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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2-08-14 (일) 13:06
분 류 누가복음
첨부#1 2022년_누가복음_제22강-1.hwp (114KB) (Down: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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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누가복음 제22강]염려하지 말라
2022년 누가복음 제22강                                                     고 영훈

                                염려하지 말라
말씀 / 누가복음 12:13-34
요절 / 누가복음 12:22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오늘 말씀에는 물질관에 대해 두 가지 교훈을 가르쳐줍니다. 첫째는 재물에 대해 탐심을 물리치라는 것이요, 둘째는 생활에 대해서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탐심 대신에 재물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를 배워야 합니다. 또 염려 대신 힘써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힘든 코로나 시대를 살면서 우리 마음속에 이런 탐심과 염려의 문제를 안고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해 분명한 성경적인 물질관과 가치관을 배워서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부요하고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13-21)
13절을 보십시오.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예수님께 나아와 말하였습니다.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재산의 상속은 형에게 우선권이 있어 장자에게는 소유의 두 몫을 주도록 했습니다(신21:17). 그런데 형이 동생의 몫까지 다 가져가 버렸는지 동생은 형에게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당시 상속문제가 생기면 모세 오경에 정통한 랍비에게 가서 소송을 제기하였는데 이들은 예수님을 존경하는 랍비로 여겨서 이 문제에 대해 공정하고 명쾌하게 해결해 주실 것을 기대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그에게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며 이들의 근본 문제를 깨우쳐 주셨습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이들은 유산 분배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았는데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가운데 탐심의 죄가 문제임을 지적하셨습니다. 탐심이란 필요 이상으로 과도하게 가지려는 욕심을 말합니다. 탐심은 꼭 물질에 대한 탐심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도 “모든 탐심”이라 하셨습니다. 사람에게는 물질 외에도 육신의 쾌락에 대한 탐심, 음식에 대한 탐심, 권력과 명예에 대한 탐심, 지식에 대한 탐심 등 여러 가지 탐심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마음속의 탐심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떤 종류의 탐심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이런 탐심은 죄를 낳게 하는 근본 원인이 됩니다. 야고보서 1:15절은 말씀합니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 십계명 중 마지막 계명은 탐심에 대한 계명입니다.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출20:17) 명하셨습니다. 골로새서 3:5절에서는 탐심은 우상숭배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무엇에 대한 탐심이 생기면 그것을 하나님과 같이 여기고 절대적으로 섬기기 때문에 우상숭배의 죄가 됩니다.

사도 바울은 물질에 대한 탐심을 가진 자들에게 이렇게 경고하였습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6:9,10) 톨스토이 단편 소설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에서 한 농부는 천 루블만 내면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걸어서 돌아온 모든 땅을 가질 수 있다는 조건으로 매매계약을 합니다. 단, 조건은 해가 질 때까지 출발 지점으로 돌아오지 못하면 땅을 하나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새벽부터 시작된 행진은 점심을 지나도 멈출 줄 몰랐습니다. 가면 갈수록 더욱더 비옥한 땅이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늘을 보니 어느덧 해가 서산을 향해 기울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 때야 비로소 그는 정신을 차리고 발걸음을 돌려 출발선을 향해 뛰었습니다. 마침내 해가 지기 직전에 출발선까지 돌아왔지만 그만 가슴을 쥐며 쓰러져서 죽고 말았습니다. 그는 너무 무리하게 달려왔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그에게 필요했던 땅은 그가 묻힐 반 평 크기의 땅이었던 것입니다. 물질에 대한 탐심뿐만 아니라 무슨 종류의 탐심이든 탐심에 사로잡히게 되면 그 말로가 비참하게 됩니다. 백 바나바 선교사님의 말에 의하면 스리랑카의 대통령도 아주 훌륭한 분이었지만 물러날 시기에 더 권력을 쥐고자 하다가 결국 쫓겨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어떤 종류의 탐심이든 적극적으로 물리쳐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15b에서 모든 탐심을 물리쳐야 할 이유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여기서 생명은 헬라어로 ‘조에’로서 단순한 생명이 아니라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생명, 하나님의 생명, 곧 영원한 생명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사람의 존재의미와 행복은 소유에 달려 있지 않고 존재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 사람이 얼마나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는가? 어떤 사회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는가? 무슨 타이틀을 소유하고 있는가? 