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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03-10 (일) 12:42
분 류 창세기
첨부#1 2019년_창세기1강-1(김반석).hwp (64KB) (Down: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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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창세기 제1강]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2019년 창세기 제1강                                                             김반석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말씀 / 창세기 1:1-25
 요절 / 창세기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는 모세오경(창세기,출애굽기,레위기,민수기,신명기)의 첫 번째 책으로, B.C.1446-1407년 사이에 기록된 것으로 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400년간 노예생활을 하다가 출애굽하여 광야에서 연단 받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내린 10가지 재앙과 홍해를 건너는 이적을 체험했고, 매일 하늘에서 비 같이 내려주시는 일용할 양식(만나)을 먹으며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 가운데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노예근성에 찌들어 툭하면 하나님을 불신하고, 원망과 불평을 일삼았습니다. 이런 상태로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면 각종 우상들을 섬기며 하나님을 잊어버리기 쉬웠습니다. 창세기는 이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존재인가,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를 가르쳐주고자 기록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창조주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로 택하셨다는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고 미래에 대한 확신과 소망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이뤄드리는 삶을 살길 바랐습니다. 창세기의 1차 수신자는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이지만 궁극적인 수신자인 모든 성도들에게도 구속역사의 기원과 그 근본 원리에 대한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창세기는 ‘세상의 창시기록’이란 뜻으로 모든 것의 시작(기원)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창조역사와 죄의 기원, 가정의 기원, 인류의 기원, 종족의 발전 그리고 구원 계획의 시작 등 모든 것들의 기원을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창세기는 창조에 관한 과학적 이론들을 증명하는 책이 아닙니다. 과학이 인류문명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지만 인간의 내면세계나 생명의 기원을 규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계시해주시는 범위 내에서만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창세기 공부를 통해 창조주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깊이 만나므로, 인생의 존재의미와 목적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귀히 쓰임 받는 복된 인생 살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1강에서는 천지 만물이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가르쳐 줍니다.

Ⅰ. 창조주 하나님(1)
1절을 다 함께 암송해보겠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모처럼 성경을 읽으려고 폈는데, 첫 장의 첫 번째 문장에서부터 강한 거부감을 느껴 성경에 대한 불신으로 덮어버리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듣기 좋은 말씀들을 1절에 넣고, 이런 말씀은 좀 뒤쪽에 넣어서 믿음이 있을 때 읽도록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1절 말씀을 믿지 못하면 하나님은 물론 성경의 다른 말씀도 믿을 수 없게 됩니다. 사람이라면 대답해야 할 4가지 질문이 있다고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Who am I?), 나는 어디서 왔는가?(Where did I come from?),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Why am I here?), 내가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Where am I going when I die?)” 이런 문제에 대한 답을 찾을 때 진정으로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살게 됩니다. 1절 말씀은 성경의 기초로서 이런 문제에 대한 답을 제공해줍니다. 다시 한 번 1절을 암송해 보겠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태초에’는 ‘시간의 시작에’라는 뜻으로 역사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천지’는 지구를 포함한 광활한 우주공간을 말합니다. ‘창조’라는 단어는 ‘바라(to create:무에서 유를 만드는 절대적 창조 행위)’와 ‘아사(to make:기존 재료를 이용해서 새로운 것을 만드는 행위)’가 있는데, 여기서는 창조주에게만 적용하는 ‘바라’를 사용했습니다. 