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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06-25 (화) 13:13
분 류 창세기
첨부#1 2019년_창세기15강-1(오정훈).hwp (29KB) (Down: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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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창세기 제15강]아브라함을 시험하신 하나님
2019년 창세기15강                                                                                                         오정훈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하나님

말씀/창세기 22:1-23:20
요절/창세기 22:12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학생들 기말고사 보고 있죠? 시험 잘 보고 있습니까? 시험을 잘 봐야 합니다.>
사람들은 살면서 많은 시험을 보게 됩니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수능 토익 운전면허시험 등 많은 시험을 보게 됩니다. 이런 시험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끝나서 시험에서 자유로워지는 날이 오게 됩니다. 그러나 인생들을 향한 하나님의 시험은 끊임없이 계속되어집니다. 오늘 본문에는 모든 것을 다 이룬 아브라함을 향한 하나님의 마지막 시험이 나옵니다. 이 시험은 가장 사랑하는 대상을 바치는 시험이요 하나님께 절대적인 경외심을 가졌는지 확인하는 시험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도 아브라함과 같이 이삭을 바치는 믿음을 배우고 하나님께 믿음으로 인정받고 쓰임 받는 종들이 되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22장은 ‘그 일 후에’ 라는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그 일 후에’란 아브라함이 우물을 늑탈한 일에 대하여 아비멜렉을 책망하고 평화조약을 맺은 후 에셀나무를 심고 영생하시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 뒤를 가리킵니다. 그는 연약하여 아내를 누이라고 두 번이나 속였지만 하나님께 대한 믿음으로 강하여져서 악한 세상에서 승리하고 온전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는 산전수전 공중전 육박전까지 다 치룬 백전노장으로 믿음이 완숙한 단계에 이르러 더 이상의 시험은 필요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이 때 그를 시험하고자 하셨습니다. 이 시험은 아브라함을 믿음의 사람으로 확증 짓기 위한 최후의 시험이요 최고의 시험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택한 자가 정말로 변함없이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지 그 심장과 폐부를 때로 시험하십니다.(렘17:9)
그러면 그 시험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2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주관식 객관식 OX 문제도 아니고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시험 문제는 이제까지 출제된 적이 없는 상식과 윤리를 뛰어넘는 최고난이도의 문제였습니다. 독자이삭은 천신만고 끝에 얻은 아브라함에게 목숨보다 더 소중한 아들이었습니다. 하나님도 그것을 잘 아시고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니 그렇게 귀하고 사랑스러운 아들인 줄 아시면서 번제로 바치라니 왜 이러시는 것일까요? 시험을 잘 보려면 출제자의 의도를 알아야 하듯이 하나님께서 이 시험을 주신 의도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런 시험을 하시는 것은 아브라함이 이삭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가 알아보시기 위함이십니다. 요즘 말로 하면 ‘뭣이 중한디’로서 하나님이냐 이삭이냐? 축복주시는 하나님인가(GOD IS BEST)가 아니면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인가(Isaac is best) 하는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더 사랑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물질과 자녀와 취업과 결혼에 마음이 더 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한번 움켜쥐게 되면 결코 놓으려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우리의 마음을 시험하십니다. 마음과 힘과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그래서 가장 귀한 것을 바칠 수 있는지 시험하십니다. 아브라함이 이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최고로 여기는 마음과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요구되어집니다. 하나님은 변함없이 나를 사랑하시며 순종할 때 그 결과도 베스트로 인도하신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쪽지 시험도 시험이라고 시험은 언제나 어렵고 괴롭습니다. 특히 사랑하는 자녀문제로 시험받을 때 극심한 고통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도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보인다’고 하였습니다.(히12:11a) 그러나 하나님은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십니다.(히12:6) 그러므로 시험받을 때 ‘하나님이 나만 미워하시는 구나’ ‘나를 싫어하시는 구나’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정말 사랑하시는 구나’ ‘나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하시는 구나’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세우고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을 적극적으로 감당해야 합니다.(히12:12) 그때 능히 시험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시험에 대한 아브라함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3절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종 둘과 이삭과 함께 지시한 곳으로 떠났습니다. 이스마엘을 내어 보내라 할 때는 밤새 고심하며 번민하였는데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하자 조금도 망설이거나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마엘 내보내고 나더니 아브라함 마음이 독해졌기 때문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그의 마음에 이삭을 드리기로 결단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좀 생각할 시간을 달라, 기도할 시간을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고민한다고 오래 생각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번지점프대에서 뛸까 말까 망설이는 사람은 결국 뛰어내리지 못합니다. 믿음의 세계에서도 앞뒤가리지 말고 눈 딱 감고 결단하고 순종하는 사람이 시험을 통과할 수 있습니다. 4절입니다. 제 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곳을 바라보았습니다. 이 모리아산은 훗날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지는 곳으로 예수님의 죽으심과 연관된 곳입니다. 이 역사적인 장소로 향하는 아브라함의 심정과 믿음이 어떠합니까? 5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아브라함은 놀랍게도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말하고 있습니다. 이삭을 바치고 나면 자신만 남는데 어떻게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일까요? 이는 그에게 하나님 약속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21:12)”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이지기 위해서는 이삭을 번제로 드리더라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려주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의 이런 절대적인 믿음이 현실에서 볼 수 없는 영적인 세계 곧 부활의 세계까지 볼 수 있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는 말씀합니다.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히11:19)”
