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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2-11-05 (토) 21:56
분 류 로마서
첨부#1 2022년_제자_수양회_주제1강-1_김사무엘.hwp (30KB) (Down: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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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가을 제자 수양회 제1강]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2022년 가을 제자 수양회 제1강                                                김사무엘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말씀/로마서 8:17-39
요절/로마서 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more than conquers)
마케도냐에서 시작해서 페르시아와 이집트, 인도 전까지의 영토를 정복한 알렉산더 3세. 우리는 그를 알렉산더 대왕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는 어린 나이에 지중해의 패권을 차지해 정복자 반열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동양과 서양을 연결해 헬레니즘 문화를 꽃피우고 제국을 건설했지만 그는 어린 나이에 전쟁만 하다가 죽고 맙니다. 인간적으로 보았을 때 그의 인생은 짧지만 위대해 보입니다. 반면에 그와 비교해 우리의 인생은 갖은 고난과 고통으로 패배와 낭비로 별로 보잘 것 없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로마서 말씀에서는 우리가 정복자 그 이상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믿음으로 살아가지만 나의 인생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의심하게 되고 내가 그동안 살아왔던 인생을, 신앙을 의심하게 됩니다. 내 삶에는 변화가 없고 어려움은 자주 찾아오고 현실 문제에 부딪혔을 때 우리는 좌절하기 참 쉬운 것 같습니다. 학업, 취업, 결혼 등 우리는 할 것은 많고 하나도 쉬운 것이 없습니다. 포기하면 편해진다는 말이 유행일 정도로 세상은 삭막하고 어려워만 보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여러분들에게 우리가 이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다고, 그것도 아주 넉넉히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함축하고 있는 로마서 8장 18절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우리가 이겨낼 때 하나님은 큰 영광을 우리에게 주실 것이고 그것은 우리가 당하는 고난에 비할 바가 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오늘 저는 로마서 8장을 통해 여러분들이 왜 넉넉히 이길 수 있는지, 정복자 그 이상이 될 수 있는지 말씀드리려고 해요. 그 이유는 하나님의 지음을 받은 이 세상이 여러분들이 승리하기를 바라고, 성령님이 우리를 승리하게 하시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이기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챕터 1. 피조물도 우리가 승리하기를 바란다.
우리가 넉넉히 이길 수 있는 그 첫번째 이유는 바로 세상도 우리가 승리하기를 응원하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장 19절은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가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 이라고 말합니다. 말씀에서 피조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 모든 만물을, 하나님의 아들들은 하나님을 섬기고 따르는 모든 사람들을 말합니다. 왜 세상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기다릴까요? 그 답은 21절에 나와 있습니다. [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썩어짐의 종노릇이란 죄와 죽음의 종됨을 말합니다. 그리고 영광의 자유라는 것은 죽음에서 벗어나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죽음을 피하려고 노력하지만 죽음을 피한 것은 없었습니다. 여기에 죄로 인해 세상의 모든 것은 유한하게 되었고 죄로 인해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마저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이 아름답고 평화롭게 보여도 그 안에는 치열한 약육강식의 세계이고 각종 환경오염과 생태 파괴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아담의 범죄로, 땅은 저주 받고 만물도 그 고난 속에서 살고 있기에, 하나님의 만물은 질서가 회복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은 왜 이렇게 돌아갈까요? 그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죄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죄로 세상은 하나님과 단절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육신의 몸으로 오래 살 수 없는 존재가 되었고 땅도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류는 죄 가운데 거하며 자기 자신을 위해 살기 시작했습니다. 자기를 위해 살다 남을 해치며, 스스로를 해치면서 살았습니다. 죄의 대가는 죽음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죽음으로 끝나는 이유를 성경은 죄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우리가 천인공노할 죄를 지으며 살지 않았다 하더라도 우리는 죄악 가운데 태어나, 죄를 짓고 죄로 인해 죽음을 맞이합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다 이 죄에서 나오는 문제들이 해결되기를 바랍니다. 서로가 서로를 해치고 스스로를 해치는 세상에서 벗어나기를 원합니다. 죽음에서, 죄에서 오는 고통과 고난에서 벗어나기를 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질서가 이땅에 임하기를 바라고 그 질서로 세상을 다스릴 하나님의 자녀들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저는 세상이 하나님의 가치대로 살기를 원한다는 것을 게리 바이너척의 “12가지 부와 성공의 법칙”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발견했습니다. 올해의 베스트셀러에 올라와 있는 책이지만 저는 읽으면서 시중에 나와 있는 여느 자기개발서들과 같이 뻔한 이야기를 한다고 느꼈습니다. 책에서 말하는 12가지 법칙은 감사하기, 자기인식, 책임감, 긍정, 공감, 친절함, 끈기, 호기심, 인내심, 확신, 겸손, 야망을 말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뻔한 이야기들이 자기개발서로 쓰여지고, 사람들은 이것에 열광 하는가 생각했습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사람들이 이 법칙들에 공감하고 있으며 옳다고 여기기 때문일 것입니다. 세상에서 우리는 많은 문제점들을 발견합니다. 사기, 폭행, 외로움, 자살, 분쟁, 전쟁 등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보고 들으면서 살고있고 실생활에서 마주칩니다. 사람들은 이런 사회를 악하다고 외치고 변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선하다고 여기는 이 가치들: 감사, 책임감과 같은 원칙들을 갖고 바르게 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제발 좀 악하게 살지 말고, 바르게 살라는 그 말들을 성경이 제일 많이 말하고 있습니다. 구약과 신약 모두 말하고 있고 다윗과 솔로몬의 시편에서도 이 지혜들을 말합니다. 저는 그 이유가 이 세상을 지으신 하나님은 선하시고 이 세상을 선한 목적 가운데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피조물인 모든 만물이 무의식 중에 하나님을 갈망하고 그것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이미 그 가치를 성경을 통해 잘 알고 하나님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유한한 삶에 우리 또한 탄식하지만 우리 몸의 부활이 있을 것을 믿으며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며 이 세상에서 빛을 비추기를 소망하며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이 세상도 이것을 바라고 응원한다는 것을 기억하며 넉넉히 이기는 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니까 주변에서 뭐라고 하더라도 주눅들지 말고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이겨나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챕터 2. 성령이 우리를 승리하게 한다
