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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6-05 (토) 11:06
분 류 요한복음
첨부#1 2021년_요한복음_제12강-1.hwp (32KB) (Down: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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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요한복음 제12강]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2021년 요한복음 제12강                                                                                              이 인구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말씀/요한복음 8;21-59
요절/요한복음 8;31,32-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노벨문학상 수상자였던 솔제니친이 소련에서 추방되기 직전 그는 재판석상에서 인간성을 부정하고 자유를 빼앗는 공산주의는 반드시 망한다고 예언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는 재판관의 물음에 그는 대답했습니다. “공산주의는 진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재판관이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진리가 무엇입니까?” 한때 사람들은 인간의 죄와 문제의 원인을 물질로 보고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물질을 나눠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공산주의를 진리로 봤습니다. 하지만 부정부패한 독재통치로 인간의 자유를 빼앗은 공산주의는 결국 무너졌습니다.

오늘 말씀은 인간에게 자유를 주는 진리에 대해 예수님께서 증거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 모두는 오늘 말씀을 통해 진정한 자유를 주는 진리에 대해 배우고 진리 안에서 참 자유를 누리는 승리의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 초막절행사 때 영적으로 갈급한 유대인들에게 말씀을 전하시자 많은 사람들이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믿음은 아직 초신자의 피상적이고 지식적인 수준이었습니다. 앞으로 그 믿음이 온전한 믿음으로 발전할 수 있지만 또한 그 수준에 머물 때 오히려 예수님을 대적하는 세력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31,32) 요한복음에서도 이 말씀은 너무나 유명한 말씀으로 3부분으로 나눠 증거하겠습니다.


첫째, 진리

진리가 무엇입니까? 예전 한 배우가 연기상을 받으면서 소감으로 자신이 50년 동안 살면서 깨달은 3가지 진리에 대해 말했습니다. “첫째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고 둘째 거짓은 결코 참을 이길 수 없고 셋째 남편은 부인을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가 많이 쓰는 말이지만 혼돈하고 왜곡하는 말 중에 하나가 사실과 진실 그리고 진리라는 말입니다. 사실(fact)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나 현재에 있는 일을 말하고 진실(truth)은 거짓이 없는 사실입니다. 진리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절대적이고 보편적이고 변하지 않는 참된 이치(길)입니다. 왜곡되지 않은 사실과 진실이 함축되어 세워진 것이 진리입니다. 배우가 말한 셋째 진리는 본인에게 사실일지 모르지만 결코 진리가 될 수 없습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국립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루벤스의 ‘시몬과 페로’라는 그림이 있습니다. 이 그림은 두 손이 묶여 있는 노인이 젊은 여인의 젖을 먹는 그림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사실은 부도덕하고 퇴폐적인 그림이지만 이 그림은 로마의 실화를 바탕으로 그린 것으로 그 속에는 감동적인 진실이 숨어 있습니다. 노인(시몬)은 황제의 노여움을 사 감옥에 갇혀 고문당하고 굶주려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여인(페로)은 그 딸로 아버지가 곧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출산한지 얼마되지 않아 면회갔지만 모든 음식이 금지되어 죽어가는 아버지에게 젖을 먹인 것입니다. 겉에서 보이는 사실만을 보는 이는 퇴폐적인 그림이라 비난할 수 있지만 그 뒤의 진실을 아는 이는 눈물을 흘립니다. 겨우 그림 한 점조차도 진실을 알게 된 후에 시각이 180도 바뀌는데 수많은 사실과 사연들로 이루어진 인생은 어떻겠습니까? 