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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11-10 (일) 12:19
분 류 로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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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로마서 제7강]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의 복

2019년 로마서 제7강    

 말씀 / 로마서 5:1-21
 요절 / 로마서 5:1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의 복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어제 안세권 음악회, ‘falling in love'가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았는데, 안세권 목자의 마지막 멘트가 마음에 남았습니다. “노래하는 사람에게는 박수가 필요하다” 음악회를 준비하며 져야만 했던 무거운 짐들이 열렬한 박수와 함께 녹아내리고 또다시 그 무거운 짐을 질 수 있는 에너지를 얻게 합니다.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무엇이 필요할까” 생각해 봅니다. 무엇이 있어야 환난과 십자가가 끊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화평과 소망입니다. 화평을 누리고 하나님의 영광에 들어갈 소망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 구원받은 자들이 누리는 축복을 생각해봄으로 화평을 누리고 소망을 붙들며 살기를 기도합니다.  

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화평을 누리자’, ‘누리자’ 이는 이미 이루어진 것을 즐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죄의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적대 관계에서 화평의 관계로 신분상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의 목자가 되고, 우리의 상담자, 우리의 의사, 우리의 지휘자가 되십니다. ‘누리자’, 이는 실제 생활에 적용해보자는 것입니다.
화평의 관계를 맺은 것과 화평을 누리는 것은 별개일 수 있습니다. 링컨대통령이 노예해방을 선언했을 때, 흑인들이 자유를 어떻게 누려야 할지 몰라 방황했습니다. 예를 들면 소변이 마려울 때마다 주변의 백인들을 찾아 ‘Sir, can I piss? 화장실 가도 되나요?’ 물었다고 합니다. 백인 주인의 허락을 받아야만 화장실에 갔다 왔던 옛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입니다. 창세기의 요셉은 형들을 용서하며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습니다. 나를 이리로 보낸 것은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십니다.”(창45:7,8) 형들과 형들의 자녀를 기근으로부터 보호하고 17년 동안 애굽에서 풍성하게 살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야곱이 죽자, 요셉의 형들은 요셉에게 달려가서 간청합니다. ‘아버지가 복수하지 말라고 유언하셨어요. 총리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제발 죽이지 말고 종으로 삼아주소서!’ 요셉은 그런 형들을 보며 마음 아파 눈물을 흘립니다.(창50:15-18) 동생은 형들을 용서하고 화평을 누리고 있는데, 형들은 동생의 사랑을 믿지 못하고 화평을 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화평을 누리는 것은 하나님의 용서받은 자로써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부정적인 생각이나 율법적인 사고방식을 고집해왔다면, 이제부터는 긍정의 마인드를 갖고 은혜의 관점에 서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어떤 좋은 것을 주실까!’ 기대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랑하기에 힘쓰는 것입니다.
화평을 누리고 있는 부모와 자녀사이에는 몇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말이 많습니다. 미주알 고주알, 힘든 이야기, 좋았던 이야기, 기회만 주어지면 거의 무삭제 원판으로 말하고 듣습니다. 둘째는 뒷끝이 없습니다. 잡아먹을 듯이 불꽃 튀는 싸움을 했다가도 몇시간 혹은 길어야 하루만 지나면 쓱 하고 나타나 ‘뭐 맛있는 거 없어?’ 손을 벌립니다. 그러면 요리를 해줍니다. 한번 치고받고 나면 일주일, 혹은 한 달씩 조용한 가족으로 살고 있다면, 혹은 그렇게 될까봐 서로 눈치보고 살고 있다면, 깊이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셋째는 일방통행이 아닌 쌍방향으로 사랑의 손길이 오갑니다. 부모라고 해서 당연히 주장하지 않으며, 자녀라고 해서 당연히 받는 것으로 알지 않습니다. 서로를 향해 필요한 때에 포인트있게 존경과 사랑을 표현합니다.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생활도 그와 비슷하다 생각합니다. 화평을 누리는 사람은 하나님을 향해 말이 많습니다. 기쁠 때에는 감사의 고백, 찬양의 말이 많습니다. 힘들 때에는 목이 매이도록 기도합니다. 이 사람, 저 사람 눈치 보지 아니하고 나의 하나님을 향해 입을 엽니다. 죄도 고백하고 상처도 고백하고 힘든 이야기 털어놓습니다. 어제까지 원망했다가도 오늘 말씀 받고 돌이켜서 긍정의 말을 하고 희망을 향해 나아갑니다. 하나님이 나같은 자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누군가를 섬겨봅니다. 작은 희생이라는 것을 통해 십자가의 고난에 동참해봅니다. 그를 통해 십자가는 내가 망가지고 부서지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얻는 통로임을 체험하며 주님의 위대하심을 발견합니다. 그렇게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깊어져가는 것이 화평을 누리는 것입니다.

