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세계선교 | 각부모임 | 경성소모임 | 성경연구 | 사진자료실 | 영상자료실 | 경성쉼터 | JBF/EBF/CBF | 기타 |

회원등록 비번분실

  Bible Study  
주일예배메시지
성경공부문제지
수양회강의
특강
구약강의자료실
신약강의자료실
강의안책자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리스닝
작성일 2010-04-11 (일) 16:10
분 류 요한복음
첨부#1 제2강_부활하신예수님(이인구,_한의).hwp (28KB) (Down:272)
ㆍ추천: 0  ㆍ조회: 2860      
IP: 61.xxx.74
[2010부활절수양회2강]부활하신예수님(이인구)

2010년 부활절 주제 2강                                                  이인구

부활하신 예수님

말씀: 요한복음 20:1-31
요절: 요한복음 20: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어느 학교에 필립이라는 지적 장애를 가졌지만 예수님을 사랑해서 밝게 사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부활절 3일전 아이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설명하고 부활절을 상징하는 계란을 하나씩 나눠줬습니다. 그것은 플라스틱으로 만든 것이고 반이 열릴 수 있도록 된 모형인데 선생님은 부활절에 부활을 상징하는 것을 담아 가져오도록 시켰습니다. 부활절 날 아이들은 자신의 가져온 것을 하나씩 열어 보여줬습니다. 첫째 아이는 예쁜 꽃을 담아왔는데 부활의 기쁨과 영광을 나타낸다고 설명했습니다. 둘째 아이는 돋아나는 파릇파릇한 새싹을 담아왔습니다. 부활의 생명을 뜻하고 있었습니다. 셋째아이는 아름다운 나비를 담아왔습니다. 애벌레에서 다시 태어나는 생명이었습니다. 마지막 필립이 자기가 담아온 것을 보여주기 위해 계란을 열었을 때 모두 긴장했습니다. 그런데 계란을 열었을 때 거기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그러면 그렇지 필립은 아무것도 못 가져왔다고 비웃었습니다. 그때 필립이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은 비었잖아요”
예수님은 부활하셨기 때문에 이스라엘에 무덤은 있으나 비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신자들의 믿음은 예수님의 빈 무덤위에 세워졌습니다. 요한복음은 사색적이고 철학적인 복음서이지만 부활사건만큼은 사실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부활은 사실 그 자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남으로 내면의 모든 슬픔과 두려움과 의심을 물리치고 부활의 산 증인이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습니다.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 박히실 때 그 밑에서 지켜보았으며 시체를 장사지낸 것도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이 끝난 이른 아침에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시체에 향유라도 발라드리고자 무덤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무덤 입구를 큰 돌로 막은 것과 파수꾼들이 무덤을 굳게 지키고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 대한 변함없는 사랑은 그런 것들에 개의치 않고 이른 새벽 향유를 품에 안고 무덤까지 오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무덤에 와 보니 무덤을 막고 있던 큰 돌이 무덤에서 옮겨져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순간적으로 누가 와서 무덤을 파헤치고 시체를 훔쳐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급히 베드로와 요한에게 가서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부활의 아침에 달리기 대회가 벌어졌습니다. 요한이 베드로보다 젊어서인지 더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감히 무덤 안에 들어가지는 못하고 얼쩡거리고 있었습니다. 나이는 속일 수 없어서 한발 뒤늦게 도착한 베드로는 늦었지만 그 인생경험으로 담대하게 무덤 안으로 먼저 들어갔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영원한 맞수요 영원한 동역자였습니다. 요한은 굳이 베드로가 먼저 들어간 것 까지 상세히 기록하므로 자신이 부활의 현장에 있었던 증인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무덤에 들어가 자세히 살펴보니 세마포와 다른 곳에 머리를 쌓던 수건이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무덤 속은 마치 자고난 사람이 잠자리를 가지런히 잘 정돈해 놓고 외출한 것 같았습니다. 만일 누가 시체를 훔쳐갔다면 시체를 쌓던 세마포와 머리를 쌌던 수건가지 벗기고 이를 잘 정돈해 놓고 갈리는 없었습니다. 이런 사실들은 모두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해 줍니다. 특히 예수님의 몸이 부활했음을 증거해 줍니다. 하지만 두 제자들은 마리아의 말처럼 시체가 없어진 것은 확인했지만 아직 예수님의 부활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기이히 여기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두 제자는 집으로 돌아갔으나 마리아는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마리아는 무덤밖에 서서 계속 울고 있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과거 더러운 귀신에 들려 비참한 인생을 살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정욕 귀신. 시기심 귀신, 욕심 귀신, 분노 귀신, 슬픔 귀신, 자학 귀신, 두려움 귀신 등 7귀신들이 번갈아 가면서 그녀를 괴롭혔습니다. 인간의 형상을 잃은 그녀를 사람들은 멸시하며 더러워하며 피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영혼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마리아와 함께 하며 공주처럼 소중히 여기시며 딸처럼 사랑해 주셨습니다. 