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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9-02 (일) 12:41
분 류 마가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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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마가복음 제23강] 첫째 되는 계명

 
 2018년 마가복음 제 23 강                                                                최동진

첫째 되는 계명

 말씀/ 마가복음 12:18-44
 요절/ 마가복음 12:29,30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오늘 말씀에서는 신앙생활의 핵심에 대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살고자 할 때 세상 가치관과 부딪치기 마련입니다. 그럴 때 우리가 왜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가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이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 되셔서 지금도 살아서 믿음으로 사는 자와 동행하시며 부활의 소망 가운데 생명력 넘치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진심으로 사랑하고 섬길 유일하신 주가 되십니다. 우리 모두 이 하나님을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함으로 하나님 안에서 생명의 열매 맺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I. 산 자의 하나님(18-27)
  지난 시간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바리새인과 헤롯당의 음모를 물리치시자 이번에는 사두개인들의 공격이 이어졌습니다. 사두개인은 다윗 시대 대제사장이었던 사독의 이름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들은 유다의 소수파로서 정치권력과 결탁하여 부귀와 영화를 누리는 귀족 계급이었습니다. 산헤드린의 회원들의 대부분을 차지했고 대제사장들도 주로 사두개파에서 많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성경도 모세오경만을 정경으로 인정했고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고 주장했습니다(행23:8). 그들은 영생이나 장차 올 심판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세계가 전부인 줄로 생각하는 현실주의자들이었습니다. 이들에게 있어서 하나님 나라와 영생과 부활에 대해 힘써 증거하시는 예수님은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AD70년경 로마에 의해 예루살렘이 멸망하면서 사두개인도 몰락하였습니다.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부인하는 자신들의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희한한 질문을 들고 나왔습니다.
  19절을 보십시오. “선생님이여 모세가 우리에게 써 주기를 어떤 사람의 형이 자식이 없이 아내를 두고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를 취하여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신명기 25장에 보면 형이 자식이 없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취하여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우도록 하였습니다. 이는 대가 끊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며, 동시에 미망인에 대한 사회 안전망이 전혀 없던 당시에 홀로 남아 의지할 데 없는 과부를 제도적으로 보살펴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아내를 취하였다가 상속자가 없이 죽고, 둘째도 그 여자를 취하였다가 상속자가 없이 죽고, 셋째도 그렇게 하여 일곱이 다 상속자가 없이 죽고 최후에 여자도 죽었다면 부활의 때 이 여인은 누구의 아내가 될 것이냐는 것입니다. 이들이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만일 부활이 있다면 더 큰 비극이 발생할 것이기 때문에 부활은 있을 수 없고 또 있어서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는 확률적으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궤변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긍휼이 풍성하신 예수님은 말도 안되는 질문이라고 일축하지 않으시고 답변을 통해 그들의 오해를 바로잡아 주심으로 부활의 확실성에 대해 가르쳐주고자 하셨습니다. 그들이 부활에 대해 오해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24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오해함이 아니냐.” 그들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모세 오경에 부활에 대해 직접 언급되어 있지 않다고 해서 부활을 부정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인정하는 출애굽기 말씀을 근거로 그들의 무지를 깨우쳐 주셨습니다. 그들은 부활을 이 세상의 연장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부활 시에는 차원이 달라집니다. 이 세상은 죽음이 지배하기 때문에 종족을 보존하기 위해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부활하게 되면 죽음이 정복되므로 그런 일이 필요가 없게 됩니다. 그때 우리는 천사와 같이 불멸의 영적인 존재가 되어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을 하지 않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기 때문에 더 이상 죄의 소욕에 시달리지도 않게 됩니다. 하나님은 무에서 아름다운 세상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분이시요,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하나님은 능력이 무한하신 분으로서 우리를 죽은 자 가운데서 능히 살리실 수 있습니다. 사두개인들의 문제는 하나님을 이성의 세계에 가두어 놓고 그 능력을 제한시킨 것입니다.
