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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05-26 (일) 12:37
분 류 창세기
첨부#1 2019년_창세기11강-1(오정훈).hwp (31KB) (Down: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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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창세기 제11강] 뭇별을 보여주신 하나님

 2019년 창세기 제11강                                                                        오정훈

뭇별을 보여주신 하나님

말씀/창세기15:1-16:16
요절/창세기15: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보는 것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걸을 때도 고개를 숙이고 땅만 보고 걷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슴을 펴고 먼 곳을 보고 걷는 사람도 있습니다. 땅은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현실세계요 그 현실은 대체로 문제로 가득합니다. 오늘 말씀에는 자식문제로 믿음을 잃고 자기 세계에 갇혀 있는 아브람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에게 뭇별을 보여주시므로 자기세계에서 나와 믿음을 갖도록 도우십니다. 인생에는 당장 해결되지 않는 문제로 위기가 닥치지만 그것은 오히려 믿음을 배우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우리도 나의 절박한 문제를 통해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자기 한계에서 벗어나 믿음의 세계로 나아가므로 원대한 하나님 역사에 쓰임받는 종들이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1.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15장)
15장은 ‘이 후에’란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여기서 ‘이 후에’란 아브람이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해 전쟁에 뛰어들어 놀라운 승리를 거둔 뒤를 말합니다. 이 놀라운 승리로 아브람의 이름은 실시간 검색 1위에 오를 만큼 단숨에 유명해지게 되었습니다. ‘아브람은 누구인가’, ‘아브람은 어떻게 그돌라오멜을 격파했는가’ 연일 매스컴에서 떠들어댔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아브람은 스피릿이 충만하여 두려울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제 자신의 이름은 유명해졌고 큰 민족만 이루면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항상 그렇듯이 현실은 현실일 뿐 현실로 돌아와 보니 남은 것이 없었습니다. 나이는 자꾸 먹어 가는데 자식 문제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목숨 걸고 구해준 조카 롯은 ‘삼촌 고마워’ 한마디만 남기고 소돔으로 가버렸습니다. 거기다가 318명의 용사 중에 전사한 사람도 적지 않고 물질적 손해도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전리품을 가져가라 할 때 못 이기는 척하고 조금이라도 챙길 걸 좀 오버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저런 것을 생각하니 모든 것이 피곤해졌습니다. 피곤하고 면역이 떨어지면 병균이 침범하듯 영혼이 피곤해지면 위기가 찾아오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영적 침체에 빠진 아브람을 어떻게 도와주십니까?
15:1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아브람에게 필요한 것은 그의 두려움을 이기게 해줄 방패와 상급이었습니다. 사람이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면 그 무엇으로도 두려움을 극복할 수 없게 됩니다. 예전에 제가 아는 한 사람은 두려움 때문에 가방 안에 쌍절곤을 넣고 다녔습니다. 그런데도 두려움이 사라지지 않자 죽도까지 들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쌍절곤이나 죽도를 들고 다닌다고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단은 밀 까부르듯 우리 마음에 회의와 불신의 불화살을 쏘아 두려움과 손해의식에 빠뜨리고자 악을 씁니다.(눅22:31) ‘믿음은 믿음이고 현실은 현실일 뿐, 믿음으로 산다고 나아지는 것이 있냐?’ 이 불활살로부터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여 주시는 분은 오직 방패되신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하나님은 때마다 우리에게 말씀을 주심으로 우리 영혼을 지키시고 어둠에 빠지지 않도록 도우십니다. 우리가 방패가 되사 신 하나님을 힘입어 날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므로 어둠에 빠지지 않고 영적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또 지극히 큰 상급이 되십니다. 사람들은 상 받는 것을 좋아합니다. 운동회 달리기에서 3등이라도 해서 공책이라도 받으려고 열심히 뜁니다. 신앙생활에서도 내가 수고하고 헌신한 만큼 내가 원하는 상을 받길 기대합니다. 원하던 직장에 취직되고 결혼도 하고 자식들도 잘 되길 기대합니다. 그러나 열심히 믿음으로 살았는데도 손에 잡히는 것이 없으면 절망하게 됩니다. 신앙생활에서 상급문제는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의 모든 수고와 아픔을 아시고 당신의 때에 가장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우리의 진정한 상급이 되십니다. 