7귀신들을 차례로 쫓아내주시고 많은 죄를 사하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크신 사랑으로 마리아는 살아났고 새 인생을 살게 됐습니다. 자신을 자학하며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주었던 마리아는 예수님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믿음을 갖게 되면서 예수님과 다른 이들을 사랑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 후부터 마리아는 모든 진심과 열정을 바쳐 주님과 복음 역사를 섬기면서 참으로 큰 행복을 맛보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예수님께서 자신의 눈앞에서 많은 사람들의 배신과 멸시 속에서 처절한 고통 가운데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선하시고 능력이 많으신 예수님도 죽음 앞에서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이 마리아에게 큰 충격과 깊은 슬픔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또 지금까지 예수님께 드렸던 자신의 모든 열정과 사랑도 죽음 앞에서 물거품처럼 사라졌다는 사실이 슬펐습니다. 밤새도록 울던 마리아가 이른 새벽 마지막으로 시체에라도 향유를 부어드리려고 왔지만 시체마저 도적들이 훔쳐갔는지 빈 무덤이었습니다. 빈 무덤 앞에서 마리아는 억울하고 비참하게 돌아가신 예수님을 생각할 때 슬펐고 또 예수님 없이 다시 예전처럼 7귀신들에 사로잡혀 비참하게 살다 죽을 자신의 인생이 슬펐습니다. 슬픔과 분노와 자학귀신이 다시 마리아를 억누르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의 모든 슬픔과 비극은 죽음으로부터 옵니다. 죽음은 인간의 어떤 사랑과 열정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무로 돌려버리며 모든 희망을 빼앗아갑니다. 많은 이들이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인생을 바쳐도 인생의 한 순간 죽음 앞에서 무너져 버리고 맙니다. 또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자식과 친구와 동역자를 죽음에게 빼앗기면서 말할 수 없는 깊은 슬픔과 허무감에 시달립니다. 죽음은 죽는 당사자뿐 아니라 열심히 살고 있는 주변사람들을 슬픔과 허무에 얽매이게 합니다. 살아가지만 모든 인간들은 평생 죽음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이 슬픔과 허무 속에서 살다 결국 죽게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이 죽음을 이기시고 신자들에게 죽음의 끈을 끊는 비밀을 주시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울고 있는 마리아에게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15a를 보십시오.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이 말씀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눈앞에 두고도 믿지 못하고 울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왜 마리아는 예수님을 눈앞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했을까요? 그것은 마리아가 예수님의 빈 무덤에서 돌아가신 예수님만을 찾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이들을 위해 희생하시고 헌신했지만 제자에게 배반당하고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예수님을 찾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마리아에게 누구를 찾느냐고 책망하십니다. 그리고 이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찾도록 방향을 주십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동산지기인줄 알고 시체가 옮겨갔으면 알려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마리아야!” 하고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마리아야!” 이 음성은 마리아를 가장 잘 아시는 선한 목자 예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이 음성을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전이나 부활하신 후나 조금도 변함이 없으신 목자 예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이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순간 영적인 눈이 떠졌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마리아는 너무 기뻐서 본능적으로 예수님을 붙들고 다시는 놓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기 때문에 붙들지 말라고 하십니다. 변화산에서 거룩하게 변화되신 예수님을 보고 초막을 짓고 영원히 함께 살고자 하는 베드로의 심정처럼 마리아는 예수님과 함께 하면서 다시 세상의 고통과 슬픔에 빠지고 싶지 않았습니다. 설사 무덤가라도 좋으니 작은 초막을 짓고 영원히 세상고통과 슬픔 없이 예수님과 함께 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선 이제 부활하신 영광스런 분이시오 곧 하나님 아버지께로 올라가셔서 세상을 다스리실 세상의 주권자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옛날과는 달리 새로운 관계성을 맺어야 했습니다.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예수님께선 세상 죄인들의 죄를 사해주시기 위해 낮고 천한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 하신 후 다시 하늘로 올라가심으로 구원역사를 완성하시고자 하셨습니다. 또 부활 후 하늘에 올라가시지만 성령의 모습으로 내려오심으로 예전보다 더 친밀한 영적 연합의 관계를 맺고자 하셨습니다. 육신의 몸을 입으셔서 시공간의 제약을 받는 예수님이 아닌 언제 어느 때이든지 함께 하실 수 있는 성령님의 모습으로 항상, 영원토록 마리아와, 제자들과 또 나와 함께 하시고자 하셨습니다.