따라서 1절 말씀은 천지가 영원 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심으로써 비로소 존재하게 되었고, 그것은 시작을 갖고 있다는 뜻입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믿는 것(창조론)이 신앙의 첫 출발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창세기를 이스라엘 민족의 신화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창조론은 이런 신화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창조론은 하나님께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것인데 반해 신화들은 범신론이나 다신론적인 사상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2015년 한국갤럽의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기독교인의 59%만 창조론을 믿는다고 합니다. 이는 교과서를 통해 배운 진화론의 영향 때문일 것입니다. 우주 만물과 생명의 기원에 대한 견해는 진화론, 자연발생설, 빅뱅이론, 창조론 등이 있습니다. 진화론은 원시대기에 메탄, 암모니아, 수소 등 화학물질이 있었는데 이것이 우연히 합성되어 아미노산이 되고, 이것이 우연이 모여 단백질을 형성하고, 여기서 단세포의 생명체가 탄생하였다고 합니다. 이것이 수십억 년 동안 수많은 돌연변이의 과정을 거치면서 수십만 가지의 종으로 진화되었다는 가설입니다. 진화론자들은 자기들의 이론을 유지하기 위해 진화의 증거라는 것들(화석화된 말의 계열, 점나방, 시조새, 자연발생성, 밀러의 실험, 비교해부학 등)을 교과서나 백과사전 등에 제시하고 있지만 이것들은 제대로 그 내용이 밝혀지지 않는 가정이거나 잘못된 개념들임이 밝혀졌습니다. 1953년 시카고 대학의 밀러는 유리관 실험을 통해 아미노산을 만들어냄으로써 이것이 마치 생명의 기원을 밝혀주는 과학적 사실인 것처럼 세계 모든 과학교과서에 수록되었습니다. 하지만 과학이 발달하면서 밀러의 실험을 통해 만들어진 아미노산으로는 결코 단백질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밀러 자신도 1991년에 자신의 주장이 “동화와 같은 이야기에 불과했다.”고 자백했고, 1993년 스페인에서 열린 생명의 기원 학회에서는 밀러의 이론을 공식적으로 폐기했습니다. 그러므로 원시대기에 있던 무생물에서는 수십, 수백억년이 지나는 동안 별 일이 다 일어나도 결코 생명체가 탄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설령 백보 양보해서 무생물에서 우연히 단백질 형성이 일어난다고 가정해 봅시다.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간단하면서 번식 가능한 세포는 PLLO균으로서 625종의 단백질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단백질은 보통 200-1,000개 정도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400개의 아미노산이 단백질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우연히 나열될 확률은 10114분의 1이고, 설령 된다고 해도 소요기간은 10234년이라고 합니다. 수학확률학자 보벨에 의하면 1050분의 1보다 낮은 확률은 일어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또한 하나의 대표적인 유전인자(DNA) 사슬이 형성될 확률은 10600분의 1이고, 하나의 세포가 형성될 확률은 10167,626분의 1이라고 합니다. 생명기원설에 대한 과학자인 카프란 박사는 “생명체 형성 확률이 10130분의 1이라면 생명은 생명을 주는 자(창조주)없이는 생겨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결국 세포는 물론 단백질 하나도 무질서한 상태에서 우연히 탄생할 확률은 물리적으로나 화학적으로 또한 수학 확률적으로도 결코 일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잘못된 가설에 세뇌되어 무비판적이고 맹목적으로 진화론을 믿고 있습니다.  

반면 창조론은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것을 믿는 유신론적인 견해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고 합니다. 탈무드에 보면 한 무신론자가 하나님을 열심히 믿는 신자를 골탕 먹이려고 질문했습니다. “당신들은 무슨 일이 생기면 하나님을 찾는군요. 나 참 세상에 하나님이 어디 있다고. 하나님이 있는 곳을 알려 주시오. 만약 하나님이 내 눈에 나타난다며 나도 믿을테니.” 신자는 온화한 미소를 띠며 그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가 맑은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저기 빛나는 태양을 한번 쳐다보세요.” 그러자 무신론자는 눈이 부셔서 도저히 태양을 쳐다 볼 수 없었습니다. 그는 볼멘소리를 하며 “이보세요. 세상에 저 태양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이요?” 그때를 놓칠세라 신자가 말했습니다. “그렇죠. 세상에서 저 태양을 맨 눈으로 쳐다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죠. 하지만 모두가 저 태양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죠. 그렇다면 저 태양 하나도 볼 수 없는 사람이 어떻게 그것을 만드신 하나님을 보겠다는 건가요?” 하나님을 눈으로 볼 수 없다고 해서 하나님이 존재하시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공기, 소리, 전자파 등과 같이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처럼 하나님은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두 가지 책을 주셨습니다. 하나는 자연 계시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세계를 보면 그 안에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이 나타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롬1:20) 또 하나는 특수 계시로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입니다. 성경을 읽고 공부하면 할수록 창조주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게 되고, 마음으로 느낄 수 있고, 영으로 교통하며 하나님의 존재를 확신할 수 있습니다.
