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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02-17 (일) 12:40
분 류 요한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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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요한일서 제3강]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자

  2019년 요한일서 제 3 강                                                        최동진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자

 말씀 / 요한일서 2:28-3:24
 요절 / 요한일서 3: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오늘 말씀에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특징에 대해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예수님의 성육신의 진리를 믿는 자요, 불의한 시대에 의롭게 살고자 애쓰는 자요, 무엇보다도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는 자입니다. 우리가 계명의 말씀을 지킴으로 주님 앞에서 의를 행하며, 형제를 사랑함으로써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I. 의를 행하는 자(2:28-3:10)
  2장 28,29절을 보십시오. “자녀들아 이제 그의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바 되면 그가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가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 사도 요한은 성도들에게 ‘그의 안에 거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의 안에 거하는 것은 계명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왜 그래야 합니까? 주님께서 강림하실 때에 부끄럽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언젠가 반드시 주님 앞에 서서 선악간에 그 행한 것을 따라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주님 앞에 나아가 계명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적극적으로 배우고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는 삶을 살 때 하나님의 자녀임이 드러나게 됩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 신자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얼마나 큰 사랑과 은혜를 받은 자인가 감격적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3장1절을 보십시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 하나님은 죄로 말미암아 죽어 영원한 심판에 처할 수밖에 없던 인간들을 불쌍히 여기사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하늘나라 황태자이신 예수님이 모든 권세와 영광을 내려놓고 먼지처럼 비천한 우리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까지 낮아져 오셔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 값을 다 치르시고 구원해주심으로 영생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죄 가운데서 구원하신 후 우리를 그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죄의 노예로 살던 자를 하나님의 보배로운 자녀로 삼아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힘들고 지쳐 낙망하고 넘어질 때 손을 잡아 일으켜주시고, 자신의 연약함으로 고통 속에 눈물 흘릴 때 눈물 닦아주시며, 참된 위로와 안식과 힘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의 사랑하는 자녀이기 때문에 무조건 귀히 여기시고 그 인생을 책임져주시고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우리가 진리의 길을 벗어나 엉뚱한 길로 갈 때는 채찍으로 때려서라도 바른 길로 가도록 훈련시켜 주십니다. 더 나아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주실 것을 약속하여 주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한 사도 요한은 감격하여 외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1a).” 우리가 받은 사랑이 참으로 크고 놀랍지 않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엄청난 신분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이런 우리를 알아보지 못하고 함부로 대하고 조롱하고 핍박합니다. 이는 하나님 아버지를 알지 못하는 영적 무지 때문입니다. 당시 신자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실제 삶에서는 아무런 혜택도 누리지 못했습니다. 믿음으로 살고자 할 때 오히려 고난과 박해를 당했습니다. 심지어는 원형경기장에서 맹수의 밥이 되기도 하며 세상 사람들보다 못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며 살 수 있습니까? 2,3절을 보십시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에 관해서는 사도 요한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확실하게 알고 소망하는 것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약속은 성경에 여러 곳에서 예언되어 있습니다.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막13:26).”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행1:11b).” 예수님이 언제 다시 오실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약속하신 그대로 반드시 오십니다. 둘째로,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게 되면 우리도 그와 같이 변화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지금 우리는 죄악된 육신의 몸을 입고 있기 때문에 죄의 소욕에 시달리며 괴로워하지만 그때에는 부활하신 예수님과 같이 죽지 않고 썩지 않고 강하고 신령하고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됩니다.(고전 15:42-44) 그리고 다시는 죄의 소욕에 시달리지 않게 됩니다. 셋째로, 우리의 몸이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되어 주님과 대면하여 자유롭게 교제를 나누게 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지으시고 에덴을 창설하시고 하나님과 교제하며 무한한 행복을 누리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에덴을 상실한 인간은 무엇을 하든지 행복을 누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인간에게 독생자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구원을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심으로 관계성을 회복해주시고 하나님과 영적 교제를 나눌 수 있게 하셨습니다. 지금은 육의 몸을 입고 있기 때문에 부분적으로 행복을 누리고 있다면,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는 우리의 몸이 변화되어 참 행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에 대해 고린도전서 13:12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사랑하는 하나님과 얼굴을 마주 보고 교제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한 일입니다. 이는 믿는 자들만이 간직하고 있는 소망입니다.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고자 노력하게 됩니다. 우리는 주를 향한 소망을 가진 자로서 인생의 목적을 순수하게 함으로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우며 의를 행하는 삶을 힘써 감당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성이 맺어지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임이 드러나게 됩니다.
