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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12-02 (일) 12:39
분 류 열왕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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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열왕기상 제8강] 바알에게 도전한 엘리야
  2018년 열왕기상 제8강                                                        이인구

바알에게 도전한 엘리야

말씀/열왕기상 17:1-18:46
요절/열왕기상 18:37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오늘 말씀은 북이스라엘의 아합 왕 때 등장한 선지자 엘리야에 관한 내용입니다. 이스라엘의 죄는 아합 왕 때 절정을 이루어 아합 왕은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 여로보암의 죄를 가볍게 여기고 이스라엘에 바알신앙을 들여옴으로써 하나님의 심판을 재촉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엘리야선지자가 혜성처럼 등장했고 구약역사 전체를 통틀어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의 역사보다 더 드라마틱하고 빛나는 역사는 없습니다. 모든 선지자중 오직 엘리야만이 에녹처럼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하지만 그는 우리와 성정(마음씨)이 같은 사람이었습니다.(야고보서5:17) 그는 모든 인간들이 가진 연약함을 가졌습니다. 이런 엘리야가 가장 어두운 시대에 어떻게 놀라운 역사를 섬길 수 있었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어두운 시대 엘리야를 택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배우고 연약한 우리도 하나님역사가운데 쓰임 받을 수 있는 믿음을 덧입을 수 있길 기도합니다.

1. 엘리야의 믿음을 훈련하신 하나님(17장)
  1절을 보십시오. 길르앗에 사는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 왕에게 나타나 강력하게 경고했습니다.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당시 아합 왕과 그 추종자들은 바알 신을 비와 이슬을 다스리는 농경 신으로 믿고 섬겼습니다. 엘리야의 경고는 바알신과 아합 왕에 대한 강력한 심판의 경고였습니다. 엘리야는 백성들 뒤에서 왕에게 반감을 갖도록 은밀하게 속삭이며 여론을 움직이지 않고 그 땅을 바로잡을 수 있는 권세를 가진 왕에게 직접 나타나 경고하면서 심판을 막고자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에 대한 거룩한 분노와 하나님 영광을 위하는 거룩한 열정가운데 목숨 걸고 왕에게 경고했습니다. 하지만 아합은 회개하기는커녕 광분하여 그를 잡아 죽이려 했고 하나님께서는 그를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도록 하셨습니다. 사방에 그를 잡으려는 눈들이 깔린 상황에서 그는 누구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고 하루하루 먹고 살기가 힘든 상황에서 시냇물만 마시며 버텨야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까마귀들이 아침저녁으로 떡과 고기를 물어다주었습니다. 사실 까마귀는 이스라엘 백성이 접촉만 해도 부정한 것으로 여겼던 새였고 시체를 먹고 사는 가증한 새였습니다.(레11:15,39) 엘리야에게 음식을 주기보다 오히려 그의 음식을 빼앗고 그의 눈을 쪼아 먹을 수 있는 무자비한 새(잠 30:17)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시고 세상역사를 주관하시는 권능으로 까마귀들을 쓰셔서 엘리야를 먹이셨습니다. 사랑스러운 비둘기도 아니고 용감한 독수리도 아닌 까마귀를 쓰셔서 자신을 먹이신 하나님의 놀라우신 역사를 체험하면서 엘리야는 까마귀보다 완악한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변화될 수 있을 것이라는 소망을 갖게 됐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어떻게 까마귀가 물어다주는 것을 먹을 수 있느냐 말합니다. 엘리야는 왕궁의 이세벨의 상에서 먹는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처럼 호화스럽게 먹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아합을 피해 굴속에서 숨어 지내는 다른 선지자들보다는 더 잘 먹었을 것입니다. 최근 맛있고 진기한 음식을 찾아 먹는 것이 인생의 기쁨과 소망으로 삼은 이들이 많아졌고 수많은 맛집 광고를 접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제 치과병원 근처의 유명한 평양냉면집은 많은 이들이 그 맛을 체험하고자 한여름 뙤약볕에서 한 시간이나 줄서 기다리고 심지어 일본에서도 그 맛을 보기 위해 찾아옵니다. 하지만 음식 맛을 지나치게 좋아하는 것은 하나님의 종들에게, 특히 큰 사명을 맡은 선지자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일입니다. 우리는 최고의 음식을 먹는 자들을 부러워하는 대신 세상에는 우리가 먹다 버린 찌꺼기라도 먹기를 바라는 자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제가 어릴 때 아버지는 반찬투정을 하는 자식들에게 감자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북한주민들을 생각하도록 하셨습니다. 엘리야에게는 한 번에 꼭 한 끼 분의 음식만 전달되었는데 그것은 매일 하나님을 의지하고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는 하루하루 택한 자들을 먹이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하며 그 날의 양식은 그날에 맡기는 법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오늘의 양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내일의 양식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길 기도합니다.