  마리아와 새로운 관계성을 맺으신 예수님은 이제 새로운 사명을 주셨습니다. 17b를 보십시오.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과거 예수님과 제자들은 사제(스승과 제자)관계였습니다.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께선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을 통해 같은 피를 나눈 형제의 관계를 맺고자 하셨습니다. 형제로서 맏형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제자들도 믿음으로 부활할 수 있는 등 뒤에 숨은 날개를 가진 자가 됐습니다. 또 같은 상속자로서 영광스러운 하나님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 후 하늘에 올라가시지만 마리아와 제자들은 또 우리 신자들은 아직도 죽음권세가 지배하는 세상에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잠시 세상의 고난 가운데 슬플 수도 있고 두려움에 빠질 수도 있고 또 허무에 시달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죽음의 세력은 절대로 신자들을 주관하여 삼킬 수 없습니다. 왜냐면 신자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이루신 구원역사를 믿음으로 예수님과 같은 부활의 생명력(피)을 가진 형제로 다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처럼 부활할 것을 믿기 때문에 신자들은 죽음이 주는 세상의 슬픔과 두려움과 허무의 세력에 빠지지 않고 이겨낼 수 있습니다. 또 어두운 세상 가운데 예수님의 부활의 빛을 증거하는 인생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부활 후 받을 하늘나라의 유업을 바라보며 세상 가운데 주와 복음역사를 위해 기쁨으로 희생하며 섬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이 사실을 제자들에게 증거하게 하심으로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도록 하셨습니다.
  18절을 보십시오. 마리아는 달려가 제자들에게 “제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어요. 또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증거하였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마리아의 간증을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마리아가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19절을 보십시오.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그들은 유대인들이 두려워서 방문을 닫고 합심하여 떨고 있었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선 십자가를 지시기전 몇 번이나 자신이 십자가를 지실 것과 또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더구나 십자가 현장과 부활한 예수님을 본 마리아도 간증했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의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죽기까지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큰 소리쳤지만 막상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두려움으로 모두 도망갔습니다. 죄와 죽음의 세력은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배신했다는 깊은 패배의식과 두려움을 심었습니다. 두려움은 죄를 짓고 하나님을 떠난 아담처럼 창조주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깨질 때 인간의 내면에 찾아옵니다. 두려움이 생기면 사람은 소심해지고 자기중심적이 되어 버립니다. 또 근시안적이 되어 당장 눈앞에 닥친 현실문제에만 매입니다. 두려움은 어려운 현실 때문에 오는 자연스러운 감정이 아니라 영적인 문제로 하나님 없는 심령에 사단이 심는 것입니다. 사단은 자신의 가장 강한 무기인 죽음으로 인간에게 두려움을 줌으로 하나님을 떠나 자신의 소유로 삼고자 합니다. 두려움이 생기면 진리를 위해 살 힘과 용기가 사라지고 사단이 시키는 대로 살게 됩니다. 우리가 두려움이 나를 파멸로 이끈다는 것을 알고 벗어나고자 하지만 내 힘과 의지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문을 걸어 잠그고 이불을 뒤집어써도 어느새 두려움의 세력에 사로잡혀 있는 자신을 발견할 뿐입니다. 어둠 속에서 우리가 아무리 눈에 불을 켜고 어둠을 물리치려고 해도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빛이 임할 때 어둠은 자연스럽게 물러갑니다. 이러한 모든 두려움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야 해결 받을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두려워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누가 문을 열어 준 것도 아니고 누가 문을 열고 들어온 것도 아닌데 예수님께서 제자들 가운데 서서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선 두려움으로 놀라워하는 제자들에게 십자가에 못 박혔던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시며 다시 한번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배신하고 도망쳤지만 예수님께선 그들의 연약함을 깊이 이해하시고 먼저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두려움에 떨던 제자들과 함께 함으로 그들의 내면에 역사한 두려움을 단번에 몰아내주시고 평강을 주셨습니다. 진정한 평안은 상황과 조건의 개선만으로 얻을 수 없습니다. 