이 하나님을 붙들 때 두려움을 이기고 확신가운데 믿음의 길을 끝까지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방패와 상급되신다는 이 말씀이 아브람 마음에 전혀 와 닿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마음에 불을 질러버린 것 같습니다. 15:2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상급이야기를 하시는데 도대체 나에게 무엇을 주셨다는 말입니까? 뭘 좀 주시고 그런 얘기하셔야지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아내도 돌려받게 하시고 재물도 얻어서 돌아오게 하시고 놀라운 승리도 얻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람이 볼 때 제일 중요한 자식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아무것도 받지 못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남들이 갖지 못하는 것, 특별한 것을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한의원 함바나바 원장님에게도 줄줄이 딸린 자식 한명 특히 아들 하나만 달라는 것입니다. 그게 그렇게 과한 소원인 것일까요?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정녕 자식을 주지 않으시겠다면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세우겠다는 것입니다. 엘리에셀은 ‘나의 하나님이 나를 도우신다’는 뜻입니다. 엘리에셀은 아마 하란에서부터 아브람과 함께 한 가장 충실하고 믿을만한 종이었던 것 같습니다. 창세기24장에서 이삭의 결혼역사를 섬긴 충성된 종으로 여겨집니다.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나의 하나님이 나를 도우시는데 아브람은 이를 믿지 못하고 종을 통해서 자신의 후사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습니다. 이런 아브람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헌신했건만 나의 기도제목들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하나님께 대한 원망과 불평이 쌓입니다. 누구는 직장문제, 자식문제, 집문제, 양문제, 건강문제 다 축복해 주시면서 왜 하나님이 나에게는 이렇게 인색하신지, 화가 납니다. 하나님 정 그러시면 저도 생각이 있습니다. 비장의 카드를 꺼내듭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를 어떻게 도우십니까? 4절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아브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 힘이 더 이상 없어서 차선책을 내놓았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베스트의 뜻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것은 그의 몸에서 날 자가 그의 상속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아브람이 자꾸 나이를 먹어가는 그 인간 조건이나 상황과 관계없이 여전히 유효합니다. 하나님은 그 뜻을 성취하기 위해서 아브람 한 사람 그리고 이 시대 나 한 사람을 계속해서 연단하시고 키우십니다. 그러므로 자꾸 차선책을 만들어서 데모하며 땡깡 부릴 것이 아니라 베스트의 뜻을 붙들고 이것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고 믿음으로 인내해야 합니다. 5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하나님은 먼저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밖으로 나갔다는 것은 자기세계에서 나오도록 하신 것을 말합니다. 요즘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어둡고 무기력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기서 벗어나려면 일단 밖으로 나와야 합니다. 나와서 햇볕도 좀 쐬고 높은 하늘도 바라보고 힘차게 걷기도 해야 합니다. 저는 요즘 점심 먹고 육군사관학교 옆으로 흐르는 묵동천을 걷는데 거기는 서울 같지 않게 확 트인 시야와 높게 자란 푸른 갈대로 눈과 마음이 다 시원하게 해줍니다. 답답한 원장실만 벗어나도 이렇게 가슴이 탁 트이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세계는 어떠하겠습니까? 그러므로 땅만 보지 말고 눈을 들어 하나님의 세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이 말씀은 ‘네가 하늘의 별을 다 셀 수 있으면 한번 세어 보아라’는 뜻입니다. 하늘에는 얼마나 많은 별들이 있습니까? 우리나라에서는 요즘 대기오염으로 별이 20개도 보이지 않지만 하늘에는 무수한 별들이 빛나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우주 안에는 1000억 개의 은하계가 있고 한 개의 은하계 안에는 또 10억 개 정도의 별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런 많은 별들은 인간이 한꺼번에 볼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습니다. 그나마 사람이 볼 수 있는 별은 6000개 정도라고 하는데 그것도 세기가 사실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성의 세계를 벗어나지 못해 계산을 해보고 될 것 같으면 믿고 그렇지 않으면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인간적인 계산만하다가 절망하고 쓴 뿌리를 품습니다. 아브람의 문제가 바로 이런 이성의 세계에 갇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아브람은 장막에 누워서 자신과 사라의 나이, 그리고 사라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확률을 계산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자기 생각과 경험에 기초해서 하나님도 어쩔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별을 다 셀 수 없듯이 하늘의 무수한 별들을 만드신 하나님의 능력도 셀 수 없고 측량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밤하늘의 허다한 별을 만드신 무한하시고 놀라우신 권능의 주가 되십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께는 불가능이란 전혀 없으십니다.