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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7-24 (토) 09:29
분 류 요한복음
첨부#1 2021년_여름수양회_제3강-1.hwp (33KB) (Down: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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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여름수양회 제3강]다 이루었다
2021년 여름수양회 제3강                                 이마태오
다 이루었다
말씀/ 요19:1-42
요절/ 요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안녕하십니까
오늘 말씀의 제목은 ‘다 이루었다!’입니다. 요절말씀은 요한복음 19장 30절입니다. 다 같이 요절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다 이루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돌아가시기 직전에 하신 말씀이에요. 무엇을 다 이루셨을까요?
예수님은 2000년전에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땅에 오신 데에는 어떤 임무와 목적을 갖고 오셨는데 그건 바로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 일과 ‘우리들을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원해 주시는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30여 년 동안 생애를 보내시면서 진리의 말씀을 전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돌아가시게 되는데, 돌아가시기 직전에 하신 말씀하이 바로 ‘다 이루었다.입니다. ‘다 이루었다’라는 이 말씀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큰 의미는 이 말씀으로 ‘우리들을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원해주는 구원역사’가 완성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예수님이 어떻게 구원역사를 완성하시고, 완성하기까지 어떤 희생과 고통을 치루셨는지, 이러한 일들을 왜 감당하셔야 하셨는지, 그리고 ‘다 이루었다’라는 이 말씀이 우리 인생에 어떤 의미를 주는지 생각해보는 귀한 시간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
본문에 앞서 18장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한밤중에 체포를 당하시고, 심문을 받는 내용이 나옵니다. 유대인들이 한밤중에, 불법집회를 열어서 자신을 ‘유대인의 왕,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는 예수님을 신성모독죄로 체포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체포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 식민지였기 때문에 사형 집행권이 없었어요. 그래서 유대인들은 사형선고를 언도 받기 위해, 로마에서 파견된 유대 총독 ‘빌라도’라는 사람에게 예수님을 데리고 갔습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새벽부터 예수님을 심문하게 됐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께 묻습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너희 나라 사람들이 너를 넘겼는데 너는 무슨 일을 하였느냐?” 예수님은 대답하십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너의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 땅에 온 것은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러 왔고,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빌라도는 예수님의 태도와 말씀에 굉장히 놀랐습니다. 보통 누군가한테 고소를 당하거나, 심문을 받게되면 작은 억울한 일에도 자기 변호를 하고, 살려고 발버둥 치지 않겠습니까?
빌라도가 경험해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모습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빌라도의 말 한 마디에 사형을 받을 수도 있는,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위해 어떠한 변호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될 거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고, 그 사실을 받아 드리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과 대화를 나눈 빌라도는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말했습니다.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 하였다.” 그리고 빌라도는 예수님을 풀어주기위해 머리를 썼습니다. 유대인들의 명절인 유월절에는 특사로 죄수를 한명 놓아주는 전례가 있었습니다. 마침 유월절을 앞두고 있었고, 강도로 붙잡혀온 바라바라는 죄수도 한명 있었습니다. 빌라도는 흉악범죄를 저지른 바라바와 예수님 중 누구를 놓아줄지 유대인들에게 물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죽이기로 작정한 유대인들은 흉악범죄자 바라바를 놓아주라고 외쳤습니다.
 다같이 19장 1절을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이에 빌라도가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질하더라” 빌라도는 예수님을 죽이려는 무리들에게 만족을 주기위해 예수님을 채찍질을 하도록 명령하였습니다. 빌라도의 명령에 예수님의 팔은 기둥에 묶이고, 윗옷이 벗겨졌습니다. 그리고 로마군병의 무자비한 채찍질이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로마의 채찍에는 여섯 개의 가죽 끈이 달려있었는데 끈의 끝부분에는 무거운 납조각이나 날카로운 뼈 조각이 붙어있었습니다. 그래서 채찍에 맞으면 살점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등 근육의 피하 조직이 갈가리 찢어지고, 근육 속의 혈관들이 터져 몸의 구석구석에는 피가 고이고, 끔찍한 고통을 주었습니다. 채찍에 맞다가 갈비뼈가 부러지거나 창자가 파열되어 죽는 일도 허다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채찍을 120대나 맞으셨습니다.
