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세계선교 | 각부모임 | 경성소모임 | 성경연구 | 사진자료실 | 영상자료실 | 경성쉼터 | JBF/EBF/CBF | 기타 |

회원등록 비번분실

  Bible Study  
주일예배메시지
성경공부문제지
수양회강의
특강
구약강의자료실
신약강의자료실
강의안책자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01-31 (일) 13:05
분 류 말라기
첨부#1 2016_말라기1강-1(최바울).hwp (64KB) (Down:193)
ㆍ추천: 0  ㆍ조회: 1953      
IP: 61.xxx.95
[2016년 말라기 제1강]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2016년 말라기 제1강                                                             최바울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말씀/ 말라기 1:1-14
요절/ 말라기 1:6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버지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하나님께서 2016년 새해에 말라기서를 공부하게 하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말라기서는 B.C. 538년 바사 왕 고레스가 포로생활하던 이스라엘인들을 유대로 돌아가도록 허용한 때로부터 약 100년이 지난 후인 B.C. 460~430년 사이에 기록되었습니다. 바벨론에서 돌아온 이스라엘은 성전과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고 나름대로 하나님 앞에서 신앙의 순수성을 회복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열정이 식어지고 다시 안일과 타성에 젖은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사장들은 율법을 무시하면서 형식적인 제사를 지냈고, 백성들은 타락해 갔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선지자 말라기를 통해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도록 죄에 대해 경고하십니다. 말라기서는 구약의 결론이면서 동시에 신약의 서론입니다. 이는 곧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죄에 대해 애통히 회개하고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을 회복해야 함을 말해줍니다. 이 시간 저희도 경고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믿음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1-5)
  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말라기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경고라’ 말라기서의 성격은 ‘경고’입니다. ‘경고’는 히브리어로 ‘무거운 짐’이란 뜻입니다. 경고는 전하는 자에게도, 듣는 자에게도 모두 무거운 짐이 됩니다. 하지만 경고를 잘 듣게 되면 얻는 유익이 큽니다. 고구마 전도왕으로 유명한 김기동 집사님은 일요일마다 예배에 가는 부인이 못마땅해 한번은 주일날 교회에 데려다 주는 척하면서 차에 태운 후 교회가 아니라 스키장으로 가다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이를 하나님의 경고로 여기고 그 때부터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의 죄악을 보시고 경고를 하시는데 이 경고의 말씀을 받아들이면 용서받고 회복되고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경고하신 첫 번째 문제가 무엇입니까? 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였나이까 하는도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사랑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본래 애굽에서 노예로 살던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바로의 압제 하에서 고역으로 인해 탄식하고 부르짖었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바로의 권세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셔서 강한 손으로 바로를 치시고 그들을 어린 양의 피로 속량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자기 백성 삼으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심지어 그들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원수가 되었을 때도 인내와 용서의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우상숭배와 음란의 죄를 수도 없이 반복해도 하나님은 이들이 회개하고 돌아왔을 때 집나간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받아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이처럼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향해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이스라엘의 반응은 아주 부정적이었습니다.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였나이까?’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다고 하시는데 우리에게 해준 것이 무엇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않았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많이 주셨다는 하나님과 받은 것이 없다는 이스라엘의 입장차이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요?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사랑 말고 자기들이 바라는 것이 따로 있었습니다. 그들은 나름대로 하나님께 헌신하면서 이에 대한 보상을 기대했습니다. 그들은 어려운 형편에도 성전과 성벽 재건에 헌신했고 신앙의 순수성을 회복하고자 범국민적인 회개운동을 벌였습니다. 힘든 시기에 이 정도 했으면 학개, 스가랴 선지자들의 예언과 같이 이제 곧 이스라엘의 영광이 회복되리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도 영광은커녕 그 전에 보지 못했던 최악의 가뭄과 기근이 찾아왔고 조국 이스라엘은 여전히 페르시아 제국의 속국으로 세금을 바쳐야 했습니다. 반면에 이들이 바벨론에서 본 이방 문화와 문명은 크고 화려했습니다. 