  예수님은 출애굽기 3:6절 말씀을 인용하여 부활의 진리를 말씀해주셨습니다. 26절을 보십시오.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을 말할진대 너희가 모세의 책 중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말씀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망명생활 40년에 모든 것을 체념하고 있는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시제가 모두 현재형으로서 하나님은 항상 현재 살아계신 분이심을 말해줍니다. 하나님은 영존하시는 분으로서 아브라함 시대나 이삭 시대나 야곱 시대나 모세 시대나 오늘날 우리 시대에도 항상 현재 살아 계신 분이십니다.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벌써 죽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활시키사 현재 그들도 살아서 하나님과 함께 계심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또 하나님은 개개인의 삶에서 역사하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이시요, 장구한 역사 속에서 세상 역사를 주관하고 계시는 역사의 하나님이시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맺은 언약을 기초로 역사하시는 언약의 하나님이심을 말해 줍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요 모세의 하나님이시요 바로 나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불신 세상에서 부활의 믿음으로 산 믿음의 조상들입니다. 아브라함은 백 세의 나이에 자기 몸이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믿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아들 이삭을 바치라고 하셨을 때 이삭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은 자손을 주신다고 하신 약속을 믿음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능히 살리실 줄을 믿고 이삭을 제단에 드렸습니다. 그들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며 이 땅에서는 나그네임을 자처하며 믿음으로 장막생활을 했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살다가 죽어 막벨라 굴에 장사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죽어서 소멸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부활의 새 생명을 주셔서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살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에게 영광스러운 부활이 없고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이 난다면 우리의 생이 얼마나 허무하고 비참하겠습니까? 인생에 아무런 소망이 없기 때문에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는 쾌락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살아 계셔서 믿음으로 사는 자에게 영광스러운 부활의 새 생명을 덧입혀 주셔서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토록 사랑하는 우리 주님과 함께 살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고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으로서 이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이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다면 부활도 믿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부활의 소망이 있기 때문에 이 땅에서 나그네의 인생을 살 수 있으며 또한 주님을 위해 기쁨으로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결론적으로 말씀하십니다. 27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자의 하나님이시라 너희가 크게 오해하였도다 하시니라.” 죽은 자란 사두개인들과 같이 부활의 믿음이 없는 자입니다. 이런 자는 믿음이 없어 늘 생각이 부정적이고 운명적입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을 의심하고 불신합니다. 이들은 살았으나 죽은 자입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을 만나 볼 수도 없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반면 산 자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같이 부족하지만 믿음으로 사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부활을 믿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계셔서 새 생명을 주시는 생명의 주요 부활의 주이심을 믿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과 동행하며 위로부터 하나님의 생명을 덧입고 살아가기 때문에 늘 생명력이 넘칩니다. 이런 자들의 삶에는 죽음의 요소가 없습니다. 항상 밝고 긍정적이고 생동감이 넘치며 희망찹니다. 이런 자들의 사전에는 불가능이란 단어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의 하나님이 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 하나님은 살아 계셔서 믿음으로 사는 자에게영광스러운 부활의 새 생명을 덧입혀 주셔서 하나님 나라에서 사랑하는 우리 주님과 함께 영원토록 살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산 자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가 항상 살아계셔서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부활의 생명력을 덧입고 이 땅의 일에 얽매이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II.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28-44)
  28절을 보십시오. 서기관 중 한 사람이 예수님께서 사두개인의 질문에 대답을 잘 하시는 것을 보고 예수님의 영적인 지혜에 대해 큰 감명을 받고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인가 물었습니다. 그가 질문을 한 것은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함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믿음의 확신을 덧입고자 함이었습니다. 모세의 율법에는 613가지 계명이 있는데 모든 계명을 다 잘 지키려 하니 계명 간에 충돌이 생기기도 하고, 어느 것을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지 문제의식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첫째가 되는 계명은 모든 계명 중에서 가장 중요한 계명으로 우리가 절대적으로 지켜야 할 계명입니다. 위대한 랍비로 알려진 힐렐은 “네가 싫어하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하지 말라, 이것이 율법의 요약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첫째 계명에 대해 신명기 6:4,5절 말씀을 인용하여 답변하셨습니다. 신명기 6:4-9절을 유대인들은 ‘쉐마’라고 하는데 이는 ‘들으라’는 의미입니다. 쉐마는 구약시대 이스라엘이 지킨 신앙의 기본 핵심으로서, 구약 전체의 요지라 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부분을 아침저녁으로 하루 두 번씩 암송하였습니다. 29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하신 주시라.”이는 신명기 6:4절에 해당하는 말씀으로서 우리가 사랑해야 할 대상이 어떤 분이신가를 말해줍니다. 하나님은 유일하신 주로서 다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절대적이고 유일무이한 경배의 대상이 되심을 의미합니다. 이사야서 37:16절은 말합니다. “그룹 사이에 계신 이스라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는 천하만국에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만드셨나이다.” 하나님은 이 세상과 우리 인간을 그 뜻대로 지으신 창조주로서 그 능력과 지혜가 무한하신 전능하신 분이시오, 지금도 살아 계셔서 능력으로 우주 만물을 주관하시고 인생들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어린양의 피로 이스라엘을 바로의 권세로부터 구원하신 것과 같이, 우리를 죄와 사탄의 권세로부터 구원하신 유일하신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만이 인생들로부터 경배와 찬송과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면 이 하나님께 대해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가 무엇입니까?