  이에 비해 마귀의 자녀들의 삶은 어떠합니까? 4절을 보십시오.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죄를 짓는 자’란 당시 영지주의자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영지주의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죄와 사망으로부터 자유함을 얻었기 때문에 더 이상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육체는 언젠가 썩어 없어질 것이기 때문에 육체로 죄를 지어도 구원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마음대로 죄를 짓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성도들 중에도 이들의 악 영향을 받아 그리스도께서 이미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죄까지 다 해결해주셨음으로 적당히 죄를 짓고 살아도 구원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죄를 짓지 않고자 거룩한 투쟁을 하는 신자들을 오히려 이상한 사람으로 여기며 율법적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죄는 불법이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불법이란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하나님의 뜻에 반역하는 것입니다. 계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고 계속 그 가운데 머물러 사는 것을 말합니다. 죄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하나님을 떠나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려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불법을 저지르고 회개하지 않으면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5절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이 무엇인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지만 죄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이런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위한 대속제물이 되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근본적으로 죄를 사해주셨습니다. 죄를 없이 하는 일은 죄 없으신 예수님만이 할 수 있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그리스도께서 죄를 없이하셨다면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한 사람은 당연히 죄를 짓지 말고 거룩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그리스도를 거역하는 셈이 됩니다. 구원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죄로부터 완전히 자유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크신 권능으로 말미암아 출애굽하여 자유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속에 남아 있는 노예근성으로 인해 죄를 범하고 하나님을 슬프시게 하였던 것과 같습니다. 죄에는 관성이 있어서 구원 받은 후에도 과거의 죄악된 습관이 남아 원치 않게 죄에 넘어집니다. 그러나 자신의 죄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며 하나님께 나아가 진실되게 회개할 때 사죄의 은혜를 덧입고 죄로부터 벗어나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과거의 죄악된 습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영적인 훈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노예백성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은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양육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 때 자발적인 소원에 기초하여 율법을 지킬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점점 죄에서 벗어나 거룩함에 이르게 됩니다. 반면 불신자들은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죄가 쌓여 못쓰게 되다가 결국에는 파멸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경계해야 할 바가 무엇입니까? 7,8절을 보십시오.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자녀들은 마귀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미혹이란 분별력을 흐리게 하여서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마귀는 의심과 불신과 두려움을 심어서 복음 신앙을 무너뜨리고 자기의 종으로 삼고자 합니다. 우리의 대적 마귀는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벧전5:8). 그러므로 근신하여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염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근본적으로 마귀의 일을 멸하셨기 때문입니다. 9절에서는 하나님의 자녀는 죄를 짓지 않는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죄를 안 짓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습관적으로 죄를 짓고 지속적으로 죄 가운데 머물러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속에 ‘하나님의 씨’가 거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씨’는 성령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영이 그 속에 거할 때 범죄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간혹 죄를 지을지라도 성령께서 죄를 분별하고 회개하도록 하십니다. 이 씨는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을 담고 있어서 심령에 심겨진 씨가 자라나면서 하나님의 성품이 나타나게 되고 거룩한 영적 소원이 충만해져서 의의 열매 맺는 복된 삶을 살게 됩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하나님의 자녀들은 의를 행하고 형제를 사랑합니다. 의를 행하지 않거나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자라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행하며 그 형제를 사랑하는 자가 하나님의 자녀이고 그렇지 않은 자는 마귀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음으로 예수님의 분량에 이르도록 성장해야 합니다.

