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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08-25 (일) 13:11
분 류 창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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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창세기 제23강] 꿈꾸는 요셉

 2019년 창세기 제23강                                                            이인구

꿈꾸는 요셉

 말씀/ 창세기 37:1-36
 요절/ 창세기 37:9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헬렌 켈러는 말했습니다. “맹인으로 태어난 것보다 더 불행한 것은, 볼 수 있으나 비전(꿈)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 꿈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꿈이 이루어지도록 하시기 위해 인생연단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요셉의 꿈을 통해 야곱의 가정을 치유하시고 구원하시고자 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구원역사를 위해 요셉에게 꿈을 주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를 배우고 하나님께서 주신 나의 꿈을 찾을 수 있길 기도합니다.

야곱은 벧엘에서 이스라엘이란 새 이름과 약속을 받은 후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그의 아버지가 머무는 가나안 땅으로 돌아와 거주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야곱의 나이 108세요 요셉의 나이 17살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의 가정은 겉으로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평온한 가정처럼 보였지만 많은 위험 요소를 안고 있었습니다. 얼마 전 딸 디나는 세상문화를 기웃거리다 성폭행을 당했고, 둘째 시므온과 셋째 레위는 디나의 원수를 갚는다면서 비열한 방법으로 많은 이들을 죽였습니다. 또 첫째 르우벤은 서모 빌하와 불륜의 관계를 맺었습니다. 다른 아들들도 조건만 되면 언제든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폭탄 같은 위험을 가진 이들이었습니다. 어머니가 4명이나 되는 복잡한 가정에서 요셉은 11번째 아들로 일찍 친어머니를 잃고 사춘기시기에 상처받은, 삐뚤어진 아이로 자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 앞에서 순수하고 정직하게 자라났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요셉이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함께 양을 칠 때에 요셉은 그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일러바쳤습니다. 양을 치지 않고 얼마나 놀았는지 또 몰래 양을 잡아먹고 염소 발 내미는지 낱낱이 알렸습니다. 좋은 말로 하면 형들의 숨은 적폐를 용감하게 드러내는 정의로운 행동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형들의 실수와 죄를 감당하지 못하고 고자질하는 이기적인 행동이었습니다. 요셉의 행동은 교만과 이기심에서 나온 것이 아닌 내면적 순결함에서 나온 정직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직했지만 형들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부족했습니다. 진리(공의)는 있지만 은혜(사랑)가 부족했습니다.
요셉의 어린 시절은 아버지 야곱의 영향력이 컸습니다. 아버지 야곱은 요셉을 어떤 아들보다도 더 사랑하였습니다. 야곱은 요셉을 편애해서 그에게만 채색 옷을 지어 입혔습니다. 당시 채색 옷은 요즘 구찌나 샤넬처럼 최고의 명품옷이었습니다. 이 옷은 주로 귀족들이나 왕의 자녀들에게 입혀진 옷이었습니다. 당연히 형들이 요셉을 좋아할 리가 없었습니다. 자신들은 맏형 르우벤부터 시작하여 똑같은 옷을 구멍 뚫릴 때까지 물려 입었습니다. 요셉만 특별히 명품 옷을 맞춰주고 그런 요셉이 자신들의 작은 잘못까지 일러바치니 좋을 리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아버지가 자신들의 어머니보다 요셉의 어머니 라헬만을 사랑하는 것을 알고 있었고 아버지의 편애를 받는 요셉이 정직하고 똑똑하고 심지어 잘생기기까지 해서 더욱 열등감에 사로잡혔습니다. 야곱의 편애는 형제들의 미움과 시기를 불러일으켰고 결국 요셉의 인생고난의 발단이 되었습니다.
