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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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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3-18 (일) 12:42
분 류 마가복음
첨부#1 2018년_마가복음2강-1(오정훈).hwp (64KB) (Down: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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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마가복음 제2강]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2018년 마가복음 제2강                                                 오정훈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말씀/마가복음 1:14-28
요절/마가복음 1: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요즘 사람을 낚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별 내용도 없는 인터넷 기사를 올려 사람을 낚는가 하면 보이스 피싱으로 사람을 낚는 자들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거짓 이단사상으로 사람들의 영혼을 낚으려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다 가짜요 이리 같은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거짓 낚시꾼들이 많은 세상에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진짜 사람 낚는 어부들을 부르십니다. 이 시간 우리에게도 이 부르심의 은혜가 임하여 우리의 인생이 위대한 사명인의 삶으로 새 출발하게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1.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14-20)
  14절을 보십시오.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요한이 잡힌 후’라는 말씀은 그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 잘 나타내주는 말씀입니다. 당시 갈릴리 지역을 다스리던 사람은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였는데 그는 매우 간사하고 음란한 자였습니다. 그는 이복동생 빌립의 아내를 탐내어 본처와 이혼하고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를 빼앗아 결혼하는 악을 저질렀습니다. 미투 운동이라도 일어나 그의 죄악이 더 드러나야 할 판인데 헤롯은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막6:18)’ 책망하는 요한을 옥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의인의 말이 먹혀들어가고 존경받아야 할 세상에서 악인이 득세하니 의인들은 숨어버리고 진리는 땅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영적 무력감에 빠져 진리고 뭐고 다 필요 없고 돈과 권력이 최고다 생각하였습니다. 또 한편에서는 불의하고 음란한 지도자에 분노하여 헤롯 궁으로 몰려가 ‘의인 요한을 석방하라’, ‘조강지처를 버린 헤롯은 회개하라’ 시위하기 쉬웠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시대에 불의에 시대에 무엇을 하셨습니까? 헤롯과 맞서 싸우지 않으시고 갈릴리로 가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시므로 그 시대를 섬기고자 하셨습니다. 여기서 그냥 복음이라 하지 않고 하나님의 복음이라 한 것은 당시 세상에서 사용되던 복음이라 하는 것과 구분하기 위함입니다. 당시 로마세계에서는 로마황제가 탄생하거나 등극하면 복음이라고 하였고 유대세계에서는 전쟁에서의 승리를 복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새 황제가 태어난다고 나에 삶에 무슨 일이 생기거나 바뀌는 것도 아닙니다. 그 나물에 그 밥이어서 나랑 아무관계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복음은 다릅니다. 하나님의 복음은 죄로 인해 멸망 받을 인생들을 영원한 심판에서 구원하여 주는 구원의 복음, 영생의 복음입니다. 요즘 미투 운동으로 교수 성직자 정치인 연예인 등 유명인사들이 낙마하는 것을 보며 죄가 얼마나 무섭고 끈질기게 달라붙어 한 사람을 파멸시키는가 보게 됩니다. 진작 회개했더라면 저렇게까지는 되지는 않았을 것인데 한번 죄의 노예가 되니 인생이 파멸에 이르기까지 빠져 나올 수 없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복음은 이렇게 우리를 파괴시키는 무서운 죄로부터 구원하여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는 구원의 복음입니다. 예수님이 보실 때 헤롯 뿐 아니라 그 시대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이 하나님의 복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요한이 잡혀갔지만 예수님은 오히려 갈릴리로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15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때가 찼다’는 말씀은 ‘때가 되었다’, ‘새 시대가 왔다’는 뜻으로 ‘하나님의 약속하신 때가 왔다’는 뜻입니다. 의인 요한이 잡혀 가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힘 있는 자가 다 해먹는 암울한 시대가 왔다, 그래서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예수님은 그 암울함 속에서 드디어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 복음이 빛을 발할 때가 왔다고 보셨습니다. 이런 관점의 차이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사람들은 현재가 너무 어둡고 힘들면 이 어려운 시기가 좀 지나가고 나서야 뭔가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처럼 자녀 양육 부모봉양으로 힘든 시대에 60대가 되어야 인생의 황금기가 온다고 말합니다. 애들 다 키워놓고 부모 봉양의 수고를 내려놓을 때쯤이 되어야 뭔가를 할 수 있는 때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장 어둡고 절망적인 시대에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다고 선포하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일하실 때가 곧 희망의 때요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는 그 어느 시대보다 어둡고 절망적인 시대입니다. 