먹을 것, 입을 것뿐 아니라 볼 것, 즐길 것이 풍부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기들의 모습은 너무나도 초라했습니다. 이들은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축복이 없게 되자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약속의 말씀이 빨리 이루어지지 않자 이전에 받은 사랑은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였나이까?’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 뿐 아니라 우리들의 질문이기도 합니다. 우리도 나름대로 이중 삼중의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께 헌신하며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퇴근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센타에 나와 양과 일대일을 하는 평신도 목자님이 계십니다. 학과공부에 아르바이트까지 하면서 복음역사를 섬기는 학생 목자님도 있습니다. 집안의 무시와 핍박에도 믿음의 중심을 굳게 지키고 있는 학사 목자님도 있습니다. 가정과 자녀 양육의 십자가를 지면서 온갖 센타 궂은 일을 도맡아서 하시는 사모님들이 계십니다. 사람이 열심히 하다보면 하나님께 무언가를 기대하기 마련입니다. 하는 일마다 잘 될 수는 없지만 절박한 한 가지 기도제목 정도는 들어주시리라 기대하게 되고 이런 기대가 어긋날 때 하나님의 사랑이 의심스러워집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렇게 현실문제 조건문제의 해결에서 확인해보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떤 사랑을 가르쳐 주십니까? 2b,3a절을 보십시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하나님은 어떤 사랑을 주셨는가 묻는 이스라엘에게 야곱과 에서 이야기를 하십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사랑하셨고 에서를 미워하셨습니다. 야곱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습니까? 하나님의 택하심으로 나타났습니다. 택하심에 있어서 에서가 야곱의 형으로서 우선권이 있었습니다. 우선권을 떠나 인간적으로도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으로 남성적이고 야성적이었습니다. 훗날 에돔 왕국을 세웠고 야곱을 맞이할 때 400명의 수행인을 거느릴 만큼 보스형 리더였습니다. 까다로운 아버지 이삭의 입맛을 사로잡을 만큼 능숙한 셰프로서 요리도 잘했습니다. 반면에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었고 집안에만 있고자 하는 은둔형 방콕 족속이요 속이는 자요 소심한 자였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에서보다 야곱을 사랑하셨고 그를 택하셨습니다. 사랑받을만한 근거가 없는 야곱을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고 축복의 샘터가 되게 하셨습니다. 반면 하나님은 에서를 미워하셨습니다. 여기서 미워하셨다는 것은 감정적으로 싫어하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택하지 않으셨다, 유기하셨다(reprobation)’ 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택하시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이 때로는 사랑처럼 안 보일 때가 있습니다. 실제로 택함 받은 야곱도 사람막대기 훈련, 인생채찍 훈련을 받으며 오히려 에서보다 더 험악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방치되고 유기된 에서는 젊은 시절 장자의 의무에서 벗어나 야곱보다 더 자유롭고 더 안정되고 더 멋져 보이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런데도 택함받는 것이 사랑이 되는 것은 택함 받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택함 받는 순간부터 하나님의 관심과 보호와 인도하심을 받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고 방치된 인생의 결말은 에돔과 같이 쌓고 또 쌓아도 무너뜨림을 당하고 가꾸고 가꾸어도 황폐케 됩니다. 반면 택함 받은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그냥 멋대로 살도록 방치하지 않으시고 때마다 경고하시고 훈련하시고 연단하십니다. 어디에 있든지 누구 밑에 있든지 하나님의 때에 다시 약속의 땅으로 반드시 돌아오게 하시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도성을 쌓고 하나님의 산업을 가꾸어 나가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십니까? 자격 없는 나를 택하셔서 죄로부터 구원하시고 당신의 귀한 아들과 딸로 삼아주셨습니다. 이를 위해 가장 귀한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게 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은 죄인된 우리를 위해 독생자도 아끼지 아니하고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할 때 어떤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할 수 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부족한 우리를 택하셔서 성경선생이요 목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올 한해 저희가 나의 헌신과 희생에 대한 보상과 외적이고 물질적인 축복만을 기대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의심하지 않고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영접하고 십자가 구원의 사랑, 택함과 부르심의 사랑을 귀하게 여기는 종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II.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6-14)
