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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4-04-06 (일) 13:45
분 류 마태복음
첨부#1 2014_마태10강-1(김반석).hwp (28KB) (Down: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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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마태복음 제10강] 듣고 행하는 자

2014 마태복음 제10강                                                                         김반석

듣고 행하는 자

말씀/마태복음 7:13-29
요절/마태복음 7: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

오늘 말씀은 산상수훈의 결론으로 대조법을 사용하여 두 종류의 문, 두 종류의 나무, 두 종류의 사람에 대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양자택일의 문제로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는 자유의지로 어느 것이든 선택할 수 있지만, 그에 따라 인생의 행불행이 결정됩니다. 이 시간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말씀을 잘 듣고, 좁은 문, 좋은 나무,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을 택하여 복된 인생을 사는 자들이 되길 기도합니다.

첫째, 좁은 문과 넓은 문(13~14) 다 같이 13,14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넓은 문, 넓은 길을 선호합니다. 들어가기 쉽고, 다니기에도 편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니까 마음이 놓이고, 외롭지도 않고, 재미있어 보입니다. 십자가도 없고, 고난, 희생, 섬김, 충성, 헌신, 소감, 전도, 새벽기도 등 얽어매는 것도 없습니다. 피싱을 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 새벽기도에 나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 같은 날 차를 몰고 벚꽃 구경도 갈 수 있고, 배낭을 메고 등산을 갈 수도 있습니다. 얼마나 좋겠습니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인생을 마음껏 즐기며 살 수 있습니다. 자기만족을 추구하며 세상적인 성공과 세상영광을 구하는 삶을 살아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넓은 문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옳은 길을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신자는 그 길의 종착점이 멸망임을 볼 수 있는 영적 눈을 가져야 합니다. 인생의 결국을 생각하면 인생을 함부로 살 수 없습니다. 문이 넓고, 그 길이 넓다고 해서 그 문으로 들어가면 죄의 열매만 맺다가 영원한 형벌에 처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인생 뭐 있어?” 하며 한 번 뿐인 인생을 마음껏 즐기다가 가면 그 뿐이라고 생각하고 육체의 본성을 좇아 살아갑니다. 그러나 한 번 뿐인 인생이기 때문에 함부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이 땅에서의 삶은 잠시잠깐이고, 천국에서의 삶은 영원합니다. 훅하고 불면 휙 날아가 버릴 것 같은 인생을 절제하지 못하고 나름대로 살면, 죽은 후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서 영원히 고통 받게 됩니다(히9:27, 계21:8).

예수님은 이런 인생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왜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합니까? 생명으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좁은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습니다. 여기서 좁은 문은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0:9절에서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요한복음 14:6절에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를 볼 때 좁은 문은 구원의 길이요, 진리의 길이요, 생명의 길입니다. 신앙생활이란 한마디로 예수님을 따르는 생활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생활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9:23)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도 아니고 일생동안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분명히 좁은 길입니다. 이 길은 낮아져 섬기고, 물질과 시간과 인생을 드리는 길입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길입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서한국과 세계선교를 위해 희생하고, 이에 따르는 고난과 박해를 감당해야 합니다. 세상 풍조를 좇아 살지 않고, 산상수훈의 말씀대로 순종해서 살아야 합니다. 이 길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는 길이요, 회피하고 싶은 길입니다. 길이 매우 좁고 소수의 사람들이 가는 길이기 때문에 외로울 때도 있습니다. 이런 길을 본성적으로 좋아해서 가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길을 가야 하는 이유는 구원과 영생을 얻는 유일한 길이요,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딤전2:5, 행4:12) 이 길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결코 좁은 문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서 세상 부귀와 영예를 누리며 얼마든지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습니다. 문무를 겸비한 아이돌 스타로 자매들이 줄줄 따라다녔습니다.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로 세상 권세와 영광이 보장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길을 택했습니다(히11:24~26). 세상 사람들의 가치관으로는 모세의 선택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높은 보좌에 앉아 명령하고 섬김 받는 편한 길을 버리고, 노예 백성을 품고 섬기는 고난의 길을 택하다니!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모세는 분명한 영적 가치관을 갖고 있었습니다. 바로의 공주의 아들의 삶은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이요, 죄의 열매만 맺다가 멸망에 이를 것을 알았습니다. 반면 자신의 선택으로 비록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많은 고난을 받게 되지만 하나님의 영원한 상급을 받게 될 것을 확신했습니다. 이는 애굽의 모든 보화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영광입니다. 결국 좁은 문을 택한 모세는 전무후무한 영적 지도자가 되어 출애굽의 위대한 역사에 쓰임 받는 복된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한 번 좁은 문으로 들어갔다고 해서 다 된 것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좁은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날마다 넓은 문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마음을 부인하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고자 힘써야 합니다.(눅13:24) 경기장에서 선수들이 전력투구하듯이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게 하는 내외적인 세력과 치열한 영적인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이렇게 힘쓰지 않으면 우리의 죄악된 본성을 좇아 넓은 문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면 영적으로 비만한 사람은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영적인 다이어트를 해서 육적인 군살을 제거해야 합니다. 날마다 안일, 정욕, 교만, 세상욕심 등 죄의 군살을 빼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이런 명언을 남겼습니다. “Life is C between B and D” “인생은 Birth(B)와 Death(D)사이의 Choice(C)다.” 즉 인생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선택의 연속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매순간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됩니다. 예배하러 이곳에 와도 앞자리에 앉을 것인가! 뒷자리에 앉을 것인가! 선택해야 합니다. 식당에 가도 삼겹살을 먹을 것인가! 돼지갈비를 먹을 것인가! 고민해야 합니다. 신앙생활하면서도 좁은 문으로 들어갈 것인가? 넓은 문으로 들어갈 것인가? 갈등해야 합니다. 우리 앞에는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이 놓여 있습니다.(렘2:18)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의지로 어느 문이든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생(生)과 사(死), 구원과 심판, 천국과 지옥이 결정됩니다.  이 시간 성령께서 우리에게 종착지를 볼 수 있는 영적인 눈을 주셔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고자 결단하게 도우시길 기도합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삶이 비록 힘들고 외롭더라도 그 길의 종착지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요 승리의 면류관을 받게 될 것을 소망하며 끝까지 좁은 길을 갈 수 있길 기도합니다.