나를 지으신 창조주시요 또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나의 죄를 사해주신 예수님과 함께 할 때 어떤 상황과 조건가운데서도 진정한 평강을 누릴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함으로 더 이상 두려움 없이 내면의 진정한 평강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21b를 보십시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예수님께선 제자들에게 평강을 주시고 사명을 주셨습니다. 세상은 두려워 떨 대상이 아니라 복음으로 정복할 땅임을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실패를 체험했던 제자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엄청난 사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22절을 보십시오.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태초에 하나님께서 흙으로 인간을 만드시고 생기를 불어넣으신 것처럼 예수님께선 제자들에게 숨을 내쉬어 성령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지음 받은 최초의 사람이 세상만물을 정복하고 다스릴 책임을 가진 것처럼 부활하신 예수님으로부터 성령을 받아 새롭게 창조된 제자들은 영적 세계에 대한 책임을 갖습니다. 성령은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의 원천입니다. 능력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임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성령이 임할 때(성령과 함께 할 때) 마음의 두려움이 사라지고 어두운 세상에서 능력 있게 복음역사를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제자들이 세상에 나가서 감당해야할 사명이 무엇입니까? 23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선 인간들의 모든 죄를 대신해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심으로 죄를 대속해 주신 증거를 보여주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세상을 떠도는 허황된 지식과 소문에만 매여 이 부활의 복음을 깨닫지 못합니다. 제자들은 성령과 함께 하면서 사람들에게 부활의 복음을 증거함으로 그들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권세를 부여받았습니다. 누구나 제자들이 주는 복음을 믿고 영접하면 죄사함 받고 죄의 결과인 죽음을 이기고 부활할 수 있지만 거부하면 결국 영원히 죽음의 세력에 갇힐 수밖에 없습니다. 제자들은 부족하지만 부활의 복음을 증거함으로 사람들의 생명을 좌지우지하는 특권, 즉 생사여탈권을 부여받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제자들에게 엄청난 특권이자 동시에 책임입니다. 이 사명은 부활신앙으로 사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졌습니다. 부활신앙으로 산다는 것은 부활의 증인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부활을 믿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슬픔과 두려움의 종 되어 죽어가고 있는 영혼들에게 부활하신 주님을 증거하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공교롭게도 도마가 없었습니다. 아마도 다른 제자들보다 더 의심 많고 두려움 많은 도마가 모두 같이 있으면 분명히 유대인들의 표적이 될 것이라 생각해 혼자 따로 숨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화장실 안에서 혼자 있다 더 큰 두려움을 느낀 도마가 제자들에게 돌아왔을 때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됐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두려움에 떨던 제자들이 평안이 가득한 얼굴에 큰 기쁨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거했습니다. 그러나 도마는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단호하게 믿기를 거부하였습니다. 그는 형제들의 확신에 찬 간증을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의심은 날카로운 지성 때문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믿음이 연약해서입니다. 믿음의 가장 큰 적은 의심입니다. 하와는 뱀의 유혹에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면서부터 불신과 죄와 사망이 시작됐습니다. 도마는 부활의 증인들이 사실적 간증을 인간적 의심의 잣대로 거부하고 있었습니다. 의심하는 자들의 흔한 이론은 보여주면 믿겠다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눈은 아주 가까운 것도 보지 못하고 너무 먼 것도 볼 수 없습니다. 또 사람들은 세상에서 자기가 보고자 하는 것만 보고 믿습니다. 더구나 인간의 눈으로 하나님의 영적세계를 볼 수 없습니다. 영적세계는 믿음의 눈으로만이 볼 수 있습니다.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보고 믿으려 할 때 우리는 깊은 믿음의 세계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칼빈은 “믿음이란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부활의 증인들의 간증을 듣고 또 기도중 하나님의 음성을 들음으로 부활의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선 이런 도마를 불쌍히 여기시고 제자들에게 나타나신지 8일후에 의심하는 도마 한 사람을 위해 다시 찾아오셨습니다. 의심하는 그에게 다시 한번 손의 못자국과 옆구리의 창자국을 보여주시고 직접 손을 넣어 만져보게 하셨습니다. 이로써 마음의 의심을 풀어주시고 부활의 믿음을 심어주셨습니다. 도마는 이 예수님의 사랑에 감격하여 확신에 찬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그 후 도마는 의심의 사람에서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됐습니다. 그는 나중 인도에 가서 자신이 만난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확신 있게 전하다가 순교 당했다고 합니다.  
