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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06-09 (일) 13:01
분 류 창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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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창세기 제13강] 아브라함을 친구 삼으신 하나님

 2019년 창세기 제13강                                                              김반석

아브라함을 친구 삼으신 하나님

말씀 / 창세기 18:1-19:38
요절 / 창세기 18:18,19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오늘 말씀에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로서 변화된 삶을 살고 있는 아브라함과 세속적인 삶을 살고 있는 롯의 모습이 대조되어 나옵니다. 이전까지 아브라함의 신앙생활의 초점은 자신의 심각한 인생문제 해결에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믿음으로 하지 않고 세상적인 방법과 자기 계획을 앞세우다가 더 어려운 문제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할례를 행한 후 그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자기중심적인 신앙생활에서 하나님의 뜻을 섬기는 성숙한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하여 믿음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성경은 이런 아브라함을 가리켜 하나님의 친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대하20:7, 사41:8, 약2:23). 반면 롯은 세상과 타협하며 잘 사는 것 같았지만 결국 부끄러운 열매를 맺고 역사 속에서 사라졌습니다. 이 시간 이 두 사람의 삶을 통해 우리가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할 것인지 분명한 영적 방향을 잡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무엇보다 부족한 우리들을 친구로 삼아 하나님 역사를 동역하여 섬기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소원을 영접하고, 생명구원역사에 쓰임 받는 복된 인생 살기를 기도합니다.

Ⅰ. 아브라함의 변화된 삶(18:1-33)
첫째, 아브라함의 손님대접(18:1-15)
18장 1절을 보십시오. 뜨거운 어느 날이었습니다. 이때는 한낮의 가장 더운 시간으로 식사와 함께 휴식을 취하는 시간입니다. 아브라함은 소화도 시킬 겸 장막 문에 앉아 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서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들을 보자마자 즉시 달려 나가 뜨겁게 맞이했습니다. 3-5a절을 보십시오. “이르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시옵고.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에서 쉬소서. 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상쾌하게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당신들이 종에게 오셨음이니이다.” 사실 쉬어야 할 시간에 사람이 찾아오면 왜 하필 이때 오느냐며 불평하는 마음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자는 척하며 샛눈으로 언제쯤 가려나 하고 동정을 살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냉수 한 잔 정도만 주고 보내도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겸손한 자세로 진심을 담아 초청했습니다. 이 더운 날씨에 얼마나 목이 마르고, 배가 고플까 생각하며 어찌하든지 먹이고자 했습니다. 나무 아래서 쉬고, 원기를 회복한 후에 가도록 배려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들의 신분을 알고 대접한 것이 아닙니다.(히13:2) 그렇다고 무엇을 바라고 한 것도 아닙니다. 자신의 집에 온 나그네를 대접하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나이는 현재 99세 입니다. 이 나이에는 몸이 예전 같지 않아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하며 가능하면 드러누워 쉬고 싶습니다. 말하는 것조차 귀찮아 손가락이나 턱으로 사람을 부리기 쉽습니다. 편리하게 출장 뷔페나 배달 음식을 시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동분서주하며 자신이 직접 섬겼습니다. 그의 행동을 보면 피곤한 나그네에 대한 진심과 애정이 담겨져 있습니다. 6-8절을 보면 아브라함이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대접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급히 장막으로 가서 사라에게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고 했습니다. 세 스아는 약22L 정도로 수십인 분의 빵을 만들 수 있는 충분한 양입니다. 적게 준비해서 인색하게 배식하지 않고 배불리 먹을 수 있도록 풍성하게 준비했습니다. 또 가축 떼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잡아 하인에게 주어 급히 요리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엉긴 젖과 우유와 송아지 요리를 가져다가 나그네들 앞에 차려 놓고, 나그네들이 나무 아래에서 먹는 동안 서서 시중을 들었습니다. 나그네들에게 불편한 것은 없는지, 무엇이 부족한지 살피며 종의 자세로 겸손히 섬겼습니다. “달려나가”, “급히”, “속히”, “달려가서”  이런 단어들을 통해 알 수 있듯이 99세의 나이에도 청년과 같이 이러 저리 뛰어다니며 스피릿 충만하게 섬기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섬길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75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복의 인생을 살고자 하는 분명한 인생 목적과 방향과 사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할례를 통하여 자기중심적인 신앙생활을 깊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세상 만민을 품고 섬기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로서의 인생을 살고자 분명하게 결단했기 때문입니다.
