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세계선교 | 각부모임 | 경성소모임 | 성경연구 | 사진자료실 | 영상자료실 | 경성쉼터 | JBF/EBF/CBF | 기타 |

회원등록 비번분실

  Bible Study  
주일예배메시지
성경공부문제지
수양회강의
특강
구약강의자료실
신약강의자료실
강의안책자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0-07-19 (일) 13:04
분 류 마태복음
첨부#1 2020년_마태복음_제20강-1.hwp (30KB) (Down:32)
ㆍ추천: 0  ㆍ조회: 406      
IP: 61.xxx.145
[2020년 마태복음 제20강]네 종류의 밭의 비유
2020년 마태복음 제 20 강        
말씀 / 마태복음 13:1-23
요절 / 마태복음 13:23

네 종류의 밭의 비유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심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1절을 보면 그날 예수님은 집에서 나가 바닷가로 가셨습니다. 그 날은 어떤 날입니까?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이삭을 잘라 먹어 비난받은 날, 한 손 마른 자를 고침으로 살해위협을 당한 날입니다. 귀신들린 자를 고쳤더니 귀신의 힘으로 고쳤다며 매도당한 날, 예수님이 이상해진 것으로 오해한 가족들이 몰려와서 예수님을 데려가려고 했던 날입니다. 제자들은 혼동스러웠을 것입니다. ‘아니, 사람들의 반응이 왜 이렇지?, 혹시 우리가 잘못 믿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예수님은 비유를 통해 그 이유를 말씀하여 주십니다.(2) 3-8절은 예수님의 비유입니다. “여러분, 씨 뿌리는 농부가 밭에 나가 씨를 뿌렸습니다.(3) 어떤 씨앗은 길가에 떨어졌는데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습니다.(4) 어떤 씨앗은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여 금방 싹이 나왔습니다.(5) 하지만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라 버리고 말았습니다.(6) 어떤 씨앗은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 기운에 막혀  더 이상 자라지 못했습니다.(7) 그런데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어떤 것은 백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습니다.(8)”

예수님은 비유를 마치시고 말씀하십니다. 9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귀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지만 귀가 있다고 하여 다 같은 귀는 아닙니다. ‘사람은 자기 듣고 싶은 대로 듣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똑같은 새소리라도 듣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우는 소리로 들리기도 하고 노랫소리로 들리기도 합니다. 그와 같이 자기 입맛대로 예수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인생문제 해결을 간절히 원하면 거기에 해당하는 말씀만 듣고자 하고,  전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면 전통을 지키라는 말씀으로만 들을 수 있습니다. 혹은 말씀에 집중하지 못하고 주변 환경에 마음을 빼앗겨 건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저기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잡는 어부들은 하루에 몇 마리나 잡을까? 배 끌고 나가면 돈 좀 벌 수 있을까?’ 예수님은 그들 모두를 향해 들으라고 외치십니다. 말씀을 제대로 들으려는 마음준비하라는 말씀입니다.

듣고자 하는 사람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10절을 보십시오. 제자들은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를 알고자 물어왔습니다. 제자들은 끊임없이 알기를 원했고 배우고자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에게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허락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11) 비밀은 가치 있는 것입니다. ‘저기 서랍을 열면 백원 짜리 하나 있어요!’ 그런 것을 비밀이라고 말해주면 욕먹습니다. 정말 유용하고 가치 있는 것들에 대해 비밀이라는 단어를 붙입니다. 또한 비밀은 특정한 사람들, 허락받은 사람들이 아니면 알 수 없는 것을 비밀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비밀을 말할 때에는 ‘내가 너에게만 말해주는 것인데...’라는 전제가 흔히 붙습니다. 어떤 2세가 본문 말씀을 공부하면서 이런 조크를 했습니다. “말씀의 비밀을 너무 일찍 아는 것이 좋지 않은 것 같아요. 어릴 적부터 귀에 박히게 들어서 그런지 이제는 비밀 같지 않고 누구나 다 아는 그저 그런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우리는 그렇게 느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비밀은 비밀입니다. 하나님의 용서와 구원, 은혜와 진리, 부활과 영생, 성령의 열매..., 이 귀한 것들이 말씀 안에 있음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릅니다. 인생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죄가 주는 절망과 사람이 주는 상처로부터 구원받는 것입니다. 사망의 그늘에서 벗어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참된 안식을 누리고 성령의 열매를 맺는 내적 천국을 갖고 사는 것입니다. 아무리 높은 자리에 올라갈지라도 그것이 없다면 지옥에 살고 있는 인생일 수 있습니다. 천국의 비밀은 사람이 줄 수 없으며 오직 성령의 도우심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성령은 말씀으로 택함받은 자들에게 끊임없이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습니다.(히4:12) 같은 말씀이라도 어제 들려주는 의미가 다르고 오늘 들려주는 의미가 다릅니다. 20대에게 주는 마태복음의 비밀이 있고 30대에게 주는 마태복음의 비밀이 있습니다. 저는 2003년 개척을 하 후 4번째 마태복음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데, 때마다 다름을 느낍니다. 말씀은 때마다 새로운 지혜와 감동과 영적 에너지를 공급하여 주십니다.

