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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9-04-12 (일) 19:24
홈페이지 http://ksubf.com
분 류 요한복음
첨부#1 2강_나는_부활이요(2)장원규.hwp (35KB) (Down:285)
ㆍ추천: 0  ㆍ조회: 2661      
IP: 211.xxx.239
2009 부활절수양회 2강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장원규
2009년 부활절 수양회 제2강                              장원규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

말씀 요한복음 11:1-44
요절 요한복음 11:25,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Happy easter! 여러분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믿으십니까? 이 사실은 정말 놀라운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사망 권세가 더 이상 온 인류를 지배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간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새롭게 하여 충만한 생명력을 덧입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제 1장,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1-16)
  1절을 보십시오. ‘어떤 병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자매 마르다의 마을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마리아와 마르다, 나사로 삼남매는 예수님을 사랑하고 따르던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도 이들을 지극히 사랑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가정의 기둥이었던 나사로가 중한 병에 걸렸습니다. 그러자 마리아와 마르다는 예수님께 간절히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지만 예수님의 대답은 의외였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나사로의 병은 분명 죽을 병이었으며, 실제로 그는 죽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죽을 병이 아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문제를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는 믿음의 눈이며, 하나는 불신의 눈입니다. 마리아와 마르다처럼 불신의 눈으로 문제를 볼 때, 상황이 힘들어지면 마음이 어두워집니다. 이때는 예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할 수는 있지만, 마음에 위로가 없고, 절망과 염려만 가득하게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처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 문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보이고 그 가운데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 때문에 믿음의 눈을 가진 자들은 상황과 현실에 지배 받지 않고 오히려 긍정의 힘이 넘칩니다. 그리고 문제를 통해서 선하신 하나님에 대한 실제적인 믿음을 배우고, 더 깊은 믿음의 세계로 나아가게 됩니다.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나사로가 병든 것처럼,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우리들도 병들 수 있습니다. 크고 작은 문제들이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아무 문제없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문제 앞에서 우리가 어떠한 자세를 가지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눈을 가질 때,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문제들은 더 큰 믿음을 배우는 연단의 시간이 되고, 결과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



는 기회가 됩니다. 이 시간 우리 목자님들이 모두 갖가지 인생 문제 앞에서, 예수님과 같이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믿음의 말을 하며, 이를 통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5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예수님과 이들 삼남매의 관계는 사랑의 관계였습니다. 때문에 두 자매들은 사랑하시는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는 즉시 예수님께서 당장 달려오실 것이라고 기대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히려 그 계시던 곳에서 이틀을 더 유하셨습니다. 이로 인해 나사로는 죽었고, 두 자매는 고통과 절망에 빠졌습니다. 두 자매는 ‘베드로의 장모는 당장 고쳐주셨는데, 왜 우리 오빠 나사로는 죽게 내버려 두십니까’ 라며 예수님을 원망하였을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자들의 고통과 간절한 간구 앞에서 침묵하셨던 예수님의 모습은 언뜻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을 사랑하지 않으신 것입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왜 이틀을 유하신 것입니까? 이는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마리아와 마르다가 원한 사랑은 기도하면 즉시 응답주시는 인간적인 사랑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인간적인 사랑의 관계성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이 땅을 떠나시면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는 한계적인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이를 잘 아시고, 이들을 떠나서도 이들과 함께 하시는 영원한 사랑을 주시고자 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구체적으로 ‘부활과 생명의 믿음’을 심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간구 앞에서도 이틀을 더 지체하실 때가 있습니다. 이번에는 꼭 신실한 양을 보내주실 것을 믿고 피싱하러 올라갔는데도, 어김없이 양들이 던지는 무수한 돌에 맞아 상처투성이가 되어버릴 때는 예수님이 원망스러워집니다. 