사람들은 7080때처럼 그렇게 소원이 있고 진지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의 신(神)인 스마트폰이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아 하나님 말씀에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제가 신입생 때 여름수양회에 치대 1학년만 15명 정도 참석했었는데 그런 시대와 비교해보면 정말 좋은 시절 다 간 것 같습니다. 한 사람 초청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그러나 시대가 어렵고 힘들수록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을 믿고 더 열심히 기도하고 도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위기를 기회로 보고 절망에서 희망을 찾고 도전하는 사람과 함께 하십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기 때문에 지금 바로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야 합니다. 세상이 어둡고 힘들수록 복음을 믿어야 합니다. 회개한다는 것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거기서 돌이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기 중심, 세상 중심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원의 길 하나님 나라는 회개하고 돌이키는데 있습니다. 돌이키는 것은 속사람을 바꾸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염색을 해서 머리색을 바꿀 것이 아니라 머릿속을 바꾸어야 합니다. 자기를 바꾸지 않고 회개하지 않으면 아무리 겉을 바꾸고 꾸며도 하나님 나라가 임하지 않습니다. 봄을 맞아 우리가 옷단장 머리단장 집단장만 하지 말고 우리 자신을 바꾸고 회개하므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하나님의 다스림 받는 봄학기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16-20절 사이에서 예수님이 첫 번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어떤 자를 제자로 부르십니까? 예수님은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셨습니다. 19절에서는 야고보와 요한이 배에서 그물 깁고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들은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무래도 놀고 있는 사람보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보기가 좋습니다. 그들이 이처럼 바다에서 그물을 던지며 고기 잡는 모습은 어떻습니까? 낭만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그러나 뭐든지 취미로 하면 재미있지만 그것이 먹고 사는 일이 되면 피곤해지게 됩니다. 고기를 많이 잡아 만선이라도 하는 날에는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이 기쁘지만 밤이 맞도록 수고해도 한 마리도 잡지 못하면 낭패와 실의에 빠져 나라 잃은 슬픔을 맛보게 되고 맙니다. 물고기에 울고 웃는 인생이요, 다행히 자기만의 노하우가 생겨 갈릴리 어촌계를 평정한다 해도 그저 그렇게 먹고 살다가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허무한 인생일 뿐입니다. 이는 단지 고기 잡는 어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잘 먹고 잘사는 것이 목적이 된 우리 인생들 모두의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먹고 살기 위해 평생 아등바등하다가 허무하게 사라질 인생들을 구원하시고 생명을 살리는 일에 쓰고자 친히 사람 낚는 어부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일하고 있지만 생활에 대한 염려와 허무의 바다에 헛되이 그물만 던지고 있는 그들을 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이 말씀은 물고기를 좇는 삶에서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 예수님을 본받는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생활인의 삶에서 사명인의 삶으로의 위대한 부르심을 의미합니다. 이제까지 그들은 물고기 좇는 삶을 살았습니다. 언제 어디에서 고기가 많이 잡히는지 훤히 알만큼 바다에서 잔뼈가 굵어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예수님을 따르게 됩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어떤 삶을 사시는지 그 인격과 삶을 본받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렇게 할 때 예수님께서 친히 그들을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사람 낚는 어부의 삶은 죄악의 바다, 허무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 인생을 복음진리로 건져서 구원하고 하나님이 쓰실 만한 사람으로 키워서 드리는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타이타닉 호에 탑승했던 한 목사님의 일화가 이런 삶이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영국에서 출항한 타이타닉 호는 1912년 4월 14일 밤 11시 50분 경 봄철이 되어 녹은 북극의 큰 빙하 하나에 부딪히고 말았습니다. 2,229명 중 1,528명의 사람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 중에 존 히퍼 목사님은 런던에서 미국의 시카고 부흥집회를 인도하러 가던 중이었습니다. 그는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 먼저 구명정에 타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는 파도에 휩쓸려 죽어가면서도 한 젊은이에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으라고 소리쳤습니다. 젊은이는 안 믿는다고 하였습니다. 목사님은 파도에 휩쓸렸다 잠깐 다시 떠올랐을 때 그 젊은이에게 예수님을 믿느냐고 물었습니다. 젊은이는 ‘아니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얼마 안 있다 존 히퍼 목사님은 돌아가셨습니다. 