손님을 섬기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고 손해를 보는 일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비결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성경도 손님 대접하기에 힘쓰라고 말씀합니다(롬12:13). 어떤 사람이 아이의 고름을 치료하고 있는 테레사 수녀에게 물었습니다. “수녀님, 당신은 잘 사는 사람, 사회적으로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부럽지 않습니까? 이런 삶으로 만족하십니까?” 이 질문에 테레사 수녀는 “허리를 굽히고 섬기는 사람에겐 위를 쳐다볼 수 있는 시간이 없으니까요.” 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허리를 굽혀 섬기는 사람을 인정하십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서는 날 주님은, 우리가 평생 얼마나 많은 사람을 어떤 자세로 섬겼는가 물으실 것입니다. 현재 나의 삶은 얼마나 섬김의 향기와 섬김의 자세가 있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하겠습니다. 아브라함은 이름만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아니라 실제 삶에서 그 이름에 합당한 생활을 했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의 믿음이 성장한 것이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은 것임을 말해줍니다. 신앙생활에는 이렇게 삶의 변화를 통한 영적인 성장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시대 캠퍼스 지성인들의 복이요, 이들을 품고 섬기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요 어머니로 택함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가 이에 대한 분명한 정체성을 갖고 우리에게 보내주신 손님들인 양들과 선교사님들, 도움이 필요한 분들을 진심을 드려 섬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 가정의 변화된 삶을 통해 감동을 받으시고, 그들에게 놀라운 소식을 전해주셨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그가 이르시되 내년 이맘때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그토록 고대하던 소원이 이뤄지게 되었으니 할렐루야를 외치며 감사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라는 속으로 웃으며 말했습니다.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사라는 89세나 되어 생물학적으로 임신이 불가능한데, 말도 안 된다며 기가 막히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사라가 왜 웃으며 불신적인 말을 하냐고 하시며, 1년 후에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라고 재차 약속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사라가 불신적인 생각을 극복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갖도록 도와주셨습니다.

둘째, 아브라함의 중보기도(18:16-33)
식사를 마치고 그 사람들이 소돔으로 가고, 아브라함은 그들을 전송하러 함께 나갔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어느 정도까지 신뢰하고 계신가를 가르쳐 줍니다. 아무리 친한 친구사이라고 해도 특급 정보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고민까지 공유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계획을 숨김없이 아브라함에게 다 말씀하겠다고 하십니다. 이는 아브라함을 친구요 동역자로 여기시고, 하나님이 하고자 하시는 일에 동참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교수나 직장 상사의 인정을 받아 중요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도 기쁘고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하물며 천지만물의 창조주요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친구요 동역자로 택함 받고, 구원역사에 쓰임 받는 삶을 사는 것만큼 영광스럽고 축복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요15:14절에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고 하셨습니다. 비록 우리가 부족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친구로 여기시고,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동참하게 해주십니다.(요15:15)
그러면 아브라함을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입니까? 18,19절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 강대한 나라를 건설하고, 그의 후손에서 태어날 메시야를 통해 천하 만민이 구원의 축복을 누리도록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아브라함은 자식과 후손들에게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여호와의 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세상이 부정부패와 음란과 폭력으로 가득하게 된 것은 근본적으로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기 때문입니다.(암8:11) 하나님을 믿고 말씀에 순종할 때 의와 공도를 행할 수 있습니다. 