화평을 누리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축복을 2절이 말씀합니다.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여기서 ‘은혜’는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것을 상징합니다. 구약시대 하나님과의 대면은 지성소에서만 이루어졌습니다. 일년에 한번 대제사장이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대제사장도 혹시나 죽임을 당할지 몰라 몸에 딸랑딸랑 종을 달고 발에 끈을 묶고 들어갑니다. 만약 한참을 지나도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죽었구나!’ 알고 끈을 당겨서 죽은 제사장을 끌어내었습니다. 죄악된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그리도 무서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성소의 휘장이 찢어지고 언제든지 하나님앞에 나아갈 수 있는 은혜를 얻었습니다. 언제든지 청와대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라면 엄청난 특혜를 입은 사람입니다. 그와 같이 우리가 언제든지 하나님께 기도하여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승리가 보장된 인생을 살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화평을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믿는 자들이 누리는 또다른 축복은 소망입니다. 3,4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소망을 이루는 줄을 앎이로다” 인생은 환난의 연속입니다. 겉으로 평안한 얼굴을 하고 있는데, 조금만 들어가 보면 저마다 아픔과 시련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떤 환난들은 살고 싶은 소망까지 끊어지게 만들기도 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사회적 불이익과 공권력의 박해를 받았고 심하면 순교까지 당했습니다. 환난은 우리 몸과 마음에 데미지를 남깁니다.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분노, 침묵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자연스럽게 찾아옵니다. 무력한 자신에 대한 실망과 정죄감으로 소화장애나 불면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할 수 있는 이유를 가집니다. 환난의 결국은 고통과 실패가 아니며, 환난은 인내로, 인내는 연단으로, 연단은 소망으로 이어질 줄을 알기 때문입니다.

인내는 그저 시간만 죽이며 버티는 정도가 아닙니다. 마음이 아프고 몸이 지친 가운데에도 지금 서 있어야 할 자리에 서서 묵묵히 견디는 것입니다. 감정대로 내뱉고 본성대로 질러버리고 다 엎어버리고 싶은 욕망을 부인하고 삶의 십자가, 사명의 십자가를 수행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견디고 참아내는 힘이 인내입니다. 특별한 능력이 없어서 불행한 삶을 사는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특별한 능력과 특별한 축복을 받았음에도 인내하지 못하여 굴러온 축복을 걷어차 버리고 부끄러운 인생으로 전락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반면 환난의 때를 인내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반드시 좋은 것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천년을 하루같이 인내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의 멸시와 죽음의 고통까지 인내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기적같은 한 번의 능력으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기보다 은혜와 고난과 죽음과 부활이라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내기를 기뻐하십니다. 인내는 하나님을 만나고 그의 나라, 그의 축복에 들어가는 통로입니다.  
환난이 왔다는 것은 인내를 배워야 할 때가 다가왔다는 메시지입니다. 인내를 잘하는 체질은 아무도 없으며 매순간 새롭게 배워야합니다. 하나님은 환난의 현장에 서 계십니다. 더 이상 견디기 힘들 때, 어둠으로 빨려들지 않도록 때마다 손을 붙들어주시고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워주십니다.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을 주지 않으며, 감당할 수 없으면 새 길을 내십니다. 그러므로 고통이 너무 크다며 원망과 불신에 빨려들 것이 아니라 기도의 입을 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새 일을 행하실 때까지 회개할 것 회개하고 결단할 것 결단하며 겸손히 기다려야 합니다. 그렇게 인내의 터널을 걸어가면 언제부터인가 이전과 다른 세계에 서 있음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전에 견딜 수 없었던 아픔을 능히 견디는 강인함을 가지게 됩니다. 이전에 던져버린 십자가를 가볍게 지는 능력을 얻습니다. 그렇게 인내는 연단으로 이어집니다.

