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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2-05-29 (일) 10:13
분 류 누가복음
첨부#1 2022년_누가복음_제12강-1.hwp (135KB) (Down: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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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누가복음 제12강]자연과 영적 세계를 다스리시는 예수님
2022년 누가복음 제12강                                                     김반석
자연과 영적 세계를 다스리시는 예수님
말씀 / 누가복음 8:22-39  
요절 / 누가복음 8:24 “제자들이 나아와 깨워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한대 예수께서 잠을 깨사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여지더라”

오늘 말씀은 갈릴리 후기 사역으로, 예수님이 행하신 두 가지 이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광풍을 잔잔하게 하시고, 귀신 들린 사람을 온전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광풍을 만나 고난과 역경에 처하기도 하고, 귀신과 같은 악한 영의 세력에 사로잡혀 영육간에 고통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연과 영적 세계를 다스리시는 예수님을 믿을 때, 모든 상황 속에서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이 시간 나의 믿음이 어디에 있는지 점검하므로, 잔잔하고 온전하게 되는 역사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Ⅰ. 바람과 물결을 잔잔하게 하신 예수님(22~25)
예수님이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며 복음을 전하시자 놀라운 구원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시고,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바다에서 낚은 자연산 우럭으로 회를 떠서 먹을 것을 생각하니 기분이 업되었습니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물결 위를 배가 미끄러지듯이 가볍게 노를 저으면서 떼창을 했습니다. ‘내 주 하나님 넓고 큰 은혜는 저 큰 바다보다 깊다. 너 곧 닻줄을 끌러 깊은 데로 저 한 가운데 가보라.’ 예수님은 시원한 바람과 제자들의 은혜로운 떼창을 들으며 스르르 잠이 드셨습니다.
아,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예상치 못한 큰 광풍이 휘몰아쳐서 배가 침몰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어부들은 합심하여 광풍을 이겨내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했지만 속수무책이었습니다. 다급해진 제자들은 사색이 되어 예수님을 깨우며 부르짖었습니다.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이들이 예수님께 자신의 형편을 아뢴 것은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처음부터 예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어부로서의 짬밥이 있는데, 목수 출신 예수님을 찾는 것은 자존심이 상한다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그들은 버틸 때까지 버티면서 녹초가 된 후에야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광풍 가운데서 자기들을 구원할 능력이 있다고 믿었다면 ‘주님! 믿습니다. 제발 우리를 구원해 주세요!’라고 간청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 인생 여정은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같습니다. 불신자들은 자기가 인생의 선장이 되어 자유롭게 항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망망대해와 같은 세상에서 참된 목적지를 몰라 두려움과 염려에 시달립니다. 예상치 못한 인생의 광풍을 만나면 해결할 능력이 없어서 결국 난파되어 방황하다가 물거품과 같이 사라지는 허무한 인생으로 끝납니다. 반면 그리스도인의 항해는 이 세상을 떠나 분명한 목적지를 향해 나갑니다. 하나님이 선장이 되어주셔서 최종 목적지인 하나님 나라까지 안전하게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을 굳게 믿을 때 두려워하거나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사41:10)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마28:20) 우리가 이 약속의 말씀을 믿고, 나의 인생을 주님께 맡기므로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항해하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예수님과 함께 하는 항해에도 광풍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믿음으로 살면 순풍에 돛단배처럼 일이 순조롭게 잘 풀릴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인생을 사는 동안 항상 문제가 생깁니다. 인생은 문제의 연속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며 믿음으로 살아도 수많은 광풍을 만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불의의 사고나 질병의 광풍으로 세상을 떠나기도 합니다. 자녀가 세상의 파도에 휩쓸려 믿음을 잃고 방황하기도 합니다. 코로나19의 광풍으로 후유증을 겪기도 하고, 경제적 손실을 입기도 합니다. 물질의 광풍, 가정 문제의 광풍, 잘 자라던 양이 떠나는 광풍, 전쟁의 광풍 등 쉴 새 없이 광풍이 몰려옵니다. 이런 광풍은 사람을 몹시 괴롭게 합니다. 외적인 광풍도 힘들지만, 믿음을 잃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회의와 원망으로 내면에 일어나는 광풍은 더 견디기 어렵습니다. 광풍은 인간의 의지와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자기 힘과 의지로 해결하고자 하면 할수록 코너에 몰리게 되고 낭패를 당하게 됩니다. 이런 불가항력적 문제에 직면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가 응급상황에서 119에 전화하고, 자동차 사고가 났을 때 보험회사에 전화하면 즉시 출동하여 해결해 주지 않습니까? 이처럼 문제가 생겼을 때 지체하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빌4:6) 하나님은 졸거나 주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광풍을 모면하기 위해 잔머리를 굴리며 인간적인 노력을 하기보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뤄주실 것을 믿습니다.