둘째, 좋은 나무와 나쁜 나무(15~23). 우리가 좁은 문으로 들어가서 좁을 길을 갈 때 경계해야 할 대상이 있습니다. 다 같이 15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거짓 선지자의 특징은 양의 옷을 입고 나아온다는 것입니다. 외형적인 모습은 온순하고 선량해보이고 친절하고 따뜻해 보입니다. 이단들이 신자들에게 이런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찾아와서 손을 잡으며 “얼마나 힘드시겠어요?” 하고 따뜻한 말로 위로해줍니다. 세상에는 넓은 문이 널려 있는데 왜 꼭 그렇게 좁은 길로 가느냐며 달콤한 말로 접근해 오기 때문에 넘어가기 쉽습니다. 이들은 십자가는 빼고 은혜, 축복, 신유 등 듣기 좋은 말로 유혹합니다. 그러나 그 속은 노략질하는 이리와 같이 사람의 영혼을 노략질 합니다. 인정사정 봐 주지 않고 물어뜯고 치명상을 입힙니다.
그러면 어떻게 거짓 선지자들을 분별할 수 있습니까? 16~18절을 보십시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면 그들이 선한 목자인지 거짓 선지자인지 알 수 있습니다. 가시나무와 엉겅퀴는 사람들을 찔러서 해를 입히는 못된 나무입니다. 이런 나무에서 포도와 무화과와 같이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좋은 나무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 것이 자연의 이치입니다. 이처럼 못된 나무와 같은 거짓 선지자들이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육체의 본성대로 살기 때문에 육체의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습니다.(갈5:19~21) 결국 나쁜 열매를 맺는 거짓 선지자들은 최후의 심판을 면치 못하고, 찍혀 불에 던져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좋은 나무가 되어야 합니다. 아름다운 열매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령의 열매(갈5:22,23). 찬양의 열매, 전도의 열매를 말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의 삶이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거룩한 삶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는 생활,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활에 힘쓰므로 좋은 나무가 되어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자들로 성장하길 기도합니다.

21~22절을 보십시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거짓 선지자들도 주여! 주여! 하며 열심히 주님의 이름을 부르기 때문에 하나님의 종들 같이 보입니다.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도 하며, 귀신도 쫓아내며 많은 권능도 행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상급을 받아야 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주님은 이들에게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하십니다(23). 이들의 문제는 불법을 행한다는 것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말과 행동이 아무리 그럴듯해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아무리 그럴듯한 봉사, 섬김, 전도, 구제, 기도를 한다고 해도 동기와 목적이 순수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십니다.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구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고자 하는 신앙생활은 불법을 행하는 것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외면을 당하게 됩니다. 천국은 인간의 공로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만이 은혜로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고자 투쟁해야 합니다. 부족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므로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성을 맺고,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에게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하시며 예비된 상급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므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복된 종들이 되길 기도합니다.