7,8절은 모리아 산으로 향하는 부자간의 대화입니다. “내 아버지여 ....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안 그래도 이삭이 양에 대해서 물어볼까봐 조마조마했는데 이 질문을 받자 아브라함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습니다. “번제할 어린양은 바로 바로 너, 그건 너” 이렇게 말해야 되는 아브라함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이런 고통에 처하게 되면 믿음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을 원망하며 ‘니가 왜 태어나서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냐?’ 입술로 범죄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끝까지 믿음의 고백을 하므로 자기 자신에게 또 이삭에게 믿음을 심고 있습니다. 8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이는 아브라함이 위기를 모면하려는 임기웅변의 대답이 아니라 그의 믿음의 고백이었습니다. 그것이 이삭이든 하나님 보내신 양이든 하나님이 친히 예비하시고 쓰신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번제할 어린 양은 바로 독자 이삭이었고 하나님에게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 예수님이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런 믿음 가운데 이삭을 하나님께 드리기로 결단하였습니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드리기로 한 이 아브라함의 모습은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의 모습을 상징합니다. 인생들의 죄 값을 치루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이 어린양으로 드려졌듯이 이삭도 불순종의 세상에서 순종의 제물로 드려지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드리는 고통을 통해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깨닫게 됩니다. 그것이 얼마나 쓰라지고 애끓는 고통인지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훈련은 때로 우리를 죽을 것 같은 고통 속으로 몰아넣기도 합니다. 자녀문제, 건강문제, 양문제로 우리를 시험하십니다. 그러나 그런 불같은 시험을 받을 때 우리 죄성이 깨어지고 믿음의 세계에 눈을 뜨며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는 놀라운 은혜를 덧입게 됩니다. 9절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일러 주신 곳에 이르자 제단을 쌓고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칼을 들어 이삭을 잡으려 하였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이삭의 순종과 침묵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삭이 이 때 적어도 중학생 정도의 나이는 되었기 때문에 ‘아빠 지금 뭐하는 거예요? 제 정신이에요?’ 하며 발버둥치거나 저항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아브라함이 하는 대로 침묵하고 완전히 결박당하였습니다. 이 이삭의 모습은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53:7) 램브란트는 ‘아브라함의 희생’이란 2개의 그림을 통해 이 장면을 아주 사실적으로 묘사하였습니다. 1637년에 그린 그림을 보면 아브라함은 이삭의 손을 뒤로 결박하여 움직이지 못하게 한 뒤 왼손으로 이삭을 얼굴을 완전히 감싸고 하얗게 드러난 이삭의 목을 휘어진 단도로 베려고 합니다. 1655년에 그려진 그림에는 아브라함이 얼마나 진지하고 결연한 마음으로 이삭을 잡으려고 했는지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축구선수들이 하는 헐리우드 액션을 쓰지 않았습니다. 정말로 하나밖에 없는 이삭을 잡으려고 하였습니다. 그의 행동이 얼마나 결연하고 단호했던지 하늘에서 천사가 급하게 아브라함 이름을 두번이나 불러 제지하여야 했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램브란트의 그림에도 천사가 내려와 급히 아브라함의 오른 손을 잡아서 칼을 떨어뜨림으로 그를 제지하는 모습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보통 칼을 들기 전에는 ‘나도 바칠 수 있을 거야, 당연히 바쳐야지’ 생각합니다. 그러나 막상 바쳐야 할 때가 되면 칼을 드는 것조차도 쉽지 않습니다. 바치기 전에 가진 마음과 바치고자 칼을 내리치는 것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칼을 들기 전이나 칼을 든 후나 이삭을 바치고자 한 마음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의 믿음은 검증된 믿음 확실히 확인된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도 이런 아브라함의 믿음을 깊이 인정하시고 말씀하셨습니다. 12b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까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나님은 그동안 인생들이 너무나 속을 썩여 와서 별로 놀랄 일도, 감동받으실 일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을 보시고는 크게 놀라시고 감동받으셨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이렇게까지 120% 순종할지는 모르셨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순종은 절대적인 순종이요, 완전한 순종이었습니다.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아노라” 별로 소중하지 않은 것,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은 얼마든지 바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목숨 같은 아들, 목숨 같은 나의 시간과 젊음, 나의 꿈과 계획을 바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목숨을 바쳐서라도 이것을 놓치지 않으려 몸부림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목숨보다 더 소중한 이삭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아끼지 않았다는 것은 움켜쥐지 않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고 움켜쥐지 않고 기꺼이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쥐고 있는 것을 놓으면 죽는 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내려놓을 때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고 하나님을 새롭게 만날 수 있게 됩니다.  
