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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1-04-24 (일) 13:17
분 류 고린도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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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부활절수양회 제2강] 성경대로 부활하신 예수님 - 김태영, 문대범, 천수원
2011년 부활절수양회 주제2강                                        김태영, 문대범, 천수원

성경대로 부활하신 예수님

말씀 / 고린도전서 15:1-58
요절 / 고린도전서 15:3,4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흔히 한국 교회가 세계사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급속히 성장 하였다고들 말합니다. 그러나 절두산에서 순교한 3000 명, 그리고 일제의 신사 참배에 거부하다 순교하신 수많은 교인들, 한국전쟁 때 순교하신 손양원 목사님과 여러 교인들, 그리고 지금 김정일 통치체제 아래서 신음하는 북한 지하교회 신도들까지 한국의 교회는 신자들의 순교의 피를 먹고 자라 왔습니다.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믿음을 지켜왔던 근원은 한 마디로 부활 신앙입니다. 교회와 신도들의 타락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하고  교회 내부적으로도 자성의 목소리가 높으며 성장이 정체되어 있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부활 신앙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배경이 되는 고린도는 항구도시로 상업과 무역이 발달한 동시에 물질주의와 음란주의가 활개를 치던 곳이었습니다. 이곳에 사도바울을 통해 복음이 선포되고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죄인들이 회개하고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이 전도여행을 떠나게 되면서 고린도 교회는 처음 신앙을 잃어버리고 점점 부패하였습니다. 심지어는 교인들 내에서도 부끄러운 음행문제 송사문제 우상숭배 문제 등이 발생하였고 세상 사람들에게까지 손가락 받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이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오늘 말씀을 통해 교인들에게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다 같이 1절 말씀을 한 목소리로 읽어 보시겠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우리가 받은 복음은 우리의 생명이 달려있는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아무 유익이 없는 것처럼(마 16:26) 우리는 신앙의 침체기에서 먼저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복음의 말씀을 굳게 붙들어야 합니다. 그럼 우리가 붙들어야 할 이 중요한 복음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다 같이 3절 4절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복음은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영광스러운 부활입니다. 이 부활의 믿음을 굳게 지키고 있지 않다면 몸이 예배당에 있고 아무리 많은 주의 일을 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 믿음이 헛된 믿음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도덕적으로 얼마나 깨끗하게 살았는가? 얼마나 많은 것을 이루었느냐는 구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자신이 알게 모르게 저지른 교만과 욕심과 육신의 정욕과, 이기심과 나태함과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못한 죄 등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죄, 그리고 필연적으로 찾아올 죽음에 대한 공포는 스스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 1만 달란트(약 3조원) 빚을 지고 도저히 갚을 길이 없어 울부짖는 자가 바로 죄와 사망 아래서 고통 하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시며 나의 죄 값을 깨끗이 치러주시고 다 이루었다 선포하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 찬송 드립니다.   바울은 이후 말씀에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어야만 하는 확실한 증거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은 구약 전체에 예언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오늘 말씀에서  성경대로 다시 살아나사 라고 선포합니다.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라 하신 말씀(창 3:15), 이사야서 53장에 기록된 메시아의 고난 등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말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뿐 아니라 이사야 26장에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사 26:19) 말씀과 다니엘서 12장 2절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말씀 등 신자들의 부활에 대해서도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모세의 율법에 정통한 종교, 정치 지도자였지만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모세 5경의 말씀으로 지적하십니다. 죽은 자의 부활을 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마 22:31) 하심으로 부활이 성경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고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살아있음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부활하신 예수님은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셨다고 하고 있습니다. (눅 24:25-27)  한 마디로 우리의 지혜가 부족하여 깨닫지 못할 뿐  구약의 말씀 전체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 믿는 자들의 부활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사역중에 자신의 죽음과 장차 올 부활에 대해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 표적을 보여 달라고 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마12:39) 하셨으며 마태복음 16: 21절 에서는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이 후에도 제자들에게 무수히 죽으심과 부활에 대해 말씀하셨으며. 예수님이 고소당한 내용 중에 성전을 허물고 사흘 만에 다시 짓겠다고 하여(요2:19) 성전을 모독하였다는 성전 모독죄 내용이(마 14:58) 있었음을 보아도 예수님이 부활을 선포하셨음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신자들의 부활에 대해서도 예수님께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요 11:25) 말씀하셨으며,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리라는(마 22:30)  구체적인 말씀도 주셨습니다.
