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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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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08-04 (일) 12:44
분 류 창세기
첨부#1 2019년_창세기20강-1(이인구).hwp (33KB) (Down: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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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창세기 제20강] 야곱에게 열두 아들을 주신 하나님

  2019년 창세기 제20강                                                          이인구

야곱에게 열두 아들을 주신 하나님

 말씀: 창세기 29,30장
 요절: 창세기 30:22,23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하나님이 그의 소원을 들으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므로 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하나님이 내 부끄러움을 씻으셨다 하고”

  링컨은 말했습니다. “내게 나무를 벨 시간이 8시간 주어진다면 그중 6시간은 도끼를 가는데 쓰겠다.” 야곱은 하나님으로부터 잘 연단된 도끼를 받길 원했지만 하나님은 야곱을 좋은 도끼로 연단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야곱이 12아들을 얻는 내용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인간의 허물과 죄 가운데서도 선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를 배울 수 있길 기도합니다.

  야곱은 벧엘에서 사다리환상을 보고 서원기도한 후 믿음을 덧입고 먼 길을 지나 마침내 하란에 도착했습니다. 하란의 우물가에 도착한 후 야곱은 어머니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많이 들었던 우물가 이야기를 떠올렸습니다. 약 100년 전쯤, 어머니 리브가가 꽃다운 처녀일 때 하란의 우물가에서 아브라함의 늙은 종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10마리 낙타 물 먹이기 시험에 통과해 이삭과 결혼하고 20년 후 야곱이 태어났습니다. 야곱은 77살까지 집에 있다가 형을 피해 아니 결혼을 위해 다시 이곳에 온 것입니다. 야곱은 800km나 되는 먼 길을 걸어 피곤했지만 외삼촌 집에서 결혼해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에 기대 반 걱정 반 들떠있었습니다. 야곱이 우물 옆에서 목자들과 대화하던 중 양떼를 몰고 오는 라헬을 보았습니다. 감정적이고 다혈질적인 사냥꾼 형 에서에 비해 야곱은 조용하면서도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이성적이고 냉철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라헬은 그의 인생에 거부할 수 없는 운명처럼 다가왔습니다. 라헬에게 입 맞추고 소리 내어 울며 마음속으로 외쳤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바로 이 사람입니다!’