첫째,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30)
30절을 보십시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이 말씀은 우리가 최우선적으로 사랑해야 할 대상이 무엇이며, 또 어떻게 사랑해야 되는가를 가르쳐 줍니다. 우리에게는 사랑할 대상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나를 낳으시고 기르시고 교육을 시키시느라 온갖 희생을 아끼지 않으시는 부모님을 사랑합니다. 또 부모는 자기가 낳은 자식을 끔찍이 사랑합니다. 또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사랑합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부부는 이메일 주소에 서로에 대한 사랑을 드러냄으로 보는 이들로 하여금 닭살이 돋게 만들기도 합니다. 결혼을 하지 않은 남녀들은 이성의 사랑을 갈망합니다. 야심이 있는 사람들은 권력이나 명예를 사랑합니다. 조금 고상한 사람들은 학문을 사랑하고 예술을 사랑합니다. 요즈음 시대에는 대부분 사람들이 돈에 최고의 가치를 두고 돈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보다 최우선적으로 사랑해야 할 대상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마음(heart)은 생각이 나오는 곳으로서 인격의 중심이며 생명의 근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잠언 4:23절에서는 “모든 지킬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마음을 다른데 빼앗기고 몸으로만 하나님을 사랑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엇보다도 우리의 마음을 원하십니다. 우리는 마음을 다른데 빼앗기지 말고 중심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목숨(soul)이란 육신의 생명 또는 성품을 말합니다.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육적 생명과 개성과 재능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뜻(mind)이란 우리의 지성, 사고를 말합니다. 우리의 생각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할 때 세상의 요구에 끌려 다니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힘(strength)은 우리의 젊음과 정열, 에너지를 뜻합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넘치는 힘을 어디다 쓸지 몰라서 죄 짓는데 다 허비해 버립니다. 그러나 넘치는 정열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에 쏟아 붓는다면 위대한 역사를 창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전부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요구하실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사랑하는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전폭적으로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전폭적인 사랑을 요구하시는 것은 우리에게 진정한 기쁨과 만족과 자유와 행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뜨겁게 사랑하시는데 우리가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지 않는다면 사랑의 관계성이 맺어지지 않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자 하고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해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이런 자는 철없는 어린 아이와 같이 지극히 자기중심적입니다. 우리가 전심전력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면 위로부터 하나님의 사랑이 내게 임하여 내 마음에 있는 모든 어두움과 미움과 세상 염려와 두려움이 사라지게 되고 이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맛볼 수 없는 참 기쁨과 만족과 행복을 맛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사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줍니다. 하나님을 사랑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육간에 축복하사 모든 것이 풍족하고 차고 넘치게 하십니다. 전심전력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행복의 비결입니다.