<내려놓음>이란 책을 쓴 몽골의 이용규 선교사가 말했습니다. “내려놓음이란 불교의 무소유와 다릅니다. 무조건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한 적극적인 순종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한 사람의 순종의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짐 엘리엇도 “영원한 것을 위해서 영원하지 않은 것을 내려놓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이삭을 내려놓을 때 그냥 빈손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을 붙들게 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을 붙들고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감격을 체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그 어떤 것보다도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고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아끼는 것이 없이 드림으로 믿음의 시험을 통과하고 하나님을 만나는 더 깊은 믿음의 세계에 들어가게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브라함이 이렇게 이삭을 바치고자 하자 하나님은 한 양을 예비하셨습니다. 13절입니다.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보니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이 숫양이 그 잘난 뿔 좀 자랑하려고 머리를 흔들다가 수풀에 뿔이 걸려버리고 만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리고 그 땅을 이름을 여호와이레라 하였습니다. 여호와이레는 ‘여호와께서 준비하신다’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친히 모든 것을 예비하시고 준비하심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절대적인 순종과 헌신하는 자에게 필요한 것을 예비하시고 책임져 주시는 은혜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16-18절까지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네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한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하나님은 독자도 아끼지 않고 바친 아브라함을 축복하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그 씨를 번성하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또 네 씨가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고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한 만민이 복을 얻는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네 씨는 단수로서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야께서 사단의 성문을 차지하고 그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구원의 복을 얻게 될 것을 상징합니다. 아브라함은 불같은 시험을 통과함으로 믿음의 사람으로 최후 확증을 받고 메시야에 대한 약속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임한 하나님의 복은 부족하고 연약한 아브라함 한 사람의 절대적인 믿음과 순종을 통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시대에도 나 한 사람의 절대적인 믿음의 순종을 통해 천한 만민이 복을 받게 되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부족하지만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께 나의 가장 귀한 것도 아끼지 않고 바치므로 하나님께 인정받고 많은 사람이 은혜 받는 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게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말씀을 보며 학교 다닐 때 시험을 정말 많이 봤던 기억이 납니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오랄 테스트 땡시 등 각종 시험을 봤습니다. 그런데 저는 공부를 잘 하지 못해서 다른 친구들이 방학할 때 재시 삼시를 보느라 2-3주 뒤에 방학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괴롭고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국가고시에 합격하므로 중요한 시험을 다 끝내게 되었습니다. 공보의 때 운전면허시험을 끝으로 저는 공인된 기관에서 보는 시험에서 해방되게 되었습니다. 이후 저는 가을에 핀 국화처럼 관조적인 자세로 시험을 보는 사람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시험이 다 끝나서 좋다고 생각하였는데 진짜 시험은 이제 이제부터였습니다. 그것은 자식들을 통한 인생시험으로 저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큰애가 집에서 빈둥거리며 장래에 대한 준비 없이 지내는 것을 보면 속이 답답하였습니다. 제가 수고하고 헌신한 만큼 자식들도 어느 정도는 될 것이라 생각하였는데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것이 고작 이것뿐이란 말인가 회의가 생겨났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최고이시며 베스트로 인도하시는가 의심하였습니다. 이런 회의가 생겨날수록 열심히 나지 않고 힘이 자주 빠졌습니다. 여름수양회를 앞두고 라이프강사들을 닦달하고 볶아대서 라이프를 쓰게 해야 하는데 전처럼 눈이 이글거리고 주먹이 꽉 쥐어지지 않았습니다. 