사람들은 어두운 세상에서 인생을 인도할 변하지 않는 참된 진리를 찾았고 또 진리를 통해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얻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서 힘을 가진 이들은 자신들의 유익에 따라 일부 사실들은 숨기고 일부 사실들만 확대해 보여줌으로 진실을 왜곡할 때가 많습니다. 또 많은 이들이 자신이 보고 싶고 듣고 싶은 사실만을 받아들입니다. 이것을 ‘확진 편향’이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열쇠를 잃어버렸다며 가로등 밑에서 열심히 찾고 있었습니다. 어디서 잃어버렸냐고 물으니 저기서 잃어버렸다고 해서 왜 저기서 찾지 않고 여기서 찾느냐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저기는 어두워서 안보이고 가로등이 있는 여기가 더 잘 보여 여기서 찾는다 했습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만을 보고 싶어하며 불편한 진실을 외면합니다. 또 진실을 규명하는 참과 거짓의 기준도 시대에 따라 환경에 따라 변합니다. 만약 루벤스의 그림속 노인이 나라를 통일하려는 황제에 맞서 한 소수민족의 독립을 위해 목숨 바치는 이라면 그 민족 사람들에게 감동적인 이야기지만, 통일을 원하는 다른 이들에게는 반역자의 불편한 이야기입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폭로와 진실게임 그리고 사실을 왜곡하는 세력들 속에서 사람들은 왜곡된 진리로 살아가거나 아니면 “진리가 밥 먹여 주냐?”하며 진리없이 눈에 보이는 사실만을 보며 살아갑니다. 모든 것이 변하는 세상에서 또 진실과 거짓이 뒤섞인 세상에서 진리는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것처럼 우리를 인도할 절대적이고 변하지 않는 참된 길인 진리는 반드시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진리는 오직 하나, 하나님말씀입니다. 하나님말씀만이 참이요 빛이요 진리입니다. 그리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가운데 거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예수님은 진리되신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길이 되십니다. 또 진리되신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삶으로 보여주신 분이십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에서 또 거짓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를 인도하는 길이요 진리가 되십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안에 거함으로 진리되신 예수님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또 예수님 안에서 참 자유를 누림으로 진리되신 예수님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둘째, 자유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쳤던 패트릭 헨리의 연설처럼 인간에게 자유는 그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집니다. 인간은 자신이 존재하는 순간부터 자유를 추구해왔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지 못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인류역사는 자유를 찾는 역사입니다. 프랑스 혁명이나 미국의 독립전쟁, 우리나라의 3,1만세운동이나 현재 미안마 사태에서 사람들은 정치적인 자유를 얻기 위해 목숨을 바쳤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유대인들이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33) 반발했지만 실상 그들은 간절히 정치적 자유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애굽의 노예로 있을 때부터 나라를 이룬 후에도 앗수르와 바벨론의 긴 식민통치를 겪었고 현재도 로마의 식민통치아래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신앙적 자부심으로 산다고 말하지만 진실은 간절히 로마에서 해방되는 정치적 자유를 구하고 있었고 또 많은 무리들과 심지어 제자들도 예수님의 능력을 이용해 정치적 자유를 얻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정치적 자유를 얻기 위해 강한 힘과 권력을 얻기를 원합니다. 힘과 권력을 자유를 줄 수 있는 진리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정치적 자유를 얻기 위해 힘과 권력을 구하면서 어느새 힘과 권력의 노예가 됩니다. 인류역사상 많은 독재자들이 그랬고 지금도 북한을 비롯한 전 세계 독재자들과 심지어 민주화를 위한다는 지도자들조차 힘과 권력을 얻고 유지하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고 거짓을 합리화하며 백성들의 자유를 억압하고 빼앗습니다. 주변 나라들의 침략으로부터 백성들을 보호하고 자유케 한다며 권력을 잡은 후 오히려 백성들의 자유를 빼앗아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는 권력의 종이 됩니다.