부모의 편애는 자식들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자녀 중 누구를 더 사랑하나 질문에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말하지만 사실 더 아픈 손가락이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미국 켈리포니아 대학 연구에 따르면(768명 조사, 타임지발표) 약 70%의 부모가 편애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부모가 더 큰 애정을 가질 확률이 높은 자녀는 건강하거나 맏이거나 연약한 막내일 경우라고 했습니다. 과거 우리나라도 남아선호사상이 있었고 최근 아버지들은 딸만 사랑하는 딸 바보가 많아졌습니다. 자녀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부모의 애정을 두고 다른 형제와 쟁탈전을 벌이며 대개는 자신이 편애의 대상인지 아닌지를 눈치 채고 그에 맞게 행동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부모의 사랑을 덜 받는다고 느끼는 자녀는 불안, 낮은 자존감, 우울증에 시달릴 수 있고 편애를 받는 자녀 역시 부모의 사랑을 한 몸에 받다 사회에서 그만한 관심을 받지 못할 때 충격과 좌절을 이겨내야 하며 다른 형제에 대한 죄책감과도 싸워야 합니다. 그래서 부모는 편애를 드러내서는 안되고 자녀가 눈치 채더라도 끝까지 부정하는 편이 좋다고 했습니다. 부모가 완벽하게 사랑을 나눠주기는 쉽지 않아 교육전문가 아델페이버는 불공평하게 공평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즉 아이들 각자의 개성을 평가해서 그것들 각각을 편애해서 어느 아이나 자기가 제일 사랑 받는 아이라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야곱의 편애는 요셉이 평생 사랑했던 라헬이 노년에 낳은 자식이었고 또 라헬이 일찍 죽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야곱은 요셉을 얻은 후 아내들끼리의 시기와 알력도 줄어들었고 라반과의 새 계약으로 물질적으로도 여유가 생겨 어린 요셉을 사랑할 수 있는 내면의 여유가 생겼습니다. 또 세겜에서 큰 위험을 겪고 벧엘에서 새 믿음과 비전을 덧입은 후 친모 잃은 요셉을 애틋한 사랑으로 특별히 더 신앙교육을 했습니다. 형제들의 죄악에서 지켜주었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요셉을 사랑한다는 믿음을 심어주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항상 나를 지켜주고 나의 어떤 허물과 실수에도 나를 변함없이 사랑한다는 믿음은 요셉에게 큰 자존감을 주었습니다. 채색 옷보다 더 좋은 요셉의 옷은 자존감의 옷이었습니다. 요셉은 그 자존감으로 어머니의 죽음의 상처를 딛고 일어설 수 있었고 또 순수하게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믿을 수 있었습니다. 야곱의 편애 때문에 야곱의 가정이 쓰나미 같은 위험에 빠지게 됐지만 하나님은 놀라운 섭리가운데 오히려 그것을 통해 야곱의 가정을 구원하고자 하셨습니다.  
야곱의 편애는 그 부모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아버지 이삭은 에서를 사랑하였고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을 더 사랑하였습니다. 리브가가 야곱을 편애한 것은 임신 때 받은 하나님의 말씀 때문입니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을 때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창25:23)는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도 야곱을 편애하시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것은 편애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의 택하심입니다. 많은 죄인들 중에서 한 사람을 택하시고 쓰시고자 인도하시는 것은 그 사람에게 큰 은혜요 사랑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사랑과는 다릅니다. 야곱은 요셉에게 채색 옷을 지어주는 등 특별대우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택하시고 사랑하는 사람을 훈련하시며 연단하십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또 야곱도 그런 사랑으로 택함 받고 많은 인생연단을 받았습니다. 택함 받은 야곱보다 오히려 택함 받지 못한 에서가 외적으로는 더 고난 없고 풍요로운 삶을 산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택함 받은 사람의 인생과정은 연단으로 힘들어도 최후에 승리의 인생 열매 맺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또 연단 중에서도 세상이 주는 허무한 기쁨이 아닌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이 주시는 진정한 기쁨과 평안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살아도 많은 인생 고난을 받는 분들은 오히려 하나님께서 자신을 편애하셔서 쓰시기 위해 이렇게 연단하시는 구나 오히려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크고 위대한 역사를 위해 택한 사람은 더 강하게 연단하십니다. 민방위 훈련보다 특수부대원 훈련이 훨씬 더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과 같습니다. 힘들지만 실제 전쟁 때 특수부대원들이 더 중요한 임무에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저는 군대를 가지 않아 민방위훈련만 받았지만 더 힘든 하나님의 인생연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택한 것은 그 사람만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통해 결국 다른 사람들도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 한 사람을 택했지만 결국 요셉을 통해 모든 형제들을 치유하시고 구원하시고자 하셨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께 이스라엘 12지파의 조상으로 택함 받아 많은 인생연단을 받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마지막 연단이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역사에 쓰임 받기 위해 택함 받은 요셉 차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함 받은 요셉에게 먼저 꿈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2번의 비슷한 꿈을 반복해서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2번의 반복되는 꿈을 통해 그 꿈이 요셉의 인간적 욕구가 무의식적으로 나타난 개꿈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비전임을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꿈 가운데 요셉의 인생을 통해 이루시고자 하시는 목적과 비전을 보여주셨습니다.