채찍을 때린 군인들은 가시나무를 엮어서 예수님의 머리에 면류관처럼 씌웠습니다. 커다란 가시가 예수님의 머리를 뚫고 들어갔고, 머리 곳곳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렸습니다. 군인들은 왕을 상징하는 자색 옷을 예수님한테 입히고, 예수님을 조롱 하였습니다.  ‘유대인의 왕이어 평안할지어다’ 군인들은 예수님을 조롱하며 예수님의 뺨과 얼굴을 사정 없이 때렸습니다.
빌라도는 유대인들에게 나와서 말합니다. “보라 이 사람을 데리고 너희에게 나오나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그러자 피투성이가 된 예수님이 가시관을 쓰시고 자색 옷을 입은 채 걸어 나오셨습니다.
빌라도는 이런 자극적인 모습을 군중들에게 보여주면서 “이만하면 되지 않았느냐”, “이정도면 너희도 만족하지 않았느냐” 라고 하며 타협하려고 한 겁니다. 하지만 대제사장들과 아랫사람들은 소리를 질렀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그러자 빌라도는 말합니다. “너희가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노라!” 그러자 군중들은 말합니다. “우리의 법대로하면 당연히 죽을 것은 그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예수님이 그들의 법대로라면 마땅히 죽어야 하지만 우리에겐 사형권이 없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에 더더욱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빌라도는 유대 땅에 총독으로 있으면서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많을 들었을 겁니다. 죽은 사람을 살리고,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중풍병자가 일어나는등, 수많은 기적을 일으켜 왔다는 소문을 들어왔는데 그 예수님이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며 진리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죄인이 아니라는 것을 금세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빌라도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고소한 유대인들을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반발심이 강하고. 통제가 어려운 유대인들이 만약에 예수님을 풀어준다면, 흥분해서 민란을 일으킬까봐 두려워 하였습니다. 실제로 유대인들은 빌라도가 통치하던 시절에 크고 작은 소란과 폭동을 일으켜 왔었습니다. 당시 로마는 다스리는 식민지 지역에서 내란이 일어나면 상부로 보고되고, 자칫하면 총독자리에서 경질 될 수 있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무죄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공직 인생과 출세에 오점을 남길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당당하게 진리의 편에 서지 못 했습니다. 빌라도가 선택한 방법은 결단이 아니라, 군중들을 달래서 타협을 하는 것이였습니다. 빌라도는 자신의 자리도 지키고, 자신의 양심도 지키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때 유대인들이 빌라도에게 결정적인 말을 합니다. “이 사람을 놓아주면 로마황제 가이사의 충신이 아닙니다! 자기를 왕이라고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입니다!”
이 말에 빌라도는 마음이 크게 요동 쳤습니다. 충신이 아니라는 말과 ‘반역’이라는 단어가 빌라도의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예수’라는 이 사람을 풀어줬다가 로마에 보고라도 들어가는 날에는 무슨 일이나도 단단히 나겠구나“ 빌라도는 마지막으로 묻습니다.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그러자 대제사장들이 대답합니다.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습니다.” 결국 빌라도는 십자가에 못 박도록 예수님을 그들에게 넘겨주었습니다.
이 장면에는 많은 죄인들의 모습이 나옵니다. 먼저 대제사장들은 예수님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에 눈이멀어,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그들이 중시하는 율법을 어기고, 온갖 불법을 저질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만을 왕으로 섬기고 믿어야 하는 자들이였지만 ‘우리에게 왕은 로마황제 가이사 밖에 없다’고 외치며 신성모독의 죄를 범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는 이스라엘 군중들은, 불과 일주일 전만해도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는 예수님을 왕으로 경배하고 찬양하던 자들이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로마의 식민지배 가운데 구세주가 되어주시고, 현재 상황에서 자신들을 구원해 줄 메시아로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무지한 분별력으로, 일주일 만에 대제사장들에게 선동되어,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는 추한 죄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중에 가장 눈에 띠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빌라도지요. 빌라도는 예수님이 무죄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진리의 편을 선택하지 못 하고 갈등하다가 결국 무죄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 선고하는 큰 죄를 짓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 보면 진리와 나의 이익 사이에서 갈등하는 순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나의 자리나 나의 입지를 지키기 위해 진리의 편에 서기를 주저합니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진리의 편에 서지 못 합니다. 물질적 이익을 얻거나 진리의 편에 섰다가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진리의 편에 서지 않습니다. 좀 더 죄안에 거하면서 죄를 즐기기 위해 우리는 진리에 대한 분명한 결단을 못 하고, 세상과 타협을 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세상과의 ‘타협’이 아니라 진리 편에 서고자 하는 ‘결단’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기 때문에 우리는 진리의 편에 서야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두려움을 갖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진리의 편에 선 나를 지키시고, 견고하게 하시며, 승리를 주신다는 분명한 믿음을 갖는 겁니다.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무죄한 예수님에게 사형을 선고한 빌라도는 그 자리를 오래지키지 못했습니다. 빌라도는 몇 년 후에 자리에서 쫓겨나 평민이 되고,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진리를 지키기 위해 결단하는 것은 누구나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진리의 편에 선자를 요새처럼 지키시고, 승리를 주신다는 믿음을 가져야겠습니다. 우리가 선택의 순간에 진리에 편에 설 수 있는 믿음을 주시도록 기도해야겠습니다.



