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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4-12-28 (일) 12:37
분 류 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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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신년말씀 제1강] 말씀을 열면 빛이 비치어

2015년 신년말씀 제 1 강                                                                     최동진

말씀을 열면 빛이 비치어

말씀/ 시편 119:129-152
요절/ 시편 119:130 “주의 말씀을 열면 빛이 비치어 우둔한 사람들을 깨닫게 하나이다.”      

  이제 2014년 한 해도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올 한 해 저희에게 때마다 생명의 말씀을 공급해주시고 풍성한 말씀의 은혜를 베풀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시편 119편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찬양의 시로서 시인의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말씀을 사모하는 열정을 회복하고 말씀을 통한 기쁨과 감격이 저희 심령에 차고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I. 주의 증거들은 놀라우니라(129-136)
  시편119편은 176절로 되어있는데 각 단락마다 8절씩 총 22단락으로 정교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112절과 132절을 제외하고 모든 구절마다 ‘율법’이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가 반드시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율법, 증거, 판단, 율례, 말씀, 법도, 계명, 약속, 길 등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말씀의 역할이나 그 의미하는 바가 이렇게 다양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129절을 보십시오. “주의 증거들은 놀라우므로 내 영혼이 이를 지키나이다.” ‘주의 증거들’이란 하나님이 스스로 선포하시고 확증하신 증거들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 이 말씀은 어떤 과학자도 밝히지 못한 우주 탄생의 비밀에 대해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 중에 우주가 탄생하는 순간을 목격한 사람은 없지만 우리는 성경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지으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빛을 만드시고, 하나님이 태양과 달과 별을 만드시고, 땅의 식물과 육지의 짐승과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를 만드시고 사람을 흙으로 만드셨음을 우리는 성경말씀을 통해 알고 믿습니다. 자식 하나 없이 늙어가던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을 이루겠다는 비전의 말씀을 주시고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키시고 계명의 말씀을 주시고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시겠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또한 죄와 사망의 그늘 아래 고통하는 인생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마리아의 몸을 빌어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보내시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사람들의 모든 죄 값을 치르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심으로 사망권세를 파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이루어졌습니다. 히브리서 4장12절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에는 능력이 있어서 한 사람을 변화시켜서 죄로 무기력한 사람이 비전과 생명력 넘치는 삶을 살게 합니다. 말씀 안에는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는 놀라운 세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수록 더 깊은 세계에 대해 놀라게 됩니다. 시인은 이런 주의 증거들이 너무 놀라워 ‘내 영혼이 이를 지키나이다’ 고백하고 있습니다. 지킨다는 것은 순종(obey)을 의미합니다. 특별히 ‘내 영혼이 지킨다’는 것은 사람들 앞에서 형식적으로 지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앞에서 지킨다는 뜻으로서,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와 같이 마지못해 억지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영혼 깊은 곳에서 감사함으로 우러나오는 자발적인 순종을 가리킵니다. 사도바울은 그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고 고백하였습니다.(골2:3) 말씀의 놀라운 세계를 체험한 사람은 어떤 시련이나 박해가 있더라도 말씀을 지키고자 애를 씁니다. 심지어는 말씀을 지키기 위해 순교까지도 각오합니다.
  영적으로 무지한 우리가 어떻게 이런 놀라운 세계로 들어갈 수 있습니까? 130절을 보십시오. “주의 말씀을 열면 빛이 비치어 우둔한 사람들을 깨닫게 하나이다.” 주의 말씀이 열릴 때 빛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말씀을 연다는 것은 영어로는 unfolding으로서 당시 성경은 두루마리로 되어있었기 때문에 읽기 위해서는 펼쳐서 열어야 했습니다. 성경을 펴기만 하면 말씀의 빛이 비쳐서 우둔한 자들이 영적인 세계의 비밀을 깨닫게 됩니다. 말씀의 빛이 비치기만 하면 어두움이 물러가고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이게 됩니다. 죄로 인해 어둡던 내면이 밝아지게 됩니다.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던 살기등등한 사도바울을 빛으로 사로잡아 예수님의 사도로 변화시키신 것처럼 말씀의 빛이 비치기만 하면 회개하고 주를 위해 살고자 결단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무기력한 삶을 살던 자가 생명력 넘치는 삶을 살게 되고, 지저분한 삶을 살던 자가 거룩한 삶을 살게 됩니다. 하지만 말씀의 문은 늘 열려 있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때론 닫히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의 경우 말라기 선지자 이후 세례요한이 등장할 때까지 약 400년 동안은 말씀의 문이 닫혀있던 시기로서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어두운 시기였습니다. 깨달음도 없고 비전이나 소망도 없었습니다. 빛 되신 예수님이 탄생하심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도 새 빛이 비치게 되었습니다.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전에는 보통 사람들은 성경을 펼 수도 없었고 펴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종교 개혁은 그동안 닫혀 있던 말씀을 여는 역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종교개혁 이후 말씀이 쉬운 말로 번역이 됨으로 누구나 말씀을 읽고 생명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여는가 닫는가에 따라 한 사람의 인생이 결정됩니다. 