II. 형제를 사랑하는 자(3:11-24)
  11,12절을 보십시오. “우리는 서로 사랑할지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가인 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 사도 요한은 반복해서 서로 사랑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가인이 아우를 죽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동생의 행위는 의롭고 자신의 행위는 악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것은 어쩌다 실수로 죽인 것이 아닙니다. 이는 그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고 마귀에게 속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책망을 받았을 때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회개하지 않았을 때 사탄의 종이 되어 오히려 자신의 죄가 드러나게 한 아벨을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분노와 미움과 시기심에 사로잡혀 분별력을 잃고 살인죄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가인은 앞에서 말한 불법을 행하는 자로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의 대표적인 모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선을 행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산 아벨이 악인에 의해 허무하게 죽임 당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이 너무 무심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미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13,14절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여도 이상히 여기지 말라.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세상 사람들은 믿음으로 의롭게 사는 신자들을 부담스러워 합니다. 의를 행할수록 미워하고 핍박합니다. 이는 자신들의 불의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미워하는 것은 어두움이 빛을 싫어하는 것과 같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상하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를 미워하는 세상 사람들을 똑같이 미워해서도 안됩니다. 만일 같이 미워한다면 우리도 그들과 똑같은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신자의 무기는 사랑입니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면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게 됩니다. 형제를 미워하면 사망의 세계에 거하게 되지만 형제를 사랑하면 생명의 세계에 거하게 됩니다. 사망의 세계는 허무와 슬픔과 고통과 절망의 세계입니다. 그러나 생명의 세계는 기쁨과 희망의 세계입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생명이 있고, 미움과 시기와 질투가 있는 곳에 죽음이 있습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니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게 됩니다(15).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형제를 사랑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참된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예수님이 어떻게 행하셨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16절을 보십시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우리는 나를 위해 목숨까지 내어주신 예수님의 희생적인 사랑을 통해 참된 사랑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3:16절은 말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 사랑은 먼저 죄인들을 찾아오신 사랑이요, 자신을 온전히 희생하신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또한 무조건적으로 죄인들을 용서하신 사랑입니다. 이로써 영원히 파멸에 이를 자를 구원하시고 영생을 주신 사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얼마나 큰 사랑을 받은 자인가를 알게 될 때 형제를 사랑할 힘이 생깁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이렇게 크신 사랑을 받은 자로서 형제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목숨을 버린다는 것은 형제를 사랑하기 위해 나의 가장 귀한 것을 희생하는 것으로서 참된 사랑에는 희생이 따릅니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선심을 베풀거나 어쩔 수 없이 의무감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엄청난 사랑의 빚을 진 자로서 이 빚을 갚기 위해 당연히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예수님의 사랑을 더욱 깊이 알아가게 됩니다.
  17,18절을 보십시오.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사랑이란 말과 혀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해야 합니다. 행함이란 구체적인 실천으로 표현하는 것이고 진실함이란 거짓이 없는 순수한 사랑을 말합니다. 사랑이란 재물을 가지고 도움이 필요한 자에게 나누어 주고 베풀고 섬기는 것입니다.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주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 거한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리 많은 물질을 소유하고 있어도 남에게 나눠주고 베풀 수 없습니다. 사랑이 있을 때 적은 물질이라도 나누고 베푸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무언가 받을 때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였습니다(행20:35). 또 잠언 11:24,25절에서는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먹여주고, 외로운 사람과 함께 해주며 내면의 고민을 들어주고 기도해주며 멸망의 길을 가는 자에게 복음을 전해서 돌이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것이 실제적인 사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사랑하되 진실함으로 해야 합니다. 여러분 “마라스무스(marasmus)" 병에 대해 들어보셨습니까? 이는 ‘소모증(消耗症)’이라고도 하는데 극도로 신체 발육이 부진하고 전신 쇠약감을 보여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마는 무서운 병으로서 주로 고아원에서 외롭게 자라는 어린아이들에게 잘 생깁니다. 이병은 단순히 영양부족 때문만으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이 병의 원인은 사랑 결핍으로서 부모의 품에 안겨 재롱을 부리고 어머니의 사랑을 받아야 할 어린이가 그것을 전혀 누리지 못함으로 인해 나타나는 것입니다. 마음속의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는 자도 생길 확률이 높습니다. 이 병의 치료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매일 사랑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 사랑의 말 한마디가 최상의 묘약입니다. 