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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2-10-07 (일) 12:38
분 류 로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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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로마서 제1강] 복음의 능력

2012년 로마서 제1강                                  최바울

복음의 능력

말씀 / 로마서 1:1-17
요절 / 로마서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로마서는 AD 57년경에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고린도에 머물면서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로마교회는 어떤 성숙한 사도가 개척한 교회가 아니라 여기저기서 복음을 영접한 자들이 모여서 자생적으로 탄생한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비록 형식이나 체계는 부족했지만 이들의 믿음은 온 세상에 전파될 만큼 영향력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런 이들을 너무나 사랑하여 자기가 깨닫고 체험한 “복음”을 전해주고자 합니다. 로마서는 편지라기보다 일종의 논문이라 할 만큼 체계적으로 기독교 신앙의 기본적인 교리를 다루고 있습니다. 죄, 구원, 은혜, 믿음, 칭의, 성화 등의 교리를 원리적인 측면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로마서 전체의 요절은 1:17절로서 중심교리는 ‘하나님의 의’입니다. 죄 아래에 있는 모든 인생들이 어떻게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는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구원의 원천이 하나님의 은혜이며 구원의 근거가 그리스도의 속죄이며 구원의 조건은 오직 믿음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도 로마서를 공부하면서 복음 안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의를 깨닫고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비밀을 알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제 1강은 로마서 전체의 서론에 해당하는 부분으로서 사도 바울 자신이 그리스도의 종이요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받았음을 밝히면서 하나님의 복음의 능력을 증거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폭발적인 복음의 능력을 덧입고 이 시대에 부르심 받은 사도요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충성하는 복음의 일꾼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Ⅰ. 은혜와 사도의 직분(1-7)
1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자기를 어떻게 소개합니까?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가장 먼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소개합니다. 이는 예수님과 바울과의 인격적이고 수직적인 관계가 어떤 관계였는지를 말해줍니다. 곧 예수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충성된 종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당시 로마에는 ‘종’으로 사는 사람들이 인구의 1/3 이나 되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전쟁에서 포로로 잡히거나 큰 빚을 져서 갚지 못해 자유를 박탈당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 바울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습니까? 바울은 본래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복음과 예수님을 대적하던 안티 크리스천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그가 성도들을 체포하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눈이 먼 채 예수님께 붙잡혀 사랑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가 행한 죄악들을 생각하면 그에게 짓밟힌 성도들처럼 그도 말에 짓밟혀 죽어야 마땅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를 심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그를 살려 주셨습니다. 이로인해 그는 예수님께 큰 생명의 빚을 졌습니다. 그 후로 바울은 예수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예수님의 ‘종’이 되어 주인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며 가라 하면 가고 머무르라 하면 머물렀습니다. 자기 생각과 계획보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살지 않았다면 ‘자유인’이 되었을까요? 일생 율법의 종, 분노와 미움의 종, 탐심의 종, 사망의 종 한마디로 죄의 종으로 살았을 것입니다.(7장) 그의 인생이 아름답고 귀한 것은 다른 것의 노예된 삶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도 세상과 죄의 종된 삶에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 예수님께만 충성하는 아름답고 존귀한 인생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사도로 부르심:
하나님은 바울을 일방적인 은혜로 사도로 불러주셨습니다. 사도란 바울과 세상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세상에 대해 감당하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부르심 받은 자는 세상에 대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복음을 전할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이 이방인을 위한 택한 그릇의 역할을 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통해 그가 하나님을 위해, 이웃을 위해 일생 할 일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면 우리가 세상에서 절대적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셋째,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다:
그가 사도로서 구체적으로 해야 할 사명이 무엇이었습니까?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하나님께서 바울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택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복음’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바울 한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사도로 택하셨습니다. 그가 평생 한 일은 복음전파의 사명이었습니다. 어디를 가나 어느 때나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그는 자기소개를 하면서 자신의 영적 신분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사도 바울의 자기소개를 통해 우리 자신을 돌아보며 우리 각자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영적 신분(spiritual ID)이 무엇인가를 밝히 정립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자신의 영적 신분이 분명할수록 그는 하나님 앞에서 분명한 푯대가 있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복음이란 무엇입니까? 2절을 보십시오. 복음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입니다. 왜 예수님이 복음입니까? 당시 로마 황실에서 황태자가 내어나면 좋은 소식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올 12월에 좀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줄 지도자가 당선되리라는 좋은 소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근본적인 복음이 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세상을 조금 바꿀 수는 있어도 사람은 조금이라도 바꿀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창조주 하나님만이 바꿀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담의 타락이후 창조주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해서 약속해 오신 바로 그 구원자이십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혈통에서 메시야가 나게 하겠다고 하셨는데 예수님이 바로 그 혈통에서 나셨습니다. 고 문선명이 구원자가 될 수 없는 것은 그가 다윗의 혈통이 아니라 문씨 가문의 혈통에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습니다. 인류역사에서 죽음의 세력을 이긴 자는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살아생전 말씀하신대로 3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그 능력을 보이셨고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인성과 신성을 다 가지셨기 때문에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요 구원자가 되시기에 온전하십니다. 바울은 이 예수님을 가리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신앙고백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사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신 예수님이야말로 우리 생명과 인생의 주인이시요 왕이십니다. 이 예수님은 우리의 경배와 찬양과 순종과 헌신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사도 바울과 같이 예수님을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생명과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그의 다스림을 받을 때 참 평화와 기쁨과 행복이 넘치는 삶을 살게 될 것을 믿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제 그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증거합니다. 5절을 보십시오.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바울은 누가 뭐라고 해도 받은 구원의 은혜가 분명했습니다. 구원의 은혜와 함께 그로 말미암아 부르심의 은혜도 받았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받은 은혜 때문에 한결같이 사도의 직분을 감당했습니다. 받은 은혜 때문에 생명도 아까워하지 않았습니다. 받은 은혜 때문에 고난 속에서도 기쁨이 넘쳤습니다.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위하여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했습니다. 우리도 받은 것이 많습니다. 그런데 원한은 돌에 새기고 받은 은혜는 물에 새긴다는 말처럼 내가 목자로 살면서 받은 것이 고난과 훈련과 무시뿐인 것처럼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정말 우리가 받은 것이 그것 밖에 없을까요? 우리가 그로 말미암아 받은 은혜가 무엇입니까? 죄 사함을 받고 영생을 받고 귀한 말씀을 받고 주의 종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았습니다. 마음이 통하는 동역자들을 받고 사랑이 풍성한 믿음의 가정을 받았습니다. 일일이 열거하기에 시간이 부족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시간이 부족해도 빼먹으면 안 되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사도의 직분입니다. 목자의 직분, 선교사의 직분입니다. 세상에 수많은 직분이 있지만 생명의 복음을 전해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는 목자의 직분만큼 귀한 직분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시간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사도의 직분을 감당하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Ⅱ.복음의 능력(8-17)