우리가 넉넉히 이길 수 있는 그 두번째 이유는 성령이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앞서 세상은 죽음의 문제를 해결받기를 간절히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희생과 부활을 믿는 우리는 이미 죽음의 문제를 해결받은 자들입니다. 죽음을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은 예수님을 우리 가운데 주셨습니다. 18절의 장차 나타날 영광, 21절 영광의 자유의 뜻이 여기에 있습니다. 영광이란 죽음에서 해방되는 부활을 뜻합니다. 죄가 없으셨던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죽으시고 3일 뒤에 부활하셨는데 이것으로 우리도 죽음을 초월할 수 있다는 소망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연약한 육신을 입고 있으므로 여전히 나약하고 죄악된 내면의 모습을 보며 절망하고 탄식합니다. 23절을 보십시오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이제 신자들은 죄의 몸이 완전히 구원받아 영적인 존재가 되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기를 소망합니다. 이 소망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감내해야 하는 고난과 고통을 초월하며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행복하게 살것을 기대하게 합니다. 2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입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하지만 이 소망은 추상적으로 다가오고 멀게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 느끼는 고난과 고통이 더 직접적으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보다는 이 땅에서 성공하는 소망을 붙들고 내 앞에 놓인 곤란한 상황이 해결되기를 기대합니다. 하지만 바울은 여기에 이렇게 답합니다. 25절: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 이 말씀은 마냥 기다리고 이 땅의 것을 참으라고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다 아시고 우리의 부족함과 필요를 아시고, 채우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를 궁핍하게 하시는 분이 아니시고 우리가 감내하지 못하는 고난을 주시는 분이 아니시니, 인내로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성령님을 보내 우리를 위해 기도하게 하십니다. 26-27절: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우리는 연약하여 현재의 고난 가운데서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지만 성령의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해 주심으로 올바른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성령님이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심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를 하게끔 도우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가장 합당한 길로 인도하심을 받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28절을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에게 성령이 도우심으로, 과정이 실패와 허물 같아 보여도, 하나님은 그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하게 인도하셔서 선한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가장 생각났던 성경 인물이 다윗이었는데요, 다윗은 하나님을 믿고 계속해서 간절히 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삶에 어려움과 고난이 닥쳐와도 그는 변함없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도로 하나님의 뜻을 구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실 때 그가 승리할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다윗 인생의 절반은 사울에게 쫓기며 살았습니다. 블레셋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한 그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고난을 당하는 것은 부당해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이 고난을 당하는 동안 하나의 이스라엘 왕국을 이루는 하나님의 종이 되도록 연단하셨습니다. 그의 연단은 훗날 그가 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섬기는 지혜로운 종이 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를 사울의 손에서 건지시고 그를 쓰셔서 이스라엘 구원역사에 쓰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과정을 우리 가운데도 써 내려가시는데요.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어떻게 이끄셨을까요? 29-30절 29.“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평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을 아시고, 미리 뜻을 두시고 인도하셔서 하나님의 때에 부르셨습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자녀가 되게 하시고 영화로운 인생을 살도록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섭리와 주권을 믿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어쩌다 목자님을 만나 말씀공부를 하게 된 것으로 생각하고, 부모님 때문에 신앙생활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신앙생활을 하지만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불평과 불만으로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각 개인의 인생에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미리 아셨습니다. 우리에게 뜻을 두시고 예정하셨습니다. 예레미야 1장 5절은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그리고 우리가 믿음의 인생을 살도록 부르셨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을 의롭다고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영화로운 인생을 살도록 인도해주십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발견할 때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제가 2015년 한국에 들어왔지만 대학에 가지 못하고 있을 때 하나님이 저에 대한 계획이 없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절망 가운에 있을 때 하나님은 이 말씀으로 찾아오시고 저에 대한 계획으로 가득하시다는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해 대학에 들어가게 하시며 하나님의 소망을 갖도록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이미 정하시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의롭다 칭하십니다. 이것은 우리의 행위가 아닌 예수님을 믿었을 때 우리를 의롭다 여겨주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또한 말씀을 따라 살게 하시며 영화롭게 하십니다.