2
다 같이 17절 말씀을 읽어보시겠습니다. “그들이 예수를 맡으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 (히브리 말로 골고다) 이라 하는 곳에 나가시니” 사형선고를 받으신 예수님은 자신이 못 박힐 십자가를 등에 지고, 사형장인 골고다 언덕으로 끌려가셨습니다. 이때 예수님의 심신은 이미 한계에 도달해 있었습니다. 밤샘심문을 받으시고, 죽기직전 까지 채찍을 맞으시고, 온갖 조롱과 핍박을 받으신 직후였기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언덕을 오르시는 예수님은 수 없이 쓰러지셨습니다. 군병들은 그때마다 채찍으로 예수님을 사정없이 때렸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일어나서 올라가시다가 또 다시 쓰러지셨고, 군인들이 군화와 채찍으로 때렸지만 예수님은 마침내, 일어설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셨습니다.  
오전 9시. 예수님은 사형장 골고다 언덕에 도착하셨습니다. 군병들은 예수님의 옷을 벗기고 십자가에 눕혔습니다. 그리고 양 손목과 발에 못을 박기 시작하였습니다. 당시 못은 예리한 못이 아닌 대장장이가 만든 울퉁불퉁한 못이었습니다. 18cm 가량의 대못이 예수님의 양 손목과 발의 뼈를 으스러뜨리며 박혔습니다. 망치질을 할 때마다 예수님은 온몸을 비틀며 비명을 지르셨습니다.
예수님이 못에 고정되자 십자가가 세워졌습니다. 예수님의 양옆으로는 두 명의 강도가 십자가에 세워졌고, 로마 군병들은 십자가 아래에서 예수님의 옷을 나눠 가지며, 속옷을 가지기 위해 제비뽑기를 했습니다. 예수님은 어머니와 가족들, 제자들, 자신을 사랑하며 따르던 무리들, 그리고 조롱하는 무리들 앞에 나체로 발가벗겨진 채 십자가에 매달리셨습니다.
십자가는 로마가 만든, 역사상 최악의 형벌입니다. 사형수를 발가벗겨 수치심을 주면서 신체의 급소에 손상을 가하지 않고 죽음까지 가장 오랫동안 고통을 당하게 합니다. 십자가가 세워지면 중력으로 몸이 처지면서 횡격막이 눌리기 때문에 숨을 쉬기 위해서는 못 박힌 손발에 힘을 주어 몸을 밀어 올려야 잠깐 숨을 쉴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근육에 엄청난 고통과 경련이 오게 되고, 보통 2~3일 동안 이런 고통을 반복하다가 물과 피를 다 쏟고, 호흡곤란과 기아와 쇼크로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그 고통이 얼마나 심한지 죽기까지 1000번 이상 까무러진다고 합니다. 육신의 몸을 입으신 예수님도 단 한 번의 짧은 숨이라도 쉬어보기위해 사투를 벌이셨을 것입니다. 시편에서는 예수님이 당하신 고통을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나는 물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밀납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내 힘이 말라 질 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 천장에 달라 붙었나이다”(시22:14~18)
 
  죄 없는 예수님이 왜 이런 고통을 당하셔야 했을까요? 이사야서53장 5,6절은 말씀합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예수님이 고난당하신 것은 우리들을 죄 때문입니다. (죄는 무엇인가)
사람이 죄를 지으면 반드시 그 죄값을 치뤄야 합니다. 죄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사는 동안에는 죄로 인한 고통을 스스로 감당해야 하고, 죽은 후에는 자신이 지은 죄로 인해 심판을 받고, 지옥에서 영원히 형벌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사람이 죄를 안 지을 수 있습니까? 사도바울은 로마서에서 말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3:10)
아담의 피가 흐르는 인류는 죄를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죄를 용서 받기 위해서는 그 대가가 필요한데 죄가 요구하는 대가는 바로 ‘피’였습니다.(히9:22) 하나님께서는 흠이 없는 짐승을 제물로 바쳐 피를 흘리게 해서, 인간의 죄를 대신 속죄하도록 하셨습니다. 하지만 짐승의 피를 통한 속죄는 그 때 뿐이였습니다. 인간은 죄를 지을 때마다 계속해서 짐승들을 희생시키며 속죄의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인간을 위해 희생제물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대신 희생제물이 되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예수님이 흘리신 피는 우리들의 모든 죄에 대한 속죄의 제사가 되어 하나님께 드려졌습니다. 이 단 한 번의 사건으로 인해 우리는 과거의 죄, 현재의 죄 그리고 미래의 죄까지 모두 용서받게 되었습니다.
