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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10-27 (일) 18:04
분 류 로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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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로마서 제5강]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
2019년 로마서 제 5강          
말씀 / 로마서 3:21-31
요절 / 로마서 3:21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오늘 말씀은 ‘이제는’이라는 단어로 시작합니다. 영어성경에서는 ‘But now', '그러나 이제는’이라고 되어 있는데, 그것이 원문에 훨씬 충실한 번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 말씀은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새로운 전환이 시작된다는 말씀입니다. 1:18절에서 3:20절까지의 말씀은 겉모습에 포장된 인간의 어두운 영혼을 고발했습니다. 세계의 지배자 로마인들은 우상숭배와 마음의 정욕을 좇아 상실한 마음대로 살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런 로마인들을 짐승같은 놈들이라고 판단하였는데, 실상 유대인들도 이방인들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말씀은 아무도 피해갈 수 없는 불편하고도 무서운 진실이었습니다. 불편한 진실을 고발하는 말씀은 저나 여러분 모두에게 부담스럽습니다. 어떤 분은 표면적 유대인으로 사는 것만도 버거운데, 마음까지 회개하라는  말씀으로 들려 너무 어렵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부담스런 회개의 메시지에서 은혜로운 메시지로 전환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구약시대에서 신약시대로, 율법의 시대에서 은혜의 시대로, B.C에서 A.D로 바뀌는 위대한 전환을 이제 본문 말씀이 증거합니다.

2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율법 외에, 율법을 통하지 않는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습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들은 율법을 통해 의에 이르는 길을 제시합니다. 비교종교학자 안점식씨는 그의 저서 ‘세계관과 영적 전쟁’에서 기독교를 제외한 모든 종교들이(유대교를 포함하여) 신과의 교제, 혹은 신의 세계에 들어가는 길로써 율법을 제시한다고 했습니다. 모든 종교들은 ‘신의 은총을 받으려면 나름의 자격, 행위, 업적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불교는 번뇌를 끊는 해탈을 통해 열반의 세계로 들어가기를 요구합니다. 이슬람은 구원의 조건으로 먼저 라마단, 성지 순례를 제시합니다. 매년 성지순례로 몰려드는 사람들로 인해 수십에서 수백명이 죽는 사고가 발생하는데도 어찌하든지 라마단 행렬에 참여하는 이유입니다. 하루 5번씩 기도하고 세부규칙에 따른 선행과 구제를 해야 합니다. 율법으로 따지면 우리가 이슬람에게 자랑할 수 없습니다. 영적 파워가 144,000명안에 들어가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단종파들도 있습니다. 이전의 바울 또한 율법으로 의롭게 되고자 정통 유대인 코스를 철저히 밟았습니다. 그렇게 율법을 지켰는데도 안식과 평강을 얻지 못했습니다. 율법은 그의 탐심의 죄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어 절망하게 만들었습니다. ‘율법외에’ 이는 ‘율법을 통하지 않는’이라는 의미입니다. 율법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습니다.

2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차별이 없다’는 것은 오직 믿음만을 보신다는 것입니다. 1차 서류, 2차 면접, 3차 최저 등급으로 뽑는 대입전형처럼, 1차는 할례, 2차 율법, 3차 최종은 믿음, 이런 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할례를 받았든지, 받지 않았든지, 율법을 알든지 모르든지 아무 자격을 따지지 않고 오직 믿음만 보는 것입니다. 유대인들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고 이방인들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습니다. 가난한 사람도 믿음으로, 부자도 믿음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습니다. 감옥을 갔다 온 전과자도 믿음으로, 교통법규 하나 어기지 않은 모범시민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습니다.