최근 많은 이들이 경제적 자유에 목말라합니다. 경제적 자유를 얻기 위해 돈을 절대적이고 보편적이고 변하지 않는 진리처럼 여기고 쫓아갑니다. 코로나로 전 세계 경제가 큰 타격을 받았지만 각 나라에서 양적완화정책을 씀으로(돈을 풀면서) 집과 주식 등 자산가치가 폭등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항상 변함없이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지만 집과 주식을 가진 이들이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되면서 그들은 하루아침에 벼락거지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인공지능로봇(AI)과의 경쟁 속에서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나이들어 일자리까지 끊어지면 길에 나가 폐지를 주어야 할 것 같은 두려움이 듭니다. 그래서 많은 2030청년들이 경제적 자유를 위해 여름밤 모닥불에 뛰어드는 불나방같이 가상화폐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얼마 전(5월 17-19일) 전국 대학생(약2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중앙일보) 응답자의 24%가 가상화폐에 투자한다고 했습니다. 그중 수익을 거둔 이도 손실이 난 이도 있지만 약 70%가 투자에 따른 심각한 부작용을 호소하고 있었습니다. 시세에 따른 감정기복의 심화, 일상생활에서 집중력 하락, 중독증세, 스트레스, 불면증 등이 나타났습니다. 많은 이들이 경제적 자유를 얻기 위해 돈을 좇았지만 어느새 돈의 노예가 됐습니다. 돈은 최고의 노예지만 최악의 주인입니다.(프란시스 베이컨) 최고의 노예처럼 유혹하다 걸리면 최악의 주인이 됩니다. 경제적 자유를 얻은 부자는 돈에 자유로울 것 같지만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마19;24)는 진리의 말씀처럼 부자가 더욱 돈의 노예인 것은 진실입니다. 자본주의는 공산주의와의 싸움에서 승리 후 사람들에게 무한대한 자유를 주고 큰 경제발전을 이루어 진리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자유는 무한경쟁으로 인간성 상실로 몰아갔고 과잉생산으로 환경파괴의 원인이 됐습니다. 자본주의의 절제되지 못한 자유는 사람들을 물질의 노예로 만들었고 환경파괴로 각종 질병의 노예로 만들었습니다. 또 어떤 이는 진리를 통한 자유를 얻기 위해 학문을 연구하지만 아는 것이 병이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인류가 시작할 때부터 또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유를 찾지만 진정한 자유는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자유는 진리되신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34) 진정한 자유는 죄로부터의 자유입니다. 공산주의도 자본주의도 독립운동도 통일운동도 인간이 만든 어떤 제도나 사상도 결국 인간의 죄 때문에 변질됨으로 진정한 자유를 줄 수 없습니다. 죄의 종이 자유를 얻기 위해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 종일뿐입니다.(35) 진정한 자유는 먼저 종의 신분에서 벗어나 아들의 신분이 될 때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로 지으시고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 중 ‘자유의지’라는 고귀한 선물을 주셨는데 그것은 인간을 프로그램밍된 로봇이나 훈련된 애완견이 아닌 하나님의 자녀로 진정한 자유를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자유의지로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며 하나님의 자녀로 다스림을 받기를 바라셨습니다. 물고기가 물속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고 새가 하늘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처럼 인간은 나를 지으신 하나님 안에서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하여 죄를 범함으로 죄의 종이 되어 자유를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사단이 준 죄의 열쇠는 마음대로 죄의 세상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하지만 한 번 들어가면 다시 나올 수 있는 열쇠가 없어 영원히 사단의 종이 됩니다.(칼 하임) 잃어버린 자유를 찾아 평생 갈구하지만 평생 죄의 종으로 살다가 결국 죽어 죽음의 종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사랑하셔서 아들을 통해 죄 사함의 길을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36) 예수님께서 죄와 죽음의 종으로 살던 인간들에게 진정한 자유를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28a) 예수님께서 인생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인간의 모든 죄를 용서받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가로막던 죄의 벽을 무너뜨린 것입니다. 우리는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영접할 때 죄의 종에서 벗어나 억매이던 모든 죄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영접할 때 과거의 죄뿐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죄에서도 자유할 수 있습니다. 왜냐면 죄의 종에서 풀려난 후 하나님의 자녀로 지위를 회복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며 인도하시면서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영광을 위해 살도록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신자는 진리되신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 말씀에 거할 때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셋째, 말씀에 거함.