의와 공도를 행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분별하고, 그대로 행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이처럼 의와 공도를 앞세우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앙생활하면서 자신의 인생문제 해결을 우선시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좋은 성적, 좋은 직장, 좋은 배우자, 자녀의 성공 등에 관심을 쏟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는 것을 마음의 첫 자리에 두고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이러한 하나님의 소원을 영접하고, 나 자신이 의와 공도를 행할 뿐 아니라 자녀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는 삶을 살도록 힘써 가르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넘치도록 공급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마6:33)
20,2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되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무거우니.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에 가셔서 그들의 타락상을 직접 보시고 심판하고자 하셨습니다. 심판은 하나님만이 하시는 특급비밀인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심판 계획까지도 숨김없이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계획을 알게 된 아브라함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하나님! 참으로 지당한 말씀입니다. 저런 인간들은 진작에 심판하셨어야 합니다.”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즉시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 간절히 중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은 어떻게 중보기도 했으며, 그의 기도를 통해 배울 점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에 기초해서 기도했습니다. 23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 하나님은 의로운 분이시므로 죄에 대해서는 반드시 행한 대로 심판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죄인을 사랑하시는 은혜와 긍휼이 풍성한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심판이 아니라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여 구원받는 것입니다.(벧전3:9, 딤전2:5) 아브라함은 막무가내로 떼를 쓰며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알고 그에 기초하여 인격적으로 기도했습니다. 24,25절을 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그 성 중에 의인 오십 명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하지 아니하시리이까.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부당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같이 하심도 부당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정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기도를 들으시고, 만일 소돔성에서 의인 50명을 찾을 수 있다면 그들을 생각해서 그 성을 용서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둘째로, 상한 목자의 심정으로 겸손하고 끈질기게 기도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기도 응답은 받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성중에 의인 50명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숫자를 깎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50명에서 45명, 40명, 30명, 20명, 10명까지 무려 6번이나 용서의 조건을 완화시켰습니다. 그가 이렇게까지 기도할 수 있었던 것은 롯을 비롯하여 소돔과 고모라 백성에 대한 상한 목자의 심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너무 심하게 깎는다고 화를 내지 않으시고, 아브라함의 기도를 다 들어주셨습니다. “나는 티끌이나 재와 같사오나 감히 주께 아뢰나이다(27), 내 주여 노하지 마시옵고 말씀하게 하옵소서(30), 내가 감히 내 주께 아뢰나이다(31),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아뢰리이다(32)”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들어주실 것을 믿고, 겸손히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구하며 기도했습니다. 의인의 중보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큽니다(약5:16).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목자의 심정으로 겸손하고 끈질기게 중보기도 한 것을 들으시고, 멸망 중에서 롯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19:29)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는 기도하지만 타인을 위해 중보기도 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리차드 포스터는 ‘기도’라는 책에서, ‘중보기도는 우리의 관심의 무게중심을 나에게서 타인에게로 옮기는 이타적인 간구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가장 잘 들어주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중보기도로 동역할 의인들을 찾고 계십니다. 