셋째,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24~27). 다 같이 24절 말씀과 26절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지혜로운 사람은 반석 위에 집을 짓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짓습니다. 이 두 사람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통찰력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입니다. 통찰력이 있는 사람은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집에 부딪칠 날이 올 것을 대비해 반석 위에 주추(柱礎)를 놓고 집을 짓습니다. 이렇게 집을 지으면 시간도 많이 걸리고, 물질도 많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지은 집은 견고하여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미련한 사람은 통찰력이 없어서 반석 위에 주추를 놓는 것을 귀찮게 여기고 쉽고 편하게 모래 위에 집을 짓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지은 집은 조그만 외압에도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버립니다.
집을 지을 때 기초를 어디에 놓느냐 하는 것은 구조물의 안전상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설계도와 시방서(示方書)대로 기초공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아무리 아름다운 건물이라도 무너져 버립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은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부르즈칼리파(160층, 828m)입니다. 자중(自重)이 50만 톤이 넘는데, 강도 6.0의 지진에도 견디고 600m 상공에서 초속55m의 강풍에도 거주자는 움직임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안전하다고 합니다. 이 건물이 구조적으로 안정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직경1.5m, 깊이50m에 달하는 콘크리트 말뚝을 192개나 박아 완성한 든든한 기초 위에 건축되었기 때문입니다. 기초공사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소홀히 하면 부실공사로 이어져 중국 상하이 아파트 붕괴 사고와 같이 순식간에 무너져 버립니다.
인생의 집을 짓는데 있어서도 어디에 인생의 기초를 놓느냐에 따라 승리의 인생을 살 수도 있고, 실패한 인생을 살 수도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 즉 산상수훈을 듣고, 그것을 삶의 기준으로 삼고 행하는 자입니다. 견고한 믿음은 행위가 수반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많은 말씀을 들었어도 말씀대로 행하지 않으면 기초가 놓이지 않습니다. “소금과 빛이 되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오른편 뺨을 치는 자에게 왼편도 돌려 대라, 원수를 사랑하라, 하나님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하라,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염려하지 말라, 비판하지 말라.....” 산상수훈에 자신을 비춰볼 때 여전히 악하고, 천박하고, 추한 모습을 발견하고 절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산상수훈을 듣고 행하기 어렵다고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성령을 의지하며 순종하고자 투쟁해야 합니다. 이것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는 것입니다. 땅을 파고, 철근을 배열하고, 거푸집을 세우고, 콘크리트를 치는 기초공사에 비용과 시간을 많이 투자하듯이 인내심을 갖고 마음 밭을 갈아엎으며, 말씀에 뿌리내리는 영적 투쟁을 감당해야 합니다. 이렇게 날마다 말씀에 기초한 진실한 회개로 순종의 말뚝을 박을 때 8복을 소유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장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승리의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듣고 배운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은 반석에 말뚝을 박는 것과 같이 어렵지만, 이렇게 할 때 어떤 어려움을 만나더라도 무너지지 않고 천성을 향하여 믿음의 경주를 완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듣되, 듣는 것으로만 끝나고 순종하지 않는 자는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어리석은 사람과 같습니다. 이들이 지은 집은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면 붕괴되고 맙니다.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분다는 것은 인생을 살면서 만나게 되는 고난, 유혹, 불의의 사고나 질병 등 각종 어려운 일들을 말합니다. 이때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뿌리가 약하여 믿음을 잃어버리게 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도 맺지 못하게 됩니다. 결국 인생의 종말을 맞이할 때 무기력하게 무너져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생의 기초를 주님의 말씀에 견고히 놓을 수 있도록 믿음의 투쟁을 감당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순종의 말뚝을 박기 위한 영적 투쟁에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런데 머리로는 순종해야 된다는 것을 알지만 몸이 따라가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순종은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같이 고난을 통해 체험적으로 배울 때 가능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이뤄드리기 위해 자기를 쳐 복종시키시고 십자가의 고난을 온 몸으로 감당하셨습니다.(히5:8) 그 받으신 고난으로 체험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온전하게 되셨고, 구원의 길, 생명의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고난을 통해 체험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매일 일용할 양식을 먹고, 말씀공부하고, 말씀 듣고, 소감을 쓰며 회개하고 순종하는 생활에 마음을 드려야 합니다. 이렇게 말씀에 순종의 말뚝을 박을 때 우리의 삶이 변화되고 영향력 있는 신앙인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이번 말씀을 묵상하면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지 않는 죄악된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모처럼 운동을 시작했는데, 어머니 입원과 메시지 때문에 2주 동안 운동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심히 아쉬워하면서도 전도나 양을 심방하지 않는 것은 전혀 아쉬워하지 않았습니다. 점차 자기부인, 자기십자가의 진리를 부담스러워하며 적당히 신앙생활하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연초에는 올해 요절인 딤후4:2 말씀을 심령에 새기고 순종하고자 했지만 최근에는 조용히 지냈습니다. 죄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고 순종하지 않았던 죄를 회개합니다. 제가 딤후4:2 말씀에 순종의 말뚝을 박아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 전파에 항상 힘쓰는 삶을 살길 기도합니다. 날마다 넓은 문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죄악된 본성과 싸우며, 기도하고 양 섬기며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지혜로운 삶을 살길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의 말씀을 마치시자 무리들은 예수님의 가르치심에 놀랐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산상수훈의 결론은 듣고 행하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라는 속담이 있듯이 아무리 주옥같은 산상수훈이라도 듣고 행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 시간 우리에게 주신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순종하므로,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에 힘쓰는 삶을 살길 기도합니다. 좋은 나무가 되어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자들이 되길 기도합니다. 주님의 말씀에 인생의 기초를 견고히 놓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어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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