여러분은 꿈이 있습니까? 최근 사람들의 문제가 꿈이 없는 것이라고, 꿈을 잃어버린 시대라고 말합니다. 저는 어릴 때 높고 위험한 산에 오르는 것을 인생의 꿈으로 사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어차피 올랐다가 다시 내려올 텐데, 왜 죽기 살기로 힘들고 위험한 산에 오르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또 맛있는 것을 먹기 위해 전국 각지로 심지어 세계 각지로 여행하는 미식가의 꿈을 가진 사람들을 납득하지 못했습니다. 어차피 배설하고 다시 배가 고파질 텐데 왜 아까운 시간과 돈을 허비하는가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떤 이들에게 꿈은 생존의 문제요 인간답게 살기 위한 실존의 문제입니다. 얼마 전 TV에서 ‘천국의 아이들’이란 다큐 프로그램을 봤습니다. 세계의 빈민지에서 쓰레기를 팔아 사는 아이들의 꿈과 삶을 취재한 것입니다. 쓰레기 산에서 밤낮으로 쓰레기를 주워 팔아 생계를 이어가고 학교에 다니는 11살 여자아이는 악취 나고 더럽고 힘든 노동을 하면서도 꿈이 있습니다. 그 애는 열심히 공부해 의사가 되어 가족들과 같이 쓰레기 산을 떠날 꿈을 꿉니다. 또 14살 한 아이는 아버지가 병들고 무능력한 술주정뱅이고 어머니는 가정을 버리고 떠난 후 바다에게 길거리에서 쓰레기를 주워 팔아 살면서도 꿈이 있습니다. 그의 꿈은 좋은 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와 형제처럼 같이 다니는 7살 고아 아이도 꿈이 있습니다. 그 애의 꿈은 굶지 않고 배부르게 먹고 사는 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애는 방송 촬영이 끝난 후 꿈을 이루지 못하고 병으로 죽었습니다. 그들에게 꿈은 생존의 문제요 인간답게 살기 위한 몸부림입니다. 그럼 인간답게 사는 것이 무엇입니까? 동물들은 꿈을 꾸지 않습니다. 오직 인간만이 꿈을 꾸고 꿈을 이루기 위해 힘씁니다. 과거 우리나라는 인간답게 살기 위해 전쟁의 상처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뛰었습니다. 그 결과 어느 정도 생존의 꿈은 이루었지만 최근에는 생존의 문제보다는 다른 이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다른 이들보다 앞서기 위한 꿈을 가진 이들이 많습니다. 을이 아니라 갑이 되기 위한 꿈을 꿉니다. 세입자보다 건물주가 되기를 원하고 섬기는 사람보다 높은 위치에서 다른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섬김 받는 정치인이나 회장이 되는 꿈을 꿉니다. 하지만 그런 꿈은 다른 사람들을 밟고 올라서야 이룰 수 있는 사막의 피라미드 같은 꿈이요 다른 이들의 것을 뺏어야 얻을 수 있는 제로섬 같은 꿈입니다. 갈수록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는 끊어지고 현실을 깨달은 많은 젊은이들은 이룰 수 있는 확률이 적은 꿈은 아예 포기하고 그냥 꿈이 없는 인생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인간답게 사는 것은 그런 꿈을 꾸며 사는 것이 아닙니다. 꿈은 자신이 꾸는 꿈, 야망이 있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꿈, 비전이 있습니다. 인간의 야망은 이뤄질 수도 있고 안 이뤄질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능력과 지혜가 많은 이라도 운이 따르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막으시면 이뤄질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꿈은 하나님과 함께 할 때 반드시 이뤄집니다. 왜냐면 하나님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입니다. 진정 인간답게 사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꿈을 꾸며 꿈을 이루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지으시고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축복하시며 꿈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죄를 지음으로 하나님을 떠났을 때 하나님이 주신 꿈은 서로를 파괴하는 도구로 변질되었습니다. 내가 생육하고 번성하고 정복하고 다스리기 위해 다른 이들을 파괴하고 착취합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결국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자신이 파괴되고 소실됐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올 때 하나님 안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주신 꿈이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택한 사람들에게 꿈을 주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자 하셨습니다. 어떤 이도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와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지으신 이유와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꿈을 통해 그 이유와 목적을 드러내시고자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꿈을 찾고 이루는 것은 우리의 인생의 의미를 찾고 목적을 이루는 것입니다.