  엘리야의 경고대로 비가 내리지 않고 가뭄이 지속되면서 엘리야가 마시는 그릿 시냇가도 마르게 됐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새롭게 머물 거처로 인도하셨습니다. 그곳은 시돈에 속한 사르밧의 과부 집이었습니다. 그런데 시돈은 이스라엘을 우상숭배로 오염시킨 이세벨의 조국일 뿐 아니라 바알 숭배의 본거지인 이방 땅이었습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누구도 엘리야가 바알의 본거지요 이세벨의 고향으로 숨어들어갈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역발상의 지혜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곳은 시돈의 잘사는 부잣집도 아니고 못살아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자의 집도 아닌 가난한 불신자 과부의 집이었습니다. 남편을 잃고 외아들과 사는 과부의 집에서 얻어먹는 것은 엘리야에게 큰 부담이었습니다. 더구나 엘리야가 처음 과부를 만났을 때 과부는 식량이 다 떨어져 아들과 함께 마지막 음식을 만들어 먹고 힘을 얻어 죽을 것이라 절망한 상태였습니다. ‘벼룩의 간을 빼먹는 것’도 한계가 있지 그런 과부에게서 무슨 도움을 얻을 수 있는가 엘리야는 낙심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엘리야는 “내가 그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리라.”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였습니다. 그리고 절망하는 과부에게 믿음으로 말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13,14) 낯선 나그네가 말하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말씀이 이방인 시돈여자에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설령 과부가 하나님을 믿는다 해도 낯선 나그네가 하나님의 선지자인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그러나 과부는 모든 의심들을 뛰어넘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엘리야의 말에 순종했습니다. 자신과 아들이 먹고 죽으려 했던 음식을 먼저 엘리야를 위해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러자 정말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통해 하신 말씀처럼 통의 가루도 병의 기름도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많은 이들이 극한 가뭄으로 굶어 죽는 상황에서 가난한 과부와 그 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해 살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사람의 믿음과 순종을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 엘리야의 믿음과 순종. 어떻게 엘리야는 하나님께서 가난한 과부를 통해 얻어먹게 하실 것이라는 말씀을 믿을 수 있었습니까? 엘리야가 날 때부터 믿음의 사람으로 태어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작은 믿음의 체험들을 통해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믿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는 먼저 하나님의 명령의 말씀에 순종해 아합에게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증거한 후 정말 수년 동안 비도 이슬도 내리지 않는 사실을 보고 하나님말씀의 진실성을 깨닫게 됐습니다. 또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그릿 시냇가로 갔을 때 정말 머리 나쁘고 탐욕적인 까마귀들이 아침저녁으로 자신에게 떡과 고기를 물어오는 것을 보고 하나님말씀을 경외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런 믿음의 체험들을 통해 담대하게 과부에게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심으로 전할 수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말씀에 대한 믿음으로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믿음은 순종입니다. 믿는다고 하지만 순종이 없으면 죽은 믿음입니다.
둘째, 과부의 믿음과 순종. 과부는 본래 하나님을 믿었던 신자도 아닌데 어떻게 갑자기 나타나 명령하는 엘리야의 말을 믿고 순종할 수 있었습니까? 엘리야의 인상이 무섭게 생겨 순종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또 어차피 굶어죽을 상황인데 한번 믿어나 보자는 생각으로 믿고 순종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과부는 하나님말씀을 믿음으로 확신 있게 전하는 엘리야의 영적권위에 자신도 모르게 믿게 됐습니다. 엘리야의 믿음의 말이 잠자고 있던 과부영혼을 깨운 것입니다. 과부의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신 일방적인 선물이었습니다. 또 그 믿음이 부족하고 흔들릴지라도 말씀에 순종한 것은 정말 현명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확고한 믿음으로 순종할 수 있지만 설사 믿음이 부족할지라도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는 복을 주셔서 진정한 믿음을 갖게 도와주십니다. 과부는 엘리야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굳건한 믿음은 아닐지라도 순종하여 자신의 양식을 먼저 엘리야에게 주었을 때 놀라운 믿음(순종)의 체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과부는 그 체험을 통해 하나님말씀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과부의 아들이 갑자기 병이 들더니 손쓸 시간도 없이 숨이 끊어져버렸습니다. 남편을 잃은 후 자신의 모든 것이었던 아들마저 죽자 과부는 절망하며 엘리야에게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와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기로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또 내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나이까.”(18) 과부는 자신의 죄 때문에 아들이 죽었다고 고통하며 절망했습니다. 아들의 죽음에 그 어미도 죽어갔습니다. 이에 엘리야는 그녀의 부르짖음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자신도 해결할 수 없는 절망적인 문제를 하나님께 들고 나갔습니다. 그는 아이의 시체를 안고 다락에 올라 자기 침상에 누이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간구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원하건대 이 아이의 혼으로 그의 몸에 돌아오게 하옵소서.” 그는 아이의 죽음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지금 아이의 죽음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지만 지금까지 부족한 자신과 함께 하시고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 하나님께서 아이와 그 어머니와 또 자신을 불쌍히 여기셔서 살려달라 간구했습니다.
