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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2-09-25 (일) 10:46
분 류 누가복음
첨부#1 2022년_누가복음_제28강-1.hwp (104KB) (Down: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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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누가복음 제28강]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2022년 누가복음 제28강                                                       한아브라함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말씀 누가복음 16장 1절-31절
요절 누가복음 16장 9절, 내가 너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 그들이 너희를 영주 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우리는 물질주의 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돈을 어떻게 벌 것인가에 관한 정보는 넘쳐납니다. 그러나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관한 정보는 별로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두 가지 비유의 말씀을 하십니다. 하나는 불의한 청지기 비유이고, 또 하나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 비유입니다. 누가복음에만 나오는 비유이죠. 이 두 비유를 통해서 주님은 재물을 잘 쓰는 지혜를 가르쳐 주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성서적인 물질관과 참된 가치관을 배우고 재물을 올바로 사용하는 믿음의 종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제1장 불의한 청지기비유 (1-18)
  1절을 보십시오.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불의한 청지기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청지기는 주인의 소유를 맡아서 관리하는 자였습니다. 무릇 청지기라면 주인의 재물을 잘 관리하여 주인에게 많은 이익을 돌려 드려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본문의 청지기는 이익을 주기는커녕 잘못 관리하여 주인에게 큰 손해를 끼쳤습니다. 주인은 처음에는 잘 몰랐으나 날이 갈수록 손해가 커졌고, 급기야 그가 주인의 재물을 낭비한다는 말이 주인의 귀에 들어간 것입니다. 2절을 보십시오.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주인은 더 이상 이 불의한 청지기에게 재산 관리를 맡길 수 없다고 판단하고 청지기를 불러 해고 통지를 했습니다. 3,4 절을 보십시오. 졸지에 직장을 잃게 된 청지기는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청지기 직분을 불의 하게 감당했기 때문에 아무도 자신을 청지기로 써 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노후를 위해서 모아둔 것도 없고, 농사를 짓자니 육체노동을 할 힘이 없고, 그렇다고 빌어먹을 만큼 얼굴이 두껍지도 않았습니다. 어떻게 할 것인가 궁리하다가 한 가지 묘안이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주인에게 빚진 자들을 불러서 빚을 일부 탕감해 주고 나중에 그들의 도움을 받겠다는 것입니다.
  5-7절을 보십시오. 그는 빚진 자들을 불러 주인 몰래 차용증서를 고쳐 썼습니다. 기름 백말이 50말로 밀 100석이 80석으로 둔갑했습니다. 기름 백말에서 오십 프로를 탕감하면 50말로 현재 가격으로 약 500만 원에 해당하는 금액이죠. 밀 백석은 밀 백석의 20%를 탕감하면 880만원의 빚을 줄여 주는 것입니다. 만일 청지기가 주인의 재산을 착복했다면 감옥에 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청지기는 주인에게 진 빚을 탕감해줄 수 있는 재량권을 위임받았기 때문에 법적인 책임은 없습니다. 물론 주인에게 많은 손해를 끼쳤기 때문에 주인에게 심한 책망을 받을 것입니다. 어차피 청지기 직분을 빼앗기는 것은 한 가지입니다. 그러나 탕감 받은 사람이 자기들 때문에 청지기 직분을 잃게 된 것을 알 때 발 벗고 도와줄 것입니다. 불의한 청지기는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과 기회를 이용하여 실직한 이후의 삶을 대비했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청지기의 이러한 행위는 다시 주인에게 알려졌습니다. 주인이 불같이 화를 낼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를 칭찬하고 있습니다. 주인을 속이는 청지기가 되라는 말인가? 얼핏 들으면 이해가 안됩니다. 주인은 그의 부정한 행위를 칭찬하는 것이 아니고, 미래를 준비하는 지혜를 칭찬한 것입니다. 이 세대의 아들들 즉 세상 사람들은 빛의 아들들 크리스찬들보다도 더 지혜롭게 미래를 대비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미래를 치밀하게 계획하고 열심히 준비합니다. 시간 낭비하지 않죠. 재산 증식을 위해 부동산 주식 투자에 열을 올리고, 혹시 모를 사고나 질병에 대비해 보험에 가입합니다. 이에 비해 우리 크리스챤들은 다가올 미래를 별로 준비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준비해야 합니까?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언제 주님 앞에 서더라도 부끄럽지 않는 성결한 자로 준비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곳에 물질을 사용해야 합니다. 인구 절벽 시대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젊은 인구가 급격히 줄고 있습니다. 젊은 신자들은 더욱 줄고 있습니다. 다음 세대의 젊은 리더들을 키우는 일에 투자해야 합니다. 빛의 아들들이 미래는 어떻게 되겠지 하며 미래 준비를 안 하는 것은 큰 문제인 것입니다.