‘차별이 없느니라’ 말씀에 어떤 이들은 은혜를 받구요 어떤 이들은 분노합니다. 마태복음 20장을 보면 포도원 일군을 뽑는 이야기 비유가 나옵니다. 원래 오전 6시부터 작업이 시작합니다. 그런데 포도원 주인이 길거리에 가보니 할 일없이 빈둥거리는 자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불쌍하여 오전 9시, 12시, 오후 3시, 오후5시, 4차례에 걸쳐 뽑아서 포도원에 들여보냈습니다. 오후 6시 일과시간이 종료되자, 오후 5시에 온 사람으로부터 시작하여 한 데나리온을 줍니다. 먼저 온 사람이 그것을 보면서 ‘와, 우리는 더 받겠네!’, 기대를 했는데, 늦게 온 사람이나 일찍 온 사람이나 차별 없이 한 데나리온씩 주는 것이었습니다. 먼저 왔던 사람들이 분노합니다. ‘어떻게 종일토록 수고한 우리를 한시간만 수고한 저들과 같이 대우할 수 있는가!’ 자기를 기준으로 하면 역차별당했다는 농부들의 원망이 맞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말씀합니다. “내가 선하므로 너희가 나를 악하게 보느냐”(마20:15) 주인은 한 데나리온 주겠다는 처음 약속을 어기지 않았습니다. 또한 주인 편에서 보면, 오전 9시에 온 일군이나 오후 5시에 온 일군 모두 자격미달이었는데, 하루 품삯을 주었으니, 차별 없이 은혜를 베푼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죄인입니다.(23) 자격을 따지면 아무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어떤 초등학생이 ‘7×8=?’이란 시험문제를 받았습니다. 10점짜리 문제였습니다. 답을 52라고 썼다가 0점 받자, 선생님에게 항의했습니다. ‘선생님. 쟤는 45라고 썼고, 저는 52라고 썼는데 왜 똑같이 0점을 받아야 하나요? 저는 56에서 4밖에 안틀렸고, 쟤는 11이나 틀렸으니 점수가 달라야지요!’ 그 초등학생처럼, 사람들은 자기 의를 주장합니다. 나는 저 사람보다 나으니, 그래도 괜찮다고 말합니다. ‘나는 저 사람보다 성실하게 살았습니다. 나는 저 사람보다 젠틀합니다. 나는 저 사람만큼 드러나게 나쁜 짓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보면, 하나님의 영광에서 빗나간 죄인입니다. ‘나는 저 사람보다 성실한 죄인입니다. 나는 저 사람보다 젠틀한 죄인입니다. 나는 저 사람처럼 드러나게 죄를 짓지 않은 죄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죄인들은 누구나 예외 없이 지옥에 던져져서 영원한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속량이라는 해법을 제시하십니다. 24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속량’이란 누군가 대신 값을 지불하고 풀어주는 것을 말합니다. 고대시대에는 많은 빚을 져서 갚을 수 없을 지경에 이르면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노예가 열심히 일하여 돈을 벌어도 다 주인의 것입니다. 한번 노예로 팔려 가면 스스로의 힘으로는 벗어날 수 없습니다. 레위기 25장을 보면, 하나님은 고엘이라는 제도를 두어 형제나 친척들이 값을 지불하고 풀어주도록 명령했습니다. 능력 있고 사랑 많은 형제나 친척을 둔 가문안에 있으면 속량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죄의 종된 자들을 해방시켜 주십니다. 예수님은 아무 흠이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누구든지 죄로부터 속량해줄 수 있는 분이십니다.
