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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1-07 (일) 14:33
분 류 이사야
첨부#1 2018년_신년1강-1(최동진).hwp (64KB) (Down: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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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신년 제1강]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2018년 신년 제1강                                                                 최동진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말씀 / 이사야 54:1-17
 요절 / 이사야 54:1 “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산고를 겪지 못한 너는 외쳐 노래 할지어다. 이는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오늘 말씀은 바벨론 포로 생활로 고통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에게 주는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은 노예백성 이스라엘을 구원하셔서 아내로 삼아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화려하고 멋있는 강대국의 우상에 마음을 빼앗겨 바람난 여인과 같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70년 동안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크신 긍휼로 그들을 다시 구원하시고 아내로 회복시켜 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나아가 그들이 장차 누리게 될 영광스러운 새 이스라엘을 이루실 소망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날에도 우리 가운데 회복의 역사를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가운데 이루실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덧입고 새 해를 출발하기를 기도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산고를 겪지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이는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너’, ‘산고를 겪지 못한 너’는 바벨론 포로 생활 중에 있는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당시에는 아이를 낳는 것이 여인의 중요한 존재의미요 목적이었습니다. 자녀를 낳지 못하는 것을 여인에게 있어서 수치스러운 일로 여겼습니다. 오늘 날에는 오히려 여러 가지 이유로 출산을 기피하는 현상이 확산되어 출산율 감소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1960년대 연간 신생아 출생 수가 100만 명이 넘었던 것이 해가 갈수로 줄어들더니 작년에는 36만 명 선까지 떨어졌습니다. 작년도 합계 출산율도 1.07명으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하였습니다. (합계출산율이란 15세부터 49세까지 가임기 여성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의 숫자를 말합니다.) 출산율이 떨어진다는 것은 생산인구의 감소와 성장 동력의 상실을 의미합니다. 이런 추세가 지속된다면 국가의 존립 기반의 붕괴를 초래하게 됩니다. 아이는 사회의 미래이자 희망입니다. 여인들의 사회활동이 제한적이었던 고대 사회에서 아이가 없다는 것은 여인에게 미래의 희망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아이를 낳고자 하였습니다. 성경에 보면 자녀가 없어 고통당하는 여인들이 여러 명  나옵니다. 창세기에서 라헬은 야곱에게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창30:1)”고 말했습니다. 한나도 자녀를 낳지 못하여 슬피 울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어쩌다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처럼 슬프고 운명적이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축복을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노예백성으로 살던 이스라엘을 크신 능력으로 출애굽 시키시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들을 통해 온 세계에 복을 주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의 죄에 빠졌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보내서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려고 하였으나 그들은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죽였습니다. 결국 그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불타고 예루살렘 성은 무너졌습니다. 그들은 잉태하지 못하고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인처럼 되었습니다. 자신들의 슬픈 처지를 생각하면 절망하고 자괴감에 빠져 “이게 나라냐?” 라고 탄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에게 노래하라고 하십니다. “너는 노래할지어다”,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Shout for joy!" 기뻐 외치라고 합니다. 적극적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그들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 즉 잘나가는 선진국 바벨론의 자식보다 많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꼭 기쁘고 즐거운 일이 있어야만 노래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은 스트레스가 쌓이면 노래방에 가서 목청껏 노래를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학생들은 주로 시험이 끝나면 노래방에 갑니다. 노래를 부르면 스트레스도 풀리고 마음이 밝아집니다. 노래방에 가지 않더라도 찬송을 많이 하면 마음도 밝아지고 건강에도 좋습니다. 