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자식을 주시고 소원 있는 양을 주실 것입니다. 나의 절실한 취업문제 결혼문제 건강문제 자녀문제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나 한 사람을 통해 뭇별과 같은 역사를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단지 지금 당장 역사하지 않으시는 것은 내가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기다리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현실문제에 갇혀 계산하고 불신하지 말고 전능하신 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음의 세계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아브람의 반응이 무엇입니까? 6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아브람은 놀랍게도 여호와를 믿었습니다. 별을 세다보니 하나님이 생각보다 대단하신 분이시구나 자기도 모르게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달라진 것은 없지만 하나님께서 뭇별을 지으신 것처럼 허다한 후손을 허락하실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아브람이 훌륭한 것은 이처럼 평소에는 좀 변변찮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을 믿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고비의 순간에 믿지 못하면 영적 세계, 믿음의 세계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을 믿음으로 본격적으로 믿음의 세계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평소에는 좀 부족하지만 결정적 순간에는 아브람처럼 하나님을 단순히 믿고 신뢰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아브람의 믿음을 그의 의로 여기셨습니다. 의로 여기셨다는 것은 ‘정말 믿음의 사람이구나’, ‘나를 믿는구나’ 인정하시고 기뻐하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도덕적인 사람보다 당신을 믿고 신뢰하는 자를 기뻐하시고 그런 자와 함께 하십니다. 또 그런 자에게 약속하신 상급을 주시는 살아계신 분이십니다.(히11:6) 믿음이 없으면 인생의 여러 문제 앞에서 계산만 하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 수 없게 됩니다. 반면 문제가 있고 나의 계산과 맞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가면 믿음의 사람으로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이 없어서 늘 문제 앞에 불신과 손해의식에 빠져 살지 않고 변함없이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므로 하나님께 의롭다 인정받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브람은 자식문제를 통해 뭇별을 지으신 하나님의 세계, 믿음의 세계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에게 땅에 대한 약속을 주시고(15:7) 애굽 강에서부터 유브라데까지 그의 자손에게 주겠다 약속하십니다(15:18). 가나안에 들어온 지 벌써 몇 해인데도 아직 자기 명의로 된 땅 한 평 가지지 못하고 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삼년 된 암소 암염소 수양과 산비둘기 집비둘기를 잡고 그 중간을 쪼개도록 하셨습니다. 이는 고대 횃불 언약식으로 언약을 어기는 자는 제물처럼 쪼개지게 될 것을 엄중히 경고하는 것입니다. 18절을 보면 하나님은 연기 나는 화로와 타는 횃불이 제물 사이로 지나가게 하시므로 이 약속이 반드시 이루어짐을 확신시켜 주셨습니다. 13-16절은 그의 후손들에 대한 계시입니다. 아브람의 후손들은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게 되겠고 그들은 400년간 아브람의 자손을 괴롭히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나라를 징벌하시므로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게 됩니다. 아브람은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요 그 자손들은 4대만에 이땅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자금마치 400년 후의 원대한 역사입니다. 이 원대한 역사 가운데 아브람 한 사람을 믿음의 사람으로 연단하고 쓰고자 하십니다. 이 하나님의 계획을 바라보면 현재 자식하나 없는 것으로 인해 조급해하고 두려움에 빠질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이 크신 역사를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에게 자식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하나님은 이 시대 우리를 통해서도 뭇별과 같은 자손을 이루고자 하는 원대한 뜻을 두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현실문제, 열매문제로 일희일비 할 것이 아니라 변함없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뭇별과 같은 자손을 낳고 키우는 위대한 하나님 역사에 쓰임 받는 저와 여러분 될 수 있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저는 꽤 오래 전에 한의대 동역자가 체질감별 한다면서 평소에 땅을 쳐다보고 다니는지 아니면 위를 쳐다보고 다니는지 물은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스스로 소양인이라는 자부심으로 항상 위만 쳐다본다고 거짓 증거하였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간에 그 후로부터는 웬만하면 땅을 보지 않고 위를 보며 살고자 하였습니다. 