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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2-08-19 (일) 12:41
분 류 마가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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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마가복음 제22강] 언약의 피
2012년 마가복음 제22강                                                                

언약의 피

말씀/ 막14:1-31
요절/ 막14:24 “이르시되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사랑하는 제자들과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가지시면서 제자들에게 자신의 죽음의 참 뜻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이 시간 예수님이 제정하신 유월절의 의미를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Ⅰ. 예수님께 향유를 부어드린 여인(1-9)
  1,2절을 보십시오. “이틀을 지나면 유월절과 무교절이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일 방도를 구하며 이르되 민요가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말지 말자 하더라” ‘유월절’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권능으로 출애굽 한 날을 기념하는 유대 최대 명절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출애굽하기 전날 밤 이 날을 기념하여 영원한 규례로 삼아 대대로 지키라 명하셨습니다.(출12:14) 유월절이 되면 전국에 있는 열두 살 이상의 남자들과 각국에 흩어진 백성들이 모두 예루살렘에 올라와 절기를 지켰습니다. 유월절은 유대 달력으로 니산월(1월, 태양력으로 3-4월 중간) 14일이었으며 이어서 일주일동안 쓴 나물과 무교병을 먹으며 애굽 생활의 고난을 기억하는 무교절을 지켰습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정체성을 갖게 하는 중요한 기념일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유월절을 잘 지키느냐 못 지키느냐는 그들의 신앙상태를 가늠하는 척도이기도했습니다. 이런 거국적인 명절을 맞이하여 종교지도자들은 하나님께 온전한 제사를 드리기 위해 점 없고 흠 없는 어린양 제물을 준비하고, 백성들에게 유월절의 영적의미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증거하는 메시지 준비에 전력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 죄 없으신 예수님을 흉계로 잡아 죽일 방도를 찾고 있었으며, 한편으로 민요가 날까 두려워하여 명절에는 피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의 배반으로 예수님은 유월절 어린양의 희생제물이 되셨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곧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셔야 하는 긴박한 상황인데도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식사초대를 받아 가셨습니다. 그런데 은혜롭게 식사가 진행되는 도중에 예기치 않은 돌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한 여인이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왕창 깨뜨려 예수님 머리 위에 통째로 부어드렸습니다. 갑자기 집안은 진한 향유 냄새로 가득했습니다. 당시 향유는 귀한 손님이 왔을 때,(눅7:44) 왕이 즉위할 때,(삼상10:1) 제사장이나 선지자를 세울 때,(레8:12, 왕상 19:16) 때론 시신에 발라 장례식을 준비하는 때(요19:40)에 사용하였습니다. 향유는 여인들에게는 결혼지참금이기도 합니다. 이 여인이 부은 향유를 돈으로 환산하면 300데나리온, 곧 노동자 일 년 연봉에 해당하는 거금이었습니다. 이 향유에는 여인의 진심과 애정과 꿈과 행복한 미래가 담겨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아낌없이 예수님께 온통 쏟아부어드렸습니다. 이 향유를 드리고 나면 자신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결혼지참금은 또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까? 염려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눈치를 보거나 자의식도 없이 다만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온통 부어드렸습니다. 여인이 왜 이렇게 했을까요? 누가복음을 보면 여인은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죄사함의 은혜가 너무 커서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아낌없이 드렸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눅7:47) 여인은 이렇게 함으로써 이 예수님이야말로 자신의 모든 것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참 남편이시요, 왕이시요, 가장 귀한 손님이시요, 구원자시요, 경배의 대상이 되심을 고백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의 행동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합니까? 4,5절을 보십시오. 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어 말했습니다.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이들의 생각은 합리적이고 실용적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가치관으로 볼 때 여인의 이런 행동은 값비싼 향유를 허비한 것에 불과하였습니다. 