우리는 중보기도로 하나님이 하고자 하시는 일에 동역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한 영혼을 위해 중보기도 할 때, 하나님이 들으시고 그를 변화시키시고 구원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의 친구요 동역자로서 중보기도의 반경을 넓혀야 하겠습니다. 나와 내 가정에서 요회와 교회와 국가와 선교사들에까지 이르도록 중보기도의 줄을 길게 해야 하겠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마음을 배우게 되고, 여러 민족의 아버지요 어머니다운 넓은 내면성을 가진 성숙한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Ⅱ.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19:1-38)
저녁 때 두 천사가 소돔에 도착했을 때 롯은 소돔 성문에 앉아 있었습니다. 성문은 고대 사회에서 재판장소 및 교제의 주요 장소였습니다(신21:9,수20:4). 따라서 롯이 성문에 앉아 있었다는 것은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도층 인사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롯은 그들을 어떻게 대접했습니까? 식탁을 베풀고 발효되지 않은 딱딱한 빵을 구워주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손님 대접과 너무 대조됩니다. 아브라함의 내면은 풍성했지만 롯은 메말랐습니다. 아브라함의 가정은 온 가족이 합심하여 섬겼지만, 롯의 아내와 딸들은 방콕해서 인기 드라마를 보고 있었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천사들은 롯의 형식적이긴 하지만 간곡한 초청에 못 이기는 척 롯의 집에 들어갔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잠자리에 들기 전에 소돔의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사방에서 몰려와 그 집을 둘러싸고,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겠다고 끌어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Homo sex로서 변태적인 성욕을 의미하며, 그들은 동성애적 강간을 하고자 한 것입니다. 이를 볼 때 소돔의 성적 타락이 얼마나 심각한 가를 알 수 있습니다. 롯은 짐승같이 달려드는 무리들로부터 천사들을 보호하기 위해 정혼한 두 딸을 내어주며, 너희 눈에 좋을 대로 행하라며 적당히 타협하고자 했습니다. 이는 딸들이나 사위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는 행위입니다. 이를 볼 때 롯은 평소에 죄와 타협하며 살아왔음을 보여줍니다. 천사들은 롯을 밀치며 문을 부수려고 하는 무리들의 눈을 어둡게 하여 롯을 보호하였고, 롯에게 속한 자들을 성 밖으로 이끌어내도록 했습니다. 롯이 나가서 딸들과 정혼한 사위들에게 하나님께서 이 성을 멸망시키실 것이니 빨리 이곳을 떠나라고 했지만 농담으로 여기며 비웃었습니다. 롯이 평소 삶에서 신자로서 믿음의 영향력을 전혀 끼치지 못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천사들이 롯을 재촉하여 아내와 딸들을 이끌어 내라고 했는데 롯이 지체했습니다. 심판이 임박했는데도 롯은 세상의 미련을 끊지 못했습니다. 롯은 신앙생활을 했지만 동시에 세상도 사랑했습니다. 온전한 믿음으로 살지 않고, 세상과 타협하며 세속적인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24,25절을 보십시오. 마침내 하나님은 유황과 불을 비같이 내리셔서 소돔과 고모라에 있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들을 다 엎어 멸하셨습니다. 심판을 농담으로 여기던 롯의 사위들과 화려함을 자랑하던 도시는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어 버렸습니다. 평소에 영적인 투쟁을 하지 않았던 롯의 아내는 무의식 깊은 곳에 세속주의와 물질주의의 뿌리가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돌아보지 말라는 천사의 말에 불순종하여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고개가 뒤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급히 나오느라 5G 최신 핸드폰이나 값비싼 보석을 두고 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그녀는 결국 소금 기둥이 되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죄악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구원받고 승리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경외심을 갖고 순종해야 합니다. 롯의 딸들도 부모의 영향을 받아 세상적이었습니다. 아버지에게 술을 먹이고 근친상간을 하여 장녀는 모압을 낳고, 차녀는 벤암미를 낳았습니다. 이들은 각각 모압과 암몬 자손의 조상이 되었는데, 역사적으로 하나님의 원수 노릇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를 생각하셔서 롯의 가족을 구원해주고자 하셨습니다. 하지만 천사들이 최선을 다했는데도 불구하고 순종하지 않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거나 부끄러운 죄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분명한 영적인 가치관이 없어 온전한 구원에도 이르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영적 가치관이 확립되지 않으면 아무리 도와주려고 해도 잘 되지 않습니다. 사실 롯의 불행은 첫 출발부터 예견된 것이었습니다. 그가 세상적인 욕심을 좇아 사명의 땅을 떠나 소돔 땅으로 향할 때부터 첫 단추가 잘못 꿰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 번 회개할 기회를 주셨지만 근본적으로 세상욕심과 교만을 회개하지 않아 비극을 자초하게 되었습니다. 