셋째로 예수님을 본 수 많은 증인들이 있으며 그들의 변화된 인생으로 그 증언의 확실함을 보이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3년 동안 동고동락하여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잘 알고 있던 베드로와 열두제자에게 보이셨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잡혀가실 때에 비겁하게 도망갔던 겁쟁이들이었으며 그 중 도마는 뻔뻔하게도 부활하신 예수님의 옆구리에 손을 넣어 보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부활의 주님을 만난 후 변화되어 모두 순교하기 까지 주님을 따르는 자들로 변화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소수의 추종자에게만 나타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후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고 그중에 대다수가 살아 예수님의 부활을 전파하고 있어 말 그대로 산 증인들이었습니다. 의심나면 직접 찾아가 물어볼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과거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유대로 올라가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 보라고 빈정거리던 (요 7:4) 예수님의 육신의 동생인 야고보에게 보이셨고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도 보이셨습니다. 혹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지 않고 간신히 목숨이 붙어 있었다가 제자들에게 보인 후 죽었다고 주장하지만 반죽음 상태의 무기력한 사람이 죽음이 두려워 뿔뿔이 흩어졌던 비겁한 제자들을 변화시켜 담대한 사도요, 순교도 두려워하지 않는 일꾼들로 변화시킬 수 는 없을 것입니다.
넷째로 말씀을 전하는 사도 바울과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의 극적인 변화가 확실한 증거가 됩니다.
바울은 앞에서 소개된 제자들과 사도들과는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수 믿는 자들을 죽도록 미워하였고 스데반 집사를 돌로 쳐서 죽이는데 앞장섰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믿는 자들을 남녀노소 잡아들이기 위해 짐 싸들고 원정 다니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던 중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으며 주님을 위해 많은 고난을 기꺼이 감당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바울의 인생의 목표가 되어 죽음도 두렵지 않게 되었습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빌1:20~21) 바울은 자신이 구원받고 사도로 쓰임 받은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과 빚진 자의 심정으로 평생 열심을 다하였고 바울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헛되지 않아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였습니다. 바울뿐이 아닙니다. 십자가와 복음의 원수 되어 방탕하게 살던 어거스틴이 변화되었으며 인본주의자 이어령 선생이 변화되었고 이 자리에 모인 우리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증인들입니다. 저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증인입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녔고  구원에 대한 확신도 있었고 주님을 위해 살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워 물질에 대한 걱정이 많았고 영적 문제보다는 육적인 문제를 주로 고민하며 살아왔습니다. 등록금이 많은 의대를 무사히 졸업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무사히 졸업시켜 주시면 통일 후 북한을 위해 일하겠다는 기도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들어 주셨고 인턴, 군의관 생활을 주님의 은혜로 마치게 하셨습니다. 2007년에는 순수한 믿음을 가진 재은 목자님과 믿음의 가정도 이루게 하셨고 내과에도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하게 하셨습니다. 내과 전공의 시절 주님께서 제게 두 아들도 맡겨 주시고 어느덧 내과의 황금기인 3년차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요구사항이 많고 까다로운 환자들, 독한 윗년차 레지던트들, 교수님들로 인해 병원 생활이 쉽지 않았습니다. 통장에는 빚이 늘어가고 동역자와 두 아이들을 생각하면 물질 걱정이 앞섰습니다. 돈 벌 궁리를 하다 보니 돈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탐욕스럽게 돈을 모으고 있는가를 대략이나마 알게 되고 참 더러운 세상이구나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세상사는 것이 피곤하였습니다. 그러나 말씀 준비를 하며 제가 도저히 갚을 수 없는 3조원의 죄 값을 주님께서 이미 다 치러 주셨고 장차 부활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사도 바울 과 복음의 증인들처럼 이 기쁨의 소식을 전하는 일을 끝까지 감당하겠습니다.