그러나 듣고자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뻔한 이야기, 다 아는 이야기가 되어 버립니다. 이는 신자들이라고 하여 예외가 아닙니다. 마태복음이나 누가복음이나 요한복음, 다 똑같은 이야기가 되어버립니다. 예를 들면 십자가 말씀도 그러합니다. 마태복음이 말하는 십자가 메시지와 누가복음의 십자가 메시지, 요한복음의 십자가 메시지가 다 다른데, 어느 말씀을 듣든지 그냥 예수님이 끔찍하게 고통당하다 죽은 사건 정도로만 듣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면 성경 말씀 전체가 다 똑같은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그냥 하나님 믿으라는 이야기야!’ 듣고 있는 것 같으나 듣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 한절 한절을 의미있게 듣지 않는 그때부터 천국 비밀이 들려오지 않습니다. 들을 귀를 가진 사람은 갈수록 풍성해지고 들을 귀가 없으면 갈수록 곤고해집니다. 록펠러 어머니가 록펠러에게 남겼던 10가지 유언중의 하나가 ‘주일예배 때 앞자리에 와서 앉으라’였습니다. 십일조 유언만 남긴 것이 아닙니다. 앞자리에 앉으려면 일찍 와야 하고, 일찍 오면 세상일에 달구어진 마음을 식히고 기도하게 됩니다. 피곤하여 졸기 쉬운 날이면 커피라도 한잔 마시며 몸과 마음을 예비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말씀을 잘 듣기 위해 힘쓰는 것이 풍성한 신앙생활로 연결됨을 체험했던 것입니다. 1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는 말이 있듯이, 소원있는 자들이 말씀의 비밀을 풍성히 얻고 더욱 더 소원을 갖습니다. 소감의 맛을 아는 사람이 더욱 깊이 소감을 쓰면서 믿음과 가치관을 새롭게 합니다. 반대로 소원이 없어지면 소감을 쓰면서 반발심을 키워갑니다. ‘도대체 이딴 거 왜 하라는 거야!’ 과거에는 ‘그래도 예배는 간다’는 믿음을 가졌던 사람이었는데, 점점 예배도 잊고 말씀공부에서도 멀어집니다. 구원의 은혜나 부르심마저 빼앗겨버리고 뿌리부터 흔들릴 수 있습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알기 쉽게 비유로 전하였는데, 이스라엘은 도무지 들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목자가 전심을 다해 말씀을 전했는데, 양들의 반응이 시큰둥하면 힘 빠지고 절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낙심하지 않습니다. 이는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붙들었기 때문입니다. 말씀으로 이스라엘의 완악한 반응을 해석하신 것입니다.(14) 15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을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선지자 이사야의 안타까운 마음이 녹아 있습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면 얼마든지 깨달을 수 있는데, 마음을 완악하게 함으로 스스로 귀머거리가 되고 장님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왜 마음을 완악하게 합니까! 자기들의 원치 않는 쪽으로 고침받을까봐 두렵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나라를 이루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한데, 세상을 영적으로 섬기는 나라가 될까봐 두려웠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는 정도에서 경건의 모양만 내면서 자기 원대로 살고 싶었는데, 하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헌신하며 살아야 할까봐 두려웠습니다. 사람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머리가 둔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마음을 고쳐먹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자기 영광이나 세상욕심, 혹은 소시민으로 사는 것을 제일 좋은 것으로 마음 먹고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진정한 축복에 대해 믿음을 심습니다. 16,17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16)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17)” 구약의 많은 선지자와 의인들이 그리스도를 만나 천국복음의 비밀을 보고 듣기를 원하였지만, 보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을 만났고, 천국 복음을 온전히 보고 들을 수 있는 자리에 선 것입니다. 이점에서 제자들은 구약의 어느 선지자나 의인들보다 큰 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떠합니까! 제자들이 육성으로 말씀을 들었다면, 우리는 성경을 통해 듣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듣지 못했던 사도 바울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도 들었습니다. 제자들에게는 믿기 힘든 약속으로만 주어졌던 말씀들, 예를 들면 ‘복음이 만국에 전파되리라’는 말씀들이 약속이 아닌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우리는 듣고 보고 있습니다. 어떤 점에서 보면 우리는 구약의 선지자와 의인들보다, 그리고 본문에 나오는 제자들보다 더 많은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우리의 눈과 귀가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있다면,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배우기에 애쓰는 제자들로 살기를 기도합니다. 그런 자들에게 천국의 비밀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소망하기를 기도합니다.