우리가 언제든지 자유롭게 말씀을 보고 믿음의 깊은 세계를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말씀은 우둔한 저를 깨우쳐 지혜와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나이다”(마16:16) 말씀으로 거듭나게 하셨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6:33)는 말씀은 삶에 방향과 질서를 잡아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는 말씀은 선하신 하나님을 알게 해주셨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명기 6:5) 말씀은 세상 사랑에서 하나님만 사랑하는 사람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기이하여 저의 영안을 뜨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합니다. 말씀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시인은 주의 계명을 얼마나 사모했습니까? 131절을 보십시오. "내가 주의 계명들을 사모하므로 내가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 우리는 2002년 월드컵 때 우리 대표팀이 4강 진출의 신화를 이룩했을 때 히딩크 감독이 한 명언을 기억합니다.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 이는 그가 4강에 만족하지 않고 우승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간절하였는가를 잘 나타냅니다. 이처럼 시인은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말씀에 갈급하여 절박한 심정으로 말씀을 찾았습니다. 갓난아이가 엄마의 젖을 사모함으로 빨아 먹듯이 말씀을 간절히 사모했습니다. 고난 속에서 오직 말씀만이 위로요 힘이 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말씀을 본다고 뜻이 저절로 깨달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은 놀라운 것으로서 인간의 이성과 능력을 초월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으로만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베푸시던 대로 내게 돌이키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132)” 그가 구한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보편적인 사랑을 구했습니다. 하나님은 나와 이웃과 우리 모임이나 다른 모임이나 하나님의 이름을 사모하는 사람들 누구에게나 은혜를 베풀어주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실 때 말씀을 영접하고 깨닫게 됩니다. 시인은 계속해서 나의 발걸음을 주의 말씀 위에 굳게 세우시고 어떤 죄악도 지신을 주관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133)  발걸음이 말씀 위에 굳게 세워진다는 것은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죄악되고 유혹이 많은 이 시대에 자칫 하다가는 죄악이 우리를 주관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말씀 위에 굳게 서서 말씀에 뿌리 내리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말씀대로 살 때 죄의 소욕을 이기고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시인은 박해 가운데에서 이 시를 쓰고 있습니다. 주의 법도를 따라 경건하게 살고자 할 때 내적 외적 많은 어려움을 만나게 됩니다. 대게 열심히 신앙생활 하다가도 박해가 있으면 말씀을 놓아버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사람들의 박해에서 구원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 목적이 무엇입니까? 134b절를 보십시오. “그리하면 내가 주의 법도를 지키겠나이다” 그는 말씀을 지키기 위해 구원을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간절히 바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135절을 보십시오.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 비추시고 주의 율례로 나를 가르치소서.” 하나님은 말씀을 사모하는 자를 만나주시십니다. 그리고 1대1 할 때 목자와 양이 얼굴을 쳐다보며 말씀을 공부하듯이 얼굴을 마주보고 율례를 가르치십니다. 말씀이 열릴 때 주님의 얼굴을 보며 배우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때 시인은 박해자를 어떤 눈으로 바라봅니까? 136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주의 법을 지키지 아니하므로 내 눈물이 시냇물 같이 흐르나이다.” 우리는 언제 주로 눈물을 흘립니까? 오해받거나 억울한 일을 당할 때 눈물을 흘립니다. 학생들은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 어이없게 시험을 망쳤을 때 눈물을 흘립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이 속을 썩일 때 눈물을 흘립니다. 목자들은 열심히 하나님의 역사를 섬겼는데 수고한 만큼 열매가 보이지 않을 때 눈물을 흘립니다. 그러나 시인의 눈물은 이런 자기 연민에서 흘리는 눈물과는 다릅니다. 시인은 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이 눈물은 장차 멸망할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며 흘리셨던 예수님의 눈물과 같습니다.(눅19:41) 사도 바울이 주의 법을 지키지 않는 그의 동족들로 인해 내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져도 좋다고 말할 때 흘렸던 그 눈물입니다(롬9:1-3) 시인의 눈물은 말씀 없이 살다가 마지막 날에 멸망할 수밖에 없는 영혼들을 향해 안타까워하는 하나님의 눈물이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무시당하는 것이 안타까와서 흘리는 눈물이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어떠합니까? 갈수록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을 가지는 양을 찾는 것이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간혹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을 가져도 말씀을 통해 위안을 받으려고만 하고 말씀에 순종하려 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무시하고 조롱하기까지 합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며 기뻐해야 할 성탄절에 예수님께는 관심이 없고 육신의 쾌락을 추구하며 깊은 타락의 늪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 시대를 바라보는 예수님의 마음이 어떠하겠습니까? 눈물이 시냇물이 아니라 강물처럼 흐르지 않겠습니까? 우리도 사명이 힘들다고 불평하며 눈물 흘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함으로 멸망의 길로 치닫고 있는 양들을 향한 상한 목자의 눈물을 회복해야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무시당하는 것에 대해 마음아파하며 안타까워하는 눈물을 회복해야 하겠습니다. 이런 눈물이 있는 곳에 생명이 살아나는 구원 역사가 일어납니다. 제가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로 사명인으로 부르심 받고 믿음으로 살게 되었지만 나 한사람 믿음 지키는 것으로 만족하고 자신의 안위에만 관심을 가지고 자기만을 위해 살고 있었음을 회개합니다. 제가 양들을 향한 상한 목자의 눈물을 회복하고 안타까운 심정으로 말씀 전하기에 힘쓰겠습니다.