  엘리야 시대까지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 역사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엘리야는 자신을 통해 위대한 구원역사를 이루시는 하나님께서 이 어린생명을 죽지 않게 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죄악된 시대, 죄악된 땅에서 하나님을 믿는 이방과부의 외아들을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실 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의 간절한 부르짖음에 즉시 아이를 살리셨습니다. 다시 살아난 아들을 품에 안고 과부는 엘리야를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을 영접할 수 있었고 또 죄인의 부르짖는 간구를 들으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영접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과부 아들의 죽음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아닌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요9;3) 엘리야는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의 주관자이실 뿐 아니라 생명의 주관자이심을 깨닫게 됐습니다. 믿는 자들을 먹여주심으로 죽지 않도록 하실 뿐 아니라 죽어도 살리시는 권능의 하나님을 영접하게 됐습니다. 하나님역사를 위해 헌신하는 자신의 생명을 지키실 뿐 아니라 죄로 죽은 이스라엘 백성들도 회개할 때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게 됐습니다. 이제 엘리야는 자신을 죽이려하는 아합과 바알의 추종자들과 맞서 하나님영광을 위해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도전할 믿음을 갖게 됐습니다.

2. 바알에게 도전한 엘리야(18장)
  마침내 가뭄이 시작된 지 3년 6개월 후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아합에게 나가라 명령하시면서 비를 내리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바알과 그 추종자들을 심판하시기 위해 엘리야를 출격시키셨습니다. 엘리야가 아합을 만나러 가던 중 아합의 왕궁을 관리하는 (2인자) 오바댜를 만났습니다. 아합 왕은 극심한 가뭄과 기근 속에서 백성들이 죽어가고 자신의 가축들이 죽어가자 그가 신뢰하는 오바댜와 함께 땅의 물의 근원을 찾던 중이었습니다. 오바댜가 아합 왕과 서로 떨어져 찾던 중 엘리야를 만난 것입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오바댜는 어릴 때부터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였고 죄악된 아합 왕 밑에서 일하지만 하나님영광을 위해 사는 신자였습니다. 아합 같은 우상숭배자가 오바댜 같은 신자를 등용하고 자신의 왕궁까지 맡긴 것은 참으로 놀랄만한 (아이러니)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바댜는 왕궁을 관리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고 무엇보다 신뢰할만한 진실하고 충성된 사람이었습니다. 이처럼 신자들은 세상일에 대해서도 하나님께 하듯 정직과 충성으로 감당해야 본인뿐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일에 불성실하고 부정직하다면 오히려 하나님영광을 가리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신자가 죄악된 세상에서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요 빛과 소금으로 살길 원하십니다. 죄악된 세상을 떠나는 것도 믿음이지만 죄악된 세상에 남아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것도 믿음입니다. 당시 많은 신자들이 시대의 대세를 따라 자기 유익을 위해 하나님을 떠나 바알 편에 섰지만 오바댜는 끝까지 믿음의 중심을 지켰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오바댜에게 귀한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오바댜는 광신적인 바알숭배자 이세벨이 수많은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일 때 왕궁의 높은 직책을 이용하여 목숨 걸고 선지자 백 명을 굴에 숨기고 떡과 물로 먹여 살렸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이스라엘의 극악한 범죄에도 하나님께서 심판을 미루신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온 이스라엘의 죄악 속에서도 오바댜같이 신앙을 지키며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남은 백성들이 있었기 때문에 오래 참으신 것입니다.(왕상19:18)