진화론을 믿느냐 창조론을 믿느냐는 자유의지에 달렸지만 그 인생의 열매는 천지차이입니다. 진화론의 핵심은 ‘우연’이므로 절대적인 가치가 없습니다. 인간도 우연히 생겨난 것이므로 존재자체가 무의미합니다. 인생은 그저 한 평생 먹고 살기 위해 애쓰다가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허무한 존재로 전락합니다. 또한 인간의 존엄성이나 도덕과 윤리의 절대적 근거도 없어 이기주적이고 쾌락적인 삶을 살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우연한 존재에 불과합니다. 반면 창조론을 믿으면 인생목적, 가치관, 역사관, 세계관이 바뀌므로 더 이상 운명적이고 허무한 인생을 살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의 선한 뜻을 좇아 분명한 목표와 방향 가운데 섭리의 인생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동행하시고 책임져 주시므로 안전하고 확실한 삶, 풍성한 열매를 맺는 복된 인생을 살게 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말씀은 흔들릴 수 없는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창조 주권을 심령으로 영접하길 기도합니다. 이 말씀을 인생의 기초로 삼고, 세상을 이기는 승리자의 인생 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Ⅱ. 하나님의 천지 창조(2-25)
우리는 1절에서 태초에 하나님이 지구와 우주 공간을 창조하셨음을 배웠습니다. 그러면 처음에 탄생한 지구의 모습이 어떠합니까? 2a절을 보십시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여기서 ‘혼돈’이란 일정한 형태가 없이 거칠고 무질서한 상태를, ‘공허’는 텅 빈 상태, ‘흑암’은 빛이 전혀 없는 캄캄한 상태를 말합니다. 즉 처음에 지구는 어떤 형태도 없고, 생명도 없고, 빛도 없는 텅 빈 상태로 물로 뒤덮여져 있었습니다. 과학자들에 의하면 초기의 지구는 수층으로 덮여 있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를 볼 때 과학이 발달하기 훨씬 전에 기록된 창세기가 얼마나 사실적이고 신빙성이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2b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의 영(성령)은 수면 위에 운행하셨습니다. ‘운행하시니라(메라헤페트)’는 ‘계속해서 알을 품고 있다’는 뜻입니다. 즉 어미 새가 새끼를 부화시키기 위해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따뜻하게 알을 품고 있는 상태 또는 새끼 위를 너풀거리고 있는 상태를 묘사하는 말입니다.(신32:11)  이와 같이 하나님은 지구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성령으로 역사하고 계셨습니다.  
3-27절은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창조하신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첫째 날(3-5)은 빛을 창조하셨습니다. 3절을 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시자 흑암가운데서 찬란한 빛이 쏟아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빛은 넷째 날 창조된 발광체와는 다른 빛으로, 모든 생명체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에너지의 근원을 말합니다. 창세기는 B.C. 15세기에 기록되었기 때문에 과학이 발달하기 전까지는 첫째 날과 넷째 날의 빛 문제로 오해와 편견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 실제로 이 우주 안에는 약 30만종의 빛이 존재함이 밝혀졌습니다. 하나님은 빛을 창조하심으로써 천지에 엄청난 에너지를 공급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셨습니다. ‘칭하셨다’는 것은 권위자의 공식적인 선포 행위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피조물을 창조하신 후 반드시 명명식을 갖고 축복하셨는데(5,8,10,22,28), 이는 각 피조물의 주인은 하나님 한 분이심을 공식적으로 천명하신 것입니다.