 하나님은 두 번째로 제사장들을 향한 경고의 말씀을 하십니다. 6절을 보십시오.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비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비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아버지는 자녀들을 낳고 기르고 보호하고 책임지는 존재입니다. 주인은 소유자요, 종은 그의 장래가 전적으로 주인에게 달려 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종은 마땅히 그 주인을 공경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아버지이시며 주인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민족의 조상 야곱을 애굽으로 보내셨고, 애굽에서 큰 민족을 이루셨습니다. 광야에서 만나와 물을 주심으로 그들을 먹이셨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셔서 그 땅에서 나는 모든 좋은 것들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마음이 부유해져서 하나님을 잊어버렸을 때 징계하셨지만 남은 자를 두셨고, 그들을 바벨론으로 보내셨고, 그 곳에서 그들을 지켜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을 아버지 품과 같은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도록 하셨습니다. 또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주인이십니다. 하나님은 애굽의 노예로 있던 이스라엘을 어린 양의 피로 값을 치루고 사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어떻게 합니까?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공경함과 두려워함’이란 하나님을 아버지로, 주인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현재 자신들이 이렇게 살아 있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 때문임을 인정하는 것, 현재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 또한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이스라엘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그들은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따졌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말끝마다 ‘어떻게~, 어떻게~’하는 그들에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그들이 하나님을 멸시했는가 fact를 제시하십니다. 그들은 더러운 떡을 하나님의 제단에 바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공경한다면 하나님의 제단에 드리는 떡을 매주 마다 신선한 반죽으로 율법에 나온 레시피에 맞추어 정성스럽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시간에 쫓겨 허겁지겁 대충 만든 떡, 다른 제사 때 이미 사용했던 떡, 출처불명의 조미료가 듬뿍 들어간 떡을 드림으로 떡을 더럽게 하고 하나님을 멸시하였습니다. 여호와를 가장 경외해야 할 제사장들이 왜 이렇게 하였을까요? 여기서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제단에 드린 ‘더러운 떡’이란 매주 바쳤던 진설병을 말합니다. 진설병은 ‘임재의 떡’이란 뜻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그들은 늘 하나님의 임재를 생각하며 두렵고 떨림으로 정성을 다해 떡을 드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말합니다. “여호와의 식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결국 그들이 여호와의 식탁은 경멸히 여겨도 된다고 생각한 것은 여호와의 식탁에 현재 여호와께서 계시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현재 살아계시지도 않고 현재 우리의 삶 속에서 함께 하시지도 않고 지금 우리를 돕지도 축복하시지도 않는데 그렇게 정성스럽게 드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현존과 임재를 믿지 않으면 당연히 여호와를 공경하는 마음도 사라지게 됩니다. 형식적으로 드리고 형식적으로 제사하게 됩니다. 버리자니 아깝고 하나님께나 드리자는 심정으로 눈 먼 것,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게 됩니다. 짐승 떼 중에 쓸만한 수컷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건강한 수컷은 씨받이로 써야 하기 때문에 드리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것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얼마나 번거로운 일인가?”(13) 설마 그래도 명색이 제사장인데 백성들 앞에서 이런 말을 했겠습니까? 이는 형식적인 제사를 의무감으로 감당하는 그들의 속마음일 것입니다. 그런데도 ‘말했다’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은 제사의 겉모습 뿐 아니라 제사 드리는 자의 속마음도 이처럼 꿰뚫어보고 계심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들에 대해서 뭐하고 책망하십니까? 8절을 보십시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 하나님은 두 번이나 “이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단지 예절의 문제가 아니라 ‘악한 것’ 곧 죄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런 제물을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느냐” 당시에 사람들은 그 지역 총독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뇌물을 갖다 바쳤는데 나쁜 것을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총독이 기분 상하면 자신의 장래에 치명상을 입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총독의 눈치는 살피면서 만군의 여호와, 만유의 통치자 되신 하나님은 우습게 생각하고 부정한 것, 더러운 것, 쓸모없는 것을 드린 것입니다.
9,10절을 보십시오. 당시의 사람들은 그러면서도 어려운 일이 생기면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하며 하나님께 은혜를 구했습니다. 필요할 때는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면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에 인색하면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으십니다. “너희가 헛된 제사를 드리고도 자기 의에 빠지느니 차라리 제사 못 드리게 누가 성전 문을 좀 닫아 버리면 좋겠다” 하나님은 엄청 화가 나셨습니다. 이렇게 성전의 문을 닫고 제사를 폐하면 하나님께 대한 제사는 끝나버리는 걸까요? 1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거짓 예배를 폐하시고 대신에 이방 민족들에게서 흠 없고 깨끗한 제물로 최고의 제사와 경배를 받으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경배와 제사와 상관없이 홀로 영광을 받으시는 큰 임금이십니다.