30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니라” 마지막 말씀까지 성취하신 예수님은 ‘다 이루었다’말씀 하시고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다 이루었다’라는 말씀의 뜻은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리셔서 우리의 죄를 위한 희생제물이 되신 이 죽음으로 우리는 영원하고 온전한 속죄를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죄를 해결하기 위해 희생제물을 바치거나 어떠한 인간적인 노력을 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단순히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고, 이 십자가를 영접하는 자는 누구든지 자신의 죄로부터 구원을 받고, 영생을 누리는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나가서 내가 어떤 죄인인지 고백하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함을 받아 깨끗하게 되었음을 영접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죄로부터 자유하게 되고, 영원한 생명을 하나님께 보장 받게 됩니다.
죄는 우리에게 고통을 줍니다. 예수님이 맞으신 채찍질 처럼 우리가 죄를 지었다는 죄의식은 쇳조각이 되어 마음에 상처를 냅니다. 예수님이 쓰신 가시면류관처럼 죄는 우리마음을 지속적으로 괴롭게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일들을 합니다. 고행을 하기도하고, 선한 일을 하기도 하며, 자기관리를 하기도 합니다.
저도 저의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저는 과거 술자리를 좋아해서 폭음을 즐길 때 가 있었습니다. 군대에서 휴가를 나와서, 48시간 동안 잠도 안자고 자리를 이동하며 술을 마셨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술만 마시지 않고, 술을 마시며 자유분방하게 세상 죄를 함께 즐겼습니다. 저의 모습은 하나님의 형상과 굉장히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는 문제의식을 갖고, 변화되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했습니다. 몇 달간 친구를 안 만나기도 하고, 운동에 미쳐보기도 하고 명상도 해보았습니다. 하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저의 죄문제를 저 스스로 통제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심판을 받을까봐 두려웠습니다. 회개하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으면 용서해주실 거라고 하셨는데, 이렇게 매일 반복해서 죄를 짓는 저를 하나님이 버리실 것 같았습니다.
사람들은 구원의 은혜를 믿지 못 하기 때문에 구원에 확신을 갖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용서의 사랑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죄의식에 시달리며 괴로워하구요. 내죄가 너무 중해서 용서 받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고, 반복해서 죄를 지으면, 주님께 나아가서 용서를 구하는게 너무 염치없게 느껴집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또 죄를 짓겠지 하고 자포자기하고, 일부러 하나님과 거리를 두고, 교회와도 거리를 둡니다. 내 죄 때문에 신앙생활이 불편하고, 지긋지긋하게 느껴집니다.
예수님의 용서의 사랑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우리의 인간적인 사랑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인간적인 사랑에는 항상 조건과 이유가 있습니다. 상대의 외모 때문에 사랑 할 수도 있고, 성격 때문에, 부모자식간의 정 때문에, 돈 때문에 사랑 할 수도 있습니다. 인간적인 사랑은 이러한 육체적이거나 정신적인 만족을 주는 조건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이유와 조건이 사라지면 사랑에 한계가 옵니다. 사랑이 변질되고, 마음이 식고. 서로에게 실망하게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사랑은 이런 조건과 이유가 있는 사랑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상대에게 어떤 유익을 얻기 위한 사랑이 아니라 그저 일방적이고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우리를 어떤 이유나 조건이 아닌 그 존재자체 만으로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채찍질을 당하시고, 모욕과 핍박을 견디셨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려 고통 속에 죽으시면서도 마지막까지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 사랑을 완성하시며, ‘다 이루었다’ 말씀하십니다. 고린도 전서에서는 말합니다. “사랑은 오래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믿음, 소망, 사랑 이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저는 십자가 말씀을 준비하면서, 예수님의 사랑을 살면서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밝고 장난기 많은 성격이었지만 엄격했던 집안의 분위기 때문에 사람들 앞에서 쑥스러움을 많이 타고 의사표현을 잘 못 했습니다.