연단은 ‘시험을 통과하여 인정을 받는 성품’, ‘불순물이 빠져나간 성숙한 인격’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피로 거듭난 것은 신분이 바뀐 것이지, 인격이 달라진 것은 아닙니다. 혈기 많고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았다고 해서 단번에 성자로 점프하는 것이 아니라 혈기 많고 자기중심적인 크리스찬이 되는 것입니다. 구원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하나님은 어린 아이 같은 우리의 인격을 연단하십니다. 불신자들보다 조금 나은 정도의 인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연단하십니다.(엡4:13) 자기만 생각하던 속 좁은 내면을 하나님과 이웃을 생각하는 왕같은 제사장으로 연단하십니다. 욕심과 교만과 정욕으로 울퉁불퉁한 사람을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같은 9가지 성령의 열매를 맺도록 연단하십니다.(갈5:22)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행복은 지갑순도 아닙니다. 행복은 인격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연단하사 하나님 자녀의 모든 복을 누리게 하십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부끄러운 구원이 아니라 영광스런 하나님의 자녀로 설 수 있도록 연단하십니다. 하나님은 축복과 환난, 빛과 어둠의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답게 성숙해지도록 연단하십니다. 이 한가지 목적으로 우리를 이끌어 가십니다. 우리 각 사람이 하나님의 손길을 믿고 인내하며 연단받기를 기도합니다.

