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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12-15 (일) 12:57
분 류 마태복음
첨부#1 2019년_성탄말씀_1강-1.hwp (29KB) (Down: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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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성탄 제1강] 임마누엘

2019년 성탄 제 1강
말씀 / 마태복음 1:1-25
요절 / 마태복음 1:23

임마누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메리 크리스마스!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오신 임마누엘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성탄을 맞이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옆 사람과 인사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말씀을 통해 성탄의 감사가 충만히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본문 말씀에서 이어지는 계보의 행렬은 성탄의 감사를 깎아먹을 수 있는 지루한 말씀처럼 다가올 수 있습니다. ‘낳고, 낳았다’라는 단어가 40번이나 반복하여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 집안 족보도 읽기 힘들어 먼지속에 처박아 놓았는데...’, ‘조선시대 왕들의 순서도 헷갈리고 있는데...’.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름들, ‘스알디엘? 아소르? 아킴?’으로 이어지는 계보는 지루함을 넘어 ‘예수님이 나와 아무 상관없는 먼나라 인물’처럼 느껴지게 만들기도 합니다. 계보에는 마태를 감격하게 만드는 놀라운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그런 믿음으로 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마태가 쓴 성경 원문에는 1절 말씀의 순서가 반대로 되어 있습니다. “계보라, 예수 그리스도, 다윗의 자손, 아브라함의 자손” 우리 번역은 장유유서, 유교의 영향 때문인지 제일 나이 많으신 아브라함 할아버지부터 순서대로 기록했습니다. 계보는 족보를 말합니다. 마태가 줄기차게 계보를 기록한 이유는 정통성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 ‘쌍쌍바’ 포장지에서 ‘Since 1979’라는 글귀를 본 적이 있습니다. ‘역사가 검증한 아이스바’라는 메시지입니다. 유구한 족보가 있다는 것은 역사가 보증하는 구원자임을 말해줍니다. 야매, 돌팔이들이 아무리 신기한 장면을 연출할지라도, 그들을 신뢰할 수 없는 이유는 정통성이 확보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사이비 교주들처럼 어느 날 갑자기 뜬금없이 나타난 그런 분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입니다. 이들은 구약을 대표하는 두 인물입니다. 아브라함은 창세기 22장에서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크게 기뻐하시고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을 것이다”(창22:18)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좌에 올랐을 때,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짓고자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다윗을 기뻐하시고 약속을 주셨습니다.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삼하7:12,13)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말씀하신 ‘네 씨’는 누구를 말하는 것이었겠습니까! 이삭이나 솔로몬은 그림자에 불과했으며,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고하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역사속에서 약속되고 준비되어진 그리스도이십니다.

마태는 예수님을 아브라함의 자손보다 다윗의 자손으로 먼저 소개함으로써 다윗의 자손임을 더 강조했습니다. 본문에서 다윗이란 이름이 제일 많이, 5번 나오며(1,6,17), 6절을 보면 다윗만 다윗왕 (King David)이라 호칭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의도적으로 14,14로 분류했는데, 14는 다윗을 상징하는 숫자이기도 합니다. 마태가 살던 시대, 유대인들은 다윗같은 왕을 간절히 기다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누구의 다스림을 받느냐! 이는 인생의 행복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어떤 방향과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북한 백성들의 미래가 결정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지금 우리는 왕정 시대가 아닌 민주주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내면세계를 들여다보면 각 사람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왕 같은 세력들이 있음을 봅니다. 어떤 이들은 돈을 왕처럼 인생의 첫 자리에 모시고 살아갑니다. 돈을 인생목적 삼고 돈에 따라 울고 웃습니다. 사람의 인정과 칭찬이 지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과거의 실패나 상처에 지배당하여 오늘의 건강한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경은 사탄마귀를 세상임금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세상의 문화는 죄와 죽음으로 오염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죄와 죽음의 세력에서 건져내어 은혜와 진리로 다스리는 왕으로 오셨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천국, the Kingdom of Heaven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인생들을 하늘 왕국의 백성으로 삼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왕이십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영접하는 자들은 하늘 왕국을 소유하게 됩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누리고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구원과 영생과 성령의 열매를 얻습니다. 