몸과 마음이 피곤해져서 앉기만 하면 졸고 갱년기 증상에 근접한 증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제 저도 다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이 먹을수록 인생이 편해야 된다는데 50이 넘어서 무슨 고생인가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하나님이 그를 믿음의 사람으로 세우시고자 시험하셨듯이 저를 시험하시는 것 또한 믿음의 사람으로 세우고 인치시기 위함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 하나님은 저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베스트의 하나님이시며 가장 좋은 믿음을 선물로 주시는 최고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제가 이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없어서 ‘하나님은 나를 좋아하지 않으시는 구나’ 섭섭한 마음과 힘든 생각하며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했던 것을 이 시간 깊이 회개합니다.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을 믿고 감사함으로 자녀들을 통한 인생 훈련을 받으므로 성숙한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하길 기도합니다. 이 믿음 가운데 피곤한 무릎과 연약해진 손에 힘을 주고 다시 일어나 눈을 부릅뜨고 라이프 강사들을 힘써 섬기므로 구원의 은혜와 부르심의 은혜가 넘쳐나는 수양회 되게 도우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23장은 사라의 죽음으로 시작됩니다. 사라가 기럇아르바에서 죽었는데 그의 나이 127세였습니다. 성경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여인의 나이를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그만큼 사라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입니다. 사라는 모든 믿는 여인의 어미요 아브라함이 끝까지 믿음으로 살 수 있도록 도와준 믿음의 동역자였습니다.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아브라함과 늘 함께 한 전우요 사랑하는 아내이며 훌륭한 어머니였습니다. 이런 사라를 잃은 아브라함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슬퍼하며 애통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는데 마냥 그러고만 있을 수 없는 것은 사라를 매장할 땅 한 평조차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헷 족속에게 나아가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신에게 매장할 소유지를 주어 사라를 장사지내게 해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헷 사람들의 호의를 거절하고 막벨라 굴을 당시 시가보다 훨씬 비싼 은 400세겔을 주고 사므로 자신의 소유로 확정지었습니다. 막벨라 굴은 두 개의 굴이라는 뜻으로 굴 안에 굴이 있는 이중 구조의 굴이었습니다. 헷 사람들의 호의에도 불구하고 구지 이 굴을 돈을 주고 사서 거기에 사라를 매장한 이유는 후손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나중에 이 땅을 주시리라 하시는 하나님의 소망이 이루어질 근거지로 삼고자 하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라 뿐 아니라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까지 여기에 묻히므로 모든 믿은 자의 돌아갈 본향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아마 출애굽하여 모세가 기록한 창세기를 읽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아브라함을 통해서 역사성을 배울 수 있었을 것입니다. 자기 당대만 바라보고 현실문제 해결에 급급한 삶을 살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먼 후대를 바라보고 투자하는 삶을 살아야 함을 배우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 시대는 실로 역사의식을 가진 사람이 절실히 필요한 시대입니다. 사람들은 극도의 이기주의에 빠져 자기만을 위한 삶을 살며 거대한 죄의 세력에 휩쓸려가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가 역사의식을 가지고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어떻게 하나님 나라를 건설할 것인가? 역사의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 역사를 이루고 계승해 나가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 한 사람을 세우고 믿음의 종을 파송하여 막벨라 굴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현실문제에만 매여 살지 않고 역사성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 후손들에게 믿음의 유산을 남기는 종들이 될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때로 불같은 시험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이 시험은 떨어뜨리기 위한 시험이 아니라 세우기 위한 시험이요 믿음의 사람으로 확증하고 축복하시기 위한 시험입니다. 우리가 이 시험 앞에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아끼는 것이 없이 바치는 믿음의 사람이 되길 기도합니다. 이를 통해 아브라함처럼 천하 만민이 복을 받는 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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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8 창세기 [2019년 창세기 제18강] 이삭의 축복을 받은 야곱 관리자 2019-07-14 1349
597 창세기 [2019년 창세기 제17강] 약속의 땅에 거주한 이삭 관리자 2019-07-07 1103
596 창세기 [2019년 창세기 제16강] 이삭의 결혼 관리자 2019-06-30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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