옥합을 깨뜨리지 않고 그냥 예수님께 드렸다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얼마나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었을까 생각하며 분이 날 정도로 어리석은 짓을 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몰랐고, 또 예수님께 대한 여인의 믿음과 애정과 진심을 몰랐고, 여인의 뜨거운 감사의 눈물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말로는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예수님의 머리에서 떨어지고 있는 향유를 돈으로 계산하며 아까워하는 물질주의자들이었습니다. 오늘날도 물질주의, 실용주의적 가치관을 가진 자들은 우리가 주님께 드리는 헌신을 돈으로 계산하며 비현실적인 자라고 비난합니다. 우리가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여서 주님께 시간과 물질과 진심을 드려 헌신하면 인생을 허비한다고 하며 불신을 심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여인의 행동을 어떻게 보셨습니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6) 예수님은 이 여인을 비난하는 자들을 물리치시고 여인이 예수님께 좋은 일을 하였다고 칭찬하셨습니다. ‘좋은 일’이란 아름다운 일(a beautiful thing, NIV) 곧 하나님의 거룩한 구원역사에 동참하는 행위, 또는 예수님이 기쁘게 받으시고 영원히 기억하실만한 행동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의 아름다운 일을 크게 축복하여 주셨습니다. 7,8절을 보십시오.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저가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사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여인의 아름다운 일을 자신의 장사와 연관시켜주셨습니다. 여인이 힘을 다하여 향유를 부어 주님의 장사를 준비하였다는 것은 그가 드린 향유 중에서 한 방울도 허비하지 않으시고 다 귀하게 쓰셨다는 것입니다. 여인의 행동이 아름다운 것은 예수님께 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아름다운 분이시기 때문에 예수님께 헌신하는 것도 아름답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의 모든 것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화답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이 여인의 행한 일을 복음역사에 길이 남을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인정하시고 복음이 전파되는 어디에서나 이 여인의 행한 일을 말하여 그를 기억할 것이라 약속하셨습니다. ‘그를 기억하리라’는 것은 예수님께 대한 여인의 희생적인 사랑과 믿음을 본받도록 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의 헌신적인 믿음을 기뻐 받으시고 축사하셨습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애써 간직해온 옥합이 있습니다. 자신이 갈고 닦아온 실력과 재능이 옥합이 될 수 있고, 어린 시절부터 가슴에 간직해온 꿈이 옥합이 될 수 있습니다. 젊은이들에게는 황금 같은 시간과 열정이 옥합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한번밖에 없는 인생을 옥합으로 삼고 영원히 기억할만한 아름다운 인생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이 옥합은 어디에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아름다움이 결정됩니다. 어떤 사람은 이 옥합을 사랑하는 님을 위해 깨뜨려 바치지만 사마리아 여인과 같이 마음에 상처만 남을 뿐입니다. 어떤 사람은 내가 나를 위해 살지 않으면 누가 나를 위해 살아주겠느냐 하며 자신을 위해 옥합을 쏟아 붓습니다. 그러나 남는 것은 빈 그물뿐입니다. 그것들은 우리의 옥합을 깨뜨려 바칠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옥합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께 옥합을 부어드리기만 하면 영원히 기억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되게 하십니다.

Ⅱ. 완전한 유월절(10-31)
  여인과는 대조적으로 가룟 유다는 이때 무슨 악한 일을 도모하고 있었습니까? 10,11절을 보십시오. “열 둘 중에 하나인 가룟 유다가 예수를 넘겨주려고 대제사장들에게 가매 그들이 듣고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약속하니 유다가 예수를 어떻게 넘겨 줄까 하고 기회를 찾더라” 유다는 스승을 팔고자 적의 소굴에 들어가 흥정하였습니다. 그는 돈을 사랑하는 물질주의자였습니다. 물질에 대한 탐욕이 그의 눈을 멀게 하고 양심을 마비시켰습니다. 이런 유다를 사단이 그냥 버려두지 않았습니다. 사단은 그로 하여금 사랑하는 스승을 돈 몇 푼에 팔아버리도록 부추겼습니다.(요13:2) 유다는 예수님이 친히 택하신 사도요 예수님께로부터 많은 사랑과 신뢰를 받은 자였지만 사단의 유혹에 미혹되어 그 크신 은혜와 특권을 감당치 못하고 저주의 자식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틀이 지나 무교절 첫날이 되었습니다.(12) 이 날은 유월절 어린양을 잡아 유월절 식사하는 날이었습니다. 유월절 식사는 가족 중심으로 하였는데 제자들은 배와 부친을 버리고 예수님과 한 가족이 되었기에 예수님과 함께 유월절 식사를 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머리 둘 곳 없이 가난하신 예수님과 제자들에게는 유월절 음식 먹을 장소를 찾는 것이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미 이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해놓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 중 두 사람을 보내시며 성내로 가서 물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면 예비된 큰 다락방으로 안내해줄 것인데 거기서 유월절 식탁을 준비하라고 하셨습니다.