심령이 가난할수록 그 나라를 소유하고 애통할수록 왕의 위로를 받고 온유할수록 그 나라의 땅을 기업으로 받습니다. 누군가에게 천국이 없다면, 두려움과 염려로 침몰하고 있다면, 그것은 상황이나 능력문제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기보다 다른 것을 왕으로 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문제를 만날수록, 선택의 기로에 설수록, 나는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믿고 따르는지 거기에서부터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예수님 말씀을 왕의 말씀으로 듣고자 엎드려 무릎을 꿇고 그 분의 부르심과 인도하심에 절대적으로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새롭게 만나며 천국백성의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말씀은 믿음의 사람들에 의해 그리스도가 준비되었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2) 그런데 마태는 믿음의 사람들을 기록한 족보에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끼워 넣었습니다. 보통 족보를 나열할 때에는 좋은 것을 자랑하고 안 좋은 것은 숨깁니다. 똑똑하고 잘 나갔던 사람을 대표로 내세워 자랑합니다. “대사헌 벼슬을 지내신 ㅇㅇ공 몇 대 후손입니다.” 그런데 족보에 올라온 4명의 여인들은 예수님을 높이자는 것인지, 예수님을 까내리자는 것인지 헷갈리게 만들 정도입니다. 다말, 라합, 룻, 우리야의 아내입니다. 남녀의 성비를 맞추기 위해 여인들을 등장시키고 싶었다면 사라나 리브가도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순종의 여인 사라에게서 이삭을 낳고 이삭은 천만인의 어미 리브가에게서 야곱을 낳았더라’ 이렇게 써주면 얼마나 덕이 됩니까! 그런데 유다는 며느리 다말에게서 베레스를 낳았고(3) 살몬은 가나안 여리고의 기생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4), 보아스는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올 수 없다고 정죄했던 모압 족속 룻에게서 오벳을 낳았다고 말합니다.(5) (신23:3) 심지어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았다고 말합니다.(6) 하나님의 은혜로 왕이 된 자가 남의 아내에게서 자식을 낳았으니,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악을 저지른 사람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마태는 있어도 감추고 싶은, 아픈 새끼손가락 같은 이들을 왜 굳이 기록한 것입니까! 아마 가장 큰 이유는 그녀들의 이야기에서 마태 자신의 이야기를 발견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말처럼 꼬이고 꼬인 인생, 시아버지라도 속여 동침하지 않으면 희망을 찾을 수 없었던 다말같은 절박한 인생을 살았을 것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 몸을 팔았던 라합처럼 돈을 벌기 위해 민족을 팔고 양심을 팔고 하나님에게서 가장 먼 자리까지 달려갔던 사람입니다. 왕이라는 타이틀을 걸치고 있지만 남의 아내를 빼앗아왔다는 정죄를 피해갈 수 없었던 다윗처럼, 돈 많은 부자이지만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어 불면과 두려움으로 잠 못 이루며 살던 죄인이었습니다. 마태가 한 것은 자포자기하거나 절망의 무덤으로 기어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말처럼 다시 일어선 것입니다. 라합이 용기를 내어 하나님 편에 선 것처럼, ‘나를 따르라’하신 예수님의 부르심에 반응하여 세관을 박차고 나온 것이었습니다. 룻이 나오미와 끝까지 함께 했던 것처럼, 예수님과 끝까지 함께 한 것이었습니다. 다윗이 침상이 젖도록 애통하며 회개한 것처럼, 마태 또한 예수님의 제자로 살기 위해 많은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자기만을 위해 살던 사람이 예수님을 따라 공동생활을 했으니, 얼마나 부딪힘이 많았겠습니까! 아마 자기도 울고 다른 동료들도 울게 하는 그런 일들이 한두 번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다말과 라합과 룻과 우리야아의 아내가 그리스도의 조상이었다는 것은 누구보다 마태에게  위로와 감동을 주었을 것입니다. 혈통이나 신분, 인격이나 도덕성에 상관없이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으면 누구나 하나님 구원역사에 쓰임 받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인간적인 탁월함이 하나님의 택하심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퍼펙트맨이나 고결한 사람만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쓰임 받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 편에 서는 자들이라면 누구나 귀하게 여기시고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해를 받고 손해를 당할지라도 하나님 백성과 함께 하는 자들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회개하고 긍휼을 구하는 자, 하나님은 그들을 변함없이 용서하여 주시고 그 지위를 회복시켜 주십니다. 그러므로 상한 갈대 같고 꺼져가는 심지 같은 마태같은 사람이라도 열두 사도로 쓰임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의 족보는 모든 죄인들을 향한 놀라운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12-17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이후에도 ‘낳고 낳고의 역사’는 계속됩니다. 다윗 왕국이 바벨론에 의해 망한 것은 보이는 왕국이 하나님 나라가 아님을 보여줍니다. 다윗왕국이 망했을 때, 많은 이들이 하나님의 선하심,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주권도 망했다 생각하고 믿음을 버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눈에 보이는 역사와 상관없이 줄기차게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낳고 낳고의 역사는 계속되어 예수 그리스도에게까지 이어졌습니다. 마태가 살던 시대도 어려웠고 오늘 우리시대도 어렵습니다. 사는 것도 팍팍하고 복음역사도 팍팍합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 손에 잡히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계보는 어느 시대이든지 구원역사가 계속하여 이어지고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러합니다. 