그 후 구사일생하게 된 그 젊은이는 회개하고 마침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구원받은 젊은이가 타이타닉 기념행사에서 이 간증을 해서 존 히퍼 목사님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존 히퍼 목사님과 같이 한 사람을 살리는 것에 목숨을 거는 그 사람이 사람을 낚는 어부의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세상에 의원이 귀한 것은 죽어가는 자를 살리기 때문이듯이 사람 낚는 어부의 삶이 가치 있고 아름다운 것은 죄로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는 일을 감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니엘서12장 3b절은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부르심에 즉시 순종하여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가시는 희생과 고난 십자가의 길을 따르지 못해 실패하고 말았지만 다시 일어나 끝까지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그랬을 때 소심하고 두려움 많은 복음서의 제자에서 담대하고 자립적인 사도행전의 사도들이 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부르실 때 결단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따라가느냐 가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좀 어렵고 힘들어도 예수님을 따라가기만 하면 예수님은 우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어 주십니다.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이는 예수님의 강한 의지요 주께서 이루시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예수님은 이 위대한 사명을 위해 지극히 평범한 갈릴리 어부들을 부르시고 당신을 따르게 하시므로 사람 낚는 어부요 인류의 위대한 스승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 가운데 고승원 사모님도 옛날 사진을 보면 자기 하나 감당할 수 없는 힘겨운 삶을 살고 있었는데 이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므로 사람 낚는 위대한 어부의 인생이 되었습니다. 또 운명주의로 슬픈 인생을 살던 이영애 자매님도 예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므로 이제 능숙하게 사람을 낚는 어부의 인생이 되게 하셨습니다. 허무와 죄악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며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삶을 살다 끝날 우리 인생을 초청하시고 사람 낚는 어부의 인생으로 빚어주시는 하나님께 깊은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나를 따라오라 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순종하므로 죄와 허무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을 낚아 하나님이 쓰실 만한 자들로 키우는 사람 낚는 어부의 위대한 인생 살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2. 권위 있는 새 교훈(21-28)
  갈릴리 해변에서 제자들을 부르신 예수님은 안식일에 가버나움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얼마나 권세가 있었던지 사람들이 다 그 교훈에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22절입니다. “이는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이런 차이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저도 어떤 때는 은혜가 있고 말씀이 힘이 있지만 어떤 때는 부끄러울 정도로 은혜가 없고 힘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로고스(논리), 파토스(열정), 에토스(윤리) 세 가지 요소가 있어야 설득력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서기관들의 설교에는 딱딱한 율법의 가르침만 있고 감성과 유머가 없기 때문에 힘이 없었던 것일까요? 그럴지도 모르지만 결정적으로 그들의 말씀에는 사람의 심령을 찔러 쪼갤 수 있는 말씀의 권세가 없었습니다. 권위는 큰 소리를 지른다고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확신 있게 전할 때 그 말씀에  힘이 있습니다. 학교 다닐 때 생리학을 배웠는데 수업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한번 만에 시험을 끝내지 못하고 늘 재시 내지 삼시를 봐야했습니다. 졸업하고 10년이 지나서 교수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저는 심중에 있던 얘기를 가감없이 말씀드렸습니다. “사실 학교 다닐 때 교수님 수업을 거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교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야, 교수라고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은 아니야!” 저는 큰 충격과 동시에 위로를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성경의 저자로서 그 뜻을 정확하게 아시고 성령 충만함으로 확신 있게 가르치십니다. 거기서 말씀의 힘이 나옵니다. 오래전 어떤 목자님이 창세기1장 2절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말씀을 하나님이 커다란 신을 신으시고 바다 위를 다니시며 창조역사를 시작하셨다고 확신 있게 가르치자 그 양이 그대로 영접하고 은혜를 받아 변화되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자신도 확신하지 못하는 말씀을 전하면 누가 감동과 은혜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한 말씀이라도 내가 깊이 체험하고 은혜 받은 말씀을 확신 있게 전하면 힘이 있고 상대를 압도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낭랑한 목소리로 조용조용 말씀하셨지만 성령 충만함으로 말씀을 확신 있게 전하셨기 때문에 그 말씀에 권세가 있으셨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이 말씀대로 사셨기 때문에 말씀에 권세가 있으셨습니다. 말만하고 스스로는 행하지 않는 자의 메시지에는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저는 가끔 애들이 상스러운 말을 하면 무섭게 혼을 내곤 하는데 저도 운전하다가 앞에서 누가 버벅거리면 자기도 모르게 약간 상스러운 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뒷자리에 앉은 애들이 혀를 끌끌 차며 ‘자기도 욕하면서 누구한테 뭐라 그러는 거야’ 라며 핀잔을 주는 것을 보게 됩니다. 내가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내가 천사의 말을 한다고 해도 나의 말에는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돌아보아 회개하고 말씀대로 살기에 힘써야 합니다. 