II. 주의 판단은 옳으니이다(137-144)
  박해 가운데에 있는 시인의 고백이 무엇입니까? 137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주는 의로우시고 주의 판단은 옳으니이다.”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주의 판단’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판단에는 주의 판단과 사람의 판단이 있습니다. 대부분 사람의 판단이나 평가에 민감합니다. 학생들은 교수님의 평가에 민감하고 직장인은 인사권을 가진 직장 상사의 평가에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친구들이나 선배들의 판단에도 신경이 쓰입니다. 어린 아이들도 엄마 아빠의 눈치를 살핍니다. 믿음으로 산다고 하면서도 목자님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양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누군가로부터 끊임없이 판단을 받고 그 속에서 울고 웃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판단은 일관성도 없고, 믿을 수도 없습니다. 사람들의 판단은 자기중심적이고 조변석개합니다. 그런 판단 때문에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런데 주님의 판단은 어떻습니까? 주는 의로우시고 주의 판단도 옳습니다. 하지만 힘든 상황에서 이런 고백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애매하게 고난당할 때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원망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더욱 적극적으로 “주는 의로우시고 주의 판단은 옳으니이다” 고백해야 합니다. 이 고백이 나의 믿음에 있어서 흔들리지 않는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주께서 명령하신 증거들은 의로울 뿐 아니라 지극히 성실합니다(138). 믿음으로 산다고 늘 만사형통하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으로 살기 때문에 오히려 고난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변함이 없고 신뢰할만합니다(trustworthy). 고난 중에도 함께 하시고 은혜 베푸시는 하나님을 믿고 고백하는 사람이 진짜 믿음의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더 깊은 믿음의 세계로 인도하십니다. 다 함께 고백해보겠습니다. “여호와여 주는 의로우시고 주의 판단은 옳으니이다. 주께서 명령하신 증거들은 의롭고 지극히 성실하나이다.(137,138)” 이 고백이 나의 믿음의 기초가 되며,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을 신뢰하고 따르는 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시인의 열정과 사랑이 어떠했습니까? 139절을 보십시오. “내 대적들이 주의 말씀을 잊어버렸으므로 내 열정이 나를 삼켰나이다.” 이 말씀은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시69:9)” 말씀이 생각나게 합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이 무시를 당하는 것에 대해 가만히 보고 앉아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주의 말씀을 무시하는 대적들과 얼마나 열심히 싸웠든지 그 열정이 자신을 삼킬 정도였습니다. 예수님도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크게 분노하시며 채찍으로 짐승들을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바꾸는 자들의 상을 엎으심으로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을 나타셨습니다.(요2:13-16) 시인은 주님의 말씀의 순수함을 잘 알았습니다. 순수하다는 것은 금광석이 용광로에 의해 용해되어 불순물이 제거되고 순도 높은 금으로 제련되는 것과 같이 모든 불순물이 제거된 상태로서 말씀은 일점일획의 오류도 없는 순수한 진리 그 자체입니다. 시인은 미천하여 멸시를 당하지만 주의 법도를 잊지 않으려 했습니다.(141) 다른 사람이 아무리 멸시를 해도 그는 말씀대로 살고자 애를 쓰는 삶을 살았습니다. 왜냐하면 주의 의는 영원하고 주의 율법은 진리이기 때문입니다.(142) 사람은 무언가에 다스림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진리의 말씀에 다스림을 받지 않을 때 죄의 소욕에 다스림을 받게 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로서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삶을 사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진리의 말씀에 다스림을 받을 때 죄악된 세상과 구별된 진리의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고 진리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돌려드립니다.