줄기차게 기도해도 여전히 응답받지 못하는 수많은 문제들은 우리에게 원망할 힘조차 빼앗아 갑니다. 하지만 우리는 해결되지 않는 현실의 문제들 앞에서도 예수님의 크신 사랑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사랑은 아기자기한 인간적인 사랑이지만 예수님이 주시고자 하시는 사랑은 ‘진리에 기초한 영적인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성장하기를 원하시고, 그 소망 가운데 우리를 연단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원망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예수님의 크고 완전하신 사랑을 믿고 현실의 문제들 앞에서 끝까지 기도하고 도전해야 하겠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이틀이 지나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유대로 다시 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예수님을 말렸습니다.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시나이까?’ 그들은 돌로 치려하던 유대인들이 두려웠습니다. 눈을 감으면, 돌을 움켜쥔 유대인들이 아른거렸습니다. 꿈을 꾸어도 돌에 맞아 죽는 꿈을 꾸었습니다. 이러한 제자들의 두려움의 뿌리는 바로 죽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부활과 영원한 생명에 믿음이 없었던 제자들은 죽음 앞에서 두려움에 떨며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제자들에게 믿음을 심어주셨습니다. 다함께 9절과 10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낮이 열두 시간이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 낮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열심히 감당할 때입니다.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은 우리가 사명을 다할 때까지 데려가시지 않습니다. 우리의 목숨은 하나님의 뜻에 달린 것이지 결코 세상 사람들의 손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또한 사람이 실족하는 원인은 내면에 빛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빛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사람은 세상 어디를 가도 결코 실족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과 동행하지 않는 사람은, 날아오는 돌이 없더라도 스스로 실족합니다. 빛이 없을 때 사람은 세상의 길, 자기 생각의 길을 따라가다가 결국 사단의 먹이가 되고 맙니다. 제자들의 문제는 유대인들이 들고 있는 돌이 아니라, 빛 되신 예수님과 동행하지 못하는 문제였습니다. 우리가 사명을 감당할 때, 어디서든 돌을 든 무리들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가 섬기고 있는 캠퍼스에도 늘 무시와 조롱과 반발의 돌을 들고 있는 양들이 있습니다. 그 돌들이 우리에게 상처를 주고 때로는 우리의 열정을 무디게 만들기도 합니다. 한번 큰 돌에 심하게 맞은 사람은 다시 올라가기가 두려워집니다. 하지만 우리가 빛 되신 예수님과 동행할 때는 결코 실족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사명을 주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주어진 사명을 감당할 때까지 우리의 생명을 눈동자와 같이 지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맞는 돌은 예수님을 더 깊이 배우고 더욱더 예수님을 닮아가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예수님은 죽음을 자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제자들에게 죽음에 대한 개념을 완전히 바꾸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없을 때 우리에게 죽음은 모든 것의 끝을 의미합니다. 때문에 죽음을 생각할 때 인간은 누구나 두려움과 절망에 빠집니다. 하지만 예수님 안에 거할 때 오히려 죽음은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단잠을 자는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신령한 영의 몸으로 다시 깨어나는 시작이 됩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아직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라고 말하며, 어찌하든지 가지 않을 구실을 찾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에게는 예수님을 따라나설 실제적인 믿음이 필요했습니다. 15절을 보십시오.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을 통해서 제자들을 향하신 예수님의 소망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사망 권세를 밟고 일어서서 시대를 감당해 나갈 영적 지도자들이 되기를 소망하셨습니다. 비록 지금 제자들의 믿음은 다분히 이론적이고 연약하지만, 장차 이들이 실제적인 믿음의 사도들로 빚어질 것을 확신하셨습니다. 때문에 예수님은 실제적인 부활의 믿음과 확신을 심을 기회가 오자 기뻐하신 것입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그에게로 가자.’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 중 도마가 한참 고민하다가 결국 비장한 각오로 말했습니다.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도마는 의리의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제자들을 대표하여 예수님께 충성을 결단한 용기 있는 리더였습니다. 그의 단호한 결단은 언뜻 볼 때 죽음을 극복한 훌륭한 신앙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의리에 기초한 인간적인 충성에 불과하였습니다. 이러한 의리 신앙은 한계가 있습니다. 실제적인 죽음 앞에서 반드시 무너지게 됩니다. 실제로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한사람도 남김없이 모두 도망갔습니다. 단지 ‘죽으러 가자’ 라고 외치는 것만으로는 예수님을 끝까지 따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가신 길을 끝까지 함께 하기 위해서는 ‘승리의 부활과 영생’을 믿어야 합니다. 어쨌든 도마 덕분에 제자들 모두 예수님을 따라 나서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앞으로 큰 일 가운데 쓰임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부활 신앙’이 필요했습니다.