하는 것보다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물질에 대한 탐심을 부리는 이유는 많은 재물을 소유하면 행복하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닌 것을 잘 알지만 세상을 살아 나갈 때 실제적으로 돈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돈을 목숨보다 더 중하게 여깁니다. 돈이 있고 없고에 따라 사람의 행불행이 좌우되는 것처럼 생각됩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악착같이 돈을 벌고자 합니다. 그러나 돈은 삶을 영위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습니다. 사람의 생명은 얼마나 많이 소유했느냐(to have)에 있지 않고, 그 사람이 어떤 존재인가(to be)에 달려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 한 비유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한 부자가 열심히 일하여 밭에 소출이 풍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하며 행복한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한 묘안을 생각해 냈습니다.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그는 즉시 큰 창고를 짓고 많은 곡식과 물건을 쌓아 두었습니다. 그는 재산 관리에 만전을 기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많은 재산을 보니 마음이 매우 흡족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에게 말하였습니다.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이 부자는 열심히 일하여 번 돈으로 인생을 엔조이하며 멋있게 살아 보고자 했습니다. 이런 그는 참으로 영리하고 신중하며 지혜로운 자같이 보입니다. 그는 부정을 저지르며 재물을 모은 것이 아니라 새벽부터 열심히 일함으로써 정당하게 재물을 모았습니다. 또한 계획을 나름대로 잘 세우고 미래를 위해 저축을 했습니다. 노후대책을 잘 세웠습니다. 그는 성공한 사람의 반열에 올라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사람을 어떻게 보셨습니까? 하나님은 그가 배를 두드리며 즐거워하고 있을 바로 그때 말씀하셨습니다. 다 같이 20절을 읽겠습니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하나님은 이 부자를 어리석은 자, You fool! 이라 하셨습니다. 그는 어떤 점에서 어리석은 자입니까?

첫째로, 그는 생명의 주인이 하나님이신 것을 몰랐습니다. 부자의 말 가운데 내 곳간, 내 곡식, 내 물건, 내 영혼이라 하며 ‘나’라는 말이 6번이나 나오고, 영어 성경(NIV)에서는 11번, 원어에는 무려 13번이나 나옵니다. 그는 생명과 물질이 모두 자기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는 자기 힘과 노력으로 자기 인생을 개척하였으므로 자신을 자기 생명의 주인으로 착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생명은 내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 아무도 자기가 원해서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 하나님이 생명을 주셨기 때문에 태어났습니다.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시오 우리는 그 생명의 청지기입니다. 오늘 밤에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도로 찾으시면 모든 소유를 내려놓고 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우리의 생명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인식하며 그의 뜻을 따라, 그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시편 말씀에 이른 대로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며 자기가 생명의 주인인양 자기 마음대로 행합니다(시14:1). 어리석은 부자는 육신의 생명을 위해서는 열심히 준비했으나 영혼을 위해서는 전혀 준비하지 않은 어리석은 자였습니다. 노후 대책은 잘 세웠으나 사후 대책은 전혀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둘째로, 그는 애써 모은 재물을 가치 있게 사용할 줄 몰랐습니다. 이 사람은 재물을 쌓는 법은 알았으나 재물을 쓰는 법은 몰랐습니다. 그는 어렵게 모은 재산을 자기만을 위해 인생을 즐기는데 사용하고자 하였습니다. 재물을 가치 있게 사용하려면 분명한 가치관이 있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재물을 모으는 데만 목적을 두기 때문에 결국은 자기만을 위하여 쌓는 인생이 됩니다. 그런데도 그의 준비한 재물은 자기 것이 되지 못했습니다. 20b에서 하나님은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물으십니다. 실제로 자기가 누리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어리석은 부자의 실패한 삶을 통해 진정으로 부요한 삶이 어떤 것인가를 깨우쳐 주십니다. 21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이 말씀은 결국 하나님께 부요하지 못하고 자기만을 위해 사는 자는 어리석은 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재물을 주심은 하나님께 부요한 자로 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복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자기만을 위해 쌓는 삶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치 않는 어리석은 삶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 부요한 자는 자기 소유를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쓰임 받는 것을 기뻐합니다. 그러나 이런 삶은 어느 날 갑자기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진 것이 없을 때부터 즉, 학생 시절부터 분명한 가치관을 꾸준히 배울 때 가능합니다. 가치관이 분명할 때 마음의 탐심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을 덧입게 됩니다. 적은 물질을 잘 다스리는 삶을 사는 자가 나중에 큰 물질도 잘 다스릴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물질만능주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잠간 동안이라도 정신 줄을 놓으면 물질 세력에 휩쓸리고 악영향을 받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자기만을 위해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부요치 못한 인색한 인생은 실패한 인생을 살게 된다는 말씀을 주님의 엄중한 경고로 영접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과 물질과 재능과 시간을 주인 되신 하나님께 헌신하여 진정으로 부요한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II. 염려하지 말라(22-34)
