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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6-24 (일) 13:07
분 류 마가복음
첨부#1 2018년_마가복음13강-1(이인구).hwp (64KB) (Down: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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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마가복음 제13강]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

 2018년 마가복음 제13강                                                          이인구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

말씀/마가복음 7:1-23
요절/마가복음 7:20  “또 이르시되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더러운 건 씻으면 되는 것이지. 씻어서 깨끗해지는 건 더러운 게 아니다. 그냥 뭐가 묻은 것이야. 누더기 옷을 입은 사람을 더럽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더러운 게 아니라 가난한 것이지. 가난한 것은 그 사람의 허물이 아니다. 마음이 더러워지면 씻을 수가 없는 법이다. 그것은 죄가 되어.’ 한 유명한 작가의 소설에서 나온 글입니다. 눈에 보이는 형상에 대해서만 너무 민감한 이 시대에 진정 더러운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글입니다. 이 작가는 많은 독자에게 좋은 글로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여러 작품에서 표절했지만 그 사실을 부인하면서 많은 이들에게 실망을 주기도 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은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진정 사람을 더럽게 하는 자신의 마음속의 죄를 발견하고 죄 사함 받으므로 하나님 앞에서 정결한 자들이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 몇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와서 예수님께 모여들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인기가 나날이 높아지자 위기감을 느끼고 책잡을 꼬투리를 찾고자 했습니다. 마침 식사시간에 제자들이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을 보고는 “바로 이거야!” 무릎을 쳤습니다. 그들은 즉시 예수님께 제자들이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지 않고 부정한 손으로 식사를 했다고 비난했습니다. 바람과 먼지가 많은 유대지방에서 또 스푼이나 포크 없이 손으로 음식을 집어먹는 것이 관습인 곳에서 손 씻는 것은 위생상 꼭 필요했습니다. 만약 매일 목욕하는 습관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른 이가 잘 때 발도 안 닦고 심지어 더러운 양말을 신은채로 자는 것을 보면 판단하는 마음이 생길 것입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이 손을 열심히 씻는 이유는 위생상의 문제 때문이 아닌 종교상의 문제였습니다. 유대인들이 지키는 율법에는 하나님께 받은 오리지널 모세 5경과 이를 해석하는 ‘장로들의 전통’이 있었습니다. 장로들은 시대 시대마다 하나님께 받은 율법을 기초로 실생활에서 지켜야 할 생활 규범인 ‘장로들의 전통’을 만들었는데 구전으로 전해오다가 바벨론 포로 이후부터 성문화된 것이 유명한 탈무드입니다. 유대인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 이상으로 중요시하여 모세5경이 물이라면 ‘장로들의 전통’은 포도주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아무리 배가 고파도 씻지 않으면 먹지 않았고 시장에서 돌아와서는 몸까지도 깨끗이 씻고 먹었습니다. 심지어 손 뿐 아니라 잔과 주발과 놋그릇도 깨끗이 씻도록 했는데 그것은 이것들이 대부분 이방인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랍비 아카바는 로마 감옥에 갇혀 있을 때 겨우 생명을 유지할 정도의 소량의 먹을 물을 받았는데 그는 죽음을 각오하고 그 물로 손을 씻으며 연명하다 결국 목이 말라 죽었다고 합니다. 처음 그들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백성이 되고자 하는 선한 의도로 전통을 지켰지만 이것이 점점 형식화되어 사람을 구속하는 올가미로 변질되었습니다. 손을 씻지 않으면 단지 손이 더러워지는 문제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아 영혼이 더러워지는 죄 문제로 보고 판단했습니다.