특히 토요일 저녁 축구할 때면 자주 하늘에 별이 몇 개나 있는지 세어보곤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치과에서 점심 먹고 육군사관학교 쪽으로 산책 가다가 길가 가로수에서 적지 않은 돈을 줍게 되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도 모르게 땅을 쳐다보며 다니는 버릇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제가 땅을 보며 자주 두리번거리는 것을 보고 센터 몇몇 사모님들이 뭘 잃어버렸냐고 물어보아서 크게 당황한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땅만 보고 다니다 보니 저의 마음도 현실문제에 매이기 시작하였다는 것입니다. 원대하고 높던 소양인의 기상은 온데 간데 없고 환자에게 치이고 자식들에게 치여 매일 일희일비하였습니다. 특히 작년 입시를 앞두고 넘치는 확신 가운데 도전한 큰 애가 전부다 불합격하자 크게 실망하고 서운한 마음 금할 길 없었습니다. 제가 아주 엄청나지는 않지만 그래도 약간은 수고하고 헌신했는데 한곳이라도 합격하게 해주셔야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였습니다.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아브람의 질문이 저의 질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많은 것을 주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건강을 주시고 치과에 많은 환자도 보내주시고 센터 역사를 섬길 수 있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무엇보다 힘든 현실 문제 앞에서도 제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해주시고 때마다 말씀 주시므로 제가 믿음을 지키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애들이 좀 제 소원대로 되지 않아서 그렇지 하나님은 저의 소원과 형편을 아시고 이를 만족하여 주시는 저의 방패요 상급이 되십니다. 이 하나님께서 저를 원대한 하나님 역사에 쓰시기 위해 연단하시고 믿음의 세계로 인도하십니다.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이제까지 저를 통해 남은 사람은 천수원 목자님 한 사람 밖에 없고 나이가 50이 되어서 소망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저의 형편과 관계없이 하나님의 약속은 여전히 유효하며 부족한 저를 통해 이 역사를 이루실 것을 바라보게 됩니다. 제가 이 믿음 가운데 현실에 안주하여 적당히 살던 것을 회개하고 기도와 말씀에 전무하며 또 캠퍼스에 도전하므로 뭇별을 이루는 역사 가운데 귀하게 쓰임받을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2.나를 살피시는 하나님(16장)
아브람이 믿음이 없어서 하나님께 데모를 하다 뭇별을 보고 겨우 수습이 되었는데 이번에는 사래가 조급하여져서 문제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가나안에 온지 십년(16:3)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자식을 얻지 못하자 사래는 여종을 첩으로 들임으로서 후사를 잇고자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로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아브람이 사래의 이 말을 들었습니다(4). 평소 들어야 할 말은 잘 듣지 않으면서 꼭 이런 말은 잘도 듣습니다. 16:4절입니다. "아브람이 하갈과 동침하였더니 하갈이 임신하매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그의 여주인을 멸시한지라." 어느날 아침 하갈이 주인마님을 위해 빵을 굽고 있는데 갑자기 헛구역질이 나오고 속이 매슥거리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전날밤 사래 마님 몰래 부엌에서 훔쳐 먹은 양고기가 체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 다음날도 그러고 그 다음날도 그러고 그 좋아하던 빵 굽는 냄새만 맡기만 하면 그러는 것이었습니다. 하갈은 마침내 자신이 임신한 것을 알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임신을 핑계로 속이 매스껍다, 허리가 땡긴다고 하면서 부엌일을 하지 않고 누워 버렸습니다. 그리고 슬금슬금 아브람의 옆자리 안방마님의 자리를 떡하니 차지해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이걸 죽일 수도 없고 때릴 수도 없는 노릇인데 아브람마저 임신한 사람 부려먹지 말고 당신이 직접 하라며 하갈 편을 드는 것이었습니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하더니만 남편이 자신을 이렇게 대할 줄 몰랐습니다. 사라 눈에 불꽃이 튀었습니다. 16장5절을 사모님들이 <치가 떨리는 심정으로, 분노한 심정으로>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내가 받는 모욕은 당신이 받아야 옳도다. 내가 나의 여종을 당신의 품에 두었거늘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나를 멸시하니 당신과 나 사이에 여호와께서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시덥잖은 여종이 그렇게 방자하게 굴면 남편이 나서서 혼을 내주고 질서를 세워야 하는데 오히려 같은 편이 되어 자신을 무시하다니 이는 하나님이 판단하셔야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여인이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하더니 아브람은 이제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래의 분노를 보고 겁을 잔뜩 집어 먹고 꼬리를 내리고 말았습니다. 6a절입니다. “당신의 여종은 당신의 수중에 있으니 당신의 눈에 좋을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매.” 아브람이 좋은 대로 행하라 하자 사래는 이제까지 참았던 분노를 폭발시켰습니다. 머리끄덩이 잡고 흔들어 넘어뜨리고 목을 누르고 올라타 무릎으로 배를 마구 밟아버렸습니다. 도망치려는 하갈을 잡아서 니킥을 날리며 옆차기 돌려차기를 하였습니다. 하갈은 죽을 것 같은 두려움으로 정신없이 사래 앞에서 도망쳐 버렸습니다. 아들 하나 얻기 위해 여인으로서 자존심도 버리고 여종을 첩으로 준 것 뿐인데 결국 남편과의 관계성도 파괴되고 여종도 잃고 어렵게 얻은 태아마저도 잃게 되는 파국을 맞고 말았습니다. 