이제 예수님은 씨뿌리는 비유를 설명해주십니다.(18)
첫째. 길가에 뿌려진 씨.(19) 19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 길가는 사람들이 오가며 딱딱하게 굳어진 땅입입니다. 길가밭은 사람들과의 관계로 굳어진 마음을 상징합니다. 기독교인에게 상처나 실망을 받아 편견이나 선입견을 갖게 되어 딱딱한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안식일을 무시한다며 예수님에게 마음을 닫아버린 것처럼, 메신저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말씀이 들어오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혹은 권위있는 무신론자의 사상을 따라가다가 ‘믿음은 비과학’이라는 전제를 내리고 마음을 닫아버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오랫동안 일대일 공부를 하고 주일예배를 드렸는데도 도통 성장하는 것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목자가 ‘왜 겸손히 배우고 순종하지 않습니까!’ 물었습니다. 그는 대답했습니다. ‘나는 이런 식으로 말씀을 받아들이는 단순한 체질이 아닙니다. 나는 목자님들과 다른 스타일, 다른 체질의 인간입니다.’ 그와 같이 사람과의 갈등, 사람의 영향력, 사람의 스타일 문제로 마음이 딱딱해지는 것이 표면적인 현상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진단은 ‘악한 자’, 사탄이었습니다.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배후에는 사탄이 있습니다. ‘악한 자가 와서 빼앗는 것이었습니다.’ 교만이나 편견, 불신으로 말씀을 튕겨내면, 사탄은 그 말씀을 가져가 버립니다. 새가 곡식을 쪼아먹으면 그 씨앗은 더 이상 아무 일도 할 수 없듯이, 빼앗긴 말씀은 더 이상 그 사람에게 아무 역사를 일으키지 못합니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속담이 있지만, 성경공부는 그와 같지 않습니다. 오히려 오랫동안 성경을 공부했다는 교만을 쌓아 더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마음 깊이 영접하는 말씀이 있어야만 성령의 역사하는 통로가 됩니다. 한 사람이 오랫동안 교회를 다녔는데도 전혀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에게 문제의식이 파고 들었습니다. “나는 왜 이리 믿음도 자라지 않고 은혜도 없는 것일까?” 그는 성경을 읽다가 19절 말씀을 통해 말씀을 빼앗겼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말씀을 빼앗기지 않아야 한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말씀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성령께서 말씀을 들려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거칠고 무식했던 땜장이였던 그가 은혜롭고 지혜로운 사람으로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성경 다음의 베스트셀러 ‘천로역정’의 저자 존 번연입니다. 말씀을 듣는 것은 악한 자 사탄과의 영적 싸움입니다. 보이지 않는 영적 싸움의 한 가운데 있음을 알고 겸손하고도 간절한 마음을 예비하고 주님의 은혜를 구하면서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악한 자에게서 보호하사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풍성한 천국의 비밀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둘째. 돌밭같은 마음밭(20) 20,2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예수님의 비유에서 연결되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즉시, 잠시, 곧’입니다. 돌밭의 특징은 모든 것이 금방 금방입니다. 말씀의 기쁨도 잠시, 견디는 것도 잠시, 넘어지는 것도 곧입니다. 말씀은 들리는 자에게 기쁨을 줍니다. 죄사함의 기쁨, 진리를 아는 기쁨, 영생을 확신하는 기쁨, 내면의 상처를 회복하고 위로받는 기쁨을 줍니다. 그런 기쁨만 있다면 좋은데..., 말씀은 기쁨과 함께 잠시 후에는 환난이나 박해같은 고난을 수반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님 말씀대로 살다가 감옥에 갇히고 순교까지 했습니다. 그 정도의 고난은 아닐지라도, 말씀을 따라가면 아픔과 고난을 만나게 됩니다. 말씀은 근본적으로 이 땅의 영광이 아닌 하늘 영광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중심적인 가치관을 회개하고 하나님 중심의 가치관을 갖도록 도전해 오기 때문입니다.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마22:39),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16:24), 사명의 고난, 헌신과 순종의 고난도 가져옵니다.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2:10) 말씀을 따라가면 이것저것 결단해야 합니다. 