24b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잠을 깨사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여지더라.” 예수님이 잠에서 깨어나신 것은 광풍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죽게 되었다며 아우성치는 제자들의 시끄러운 소리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셨습니다. 마가복음에서는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를 향해 ‘잠잠하라 고요하라’고 하셨습니다.(막4:39) 그러자 사납게 몰아치던 광풍과 성난 파도가 순식간에 잔잔해졌습니다. 와~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입니까? 제자들은,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물을 보고 명령해도 복종하는지 놀라워했습니다. 그러면 이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은 둘째 날 궁창을 만드시고,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셋째 날 천하의 물을 한곳으로 모이게 하셔서 바다를 만드셨습니다.(창1:9,10) 예수님은 만물의 창조주로서 자연 세계도 다스리시는 권세자이십니다. 홍해를 가르셔서 이스라엘을 육지같이 건너가게 하시고, 반석에서 샘물을 나게 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창조주의 권세로 바람과 물결에 명령하신 것입니다.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신 예수님은 이번에는 제자들을 꾸짖으셨습니다.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왜 그렇게 능력이 없느냐”고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어차피 제자들에게는 광풍을 극복할 능력이 없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바람과 물결을 잔잔하게 하실 분은 예수님이시므로, 제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이 자신들을 광풍에서 구원하실 수 있다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믿음이 없으니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와 함께 항해하는데 왜 죽게 되었다고 무서워하느냐?”고 책망하신 것입니다. 마가복음에서는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막4:40), 마태복음에서는 “믿음이 작은 자들아”라고 하셨습니다.(마8:26) 제자들은 믿음이 없어서 광풍에 날아가 버렸습니다. 믿음이 작아서 요동치는 물결에 휩싸여 떠내려갔습니다.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는 말씀은 우리 믿음의 현주소를 물으시는 말씀입니다. 운전면허증을 취득만 하고 30년 이상 장롱에 넣어두면 운전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상시는 말씀 공부하고 소감도 쓰는데, 광풍을 만날 때 두려워하고 절망하기만 한다면 믿음이 실종된 것입니다. 믿음이 노트북 속에 있든지 장롱 안에 있으면 광풍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믿음이 어디에 있어야 할까요? 내 안에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 예수님이 내 안에 들어오십니다. 이로써 나의 옛사람은 죽고, 내 안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사시는 것입니다.(갈2:20) 그러므로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고, 예수님이 나와 한 몸이 되어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요14:20) 이처럼 나의 믿음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광풍을 만나도 흔들리지 않고, 담대할 수 있습니다.(요16:30)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하게 됩니다. 광풍은 나를 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유익을 주기 때문입니다.(시119:67,71) 광풍을 만날 때 자신의 무력함을 깨닫고, 겸손히 하나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므로, 위선의 가면이 벗겨지고, 진실한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기도의 사람,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하게 합니다. 예수님을 새롭게 깊이 만나는 계기가 되고, 영적인 깊은 세계로 들어가게 됩니다.
요셉은 형들의 시기로 애굽에 노예로 팔려 가고, 보디발 아내의 모함으로 성폭행 미수범의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얼마나 억울하고 분했겠습니까? ‘이생망’(이번 생애는 망했다)이라 생각하고 절망 가운데 하루하루 죽지 못해 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하나님의 선한 주권과 섭리를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요셉을 범사에 형통하게 하시고, 30세에 애굽의 총리로 세우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역사에 귀하게 사용해주셨습니다. 또 다윗은 사울의 시기심으로 쫓겨 다니며 여러 번 죽음의 광풍을 만났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죽일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지만 그런 방법으로 광풍을 모면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왕을 죽이는 것은, 하나님이 금하신 것이라며 살려주었습니다.(삼상24,26장) 그는 인생의 광풍 앞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주권을 믿는 믿음으로 인내하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때가 되자 이런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강대한 나라를 이뤄 메시아의 등불을 이어가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광풍을 만났을 때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만일 이들에게 실제적인 믿음이 없었다면 미움과 복수심에 불타 감정대로 행하다가 하나님께 버림받았을 것입니다.