제 2장, 나사로야 나오라.(17-44)
  17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지 이미 나흘이라’ 나사로가 죽은지 나흘이 지난 후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마르다는 급히 달려 나와 원망의 말들을 쏟아놓기 시작했습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32절에 나오는 마리아의 반응도 똑같습니다. 부활신앙이 없을 때 인간은 죽음 앞에서 고통 받고 원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계속해서 마르다는 말합니다.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이는 믿음의 말처럼 보이지만 뒤에 나오는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라는 말과 연결할 때 이 믿음이 막연한 이론적인 믿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르다에게는 막연한 미래에 대한 믿음은 있었지만, 예수님이 현재 이 순간 능력으로 역사하실 것이라는 구체적인 믿음이 없었습니다. 막연한 믿음을 가지는 사람은, 바로 이 순간 실제적으로 역사하시는 예수님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그저 언젠가 잘 되겠지, 언젠간 양들이 변화되겠지’ 라는 막연한 믿음은, 예수님이 원하시는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는 구체적으로 233개국 7000캠퍼스를 위해, 올 한해 300명의 유능한 성경 선생 양성을 위해, 허락하신 양 한명이 올해 안에 변화되는 것을 위해 구체적으로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각자의 구체적인 인생 문제들이 이 순간 주님 앞에서 해결될 것을 믿고,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심어 주시고자 하신 믿음이 무엇입니까? 다 같이 25,26절을 읽어보시겠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부활이요 생명’이라는 것은 ‘죽음이 간섭할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을 말합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이 말씀은 원어에 현재형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에게는 모든 것이 현재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예수님의 부활은 십자가 사건 이후에 나오지만, 십자가 사건 이전인 이때에도 예수님은 부활의 주님이시며, 2000년이 지난 오늘 이 순간도 예수님은 부활의 주님이십니다. C.S. 루이스는 그의 저서 ‘순전한 기독교’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소설책을 볼 때, 소설책 속 주인공들(인간들)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라는 시간적 순서에 따라 살고 있지만, 책을 읽고 있는 사람(예수님)은 책속의 시간을 넘나들며 시간의 순서에 상관없이 모두 현재형으로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알파요 오메가이신 예수님은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현재형으로 함께 보고 계십니다. 때문에 십자가에서 부활하신 주님이, 부활사건 이전에도 제자들에게 부활과 생명의 권능자가 되시며, 2000년이 지난 이 순간 우리들에게도 여전히 부활과 생명의 권능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는 부활과 생명의 권능자이신 예수님을 믿을 때, 죽은 자는 예수님을 통해 생명을 덧입고 부활할 것이요, 살아 있는 자는 사망이 주는 두려움이나 권세에 결코 간섭 받지 않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병든 영혼, 상처 입은 영혼, 사망 권세에 짓눌린 영혼일지라도 부활과 생명의 권능자이신 예수님을 믿으면 바로 그 순간 현재형으로 부활의 능력을 체험하게 됩니다. 우리들의 삶 속에는 항상 죽음의 세력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때문에 사람들은 현재 내가 망하지 않을까? 뒤쳐지지 않을까? 고통 받고 힘들어지지 않을까? 염려하며 하루하루 걱정과 근심 속에 살아갑니다. 이 세력에서 벗어나고자 나름대로 물질을 의지하고, 사람을 의지하고, 세상 타이틀을 의지합니다. 이것도 안 되면, 이 고통을 원망과 탄식으로 해소합니다. 무기력하게 누워있거나, 고통을 잊기 위해 세상적인 즐거움들을 찾아 나섭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더라도 결코 사망 권세에서 벗어날 수 없고 결국 죽습니다. 부활 신앙이 없을 때, 우리는 제자들과 같이 두려움에 떨며, 사명을 감당할 힘을 낼 수 없습니다.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원망하며 울고 있던 마리아와 마르다, 그리고 유대인들의 모습은 바로 부활 신앙이 없는 인간들의 실존이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사망 권세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실제적인 부활 신앙을 덧입어야 합니다. 고전15:42~44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부활신앙을 덧입을 때, 우리는 사망권세를 이기게 됩니다. 