요셉의 첫 번째 꿈은 요셉과 형제들이 밭에서 곡식 단을 묶었는데 요셉의 단은 일어서고 형제들의 단은 요셉 단을 둘러서서 절하는 꿈이었습니다. 그 꿈만 보면 요셉이 형들의 존경을 받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데 형들은 꿈 이야기를 듣고 요셉이 왕처럼 자신들을 다스리려고 한다며 분개하며 더욱 요셉을 미워했습니다. 사실 그 꿈만 보면 요셉이 농촌마을 이장이 되어 존경 받는 것인지 왕이 되어 존경 받는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몇 번 미움의 가시가 박힌 요셉은 형들에게 어떻게 해도 밉게 보였습니다. 그런데 다시 꾼 두 번째 꿈에서는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요셉에게 절하는 것입니다. 이 꿈은 형제들뿐 아니라 요셉의 부모도 요셉을 경배한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너무나 생생한 이 꿈을 가족들에게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형제들이 씩씩거리는 소리를 듣고 아버지 야곱은 요셉을 책망했습니다. “네가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그게 정말이냐?” 형제들의 분노에 요셉을 책망하면서도 야곱은 기쁘고 대견스러웠습니다. 그리고 그 꿈을 마음속에 간직하였습니다. 왜냐면 자신도 형의 분노를 피해 도망자가 되어 벧엘을 지날 때 꿈에서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꿈에서 본 사다리의 환상과 “너와 함께 하겠다”는 하나님의 음성이 아직도 귀에 생생했습니다. 요셉의 꿈은 지도자요 구원자가 된다는 꿈입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실지 모르지만 꿈처럼 요셉을 존귀하게 쓰실 것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형들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졌습니다. 형들은 요셉뿐 아니라 자신들도 하늘의 별처럼 높아지는 꿈이지만 요셉에게 경배한다는 사실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만약 형들이 세상의 시궁창에 떨어져도 요셉에게 경배를 받는 꿈을 꾼다면 그렇게 기분 나빠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전에 코스타리카 국민들의 행복지수는 세계최고였습니다. 하지만 선교사님의 말을 들어보면 최근 행복지수가 그렇게 높지 않다고 합니다. 왜냐면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보급되어 다른 사람들과 또 전 세계 사람들과 비교하기 때문입니다. 요셉에게 절한다는 꿈 이야기에 형들은 모두 이를 갈았고 특히 많은 사람들을 죽여 본 경험이 있는 레위와 시므온은 칼을 갈았습니다.
그런데 왜 요셉은 형들의 마음을 깨닫지 못하고 그렇게 눈치 없게 꿈 자랑을 한 것입니까? 너무 순진한 것입니까? 아니면 이기적이라서 또는 어리석어서 그런 것입니까? 요셉은 아이처럼 순수하고 정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너무나 생생한 꿈을 꾸었을 때, 감격가운데 말하지 않고 견딜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런 순수함만으로 부족합니다. 그는 비둘기처럼 순결했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뱀 같은 지혜도 필요했습니다. 꿈을 주신 하나님은 이제 꿈을 이루기 위해 요셉을 연단하시고자 했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마침내 때가 되었습니다. 야곱이 요셉에게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그의 형들이 세겜에서 양떼를 치고 있는데 형들과 양떼들이 잘 있는지 보고 오라고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세겜은 2년 전 디나가 추장에게 성폭력을 당했고 그에 격분해 레위와 시므온이 수많은 사람들을 죽인 곳입니다. 하지만 세겜은 야곱의 소유지인 좋은 목초지가 있는 곳으로 형제들이 양떼를 몰고 간 것입니다. 야곱은 왜지 모를 불안감 속에서 요셉에게 형들의 안부를 알아보기 위해 세겜으로 보냈습니다. 하지만 세겜은 요셉이 사는 헤브론에서 70km나 떨어진 곳이었고 얼마 전 꿈 이야기를 들은 형들의 분노를 깨달은 요셉은 가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즉시 순종했습니다. “내가 그리하겠나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명령이고 또 자신이 사랑하는 형들이 위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힘들게 세겜에 도착해보니 형들이 없었습니다. 순종해서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데 못 찾았으니 어쩔 수 없다 포기하고 돌아갈 수도 있었지만 요셉은 끝까지 형들을 찾고자 했습니다. 지나가는 어떤 사람에게 물어서 도단에 형들이 있다는 것을 듣고 다시 30km를 걸어 도단에 있는 형들에게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요셉을 맞은 것은 형들의 미소가 아니라 살기 어린 눈이었습니다. “꿈꾸는 자가 오는구나.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악한 짐승이 잡아먹었다 하자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다.”(19,20) 사단은 그들의 시기심과 분노를 타고 들어가 영혼을 지배해 노예로 만들었습니다. 그들의 살기 어린 영혼은 정말 끝을 봐야, 요셉의 피와 죽음을 봐야 그 분노가 잠잠해질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때 르우벤이 맏아들로서 그의 생명은 해치지 말자 호소하며 구덩이에 던져진 요셉을 구원할 때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얼마 전 르우벤이 빌하와 동침한 패륜적 사실을 알고 있는 형제들은, 특히 빌하의 아들들은 그의 말을 무시했습니다. 르우벤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한 무리의 이스마엘 장사꾼들이 애굽으로 가기 위해 그곳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계산적인 유다가 형제들에게 제안했습니다.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고 그에게 우리 손을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혈육이니라.”(27) 결국 요셉은 은 이십에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려 애굽으로 끌려갔습니다. 애굽에서 요셉은 다시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보디발에게 팔렸습니다.