인간적인 방법을 쓴 결과가 이러합니다. 그러므로 힘들고 어려워도 참고 인내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거기에 성령의 감동하심이 있고 은혜의 역사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7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사자가 광야의 샘물 곁 곧 술 길 샘 곁에서 그를 만나” 술(Shur) 길은 팔레스틴 남서쪽에서 아라비아 광야로 난 대상로로서 애굽으로 통하는 길목이었습니다. 아마 하갈은 사래의 학대를 피해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 하갈을 여호와의 사자가 찾아왔습니다. 8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이르되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그가 이르되 나는 내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하나이다.” 여호와의 사자는 ‘하갈아’ 하지 않고 ‘사래의 여종 하갈아’ 하였습니다. 이는 그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것이며 하갈이 어떤 사람인지 깨우쳐 주는 말씀입니다.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이는 근본적인 질문으로서 여주인과 치고 박고 싸우고 나왔는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깊이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래의 여종으로서 본분으로 버리고 도망가는 것은 자신과 자식을 도망자로 만드는 그릇된 길입니다.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가에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 그의 장래가 결정될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으로부터 와서 하나님께로 향해 가고 있습니다. 이를 깊이 생각하고 현재의 감정과 형편으로 마음이 틀어져 모든 것을 뒤엎어 버리고 뛰쳐나가지 말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이르고자 하는 소원 가운데 믿음의 경주를 끝까지 감당해야 합니다. “나는 내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하나이다.” 같이 살자니 피곤하고 떠나자니 두려웠습니다. 이런 하갈에게 여호와의 사자는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명령합니다. 피하고 도망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본분을 깨닫고 돌아가서 복종하는 것이 그가 살 길이요 복을 받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어떤 모양으로든지 순종하는 자를 기뻐하시고 반드시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10,11절을 보십시오. 하갈이 순종해서 그 수하에 복종하면 하나님께서는 하갈의 씨를 크게 번성하여 그 수를 셀 수 없게 하신다고 하십니다. 비천한 여종의 태생이 크게 번성하게 된다는 것은 놀라운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또 아들을 낳게 하시고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하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의 고통을 들으셨기 때문입니다. 12절 보십시오. 이스마엘은 사람들 중에 들나귀같이 될 것입니다. 이는 이스마엘이 광야를 누비며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살게 됨을 의미합니다.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치며 그는 형제와 대항해서 살게 됩니다. 하갈은 여주인에게 학대받다 도망친 하찮은 자신에게 관심가지고 돌아보신 하나님으로 인해 너무나 감동을 받았습니다. 13절을 다 같이 잃어 보시겠습니다.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은 히브리어로 ‘엘 로이’로서 ‘자신을 눈에 띄게 보시는 하나님’, ‘보잘 것 없는 자를 돌아보시고 살피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보잘 것 없는 나 한 사람을 외면치 않으시고 돌아보사 살피시고 계십니다. 아무도 모르는 나의 괴로움과 고통을 아시고 찾아오사 말씀으로 위로하시고 새 힘과 소망주시는 은혜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세상에서는 관심을 끌고 도움을 받으려면 웬만한 위치에 있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보잘 것 없고 하찮은 사람은 사람들이 신경도 써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무리 하찮고 별 볼일 없는 사람도 귀하게 여기시고 인격적으로 돌보아주시는 은혜로우신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을 바라볼 때 은혜가 되고 힘이 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살피시고 믿음의 길 순종의 길을 가도록 도우십니다. 보잘 것 없는 나 한 사람을 인격적으로 살피시는 나의 하나님을 바라보므로 도망자의 길을 가지 말고 순종의 길을 가므로 하나님 역사를 이루는데 귀하게 쓰임받길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뭇별을 지으신 위대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해결되지 않는 많은 문제들 속에 살고 있지만 땅을 바라보지 않고 뭇 별을 지으신 하나님을 바라보므로 믿음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나 한 사람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원대한 역사를 바라보고 이 역사 가운데 아브람과 같이 귀하게 쓰임 받는 종들이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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