(13-15) 예수님이 이렇게 비밀스러운 방법으로 유월절 만찬을 준비하도록 하신 것은 가룟 유다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제자들과 함께 잡수시기를 원하셨습니다.(눅22:15) 이는 유월절 만찬을 통해 자신의 십자가의 죽으심의 의미를 제자들에게 꼭 가르쳐주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날이 저물자 예수님은 열둘을 데리시고 예비된 다락방으로 가셨습니다.(17) 유월절 식사는 날이 저물 때 시작하여 다음날 아침까지 계속되었는데 이 만찬에는 예수님을 배반할 가룟 유다도 초청되었습니다. 그들이 다 앉아 음식을 먹을 때 예수님은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 곧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팔리라”(18) 제자들은 의외의 말씀에 큰 충격을 받고 한 사람씩 예수님께 “나는 아니지요?(Surely not I?)”라고 물었습니다. 이렇게 물은 것은 자기는 예수님을 파는 자가 아님을 예수님으로부터 확인받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역설적으로 자신들도 예수님을 배반할 가능성이 있음을 말해줍니다. 가룟 유다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죄악된 본성을 가진 인간은 누구나 예수님을 배반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룟 유다와 같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열둘 중 하나 곧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가 나를 배반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20) 그리고 계속해서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자기에게 좋을 뻔 하였느니라”(21)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것은 유다의 배반에 의한 것이 아니라,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는 것임을 깨우쳐주셨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유다의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배반하는 유다는 차라리 세상에 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라 말씀하심으로써 은혜를 배반하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경고하셨습니다. 사람이 죄를 짓지 않을 수 없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배반하는 죄만큼은 짓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가룟 유다의 죄를 공개적으로 드러내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그에게 회개할 마지막 기회를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가 회개하고 믿음으로 유월절 만찬에 참여하여 죄사함을 받기를 원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이를 공개적으로 말씀하심으로써 남은 제자들에게 마음을 준비하도록 도우셨습니다. 예수님이 가룟 유다의 배반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다면 그 죽음은 완전 실패요 제자양성 역사 또한 실패로 끝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이 성경에 기록된 대로 되는 것임을 미리 말씀하심으로 실패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것임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어떻게 했습니까? 그는 예수님의 거듭되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회개치 않고 떡 조각을 받고 밖으로 나가버렸습니다.(요13:30) 가룟 유다의 배반은 자신에게는 영원한 멸망이요 예수님과 다른 제자들에게는 큰 슬픔을 안겨주었습니다.
  이런 가운데서도 예수님은 제자들과 유월절 최후 만찬을 가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 전에 어찌하든지 죽음의 의미를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식순에 따라 유월절 음식을 잡수시면서 자신의 십자가의 죽으심의 의미를 설명해주셨습니다. 22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이는 예수님이 유월절 양과 같이 죄인들을 위해 희생제물이 되실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틀이 지나면 예수님은 잔인한 로마 군병들의 채찍에 맞아 갈기갈기 살이 찢기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비참하게 죽으셔야 하는 것은 그 몸을 우리에게 떼어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요한복음 6:51절은 우리가 예수님의 몸을 먹어야 할 이유를 가르쳐주십니다.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다” 예수님의 몸을 먹는 자는 구원을 받고 영생을 누립니다. 더 나아가서 예수님의 몸은 구원받은 신자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영의 양식입니다. 양식을 규칙적으로 잘 먹는 사람은 건강하고 생명력이 넘치는 것처럼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기억하며 그 은혜를 되새기는 사람은 영적으로 건강하고 강한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구원의 은혜를 마음에 간직하고 감사하는 생활을 하는 사람은 어떤 고난도 견뎌내고, 사단의 간교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구원의 은혜를 감당해 나갑니다.