Ⅱ. 죽은 자의 부활 (12-34)
(i)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12-19)
앞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 사건임을 증거했습니다. 그런데도 고린도 성도들 가운데는 죽은 자의 부활을 부인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12). 이들의 생각을 이해하기 위해서 당시 고린도 교회의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고린도는 국제적인 상업도시로, 당시 많은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이 서로 섞여 살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 가운데는 부활을 부인하는 사두개파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유대 제사장을 중심으로 생겨난 사상의 한 파로서 사후의 생을 일체 부인 하였습니다 (행23:8). 이와는 다르게 헬라인들은 이원론에 기초한 사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정신과 영의 세계는 아름답고 참된 것이나 물질의 세계는 더럽고 추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때문에 헬라인들은 영혼의 불멸은 믿었으나 몸의 부활은 믿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은 사상적 배경에 매여 있던 사람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신자가 되었지만 복음을 부분적으로만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있지만 부활은 없다. 또는 그리스도는 부활했지만 우리는 부활하지 못한다. 영은 부활하지만 몸은 부활하지 못한다는 등 나름대로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고린도 성도들에게 바울은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어떤 모순에 부딪치게 되는가를 설명하므로 죽은 자의 부활이 반드시 있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어떤 심각한 문제들이 생기게 됩니까? 첫째, 그리스도의 부활도 없게 됩니다. 13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죽은 자의 부활을 부정해야 한다면 그리스도의 부활도 부정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날 수 없었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죽은 자의 부활과 그리스도의 부활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만일 사람이 다시 부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부정하면 결국 그리스도의 부활의 가능성도 부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의 전파하는 것이나 믿음이 모두 헛되게 됩니다(14,15a). 복음의 핵심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사 생명의 구주가 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의 부활도 불가능하게 되고 예수님이 생명의 구주가 되셨다는 것도 거짓이 됩니다. 또한 우리는 거짓말장이요 남을 속이는 사기꾼이 됩니다. 죄와 심판에 대해 가르치며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은 공갈협박사기가 되고, 십자가를 통한 구원에 대해 증거하는 것은 구원빙자사기가 됩니다. 평신도 목자님들은 경성사도회가 아니라 경성 사기회가 되고, 풀타임 사모님들은 전업주부사기단이 됩니다. 우리 모임은 거짓말을 믿게 하기 위해 캠퍼스 심방을 하고 말씀을 가리치고 심지어는 해외까지 나가서 사기를 치는 세계적인 사기꾼 집단이 됩니다. 셋째,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게 됩니다(17).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만일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주님께서 죄와 사망 세력을 완전히 이기셨다는 것이 거짓이 됩니다. 즉 부활이 없다면 예수님의 부활도 없고 결국 우리의 죄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남아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결코 죽음의 세력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넷째, 신자는 모든 사람 가운데 더욱 불쌍한 자가 됩니다(18,19). 사람들은 누구나 이 땅에서 살동안 좀 더 편하게 잘 먹고 잘 살며 인생을 즐기고자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신자들은 이런 소망을 부인하고 주님을 위해 시간을 드리고 물질을 드리고 청춘을 드리면서 복음역사를 섬깁니다. 특히 초대 교회 때는 많은 성도들이 부활의 소망 가운데 그리스도를 위해 순교의 피를 흘리며 잠들었습니다. 기독교를 믿는 까닭에 카타콤의 어두운 지하 동굴에서 일생을 보내기도 하고 원형경기장에서 사자밥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원한 부활의 소망 때문에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이들 모두 헛된 소망 때문에 망하게 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목자님들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들입니다. 거짓 희망에 속아서 역사를 섬기기 위해 희생하고 일평생 소감만 쓰다가 죽음으로 끝나게 되니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상에서 우리는 죽은 자의 부활을 부인할 때 그리스도의 부활도 부인하게 되고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 전체가 흔들리고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ii) 만유의 회복(20-28)
 20절을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그러나 이제’ 이는 대전환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첫열매’에는 깊은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첫 열매는 앞으로 거두어들일 열매를 대표합니다. 첫 열매가 사과인데 같은 나무에서 귤이 열릴 수는 없습니다. 이처럼 첫열매인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부활을 볼 때 우리 신자들의 부활이 어떠할 것인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믿음으로 살아온 모든 신자들이 그리스도와 같이 부활하게 된다는 증표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 한 분의 부활이 어떻게 모든 신자들에게 효력을 미칠 수 있는 것입니까? 21,22절을 보십시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게 됩니다. 인류의 조상인 아담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죄가 세상에 들어 왔고 죄의 결과 죽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아담과 같이 죄악된 본성을 가진 사람으로 아담 안에 있기 때문에 죄와 사망의 세력에 지배당하여 죽게 된 것입니다. 이와 똑같은 원리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대표로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사망권세를 파하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부활이요 생명이신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사망의 세력권에서 벗어나 생명의 세력권 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생명을 얻게 됩니다. 이러한 부활은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신자들이 홀연히 부활하면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개개인의 생명을 살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24-28절은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하여 장차 일어나게 될 우주적인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최후에 불의한 온 세상을 심판하게 됩니다. 그 때에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자녀들을 괴롭히던 모든 사단의 권세, 특히 사망권세를 멸하시고 반드시 왕노릇 하시게 됩니다. 예수님은 만물을 발아래에 복종시키고 자신도 하나님 아버지께 복종하시므로 만유를 회복하십니다. 그 때에 죄로 인해 무너진 창조 질서가 회복되고 새 하늘과 새 땅이 건설됩니다. 우리 신자들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사랑하는 주님과 함께 영원토록 왕노릇하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 신자들의 진정한 희망입니다.