찬송의 이로운 점은 의학적으로도 증명되어 있습니다. MD앤더슨 병원 암센터에서 종신교수로 근무하는 김의신 박사님의 연구에 의하면 우리 몸에서 암세포를 잡아먹는 대표적인 면역세포인 Natural Killer cell이 많을수록 암치료가 잘되고 암에도 잘 안 걸리는데 교회 성가대원들은 그 수치가 일반인보다 1000배나 높게 나왔다고 합니다. 이는 기쁨 속에서 노래하며 인생을 밝게 사는 사람이 암에 대한 저항력도 높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러므로 현실이 어려울수록 노래해야 합니다.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몰라 방황하다가 죽을 죄인을 구원하시고 영생의 소망을 주신 하나님, 내 인생의 인도자가 되셔서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를 아끼지 않으시고 십자가에 그 목숨까지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면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기쁨으로 노래가 터져 나오지 않겠습니까? 기쁨으로 노래할 때 나를 짓누르는 모든 운명과 어둠이 물러가고 밝은 빛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현재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홀로된 여인과 같이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영원히 버리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연단이 끝날 때 크게 번성하여 바벨론이나 그 어떤 나라보다도 강하고 영향력 있는 위대한 나라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실 회복의 역사를 믿을 때 기뻐 외치며 노래할 수 있습니다. 노래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너는 노래할지어다!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우리 가운데에도 하나님께서 이루실 역사를 바라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 소리가 차고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이런 비전 가운데 그들이 구체적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2절을 보십시오.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지어다.” 장막터를 넓히라는 것은 삶의 영역과 활동무대를 넓히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포로생활로 마음이 오그라들어 있었습니다. 홀로된 여인에게는 1인용 텐트만 있으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가능한 한 장막터를 좁게 하고 휘장을 아끼고 줄을 짧게 해야 힘도 덜 들고 실용적이고 경제적일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많은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큰 장막을 치라고 하십니다. 왜 그래야 합니까? 3절을 보십시오. “이는 네가 좌우로 퍼지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 황폐한 성읍들은 사람 살 곳이 되게 할 것임이라.” 앞으로 자손들이 많아지고 장막은 비좁아서 좌우로 막 퍼져 나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비전을 영접하고 마음을 넓혀서 만민이 거할 수 있는 장막을 만들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기도와 관심의 줄을 길게 해야 합니다. 다음에는 신앙의 말뚝을 견고히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오그라진 마음을 넓혀서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나와 내 양, 내 가정, 내 요회, 내 단대만 생각하는 좁은 마음을 찢어서 전 세계에서 수고하시는 선교사님들에게까지 관심의 범위를 넓히기를 원하십니다. 요즈음에는 인터넷이 발달하여 마음만 먹으면 전 세계에 있는 선교사님들과도 실시간으로 교제할 수 있습니다. 갈수록 힘들어지는 역사로 인해 마음이 오그라들기 쉬운 이때에 기도의 줄을 길게 하여 세계를 품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에도 처음부터 크신 계획 가운데 약속의 말씀을 주시고 큰 비전을 갖도록 하셨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12:2)”,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창15:5)” 아브라함은 딸자식 하나 없는 늙은이였지만 마음을 넓혀 하나님의 뜻을 영접했을 때 천하 만민을 낳고 키우는 위대한 인생이 되었습니다. 사도바울도 자신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당하고자 끊임없이 장막터를 넓혀갔습니다.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행19:21)” 바울이 원대한 비전 가운데 장막터를 넓혀갔을 때 육신의 가시로 고통당하는 가운데에 많은 믿음의 승리를 체험하고 수많은 영혼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위대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암울했던 1960년대 초반 광주에서 시작된 우리 모임은 전주, 대전, 대구, 서울 ,부산으로 퍼졌으며 현재는 전국 대부분 대학에서 약 1만 명의 대학생과 학사들이 주축을 이루어 역사를 섬기고 있습니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었지만 모일 때마다 손에 손을 잡고 “성서한국 세계선교 장막터를 넓히자” 구호를 외치며 믿음으로 도전했을 때 1450명의 훈련된 전문인 또는 유학생 선교사들이 전 세계 약 90개국으로 나아가서 대학선교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도 2041년까지 전체 UBF에서 10만 선교사 파송, 경성센터 1만 선교사 파송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앞에 놓인 복음 역사의 현장은 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이스라엘과 다를 바가 없어 보입니다. 초고령화 사회, 인구절벽은 이제 남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우리 눈앞의 현실 문제로 다가왔습니다. 목자들의 나이는 점점 고령화 되어가고 캠퍼스에서 양 한 사람을 낳고 키우는 것이 갈수록 힘들어지는 상황을 생각하면 탄식만 나옵니다. 시간이 지난다고 상황이 더 좋아질 희망이 보이지도 않습니다. 양들이 줄어드는 것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심각하게 고민할 때입니다. 