  라반은 100년 전 떠났던 누이동생의 아들 야곱을 반갑게 맞아주었지만 10마리의 낙타와 많은 보물을 가지고 온 아브라함의 종에 비해 야곱이 빈털터리 노총각으로 찾아온 것에 못마땅했습니다. 하지만 한 달 동안 지내면서 정말 성실하고 머리 좋은 일꾼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야곱을 붙들고자 하는 라반에게 야곱은 라헬과 결혼하기 위해 7년을 봉사하겠다고 맹세했습니다. 라반에게는 두 딸이 있었는데 언니 레아는 시력이 약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웠습니다. 시력이 약한 것은 눈에 총기가 없다는 뜻으로 야곱에게 여성적인 매력이 부족했지만 라헬은 쾌활하고 아름다운 매력이 넘치는 여인이었습니다. 야곱은 7년 동안 라반 밑에서 종처럼 일했지만 라헬을 사랑하는 까닭에 칠년을 며칠 같이 여겼습니다. 결혼 날자가 다가오면서 84세의 노총각 야곱은 사춘기소년처럼 설렘과 기쁨으로 잠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폭풍처럼 그의 인생을 뒤엎었습니다. 첫날밤 장인 라반은 축하한다면서 이상하게도 잘 먹지도 못하는 술을 끊임없이 권했고 베일로 얼굴을 가린 라헬은 신비로웠지만 이상하게도 말이 없었습니다. 비몽사몽간에 첫날밤을 치룬 야곱은 다음날 아침 옆에 누워 미소 짓는 레아를 발견했습니다. 분노 속에서 라반에게 달려갔지만 그는 태연하게 말했습니다. “언니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는 하지 아니하는 바이라! 첫날밤까지 치뤘는데 이제 어떻게 하겠는가? 결혼축제일 7일을 레아와 함께 있으면 내가 라헬도 아내로 주겠네. 단 그 대가로 나를 위해 7년을 더 섬길지니라. 싫으면 말고!” 야곱은 항상 철두철미한 자신이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결혼 사기를 당했을까 가슴을 치며 분노했지만 웬지 이 상황이 낯설지 않게 느껴졌습니다. 바로 7년 전 어머니와 같이 하나님의 축복을 가로채기 위해 형으로 변장해 아버지 이삭을 속여 축복을 가로챈 상황과 똑같았습니다. 다만 가해자에서 피해자가 된 것입니다. 그동안 나이 들어 눈이 어두워 분별력도 어두워진 아버지를 속이고 영적소원도 없는 형 에서에게서 축복을 가로챈 것에 아무런 죄의식도 느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피해자가 되고, 똑같이 당해보고 나서야 형이 느낀 고통과 자신의 이기적인 죄성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안타깝고 절망스러웠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현실적인 야곱은 재빨리 상황파악을 했습니다. 라헬과 야반도주 한다 해도 어디 갈 곳이 없었습니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도 아직 분노로 흥분한 형이 무서웠고 그렇다고 라헬과 낯선 이방 땅에서 빈손으로 시작하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야곱은 레아를 사랑하지 않지만 사랑하는 라헬을 위해 라반의 제안을 따라 후불제로 다시 7년을 섬기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전쟁 같은 결혼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변함없이 오직 라헬만을 사랑한 야곱은 그에게서 빨리 자신을 닮은 아들을 얻어 야곱2세라 짓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항상 같이 하는 라헬은 아무 소식이 없고 가끔씩 형식적으로 찾아갔던 레아는 그냥 손만 잡고 자도 아들을 쑥쑥 잘 낳았습니다. 레아가 아들만 4명이나 낳는 동안 라헬은 아무 자식이 없자 언니에 대한 시기심으로 야곱에게 바가지를 긁기 시작했습니다.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30:1b) 라헬은 장미꽃처럼 아름다웠지만 꽃잎 뒤쪽으로 치명적인 가시를 품고 있었습니다. 오직 라헬만을 사랑하며 오래 참고 견뎠지만 반복되는 라헬의 히스테리에 마침내 야곱이 폭발했습니다. “그대를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2) 라헬과 결혼만 하면 천국에서 살 줄 알았는데 지옥이 따로 없었습니다. 라헬과 결혼하기 전 7년이 며칠처럼 느껴졌지만 결혼 후 7년은 몇 백 년처럼 다가왔습니다. 야곱은 혼돈 속에서 자꾸 과거 아버지와 형을 속인 기억과 라반과 레아가 첫날밤 자신을 속인 기억이 뒤엉켜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인과응보의 죄 때문인가? 그렇다면 벧엘에서 받은 환상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무슨 의미인가? 인생을 푸는 성경의 공식이 3가지 있습니다.