십일조도 해야 하고 주일예배도 드려야 하고 시간과 에너지를 드려 전도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말씀을 따라가면 기쁨으로만 끝나지 않고 고난을 겪고 수고하는 세계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런 고난이 힘들기에 은혜와 부르심이 있는데도 떠나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진단은 고난문제가 아니라 뿌리문제입니다. ‘그 속에 뿌리가 없음으로’ 고난 때문에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뿌리가 없음으로 넘어지는 것입니다. 신앙의 세계에서 처음부터 말씀에 뿌리내린 사람, 나는 다 필요 없고 오로지 말씀대로 사는 것이면 족하다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흙 아래 돌이 감추어져 있는 것처럼, 우리의 내면 깊숙이에는 이것저것 감추어진 것들이 있습니다. 칭찬받고 싶은 인정의 돌, 자기 영광의 돌이 있습니다. 실패를 만회하고 싶은 인생 회복의 돌, 명예와 자기 이상의 돌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다보면 인정도 받고 영광도 누리고 인생의 실패를 만회하고 고상한 인생을 살 것이라는 기대감입니다. 그러다가 고난이 닥쳐오면, ‘나는 무엇을 위해 신앙생활하는가?’ 본질적인 질문에 부딪히게 됩니다. 돌을 깨고 예수님 자체에 뿌리를 깊이 내리든지, 아니면 고난이 없는 곳을 찾아 떠나가든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고난이 없는 곳을 목적으로 삼으면 당장에는 편할지 모르지만 결국 남는 것이 없습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만 열매를 맺듯이, 뿌리를 내려야만 말씀 체험도 있고 사명도 있고 열매도 있고 하나님 나라의 상급도 있는 것입니다. 그 점에서 고난은 인정과 축복만을 원했던 얄팍한 신앙생활을 깨뜨리고 예수님에게 뿌리내리는 축복의 통로입니다. 말씀 자체에 뿌리를 내리면서 점점 깊은 영적 세계로 들어가게 하고 흔들리지 않는 영적 거목으로 자라게 합니다.
요즘 코로나로 인해 고통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우울감에 시달리는 사람들도 많아졌지만, 삶에 대해 진지하게 돌아보고 통찰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습관적으로 예배 나오던 사람이 삶과 죽음을 생각하고 인생의 본질을 생각하며 간절함으로 말씀을 듣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람문제에만 예민하던 목자생활에서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를 의식하는 목자생활로 전환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고난이 문제가 아니라 뿌리가 문제입니다. 우리는 즐겁고 편안한 신앙생활에 목표를 둘 것이 아니라 우리 신앙의 뿌리를 깊이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기쁨과 은혜만을 좇아다니는 얄팍한 신앙생활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한 말씀을 끝까지 붙들고 예수님의 깊은 세계를 배우고자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시절을 좇아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우리 각 사람에게 이 믿음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가시떨기밭(22) 2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말씀이 좋은 줄도 알고 환난이나 박해같은 고난을 견딜 정도로 뿌리까지 내렸습니다. 그런데도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다면 가시의 기운에 막혀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정도 성숙한 신앙인들이 부딪힐 수 있는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두가지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입니다. 세상에는 염려스러운 일들이 끊임없이 많습니다. 공부는 어렵고 취업문은 좁아지고 집값은 오르고 아이들 키우기는 힘들고 세계 경제는 불황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습니다. 세상의 염려거리는 끊임없습니다. 꼴등도 염려에 시달리지만, 1등도 염려에 시달립니다. 염려는 근본적으로 잃어버릴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서 하나님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됩니다. 재물의 유혹은 많은 돈을 벌어서 마음껏 누리고 싶은 욕심입니다. 좀 더 좋은 집, 좀 더 좋은 차, 좀 더 좋은 음식을 먹기 위해 부족함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돈을 벌어야 겠다는 욕심입니다. 이는 하나님 사랑이 아닌 세상 정욕에서 비롯됩니다. 이러한 가시들에 찔린 사람은 타이어가 펑크난 자동차처럼 달리지 못하고 주저앉게 됩니다. 염려의 가시에 찔리면 어제와 오늘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잘 살아온 사람인데도 망할 것처럼 부정적인 결론을 내리고 무기력과 자포자기에 빨려듭니다. 그때 그 시절 그토록 용감했던 믿음의 사람이 비겁해지고 소심해지고 분별력을 잃어버립니다. 유혹의 가시에 찔리면 영적 싸움이 하찮게 보이고 주와 복음역사에 드리는 것을 아까와하게 됩니다. 결국 인색한 영혼이 되어 시험과 올무에 빠져 힘을 쓰지 못합니다.