믿음으로 사는 자들이 이어지고 이어져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까지 연결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장의  결과에 너무 몰입하여 손해의식이나 두려움이나 불신에 휘둘릴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줄기차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봄으로써 성탄의 기쁨을 회복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계승자들로 충성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8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유대 결혼 풍습은 정혼하고 결혼식을 올리기까지 1년의 검증기간을 둡니다. 그런데 바로 이 기간에 마리아가 잉태한 것이었습니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성령으로 잉태된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아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마리아는 요셉에게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졌음을 수없이 증거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에게는 마리아의 궁색한 변명으로 들렸을 것입니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둘 중의 하나입니다. 배신감에 치를 떨며 ‘너 죽고 나 죽자’로 엎어버리든지, ‘내가 사랑하면 되지, 내가 다 책임진다니까!’ 덮고 가는 것입니다. 요즘에는 파혼하면 그때까지 주었던 선물을 회수해간다고 합니다. 남남을 넘어 원수가 되는 경우도 허다하고 데이트 폭력문제도 심각합니다. 그런데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19) 요셉은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아니하였으며 하나님의 공의와 은혜를 찾고자 기도했습니다. 이에 조용히 이혼증서를 써줌으로써 마리아의 생명도 보호하고 공의도 세우고자 했습니다. 그는 긍휼의 사람, 공의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의로운 요셉을 특별히 도와주십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성령으로 잉태되었음을 말씀해 준 것입니다.(20) 요셉처럼 의로운 사람도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 그리스도 탄생의 신비입니다.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는 그리스도를 알 수 없고(요1:13) 성령의 도우심이 있어야 완전한 하나님, 완전한 인간이신 그리스도의 신비를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태어나신 예수님은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하십니다. 2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많은 이들이 AI가 모든 분야에서 사람의 일들을 대체하게 될 것이라 기대합니다. 세계바둑 최고수 이세돌씨는 AI를 도저히 이길 수 없고 AI에게 바둑을 배워야 하는 현실이 싫어 40도 되지 않은 나이에 바둑계를 은퇴했습니다. AI가 자율주행을 하고 물건을 배송하는 차원을 넘어 진료와 재판을 하고 교육과 상담을 하고 작곡과 예술 활동을 하게 될 날들이 그리 멀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인류문명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여 인간도 예측 불가능한 지점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과학문명이 발전할지라도 인간의 죄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발전하는 과학문명이 인간의 죄성과 만나 지구적인 재앙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지구온난화의 심각성, 미세 플라스틱에 의한 바다의 오염은 이미 우리 피부로 느껴질 정도까지 왔습니다. 생명공학이 가져올 윤리적인 문제는 인간의 개념 자체를 뒤흔들어 놓을 수도 있습니다. 문제의 심각성과 해결책을 알아도 욕심을 절제하지 못해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풍요를 누리고 있지만 상대적 불만족과 욕심과 시기심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세계를 하나로 묶는 정보통신시대가 되었지만, 이전보다 불통과 불신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점점 많은 사람들이 불안과 우울증과 불면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인간의 죄는 교육이나 법률이나 정치나 과학기술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죄의 뿌리는 욕심입니다. 창세기 3장을 보면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욕망, 곧 자기를 높이려는 욕심이 죄의 시작이었습니다. 죄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낮아짐, 희생입니다. 누군가의 죄를 대신하여 고통을 견디고 생명을 내어놓는 희생하는 사람이 있어야 죄 문제의 해결이 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짐승 양의 희생으로 죄 사함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일시적이었고 불완전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어 우리의 죄를 담당하고자 이 땅에 오셨습니다. 춥고 각박한 이 땅에 피조물의 모습으로,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호산나! 외치는 사람들의 인기를 뒤로 하고 십자가 죽음의 길을 가셨습니다. 사흘만에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해방시키셨습니다. 이사야서 53:5,6절이 예언한 그대로였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예수님을 만나야 죄와 사망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향해 나아갑니다. 고상하고 경건한 길을 사모하게 되고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자기만 알던 세계에서 나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됩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 우리를 영원한 심판에서 건져내시고 영생으로 인도하신 예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고 경배하기를 기도합니다.    