  바리새인은 바벨론 포로시대 이후 이스라엘의 신앙을 이끈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 이름의 뜻도 ‘구별된 자’ ‘분리된 자’입니다. 그들은 바벨론 포로의 고난이 하나님의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죄 때문이라 깨닫고 전심으로 율법을 지키고자 했습니다. 바리새인의 원조 또한 제사장이자 학자였던 에스라로 그는 70년 바벨론 포로 후 하나님의 말씀도 잃어버리고, 믿음도 잃어버린 이스라엘을 영적 위기에서 일으킨 위대한 지도자였습니다. 그 뒤를 이은 바리새인들은 계속해서 강대국들의 식민지가 된 조국에서 타락한 이방문화(세속문화)와 구별된 경건한 삶을 살려고 노력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구별된 삶을 추구하고 율법연구에 열심이었던 바리새인이 구원자 되신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 박게 해 인류의 경멸과 비판의 대상이 되었는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면 그들의 문제는 현재 열심히 신앙생활하려는 우리들의 반면교사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비판하면서 영적인 대리만족을 얻으며 자신은 바리새인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깨어 있지 않을 때 어느새 그들을 닮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죄악을 정확히 지적하셨습니다. “이르시되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6) 그들의 문제는 외식(위선)이었습니다. 외식(Hypocrite)은 원래 무대에서 가면을 쓰고 연기하는 배우를 가리키는 말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그들의 종교생활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연기였습니다. 스펄전은 외식(위선)적 신앙을 빗대어 비 없는 구름과 같고 물 없이 말라버린 개울과도 같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마치 연극배우가 왕의 복장으로 분장하여 무대 위를 늠름히 거닐다가 연극이 끝난 후에는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가난한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겉과 속이 다른 자요, 겉은 깨끗한 척 했지만 속은 더러운 위선자였습니다. 외식이 문제가 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사탄의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단의 방법입니다. 그들은 입술로는 하나님을 공경하였지만 마음은 하나님과 멀었습니다. 사람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계명을 버렸습니다.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치며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하였습니다. 그것은 몰라서가 아니라,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사랑하고 하나님영광보다 자신의 영광을 더 구하는 죄악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외식하는 자, 위선자가 된 이유는 하나님 앞이 아닌 사람 앞에서 신앙생활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마6:1) 참된 신앙은 사람 앞이 아닌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칭찬받기 위해 신앙생활 한다면 그때부터 외식(위선)이 시작됩니다. 위선은 모든 것에 존재합니다. 위선은 사단의 최대공격무기입니다.
  한 독일 장교와 유대인이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독일 장교는 돼지고기가 든 햄버거를 멋있게 먹다가 혼자 먹기 미안해서 유대인에게 권했습니다. 그러자 유대인이 “우리 유대인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습니다.”하며 거절했습니다. 조금 후에 장교가 붉은 포도주를 마시며 권했습니다. 유대인이 이방인과 함께 있을 때는 포도주를 먹을 수 없다고 사양했습니다. 그러자 장교가 말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먹지 않습니까?” 유대인이 말했습니다. “생명의 위협이 있을 때만 허용이 됩니다.” 그러자 장교가 권총을 빼들고 유대인을 향해 겨누더니 먹으라고 했습니다. 유대인이 마지못해서 포도주를 먹었습니다. 다 마시고 난 후에 독일 장교가 유대인에게 사과했습니다. “죄송합니다. 포도주가 너무 맛있어서 함께 먹고 싶어서 그랬습니다. 그러자 유대인이 말했습니다. “왜 섭섭하게도 햄버거를 먹을 때는 권총을 겨누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은 그들이 하나님의 십계명을 버리고 장로들의 전통을 앞세운 한 가지 예를 들어 문제점을 지적하십니다. 그것은 ‘고르반’ 전통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이것은 십계명 중에서 다섯 번째 계명입니다. 이 계명은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헌법과도 같습니다. 출애굽기에서는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을지니라.”(출21:17) 경고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고르반 전통을 핑계로 부모를 잘 공경하지 않았습니다. ‘고르반’은 히브리어로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을 말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고르반’ 전통을 악용했습니다. 물질적으로 부모님을 섬기기 싫으니까 자신의 재물을 이미 하나님께 드리기로 서원했다고 핑계 대는 것입니다. “고르반, 하나님께 드리기로 했으니까 부모님께 드릴 것이 없어요.” 이렇게 해놓고 그들이 정말 하나님께 예물을 드린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또 취소조항이 있었습니다. 10%의 성전세만 내고 ‘사정이 있어 못 하겠습니다’하면 되었습니다. 심지어 나중에 자신의 죄를 깨닫고 후회하며 부모님을 공경하고자 해도 율법가들은 “그것은 파기할 수 없고 당신은 결코 부모님에게 어떤 원조를 해서도 안된다”고 판결했습니다. 