첫째, 인과응보. 심은 대로 거둔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6:7) 씨앗을 뿌리지 않고 열매를 거두는 법은 절대로 없습니다. 인생에서 축복받고 성공한 사람들은 그 만큼 성실과 노력의 씨앗을 많이 뿌렸기 때문입니다. 인과응보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상의 자연법칙이고 성경에서는 율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죄를 저질렀으면 죄에 대한 벌이라는 결과가 따라오고 선을 행하면 축복이라는 결과가 따라옵니다. 그래서 신자는 인생에서 성실하게 씨를 뿌리며 살아야하고 또 지금 겪는 어려움이 잘못 뿌린 죄의 씨로 인해 생긴 열매라면 회개하고 고쳐야 합니다. 야곱의 삶의 고통은 과거 형과 아버지를 속인 죄에서 시작됐습니다. 아무리 좋은 목적이라도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은혜로 사는 신자라도 하나님의 법인 율법을 지키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지만 단지 죄의 결과로 인생이 꼬인 것은 아닙니다. 인생에서 인과응보, 율법만 적용된다면 어느 누구도 죄의 결과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둘째, 은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신자들은 심은 것 이상으로 은혜의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은혜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 받을 자격 없는 자에게 값없이 베풀어지는 고귀하고 값진 선물입니다. 오늘 신자가 살 수 있는 이유는 내 힘과 능력, 내 의와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죄의 결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아 하나님 영광을 위해 살게 된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은혜입니다. 구원 뿐 아니라 신자의 모든 삶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만 심었는데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거두게 하십니다.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 나를 부르신 이가 하나님, 나를 보내신 이도 하나님,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그래서 신자는 어떤 삶속에서도 항상 감사할 수 있고 또 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야곱이 모태로부터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고 믿음의 부모 밑에서 자란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또 형과 아버지를 속이고 도망자가 되었을 때 벧엘에서 하나님의 환상을 보고 약속의 말씀을 받은 것도, 또 하란에서 사랑하는 라헬을 만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큰 은혜입니다. 그런데 왜 사기꾼 같은 장인을 만나고 또 사랑하지도 않은 레아와 결혼해 전쟁터 같은 결혼생활을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셋째, 섭리.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인과응보로도 은혜로도 풀리지 않는 인생의 문제들은 (1차 방정식이나 2차 방정식으로 풀리지 않는 문제는) 다른 공식으로 풀어야 합니다. 섭리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숨은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절대적으로 선합니다. 항상 변함없는 하나님의 뜻(섭리)은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과 또 나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신자들은 당시에는 깨닫지 못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눈앞의 내일일도 모르지만 시간과 공간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섭리의 손길로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신자는 인생의 많은 어려움과 환란 속에서 낙심하거나 불신에 빠지지 않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를 믿음으로 인내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야곱의 인생에서 하나님의 섭리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아브라함과 이삭을 이어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조상(여러 민족의 아버지)으로 세우시고자 하셨습니다. 하지만 야곱은 아브라함과 이삭의 믿음의 영향력가운데 자라났지만 무척 인간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성실하고 똑똑한 사람이지만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기적이고 위선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둘째로 태어났지만 팥죽 한 그릇으로 형의 장자권을 샀고 마침내 눈이 어두운 아버지를 속여 형의 축복까지 쟁취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영적 소원을 귀하게 여기셨지만 야곱의 인간적인 방법과 사고방식으로 믿음의 조상으로 쓰임받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야곱 같은 사람은 약육강식의 정글 같은 세상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이고 현재도 많은 부모나 아내들이 바라는 자식이요 남편상입니다. 