어떻게 속량하여 주십니까! 25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은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문장이 깁니다. 일단 화목제물로 삼으셨으니, 여기까지 한문장으로 보면 좋겠습니다. ‘화목제물’이란 말 그대로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해 드린 속죄제물입니다. 죄를 지은 인간이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피가 요구됩니다. 레위기 11:17절은 말씀합니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죄값을 치루려면 생명을 내놓아야 합니다. 생명을 내어놓는 피 흘림이 없으면 죄사함도 없습니다.(히9;22절) 구약시대 하나님은 양이나 소를 잡아 그 피를 뿌림으로써 인간의 죄 값을 대신 치루고 하나님과 화목하도록 했습니다. 짐승의 피는 그 효력이 일시적이어서 매번 또 다른 짐승의 피를 뿌려야 했습니다. 이는 장차 그리스도의 피를 뿌림으로써 완전한 화목을 이루시는 구원역사의 예고편이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그리스도가 하실 일을 예언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53:5,6) 하나님의 수많은 약속대로, 때가 되자 독생자 예수님이 화목제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세례 요한은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보자마자 처음부터 외쳤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1:29) 예수님은 병자들을 돌보고 수많은 기적을 행하며 백성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습니다. 얼마든지 예루살렘에 진군하여 왕의 자리를 노릴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영광의 길이 아닌 십자가 죽음의 길을 가셨습니다. 한밤중에 체포당하여 억울하게 반역자의 누명을 쓰게 되었는데도 자신을 변호하지 않으셨습니다. 군병들의 무지막지한 채찍에 맞았습니다. 가시면류관을 쓰고 조롱과 수치를 받으며 골고다를 오르셨습니다. 굵은 대못에 양 손과 발목을 꿰뚫려 십자가에 박혔습니다. 벌거벗은 몸으로 높이 달려 사람들의 저주거리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향해 힘없고 무능한 자라며 비웃고 조롱했습니다.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화목제물이 되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극심한 고통가운데에서도 자신을 비웃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우리의 속량은 은이나 금처럼 세상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입니다.(벧전 1:18,19)

예수님의 피는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죄인들을 숨겨줍니다. 출애굽기를 보면 애굽의 장자들을 심판하기 위해 하나님의 사자가 내려옵니다. 그때 하나님은 문지방 좌우편에 어린 양의 피를 바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 피를 보고 그 집을 못본 것처럼 빠뜨리고 넘어가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못본 것처럼 빠뜨리는 것, 그것이 간과입니다. 하나님이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의 과거, 우리 마음 깊은 곳을 훑어 내려가신다면, 우리가운데 온전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우리의 입술을 통해 나갔던 말들, 우리의 눈과 귀가 좇아 다녔던 행적들, 우리의 손과 발이 움직였던 기록들을 하나하나 들여다 보신다면, 우리가운데 누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겠습니까!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낱낱이 정죄당하고 지옥으로 던져져야 합니다. 인간의 역사는 죄로 시작하여 심판으로 끝나는 비극이 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사역도 실패로 끝나고 맙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의 피를 믿는 믿음을 보시고 전에 지은 모든 죄를 간과하십니다. 더러운 정욕의 죄를 간과하시고 가시 같은 시기심과 교만과 미움의 죄를 간과하십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죄, 입술로 독을 뿜어내는 죄를 간과하십니다. 주홍같이 붉은 죄를 간과하시고 눈보다 순결한 하나님의 자녀로 영접하여 주십니다.

26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을 통한 속량은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증거합니다. 십자가의 고통이 얼마나 끔찍합니까! 그 분의 당하신 죽음은 우리의 죄가 얼마나 끔찍하며, 그런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보여줍니다. 또한 십자가에서 끝내 내려오지 않으시고 목숨을 내어주신 예수님은 죄인들을 향한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을 통한 속량은 하나님의 지혜와 경륜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이 얼마나 크고 놀라우신 분이신가!’를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귀는 선악과로 아담을 유혹하는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의로우심에 대해 끊임없이 물음표를 던졌습니다. 심각한 현실문제를 들이대며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언제까지 신뢰할 수 있느냐며 의심과 불신의 화살을 쏩니다. 그러나 화목제물이신 예수님을 통해 태양처럼 빛나는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볼 수 있습니다. 이토록 공의로우신 분이 어디에 있습니까! 이토록 완전한 사랑이 어디에 있습니까! 의로우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경배하고 찬양하기를 기도합니다.

그 믿음이 우리 또한 의롭게 합니다. 우리의 모든 허물과 약점을 덮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하십니다. ‘기독교는 do의 종교가 아니라 done의 종교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내가 무엇을 하는가!’, ‘결과, 업적’에 민감합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주목해야할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하신 것,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3장에서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기도했습니다.(엡3:18,19) 그리스도의 사랑을 아는 것이 충만케 되는 통로입니다.