(iii)깨어 의를 행하라(29-34)
 당시에는 사후의 구원을 위해, 죽은 자들을 대신하여 세례를 받은 예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 받는 행위도 아무 소용이 없게 됩니다. 또 부활이 없다면 바울 자신도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었기 때문에 때마다 위험을 무릅쓰고 모험적으로 개척역사를 감당했습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이는 부활 신앙을 가지고 날마다 순교자적인 삶을 산 바울의 고백이었습니다. 그는 돌에 맞아 길거리에 버려지기도 하고 거센 풍랑속에서 죽음의 고비를 넘기기도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학문과 재능이 뛰어난 사람으로 세상에서 얼마든지 존경받으면서 편히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자기에게 유익하던 모든 것을 다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쉴 새 없이 전도여행을 떠났습니다. 고린도 교회 역시 목자 바울의 헌신과 희생으로 개척된 교회였습니다. 만일 부활이 없다면 바울도 세상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먹고 마시며 인생을 즐기겠다고 합니다. 바울이 태어날 때부터 놀고 먹는 것을 싫어하는, 우리와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부활신앙이 있었기 때문에 일평생 자신의 본능을 절제하며 주를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부활 신앙이 없을 때 누구나 쾌락을 추구하게 됩니다. 신앙생활하면서도 손해보지 않으려고 아등바등 애쓰게 됩니다. 그러나 바울은 말합니다.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고자 할 때 주변에서 많은 소리가 들려옵니다. “신앙생활에 너무 깊게 빠지지 마라.” “신앙생활도 자기 편하려고 하는 건데 왜 그렇게 힘들게 사냐?” “그렇게 살면 무슨 재미로 사냐?”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면 누구나 몇 번씩 듣는 말입니다. 이러한 말들은 우리를 걱정해주고 위해 주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속지 마십시오. 이런 말하는 동무들은 악한 동무들입니다. 우리를 위해주고 걱정해주는 것 같지만 결국에는 자신들과 같이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 함께 먹고 마시고 놀자고 하며 좋은 곳으로 인도하는 것 같지만 결국 패망의 길에 이르게 합니다. 우리는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소망으로 삼는 출세주의자, 물질주의자, 쾌락주의자들에게 속기 쉽습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영적으로 무지한 자들입니다. 우리는 분명한 부활신앙을 가지고 이들에게 속지 말아야 합니다. 깨어 말씀에 뿌리를 내리고 적극적으로 의를 행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영생을 얻는 길입니다.  저는 올 한해 이사야서 40장 31절 말씀을 붙들고 여호와를 앙망하는 삶을 통하여 독수리와 같은 새 힘을 가지고 역사를 섬기려는 야심찬 포부를 가지고 시작하였습니다. 평소 가지고 있던 나약한 신앙과 건강문제를 극복하고 영, 육간에 강건해 져서 성령 충만한 목자가 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저의 희망과는 반대로 흘러갔습니다. 작년 말부터 경희의료원 병리과에 홀로 근무하며 힘에 부치는 병원 업무 등으로 건강은 악화되었고, 올해 초에는 장염으로 2차례나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퇴원 후에도 계속 소화에 문제를 겪으면서 체중은 더욱 빠지고, 몸에 기운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계속 과로하다가는 더욱 건강이 악화 될 것 같다는 두려움과 나름 열심히 역사를 섬기고자 하는데 건강을 주시지 않는 하나님께 대한 반발심이 들어왔습니다. 찬양팀 인도자로써 영향력을 생각할 때 드러나게 힘들어하지는 못하였지만 이제는 몸을 사리면서 적당히 섬기자 라는 적당주의가 내면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통해 주님은 저의 죄문제를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부활신앙이 없이, 죽지도 않을 문제에 혹시 죽을까 몸을 사리며 적당히 신앙생활하려는 저의 적당주의와 안일한 신앙이었습니다. 저는 부활신앙이 없어 현실문제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연약한 자였지만, 그래도 작은 믿음을 드려 어찌하든 주님 곁에 붙어 있으려고 투쟁했을 때, 때가 되자 많은 축복을 주셨습니다. 저는 최근 4년차 전공의 생활을 하며 혼자 근무하던 병원에 아랫 연차를 2명이나 보내 주시고 이전보다 많이 나아진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매사에 부족한 것이 많은 자이지만 주님께서 축복하사 교수님들도 그동안에 수고를 인정해 주셨고, 많은 특권과 권세 또한 부여해 주셨습니다. 