 143절을 보십시오. 시인은 환란과 우환의 고통 중에도 하나님의 계명의 말씀을 즐거움으로 삼았습니다. 그는 주님의 증거들은 영원한 진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여기서 더 나아가 깨닫게 하사 살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깨닫는 것은 단순히 이해하는 정도가 아니고 말씀의 깊은 뜻을 깨닫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인간의 지혜와 경험으로 되지 않습니다. 성령 하나님이 하시는 영역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은 깨닫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러면 살겠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실 때 방향과 힘이 생기고 믿음이 생기게 됩니다. 말씀을 깨달을 때 영혼이 살아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게 됩니다.

III. 내가 주께 부르짖었사오니 나를 구원하소서(145-152)
 시인의 기도 생활이 어떠하며 그 동기가 무엇입니까? 145,146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내가 전심으로 부르짖었사오니 내게 응답하소서 내가 주의 교훈들을 지키리이다. 내가 주께 부르짖었사오니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주의 증거들을 지키리이다” 시인은 전심으로 부르짖으며 기도했습니다.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오로지 기도에 힘을 쏟았습니다. 시인은 주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인간의 의지와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았습니다. 기도할 때 말씀을 지킬 힘을 주시고 구원해주십니다. 그의 가장 중요하고도 간절한 기도제목은 ‘나를 구원하소서’ 구원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가장 근본문제인 죄와 죽음문제로부터 구원받지 못하면 세상에서 그 무엇도 무의미합니다. 우리가 날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나아가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함으로 구원의 은혜를 덧입기를 기도합니다. 기도를 통해 말씀을 지킬 힘을 덧입고 말씀에 순종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시인이 새벽녘에 눈을 뜬 이유가 무엇입니까? 147,148절을 보십시오. “내가 날이 밝기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주의 말씀을 조용히 읊조리려고 내가 새벽녘에 눈을 떴나이다.” 읊조린다는 것은 조용한 소리로 말씀을 읽으며 묵상한다는 의미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루 중 아침, 점심, 저녁 시간에 시간을 정해놓고 규칙적인 기도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기도와 말씀에 대한 열정으로 충만하여 도저히 아침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새벽을 깨워 하나님께 나아가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사모했습니다. 하루를 말씀으로 출발할 때 하루종일 하나님 앞에서 살게 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게 됩니다. 매일매일 이런 삶이 반복되어 쌓일 때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거룩한 산제사로 드려지게 됩니다. 제가 매일 새벽을 깨워 말씀과 기도하는 일에 힘쓰므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말씀을 읊조리며 기도하는 사람이 누리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주님이 그의 인자하심을 따라 그 기도소리를 들으십니다. 이미 가르치셨던 말씀을 따라 살아가도록 도와주십니다(149). 시인은 원수들의 위협을 받으며 쫓기고 있었습니다. 악을 따르는 자들이 바짝 뒤쫓아 와서 거의 그를 잡을만한 거리에 있었습니다. 핍박하는 자들로 인해 고난당할 때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두려움에 시달리게 됩니다. 다윗도 사울의 추적을 당하면서 ‘나와 죽음의 사이는 한 걸음 뿐이니라(삼상20:3)’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원수들이 가까이 온 것보다 더 가까이 오셔서 그의 곁에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럴 때 어떤 환란도 하나님과의 사이를 갈라놓지 못했습니다. 시인은 악인들보다 더 가까이 계시는 하나님과 깊이 교제함으로 모든 악의 유혹을 이겨냈습니다. 하나님은 아득히 먼 곳에 계신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와 가까이 계셔서 지켜주십니다. 그리고 그가 주신 모든 계명들이 진리라는 것을 드러내십니다(151). 그때 시인은 고백합니다. 152절을 보십시오. “내가 전부터 주의 증거들을 알고 있었으므로 주께서 영원히 세우신 것인 줄을 알았나이다.” 주님을 처음 만났을 때 주신 증거들, 내가 현재 붙들고 씨름하며 힘들게 지키고 있는 증거들은 주님이 영원히 세우신 것임을 알게 됩니다. 비록 천지가 없어질지라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언약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떨어지지 않고 영원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주님의 말씀은 놀라운 것이어서 그 안에는 모든 지혜와 지식과 구원의 능력이 담겨져 있습니다. 말씀을 열기만 하면 구원의 빛이 비추어 우둔한 자가 깨닫고 생명이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새해 우리가 더욱 말씀을 사랑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열어 말씀이 주는 기쁨과 은혜를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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