8절을 보십시오.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라” 바울은 먼저 로마 교회 성도들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이는 그들의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로마는 세계의 중심이었고 모든 길은 로마로 통했습니다. 세상에서 좋은 것들은 다 로마로 흘러 들어왔습니다. 세계 각 나라를 정복한 로마 군인들이 노예들과 전리품들을 끌고 와서 전시회를 벌였고 로마는 날마다 축제와 향락의 파티가 벌어졌습니다. 극장과 목욕탕, 댄스홀이 번창했고 술집, 도박장, 사창가가 흘러넘쳤습니다. 음식 문화가 발달하여 먹고 토하고 또 먹고 토했습니다. 결혼도 일찍부터 하고 이혼도 자유롭게 했습니다. 도덕적인 제약을 받지 않고 육신이 원하는 대로 살았습니다. 또한 로마 사람들은 이름이 알려진 신이라면 가리지 않고 숭배해서 종교 박람회를 연상시킬 만큼 수많은 종교들과 그들이 섬기는 우상들로 넘쳐 났습니다. 이 모든 신들 위에는 로마 황제가 군림하여 황제숭배를 하지 않으면 국가안전을 해치는 자로 여겨 불이익과 핍박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쾌락문화가 판을 치며 육신을 지배하고 헬라 철학이 정신을 지배하고 황제 숭배 사상이 일상을 지배하는 분위기 속에서는 신앙을 가져도 지키고 유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로마 성도들은 이런 로마 제국의 심장부에서 신앙중심을 지킬 뿐만 아니라 그들의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런 로마 성도들을 생각할 때 너무나 자랑스럽고, 너무나 고맙고, 너무나 사랑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항상 기도할때마다 그들을 위해서 쉬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바울은 기도로만 그치지 않고 그들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이는 그들에게 어떤 신령한 은사 곧 말씀과 복음신앙을 나누어 주어 그들을 견고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로마 성도들 중에는 그들의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될 정도로 믿음이 좋았지만 개중에는 약해지고 흔들리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복음을 믿지만 로마의 향락문화의 영향으로 복음과 세상 사이에서 갈등하고 세상 죄악을 즐기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배운 자와 못 배운 자 사이에 인간갈등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믿음의 길이 쉽지 않음을 알고 이쯤에서 그만 포기할까 계산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런 그들에게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 주어 그들의 흔들리는 믿음을 붙잡아 주고 견고케 하고자 하였습니다. 12절에는 피차 안위함을 얻고자 하였습니다. 목자와 양과의 귀한 영적 교제를 통해 사랑과 은혜를 나눔으로 서로 힘을 얻고자 하였습니다. 또한 13절에서는 열매를 맺게 하려 한다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을 통하여 우리는 자라나는 양들을 잘 돕는 비결을 배우게 됩니다. 첫째는 이들이 믿음을 지키는 것을 크게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항상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과 교제로 신령한 은사를 나눠줌으로써 견고해지도록, 서로 힘을 얻고 열매를 맺도록 도와야 함을 배웁니다. 바울은 참으로 양들을 책임성 있게 돕는 실질적인 목자였습니다. 그는 한번 복음을 전해주고 어떻게 투쟁하나 멀리서 보고만 있지 않고 기도와 말씀으로 영적 지원을 끊임없이 감당하였습니다. 양들을 심령으로 사랑하고 돕는 바울의 목자생활을 잘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3절을 보십시오. 바울이 여러 번 로마 교회에 가고자 하였지만 지금까지 길이 막혔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왜 바울이 이토록 로마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합니까? 14절을 보십시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바울은 모든 사람에게 빚진 심정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이 무슨 큰 빚을 졌기에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빚을 졌다고 고백하는 것입니까? 그의 빚은 예수님께 받은 사랑의 빚을 말합니다. 그는 예수님을 핍박하고 조롱하던 자로서 심판을 받아 마땅한 죄인 중의 괴수였습니다. 스데반 집사를 죽이는데 앞장서고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 가두던 사단의 똘만이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를 심판하는 대신 인격적으로 만나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의 이름을 이방인들에게 증거하는 이방인의 사도로 선택해 주셨습니다(행9:15). 바울은 이 은혜에 크게 빚진 자였습니다. 바울은 한량없는 이 은혜의 빚을 갚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빚진 자의 심정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빚진 자의 심정을 아십니까? 저는 며칠 전 10월 2일 샌드위치 day를 쉬면서도 일하지 않은 것 때문에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갚아야 할 빚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빚진 자는 빚을 다 갚기 전에는 진정한 안식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빚진 자의 심정이 충만했기에 15절을 보면 “할 수 있는 대로” 그들에게 복음 전하기를 원한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할 수 있는 대로”는 한번 해 보고 할 수 없으면 그만이라는 뜻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여” 복음을 전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빚진 자의 심정이 있을 때 바울은 언제나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열망이 활활 타올랐습니다. 