롯에 대한 스토리는 더 이상 창세기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반면에 믿음으로 산 아브라함은 어떠합니까? 아브라함의 인생은 후반으로 갈수록 더욱더 빛이 나고 승승장구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그 이름을  역사적으로 유명하게 해주셨고, 인류 구원역사에 믿음의 조상이요 복덩이가 되게 하셨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의 가정을 이룬 후 가정을 오픈하여 양들을 섬기고자 힘썼습니다. 동역자는 직장을 다니며 많은 양들을 섬기면서도 매주 토요일 양들을 초청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이고, 시험기간에는 도시락을 만들어 양들을 섬겼습니다. 당시 물질적으로 넉넉하지 않고, 육체적으로 피곤할 때도 있었지만 양들이 들며 날며 영육 간에 양식을 먹고 성장하는 모습을 볼 때 감사와 기쁨이 넘쳤습니다. 또한 신앙생활에 있어서 기도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안암 2부에 있을 때부터 새벽기도에 힘썼습니다. 일본선교사로 사역할 때도 집에서 센터까지 편도 30km가 넘었지만 새벽4시반에 일어나 센터에 나가 새벽기도를 했습니다. 이렇게 기도에 힘쓸 때 늘 깨어 있게 되고, 성령의 능력을 덧입고 하나님의 뜻을 이뤄드리는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덧 제 나이도 내년이면 60대에 접어들게 됩니다. 주위 동료들이나 친구들은 인생은 60부터라며 어떻게 하면 노년을 즐겁고 편하게 살 수 있을까 연구들을 합니다. 그들을 보며 저도 지금껏 주와 복음역사를 위해 살았으니, 이제 복음역사는 후배들에게 맡기고, 좀 쉬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어린 양들을 섬기는 것이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을 통해 99세에도 열정적으로 섬기고, 열정적으로 기도하는 아브라함을 통해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안주하지 않고, 계속하여 하나님이 주신 제자양성의 사명을 충성스럽게 잘 감당하기를 기도합니다. 제가 하나님의 친구요 동역자로 택함 받은 은혜에 감사하며 맡겨주신 양들을 마음을 다해 섬기고, 간절한 심정으로 중보기도에 힘쓰므로 하나님 역사에 쓰임 받는 인생 살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의와 공도를 행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며, 많은 영혼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별과 같이 빛나는 인생을 끝까지 살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브라함과 같은 인생을 살아야 하겠습니까? 아니면 롯과 같은 인생을 살아야 하겠습니까? 사라와 같은 인생을 살아야 하겠습니까? 아니면 롯의 아내와 같은 인생을 살아야 하겠습니까? 예수님은 누가복음 17:32절에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롯의 처를 기억하라.” 이 말씀은 짧지만 매우 의미심장한 말씀입니다. 롯도 문제였지만, 아내가 더 문제입니다. 롯은 그래도 천사들이 찾아 왔을 때 어떻게 해보고자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하나님 역사에는 아예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녀가 한 것이라곤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된 것뿐입니다. 롯의 딸들의 행동은 어머니의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영향과 결코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성경에도 기록되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이 시대가 영적으로 회복되려면 믿음의 어미들, 기도의 여인들이 살아나야 합니다. 우리가운데 사라와 같은 믿음의 여인들이 많이 나올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저희들이 소돔과 고모라의 최후를 교훈 삼아 악하고 음란한 이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의와 공도를 행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친구요 동역자로서 섬기는 삶, 중보기도에 힘쓰는 삶을 살므로 생명구원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는 복된 인생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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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6 창세기 [2019년 창세기 제16강] 이삭의 결혼 관리자 2019-06-30 981
595 창세기 [2019년 창세기 제15강]아브라함을 시험하신 하나님 관리자 2019-06-25 962
594 창세기 [2019년 창세기 제14강] 약속대로 이삭을 주신 하나님 관리자 2019-06-16 929
593 창세기 [2019년 창세기 제13강] 아브라함을 친구 삼으신 하나님 관리자 2019-06-09 911
592 창세기 [2019년 창세기 제12강] 여러 민족의 아버지 아브라함 관리자 2019-06-02 918
591 창세기 [2019년 창세기 제11강] 뭇별을 보여주신 하나님 관리자 2019-05-26 903
590 창세기 [2019년 창세기 제10강] 아브람에게 승리를 주신 하나님 관리자 2019-05-19 897
589 창세기 [2019년 창세기 제9강] 아브람을 부르신 하나님 관리자 2019-05-12 961
588 누가복음 [2019년 부활절 수양회 제2강] 청년아 일어나라 관리자 2019-05-05 1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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