예수님은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탐심을 물리치고 하나님께 부요한 삶을 살도록 가르치셨습니다. 이렇게 살고자 할 때 한편으로는 마음에 염려가 생기게 됩니다. 22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좇으면서 실제 생활에서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장래 염려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예수님 덕분에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지만 장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면서 미래에 대한 염려가 밀려왔을 것입니다. ‘염려’는 ‘분열’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염려에 빠지면 마음이 분열되어 온 마음을 바쳐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기 때문입니다(23). 하나님은 우리에게 목숨과 몸을 주셨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목숨과 몸을 주신 하나님께서 거기에 따르는 음식이나 의복과 같은 부수적인 것들을 책임져 주시지 않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염려할 필요가 없음을 까마귀와 백합화를 예로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24절을 보십시오. 까마귀는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아니합니다.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친히 먹이시고 기르십니다. 하찮은 새도 이렇게 귀히 여기시는데 제자들은 까마귀보다 얼마나 더 귀합니까? 또 실제로 염려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25절을 보십시오.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자라도 더할 수가 있느냐” 여기서 ‘키’에 해당하는 헬라어 ‘헬리키아’는 ‘나이’를 뜻하기도 하고 ‘신장’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염려한다고 해서 키가 커지는 것도 아니고, 수명이 한 시간 더 연장되는 것도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런즉 이렇게 가장 작은 일도 능히 해결하지 못하면서 다른 것들을 염려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26).

27절을 보십시오. 들에 피는 백합화는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합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큼 훌륭하지 못합니다. 솔로몬의 영광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화를 상징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아무리 아름다운 의복을 만들어 입는다 해도 백합화의 청순함과 그윽한 향기와 아름다운 색깔, 우아함, 정교함과 어찌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입히시는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친히 택하신 제자들이야 말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상에서 볼 때 우리는 아무것도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실제 문제에 부딪히면 자연스럽게 염려가 생깁니다. 도대체 이 염려가 왜 생기는 것이며 우리가 이 염려를 어떻게 물리칠 수 있습니까? 28b에서 예수님이 “...믿음이 작은 자들아” 책망하시는 것을 볼 때 염려는 불신 때문에 생기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제자들의 믿음은 다분히 이론적이고 실제적이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음역사는 도와주시겠지만 나의 장래문제는 어떻게 될까 불안하고 두려워합니다. 우리도 제자의 인생을 살 때 영적인 문제나 복음역사에 대해서는 열심히 기도합니다. 그러나 먹고 사는 문제는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앉아서 집중하여 염려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복음역사뿐 아니라 나의 삶의 모든 문제도 해결해 주시는 사랑과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불신에 빠져 염려하는 것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문제만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근본 방향은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책임져 주실 것이므로 우리가 염려할 일이 아닙니다. 마치 부모가 어린 아기를 책임지고 돌보므로 어린 아기는 염려할 필요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실제 생활에서 믿음으로 염려를 극복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빌4:6,7에서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라고 권면했습니다. 세상 일로 염려가 될 때 하나님의 자녀라면 현실 문제 앞에서 염려하는 대신 감사함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염려 제목들을 기도 제목으로 바꿔서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또 우리는 염려가 생길 때 로마서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하는 말씀을 기억하고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까마귀를 어떻게 먹이시고 백합화를 어떻게 입히시는가 생각하여 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깊이 생각해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 비참한 나를 돌아보시고 사랑과 은혜를 베푸시고 이날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어찌 장래에도 돌봐주시지 않겠습니까? 이 하나님을 생각할 때 나를 괴롭히는 모든 염려와 근심 걱정이 눈 녹듯이 사라지고 대신에 감사와 은혜와 평강이 차고 넘치게 됩니다. 29,30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고 하십니다. 이 모든 것은 세상 사람들이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우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십니다. 아멘!

그러면 염려 대신 우리가 마땅히 구해야 할 바가 무엇입니까?