요즘에는 어른들 중에도 관계성의 단절 속에서 고독과 무기력을 느끼며 영적인 소모증에 빠져 지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자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따뜻한 사랑으로 어루만져 줄 때 사랑의 관계성이 회복되고 영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19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행함과 진실함으로 형제를 사랑할 때 진리에 속한 줄을 알게 되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진심을 다해 사랑을 베풀었는데 감사하기보다 오히려 반발함으로 상처로 되돌아오기도 합니다. 그래도 한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인내하며 끝까지 도와줄 때 그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지게 되고 결국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이렇게 사랑할 때 우리가 진리에 속한 사람임이 드러나게 되고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가 아무리 진실되게 형제를 사랑하기에 힘쓴다 할지라도 잘 도와주지 못하고 때로는 말씀대로 행하지 못하여 양심에 가책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보다 크신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심으로 우리의 연약함을 깊이 이해하시고 도와주십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할 때 하나님의 위로가 심령에 임하게 되고 확신있게 사랑을 베푸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톨스토이는 “참된 행복을 원한다면 재산을 모을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슴에 사랑을 키워야 한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이런 사상은 그의 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천사 미하일은 “가서 산모의 영혼을 거두어 오라”는 명을 받았으나 갓 태어난 쌍둥이가 엄마 없이 살 것을 생각하니 너무 불쌍해서 거두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명을 어긴 죄로 벌을 받아 땅으로 추방당했습니다. 가난한 구두장이 세몬은 알몸으로 교회의 담벼락에 기대 떨고 있는 미하일을 보았지만 처자식을 먹일 걱정에 그냥 지나갔습니다. 그때 그의 얼굴은 죽음의 그림자가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양심에 가책을 받고 돌아와 자기가 입고 있던 옷을 벗어 입혀주고 털 장화를 신겨주었습니다. 이때 그의 얼굴에 따뜻한 생명이 돌았습니다. 미하일은 세몬의 얼굴에 하나님의 얼굴이 드리워져 있음을 보았습니다. 세몬이 미하일을 데리고 집에 도착했을 때 아내 마뜨료나는 우리 먹을 것도 없는데 웬 거지를 데려왔냐고 소리 질렀습니다. 그녀의 입에서 죽음의 기운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런데 세몬의 설명을 듣고 나자 마음이 바뀌어 미하일을 가엽게 여기고 따뜻한 음식을 대접했습니다. 그때 그녀의 얼굴에 하나님의 생명이 임했습니다. 미워하는 곳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사랑할 때 생명이 넘치게 됩니다. 사랑은 관심을 가지는 것이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 잡아주는 것입니다. 미하일은 세몬과 마뜨료나의 마음에 어려운 이웃을 향한 관심과 사랑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영생의 기쁨과 행복이 넘치게 됩니다. 미하일은 세몬 부부와 함께 살며 구두수선 일을 배워 함께 구둣방을 꾸려나갔습니다. 6년이 지난 어느 날, 구둣방에 한 여인이 절름발이 여자 아이와 다른 여자 아이의 신발을 맞추러 왔습니다. 미하일이 산모의 영혼을 거두어 오라는 하나님의 명을 받았을 때 어머니가 죽으면 어떻게 살까 걱정 때문에 하나님의 명을 거역했던 바로 그 아이들이었습니다. 엄마의 영혼을 거둘 때 엄마가 한 아기 위로 넘어지는 바람에 한 아이는 다리를 절게 되었습니다. 그 여인은 이 쌍둥이 아이들을 마치 자기 아이들인 것처럼 잘 키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여인의 이야기를 들은 마뜨료나는 “부모 없이는 살 수 있어도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고백을 합니다. 미하일은 그 여인에게서 아이들을 키운 보람과 감동의 눈물을 보고 살아있는 하나님을 발견하였습니다. 이렇게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할 때 말과 혀로만 사랑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됩니다.
  21-24절은 우리가 형제를 진실되게 사랑하게 될 때 누릴 수 있는 축복에 대해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때 하나님 앞에 떳떳하게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자는 심령이 순수하기 때문에 마땅히 구할 바를 알게 되고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응답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실로 큰 특권입니다.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서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심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한 삶을 살게 됩니다(24).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랑이요 사랑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내가 가진 것을 베풀고 나눠줌으로 다른 사람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베풀고 나눠주는 것은 꼭 많은 물질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베드로와 요한은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앉은뱅이 거지에게 은과 금은 없었지만 그에게 있는 나사렛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걷게 함으로 그에게 있어서 가장 절실한 인생문제를 해결해주었고 근본적으로 변화된 행복한 삶을 살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실 때 그 마음에 하나님의 속성인 사랑의 씨를 심어 놓으시고 사랑을 주고받으면서 행복을 누리도록 하셨습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많은 일을 하고 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한 영혼을 돌아보고 섬길 여유가 없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나의 형편에 상관없이 다른 사람의 힘든 상황을 이해하고 아픔에 공감하고 도와주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제가 캠퍼스 목자요, 성경선생으로 산다고 하면서 자기중심적이고 조건적이고 상대적인 사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성품에 기초한 사랑으로 충만해져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참된 사랑을 행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기초하여 새 학기 죄 가운데 멸망의 길로 치닫고 있는 캠퍼스 영혼들을 진리의 말씀으로 섬겨서 죄에서 돌이켜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사명을 힘써 감당하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참된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참된 사랑은 형제를 살리고, 자신도 살아나고 교회 공동체도 살아납니다. 우리가 행함과 진실함으로 형제를 사랑함으로써 우리 모임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한 사랑의 공동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드러남으로 생명을 살리는 역사에 귀하게 쓰임받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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