또한 제가 주님께 작은 시간이지만 헌신하여 드렸을 때 주님은 기이하게도 때마다 정현섭, 홍석범, 이재준 형제님 등 영적 소원이 있는 양들을 보내주어 일대일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가대 땅에서 소원 있는 양 얻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생각한다면 이것은 정말 기이한 역사였습니다. 동역자는 수시로 가대를 다녀도 그런 양을 한 번도 못 봤는데, 어디서 양들을 찾아오냐고 신기해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저의 믿음이 연약하여 주님의 역사를 안일하게 섬기고자 하였음을 회개하게 됩니다. 제가 부활의 믿음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주님의 역사를 섬기는 자 되기를 기도합니다. 꾸준한 캠퍼스 심방을 이루며 말씀을 전파하고, 깨어서 찬양팀과 성가대 역사를 섬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새벽기도와 일용할 양식을 꾸준히 감당하며 기도와 말씀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무엇보다 부활신앙을 가진 믿음의 사람이 되어 세상의 유혹에 속지 말고 깨어 의를 행하는 자 되기를 기도합니다.  
3. 몸의 부활, 부활의 영광 (35-49)
 바울은 지금까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해 증거 했습니다. 그런데 성도들 가운데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며 묻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 질문에 대해 씨앗을 예로 들어 부활의 원리를 명쾌하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36절에서 38절 말씀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이로되 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가령 우리가 수박 씨 하나를 땅에 심으면, 이 씨가 그대로 점점 자라서 주먹 만 한 씨가 됐다가 수박만한 씨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이건 수박 통이 아니라 그냥 씨 통이지요. 누구라도 수박씨가 그렇게 자라리라 생각지 않습니다. 어떤 씨앗이든 땅에 심으면 한 알 그대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 그 씨 자체는 썩고, 죽어서 없어지고 대신에 푸릇푸릇한 새싹이 돋아나지 않습니까? 죽은 사람이 다시 부활하게 되는 것도 같은 원리입니다. 죽은 사람의 육체도 씨앗처럼 땅에 묻히면 썩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그 썩은 육체 대신에 전혀 새로운 형체의 신비로운 모습으로 다시 나타납니다. 마치 살아있는 것이라고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번데기가, 어느 날 갑자기 아름다운 나비로 변해 공중을 훨훨 나는 것과도 같습니다.  자! 그러면 부활의 형체는 어떠합니까? 하나님께서는 그 뜻대로, 각 종자에게 각각의 형체를 주십니다. 콩 씨는 콩의 형체, 수박씨는 수박의 형체, 복숭아씨는 복숭아의 형체를 장래형체로 주셨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장래형체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어떤 사람입니까? 우리는 마음속에 예수님의 씨를 심었습니다. 예수님의 씨를 심었으니 당연히 예수님의 모습대로, 예수님을 따라 부활한 바로 그 모습이 우리의 장래 형체입니다. 고린도 후서 5장 1절은 말합니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우리가 이 육신의 장막 집을 벗을 때, 그리스도를 품은 이 육신의 씨가 땅에 묻히고 죽을 때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예비한 처소, 하늘에 있는 영원한 아버지 집에 거하게 될 것입니다. 39절을 보십시오.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하나님은 식물의 씨 뿐 만 아니라 동물의 육체에도 각각 다른 속성을 부여하셨습니다. 또 그 영광도 해의 영광, 달의 영광, 별의 영광, 또 별과 별의 영광이 다 다릅니다. 땅에 속한 형체는 거기에 맞게, 하늘에 속한 형체는 또 거기에 맞게 각각의 형체가 주어집니다.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각각의 속한 대로 각자의 형체를 주신 것처럼 우리도 그 날에는 부활에 맞는 완전히 새로운 형체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몸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몸으로 부활하게 되는 것입니까? 42-44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사도 바울은 우리 육신을 근본적으로 썩을 것, 욕된 것, 약한 것, 육의 몸으로 보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 육신은 결국 다 썩게 마련입니다. 썩지 아니할 육체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젊음을 자랑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육신은 변하고 쇠하여 집니다. 대학시절 경희 음대를 주름잡던 아름다운 혜준 사모님도 이제는 세 아이의 엄마요. 사모님이 되었습니다. 길에서는 그냥 아줌마로 불리기도 합니다. 