첫째, 다만 그의 나라를 구하라 하십니다. 31절을 보십시오. 다 같이 읽겠습니다.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말씀은 우리에게 분명한 인생 방향과 삶의 목적을 가르쳐줍니다. 여기서 구하라는 말씀은 온 생애를 바쳐 올인하라는 것입니다. 그의 나라를 구하라는 말씀은 이 땅에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기를 추구하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에서 물질적인 것에 집착하지 말고 하나님 나라의 영적인 것을 추구하라는 말씀입니다. 각 사람 심령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도록 복음을 증거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자에게 주시는 약속이 무엇입니까? 31b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는 신실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약속입니다. ‘이런 것들’은 우리의 몸과 생명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들, 모든 축복과 은혜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약속을 믿고 안심하고 우리가 해야 할 한 가지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역사를 섬기면 됩니다. 사람들은 사명을 위해서도, 자기 삶을 위해서도 다 자기가 해야 되니 무겁고 부담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만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한 가지 사명을 감당하면 모든 필요를 더하여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자녀의 삶은 보장되어 있으므로 염려할 필요가 없고, 부담을 가질 필요도 없는데 쓸데없이 염려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이 없어지면 그 동안 체험했는데도 어느덧 각종 염려에 빠집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을 얽매이게 하는 이 염려를 회개하고 다만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2절을 보십시오.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예수님을 자기 필요에 따라 도움만 받고자 따르는 무리는 많았지만 부르심을 받고 예수님의 제자로 결단한 자들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살다가 항상 손해만 보는 것이 아닌가 어두운 생각을 하기 쉬웠습니다. 그렇지만 무서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아버지께서 제자들에게 그의 나라를 주시기를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주시기를 기뻐하시는데 어찌 다른 모든 필요한 것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믿음으로 사는 자들과 하신 약속은 반드시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둘째, 우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어야 합니다. 33절을 보십시오. 다 같이 읽겠습니다.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우리는 우리의 소유를 팔아 도움이 필요한 자들에게 구제해야 합니다. 우리의 시간을 팔고 물질을 팔고 마음과 힘을 팔아서 영육간에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복음을 전하여 영혼구제를 하는 것입니다. 이는 하늘에 보물을 쌓는 가장 안전한 투자요, 하늘은행에 저축하는 것입니다. 34절을 보십시오.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우리 보물이 있는 곳에 우리 마음도 있습니다. 물질을 사용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 전서 6:18,19절에서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나는 나의 소유를 무엇을 위해 어디에 투자하고 있습니까? 땅에 쌓고 있습니까? 영원한 하늘나라 은행에 보물을 저축하여 영생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그곳은 도둑도, 좀도 먹는 일이 없는 가장 안전한 곳이요 하나님께로 가는 가장 확실한 길이 될 것입니다.

저는 두달 전부터 몸에 무리를 했는지 왼쪽 무릎 안쪽에 심한 통증이 생겨 잘 걷지를 못하게 되자 건강에 대한 염려가 생겼습니다. 저도 어느덧 건강했던 젊음이 사라지고 이곳저곳 아프게 되어 건강을 걱정하게 된 나이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서글프고 어두워졌습니다. 그런데 이번 여름 수양회에서 바로 이 말씀을 주제로 아침 은혜의 시간 강사로 세움 받은 황준호 목자의 메시지를 도와주면서 먼저 제가 건강 문제와 이로 인해 염려에 사로잡혀 있음을 깨닫고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염려 문제를 기도 제목으로 바꾸고 간절히 기도하며 다만 그의 나라를 열심히 구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랬을 때 황준호 목자님도 데뷔 메시지인데 담대하게 잘 전하게 되었고 저도 여름 수양회 역사를 믿음으로 잘 섬기게 되었습니다. 건강 문제도 적극적으로 도전하였을 때 몸무게도 10키로 정도 감량하게 되었고 무릎뿐만 아니라 건강도 많이 좋아지게 되었습니다. 제가 앞으로도 염려하지 않고 염려 대신에 더욱 적극적으로 기도하기에 힘쓰고 그의 나라를 구하는 삶을 사는 종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제게 주신 소유를 팔아 영육 간에 필요한 자들을 구제하고 하늘나라에 쌓는 복된 삶 살아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오늘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갖지 않으면 일생 탐심과 염려에 시달리는 어리석은 인생을 살게 된다는 교훈을 주십니다. 또한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리라 경고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분명한 방향을 주십니다.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시는 놀라운 복된 약속을 믿고 오직 믿음으로 사는 자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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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7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31강]영생을 얻는 길 관리자 2022-10-16 139
776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30강]인자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관리자 2022-10-09 170
775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29강]엎드리어 감사하니 관리자 2022-10-02 181
774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28강]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관리자 2022-09-25 196
773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27강]잃은 아들을 찾은 아버지의 기쁨 관리자 2022-09-18 181
772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26강]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 관리자 2022-09-11 216
771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25강]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관리자 2022-09-04 168
770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24강]회개하지 않으면 망하리라 관리자 2022-08-28 216
769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23강]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 관리자 2022-08-22 207
768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22강]염려하지 말라 관리자 2022-08-14 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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