  예수님은 계속하여 잔을 마시면서 주님이 흘리실 피의 의미를 가르쳐주셨습니다. 23,24절을 보십시오.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니 다 이를 마시매 이르시되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언약의 피’는 피로 맺어진 약속을 가리킵니다. 곧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는 피에는 변개될 수 없는 언약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 언약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애굽을 심판하실 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유월절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기만 하면 넘어가리라 약속하셨습니다.(passover, 유월) 이 약속을 믿고 문설주에 어린 양의 피를 발라 놓은 사람은 어떤 죄인이냐에 상관없이 모두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독생자의 피를 믿는 사람은 죄의 종류에 상관없이 모두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언약의 내용입니다. 언약은 누가 하느냐에 따라 그 무게가 결정됩니다. 이 언약은 하나님이 독생자의 피를 보증하여 세우신 것이기에 확실한 것입니다.
  피에는 생명이 있습니다.(레17:14) 그런데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인간의 피는 죄로 오염되어 더러워졌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원치 않게 남을 시기하고, 미워하고, 정욕적인 생각에 시달리고, 거룩함을 멀리하는 생활을 합니다. 우리의 더러운 피는 그 어떤 방법으로도 깨끗케 될 수 없습니다. 다만 점 없고 흠 없는 어린 양의 피로 교환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독생자의 피는 짐승의 피와는 그 효과 면에서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짐승의 피는 죄를 사하는 효과가 일 년이었기 때문에 매년 점 없고 흠 없는 짐승을 잡아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독생자의 피는 한번 제사로 많은 사람의 죄를 영원히 사할 수 있습니다(once for all). 히브리서 9:13,14절은 예수님의 피에 대해 이렇게 증거합니다.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예수님의 피는 어떤 지독한 죄라도, 아무리 많은 죄라도 사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새롭게 된 사람은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되어 하나님을 섬기는 자로 변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언약은 쌍방이 지켜야 유효하다는 것입니다. 어느 한 쪽이 영접하지 않거나 파기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독생자의 피로 맺은 언약은 이를 믿고 영접하는 자에게 인격적으로 역사하여 죄사함의 효과가 나타납니다.
  독생자의 희생의 피로 죄사함과 구원의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생각할 때 우리는 감사하고 감격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때론 하나님께 감사하기보다 원망과 불평을 쏟기도 합니다. 이는 유월절 은혜를 망각하고 기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식사를 하시면서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셨습니다.(눅22:19) 기념하라는 것은 날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유월절 어린 양은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남김없이 완전히 희생되었습니다. 그 피는 문설주에 바르고 고기는 먹었고 남는 것은 불에 태워 없앴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셔서 인간들의 죄를 사하시고자 자신을 100% 완전히 희생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2000년 전에 골고다 언덕에서 세상 만민을 위해 살을 찢기시고 피를 흘리시므로 온전한 유월절을 제정하셨습니다. 이를 믿고 영접하기만 하면 약속하신 대로 그리스도의 피가 내 속에서 역사하여 나의 더러운 죄를 씻어 영혼을 소생시키고 주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어 새 삶을 살게 합니다. 독생자의 살과 피는 나를 죄에서 구원할 뿐 아니라 주님 안에서 새 삶을 살아가는데 양식이요 음료입니다. 신앙생활은 날마다 주님의 십자가 아래에 나아가 나의 죄를 회개하고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또한 기념하라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1:26절은 말씀합니다.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주님의 살과 피를 나 혼자 먹고 마시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이를 전하여 이웃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이야말로 가장 잘 기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믿는 것은 음식이요, 주의 죽으심을 전하는 것은 운동에 비유됩니다. 먹기만 하고 운동을 하지 않으면 비만증에 걸려 못쓰게 되듯이, 주님의 살과 피를 믿기만 하고 전하지 않으면 영적 비만증에 걸려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25,26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심으시고 유월절 식사를 마치신 후 찬미하고 기도하러 감람산으로 가셨습니다. 그 후 제자들이 예수님을 버릴 것을 말씀하셨지만 다시 만날 것도 말씀하셨습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독생자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완전한 유월절을 제정하신 후 우리에게 이를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흘리신 언약의 피를 믿는 자는 누구나 죄사함 받고 영생을 누리며 승리의 인생을 삽니다. 우리가 날마다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며 이를 이웃에게 전함으로써 생명력 있는 신앙생활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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