  17절을 보십시오. 오바댜를 거쳐 마침내 엘리야가 아합왕 앞에 마주 서게 됐습니다. 만약 아합이 정탐꾼들을 통해 엘리야를 찾아내 붙들었다면 의기양양하게 승리의 노래를 불렀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엘리야가 수많은 천사들을 대동한 것처럼 위풍당당하게 홀로 자신 앞에 찾아온 것을 보며 그 영적권세에 기가 죽어 두려워 떨었습니다. 아합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너냐?” 그는 이스라엘의 극한 가뭄과 기근의 원인이 엘리야 때문에 바알신이 노한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엘리야가 대답했습니다.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버지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들을 따랐음이라.”(10) 엘리야는 뻔뻔하게 환난의 책임을 떠넘기는 아합과 우상숭배자들의 죄를 드러내기 위해 갈멜산 대결을 선포했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만이 세상을 통치하시는 신이심을 드러내고 우상에 빠진 백성들을 돌이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쳐 바알의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400명과 갈멜산에서 대결하고자 했습니다. 마침내 갈멜산 위에서 최후의 일전을 위해 아합과 850명의 우상 선지자들 앞에 엘리야가 홀로 섰고 그 주변으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둘러섰습니다. 엘리야는 최후의 일전에 앞서 먼저 둘러선 백성들에게 외쳤습니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21) 백성들은 하나님의 선민으로 하나님을 의식하면서도 세상의 대세를 따라 아합과 이세벨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바알을 섬겼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바알사이에서 양다리 걸치는 것이 살아남기 위한 지혜로운 길로 생각했습니다. 사실 세상에서는 뚜렷한 확신이 없다면 양쪽 끝단에 서느니 중간에 서는 것이 현명할 것입니다. 중간에 서면 큰 성공은 하지 못할지라도 최소한 망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신앙에서 하나님 편에 서지 않으면 결국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고 사단 편에 서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상을 같이 섬기는 것은 결국 우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백성들이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으로 다시 하나님께로 돌이키길 간절히 바랬습니다. 하지만 백성들은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구원의 하나님을 의식하면서도 아합과 이세벨의 힘을 두려워했고 무엇보다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침묵은 대결을 지켜보고 이긴 신을 섬기겠다는 불신이었습니다.
  마침내 엘리야와 아합 우상숭배자들과의 최후 결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결전은 극한 가뭄의 원인이 누구 때문이며 또 그 해결책이 누구로부터 오는가 밝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국 하나님과 바알 중 누가 참 신인가 밝히는 것입니다. 각자 제단에 송아지 제물을 올려놓고 각자의 신을 불러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진정한 신(하나님)인 것입니다. 먼저 바알신의 제사장들 450명이 아세라 제사장 400명의 지원을 받아 기세등등하게 먼저 시작했습니다. 450명이나 되는 제사장들이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부르며 울부짖다가 아무 응답이 없자 그들이 쌓은 제단주위에서 뛰놀기 시작했습니다. 정오가 될 때까지 450명이 한 마음으로 소리 지르며 뛰놀아도 아무 반응이 없자 지켜보던 엘리야가 조언했습니다. “큰 소리로 부르라 그는 신이니 묵상하고 있는지 혹은 잠깐 나갔는지 혹은 길로 다니는지 혹은 잠이 들어 깨워야 할 것인지” 그러자 자존심에 상처받은 그들은 더욱 큰 소리로 부르며 그들의 규례에 따라 피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그들의 몸에 상처를 냈습니다. 이렇게 정오를 지나 저녁때까지 450명이 미친 듯이 떠들었어도 아무 소리도 없고 응답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불이 내리도록 아무리 간구해도 아무런 반응이 없자 그들은 몸에서 열불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결국 바알은 살아있는 신이 아닌 인간이 만든 거짓된 우상으로 드러났습니다.