‘말씀에 거한다’는 말의 의미는 ‘말씀과 더불어 산다’는 뜻입니다. 만약 어떤 부부가 결혼하고 6일 동안 다른 사람과 따로 살다가 일주일에 하루 주일에만 같이 만나 서로 안부를 묻고 교제한다면 그것은 함께 거하는 삶이 아닙니다. 한 집에서 같이 살며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것이 함께 거하는 삶입니다. 말씀 안에 거하는 삶은 매일 말씀을 듣고, 묵상하고 말씀에 순종하며 무엇보다도 말씀을 사랑하는 삶입니다. 즉 말씀이 그 사람의 양식과 힘이 되고 말씀이 모든 행동의 기준이 되고 말씀이 그 사람의 인생의 가치관과 목표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말씀에 거하는 것은 진리되신 예수님과 함께 하는 것으로 그때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연극배우 친구가 부러웠습니다. 그 배우는 연극이 상연될 때마다 수많은 관객을 끌었지만 목사님은 교회에서 몇 사람 되지 않는 교인들에게 설교를 했습니다. 어느날 목사님은 배우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자네는 관객을 많이 끌어들이지만 나는 소수에 불과하네. 그 이유가 뭘까? 자네 말은 꾸며낸 이야기이고 내 말은 불변하는 진리이기 때문일거야!" 그러자 배우 친구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꾸며낸 이야기를 진리인 것처럼 말하고, 자네는 진리를 꾸며낸 이야기처럼 말하고 있다네." 우리 신자가 예수님의 말씀에 거하지 않고 세상에 선한 영향력이 없을 때 사람들은 복음진리를 꾸며낸 이야기처럼 볼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 믿고 자유롭게 신앙생활하는데 왜 꼭 매일 일용할 양식 먹고 수시로 말씀공부하고 그것도 부족해서 매주 소감까지 쓰고 심지어 발표까지 해야 하는가 반발합니다. 왜 다시 찾은 자유를 빼앗느냐 반발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죄가 얼마나 지독한지, 죄가 얼마나 끈질긴지, 죄가 얼마나 강력한지, 마지막으로 자기가 얼마나 죄에 약한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만약 말씀에 거하는 것이 부담된다면 그동안 우리가 걱정 근심에 빠졌을 때 어땠는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힘든 문제에 빠졌을 때 우리는 자나 깨나 걱정 근심에 거합니다. 일할 때도 식사할 때도 심지어 근심에 빠져 까만 밤을 하얗게 샐 때도 있습니다. 당장 인생이 망하거나 내일 죽을 일도 아니고 상황이 악화될 가능성이 크지 않는데도 모든 가능성까지 고려하며 걱정과 근심에 거합니다. 특히 죄는 이처럼 우리영혼을 사로잡아 종으로 만들고 병들게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처럼 매일 진리의 말씀에 거한다면 예수님 안에서 진정한 자유와 생명과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신자는 문제 속에서 걱정 근심이 들어올 때 더욱 적극적으로 말씀에 거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빛이 어둠을 몰아내는 것처럼 진리의 말씀으로만이 걱정 근심의 어둠을 몰아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마치 코로나 바이러스를 대비해서 미리 백신을 맞는 것처럼 평소 진리의 말씀에 거한다면 언젠가 닥쳐오는 인생 위기도 능히 극복할 수 있는 지혜와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죄에서 자유를 얻은 신자라도 모든 세상 십자가에서 자유를 얻은 것은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장래를 위해 공부해야 되고 먹고 살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고 특히 자녀는 평생 억매임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리의 말씀에 거할 때 진리되신 예수님의 도움과 인도가운데 감당할 수 있습니다. 진리의 말씀에 거하고 인도함 받을 때 눈앞에 보이는 현실에만 매이지 않고 또 사람들의 반응이나 단기적 결과에 매이지 않고 믿음으로 인내하며 소망가운데 장래를 보며 살 수 있습니다. 진리되신 예수님의 말씀 안에 거할 때 최후에 승리할 것을 믿기 때문에 어떤 위기나 고난가운데서도 자유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진리의 말씀에도 유대인들은 자신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죄의 종이 아니라고 반발합니다. 사실 그들은 족보로 보면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아브라함의 행한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39,40) 즉 아브라함의 믿음의 삶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보통 훌륭한 부모 밑에서 훌륭한 자녀가 나오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닙니다. 가인과 아벨은 인류의 첫 조상 아담과 하와의 자녀였지만 다른 성격으로 태어나 정반대의 가치관으로 살았습니다. 가인은 부모의 불순종의 죄를 본받아 더욱 큰 죄의 종이 되 살인자의 조상이 되었지만 아벨은 부모의 회개를 본받아 순종과 믿음의 삶을 살았습니다. 