빚진 자의 마음 때문에 한계가 없이 복음역사를 섬길 수 있었습니다. 주님은 아무 것도 없던 내게 지금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죄인 중의 괴수이며 구원에 관해서는 아무 자격이 없던 나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누군가 나에게 전해준 복음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복음을 들은 날부터 모든 믿는 사람들은 복음의 빚을 진 사람들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오늘 복음을 들었으니 우리도 복음의 빚을 진 사람들입니다. 이 복음을 전하지 않고 갖고만 있으면 원금에 이자만 쌓여갈 뿐입니다. 빚은 빨리 갚는 게 상책입니다. 이번 가을학기에는 저와 여러분이 빚진 자의 심정으로 캠퍼스 지성인들에게 진 말씀의 빚, 기도의 빚, 사랑과 섬김의 빚을 갚는 종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16절을 보십시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뭔가를 부끄러워한다는 것은 다른 것과 비교하면서 느끼는 감정입니다. 바울 당시 로마 성도들은 그들이 믿는 복음을 로마인들이 이루어놓은 것들과 비교하며 부끄러워하기 쉬웠습니다. 그들이 사는 곳은 강력한 힘을 자랑하는 화려한 물질문명의 중심지 로마였습니다. 헬레니즘을 근간으로 고등학문과 철학을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전하는 복음의 내용은 나무에 달려 저주받아 죽은 자를 구세주로 믿는 것인데 힘을 자랑하는 그들은 이를 인정치 않고 무시하였습니다. 또한 그 종교의 발생지가 로마의 변방 중의 변방, 식민지 이스라엘이었습니다. 로마교회의 구성원도 로마 사회의 최 하층민들이며 노예출신 이방인들이 많았습니다. 내가 믿는 복음이 힘이 없고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부끄러운 마음이 들기 쉬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확신 있게 말합니다. “I am not ashamed of the gospel(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왜 그렇습니까? 복음이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로마는 군대의 힘으로 세계를 정복했습니다. 로마법은 탁월하여서 모든 법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로마의 도로는 세계로 통했습니다. 로마의 화폐는 세계경제를 지배했습니다. 로마의 라틴어는 헬라어를 제치고 세계의 언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모든 면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한 로마일지라도 해결할 수 없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내면문제, 죄 문제는 로마의 군사력으로, 탁월한 법으로, 경제력으로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로마제국이 얼마나 타락했습니까? 로마황제들 중에 동성애자들이 많았고, 로마의 귀부인들은 불륜을 저질러서 사생아들이 많이 태어났습니다. 바울은 세계의 중심인 로마에 구원이 없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수치와 조롱의 대상이 된 복음은 죄와 사망권세에서 죄인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었습니다. 복음으로인해 쾌락의 도시 고린도 사람들이 변화되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마술과 우상의 도시 에베소에서 3년 동안 복음을 강론했을 때 도시가 변화되고 온 아시아가 변화되는 것을 체험하였습니다. 점을 하는 사람이 복음으로 변화되어 자신의 생계수단인 마술 책들을 불태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악령에 사로잡혔던 사람이 복음으로 악령에서 헤어 나오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또 죄 때문에 두려워 떨던 사람이 죄 사함을 받고 담대해지게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복음으로 사람이 구원받고 변화되는 것을 보았던 바울은 확신을 갖고 말합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도 로마 못지않은 과학물질문명의 제국입니다. 저와 우리 목자님들이 잘 모르는 많은 신기한 일들이 스마트폰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고 죄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사람을 죄로부터 구원할 수 있습니까? 사람의 죄 문제는 오직 하나님의 능력인 복음으로만 해결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18절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라고 하였습니다. 실로 복음은 믿는 자에게는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됩니다. 복음에는 죄를 이기는 능력이 있습니다. 좋지 못한 습관을 이기는 능력이 있습니다. 교만을 이기고 불신을 이기고 두려움을 이기는 능력이 있습니다. 슬픈 운명을 이기는 능력이 있습니다. 복음은 어떤 사람이라도 변하여 새 사람이 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능력’은 헬라어로 ‘뒤나미스’인데 여기서 다이너마이트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다이너마이트와 같은 폭발력을 가지고 바위처럼 단단한 죄를 깨뜨리고 새로운 존재로 바꾸어 주는 힘이 있습니다. 교회 역사상 사도 바울 이후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라고 칭송받는 성 어거스틴은 젊어서 탕자였습니다. 그의 어머니 모니카가 아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했지만 아들은 어머니의 신앙을 조롱하고 일부러 어머니가 싫어하는 짓만 골라서 했습니다. 일찍부터 방탕한 생활을 하며 결혼 없이 사생아인 아들을 두기까지 하였습니다. 