현재 나의 믿음은 어디에 있는지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나의 믿음이 예수님과 그 말씀 안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광풍을 만나더라도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을 신뢰하고, 한마디 말씀을 붙들고 광풍과 싸워 이기는 믿음의 용사들로 성장하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작년부터 시작된 오십견이 올해 들어와 심해져서 세수하거나 옷을 입고 벗는 것조차 힘들고, 통증으로 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잘 정도까지 악화되었습니다. 2월에는 반석이 가족이, 3월에는 바울이가, 4월에는 동역자가 코로나19에 감염되었습니다. 연로하신 부모님은 점점 야위어 가셨습니다. 저는 가족들이 아플 때마다 좋지 못한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닌가 두려워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저는 건강의 광풍 앞에 위축되고, 십자가를 회피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누가복음을 공부하며 예수님이 온갖 병자들에게 일일이 손을 얹으사 고쳐주신 것에 은혜를 받았습니다.(눅4:40) 저는 광풍 앞에서 잠시 두려워했던 것을 회개하고, 하나님께서 저와 가족들을 긍휼히 여기사 동일한 은혜를 주시도록 매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사 가족들의 건강을 지켜주시고, 저도 지난주에 드디어 어깨 통증이 완전히 사라지고, 건강이 회복되도록 은혜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제가 인생 항해 중 어떤 광풍을 만나더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제 안에 계신 주님을 신뢰하므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복된 항해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Ⅱ. 귀신 들린 사람을 온전하게 하신 예수님(26~39)
예수님 일행이 갈릴리 맞은 편 거라사 지방에 도착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육지에 내리셨을 때 그 도시에 사는 귀신 들린 사람과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옷을 입지 않고, 집을 뛰쳐나와 무덤 사이(공동묘지)에서 살았습니다. 그는 사납고 폭력적으로 변하여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었습니다. 밤낮 공동묘지와 산속을 돌아다니며 소리를 지르고, 돌로 자기의 몸을 해치고 있었습니다.(막5:5) 귀신 들려 이성의 통제를 받지 못하고, 감정도 절제하지 못하고 살아가니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사람들은 이 사람의 인생이 얼마나 괴롭고 불행한가, 이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어떻게 도와줄까 하는 데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내가 피해 보지 않기 위해 이 사람을 쇠사슬과 쇠고랑으로 묶어 감시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귀신 들린 사람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온전한 삶을 살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더러운 귀신에게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명령하셨습니다.(막5:8) 그러자 귀신들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께 구하노니 나를 괴롭게 하지 마옵소서.” 하며 사로잡은 사람을 놓아주지 않고자 발악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귀신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심으로 귀신의 정체를 드러내시고, 이 사람이 귀신과 싸울 수 있도록 돕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권세에 압도당한 귀신은 자신의 정체를 더는 숨길 수 없게 되어 군대라고 했습니다. ‘군대’란 헬라어로 ‘레기온’으로서 3,000~6,000명으로 구성된 여단급의 로마 군대를 말합니다. 여단 규모에 해당하는 수천의 귀신들이 이 사람 속에 들어 있으니 얼마나 강력하고 파괴적인가 알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은 인격이 파괴될 대로 파괴되어 자기 의지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귀신들은 정체가 드러나자 예수님께 제발 무저갱으로 들어가라는 명령만은 하지 말아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래서 마침 그곳 산에서 풀을 먹고 있는 돼지 떼에게라도 들어가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허락하시자 귀신들은 돼지들에게 들어가 결국 가파른 비탈로 내리달려 호수에 빠져 몰사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왜 예수님이 귀신들을 돼지 떼에게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셔서 돼지 떼의 주인에게 막대한 재산상 피해를 주셨느냐고 말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십시오. 만일 예수님이 돼지에게로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수천이나 되는 귀신들이 도시로 들어가서 멀쩡한 사람들을 사로잡아 수천 명이 귀신 들려 비참한 인생을 살게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16:26) 비록 돼지는 희생되었지만 수천 명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예수님도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의 고귀한 생명을 희생하셨습니다.