인간적 혈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고 따라야 아브라함의 후손입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족보만 받았을 뿐 진실은 죄의 종으로 살았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끝까지 예수님의 진리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말씀에 거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 내면에 예수님의 진리의 말씀이 있을 곳이 없자 더욱 강한 죄의 본성으로 예수님을 거부하고 자기 뜻과 거스리는 예수님께 반발했습니다.(37) 예수님은 그들의 강한 반발에도 그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참 자유와 생명을 주시기 위해 계속 도전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51) 어떤 죄인이든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 거하면 그 말씀의 생명으로 죄에서 자유를 줄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죄의 결과인 죽음을 이길 수 있습니다. 죽음에서 부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이 끝까지 진리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자 내면의 죄의 본성은 더욱 강하게 예수님을 대적했습니다. 자신들의 생각과 부딪히는 예수님이 귀신 들린 자라며 비난하다 마침내 돌을 들어 죽이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겉으로 보이는 사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지만 진실은 아브라함의 자손의 탈을 쓴 사단의 종이었습니다. 그들의 모습은 믿는 신자라고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에 거하지 않을 때 어떻게 되는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요 아브라함의 자손들로써 어릴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자랐을텐데 왜 하나님의 진리를 증거하는 예수님을 거부하는 것 입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알고 일부는 열심히 지켰지만 율법의 근본정신 즉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율법을 통해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기보다 자신의 뜻에 맞는 율법만을 선택했습니다. 그것은 마치 자신의 뜻에 맞는 사실만을 선택해 과장해서 드러내고 자신의 뜻과 어긋나는 사실은 은폐하며 진실을 왜곡하는 세상지도자들과 같습니다. 또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듣고 싶은 것만을 들으며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는 사람들과 같습니다. 그들은 로마식민지 백성으로 연단하시며 돌이키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회개하기보다 자신들의 죄성 그대로 정치적 자유만을 바랬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보다 자기 요구를 말하고 관철하는 데만 집중했습니다. 진리이신 예수님의 말씀이 그들의 내면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진리의 말씀 안에 거하지 않을 때 결국 진리를 대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신자가 예수님의 말씀 안에 거하는 것은 죄에서의 자유 그 이상의 목적이 있습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제자는 스승을 닮은 자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 안에 거할 때 죄의 종에서 벗어나 예수님을 닮은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죄는 죄에 빠진 자를 강압적으로 자기 종으로 만들어 스스로 벗어나지 못하게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인격적으로 구원받은 자와 함께 하시고 인도하심으로 자신을 닮은 제자로 살도록 도우십니다. 그러나 많은 신자들이 예수님의 피로 거듭났지만 다시 죄에 매임으로 죄의 종처럼 살고 있습니다. 그것은 말씀에 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신자는 마땅히 다시 얻은 값진 자유로 말씀에 거함으로 죄의 종의 습관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자녀요 예수님의 제자답게 살아야 합니다. 자유는 단지 어떤 얽매임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더 가치 있는 것을 하기 위한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말했습니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고전9;19) 바울은 세상의 주인이셨지만 모든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종으로 오신 예수님을 닮고자 다시 얻은 값진 자유를 바쳤습니다.