둘째 날(6-8)은 궁창을 만드시고 궁창 아래의 물(지구 표면을 덮고 있는 물들로 9절에서 바다와 뭍으로 나뉘어질 때 한 곳으로 모이게 됨)과 궁창 위의 물(대기권의 수분으로 구름이나 수증기 등)로 나뉘게 하셨습니다. 궁창은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대기권의 넓은 공간으로 태양에서 오는 자외선과 같은 살인광선을 막고, 지구의 온도를 적당하게 조절함으로 모든 생명체를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아마 궁창이 없었다면 사람들은 매일 초속 30마일로 떨어지는 2000만개의 운석들을 피하기 위해 헬멧을 착용하고 다녀야 할 것입니다. 궁창이 없다면 생명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셋째 날(9-13)에는 땅과 바다를 나누시고, 동물들의 먹이가 될 식물들을 창조하셨습니다. 천편일률적으로 만들지 않으시고, 다양하게 각각 독특한 개성을 갖도록 각기 종류대로 만드셨습니다.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가진 열매 맺는 나무로 땅을 아름답게 단장하셨습니다. 요즘 딸기가 한창이라 맛이 있지만 과일을 딸기 한 종류만 만드셨다면 질려서 먹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각기 종류대로 수많은 종류를 만드셔서 사시사철 우리의 입맛에 맞는 과일을 먹게 하셨습니다. 현재까지 발견된 종만 해도 식물은 30만 종 이상이나 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처음부터 종류대로 만드셨다는 것은 모든 생물이 각기 생물학적 종의 변천 과정을 거쳐 저급한 종(하등동물)에서 고급한 종(고등동물)으로 발전되었다는 진화론을 정면으로 배격하고 뒤엎는 과학적 선포입니다.
넷째 날(14-19)에는 해와 달과 별들을 만드시고 이로 인해 춘하추동의 사계절과 날(하루 24시간)과 해(1년 365일)를 이루도록 하셨습니다. 형형색색의 가을 단풍과 극지방의 밤하늘을 수놓는 오로라(Aurora)는 하나님의 솜씨를 뽐내며 바라보는 사람들을 무아지경에 빠트립니다. 하지만 해, 달, 별들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이므로 일월성신이나 천지신명을 숭배하는 미신적인 행위를 해서는 안 됩니다.
다섯째 날(20-23)에는 새와 물고기를 그 종류대로 만드시고, 그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충만하도록 복을 주셨습니다. 모든 생물들은 하나님의 축복에 근거하여 각기 독특한 방법으로 종족을 보존하여 번식시키므로 하늘과 바다를 아름답고 풍요롭게 채웠습니다. 철새의 한 종류인 작은 휘파람새는 독일에서 여름에 새끼를 낳고, 함께 지내다가 여름이 끝나갈 무렵 새끼들에게 어느 정도 독립심이 생기면 새끼들을 뒤로 하고 아프리카로 떠나갑니다. 남아 있던 새끼들은 몇 주일 뒤에 수천 km나 떨어진 낯선 땅과 바다를 향해 본능으로 날아가서 어미 새들과 합류합니다. 태어나서 가본 적도 없고, 어미 새도 없는데 어떻게 그 먼 거리를 정확히 항해할 수 있는지 신비하지 않습니까? 그것은 새들의 두뇌 속에 별을 보고 위도, 경도, 방향 등을 찾는 방법과 달력, 시계를 비롯해 항해에 필요한 모든 자료가 유전된 정보로 쌓여 있음이 실험적으로 증명되었습니다. 이처럼 고도로 정교한 장치는 그것들로 하여금 어느 누구의 인도 없이도 정확하게 자기들의 어미를 찾아갈 수 있게 해 줍니다. 고래, 물개, 박쥐, 연어, 바다거북이, 뱀장어, 나그네쥐, 그 외에 다른 다양한 동물들 역시 이주합니다. 이것들이 이주하는 이유와 이러한 동물들이 보여 주는 불가사의한 방향감각과 이주 본능의 완벽함과 복잡함은 점진적 단계적 진화 과정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놀라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유일하고도 논리적인 결론은 이 짐승들이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창조의 지혜와 능력으로 주의 깊게 이것들을 설계하고 창조했다는 것입니다.
