리는 것입니다. 또한 이때는 예수님을 만날 때 예수님을 만나고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으면 이때부터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먼저 세상 죄를 회개하고 메시아를 만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모세오경만 믿었고 반면에 유대인들은 구약 성경 전체를 믿었습니다. 구원을 주시는 예수님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으로 유대 지파에서 나신 유대인 이십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내 인생의 모든 것을 드려도 아깝지 않은 참된 예배에 대상을 찾고 있습니다. 남편이 아내가 예배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자녀도 예배의 대상이 아닙니다. 물질 명예 권세도 예배의 대상이 아니죠. 오직 하나님만이 유일한 예배의 대상 이십니다.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만이 우리의 참된 예배 대상이십니다. 23절 보십시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이 땅에서 누구를 주목 하십니까? 누구를 찾으십니까? 하나님은 예배 자를 찾으십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예배 자를 찾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찾으시는 바로 그 예배 자가 되어야 합니다. 24절 보십시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참된 예배는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이는 수레의 두 바퀴와 같습니다. 하나만 있어도 제대로 굴러가지 않죠. 그러면 영으로 드리는 예배는 무엇입니까? 영은 영어 성경으로 보면 ‘the spirit’ 우리 마음속에 있는 영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우리 인간은 육체가 있고 정신 즉 생각이 있고 또 영이 있습니다. 지난 주 부활절 수양회가 있었죠. 우리가 언젠가 죽으면 부활 하겠죠. 그때 내 속에 영은 천국을 향해 가며 기뻐하며 춤을 주겠죠. 천국에서는 무엇을 할까요? 우리의 영이 하나님을 예배 하겠죠. 영으로 예배 한다는 것은 몸으로 마음으로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몸은 아플 수도 있습니다. 마음이 아플 수도 있지요. 근심 걱정 할 수도 있죠. 반면에 내 안에 있는 영은 하나님 앞에서 감사하고 감격하고 기뻐하고 있습니다. 영으로 드리는 예배는 예수님이 함께 하심을 믿는 함께하심을 느끼는 예배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며 체험하는 예배입니다. 이런 예배를 드리게 위해서는 기도로 간절히 준비하고 찬양으로 뜨거워져야 합니다. 현장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진리로 드리는 예배는 무엇입니까?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즉 진리로 드리는 예배는 말씀이 선포되는 예배요 선포되는 말씀을 믿음으로 영접하는 예배입니다. 말씀의 은혜가 넘치는 예배입니다. 말씀이 없으면 말씀을 받지 않으면 뿌리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감정과 느낌에 치우치게 됩니다. 그러면 삶이 바뀌지 않죠. 말씀을 받고 말씀에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이처럼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는 기쁨이요 감격이요 은혜요 축복이요 특권입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리면 삶이 변화됩니다. 열매를 맺습니다. 코로나 사태가 1년 이상 계속 되며 그동안 코로나에 걸리지 않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어서 감사했지만 우리의 영성은 많이 다운된 것이 사실입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리지 못 했기 때문이죠. 이 시간 예배가 회복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망합니다. 주님이 오늘 이 자리에 오신다면 나에게 무슨 말씀 하실까요? ‘아들아 딸아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너의 예배 가운데 함께 하고 싶구나.’ 주님은 지금도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 가운데 함께 하시고 그런 예배 자 들을 찾으십니다. 25 26 절을 보십시오. 여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메시아가 오시면 모든 것을 알려 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내가 그라’ 하셨습니다. 여인은 참된 남편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여인은 솟아오르는 은혜와 기쁨과 감격을 주체하지 못하고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외쳤습니다. 저는 학창시절 이성의 사랑을 구했습니다. 학과 공부와 전공에서 인정받기를 원했습니다. 목자가 되고 선교사가 된 후에는 복음 역사를 잘 이루고자 하다가 사업적이 되었습니다. 이런 삶은 고단하고 피곤하였습니다. 말씀 앞에 회개 하였고 영생 수 되신 예수님을 만났을 때 심령에 은혜와 기쁨이 차고 넘치게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예배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참된 예배에 대해 가르쳐 주셨습니다. 영과 진리로 드리는 참된 예배를 회복함으로 은혜를 충만히 덧입고 하나님의 역사를 섬기기를 기도 합니다.

결론적으로, 사마리아 여인의 목마름은 참된 남편인 예수님을 만나고 영과 진리로 하나님을 예배할 때 해결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도 여전히 목마른 인생을 살고 있다면 예배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예배를 드릴 때 참된 기쁨과 만족과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 힘과 능력을 덧입게 됩니다. 우리가 참된 예배를 드림으로 새 힘을 덧입고 세상으로 나가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참된 제자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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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2 요한복음 [2021년 요한복음 제12강]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관리자 2021-06-05 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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