어떻게 좀 더 깊고 넓게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갈 수 있을까요! ‘과거에는 감사가 충만하였는데, 지금은 무덤덤해지고 있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축복을 적게 받아서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신앙의 연수가 적어서 그런 것도 아닙니다. 마치 좋은 집에서 좋은 밥과 좋은 옷을 입고 살면서도 부모에 대한 감사가 점점 줄어 들어가는 자녀들이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신 최고의 은혜가 마음의 중심에서 멀어진 것입니다. 대신 현실문제, 사람문제, 장래문제가 마음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은혜는 물에 새기고 원수는 돌에 새기는 것이 사람의 본성입니다. 말씀과 기도생활을 통해 구원의 은혜를 매순간 기억해야만 원망을 물리치고 관계성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부모의 사랑에 무덤덤하던 사람이 자식을 낳고 키우면서 부모의 사랑에 눈을 뜨는 이유입니다. ‘아, 그때 그 모습이 사랑이었구나! 나를 향한 부모님의 마음이 이런 것이었겠구나!’ 사랑하지 않으면 사랑을 알기 어렵습니다. 목자생활도 그러합니다. 누군가를 위해 희생했는데,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어 보일 때가 있습니다. 오히려 부족하다, 상처받았다고 공격을 받기도 합니다. 그런 일들을 만나면 누군가를 다시 섬기는 것이 싫어집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가 예수님의 십자가와 연결될 수 있는 때입니다. 뼈아픈 희생과 고통이 십자가의 예수님과 연결되면, 나를 향한 하나님의 깊은 사랑에 눈을 뜨는 통로가 됩니다.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는 욥의 고백처럼, 차원 높은 하나님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건강한 신자의 비결은 축복과 고난이 반복되는 신앙의 여정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좋은 음식을 꾸준히 먹어야 몸이 튼튼해지듯이, 우리 영혼은 부지런히 사랑을 먹어야 강건해집니다. 아이가 온전한 청년으로 자라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성적입니까? 돈입니까? 좋은 직장입니까? 그런 것들이 있으면 도움이 되겠지요. 그런데 그런 것들이 다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니 내가 사랑받고 있음을 확신할 수 없으면, 병든 청년이 되어 버립니다. 아이가 변함없이 사랑받고 있음을 확인해가면서 아름다운 청년으로 성장합니다. 어떤 고난이 와도 견디고 넘어설 수 있는 에너지를 가집니다. 우리들도 그러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허물, 우리의 실패와 상관없이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처음 그렇게 사랑하신 것처럼 끝까지 그렇게 사랑하십니다.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세우사 우리를 속량하신 것이 그를 증거합니다. 그 믿음위에 굳게 선 자들이 죄를 이기고 고난을 이기고 세상을 이깁니다. 그러므로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고 자랑해야 합니다.  

27절을 보십시오. 법으로 따지면, 행위로 따진다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아무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사랑을 기대할 수도, 요구할 수도 없는 죄인입니다. 그럴지라도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라고 감히 자랑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최고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우리 믿음의 기초입니다. 아니, 우리 믿음의 전부입니다.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을 우리가 압니다.(28) 하나님은 유대인들만의 하나님이 아닙니다.(29) 개념 없이 살아가는 이방인들의 하나님도 되십니다. 할례자도 믿음을 보시고 구원하시고 무할례자도 믿음을 보시고 구원하십니다.(30) 믿음 하나만을 보시고 의롭다 하심으로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의로우심은 참으로 크고 놀라습니다. 크신 하나님, 높고 위대하신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주장할 수 있습니까! 할례받은 신자라면 ‘나는 할례까지 받은 자’라는 자기의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무할례자 신자라면 ‘나같이 기초 없는 자도 기뻐하실까?’라는 자기 불의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다만 의로우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감사하고 사랑하고 순종하면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믿음이 처음이요 끝입니다. 신앙의 연수를 더할수록 사랑을 믿는 믿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죄인이지만 우리를 여전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전히 엉터리 목자인대도 여전히 목자로 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정말 고마우신 하나님이십니다. 차별 없이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 각 사람이 하나님 자녀의 모든 복을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죄로 병든 영혼들을 도울 수 있는 사람들로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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