여섯째 날(24,25)에는 가축과 곤충류와 짐승들을 각기 종류대로 만드시고, 맨 나중에 사람(27)을 지으심으로 장엄한 천지창조의 역사를 마치셨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이 엿새 동안 천지를 창조하셨음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첫째로,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self-existent)이십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고 하셨습니다(출3:14). 이 세상에 스스로 존재하는 것은 하나님 이외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궁극적인 원인자로서 모든 것을 존재케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비록 자연법칙이 중단되고 삼라만상이 없어진다 할지라도 창조주 하나님은 변함없이 존재하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하나님이 태초에 계셨다는 진리는 하나님은 영원히 변함없는 분이심을 말해줍니다. 과거에 계신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가운데 살아 역사하시고, 미래에도 영원히 존재하십니다. 그는 졸거나 주무시지 않고 영원히 죽지 않는 분이십니다. (시121:4)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들이 아무리 하나님을 부인하려고 해도 여전히 하나님은 존재하십니다. 하나님을 부인하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서 영원한 형벌을 피할 수 없게 됩니다.(히9:27, 계21:8)
둘째로, 빛 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첫째 날 빛을 창조하심으로 어두움을 몰아내시고 생명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은 빛이시며 하나님 안에는 어둠이 전혀 없습니다.(요일1:5)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내면은 죄로 인해 혼돈하고 공허하고 밤과 같이 어둡고 캄캄합니다. 어둠은 우리 마음에 큰 세력으로 작용합니다. 그래서 형제를 사랑하고자 해도 사랑할 힘이 없어 미워하고 시기하게 됩니다. 욕심과 음란의 죄, 불평불만, 부정적이고 운명적인 생각, 근심, 걱정, 염려, 두려움 등의 세력에 사로잡혀 무기력한 삶을 살게 됩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무엇을 해도 참 만족과 기쁨이 없고 뭔가 허전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인생들에게 예수님을 통해 생명의 빛을 공급해 주십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1:4)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8:12) 누구든지 예수님을 단순히 믿고 영접하면 생명의 빛이 내면에 임하여 나를 짓누르던 죄와 어둠의 세력이 물러가고, 생명의 빛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생명의 빛은 죄와 허물로 죽은 우리의 영혼을 살립니다. 삶의 목적과 분명한 방향을 제시하여 밝고 희망찬 인생을 살게 합니다.