둘째,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31-34)
  31절을 보십시오.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자기 자신을 사랑합니다. 자신의 건강과 안전과 행복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자기를 귀하게 여기고 존중합니다. 자존심을 조금만 건드려도 화를 냅니다. 또한 자기를 기쁘게 하고자 애를 씁니다. 이렇게 자기를 사랑하는 것 같이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웃의 건강과 안전과 행복에 관심을 가지고 이웃을 귀하게 여기고 존중해 주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쉬운 것 같지만 실천하고자 할 때 어렵습니다. 여기에는 자기 부인과 희생이 요구됩니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때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사랑해야 할 이웃이 누구입니까? 대게 자기와 친한 사람을 이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랑해야 할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여 사랑할 만한 사람, 나에게 잘 대해주는 사람을 더 사랑하고 마음이 맞는 사람들 끼리끼리만 사랑하기 쉽습니다. 그럴 때 모임이 아무리 커져도 알 수 없는 썰렁함이 감돌게 됩니다. 우리가 사랑해야 할 이웃은 영육간에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모든 자들을 말합니다. 가까이는 가족이나 친구나 직장 동료로부터 시작해서 멀리는 외국에 수많은 영혼들까지 세상에는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런 이웃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위해 기도해주고 말씀으로 섬김으로 그 영혼이 구원 받도록 도와주는 것이 진정한 이웃사랑입니다. 저희가 이웃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는 가운데 나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드러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죄로 죽어가는 영혼들을 돌이켜 구원에 이르게 하는 생명 구원 역사에 쓰임 받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대답을 들은 서기관은 큰 은혜를 받고 말했습니다. 32, 33절을 보십시오. “서기관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공감하고 인정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신앙의 본질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신앙생활이란 단지 예배를 잘 드리고 봉사를 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서기관이 지혜 있게 대답함을 보시고 “네가 하나님 나라에 멀지 않도다” 칭찬하셨습니다. 그 후에는 아무도 감히 묻는 자가 없었습니다.

  35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성전에서 가르치시면서 서기관들의 그릇된 메시야관을 시정해 주셨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리스도는 다윗의 후손으로서 다윗의 줄기에서 탄생하셨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그리스도의 신성을 알지 못하고 인성만 강조한 데에 있습니다. 그들이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임을 강조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다윗과 같이 모든 원수들을 물리치고 지상 메시야 왕국을 건설할 것이라는 민족적 희망 때문이었습니다.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이지만 다윗의 주가 되십니다. 36,37절을 보십시오.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친히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듣더라.” 예수님은 인간이시면서 동시에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사망 권세를 파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온 세상을 다스리시다가 마지막 날에는 심판 주로 강림하십니다.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의 문제를 해결하는 민족적 메시야가 아니라 인생들의 근본 문제인 죄와 죽음 문제를 해결하시는 세상의 구주가 되십니다. 예수님이 다윗 위에 계시는 분으로서 다윗의 주가 되시며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을 때 성경 말씀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절대적인 권위를 갖게 됩니다. 반면에 당시 서기관들은 유대 사회의 리더로 인정받았지만 이중적인 생활로 백성들에게 악영향을 끼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로 하여금 서기관들의 악영향을 경계하도록 하셨습니다. 서기관들은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을 좋아했으며,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원했습니다. 이들은 사람들의 존경과 대접을 받기를 원했지만 불쌍한 과부의 가산까지 삼킬 정도로 탐욕스러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경건하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나타내기 위해 미사여구를 써서 마음에도 없는 말로 길게 기도하였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이중생활을 하며 외식의 죄에 빠진 것은 근본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살지 않고 사람들 앞에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자들이 받을 판결이 더욱 중하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조금 부족하더라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진실되어야 합니다.