지금이 골든타임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 후손들에게 더 힘든 현실을 물려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의 말씀을 굳게 붙들어야 합니다. 장막터를 넓히고 말뚝을 견고히 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다시 한 번 깊이 영접하고 순종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어느 시대에나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을 통해 역사를 이루어 나가십니다. 하나님은 제가 어려운 현실 앞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절망하고 있을 때마다 마음을 넓혀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콜롬비아 박안드레스 선교사님을 지난 7년간 스카이프 일대일로 섬기게 하심으로 저의 마음을 넓혀주시고 콜롬비아 역사를 위해 기도하며 지원하게 하셨습니다. 기회가 될 때마다 세계 곳곳에서 있는 수양회에 참석하여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역사를 보게 하시고 선교사님과 양들과 교제하며 기도의 범위를 넓히게 하셨습니다. 작년에는 두 자녀를 독일로 보냄으로 독일 역사에도 관심을 가지고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세계 곳곳에서 복음이 전파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나가고 계십니다. 제가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붙들고 캠퍼스를 위해 기도하며 복음 증거자의 사명을 감당하기를 기도합니다. 장막터를 넓히고 휘장을 아끼지 않고 널리 펴는 수고와 희생을 감당함으로 성서 한국과 세계 선교에 쓰임 받는 위대한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붙들고 믿음으로 새 출발 하려 할 때 극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놀라지 말라 네가 부끄러움을 보지 아니하리라 네가 네 젊었을 때의 수치를 잊겠고 과부 때의 치욕을 다시 기억함이 없으리니” ‘젊었을 때’는 애굽의 종살이하던 때를 가리킵니다. 그 때는 하나님 없이 육신의 소욕과 본성대로 살았습니다. ‘과부 때’는 남편 되신 하나님께 버림받고 바벨론 포로 생활 하던 때를 가리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죄가 하나님을 얼마나 진노케 했는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과연 정말로 회복시켜 주실 것인가? 또다시 수치와 부끄러움을 당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젊었을 때에는 하나님 없이 우리 육체의 욕심과 마음의 원하는 것을 좇아 행하며 본질상 진노의 자녀들이었습니다.(엡2:3) 이런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피로 구원받고 새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은혜와 부르심의 은혜를 감당치 못하고 물질주의, 육신주의, 인본주의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을 분노케 한 일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은 젊었을 때의 수치와 과부 때의 치욕을 다시 기억함이 없을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5절을 보십시오. “이는 너를 지으신 이가 네 남편이시라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라 그는 온 땅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실 것이라” 이는 하나님이 그들의 남편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는 바람피운 아내를 다시는 돌아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이 회개하였을 때 다시 아내로 맞아주십니다. 창조주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가 그들의 남편이 되어주십니다. 그들의 보호자가 되어주시고 힘이 되어주십니다. 하나님은 잠시 그들을 버렸으나 큰 긍휼로 다시 모을 것이요(7), 넘치는 진노로 얼굴을 잠시 가렸으나 영원한 자비로 긍휼히 여길 것이라 위로해주십니다.(8) 긍휼이란 어머니의 희생적인 사랑의 모습을 나타내는 말로서 사람을 불쌍히 여기시며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속성을 담고 있습니다. 참 남편 되시고 어머니가 되셔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지켜주시는 하나님을 생각할 때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은 한 번 택하신 종들을 결코 버리지 않으시고 영원히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십니다.(신5:9) 하나님은 노아의 홍수를 예로 들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그들에게 확신시켜주십니다. 노아 시대에 하나님은 그들의 죄 때문에 물로 심판하셨지만 심판 후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으실 것을 무지개 언약으로 약속하셨습니다.(9) 하나님은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산들이 떠나며 언덕들은 옮겨질지라도 하나님의 언약은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10)

  11-14절에서는 그들이 다시 돌아올 때 그들과 함께 살 아름답고 영화로운 집을 보여주시고 자녀들의 장래까지 책임져 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11,12절을 보십시오. “너 곤고하며 광풍에 요동하여 안위를 받지 못한 자여 보라 내가 화려한 채색으로 네 돌 사이에 더하며 청옥으로 네 기초를 쌓으며 홍보석으로 네 성벽을 지으며 석류석으로 네 성문을 만들고 네 지경을 다 보석으로 꾸밀 것이며” 이스라엘은 현재 곤고하며 광풍에 요동하여 안위를 받지 못하였습니다. 집들은 황폐하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은 무너졌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제 예루살렘에 화려한 채색으로 집을 지으라고 하십니다. 청옥으로 기초를 짓고 홍보석으로 성벽을 쌓으라고 하습니다. 석류석으로 창문을 만들고 지경을 보석으로 꾸미라고 하십니다. 