일찍이 선지자 이사야는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을 예언했습니다.(22) 23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이는 BC 8세기 아람의 위협으로 전쟁공포에 시달리던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이기도 했습니다.(사7:14) 그런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수많은 군대를 보내어 주셨다면, 경제가 좋아지고 국제정세가 달라졌다면 그 약속을 믿었을지도 모릅니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 것과 전쟁의 승리가 무슨 연관이 있는가! 하나님의 사랑과 권능을 신뢰하지 않는다면 믿을 수 없는 약속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약속대로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은 처녀 마리아가 잉태한 사건을 통해 임마누엘 하나님을 약속하셨습니다. 우리와 함께 하사 우리를 위협하는 모든 악의 세력으로부터 구원해주실 하나님을 약속하십니다.
우리는 치열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외로움과 고독을 느낍니다. 사랑하던 사람에게 이별을 고할 때, 세상에 홀로 남아있는 것처럼 생각되기도 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문제들을 만날 때, 내 옆에 끝까지 함께 해줄 그런 존재를 그리워합니다. 부모나 친구나 동역자가 그런 존재가 되어주지 못할 때가 대부분입니다. 내 인생은 내가 살아야 하고 내 문제는 내가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될 때, 삶이 무겁고 힘들게 느껴집니다. 현실의 어려움이 닥치고 장래에 대한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누가 나와 함께 하며 누가 나를 도와줄 수 있는가! 내 원대로 기도제목이 이루어지고 내 원대로 양들이 변화되고 자녀들이 성장해주면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확신할 수 있을까요! 지난주 전국스텝목자수양회에서 어떤 스텝목자는 오랫동안 죽을 고생을 하며 도왔던 리더가 최근에 변화되었는데도 기쁘지 않고 오히려 신경질이 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소감발표했습니다. 처음에는 갱년기인 줄 알았는데, 오랜 시간 씨름하다보니 양은 살아나고 목자는 말라버린 것, 목자의 한계를 발견했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이 메마른 광야처럼 말라버린 심령에 새 일을 행하여 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스스로의 힘으로만 잘 살아갈 인간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양 같아서 함께 해줄 목자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지 않으면, 누구든지 광야같은 세상에서 메마르고 기진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인생들의 약함을 아시고 임마누엘! 약속을 주셨습니다. 처녀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신 예수님이 그 약속의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와 함께 하기 위해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의 허물과 죄를 담당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를 믿는 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어 함께 하십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은 그를 믿는 자들과 영원토록 성령으로 함께 하십니다. 마태복음은 임마누엘로 시작하여 임마누엘로 끝이 납니다. 마태븍옴 28:20절은 말씀합니다. “내가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20) 우리는 문제를 만날수록 예수님에게로 돌아가야 합니다. 아이가 엄마의 품에서 평안을 누리듯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평안을 누려야 합니다. 우리 믿는 자들은 나 홀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사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하나님 백성으로 살게 하십니다. 우리와 함께 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을 인하여 감사와 찬양을 새롭게 드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힘들고 고통하는 영혼과 함께 임마누엘 은혜를 생생히 나눌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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