  9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불의의 재물은 불의하게 모은 재물이라기보다는 하늘보화와 반대되는 의미로 이 세상 재물을 말합니다. 세상 물질을 어떻게 사용해야 합니까?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돕는데 사용해야 합니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것은 사람을 돕고 살리는데 재물을 사용하라는 것이죠. 사람들은 재물을 모으는데 힘을 쓰지만 예수님은 재물을 잘 사용하라 하십니다. 돈을 어떻게 쓰는가 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알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돈을 벌면 집 사고 차 사고, 여행하고, 먹고, 마시고, 즐기는데 사용합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자기만을 위하여 재물을 사용한 사람은 하늘에 보물을 쌓은 것이 없기 때문에 사후에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상급은 없습니다. 세상 재물로 사람을 돕고 살리는데 사용하면 재물이 없어질 때, 즉 사후에 그들이 우리를 영주 할 처소로 영접합니다. 하늘에 보물을 쌓는 것입니다. 내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은 원래부터 내 것이 아닌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사는 날 동안 어려운 사람들을 남이 모르게 도와주면 그 사람들은 너무나 고마워할 것이고, 그들의 이런 모습이 하나님께 전달될 것이고, 하나님은 우리를 칭찬하시며 복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인색하게 살면 하나님의 백성이 인색하다는 소리를 들을 것이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기 원하십니다. 시간과 물질과 진심을 들여 다른 사람을 섬기고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삶입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작은 것이 무엇일까요? 한 영혼을 돕도록 맡겨주셨습니다. 이를 위해 한 팀의 일대일을 하게 하십니다. 이는 지극히 작은 일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은 작다 하지 아니하시고 귀하게 사용하여 주십니다. 학생은 학과공부, 평신도는 직장일 등 우리가 하고 있는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 맡은 것은 시시해서 못 하겠고, 나중에 큰일을 맡으면 잘 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큰일을 맡아도 잘 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그 일을 감당하는데 필요한 자세는 ‘충성’이기 때문입니다. 작은 일을 통해 충성을 배운 사람은 큰일을 맡아도 할 수 있습니다. 충성된 사람은 누가 알든 모르든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맡은 일을 신실하게 감당합니다. 요셉은 아버지 심부름할 때나 애굽의 보디발 집에서 노예 생활할 때나 감옥 생활 할 때나 총리 생활할 때나 일관되게 충성 되었습니다. 아버지 심부름 같은 작은 일에 충성 하던 그가 총리 같은 큰일에도 충성되어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고 많은 사람을 살렸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일은 작고 시시한 것은 없습니다. 지금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하나님께 큰 복을 받는 비결인 것입니다. 한 팀의 1대 1, 학과 공부,  직장일 등등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사노라면 하나님이 최고로 좋은 것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특히 한 사람을 돕는 작은 일에서부터 충성심을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1절, 12절 보십시오. 신실함의 구체적인 예로 돈의 사용을 듭니다.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세상 재물은 내 것이 아닙니다. 남의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것이죠. 내가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이 나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소유한 재물이 마치 자기 것으로 생각하고 자기만을 위하여 함부로 사용합니다. 낭비합니다. 이는 작은 것에 불의한 것이죠. 이 세상에서 내가 소유하고 있는 물질, 건강, 자녀, 시간 등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잠깐 맡기신 것입니다. 이 세상을 떠날 때 하나도 가져갈 수 없습니다.  