형제들은 요셉의 대가로 받은 은 20을 기뻐하며 요셉의 옷을 찢어 피를 묻히고 아버지에게 주며 악한 짐승이 잡아먹었다 슬픈 연기를 했습니다. 야곱은 요셉의 피 묻은 채색 옷을 받아 들고 누구의 위로도 받을 수 없었습니다. 1년 전 사랑하는 라헬이 마지막 아들을 낳고 죽어 길에 묻은 후에도 믿음으로 슬픔을 이겨냈습니다. 하지만 요셉의 죽음소식에 애통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내가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 아들에게로 가리라” 그는 죽어서라도 아들에게 가고 싶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짧은 소설인 헤밍웨이의 6단어소설이 있습니다. For Sale, Babe shoes, never worn. (팝니다. 아기 신발. 신겨본 적은 없습니다.) 짧지만 이 소설엔 큰 슬픔의 이야기가 숨겨져 있습니다. 한 가난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아내가 힘들게 아이를 임신한 후 기쁨으로 아이에게 신길 신발을 샀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죽었습니다. 가난한 부부는 생계를 위해 한 번도 신겨 본적이 없는 신발을 팔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죽은 자식을 평생 슬퍼하는 부모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또 낳으면 되지 않은가? 하지만 부모가 되어 아이를 갖고 나서야 그 슬픔을 조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야곱에게 요셉은 단지 12명의 자식 중 하나가 아니라 자신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야곱은 그 후 22년 동안 요셉이 죽은 줄 알고 살았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사는 야곱과 요셉에게 그런 고통을 주셨습니까? 사실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사는 신자에게도 이렇게 이해할 수 없는 기막힌 환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왜 이런 환란이 임하는가? 이것은 세상과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원대한 섭리입니다. 우리는 설사 하나님께서 그 크신 뜻을 보여주신다 해도 다 깨달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깨닫지 못해도 지나간 후에 전체를 보고 나서야 그 뜻과 의미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야곱은 요셉이 죽었다고 생각한 22년 동안 깊은 슬픔에 빠졌지만 지금까지 자신을 인도하신 하나님을 바라봤습니다. 20년 동안 사기꾼 같은 장인 라반 밑에서 고난 받았지만 일생 사랑했던 라헬과 일생 함께 했던 레아를 만났고 결국 12아들을 얻었고 많은 물질도 얻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형이 두려워 끝까지 얍복강을 건널 수 없었지만 자신과 끝까지 씨름해주신 하나님의 도움으로 얍복강을 건너 형을 만나고 화해할 수 있었습니다. 인생가운데 많은 고난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놀라우신 섭리의 손길로 함께 하셨고 결국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셨습니다. 마지막 고난으로 사랑하는 라헬을 잃고 요셉까지 잃었지만 하나님의 더 큰 섭리를 믿고 인내했습니다. 자신의 지나온 인생이 한낱 꿈처럼 허무해 보였지만, 인내 속에서 하나님이 주신 꿈을 이루는 인생이었음을 깨닫게 됐습니다. 형을 피해 집에서 도망쳐 벧엘을 지날 때 꾼 꿈은 그의 일생을 인도했습니다. 땅에서 하늘로 이어지는 사다리가 서 있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창28:15a) 20여년의 긴 인내 동안 야곱은 사다리의 꿈처럼 자신의 인생길이 홀로 인생다리를(사다리) 건너 하나님께 가는 나그네 길임을 깨닫게 됐습니다. 그 길 가운데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사다리의 꿈처럼 하나님의 사자들이 이끌어 주심으로 결국 하나님께로 나갈 수 있음을 깨닫게 됐습니다. 야곱은 요셉을 잃은 22년 동안 진정한 이스라엘 12지파의 조상으로 빚어질 수 있었습니다. 요셉을 판 형들은 아버지의 길고도 깊은 슬픔을 보고 자신들의 죄를 깨닫게 됐습니다. 시기심과 욕심으로 동생을 판 자신들이 사단에게 영혼을 판자들임을 깨닫게 됐습니다. 20여 년 동안 죄를 깨닫고 회개하면서 그들은 조금씩 하나님께서 쓰실만한 자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럼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같이 순수한 요셉은 어떻게 이 고난을 이길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 꿈을 주셨습니다. 