387년 그는 캄캄한 밤길을 헤매듯 친구의 정원을 거닐며 죄악으로 치닫는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하면 돌이킬 수 있을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담장 너머에서 동네아이들이 놀면서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일어나 펴서 읽으라, 일어나 펴서 읽으라” 그는 일어나 방으로 가서 어머니가 주셨던 성경책을 펴서 읽었습니다. 그 때 그의 눈에 로마서 13장 말씀이 들어왔습니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음이니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13:11-14) 이 말씀은 다이너마이트와 같이 그의 영혼에 터졌고 그는 이후 탕자에서 변하여 성자 어거스틴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물론 다이너마이트가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것이 사실이지만 불꽃이 없다면 작은 돌조각하나도 부숴뜨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다이너마이트와 같이 엄청난 파괴력을 가지고 한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키지만 그 변화의 시작은 진실된 회개와 결단 같은 작은 불꽃입니다. 저희가 가을학기 로마서 말씀을 깊이 받고 회개하고 결단하는 가운데 다이너마이트와 같은 복음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하나님께 생명의 빚을 진 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중풍병자와 같이 자리에 누워 정욕과 무기력 무절제의 죄 가운데 살다가 죽어 심판받을 죄인을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구원해 주시고 일어나 걸어가는 새인생을 살게 하셨습니다. 또한 저는 하나님께 사랑의 빚을 진 자입니다. 선교지에서 도망온 후 믿음과 사명을 잃어버리고 방황할 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며 저의 허물과 죄에도 변함없이 저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영접하고 다시 목자로 살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제가 주님께 생명의 빚, 사랑의 빚을 진 자로서 이 빚을 갚는 인생을 살겠습니다. 그런데 세상살이에 지쳐있는 자신이나 먹고 살기 힘든 이 시대나 그런 힘든 시대를 살면서 살아남기 위해 영적인 소원도 잃어버리고 무한 경쟁에 내몰린 캠퍼스 지성인들을 생각할 때 복음이 과연 어떤 힘을 되어 줄 수 있을까 회의가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제가 저 한사람을 변화시킨 복음이야말로 캠퍼스 지성인들을 바꾸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능력과 힘이 있음을 믿고 불신과 게으름을 회개하고 가을학기 힘써 빚진자의 심정으로 말씀을 전파하는 종이 되겠습니다.

그러면 복음이 어떻게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됩니까? 17절을 보십시오. 복음이 하나님의 능력인 것은 복음 안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나타났다’는 것은 위로부터 임했다는 것이고 ‘하나님의 의’란 인간의 의와 대조적으로 하나님께서 죄인된 인간을 의롭게 하기 위해서 계획하시고 준비하시고 나타내 보이신 의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사건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나의 죄를 지시고 내 대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겸손하게 영접하면 하나님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어 죄인인 우리가 의인이 됩니다. 인간은 그동안 ‘하나님의 의’보다는 ‘인간의 의’를 통해서 구원을 얻고자 몸부림을 쳐 왔습니다. 덕을 쌓고 선을 행하고 인간의 노력과 성실과 의지로 구원에 도달해 보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의는 아무리 쌓고 쌓아도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인간의 의는 하나님 앞에 더러운 누더기와 같다고 했습니다. 복음에는 100%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의, 하나님이 완성하신 의, 하나님이 그 아들의 피로 우리 죄를 씻으시고 우리를 의롭다 인치신 의, 그것이 복음에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는 오직 그 복음을 믿을 뿐입니다.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믿음만을 가지고 주님께 나아가면 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받았으면 오직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나의 의, 나의 자랑, 나의 공로, 이런 것들은 오히려 하나님의 의를 가릴 뿐입니다. 우리가 100% 은혜로 구원받고, 100%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으면 신앙생활도 100% 오직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넘어져도 다시 복음을 믿고 다시 복음의 은혜를 힘입어 사는 것입니다. 그때 복음의 은혜를 더 깊이 알아가게 되고 복음의 능력을 더 깊이 체험해가게 됩니다. 그때 주님께 대한 감사로 충만해지게 되고 자립적인 믿음의 사람이 되고 주님과의 관계가 더 깊어지게 됩니다. 신앙생활은 자기 의와 자기 공로나 자기 열심이 아니라 시작도 믿음이고 과정도 믿음이고 끝까지 오직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인간을 의롭게 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복음 밖에 없습니다. 사도 바울 시대에나 오늘날에나 동일하게 복음이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여전히 복음은 어떤 죄인이라도 믿기만 하면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복음의 능력은 시대를 타지 않고 사람을 가리지도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한 것처럼 복음의 능력은 언제나 동일하게 모든 믿는 사람에게 역사합니다. 우리가 이 복음의 능력에 대한 확신을 덧입고 이 가을에도 복음을 의지하고 시대의 죄악과 싸우며 힘써 복음을 전파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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