그래서 더욱 자기발견이 어렵고 또 변화되기 어렵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벧엘에서 주신 약속의 말씀(창28:14,15)에 기초해 그를 인도하시고 변화시키셨습니다. 그의 고난은 단순히 죄에 대한 인과응보가 아닌 믿음의 조상으로(여러 민족의 아버지) 쓰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요 또 은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인생가운데 만난 사람들을 통해 그를 연단하셨습니다. 그는 처음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걸림돌이 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자신과 비슷한 사기꾼 같은 라반을 만나 고난 받으며 죄악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사실 야곱의 죄성에는 단수가 더 높은 외삼촌 라반의 죄악된 피가 섞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라반을 통한 인생 고난은 훈련의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야곱의 강한 인간성은 라반을 통한 고난에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음 4명의 아내들을 통해 야곱을 훈련하셨습니다. 레아는 아버지의 강권에 자신을 사랑하지도 않는 야곱과 결혼해 폭풍 속에 휘말린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레아가 야곱을 짝사랑했다고 봅니다. 왜냐면 아무리 아버지의 강권이라도 야곱과의 첫날밤 그렇게 완벽하게 라헬 흉내를 낼 수 없고 또 야곱과 결혼 후 끊임없이 야곱의 사랑을 간구했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형의 모습으로 변장해서라도 축복을 받고 싶어 했던 것처럼 레아도 라헬의 모습으로 변장해서라도 야곱의 사랑을 받고 싶었습니다. 야곱은 오직 장미꽃 같은 라헬만을 사랑했지만 레아는 국화꽃 같은, 누님 같은 내면성을 가진 여인으로 야곱이 믿음의 조상이 되기 위해서는 레아가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레아는 야곱과 결혼했지만 신혼 초부터 찬밥신세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레아가 사랑받지 못함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습니다. 첫째 아들이 태어난 후 레아는 르우벤이라 이름 지으며 소감발표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32) 르우벤은 ‘보라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야곱은 레아를 돌아보지 않았지만 레아는 아들을 통해 자신을 돌보시는 하나님을 깨달았습니다. 또 둘째를 낳고 시므온이라 이름 지으며 증거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내가 사랑받지 못함을 들으셨으므로 내게 이 아들도 주셨도다”(33) 시므온은 ‘들으심’이라는 뜻입니다. 레아는 야곱에게서 사랑한다는 고백을 듣지 못했지만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았습니다. 그가 또 임신하여 셋째를 낳고 레위라 이름 지으며 간증했습니다. “내가 그에게 세 아들을 낳았으니 내 남편이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로다.”(34) 레위는 ‘연합함’이란 뜻입니다. 결혼은 연합입니다. 야곱은 아직도 그를 아내로 인정하지 않고 연합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레아는 간절하게 하나님께 나아감으로 하나님과 연합하였습니다. 레아는 라헬만을 사랑하는 야곱 때문에 비교의식과 시기심 때문에 가슴이 타들어갔습니다. 하지만 레아는 동생과 싸우지 않았고 남편에게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한과 고통을 들고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레아는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유다라 이름 지으며 찬송하였습니다.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35) 유다는 ‘찬송하다’는 뜻입니다. 유다를 낳고 레아는 야곱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아직도 레아와 함께 하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레아와 함께 하심으로 레아는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었습니다. 레아의 신앙은 남편을 넘어서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신앙으로 성장했습니다. 결국 이 유다의 후손가운데서 메시아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나중 레아가 죽은 후 아브라함, 사라 또 이삭, 리브가와 같이 막벨라 굴에 야곱과 같이 묻히게 하심으로 레아의 인생을 위로해주셨습니다.(창49:31)
  우리는 레아를 통해 고난 중의 성숙한 신앙을 배웁니다. 세익스피어는 말했습니다. ‘힘들 때 우는 것은 삼류이고 참는 것은 이류이고 웃는 것은 일류다.’ 힘들 때 어떻게 웃을 수 있습니까?  많은 이들이 다른 이와의 비교 속에서 또 사람들의 무시와 냉대 속에서 자존감을 상실하고 우울증에 걸리며 절망에 빠집니다. 하지만 우리가 레아처럼 사람들 앞이 아닌 하나님 앞에 나갈 때 진정한 힘과 위로와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자존감을 가질 때 웃을 수 있고 오히려 다른 이들을 위로하며 인도할 수 있습니다.