사람들은 ‘자유로운 영혼’을 갈망합니다. 그것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참 자유고 행복이라는 생각이 깔려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누구나 내 마음대로 한 후 땅을 치며 후회한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만약 그런 경험이 전혀 없다면 그분은 정말 신령하고 거룩한 분이거나 아니면 바보일 것입니다. 자유로운 영혼은 행복한 영혼이라기보다 행복을 찾아 끊임없이 방황하는 영혼이라는 것이 진실입니다. 어거스틴은 고백론에서 “우리의 진정한 자유는 내 마음대로 할수 있는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했습니다.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은 자유가 아닌 죄의 본질에 가까운 방종입니다. 진짜 자유와 행복은 자신의 뜻이 예수님의 뜻과 온전히 하나가 될 때(연합될 때) 옵니다. 예수님의 뜻은 하나님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신자는 예수님의 말씀에 거함으로 예수님과 하나가 되 하나님영광을 위해 살 때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영국 작가 C S 루이스는 천국과 지옥을 재미있는 비유로 표현했습니다. 천국은 인간이 하나님을 향해 “Your will be done!" (하나님 당신의 뜻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고 지옥은 하나님이 끝까지 돌이키지 않는 인간들에게 ”Your will be done!"(네 뜻대로 되거라!) 선포한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희생으로 다시 얻은 자유로 말씀에 거함으로 죄에서 자유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하나님의 자녀요, 예수님을 닮아나가는 제자로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최근 자녀들의 연이은 대입과 건강문제로 스트레스 받을 때 말씀으로 섬겼던 형제가 결국 모임을 떠났고 또 동생이 불치병에 걸려 계속 악화되어 가면서 무거운 삶의 짐에 억매이게 됐습니다. 거기에 코로나로 모든 것이 묶여 있는 것 같은 답답한 상황이 지속되면서 모든 삶의 짐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싶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습니다. 어떤 분은 안식년도 갖는데 저는 군대도 면제되어 졸업 후 한 번도 제대로 쉬어 보지 못하고 끊임없이 달려와 더욱 자유에 대한 갈망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힘들게 키워왔던 치과 일을 그냥 놓아버릴 수도 없고 더구나 갑자기 일을 쉬면 더 쉽게 늙는다고 하여 그러지도 못하고 계속 억매여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에 거하면서 진정한 자유는 죄로부터의 자유이고 죄악된 제가 죄 사함 받아 예수님의 제자로 살면서 하나님영광을 위한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고 자유인가 깨닫게 됐습니다. 말씀으로 형제들을 섬기고 말씀을 증거하는 것이 큰 부담이 될 때도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항상 말씀 속에서 인생문제의 실마리를 찾게 도와주셨습니다. 불확실한 현실에서도 말씀에 거할 때 진리되신 예수님이 저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과 평안과 내적 자유를 주셨습니다. 아직 장래가 명확히 보이지 않지만 끝까지 진리의 말씀에 거할 때 결국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고 승리하게 도와주실 것을 믿게 됐습니다. 제가 어떤 형편이든지 진리의 말씀에 거함으로 예수님께서 주시는 자유를 누리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열매 맺는 인생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에 거할 때 그 제자가 되고 진리이신 예수님을 깨달으므로 죄의 종에서 자유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전 로마총독인 빌라도 앞에 섰을 때 빌라도가 물었습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요18;37) 빌라도가 말했습니다. “진리가 무엇이냐?” 빌라도는 진리되신 예수님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결국 이 세상에 오신 뜻대로 모든 수치와 고통의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가 얻은 자유는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Freedom is not free." 자유는 공짜로 얻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진리되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의 대가로 얻은 값비싼 것입니다. 우리가 다시 얻은 자유로 매일 예수님의 말씀 안에 거함으로 진정한 자유를 누리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인생, 예수님을 닮아가는 진리의 인생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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