우리의 육신은 누구라도 예외 없이 이 땅에서 쇠하고 늙어지며, 결국은 흙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또 우리 인생은 욕됩니다. 우리는 누구나 영광스러운 인생을 살기를 원하지만 어쩐일인지 지나고 보면 허물과 실수, 후회로 가득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원치 않게 더 욕된 인생을 살게 됩니다. 또한 우리 육신은 흙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약합니다. 아무리 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병에 걸리면 약해집니다. 또 우리는 죄를 짓지 않고자 하지만 육의 몸을 입고 있기 때문에 원치 않게 죄를 짓습니다. 끊임없이 죄의 소욕에 시달립니다.  이런 육신의 몸이 부활 때에는 어떻게 변화됩니까? 우리는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또한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또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우리의 몸은 하나님 나라에 맞게끔 변화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같이 될 수 있는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살려주는 영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흙에서 나서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었으나 이제는 예수그리스도의 살려주는 영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게 됩니다(49). 이 형상은 하늘에 속한 자. 예수그리스도의 완전한 형상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신령한 형상을 덧입고 영원토록 예수님과 함께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확신 가운데 이 영광스런 부활을 진정으로 사모하며, 소망하는 자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50절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바울은 성도들이 명심해야 할 것으로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받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 땅에서 얻은 혈과 육의 것들, 내가 판사, 목사, 아무리 유명한 연예인 일지라도 심지어 왕일지라도 그것으로 부활을 덧입지 못합니다. 비록 혈과 육은 별 볼일 없지만 겸손하게 회개하고 예수님의 피로 죄 씻음 받은 사람만이 부활의 영광을 덧입을 수 있습니다. 51절을 보십시오. 이제 바울은 마지막 날에 있을 비밀을 말해 줍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예수님께서 승리의 왕으로 재림하실 때 우리는 순식간에 홀연히 변화될 것입니다. 그때는 죽은 자들이 일어나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신령한 몸으로 변화됩니다. 그리고 왕이신 그리스도의 영접을 받게 됩니다. 이 날은 하나님의 원수들에게는 심판의 날이요. 우리 성도들에게는 가장 기쁘고 영광스런 구원의 날이 될 것입니다. 55 절을 보십시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바울은 이제 사망의 마지막을 담대히 외치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부활의 영광에 참예하게 될 때 사망권세는 완전히 파하여 집니다. 사망으로 권세를 휘두르던 사탄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고, 이때 사망도 함께 둘째 사망에 던져지게 됩니다.(계20:13,14) 예수님은 부활하심으로 사망권세를 이기셨습니다. 우리도 부활의 그 날에 사망권세를 이기고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 하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 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근본적으로 승리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승리의 인생을 살기 원합니다. 그러나 승리는 죽음을 이겨야만 얻을 수 있습니다. 죽음을 이기는 완전한 승리, 이 승리는 오직 죽음 권세를 파하신 예수님. 예수님만이 주실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사도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죽은 자의 부활이 반드시 있다는 것과 부활의 영광과 소망을 증거 했습니다. 이제 바울은 우리에게 부활 신앙 위에 굳게 서서 더욱 주의 일에 힘쓰는 자가 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다같이 58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의 수고가 주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니라." 여기서 '그러므로' 라는 것은 '이 비밀을 알게 되었으므로'란 뜻입니다.  이 비밀을 알게 된 우리 사모님들은 어떻습니까? 