  오랫동안 간절히 바라던 박사학위를 받은 후 잠시의 큰 기쁨 후에 요사이 삶의 허무감에 시달리게 됐습니다. 더구나 얼마 전 주변에서 암으로 또 자살로 인생을 마치는 이들을 보면서 또 친구가 소개해준 투자처가 부도가 나면서 더욱 삶의 허무감과 무력감에 빠지게 됐습니다.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마리아와 제자들이 처음 예수님의 빈 무덤을 보고 느꼈던 슬픔과 두려움과 의심이 심령 가운데 임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이번 메시지를 준비하면서 그동안 죄인이 현실에만 매여 부활의 믿음과 소망을 놓치고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사실 과거 교통사고로 인해 지적장애자로 불신자로 자기하나 감당하기 힘든 삶을 살다 죽을 죄인이었는데 부활하신 예수님은 저를 찾아와주시고 새 생명을 주셨습니다. 저의 생명은 제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입니다. 이 생명을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헌신해야 하는데 그렇게 살지 못하였습니다. 제가 죄사함 받고 캠퍼스 지성인들을 섬기는 귀한 사명을 받고 또 외적으로도 바라던 학위와 물질까지 얻었는데 제가 잠시 세상의 사망권세에 슬퍼하고 두려워하며 의심했음을 회개합니다. 지금 인생의 반환점에서 죄인이 예수님의 빈 무덤 앞에서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죄사함과 구원의 은혜를 덧입고 부활의 믿음과 소망 가운데 맡겨주신 캠퍼스영혼들을 구원하는 귀한 역사 가운데 쓰임 받을 수 있길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분명히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슬퍼하는 마리아에게 기쁨을 주시고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평강을 주시고 의심하는 도마에게 확신을 주셨습니다. 또한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를 부활의 증인으로 부르십니다. 이제 우리도 슬픔과 두려움과 의심에서 일어나서 예수님의 부활의 증인으로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길 기도합니다.
  0
3500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114 요한복음 [2010년요한복음제19강]예수님의 기도 리스닝 2010-07-11 2198
113 요한복음 [2010년요한복음제18강]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리스닝 2010-07-04 2353
112 요한복음 [2010년요한복음제17강]열매를 맺으려면 리스닝 2010-06-27 2637
111 요한복음 [2010년요한복음제16강]참된 생명의 길 리스닝 2010-06-21 2785
110 요한복음 [2010년요한복음제15강]서로 발을 씻어주라 리스닝 2010-06-13 3030
109 요한복음 [2010년요한복음제14강]한 알의 밀이 죽으면 리스닝 2010-06-07 2961
108 요한복음 [2010년요한복음제13강]부활과 생명 리스닝 2010-05-30 2634
107 요한복음 [2010년요한복음제12강]참 목자 리스닝 2010-05-30 2633
106 요한복음 [2010 요한복음11강]세상의 빛 리스닝 2010-05-16 2823
105 요한복음 [2010 요한복음10강]용서의 은총 리스닝 2010-05-10 2966
104 요한복음 [2010 요한복음9강]생수의 강 리스닝 2010-05-02 2661
103 요한복음 [2010 요한복음8강]생명의 떡 예수님 리스닝 2010-04-25 3016
102 요한복음 [2010 요한복음7강]오병이어를 축사하신 예수님 리스닝 2010-04-18 2734
101 요한복음 [2010부활절수양회2강]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부활(문대범) 리스닝 2010-04-11 2923
100 요한복음 [2010부활절수양회2강]부활하신예수님(이인구) 리스닝 2010-04-11 2860
99 요한복음 [2010부활절수양회2강]부활의 산 증인들(이동원) 리스닝 2010-04-11 3160
98 요한복음 [2010부활절수양회1강]다이루었다(최바울) 리스닝 2010-04-11 2670
97 요한복음 [2010부활절수양회1강]다이루었다(이동욱) 리스닝 2010-04-11 2558
96 요한복음 [2010부활절수양회1강]다이루었다(원규연) 리스닝 2010-04-11 3647
95 요한복음 [2010 요한복음6강]일어나 걸어가게 하신 분 리스닝 2010-04-07 2949
1,,,313233343536373839
서울 동대문구 이문2동 264-231
Tel:070-7119-3521,02-968-4586
Fax:02-965-8594
서제임스목자님메일:Suhjt@hitel.net
[UBF한국본부] [유럽UBF] [UBF국제본부] [UBF TV] [시카고UBF] [Mother Barry's Homepage]
[뉴욕UBF] [워싱턴UBF] [노스웨스턴UBF] [콜롬비아UBF] [코스타리카UBF] [프랑크푸르트UBF]
[키에프UBF] [상파울루UB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