  그럼 무엇이 내 것이 됩니까? 천국에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것, 그것만이 내 것이며 참되며 영원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 땅에서 아무것도 소유할 필요가 없단 말인가요? 아니죠. 나는 청지기로서 하나님이 주신 것을 잘 쓰고 관리하라는 것이죠. 13절을 보십시오.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 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예수님은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두 주인은 하나님과 재물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와 똑같이 재물도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재물을 더 사랑하면 하나님에게서 마음이 멀어집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매력적인 재물에 마음을 빼앗기기 쉽습니다. 이 세상 살면서 돈의 힘이 얼마나 센지, 돈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세상 매체는 광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돈을 사랑하고 경배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돈은 사랑의 대상 경배의 대상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사랑의 대상 경배의 대상이 됩니다. 재물은 수단입니다.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재물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재물을 잘 관리하여 필요한 자들을 섬기는데 사용하고 가난한 이웃에게 나누어 주는 청지기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14, 15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예수의 말씀을 듣고 바리새인들이 비웃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들은 겉으로는 경건한 체하며 누구보다도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이들은 겉으로는 안 그런 척하며 속으로는 돈을 좋아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평판을 듣기 위해 구제를 했습니다. 얼마나 이중적입니까?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악함을 경고하십니다. 스스로 높이는 것을 하나님은 제일 싫어하십니다. 사람들에게 잘 보여서 칭찬 받고 높임 받는 바리새인의 위험에 우리도 빠지기 쉽습니다. 주의해야 합니다. 주님만을 높이고 주님만을 자랑해야 합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율법과 선지자는 율법을 지켜 행함으로써 구원받은 구약 시대를 뜻합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구약 시대에는 세례 요한을 마지막으로 끝나고 신약시대가 열렸습니다. 하나님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 새 시대가 열렸습니다. 그러면 율법의 역할도 끝난 것입니까? 아닙니다. 17-18절을 보십시오. 여전히 율법은 사람들을 이끌어 주는 능력을 지닙니다. 율법이 지니는 효력에 대한 적절한 좋은 예로써 결혼과 이혼에 관하여 말씀하십니다. 이혼 하고나서 다시 결혼하는 것은 간음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재혼을 염두에 두고 이혼하기 때문에 아내를 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간음입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돈을 좋아했고, 사람들에게 높임 받기를 좋아했습니다. 또한 이혼에 대한 율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아내를 버리고 새 장가를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들의 거짓된 행위를 드러내시고 심판하십니다. 돈이 많고 교만하고 하나님 앞에서 살지 않으면 한 여자로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혼하고 새 장가 가거나 몰래 바람을 피우죠. 그러나 주님은 이런 남자들의 행위를 간음의 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엄히 경고하십니다.

제 2장 부자와 거지 나사로 비유 (19-31)
  19절을 보십시오.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돈을 좋아하고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에게 경고하시는 말씀으로 거지 나사로와 부자의 비유 말씀을 주셨습니다. 자색 옷은 당시 왕이나 귀족이 입던 옷이고 베옷은 애굽 산 부드러운 속옷이고 모두 값비싼 옷이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명품을 두르고 있었습니다. 부자는 1년에 한두 번 하기도 힘든 잔치를 날마다 하듯 흥청망청하였습니다. 돈을 물 쓰듯이 쓰고 있습니다. 이 부자가 부러운가요? 한 주일학교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를 해 주고 너희들 중에 부자와 나사로 중 어느 사람이 되고 싶으냐고 질문했습니다. 똑똑하게 생긴 한 남학생이 대답했습니다. 선생님, 저는 살아서는 부자같이 되고 싶구요, 죽어서는 나사로같이 되고 싶어요. 마귀는 우리가 조금만 더 소유하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속삭입니다. 평생 비교 의식에 사로잡혀 삽니다. 집을 소유하면 행복할 것이다. 조금 더 잘 살면 행복할 것이다. 속삭입니다. 그러나 행복은 소유에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부자의 집 앞에는 나사로라 이름 하는 거지가 있었습니다. 가족도 없이 노숙하고 있었고, 병도 깊이 들고 온몸은 종기와 상처투성이였습니다. 혐오감을 주는 그를 사람들은 멀리 하였고, 그를 상대해 주는 친구는 개들뿐이었습니다. 극도로 가난하고 병들고 외로운 나사로는 누구보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했습니다. 사람들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죠. 하나님은 부자를 통해서 그에게 도움이 흘러가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러나 부자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고, 거지 나사로를 불쌍히 여기지도 않았습니다. 그의 관심은 온통 자기에게만 있었습니다. 자기만을 위하여 재물을 물 쓰듯이 했습니다. 그러나 거지 나사로에게는 부스러기 은혜조차 베풀지 않았던 것이죠. 22 절을 보십시오. 결국 나사로는 죽었습니다. 부자도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땅에서의 삶을 마쳤습니다. 