셋째로, 권능의 하나님이십니다. 1장에는 하나님의 창조사역의 수단이나 방법에는 아무런 언급도 없이 “하나님이 이르시되” (3,6,9,11,14,20,24,26,28,29)란 말과 “그대로 되니라”(7,9,11,15,24,30)는 문장으로 각각의 사역을 끝맺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음을 말해줍니다.(히11:3) 하나님의 말씀에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권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능력의 원천이 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능히 할 수 있는 분이십니다. 사람은 누구나 능력 있는 삶을 살길 원합니다. 공부를 잘하여 장학금도 타고, 좋은 직장에 취업하여 결혼도 하고 잘 나가는 인생을 살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자기 나름대로 계획을 세우고 자기 힘과 의지로 이루고자 노력합니다. 믿음으로 살다가는 왠지 세상 사람들에게 뒤처지고 낙오자가 될 것 같은 두려움으로 영적인 일을 등한시합니다. 하지만 시행착오에 그치고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는 시행착오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처럼 거짓말을 하거나 변덕을 부리지 않으십니다. 한 번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지키시고 이루시는 신실한 분이십니다. (민23:19) 우리가 능력 있는 삶을 살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히 믿으면 됩니다. 믿음으로 사는데 어려움이 따를지라도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는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은 약속대로 의식주에 필요한 모든 것을 넘치도록 공급해 주실 것입니다. (마6:33) 전능한 하나님을 믿고 말씀에 순종하는 자는 연약함과 한계를 극복하고, 강하고 담대한 자로 변화되어 승리하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넷째로, 조직과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실 때 무계획적으로 하신 것이 아니라 완벽한 설계 아래 순차적으로 만드셨습니다. 만물이 창조되기 전 땅의 상태는 혼돈(Chaos)상태였으나 하나님의 6일 간의 창조역사를 통해 우주는 질서(Cosmos)의 상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모든 생물이 살 수 있는 환경부터 만드시고 점점 세부적으로 창조하셨습니다. 또 무생물→생물→하등동물→고등동물 순서로 모든 것이 서로 밀접한 관련을 갖도록 조화롭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각 피조물들이 있어야 할 자리를 정해주시므로 생명을 유지하게 하셨습니다. 이를 통해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는 하나님-사람-만물이라는 질서와 조직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셨습니다.
지구가 속해있는 은하계는 약 2000억 개의 항성들이 모여 있는데 그 직경이 약 10만 광년이나 됩니다. 이 우주 안에서 현재 발견된 은하계만도 일만 개가 넘는다고 하니 이 우주의 크기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광대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모든 별들이 일정한 궤도를 따라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태양계에 속한 9개의 혹성도 서로 일정한 거리와 방향을 유지하며 돌고 있습니다. 만일 지구의 크기라든가 지구와 다른 혹성과의 거리 등이 현재의 상태와 다르다면 지구는 존재할 수 없다고 합니다. 만일 행성들이 같은 궤도를 도는 것이 지겹다고 그 궤도를 이탈하게 되면 우주에는 대혼란이 일어나게 됩니다. 미세한 원자의 세계에서도 양자와 중성자들이 자전과 공전을 하면서 질서 있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주 안에는 중력의 법칙, 열역학법칙, 광속의 법칙, 힘의 법칙 등 수많은 불변의 법칙들이 있습니다. 과연 이런 신비스러운 모든 것들이 돌고 돌다 보니 우연히 저절로 되었겠습니까? 이렇게 정교하고 완벽한 질서가 우연히 이뤄졌다고 믿는 것이야말로 비논리적이고 비과학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법칙들은 반드시 이를 부여한 입법자가 있음을 말해 줍니다. 하나님은 입법자가 되셔서 초자연의 힘과 지혜로 창조하신 것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시고, 이러한 자연법칙으로 만물의 질서를 유지하고 보존하십니다. 인간도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도록 영적인 질서를 세워주셨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 때 참된 자유와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씀이 부담스러워 하나님을 떠나면 죄와 사단의 종이 되어 비참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를 지키는 것이 생명을 유지하는 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4,10,12,18,21,25절에 보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표현이 반복되어 나옵니다. 이는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대로 선하고 완벽하게 창조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마치 국가가 제정한 산업표준에 합격한 제품에 대해 KS마크를 인증해주듯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에 GS마크를 인증하시므로 애정과 기쁨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우주 만물의 모든 존재는 어쩌다 태어난 우연한 존재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한 일을 위하여 창조된 의미 있고 존귀한 존재입니다.

결론입니다. 하나님은 철학자의 관념과 같은 피상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한 분이십니다. 우리의 생명의 근원이시고, 우주 만물을 절대주권과 섭리 가운데 다스리시는 살아계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창조 주권을 영접하므로 한번 뿐인 귀한 삶을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승리의 인생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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