그들은 이처럼 하나님을 잘 섬긴다는 명목으로 복잡한 전통을 만들어 놓았지만 실상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는 더 큰 죄를 범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신자로써 부모나 자식이나 동역자들이나 양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드리는 것보다 먼저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사람들에 대한 의무를 게을리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것을 거짓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율법의 근본정신은 하나님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신자가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증명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이웃사랑을 통해서입니다.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받은 사랑으로 이웃(동역자들과 양들)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전심으로 부모를 위해 헌신할 수 있고 또 하나님께서 주신 평생 양인 자녀를 은혜와 진리로 양육할 수 있습니다. 신앙의 전통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전통을 따르면서 그 의미를 생각하지 않고 습관적으로 형식적으로 외형만을 따를 때 그 정신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전통의 정신을 잃어버리고 형식만 남을 때 오히려 위선적이 됩니다. 예를 들어 우리모임에는 소감쓰기라는 훌륭한 전통이 있습니다. 말씀공부와 예배 후 소감을 쓰는 가운데 말씀을 되새기며 나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 뜻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매주 형식적으로 소감을 쓰다보면 매주 똑같은 죄문제로 힘들어하는 자신을 사람들에게 보이기 싫고 어느 순간부터 형식적인 발표용으로 쓸 때가 많습니다. 자신의 실제적인 죄 문제를 드러내지 않고 “어쨌든 저는 부족한 죄인이므로 앞으로 예수님께 감사하고 순종하겠습니다.” 하며 애매모호한 문체로 쓸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때 소감을 쓰면서도 자신을 인도하시는 말씀에 대한 깨달음도 없이 열심히 신앙생활 한다는 자기의만 생겨 소감도 쓰지 않는 신자들이나 세상 사람들을 판단하는 위선자가 될 수 있습니다.
  15,16절을 보십시오. (제자들이 안 씻는 문제로 한바탕 소동을 겪은 후) 예수님은 무엇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가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밖에서 사람에게 들어가는 것은 모든 음식물이고 음식물은 배로 들어가 뒤로 나감으로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모든 음식물은 깨끗하다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정말 혁명적인 말씀이었습니다. 레위기 11장은 유대인들이 먹을 수 없는 부정한 음식의 긴 목록이 열거됩니다. 유대인들은 이것을 철저히 지킴으로써 자신들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BC 2세기경 수리아왕 안디오쿠스 에피파네스가 유대를 지배했는데 그는 자기 말을 듣지 않는 유대인들의 유대교를 말살시키고자 결심했습니다. 그가 사용한 방법 중 하나는 유대인들이 부정하게 여기는 돼지고기를 먹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유대인들에게 이 명령에 거부해 수백 명의 유대인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들은 부정한 고기를 먹어 몸을 더럽히기보다 차라리 죽음을 택했습니다. 구약시대 때 다니엘과 세 친구도 하나님께 택함 받은 백성, 세상과 구별된 백성으로 살고자 이방인들이 주는 음식을 먹지 않기로 결단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음식물은 깨끗하다 선포하십니다. 음식물 그 자체가 사람을 더럽게 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구약시대 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음식을 가려먹도록 하신 이유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을 따르는 거룩한 백성으로 가장 기본적인 먹는 문제부터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삶을 살도록 하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오신 이후로 하나님의 백성은 음식이 아닌 믿음으로 구별됩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닌 믿음으로 신자는 구원과 자유를 얻고 세상 사람들과 구별됩니다. 믿음 안에서 신자는 모든 것을 먹을 수 있고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음식물은 하나님께서 선하신 뜻 가운데 지으신 창조물이고 인간의 건강과 생명을 위해 필요합니다.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음식물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20-23절을 보십시오. “또 이르시되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입니다. 악한 생각은 악한 행동을 낳고 죄의 열매를 맺습니다. 자신도 더럽히고 다른 사람에게도 상처를 입히고 더 나아가 공동체를 파괴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마음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 12가지를 언급하셨습니다. (사실 사람에게서 나오는 악한 생각은 12가지를 넘어 이루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성경에서 12는 완전수로 모든 악한 생각을 대표합니다.) 12가지 악한 생각은 십계명을 어기는 죄입니다. 살인, 악독, 질투, 비방, 교만은 ‘살인하지 말라’는 십계명의 제6계명을 어긴 것입니다. 음란, 간음과 음탕은 제7계명, ‘간음하지 말라’는 말씀을 어기는 것입니다. 도둑질은 ‘도둑질하지 말라’는 제8계명을 어기는 것입니다. 속임은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제 9계명을 어기는 것입니다. 탐욕은 ‘탐내지 말라’는 열 번째 계명을 어기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십계명)을 어기는 악한 생각이 사람을 더럽게 합니다.