  30:4절을 보십시오. 레아의 믿음에도 또 ‘출산과 생명의 주관자는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야곱의 충고에도 라헬은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아들을 낳지 못하자 반칙을 써서, 자신의 몸종을 통해서라도 아들을 낳고자 했습니다. 시녀 빌하를 야곱에게 들여보내 단과 납달리를 얻었습니다. 단은 ’억울함을 푸셨다’라는 뜻이고 납달리는 ‘경쟁해서 이겼다’는 뜻입니다. 그 이름들은 라헬의 분노와 한이 담긴 이름입니다. 늦게까지 자는 단을 깨울 때 라헬을 외칩니다. “‘억울함을 푸셨다’야 그만 자고 밥 먹어야지!” 단과 납달리가 싸울 때 라헬은 말릴 수밖에 없습니다. “‘억울함을 푸셨다’와 ‘경쟁해서 이겼다’야 형제끼리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야지! 형제끼리 싸우면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냐?” 라헬의 방법에 믿음으로 투쟁했던 레아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너만 몸종 있냐? 나도 있어!” 하면서 시녀 실바를 통해서 갓과 아셀 두 아들을 낳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자식 낳기 경쟁점수는 다시 6대 2로 벌어지게 됐습니다. 그러나 레아와 라헬의 아들 낳기 경쟁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자식들까지 동원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5살 된 레아의 첫째 아들 르우벤이 들에 나갔다가 합환채를 꺾어 와서 어머니에게 선물했습니다. 합환채는 임신촉진제로 출산하지 못하는 라헬뿐 아니라 잠시 출산을 멈춘 레아에게도 절실한 약초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라헬이 보고 청구(흥정)했습니다. “합환채를 주면 오늘밤 내 남편이 언니와 동침하게 해줄 수 있는데-” 결국 레아는 합환채를 포기하는 대신 하룻밤만이라도 야곱과 함께 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라헬은 합환채를 삶아먹고도 아무 효력이 없었지만 임신이 멈추었던 레아는 합환채 없이도 다시 임신하게 됐습니다. 하나님께서 레아의 소원을 들어주셨습니다. 레아는 그 후로도 아들과 딸 하나를 더 낳아서 단숨에 점수를 9대 2로 벌려놓았습니다. 더 이상 뛰어넘을 수 없는 점수에 라헬은 경쟁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라헬은 언니에 비해 아름다운 외모와 절대적인 남편의 사랑 등 많은 것을 가진 여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없는 한 가지 때문에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했지만 간절함과 감사보다도 불평과 요구였습니다. 라헬은 사라가 불신가운데 여종을 통해 이스마엘을 얻고 얼마나 고통스러워했고 또 리브가가 그런 실수를 하지 않고자 20년을 기도해 야곱을 얻은 역사적 교훈을 무시했습니다. 그가 사랑받지 못하는 언니를 위로하고 그 자녀들을 함께 기뻐했다면 하나님의 긍휼을 얻을 수 있었을텐데 오히려 어떤 수단과 방법으로든지 자식을 얻어 언니를 이기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라헬은 자기 뜻대로 자기 욕심대로 자식을 낳지 못하자 마침내 두손, 두발 들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라헬이 많은 인간적 축복을 받았지만 진정한 축복을 주시기 위해 연단하셨습니다. 진정한 축복은 단지 자식이 아닌 자식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만이 라헬의 진정한 기쁨과 상급과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라헬이 연단 속에서 모든 자존심과 위선을 벗고 온전히 하나님께 나아올 때 마침내 그의 소원을 들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하나님이 그의 소원을 들으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므로 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하나님이 내 부끄러움을 씻으셨다하고”(22,23) 요셉은 야곱의 11번째 아들로 이름에는 ‘씻음’과 ‘더함’이라는 이중 뜻이 있습니다. 라헬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부끄러움을 씻으셨음을 감사했고 또 하나님께서 다른 아들을 더해 달라고 소망했습니다.(24b)