사춘기가 되면서 저는 가족들에게 애정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엄격한 집안분위기가 싫었고, 강압적인 분위기와 맞는 것이 지긋지긋했습니다. 집은 저에게 안정을 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집밖이 더 편하고 자유로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고등학교 시절 대화가 통했던 친구들과 자유롭게 노는 일에 열중했였습니다. 대화가 통하는 친구들이 가족들보다 좋았고, 간혹 부모님이나 가족들과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이 신기하고 부러웠습니다. 제 인생에는 별다른 행복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학창시절부터 나중에 죽으나 지금 죽으나 별 미련이 없다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시절 jbf여름 수양회에서 연극을 하는데 연기를 하는 저를 사람들이 눈을 반짝이면서 보는 것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내 말 한마디에 웃고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마음속 비어있는 공간에 무언가 채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저는 배우가 되기로 마음먹고 연극영화과에 진학했습니다. 하지만 대학생활의 연극은 제게 만족을 주지 못했습니다. 무대 울렁증이 심해 사람들 앞에 나서서 연기를 하는게 두려웠고 즐겁지 않았습니다.
저는 대학을 적당히 다니면서 술과 연애로 4년을 보내고, 군대에 갔습니다. 늦은 나이에 군대에 간 저는 정말 의지 할 곳이 하나도 없어, 하루도 빠짐없이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내일 승리를 하게해주세요“ 저는 하나님 한분만을 바라보며 군 생활을 하였고 하나님은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저에게 응답하시고, 승승장구하게 하셨습니다, 저는 군생활중, 업무와 인간관계에서 큰 인정과 많은상을 받으며 말 그대로 승리하는 체험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전역한 저는 정욕과 교만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내가 못할 일이 하나도 없을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에 빠져 있는 저를 연단하셨습니다. 저는 배우로 성공하는 삶을 기대했는데 사기꾼 같은 사람들만 나타났습니다. 상황이 몇 년동안 크게 나아지지 않으면서 긍정과 자신감으로 살아왔던 저는 낙심과 무기력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저는 새벽기도모임에서 일용할 양식 말씀을 전하는 일을 섬기도록 방향을 받았습니다. 제가 순종해서 새벽기도모임을 섬기자 말씀들이 제안에 쌓이는 것을 체험하였습니다.
특히 “사랑은 오래참고,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다는”말씀이 예수님의 사랑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몇주 전 주일예배 말씀에서 아프리카 선교사 리빙스턴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았습니다. “리빙스턴이 우리에게 했던 설교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리빙스턴은 우리를 사랑했습니다.”
저는 이번 십자가 말씀을 준비하며, 그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저를 어떤 이유나 조건없이, 죽기까지 사랑하시고, 우리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사랑이였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나를 내존재 자체만으로 사랑해주시는 분이 있구나. 나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 분이 있구나. 나를 죄의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시는구나.
저는 세상을 굉장히 사랑하였습니다. 빌라도처럼 죄와 진리 사이에서 주저하고 타협하였습니다. 제 마음에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과 만족을 채우기 위해 세상 죄를 적당히 즐기면서 살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사랑으로 제게 찾아와 주시고, 십자가 말씀을 전하도록 세워주심으로, 이기적인 죄인을 십자가 앞에 나아가 죄인임을 고백하고, 십자가를 영접하게 하셨습니다. 저는 갈 길을 몰라 방황하고, 있었는데 갈길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갈 길은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이였습니다.
저같은 죄인을 죽기까지 사랑 해주시고, 사랑으로 불러주신 예수님께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죄로 인해 근심하는 저에게 자유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예수님께 받은 이 조건 없는 십자가의 사랑을 증언하고, 실천하는 삶을 제 평생동안 살 수 있기를 소망하고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이 하신 ‘다 이루었다’라는 말씀에는 우리를 위한 구원의 완성과 우리를 향한 깊은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으며 우리가 받아야 할 죄의 대가를 완전히 치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시간 이 순간에도 이 사실을 단순히 믿고 영접하는 자에게 완전한 구원을 주십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듣는 모든 분들이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나가 죄인임을 고백하고, 십자가를 영접하여 구원의 은혜를 충만하게 누리는 귀한 인생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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