거기에서 힘이 나오고 권세가 나옵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나의 경험을 솔직하게 드러내어 자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적용하도록 도전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말씀이 나의 내면에 그리고 나의 삶에 부딪힐 때 은혜를 받고 문제의식을 갖게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이처럼 사람들의 내면문제에 부딪히고 어떻게 하나님 나라를 누릴 수 있는지 실제적인 가르침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의 내면에 부딪히고 역사하는 강력한 말씀이 선포되자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23절입니다. 회당에 귀신들린 사람이 앉아 있었는데 겉으로 볼 때는 점잖아 보였습니다. 그러나 말씀이 들어가자 그 더러운 정체가 드러나 발악하기 시작하였습니다. 24절입니다.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분명 이 사람은 안식일에 은혜 받기 위해 나왔는데 그 안에 있는 귀신은 이를 강하게 거부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라고 한 것을 보면 한 두 귀신이 아니라 떼 귀신이 그를 강하게 사로잡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죄의 세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말씀이 들어갈 때 귀신의 세력은 강하게 반발합니다.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하는 말은 예수님 때문에 망할 것 같다는 두려움의 표현입니다. 말씀이 들어가면 사람들은 은혜 받으면서도 예수님 때문에 망할 것 같다는 두려움을 느낍니다. 목자도 그래서 ‘내가 너무 세게 도왔나’ 두려움을 느끼고 자책합니다. 그러나 이 때 사단과의 영적인 싸움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게 미쳤나’ 하고 그 사람과 싸우지 아니하시고 그 속에 역사하시는 귀신과의 영적인 싸움을 싸우셨습니다.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나오라는 것은 그 사람의 진짜 주인은 하나님이시므로 더 이상 거짓 주인노릇하지 말고 나오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요 공중의 권세 잡은 자 사단과의 영적 싸움입니다.(엡6:12) 예수님께서 귀신과의 영적 싸움을 감당하시자 더러운 귀신은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키며 큰 소리를 지르고 쫓겨나오고 말았습니다. 큰 소리를 지르며 나갔다는 것은 이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큰 영적 싸움이 있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죄의 세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큰 싸움이 필요합니다. 몇 번 도전해보고 반발하고 달려든다고 포기하면 한 사람을 구원할 수도 없고 온전케 할 수도 없습니다. 그 더러운 죄가 드러나고 그것을 깨닫고 거기서 떠나기까지 믿음의 싸움 기도의 싸움을 감당해야 합니다. 이것이 사람 낚는 어부가 감당해야 할 사명입니다.
  더러운 귀신이 떠나가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다 놀라 외쳤습니다. 27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다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한 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딱딱하고 영혼 없는 메시지로 인해 졸다 가기 일쑤였는데 말씀에 은혜 받을 뿐 아니라 이런 엄청난 구원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 이는 더러운 귀신도 단숨에 굴복시키는 새로운 교훈,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합니다.(히4:12) 말씀이 있는 곳에 죄인이 회개하고 거듭나며 변하여 새 사람 되는 역사가 있습니다. 요즘은 인터넷이고 어디고 말씀은 넘쳐나는데 권위 있는 새 교훈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봄학기 우리 가운데 마가복음 말씀이 권위 있는 새 교훈이 되어 우리의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날카롭고 힘 있게 역사하길 기도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정결치 못한 것을 드러내어 회개하게 하고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신 부르심을 좇아 죄의 바다, 허무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 영혼들을 건지는 역사에 귀하게 사용하여 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저는 최근 도시어부라는 프로그램을 보며 저 출연자들처럼 배에서 고기도 잡고 잡은 고기로 매운탕도 끓여먹고 회도 떠먹으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신입생 때 창세기 아카데미에 제 발로 걸어가서 목자님들에게 낚이지 않았다면 지금쯤 그렇게 자유롭고 낭만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 가끔 생각하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막상 고기가 안 잡혀서 초조해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출연자들을 보며 세상에 신선놀음이란 없고 겨우 맛있는 한 끼를 위해 고기잡이에 목숨 거는 삶은 그렇게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에 비해 많은 희생과 수고가 따르지만 한 영혼을 구원하고 하나님이 쓰실 만한 사람으로 키우는 사람 낚는 어부의 인생이야말로 가장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 위대한 역사에 죄악의 바다에서 빈 그물만 건져 올리다 물거품처럼 사라질 죄인을 불러주신 것에 깊은 감사드립니다. 제가 이 부르심의 소망을 따라 힘써 예수님을 좇으므로 사람 낚는 어부로 굳게 서길 기도합니다. 이 시대는 힘들고 소망 없다는 회의적이고 불신적인 생각을 회개하고 지금이 일할 때임을 깨닫고 열심을 내어 씨 뿌리는 봄학기 역사에 동참하길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죄의 바다 허무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 우리를 건지사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시고 쓰고자 하십니다. 사람 낚는 어부의 인생은 물고기 잡는 어부의 인생과는 차원이 다른 가치 있고 아름다운 인생입니다. 우리가 이 약속의 말씀을 믿고 예수님을 힘써 따라가므로 봄 학기 한 영혼을 구원하고 키워서 하나님께 드리는 사람 낚는 위대한 사명인의 인생 살 수 있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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