34절을 보십시오. 돼지를 치던 사람들은 이 사건을 목격하고 도망하여 성내와 마을에 알렸습니다. 사람들이 일어난 일을 보려고 모여들었습니다. 그들은 귀신 나간 사람이 옷을 입고, 멀쩡한 정신으로 얌전하게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두려워했습니다. 보통 이 상황에서 온전하게 된 사람을 축하해주고, 예수님께 감사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거라사 지방 사람들은 크게 두려워하며 예수님께 그 지방을 떠나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이는 그 지방 사람들의 영적인 상태가 어떠한가를 말해줍니다. 그들은 호수 위에 둥둥 떠 있는 2,000마리나 되는 돼지들의 사체를 보고, 예수님이 여기 계시면 가축을 다 잃을 것 같은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그들은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일보다 경제적 손실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물질적이고 인본적인 가치관에 사로잡혀 예수님과 관계 맺기를 거절했습니다. 그들은 영생을 얻고자 예수님께 나온 큰 부자 관리와 같이 돈 때문에 구원의 기회를 놓친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이상에서 귀신 들린 사람을 온전하게 하신 예수님은 영적 세계도 다스리시는 권세자이십니다. 오늘날 죄악이 난무하는 시대에 정욕, 탐욕, 시기, 분노, 미움, 살인 감정, 불의, 추악, 사기, 열등감, 교만, 거짓 등 수많은 귀신의 세력에 사로잡혀 고통받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불투명한 장래로 스트레스를 받아 불안감, 우울증,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는 OECD국가 중 자살률과 우울증 유병률이 1위라고 합니다. 20대와 30대의 사망원인 1위도 자살이라고 합니다. 악한 영이 이렇게 사람들을 멸망에 이르게 합니다. 누가 우리를 이런 악한 세력으로부터 구원할 수 있을까요? 좋은 제도나 첨단 의학으로도 안 됩니다. 오직 영적 세계를 다스리시는 예수님만이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권세를 의지하여 싸울 때, 악한 영이 떠날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과 기도로 성령의 능력을 덧입고, 귀신의 세력과 싸워 이기므로 온전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기를 기도합니다.
37b,38a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되돌아가려고 배를 타셨는데, 귀신 나간 사람이 함께 가게 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는 귀신 들려 비참한 인생을 살던 데서 구원해 주신 예수님의 일방적인 은혜에 감사하여 이제부터 자신의 인생을 예수님께 드리고자 했습니다. 이는 구원받은 사람이 예수님께 취해야 할 당연한 반응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허락하지 않으시고, 그에게 새로운 인생 방향을 주셨습니다. 39절을 보십시오.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큰일 행하셨는지를 말하라 하시니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일을 행하셨는지를 온 성내에 전파하니라.” ‘하나님이 행하신 큰일’은 귀신 들려 짐승처럼 살고 있던 자신을 예수님께서 2,000마리나 되는 돼지를 희생시켜 구원하신 일입니다. 귀신 들린 사람으로 인해 가정이 파괴되고, 가족들은 큰 상처를 입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가 가정으로 돌아가 하나님이 행하신 큰일을 증거하여 가정이 회복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바라셨습니다. 무엇보다 그를 거라사 지방의 선교지부장으로 세우시고, 그를 통해 귀신 들려 멸망의 길을 가고 있는 영혼들을 구원하고자 하셨습니다. 그가 자신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큰일을 기억하고, 이 은혜를 적극적으로 증거하는 삶을 살 때, 다시 악한 영에 사로잡히지 않고 온전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는 자기가 원하는 삶을 고집하지 않고, 예수님이 주신 방향에 순종하여 온 성내에 돌아다니며,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행하신 큰일을 전파하는 전도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 각자에게도 하나님이 행하신 큰일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은혜가 얼마나 크고 감사한가를 늘 기억하고, 집과 직장과 캠퍼스에 돌아가 예수님이 나에게 어떻게 큰일을 행하셨는지를 힘써 전파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를 통해 더럽고 악한 영에 사로잡힌 자들이 구원받는 역사가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특별히 여름 수양회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초청역사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와 양들의 내면을 사로잡고 있는 악한 영들이 그 정체를 드러내고, 쫓겨 나가는 천국 잔치가 되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입니다. 예수님은 자연 세계와 영적 세계를 다스리시는 권세자이십니다. 우리의 믿음이 이 예수님에게 있을 때, 어떤 광풍을 만나더라도 요동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 이르기까지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습니다. 어떤 귀신의 세력에도 사로잡히지 않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며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광풍과 귀신을 두려워하지 않고, 믿음으로 이들과 싸워 이기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증거하는 복된 인생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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