  라헬은 나중 야곱의 고향으로 가는 중 길에서 해산하여 마침내 라헬의 둘째요 야곱의 12번째 아들을 낳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난산하여 아들을 낳은 후 죽었고 죽으면서 아들이름을 ‘베노니’라 불렀습니다. ‘베노니’는 ‘슬픔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야곱은 나중 그 이름을 발음이 비슷한 ‘베냐민’ 즉 ‘오른손의 아들’이라 바꿔 불렀습니다. 야곱은 죽은 라헬을 길에 묻었지만 라헬에 대한 사랑과 애뜻함은 그 자식 요셉과 베냐민의 편애로 이어지면서 인생의 많은 고난을 받았습니다. 야곱은 첫 만남부터 일생동안 오직 라헬만을 사랑했습니다. 라헬은 야곱과 성격(이기심, 욕심)이 비슷했고 라헬을 통해 많은 연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사람을 통해 연단하시는 것은 너무하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소망이 사람에게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 외에 어떤 것도, 어떤 사람도 우리의 진정한 소망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외는 어떤 것에도 소망을 두지 말고 사랑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에게 진정한 소망을 둘 때 다른 어떤 것, 어떤 사람에게도 소망을 찾을 수 있는 가치관과 믿음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에게 진정한 소망을 둘 때 다른 사람도 진실로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라헬이 낳은 요셉은 일찍 어머니를 잃었지만 하나님께서 섭리로 그 인생과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어릴 때부터 인생연단 하셔서 라헬을 닮은 본성을 극복하고,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애굽 총리요, 형들을 훈련하는 위대한 믿음의 종으로 쓰임 받게 하심으로 라헬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야곱은 형의 분노를 피해 라반 집에서 몇 날 동안 있다 집으로 돌아가길 바랬지만 집을 떠난 지 14년이 넘어도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야곱은 집에 있을 때는 인생의 주도권을 가지고 자기 삶뿐 아니라 형의 축복도 가로채며 인생을 지배했지만 14년 동안 라반 밑에서 종처럼 일만 해야 했고 아내들 틈 사이에서 자식 이름조차 짓지 못하는 그림자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벧엘에서 많은 자손과 축복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약속의 말씀대로 야곱에게 축복을 주시기 위해 인생가운데 연단하시며 야곱의 인간성을 철저히 깨시고 비우셨습니다. 많은 이들이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많은 것을 소유하기를 바라지만 사실 진정한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깨지고 비우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한 교회에서 어떤 부부가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남편은 “하나님 채워주소서!” 기도하는데 옆의 아내는 “하나님 비워주소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사이가 안 좋으면 그렇게 반대로 기도할까 생각되지만 사실 온전히 채우기 위해서는 먼저 온전히 비워져야 합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채워지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죄악된 생각과 가치관이 깨지고 비워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연단가운데 인간적 자존심과 세상적 가치관이 깨지고 자신이 철저히 비워졌을 때 모든 것을 잃고 망하는 것이 아닌가 두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때 하나님의 진정한 축복을 넘치도록 채워주십니다.
  야곱은 14년 동안의 인생연단을 통해 자신의 인생이 자신의 힘과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자기 인생의 생사화복뿐 아니라 자식이든 양이든 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야 얻는 것이지 인간적인 노력과 지혜로는 안 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야곱이 욕심 많은 장인 라반 밑에서 종처럼 일만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4명의 아내들의 질투와 알력 속에서 야곱의 12명의 아들을 허락하셨습니다. 야곱이 만일 자신의 생각과 계획대로 인생을 주도했다면 라헬과 결혼해 그들과 비슷한 성격의 자녀들만 몇 명 낳고 끝났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연단 속에서 깨어지고 비워지는 동안 어느새 다양한 성격과 특징을 가진 12명이라는 아들을 얻게 됐습니다. 그들은 나중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12지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는 아내들의 질투와 알력 속에서 준비와 계획도 없이 태어난 이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축복된 백성의 조상이 될 수 있는가 반문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꼭 훌륭해서 내가 잘한 일만 가지고 당신의 역사를 이뤄 가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의 실수와 허물도 쓰셔서 당신의 구속역사를 친히 이뤄나가십니다. 내가 믿음으로 돌이켰을 때 심지어 과거의 죄와 실수도 합력하여 미래의 선을 이루시는 섭리의 하나님이십니다. 12명의 자식들은 하나님을 믿는 세상 모든 신자들을 대표합니다. 