썩어 없어질 세상 것들을 소망하지 않고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 안에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모두 도망갔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부활 후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거하심으로, 이들을 부활의 산 증인으로써 견고하게 세우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모진 핍박과 고난 가운데에서도,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놀라운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그 안에 있는 생명력은 실제적으로 믿고 영접하는 자들을 통해, 참으로 놀랍게 역사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이는 바로 우리의 ‘실제적인 현재의 믿음’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네가 이것을 아느냐? 잘 이해하겠느냐? 라고 묻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네가 이것을 믿느냐’ 하시며 믿음을 요구하시고 믿음을 심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고백할 때, 예수님의 부활이 나의 부활이 되고, 예수님의 생명이 나의 생명이 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늘 현재형입니다. 때문에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바로 이 순간 그 부활의 생명력이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임하게 됩니다. 믿음 가운데 굳게 선 부활의 증인들에게는 두려움과 한계가 없습니다. 어떠한 세상 두려움과 사망 권세도 그들을 감당치 못합니다. 히 11:35b-38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부활의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는 세상을 이기게 됩니다. 작은 문제 앞에서 두려움과 절망 가운데 떨던 사람이, 도전하고 개척하고 정복하는 역사창조의 주역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단이 심는 현실 문제들 앞에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예수님은 다만 우리 믿음만을 원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이 때 마르다는 신앙 고백하였습니다.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저는 어린 시절 군인이셨던 아버지 덕분에 이사를 자주 다녔습니다. 정든 곳을 떠나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한다는 것은 어린 나이에 엄청난 두려움과 스트레스였습니다. 고교 시절에는 경쟁이 치열했던 학교 분위기 속에서 시험과 입시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렸습니다. 모의고사 점수 몇 점에 희비가 엇갈리는 생활이었습니다. 이 시절 저의 신앙생활은 항상 예수님과의 아기자기한 인간적인 관계였습니다. 저는 이 땅에서의 즐거움과 안정된 생활을 좇아 살았고, 주위 사람들도 그러한 길을 가고 있다고 인정과 격려를 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러한 삶 가운데 자유함과 기쁨보다는 불안과 두려움에 시달릴 때가 많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요6장 ‘생명의 떡’ 말씀으로 저를 찾아오셨고, 제 마음 가운데 영생에 대한 소망을 심어주셨습니다. 영생에 대한 소망은 사망 권세 아래 고통 받던 저에게,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와도 같았습니다. 저는 믿음으로 이 말씀을 붙들었고, 저의 인생을 드릴 것을 서원기도 하였습니다. 믿음으로 기도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99년 한의대 입학과 동시에 말씀공부로 초청해주셨고 그 가운데 은혜로 캠퍼스 개척과 세계 선교의 사명을 저의 인생 사명으로 영접하게 하셨습니다. 이후 저는 학생 목자로 쓰임 받으며 숱하게 많은 한의대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지만 때마다 저 혼자 돌만 맞고, 예수님은 늘 침묵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침묵하시는 가운데 저는 한의대생들이 가지고 있는 우리 모임에 대한 뿌리 깊은 오해와 불신들과 싸워야 했고, 그들의 고질병인 교만과 세상 정욕의 죄 문제와 싸워야했습니다. 저는 점점 그들이 던지는 돌이 두려워졌습니다. ‘내 양을 먹이라.’는 말씀이 심령에 울릴 때마다, 나에게 주어진 사명이 너무나 부담스럽게만 여겨졌습니다. 사단은 저의 내면에 불신과 두려움이라는 사망 권세를 심기 시작했고, 세상 사람들을 통해 이제는 사명보다 세상에서 자립하도록 준비해야 하지 않느냐고 속삭였습니다. 그리고 개원을 통해, 눈 앞에 현실문제에만 얽매여 노예백성처럼 살도록 바쁘게 몰아쳤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이번 메시지를 통해 제가 진정으로 소망하는 것은 이 땅에서 썩어 없어질 것들이 아니라, ‘영원한 부활과 생명’이요, 이에 이르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있음을 분명히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이 말씀은 저에게 참으로 놀랍고도 감사한 말씀입니다. 제자들처럼 실제적인 믿음이 없이, 단지 습관과 의리를 좇아 행하던 저에게 실제적인 믿음을 가르쳐주시는 말씀입니다. 이 시간 제가 감사함으로 주님께 고백합니다. ‘주님 제가 믿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습니다.’ 제가 일생 이 믿음위에서 복음전파의 사명을 감당하는 제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연약한 자를 제자로 부르시고, 부활의 믿음을 심으시고, 그 믿음 위에 역사하시고 열매맺고자 하시는 예수님께 경배와 찬양을 드립니다.