그렇게 연단받은 사람은 소망이 이루어질 것을 압니다. 소망을 이룬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에 들어가서 주님과 함께 왕노릇하게 될 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치열한 경쟁에서 낙오하지 않는 것을 인생의 전부로 알고 살도록 압박해옵니다. 현실에 취해 살아가는 사람은 소망의 가치를 모릅니다. 대학에 들어가고 취업하고 결혼하고 직장생활 오래하며 지금 생존하는 그것을 지상 최대의 인생목표로 삼습니다. 그렇게 젊음과 시간과 모든 열정을 다 소비해버리고 나면, 솔로몬이 전도서에서 고백했던 것처럼 헛되고 헛되며 헛된 인생이 되어버립니다. 현재의 고난은 아무리 클지라도 장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습니다.(롬8;1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세계는 영원하며 그 영광 또한 세세무궁토록 있습니다. 하나님은 환난을 통해 세상에 코박고 살기 쉬운 우리들을 깨우십니다. 인내와 연단의 과정을 거쳐 참된 소망을 향하여 가도록 이끌어 가십니다. 소망이 희미한 것은 환난의 날에 인내하지 않고 하나님의 연단으로 훈련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참된 소망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안에서 최고의 복을 얻은 사람입니다. 히브리서 6:19절 말씀은 소망을 영혼의 닻으로 비유했습니다. 세상 풍조는 거센 파도처럼 끊임없이 우리 영혼에 부딪혀 옵니다. 소망이 없으면 아무리 은혜 충만했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떠내려 갈 수 밖에 없습니다. 구원의 은혜를 놓쳐버리고 부르심마저 희미해져서 저 멀리 이상한 곳으로 떠밀려갑니다. 영광의 소망은 거짓되고 헛된 것을 걸러내며 종신토록 두려움 없이 성결과 의로 하나님을 섬기게 합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환난을 주지만, 하나님은 환난을 통해 인내를 배우며 연단하시며 소망을 붙들고 살아가게 하십니다. 크신 하나님, 섭리의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그런데 우리가 영광에 들어갈 소망을 붙들고 살았는데, 천국 문 앞에서 거절당하면 어떻게 됩니까! ‘최베드로, 넌 안되겠어, 너 그때 참지 못하고 혈기 부렸잖아!, 너 때문에 상처받고 힘들었다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야!!’ 이런 식으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5) 우리가 잘나서가 아닙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빈약한 몸뚱아리에 명품을 걸치면 폼나는 인간으로 세워지는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모든 허물과 죄악을 덮고 하나님의 영광에 들어갈 사람으로 세워주십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합니까! 우리가 연약할 때에 이미 약속하신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들을 위해 죽으셨습니다.(6) ‘연약할 때’란 죄에 대해서, 세상 유혹에 대해서, 자기 본성에 대해서 변변히 저항하지 못하고 끌려가는 상태를 말합니다. 연약한 자들은 처음에는 동정심을 유발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정죄하는 마음을 갖게 합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그렇게 살거야, 너는 왜 그 모양이야’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연약한 우리, 경건하지 않은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인간의 사랑은 사랑할만한 사람이냐, 그렇지 않느냐가 중요합니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있습니다.(7)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습니다.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 간이라도 빼어주는 아내가 있고, 아픈 아들을 살려보려고 건강을 해치며 뛰어다니는 아빠도 있습니다. 사랑할만한 대상이라면 가장 소중한 것을 내어놓아서라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간혹 그런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대부분은 사랑할만한 대상임에도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랑받을만한 대상이 아님에도 최고로 사랑하십니다. 8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 우리가 사랑받을 만한 구석이 전혀 없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조롱하고 멸시하는 자들을 향하여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자기를 욕하고 대적하고 비웃는 원수들을 위해 죽으심으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로 변할 수 없음을 확증하셨습니다. 원수를 껴안는 사랑이라면, 거지가 되어 돌아오는 탕자를 맞이하는 아버지의 사랑이라면, 사랑받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원수같이 살던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원수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원수였을 때에도 우리를 사랑하여 구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자녀가 된 지금에는 더더욱 모든 진노하심에서 구원하여 당신의 영광의 세계에 들어가게 하실 것입니다.
세상에는 근본적으로 평안이 없습니다. 변화는 심하고 경쟁은 치열하고 함께 할 사람이 없는 고독한 세계입니다. 우울증 환자가 많아지고 신경안정제를 복용해야만 마음의 평화를 얻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우리라고 해서 예외가 아닙니다. 세상은 각박해지고 사명은 어려워지고 나이는 먹고 체력은 떨어지고 져야 할 십자가는 점점 무거워집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평안을 얻고 승리에 대한 확신을 얻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에게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원수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와 화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제 자녀된 우리를 위해 그의 아들의 부활로 말미암아 영광의 세계로 인도하실 것입니다.(10) 그러므로 ‘혹시 정죄받지 않을까? 혹시 버림받지 않을까? 혹시 심판받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은 우주 저편으로 던져버려야 합니다. 1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말씀으로 즐거워하고 기도로 즐거워하고 찬양으로 즐거워해야 겠습니다. 양들을 먹이며 즐거워하고 동역자들로 인해 즐거워하며 섬기는 종으로 즐거워합시다. 항상 기뻐하며 쉬지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야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아담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게 되었습니다. 죄는 시내산에서 율법 받기 전부터 세상에 있었습니다.(13) 다만 율법을 받기 전에는 죄를 죄로 심각하게 느끼지 못했을 뿐이었습니다. 사망은 율법을 받기 전부터 아담의 죄와 동일한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에게도 왕노릇했습니다. 이는 아담의 죄가 미치는 영향력을 보여줍니다.(14) 아담의 영향력은 두 번째 아담으로 오실 예수님의 모형입니다. 한 사람 아담의 영향력이 온 인류에 미친 것처럼,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영향력이 온 인류에 미칩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아담의 범죄로 많은 사람이 죽음에 이르게 된 것 같이 한 분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치게 되었습니다. 이 선물은 죄인들을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16)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와 왕 노릇한 것처럼,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안에서 왕노릇합니다.(17) 아담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생명에 이르게 되었습니다.(18) 장차에도 그러합니다.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된 것처럼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될 것입니다.(19) 빛과 어둠처럼 아담과 예수 그리스도가 대조되어 있습니다. 어디에 속하느냐, 영역이 중요함을 가르쳐줍니다. 사람의 의지와 능력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영역입니다. 북한에 있느냐, 대한민국에 있느냐에 따라 인생의 그림이 달라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화평을 누리고 소망을 갖는 것은 ‘어디에 거하느냐’ 세력 싸움입니다. 본성이 흐르는 대로, 현실의 계산에 자신을 맡겨버리면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자녀들을 사랑하시고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 거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화평을 누리고 환난을 통해 인내와 연단을 거쳐 참된 소망으로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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