  말씀을 통해 생각이 얼마나 중요한가 깨닫게 됩니다. 사람은 생각은 자유라고 생각하고 마음대로 생각합니다. 누구도 내 생각을 알 수 없으니 생각은 내 마음대로 하고 겉으로 나타나는 말과 행동만 조심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마음에서 쌓인 생각이 결국 말과 행동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요한복음 13;2절에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고 했습니다. 유다가 한순간의 말의 실수로 예수님을 배신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유다가 평소에 예수님보다 물질과 자기 꿈을 더 사랑하는 악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물질에 대한 탐욕을 항상 품고 있었기 때문에, 그 더러운 마음에 사단이 역사한 것입니다. 반면 베드로도 위기의 순간에 두려움으로 예수님을 3번이나 부인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평소 예수님께 대한 깊은 사랑이 있었기에 나중 회개하고 돌이킬 수 있었습니다. 첫 살인자 가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평소 동생에 대한 시기심과 미움이 있었고 무엇보다 그 죄를 다스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을 때 결국 죄에 넘어가 동생을 죽임으로 인류 최초의 살인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마음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을 다스려야 합니다. 다스리지 않을 때 단지 인생이 더러워지는 것을 넘어 비참해지기 때문입니다.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가 말했습니다. “새가 머리 위로 지나갈 수는 있으나, 머리에 앉아 둥지를 틀게 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매일 머리위로 스치고 지나가는 수많은 악한 생각들을 피할 수는 없지만 그 악한 생각이 내 마음에 까지 내려와 머물면서 악한 행동을 낳게 하면 안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 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등의 큰 계명은 지킬 수 있을 것 같지만 예수님말씀처럼 그 정신까지 지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숨 막히는 경쟁사회에서 질투와 교만의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고, 육신주의가 팽배한 세상에서 음란, 음탕의 생각까지 하지 않고 물질주의사회에서 머릿속 탐심까지 없애는 것은 정말 쉽지 않습니다. 차라리 유대인들이 지키는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 더 쉬울 것입니다. 어떻게 죄악된 세상에서 죄악된 육신에서 나오는 더러운 생각까지 절제할 수 있습니까? 인간은 하나님의 거룩한 형상을 닮아 창조된 존재로 거룩하지만 죄로 인해 더러워진 존재입니다. (신자는 예수님의 은혜로 다시 거룩한 존재로 거듭났지만 아직 육신과 세상은 죄악되어 끊임없이 갈등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선과 악이 공존하는 존재이고 항상 선과 악의 갈림길에서 고민합니다.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의 내면에 악이 함께 있고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길 원하지만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는 자신을 발견합니다.(롬7:21,25)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깨끗해질 수 있습니까?
첫째,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거울 앞에서 죄인된 자신의 모습, 더러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죄의 마지막에 우매함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무지 즉 죄가 죄인지 알지 못하고 죄를 짓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무지로 죄를 지으면 어느 정도 정상참작을 해줍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그것을 이용해 바보흉내를 내든지 아니면 정신분열증이나 술을 많이 먹어 정신을 잃었다면서 죄를 짓기도 합니다. 하지만 몰랐다고(우매함으로) 죄를 벗을 수 없습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죄를 발견할 수 있는 많은 기회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말씀 앞에서 내가 더러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깨끗하게 될 수 있는 첫 걸음입니다. 그런데 종교지도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인간이 만든 장로들의 전통 앞에서 오히려 교만과 비방(판단)의 죄인이 되었습니다. 세세한 율법들을 지키면서 상대적인 교만이 생기고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백성들에 대한 비방이 생겼습니다. 교만과 비방의 죄 속에서 외식하며 죄를 지적하시는 예수님을 시기하고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말씀 앞에서 정말 중요한 것,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면 자신이 율법을 통해 구원받을 수 없는 추악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때 내 힘으로가 아닌 나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예수님을 찾고 믿음으로 영접할 수 있습니다. 말씀 앞에서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접할 때 죄 사함을 통해 깨끗하게 될 수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신자는 예수님의 은혜로 죄사함 받아 깨끗해졌지만 죄악된 세상은 계속 신자를 유혹하고 더럽히려고 합니다. 그래서 신자는 예수님의 은혜로 깨끗이 목욕했지만 죄악된 세상에서 살면서 매일 발을 닦아야 합니다. 매일 말씀을 붙들고 따르는 삶을 통해 (말씀에 순종함으로) 깨끗해질 수 있습니다. (피곤하다고 귀찮다고 발도 안 닦고 그냥 자면 안 됩니다.) 그것이 성령을 좇는 삶이고 성화되는 삶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보혈로 우리를 더러운 죄의 종에서 구원해주시고 순결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특권과 자유를 주셨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 자유를 헛되이 쓰면 다시 죄의 종이 되어 더럽고 추한 삶을 살게 됩니다. 신자는 큰 댓가를 통해 얻은 값진 자유로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물론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본성에 어긋남으로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매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을 살아가기 위한 투쟁이 필요합니다. 스펄전은 “성도는 언제나 오르막길에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오르막길에 있는 것은 언제나 힘들고 부담스럽습니다. 하지만 믿음의 삶은 언제나 말씀 앞에서 자신을 비추고 말씀을 좇는 오르막길입니다. 오르막길을 포기할 때 신자는 그리스도를 닮지 않은 바리새인이 되어갑니다.