우리가 이길 수 있는 이유 그 두번째는 성령님이 우리를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며 기도할 때 허물과 연약함까지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한 섭리와 사랑을 깨달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챕터 3.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넉넉히 이기게 한다.
우리가 고난을 이길 수 있는 마지막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3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31.“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2절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여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이 세상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대적할 자는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하나님이 자신의 독생자를 희생시키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주권적인 섭리와 사랑을 생각할 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반문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독생자를 내어 주심으로 그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렇기에 누구도 대적할 수 없습니다. 바울은 대적할 자도, 고발할 자도, 정죄할 자도 없다고 말합니다. 그 어느 누구도 택하신 자들을 함부로 정죄하거나 대적할 수 없습니다. 34절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를 어떤 세력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35절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 어떤 죽음의 위협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37절을 다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우리는 각자의 삶에서 움츠러들고 위축되었습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 주변 사람들의 인식, 신앙을 지키며 오는 불이익 등으로 억눌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과 섭리를 믿을 때 그 어떤 일에도 위축되지 않고 극복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믿음을 가진 자는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38-39절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사단은 상황을 통해 끊임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불신하고 놓치게 만듭니다. 어려움 가운데서 나 혼자인 것 같고 나의 연약한 힘으로 이겨낼 수 없을 것처럼 만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방적인 강력한 사랑의 손길로 말미암아 그 어떤 역경도 우리를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기는 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휴학을 하고 인턴을 하고 있었는데 순조롭지 않았습니다. 제물에 욕심이 많았던 저는 사업을 하고 싶었고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성경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인턴으로 들어가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배우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회사가 어떤 가치를 가지고 일을 하는지 궁금했지만 제가 가게 된 회사는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성이 없었고 단지 이윤 추구를 위해 어떠한 방법도 허용이 된 곳이었습니다. 이윤 추구만을 하는 곳에서 보람이 없었고 저는 스트레스만 쌓여 일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게 된 저는 스스로가 부끄러웠습니다. 주어진 일에 충성하지 못한 1 달란트 받은 종의 모습과 같아 스스로가 실망스러웠습니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에는 요셉과 같은 자세를 외쳤지만 점점 양심을 찌르는 일을 하게 되자 이 일을 하는 것을 망설이게 되었고 그만두었습니다.
저는 제가 겪은 퇴사 이야기를 친구와 나누었고 “가치관” value 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성공하는 회사, 기업은 단순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 아닌 가치를 나누는 기업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열광하는 많은 기업들에는 매력적인 가치가 있고 그 가치를 우리는 따르게 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예를 들면 ESG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 에 기초한 다양성과 포용성 등을 강조합니다. 이런 기업들은 단순 이윤 추구만이 아닌 세상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에도 집중을 하며 세상을 바꿔나가고 있었습니다.
신기한 것은 세상을 바꾸려는 기업들의 가치관은 성경과 인접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웃에 관한 이야기, 섬김과 노력에 관한 이야기 등 세상을 어떻게 바르게 살 것인지, 어떤 영향력을 끼칠 것인지 집중하고 있습니다. 메세지를 쓰면서 로마서 8장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이 정말로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이 승리하게끔 만드신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가는 것이 축복이며 우리가 나아가야 할 지향점이 되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위축되고 눌렸던 마음에서 하나님의 섭리와 사랑이 넉넉히 이기게 하는 정복자가 그 이상이 되게 할 것을 믿습니다.
결론입니다. 37절 말씀을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어떠한 시련이 와도, 수많은 유혹 속에서도 우리는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지음을 받은 이 세상이 여러분들이 승리하기를 바라고, 성령님이 우리를 승리하게 하시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이기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시작할 때 알렉산더 대왕이 정복자였다는 말을 했는데, 영어 성경에서 이 “넉넉히 이긴다”는 말이 “정복자 그 이상” - “more than conquers” 라고 쓰여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두려움 없이 이 땅의 모든 것을 주실 하나님을 믿으며 나아가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삶을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마디: 넉넉히 이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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