앞으로 시작되는 긴 세상밑바닥의 환란 동안 요셉은 하나님께서 두 번이나 주신 너무나 생생한 꿈을 통해 하나님께서 결국 꿈처럼 자신을 높여줄 것을 믿었습니다. 최후의 승리와 영광을 믿는다면 과정의 고통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죽음의 문턱까지 떨어지고 세상밑바닥까지 떨어지는데 어떻게 그것을 믿을 수 있습니까? 신자는 세상의 아무리 큰 환란 속에서도 그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봐야 합니다. 형제들은 광분하여 요셉을 죽이려 했지만 마침 맏아들로 이성을 찾은 르우벤의 만류로 지체되었습니다. 르우벤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요셉을 죽이려 했지만 마침(우연히) 이스마엘의 장사꾼이 지나감으로 죽음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또 애굽으로 팔려갔지만 우연히 애굽의 바로 왕의 측근 친위대장에게 팔려갔습니다. 요셉은 엄청난 인생의 고난 속에서도 우연히 일어나는 것 같은 이 작은 사건들을 통해 자신과 함께 하신 하나님의 손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면 문제는 해결됩니다. 세상의 환란이 아무리 크고 위험해도 그 속에서 조금이라도 하나님의 섭리를 볼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면 환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왜냐면 세상의 어둠이 아무리 커도 작은 빛만 있으면 결국 어둠을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아버지와의 이별의 슬픔과 형들의 배신의 고통 속에서 낯선 땅에 종으로 팔려감으로 바닥을 알 수 없는 인생고난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꿈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가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부족한 죄인에게도 꿈을 주셨습니다. 대학교 때 교통사고에서 기적적으로 깨어난 후 출애굽기 말씀공부를 하며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출19:6)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때 정상적인 인생을 살 수 있을지도 불확실한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나를 하나님 역사 가운데 ‘제사장 나라요 거룩한 백성’으로 써주시면 정말 감사할 것이라 소원하며 이 말씀을 제 인생의 꿈과 비전으로 붙들게 됐습니다. 하지만 그 후 학과공부와 건강문제가운데 오랫동안 연단 받으며 지금 나 살기도 힘든데 무슨 ‘제사장 나라요, 거룩한 백성’인가 와 닿지 않아 말씀과 무관하게 세상적 꿈을 좇아 살 때가 많았습니다. 항상 자기문제에만 매이고 수시로 세상쾌락의 유혹에 빠지곤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말씀 속에서 죄인과 함께 하셨고 제가 말씀을 붙들고 세상 죄와 구별되며 또 말씀을 전하는 목자로 살도록 도우셨습니다.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제가 평생 이 말씀을 붙들고 다른 이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제사장 나라요, 세상 죄와 구별됨으로 영향력을 끼치는 거룩한 백성으로 살도록 인도하심을 깨닫습니다. 이제 주일메시지연단도 끝났지만 제가 항상 말씀 속에서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제사장 나라요 거룩한 백성으로 열매 맺는 인생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는 문제 많은 야곱의 가정을 치유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해 요셉에게 꿈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꿈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현실에서는 혹독한 연단이 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주시는 꿈과 하나님이 주시는 연단을 통해 영적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도 하나님께서는 신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또 기도를 통해 꿈을 주십니다. 우리가 내 인생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꿈을 찾고 또 이뤄나가는 꿈꾸는 인생, 꿈을 이루는 인생을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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