그런데 죽는 순간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운명이 바뀌었습니다. 거지 나사로는 죽는 순간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즉 낙원에 들어갔습니다. 질병도, 가난도, 슬픔도, 외로움도 없는 천국에서 영원한 안식을, 평안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23, 24절 보십시오. 부자가 죽었을 때 장례식은 화려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화려함은 그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세상을 떠나는 순간 음부에 떨어졌습니다. 그곳에서 영원히 꺼지지 않는 유황불에서 고통을 겪게 되었습니다. 부자는 이곳에서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했습니다.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던지 목을 적실 물 한 방울만 있어도 여한이 없겠다고 하였습니다. 손가락 끝에서 떨어지는 물 한 방울의 은총을 간구했습니다. 지옥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곳인가 잘 말해줍니다. 지옥은 반드시 있음을 말해줍니다. 25, 26절 보십시오. 부자의 간구를 들은 아브라함은 그의 간구를 들어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부자이기 때문에 지옥에 가고 가난하기 때문에 천국에 가는 것입니까? 부자는 적극적으로 악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기 친구들에게 호의를 베풀었죠. 그런데 자기 집 앞에 있는 거지 나사로를 모른 채 방치했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이 큰 악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거지 나사로를 부잣집 앞에 두신 이유는 가진 물질을 거지 나사로와 나누라는 축복의 통로요 구원의 통로가 되라는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메시지를 부자는 외면했습니다. 부자는 종을 통해서라도 나사로에게 먹을 것을 갔다  주라고 시켰어야 했습니다. 무엇이 이 사람을 무정하고 이기적인 인간이 되게 하였습니까? 그가 소유한 물질이 욕심을 부르고 사치와 허영을 불렀고, 인색한자, 자기중심적인 자가 되게 했습니다. 지금 나 한 사람 먹고 살기 빠듯한 데 어떻게 남을 돕나 부자가 된 후에나 도울 수 있지 않은가 하며 애써 타인을 돕는 삶을 외면하기 쉽습니다. 주의 제자는 결코 돈에 대해 인색한 사람이 아니어야 합니다. 자신이 부자이건 가난하건 자신의 물질을 하나님께 드리고 이웃과 나누는 삶을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실 세계 평균을 기준으로 보면 여기 우리 모두는 잘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가운데 굶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습니까? 누구나 남을 도울 수 있다는 말입니다. 자신의 처지와 형편과 상관없이 이웃을 돕고 섬기는 사람, 하나님은 이런 사람의 미래를 축복하십니다. 이런 사람의 자손들을 책임져 주십니다. 부자의 죄는 돈이 많은 것이 아니고, 돈을 움켜쥐고 돈의 노예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이웃 캠퍼스에는 육신은 멀쩡하지만 영적으로 거지 나사로와 같이 가난하고 굶주리고 병든 영혼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며 영적인 부자가 되게 하신 것은 영적으로 굶주린 영혼들을 말씀으로 먹이기를 원하시는 뜻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값없이 받은 복을 흘러 보내야 하는 것입니다.      27, 28절 보십시오. 부자는 물 한 방울 마시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으므로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부자는 동생들 생각이 났습니다. 나사로를 보내어 자기의 다섯 형제가 회개하고 구원받고 이 고통스러운 지옥에 오지 않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자기 형제들이 죽은 나사로가 살아난 기적을 보고 나사로의 천국과 지옥에 관한 증거를 들으면 회개하고 구원받고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을 것이다, 라고 생각한 것이죠. 그러나 이 부자의 요청은 또 한 번 거절당했습니다. 31절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모세와 선지자는 구약 성경, 즉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아브라함의 이 말은 성경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지, 기적을 본다고 믿음이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즘  하나님이 기적을 보여 주시면 믿겠다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믿음은 기적을 보고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듣고 믿는 것이죠.  로마서 10장 17절에서 ‘믿음은 들음에서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음 이니라.’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가슴에 박히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을 때 구원 받고 천국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저의 물질생활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저의 진심과 물질을 조금 드렸을 뿐인데 하나님은 놀랍도록 축복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내게 있는 물질과 소유에 대해 내가 주인인양 행세 했습니다. 내가 주인이 아니고 나는 청지기일 뿐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일에 잘 사용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인간의 삶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죽음 이후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이 땅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가 하는 것에 따라 죽음 이후의 삶이 결정됩니다. 세상재물에 노예가 되지 않고 세상재물로 사람을 돕고 살린 사람은 죽음이후에 하나님의 상급을 받습니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귐으로 죽음이후를 대비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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