말라기서의 주제는 ‘바른 예배의 회복’입니다. 우리가 드려야 할 예배는 어떤 것입니까? 예배는 번거로운 것이 아니라 죄악된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귀한 통로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범죄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런 아담을 불쌍히 여기시고 제사를 통해서 더러운 죄를 깨끗하게 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 교제하고 새롭게 되고 새 힘과 은혜를 덧입도록 통로를 마련해주셨습니다. 우리 죄인들이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가 거룩한 교제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예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고 찬양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강물에 우리 몸을 담글 때 세상에서 묵은 때가 벗겨지고 심령이 새롭게 됩니다. 예배를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영으로 교통하고, 하나님 나라의 평강과 위로를 덧입게 됩니다. 예배를 통해서 영육간의 치유를 경험합니다. 이 땅에 살면서 하늘나라를 경험하는 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그 하늘 문을 열어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이 찢기시고 피를 흘리셨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사모해야 할까요?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4:23,24).” 하나님은 우리가 영과 진리로 예배하기를 바라십니다.
사람들이 영화 보러 갈 때에 본 영화 시작하기 전에 하는 광고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10분 일찍 도착합니다.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에 앞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문 열기 전부터 기다립니다. 이성 친구를 만날 때에는 가장 좋은 옷을 입고 있는 돈 없는 돈 다 털어서 맛있는 것을 사 줍니다. 그런데 나에게 새 생명을 주신 주님을 만나고 주님의 말씀을 듣는 예배는 이보다 소홀히 할 때가 많습니다. 믿음의 조상들은 예배를 소중하게 여기고 생명을 걸었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이방 신상에게 절하며 우상에게 예배드리느니, 차라리 풀무 불에 들어가는 것을 선택했습니다(단2장). 다니엘도 사자 밥이 될 각오를 하고 하루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하여 난 문을 열어놓고 예배를 드렸습니다(단6장). 청교도들이 목숨을 걸고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으로 간 것은 부강한 나라를 건설하고자 함이 아니라 국교회의 핍박을 피해 성경중심의 예배를 드리기 위함이었습니다. 말라기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의 포로에서 돌아왔을 때 그들이 얼마나 경외심을 갖고 예배를 드렸습니까? 70년 동안 이방 땅에서 비참한 포로생활을 하며 성전도 없이 예배다운 예배를 드리지 못하다가 돌아와서 예배를 드리니 얼마나 감격스러웠겠습니까? 느헤미야 8장에 보면 제사장 에스라가 나무 강단에 서서 말씀을 전할 때 모든 백성들이 서서 새벽부터 정오까지 6-7시간을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들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며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였습니다. 말씀을 듣고 감격하여 울었습니다. 말씀 앞에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그랬던 그들이 세월이 지나자 구원의 감격이 사라지고 예배가 점점 형식적이 되었습니다. 예배가 형식적이 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 경고하고 계신 것입니다.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너희가...... 헛되이 제사 드리느니 차라리 그런 제사 못 드리게 성전 문을 닫아 버리면 좋겠구나” 우리가 매주 드리는 예배는 너무나 중요합니다. 초라한 피조물인 내가 예배를 통해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나갈 수 있다는 그 자체가 기적이며 능력이며 은혜이며 기회입니다. 예배가 회복되면 우리의 영혼과 인생이 회복됩니다. 사도바울은 우리의 삶이 곧 예배라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12:1,2는 말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우리의 헌신이 하나님 앞에서 받음직한 것이 될 수 있도록 자신을 날마다 살펴보고 거룩한 산제사를 지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진심으로 공경하고 전심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고 축복하십니다. 우리가 올 한해는 한 주 한 주 예배를 사모하고 예배에 생명을 걸어봄으로 예배를 통해서 우리의 심령이 새롭게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순수하고 간절한 심정으로 예배드리므로 예배를 통해서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어두움이 떠나가고 하늘의 영광과 빛으로 충만해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배를 통해서 성령의 충만함을 덧입고 새 마음과 새 심령으로 세상에 나가서도 한 주 한 주를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제가 현실문제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시험할 때가 많았습니다. 동역자가 양들을 섬기느라 자녀들을 잘 돌보지 못해도 건강하고 문제 없이 자라기를 바랐습니다. 저희 가정이 복음역사에 시간과 물질을 드려 헌신하는만큼 치과에 환자가 많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믿음으로 살면 바로바로 복 주시는 일차원적인 사랑보다 야곱에게 주신 사랑, 곧 자격없는 저와 저희 가정을 캠퍼스 목자요 복의 근원으로 택하여 주시고 계속해서 쓰시는 사랑, 야곱을 이스라엘로 변화시키시듯 자기중심적이고 세상적인 저와 저희 가정이 하나님을 섬기면서 조금씩 하나님 중심의 영적인 자들이 되도록 하는 은혜를 주십니다. 