  그 후 엘리야가 먼저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하였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12지파대로 돌 열두 개로 하나님의 제단을 만들었습니다. 비록 12지파 중 10지파가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에게 갔어도 엘리야는 그들을 여전히 하나님께 속한 백성으로 간주했습니다. 엘리야는 제단위에 제물을 놓고 그 위에 물을 붓고 하나님을 향해 엄숙하게 기도했습니다. 그의 기도는 길지 않았습니다. 그는 헛되이 반복하지 않았으며 말을 많이 해야 들을 줄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기도는 엄숙하고 장엄했으며 바알 선지자들의 광란적인 무질서와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그는 땅에 떨어진 하나님영광을 회복시키려는 거룩한 열정과 또 죄악된 백성들을 돌이키려는 상한 목자의 심정으로 간절한 믿음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37) 하나님은 잠자고 있지도 않았으며 묵상하고 있지도 않으셨습니다. 엘리야의 기도가 끝나자마자 여호와의 불이 내려와 물에 젖은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았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의 불이 물까지 태워 수증기가 되어 피어오르자 모든 백성들은 두려움으로 엎드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를 보고 백성들은 그동안 속은 분노로 450명의 바알선지자들을 잡아 죽였습니다. 그 후 엘리야는 하나님께서 불로 응답하신 것에 대해 감사를 드리면서 이제는 물로 응답해주시도록 기도했습니다. 엘리야가 7번 기도한 후 마침내 하나님의 약속대로 3년 6개월의 극심한 가뭄을 몰아내는 풍성한 생명의 비가 내렸습니다.
  엘리야의 능력의 원천은 기도였습니다. 야고보는 말했습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마음씨)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약5:17,18)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받을 수 있는 통로입니다. 엘리야의 기도의 능력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에서 나왔고 또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심령을 공감한데서 왔습니다. 하나님께선 세상 만민 중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시고 함께 하시며 인도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떠나기를 수없이 반복하며 지금도 하나님과 바알사이에서 머뭇거렸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하심으로 포기치 않고 불쌍히 여기시며 다시 돌이키고자 하셨습니다. 엘리야의 기도의 능력은 그런 하나님의 마음을 공감하는데서 왔습니다. 엘리야는 택한 백성들이 죄악으로 멸망해가는 시대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이루었지만 사실 그가 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며 기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한 백성들이 죄악으로 멸망해가는 시대 엘리야를 택하여 아합왕에게 심판의 말씀을 전하도록 하시고 3년 6개월 동안 도피한 엘리야를 까마귀와 과부를 통해 먹여주셨습니다. 또 죽은 과부의 아들을 살리심으로 엘리야에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을 주시고 마침내 갈멜산 대결에서 엘리야의 기도에 불로 응답하심으로 바알신과 그 추종자들의 거짓을 드러내셨습니다. 우상의 거짓이 드러나고 백성들이 다시 하나님을 경외할 때 엘리야의 기도를 통해 큰 비를 내려주심으로 만물을 회복하게 도와주셨습니다. 이 모든 역사는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쓰셔서 이루신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이 시대에도 엘리야 같은 심령과 능력의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그 사람은 아인슈타인처럼 뛰어난 두뇌를 가진 사람도 아니고 슈퍼맨처럼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도 아닙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을 떠난 죄인을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심령을 가진 사람입니다. 또 문제 앞에서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순종할 수 있는 기도의 능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우리가 부족하지만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을 덧입고 죄악된 이 시대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역사에 쓰임 받는 자가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45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은혜의 비가 온 땅을 적시는 가운데 아합 왕이 마차를 타고 왕궁(이스르엘)으로 도망치듯이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해 그가 허리를 동이고 아합 앞에서 달려갔습니다. 아합 왕은 가장 먼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할 죄인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가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를 보고 회개하여 백성들을 돌이키도록 오래 참으셨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심령을 덧입고 세찬 은혜의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왕궁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왕의 마차 앞을 달려갔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제가 엘리야 같은 기도의 능력이 부족한 것이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없고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심령이 부족해서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열심히 신앙생활하려는 양들은 말씀으로 돕고 기도해줄 심정이 생겼지만 영적소원도 없고 자세도 없는 뺀질뺀질한 양들은 몇 번 돕다가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 같다며 포기할 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말씀을 통해 완악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아합을 돕는 엘리야를 보면서 하나님의 심령이 없어 기도의 능력이 부족한 자신을 깨닫게 됐습니다. 사실 저는 하나님의 많은 은혜에도 오랫동안 불신가운데 세상 죄에 빠져 살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는 사랑으로 저를 포기치 않으시고 함께 하시며 말씀과 많은 목자님들을 통해 인도하심으로 목자의 인생을 살도록 도우셨습니다. 제가 하나님께 받은 사랑으로 양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령을 덧입고 그들을 위해 끝까지 기도함으로 하나님께 인도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제가 하루 첫 시간 새벽에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함으로 나를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덧입고 양들에 대한 심정을 덧입을 수 있길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엘리야는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심령과 문제 앞에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기도의 능력으로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우리가 어두운 시대 엘리야의 심령을 덧입고 도전정신으로 기도함으로써 하나님의 생명구원역사를 섬길 수 있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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