세상의 염려나 재물의 유혹이 파고들어올 때,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것이 아닙니다. ‘나를 망하게 하는 세력이 파고 들어오고 있구나!’ 영적 위기의식을 갖고 믿음의 방패를 들어야 합니다. 주님 말씀의 검으로 단호하게 잘라내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마6:27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딤전 6:10절은 말씀합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서 자기를 찔렀도다” 염려와 유혹의 가시를 물리침으로 내적 외적으로 풍성한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마지막으로 좋은 마음밭입니다. 23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예수님은 좋은 땅에 대해 다만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라 말씀하십니다. 좋은 땅은 타고난 어떤 체질이 아니라 듣고 깨달으면서 좋은 밭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지금 말씀 풍성, 영적 비밀 풍성하신 목자님들 대부분 과거 심각한 죄인들이었습니다. 딱딱하고 돌덩이 가득하고 온갖 가시가 박혀있는 고슴도치같은 영혼이었습니다. 그런데 꾸준히 말씀을 들으며 마음을 갈아엎다보니 영적으로 풍성한 천국 비밀을 갖게 되었습니다. 많은 열매를 맺기 원한다면 환경이나 조건문제로 바라볼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말하는가?, 세상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가?’ 그런 소리에 휘둘려서 우왕좌왕하지 말고 ‘말씀이 내게 무엇이라 하시는가!’ 거기에 집중해야 합니다.
날마다 엄청나게 많은 정보를 접하면서도 말씀을 듣기에는 인색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눈과 귀를 홀리는 것들, 우리의 마음을 빼앗는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어느 시대보다 간절한 영적 소원이 필요합니다. 악한 자에게 빼앗기지 않도록 기도하고, 고난이 올수록 한 말씀을 끝까지 붙들기에 힘쓰고, 때마다 자라나는 가시떨기를 잘라내기에 힘써야 합니다. 그러면 아무리 부끄러운 죄인이라도, 아무리 크게 망가진 사람이라도 풍성한 열매를 맺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마태복음의 저자 마태가 그 증인입니다. 창녀보다 못한 인간쓰레기라고 손가락질당하던 세리가 성마태가 되었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하나님 말씀에 귀를 열고 그것을 마음의 중심에 세우기에 힘쓰는 복된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0
3500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658 요한복음 [2020년 여름수양회 주제5강]내 안에 거하라 관리자 2020-08-09 326
657 요한복음 [2020년 여름수양회 주제4강]길, 진리, 생명 관리자 2020-08-08 263
656 요한복음 [2020년 여름수양회 주제3강]다 이루었다 관리자 2020-08-08 271
655 요한복음 [2020년 여름수양회 주제2강]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관리자 2020-08-08 265
654 요한복음 [2020년 여름수양회 주제1강]빛 되신 예수님 관리자 2020-08-08 275
653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22강]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 관리자 2020-08-02 370
652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21강]천국은 밭에 감추인 보화 관리자 2020-07-26 436
651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20강]네 종류의 밭의 비유 관리자 2020-07-19 406
650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19 강]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야 관리자 2020-07-12 425
649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18강]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관리자 2020-07-05 420
648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17강]쉬게 하리라 관리자 2020-06-28 407
647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16강]전도 여행 보내신 예수님 관리자 2020-06-21 378
646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15강] 내가 이 일을 할 줄을 믿느냐 관리자 2020-06-14 387
645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14강 ]나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관리자 2020-06-07 406
644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13강]바람과 바다를 잔잔케 하신 예수님 관리자 2020-05-31 449
643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12강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관리자 2020-05-24 402
642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11강]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관리자 2020-05-17 423
641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10강]대접 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하라 관리자 2020-05-10 482
640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9강]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관리자 2020-05-03 417
639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8강]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늘 아버지 관리자 2020-04-26 400
12345678910,,,37
서울 동대문구 이문2동 264-231
Tel:070-7119-3521,02-968-4586
Fax:02-965-8594
서제임스목자님메일:Suhjt@hitel.net
[UBF한국본부] [유럽UBF] [UBF국제본부] [UBF TV] [시카고UBF] [Mother Barry's Homepage]
[뉴욕UBF] [워싱턴UBF] [노스웨스턴UBF] [콜롬비아UBF] [코스타리카UBF] [프랑크푸르트UBF]
[키에프UBF] [상파울루UB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