이처럼 저희를 사랑하신 하나님께서는 저희가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을 공경하기를 원하십니다. 무엇보다 예배가 바로 서기를 원하십니다. 주일이 보고 싶은 동역자들과 만나 수다 떠는 교제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사귀는 시간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주일이 양들의 상태와 출석을 체크하는 점검시간이 아니라 나와 하나님의 관계를 살피는 자기성찰과 회개의 시간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인간중심의 예배는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경홀히 여기는 것임을 깨닫고 제가 하나님 중심의 예배를 회복하겠습니다. 토요일 저녁 무절제하게 축구를 하다가 다쳐서 절고 병든 상태로 예배에 참석할 때가 많았습니다. 학생시절 장막훈련을 받을 때 한 장막장 목자님은 주일날의 거룩한 예배는 토요일 밤 시간의 유혹을 절제하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후배들을 가르쳤습니다. 제가 토요일 저녁 무리한 운동, 무절제한 TV, 인터넷 서핑을 자제하고 흠 없는 몸과 마음으로 예배를 준비하는 자가 되겠습니다. 눈 먼 것, 저는 것, 병든 것을 받지 않으신다고 하셨는데 저희 가정과 저희가 섬기는 영혼들도 올 한해 말씀을 통해 영적인 눈을 뜨고 영적으로 건강해져서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예물로 성장하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백성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며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고 제사장들은 하나님을 공경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 삼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룩한 백성으로서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사랑, 캠퍼스 지성인 복음사역에 나를 택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고 그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사랑해야 합니다. 또한 제사장 나라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며 경외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공경하므로 우리를 통해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 하나님의 이름이 영화롭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0
3500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456 베드로전서 [2016년 베드로전서 제3강]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라 관리자 2016-10-16 1454
455 베드로전서 [2016년 베드로전서 제2강]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관리자 2016-10-09 1585
454 베드로전서 [2016년 베드로전서 제1강] 산 소망 관리자 2016-10-02 1554
453 사도행전 [2016년 사도행전 제26강] 로마의 셋집에서 관리자 2016-09-25 1850
452 사도행전 [2016년 사도행전 제25강] 나는 하나님을 믿노라 관리자 2016-09-18 1624
451 사도행전 [2016년 사도행전 제24강] 다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하노라 서삼문 2016-09-11 1677
450 사도행전 [2016년 사도행전 제23강]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가졌으니 관리자 2016-09-04 1635
449 사도행전 [2016년 사도행전 제22강]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관리자 2016-08-28 1860
448 사도행전 [2016년 사도행전 제21강] 내가 너를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관리자 2016-08-21 1737
447 사도행전 [2016년 사도행전 제20강]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관리자 2016-08-14 1606
446 사도행전 [2016년 사도행전 제19강]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한 바울 관리자 2016-08-07 1611
445 요한복음 [2016년 여름수양회 주제3강]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김태영) 관리자 2016-07-31 2028
444 사도행전 [2016년 사도행전 제18강]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날마다 강론하니.. 관리자 2016-07-24 2152
443 사도행전 [2016년 사도행전 제17강]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관리자 2016-07-17 2094
442 사도행전 [2016년 사도행전 제16강]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관리자 2016-07-10 1698
441 사도행전 [2016년 사도행전 제15강] 마게도냐로 건너 와서 우리를 도우라 관리자 2016-07-03 1941
440 사도행전 [2016년 사도행전 제14강]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관리자 2016-06-26 2112
439 사도행전 [2016년 사도행전 제13강]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관리자 2016-06-19 1957
438 사도행전 [2016년 사도행전 제12강] 이방의 빛 관리자 2016-06-12 1941
437 사도행전 [2016년 사도행전 제11강]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관리자 2016-05-29 1998
1,,,11121314151617181920,,,38
서울 동대문구 이문2동 264-231
Tel:070-7119-3521,02-968-4586
Fax:02-965-8594
서제임스목자님메일:Suhjt@hitel.net
[UBF한국본부] [유럽UBF] [UBF국제본부] [UBF TV] [시카고UBF] [Mother Barry's Homepage]
[뉴욕UBF] [워싱턴UBF] [노스웨스턴UBF] [콜롬비아UBF] [코스타리카UBF] [프랑크푸르트UBF]
[키에프UBF] [상파울루UB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