  신자는 바리새인이 아닌 에스라를 닮은 에스라인이 되어야 합니다. 에스라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하나님 말씀을 잃고 믿음도 잃고 절망하는 백성들을 보며 위대한 결단을 합니다.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에7;10) 그는 하나님의 말씀만이 절망하는 백성들을 살리고 다시 일으킬 수 있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는 말씀을 연구하여 백성들에게 가르치기 전에 자신이 먼저 준행하였습니다. 즉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바리새인과 에스라의 차이입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지킬만한 장로들의 전통은 지켰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말씀에 순종하지 않을 때 그들의 가르침은 말과 행동이 다른 외식이요 위선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말씀에 대한 지식만 있는 바리새인이 아닌 말씀에 순종하는 에스 라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매일 저지방 음식과 운동으로 에스라인을 만드는데 힘쓸 것이 아닌 매일 말씀을 먹고 순종함으로 에스라인이 되어야 합니다. 매일 말씀을 붙들고 따를 때 예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십니다. 내가 스스로 말씀을 지키고 끝까지 따를 힘과 의지가 없지만 예수님께서 말씀 속에서 나와 하시고 인도하셔서 결국 에스라인의 인생, 그리스도를 닮은 인생으로 살게 도와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부족한 죄인을 구원해주시고 말씀으로 사람을 살리는 목자로 살도록 인도하셨습니다. 하지만 말씀을 알수록 자신이 바리새인들처럼 외식하는 자임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신앙연륜이 쌓이고 많은 사명을 맡아도 내면의 육신주의 물질주의의 탐욕의 죄를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유혹이 강해서가 아니라 내면속의 죄를 사랑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말씀을 머릿속 지식으로만 받아들이며 살고자 했지만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말씀에 순종하며 증거 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말씀이 머릿속의 지식으로만 머물 때 오히려 위선자가 되고 말씀이 자신을 정죄하고 심판하는 도구가 될 것입니다. 제가 말씀 앞에서 자신의 더러운 죄를 발견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매일 말씀을 붙들고 따름으로 말씀 속에서 예수님과 동행하는 인생을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또 받은 말씀의 은혜를 양들에게도 증거하며 예수님께로 인도함으로 열매 맺는 인생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세상이 주는 감각적 즐거움과 물질이 주는 소유의 기쁨보다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 주시는 내적, 영적 기쁨을 사모하고 구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사람의 내면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 즉 죄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악한 생각을 절제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섬으로 자신의 죄를 발견하고 예수님께 죄 사함 받을 수 있길 기도합니다. 또 매일 말씀에 순종함으로 예수님을 닮은 거룩하고 열매 맺는 인생을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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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1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21강]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관리자 2018-08-19 865
550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20강] 섬기러 오신 예수님 관리자 2018-08-12 833
549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19강] 부자와 하나님 나라 관리자 2018-08-05 847
548 요한복음 [2018년 여름수양회 주제3강]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관리자 2018-07-29 825
547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18강] 첫째 되고자 하면 관리자 2018-07-22 842
546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17강] 믿는 자에게는 능히하지 못할일이 없느.. 관리자 2018-07-15 915
545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15강]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관리자 2018-07-08 1150
544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14강] 이 말을 하였으니 관리자 2018-07-01 932
543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13강]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 관리자 2018-06-24 1080
542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12강]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관리자 2018-06-17 885
541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11강] 둘씩 둘씩 보내시며 관리자 2018-06-10 890
540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10강]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관리자 2018-06-03 1141
539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9강] 그가 누구이기에 관리자 2018-05-27 1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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