  41,42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성전에서 무리들이 헌금함에 돈을 넣는 것을 보셨습니다. 여러 부자들은 돈을 자랑하며 많이 넣는데 한 가난한 과부는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었습니다. 이는 요즈음 화폐단위로 환산하면 약 1500원 정도 되는 돈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부자는 헌금을 많이 했고 과부는 적게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과부는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너무 부족하여 죄송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43,44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부자들은 풍족한 중에 일부를 넣었지만 과부는 구차한 중에 자신의 생활비 전부를 드렸습니다. 사람들은 헌금의 액수를 보고 판단하지만 예수님은 바치는 사람의 마음을 중요하게 보십니다. 하나님은 마음을 담아 드리는 헌금을 기뻐 받으십니다. 이 과부가 희생적으로 헌금할 수 있었던 것은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할 때 주님을 위하여 무엇이든지 기쁨과 감사함으로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과거 이 땅의 행복을 추구하며 세상 일에 얽매여 살던 저를 찾아오사 십자가의 사랑으로 구원하시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 가운데 살게 하셨습니다. 자기 영광을 구하며 자기만 위해 살던 자가 주와 복음 역사를 위해 나의 시간과 물질을 드리며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평신도로서 여러 가지 십자가를 감당하며 믿음 생활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믿음으로 살지만 끊이지 않는 크고 작은 현실 문제 앞에 믿음 생활이 버겁게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때마다 은혜를 베풀어 주사 믿음으로 능히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사명을 감당하다 보니 사명이 익숙해지고 믿음으로 살기 위한 각오와 긴장감이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많은 일을 하고 있다는 자기 의에 기초하여 마음 없이 몸만 움직일 때가 많았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저에게 미국 국제 수양회에 참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자신의 삶을 드려 헌신하며 양들을 섬기느라 많은 애를 쓰시는 선교사님들을 통해 은혜를 받게 하셨습니다. 이 땅에서 양들을 위해 기도의 눈물을 흘리며 말씀을 전파하기 위해 수고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애쓰는 삶이야말로 진정으로 복된 삶이며 장차 들어가게 될 새 하늘과 새 땅이 우리의 진정한 소망이 됨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하나님께서 주신 소망을 붙들고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기를 기도합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캠퍼스 양들을 비롯하여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모든 이웃들을 돌아보고 기도하고 섬기며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삶 살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저희가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부활의 생명력 충만한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나의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나의 삶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림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진정한 기쁨과 만족을 누리며 영육 간에 풍성한 삶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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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576 요한일서 [2019년 요한일서 제2강]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 관리자 2019-02-10 833
575 요한일서 [2019년 요한일서 제1강] 우리의 사귐 서삼문 2019-02-03 1038
574 열왕기상 [2019년 열왕기상 제10강] 내가 여호와인줄 알리라 관리자 2019-01-27 1050
573 열왕기상 [2019년 열왕기상 제9강] 하나님의 세미한 소리 관리자 2019-01-20 1113
572 예레미야 [2019년 신년말씀 제3강]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관리자 2019-01-13 1005
571 기타 [2019년 신년말씀 제2강] 성전을 건축하라 관리자 2019-01-06 820
570 요한복음 [2019년 신년말씀 제1강]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관리자 2018-12-30 914
569 누가복음 [2018년 성탄말씀 제3강]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느니라 관리자 2018-12-23 847
568 누가복음 [2018년 성탄말씀 제2강] 구원의 뿔 돋는 해되신 예수님 관리자 2018-12-16 1178
567 누가복음 [2018년 성탄말씀 제1강] 영원한 왕 예수님 관리자 2018-12-09 894
566 열왕기상 [2018년 열왕기상 제8강] 바알에게 도전한 엘리야 관리자 2018-12-02 1229
565 열왕기상 [2018년 열왕기상 제7강] 여호와 보시기에 관리자 2018-11-25 950
564 시편 [2018년 추수감사예배] 주의 은택을 감사하나이다 관리자 2018-11-18 964
563 열왕기상 [2018년 열왕기상 제6강] 금송아지를 만든 여로보암 관리자 2018-11-11 1034
562 열왕기상 [2018년 열왕기상 제5강] 마음을 돌려 하나님을 떠난 솔로몬 관리자 2018-11-04 946
561 열왕기상 [2018년 열왕기상 제4강] 이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관리자 2018-10-28 955
560 열왕기상 [2018년 열왕기상 제3강] 성전을 건축한 솔로몬 관리자 2018-10-21 1193
559 열왕기상 [2018년 열왕기상 제2강] 지혜를 구한 솔로몬 관리자 2018-10-14 977
558 열왕기상 [2018년 열왕기상 제1강] 왕으로 세움 받은 솔로몬 관리자 2018-10-07 955
557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제28강]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관리자 2018-09-30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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