세상에는 축복과 기쁨 속에서 태어나고 자란 자녀들도 있지만 많은 이들이 무관심과 저주와 어둠속에서 태어나 찌질하게 자랍니다. 가난 속에서 계획도 없이 얼떨결에 태어나고 심지어 성폭력의 죄악 속에서 저주가운데 태어난 생명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의 실수와 죄악의 열매인 그 생명들도 지켜주시고 함께 하시며 축복된 길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심지어 인류의 구원자 예수님의 족보에서도 이방인, 창녀, 불륜녀 등 찌질한 죄인이지만 믿음 있는 이들을 포함시키셨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도 자신의 인간적 능력이나 축복을 자랑하지 말고 또 인간적 실패나 약점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를 믿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하나님의 연단 속에서 믿음으로 인내하며 비워졌을 때 12명의 자녀들뿐 아니라 많은 물질도 허락하셨습니다. 25절을 보십시오. 라헬이 요셉을 낳은 후 7년 계약이 끝나 야곱은 이제 고향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습니다. 라반은 일 잘하는 야곱을 붙들고 싶었고 야곱은 품삯으로 엉뚱한 제안을 합니다. 앞으로 태어날 양과 염소 중 아롱진 것, 점 있고 검은 것만 자신의 품삯으로 달라 요구했습니다. 이것들은 열성유전자이고 라반은 ‘얼씨구나!’ 계약하며 열성유전자 양과 염소를 가려서 아들 손에 멀리 보냈습니다. 하지만 야곱은 14년 목자경험을 통해 양들이 관계를 할 때 시신경을 자극하면 유전자에 이상이 생긴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양들이 관계할 때 나뭇가지 껍질을 벗겨 만든 얼룩무늬 나뭇가지를 옆에 세워놓으면 양들이 얼룩무늬를 보고 뇌리에 새겨져서 원하는 얼룩무늬 새끼를 낳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과학적인 멘델의 법칙을 뛰어넘는 야곱의 믿음의 법칙이었습니다. 야곱은 그런 방법을 통해 수많은 양들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실 비밀은 얼룩무늬 나뭇가지에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31장(11-12절)에 보면 야곱이 라반과 계약을 맺기 전날 밤 하나님께서 꿈에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양들과 관계하는 숫양들은 모두 얼룩무늬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야곱과 벧엘에서 하신 언약을 지키기 위해 양들의 인과응보적 유전법칙까지 바꾸셔서 야곱을 축복하신 것입니다. 라반은 야곱 머리 위에 있는 백전노장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야곱 편이었기 때문에 당할 수 없었습니다. 야곱은 20년 처가살이 경험을 통해 벧엘에서 약속의 말씀을 주신 하나님께서 생명의 주관자 되실 뿐 아니라 물질의 주관자 되심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창28:15) 놀라우신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를 체험한 야곱은 이제 하나님의 인도하심가운데 다시 고향으로 향하는 믿음의 여정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 같은 죄인을 많은 인생연단가운데 믿음의 삶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과거 건강과 학과공부로 자아가 강한 저를 깨셔서 나의 하나님을 믿는 개인 신앙을 갖게 도와주셨고 현재 가정에서 자녀문제와 직장에서 직원문제를 통해 섬기는 평신도목자로 인도하셨습니다. 자녀와 직원 문제 속에서 믿음으로 사는데 왜 이런 문제가 생기는가 불신가운데 세상적인 방법으로 문제에 부딪힐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문제 앞에서 말씀을 통해 길을 찾고 인내하도록 도우셨습니다. 문제 자체에 매이기보다 말씀을 통해 세상적 가치관과 이기적 본성을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서도록 하셨습니다. 그때 자녀뿐 아니라 다른 양들과 목자님들을 섬기는 내면성과 믿음을 갖게 도와주셨습니다. 앞으로도 인생동안 현실문제는 끊임없이 지속될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문제 속에서 문제에 빠지지 않고, 지금까지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신 하나님께 대한 믿음가운데 문제의 원인이 되는 자신의 죄문제를 발견하고 말씀 속에서 길을 찾아 모든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가운데 쓰임 받을 수 있길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야곱에게 12아들을 주신 하나님은 은혜와 섭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야곱처럼 부족하지만 말씀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따름으로 은혜와 섭리를 체험하는 인생을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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