이 모습은 요한계시록에 묘사되어 있는 새 예루살렘의 모습과도 흡사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곳에서 살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아파트 이름에도 팰리스나 캐슬이라는 명칭을 붙이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장차 다시 오셔서 만드실 하나님 나라는 지금까지 지어진 어떤 화려한 집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모습을 나타낼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자녀들에게도 복을 주십니다. 13,14절을 보십시오. “네 모든 자녀는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것이니 네 자녀에게는 큰 평안이 있을 것이며 너는 공의로 설 것이며 학대가 네게서 멀어질 것인즉 네가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며 공포도 네게 가까이하지 못할 것이라” 모든 자녀들이 여호와의 가르침을 받고 믿음 안에 자라납니다. 자녀들이 믿음 안에 자라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부모들에게는 가장 큰 기쁨이 됩니다. 또한 목자들은 양들이 말씀 안에 자라나 예수님의 제자로 성장하는 모습을 볼 때 큰 기쁨을 누립니다. 우리의 양들과 자녀들이 복음 안에서 큰 평안을 누리며 믿음의 거목들로 자라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세우실 그 나라는 공의가 다스림으로 약자를 학대하는 것도 사라지고 두려움이나 공포도 사라지고 진정한 평안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15-17절은 하나님이 그들을 보호하실 것에 대한 약속의 말씀입니다. 하나님 허락 없이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분쟁을 일으키는 나라는 하나님께서 패망하게 하십니다. 16,17절을 보십시오. “보라 숯불을 불어서 자기가 쓸 만한 연장을 제조하는 장인도 내가 창조하였고 파괴하며 진멸하는 자도 내가 창조하였은즉 너를 치려고 제조된 모든 연장이 쓸모가 없을 것이라 일어나 너를 대적하여 송사하는 모든 혀는 네게 정죄를 당하리니 이는 여호와의 종들의 기업이요 이는 그들이 내게서 얻은 공의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연장을 제조하는 장인도 하나님이 만드시고 물건을 파괴하고 진멸하는 자도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치려고 만든 모든 무기가 쓸모없게 하십니다. 아담과 하와는 풍요롭고 아름다운 에덴에서 송사하는 자 사탄으로 인해 넘어졌지만 장차는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송사하는 모든 혀는 정죄를 당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연약한 그들을 보호하사 여호와의 종이 받을 기업을 이어나가게 하실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졌고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두려움 없이 종신토록 하나님을 섬기며 진정한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나아가 장차 임하게 될 하나님 나라에서 완전하고도 영원한 평화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이 평화는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실패에 대한 두려움, 장래에 대한 염려, 힘든 세상살이로 인해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변함없는 은혜와 사랑에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려드립니다.  

  하나님은 과거 자기만을 위해 살던 저를 구원하시고 캠퍼스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며 말씀으로 섬기는 목자의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경희대 캠퍼스를 넘어 가대 캠퍼스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장차 뭇별과 같은 후손을 주실 것이라는 비전을 붙들고 가대 캠퍼스 땅을 밟고 기도와 말씀의 씨를 뿌렸습니다. 그런데 1년, 2년이 지나고 10년이 훌쩍 넘어갔지만 양은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양을 잉태할 소망마저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가대 캠퍼스 심방가는 발길이 꼭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더 이상 캠퍼스에서 수치를 당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작년에는 여러 가지 바쁜 역사를 핑계로 캠퍼스 심방도 몇 번 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경비원들에게 쫓겨나고 학생들에게 무시받는 수치를 당하면서도 꾸준히 캠퍼스에 나아가 기도하며 말씀을 전하는 충성스러운 동역자님들을 통해서 준비된 양들을 만나게 하시고 하나님의 도우심의 손길과 은혜를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가대 캠퍼스에 소망을 끊지 않으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동원 형제님을 가대의 주인으로 키우고 계셨습니다. 구원의 은혜를 덧입혀주시고 가대 영혼들을 위해 심정을 가지고 기도하게 하시며 든든한 동역자로 세워주셨습니다. 그리고 몇 몇 양들 가운데 꾸준히 말씀 역사를 이루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이제 외쳐 노래하라 하십니다. 하나님을 믿을 때 가대 캠퍼스에도 많은 자녀들을 허락하시고 크게 번성케 하여주실 것입니다. 제가 어두운 현실을 바라보기보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붙들고 가대 캠퍼스 역사를 힘써 섬기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실 것을 믿음으로 모든 두려움을 이기고 다시 캠퍼스에 나아가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오늘 날에도 우리 가운데 회복의 역사를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힘든 현실 앞에 한숨 쉬며 절망하기보다 긍휼의 하나님을 바라보아야겠습니다. 장막터를 넓히고 휘장을 널리 펴고 줄을 길게 하고 말뚝을 견고히 함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쓰임 받을 만한 자로 준비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비전을 붙들고 올 한 해 우리 가운데 이루실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고 외쳐 노래하며 새 해를 출발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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