  39절을 보십시오. 마르다의 믿음의 고백을 받으신 예수님은 ‘돌을 옮겨 놓으라.’ 말씀하셨습니다. 돌은 예수님의 역사하심을 가로막고 있는 의심과 불신의 장애물입니다. 마르다의 마음 가운데에는 ‘돌을 옮긴다고 해서 죽은지 나흘이나 된 오빠가 살아날 수 있겠는가? 괜히 돌을 치웠다가, 썩어가며 냄새를 풍기는 오빠의 추한 모습만 드러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의심과 불신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40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우리는 믿음의 고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고백을 기초로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의심과 불신의 돌을 옮기며 순종을 하는 자는,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역사하심을 가로막고 있는 돌들을 옮겨야 합니다. 기도와 말씀을 통해서 우리 안에 있는 경험과 상식에 기초한 의심과 불신의 돌들을 발견하고 옮겨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순종하여 돌을 옮길 때, 예수님께서 친히 그 믿음과 순종위에 역사하십니다. 무덤의 돌을 옮기자 예수님은 큰 소리로 부르셨습니다. ‘나사로야 나오라.’ 그러자 죽은 나사로가 무덤에서 나오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돌을 들고 있던 유대인들도 얼떨결에 이 기적의 증인들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를 살리심으로 부활의 능력을 나타내셨습니다. 우리에게는 양을 살릴 능력이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살리십니다. 우리는 다만 믿음으로 순종하여 돌을 옮기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친히 양들의 이름을 부르시고, 그 생명 구원 역사를 이루십니다. 나사로의 부활은 예수님의 부활의 예표가 됩니다. 나사로는 부활했으나 또 죽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은 영원히 죽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심으로 사망 권세를 완전하고도 영원히 파괴하셨고, 믿는 우리에게 부활과 영생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시간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이 부활의 신앙을 깊이 가르쳐 주시고 계십니다.

결론적으로,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 안에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때문에 부활 신앙 위에 견고히 선 사람에게는 사망 권세가 자리 잡을 수 없습니다. 부활 신앙 위에 믿음과 순종을 드리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우리 모두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께 믿음과 순종을 드리는 자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이를 통해 사망 권세가 왕 노릇하는 이 세상 가운데에서 부활의 산 증인으로 쓰임 받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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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출애굽기 [2009년출애굽기제13강] 피로 세운 언약 관리자 2009-07-05 2815
33 출애굽기 [2009년출애굽기제12강] 네가 백성 앞에 세울 법규는 이러하니라.. 관리자 2009-06-28 2830
32 출애굽기 [2009년출애굽기제11강] 여호와의 백성이 지켜야 할 계명(십계명.. 관리자 2009-06-21 2458
31 출애굽기 [2009년출애굽기제10강] 내 말을 잘 듣고 지키라 관리자 2009-06-14 2664
30 출애굽기 [2009년출애굽기제9강] 혼자 할 수 없으리라 관리자 2009-06-07 2670
29 출애굽기 [2009년출애굽기제8강] 하늘에서 양식을 내리리니 관리자 2009-05-31 2593
28 출애굽기 [2009년출애굽기제7강] 홍해에 길을 내신 하나님 관리자 2009-05-24 3099
27 출애굽기 [2009년출애굽기제6강] 그 피가 표적이 될지라 관리자 2009-05-17 3500
26 출애굽기 [2009년출애굽기제5강]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관리자 2009-05-10 3696
25 출애굽기 [2009년출애굽기제4강] 네가 아니라 내가 하리라 관리자 2009-05-03 2948
24 출애굽기 [2009년출애굽기제3강]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리라 -김반석 관리자 2009-04-26 3050
23 출애굽기 [2009년출애굽기제2강] 왕자에서 나그네로 관리자 2009-04-19 2658
22 출애굽기 [2009년출애굽기제1강] 학대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니 관리자 2009-04-14 2694
21 누가복음 2009 부활절수양회 1강<청년아 일어나라>-함바나바 관리자 2009-04-13 2734
20 누가복음 2009 부활절수양회 1강<청년아 일어나라>-천수원 관리자 2009-04-13 2786
19 누가복음 2009 부활절수양회 1강 <청년아 일어나라>-김태영 관리자 2009-04-13 2867
18 요한복음 2009 부활절수양회 2강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장원규 관리자 2009-04-12 2661
17 요한복음 2009 부활절수양회 2강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최바울 관리자 2009-04-12 2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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