이 분들은 비싼 베이비시터 비용을 주고, 아이를 맡기고 힘들게 캠퍼스에 오릅니다. 그런데 막상 학교에 올라가면 아줌마 취급을 당하며 학생들에게 배척당합니다. 그럼에도 결코 절망하지 않습니다. 또 평신도 목자님들은 직장에서 술 한 잔 못하는 바보 취급을 당하면서도 굴복함이 없습니다. 일 년에 한번 사도회 MT만으로 그저 행복해 하며, 오늘도 묵묵히 캠퍼스에 오릅니다. 우리 풀타임 자매님들은 어떻습니까? 모든 수고와 헌신가운데 가장 낮은 곳에서 섬기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부족한 가운데 기뻐하고, 항상 웃는 얼굴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마구 뿌리고 다닙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우리의 모든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않다고 말씀합니다. 세상 것은 다 헛되지만 주의 일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드리는 모든 수고와 헌신은 하늘 곳간에 그대로 저장되어 주님의 날에 우리를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는 가장 확실한 자산이 될 것입니다. 저는 세상에서 썩을 것들만 구하며 그렇게 욕된 인생을 살다 비참하게 죽을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은혜로 구원받고, 부활의 새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저는 주님을 만나기 전 온갖 썩을 것들을 구하며, 사망의 음침한 곳을 헤메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사업을 시작해 오직 돈과 사람들의 인정을 구하며 세상을 헤매고 다녔습니다. 자신이 특별하다. 행복하다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영광도 잠시, 곧 사람에게 버림 받고, 병을 얻어 힘없이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저는 강직성 척추염이라는 희귀병을 갖고 있습니다. 이 병은 면역성 질환으로 척추가 점점 딱딱해지고, 근육들이 굳어가며, 또 다른 염증성 질환들을 동반하는 병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 저는 사업실패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와 육신의 고통으로 인해 방바닥을 기어다니고, 혼자 힘으로 세수조차 할 수 없는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런 저를 오직 말씀으로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 작은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 일어나 걸어라.” 예수님께서는 오직 말씀만 하사 저를 세우셨습니다. 이후 저는 부활의 새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썩을 것, 욕된 것, 약한 것, 육의 것들에 메이지 않고, 썩지 않으며, 영광스럽고, 강하며, 신령한 몸의 장래 형체를 갖게 되었습니다. 저는 육신의 병으로 절망했습니다. 그런데 사망권세로 저를 짓밟았던 이 병으로 인해 주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도구로 쓰임 받을 줄이야??  정말 몰랐습니다. 강직성 척추염은 아직 특별한 치료법이 없지만 40세가 되면 그 진행이 멈춘다고 합니다. 이제 그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그 날이 온다고 제 몸이 깨끗이 낫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진정한 부활이 때, 그리스도의 날에 이 육신의 장막집을 깨끗이 벗어버리고,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예수님과 함께 거하게 될 것입니다. 요즘 가장이라는 부담으로 인해 미래에 대한 불안과 염려로 스트레스를 받아 여러모로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아무 염려말고 하늘 소망을 바라보도록 소원 주셨습니다. 저를 향한 주님의 사랑과 긍휼로 인해 감사합니다.  제가 이 부활 소망을 덧입고 견고하며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사람,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제 더 이상 육신의 한계와 두려움에 메이지 않고, 주님 원하시는 복음전파, 선교 사명을 힘써 감당하는 자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부활의 믿음으로 사는 우리 성도들이 구원을 받고 또 그리스도의 형상을 덧입게 된다는 것, 우리에게 이 부활의 영광보다 더 큰 영광은 없습니다. 우리가 '부활의 영광'을 간절히 소망하며 살 때 우리의 신앙도 더욱 견고하게 되고 흔들리지 않으며 주의 일에 더욱 힘쓸 수가 있습니다. 우리 각 사람이 견실한 부활의 소망 가운데 그리스도의 날을 준비하는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주님 오시는 날, 가장 영광스러운 상급, 생명의 면류관을 쓰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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