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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11-15 (일) 14:01
분 류 누가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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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추수감사절 특강]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2015년 추수감사절 특강                                                          이인구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말씀, 누가복음 17;11-19
요절: 누가복음 17: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심리학교수인 로버트 에몬스는 12-80살 사이의 사람들을 상대로 감사와 행복의 관계를 실험했습니다. 한 그룹에는 감사 일기를 매일 쓰도록 하고 다른 그룹에는 그냥 아무 사건이나 적도록 했습니다. 한 달 후 의미 있는 차이가 나타났습니다. 감사 일기를 쓴 사람 중 3/4은 행복지수가 높게 나타났고 수면이나 일, 운동 등에서 더 좋은 성과를 냈습니다. 그저 감사했을 뿐인데 뇌 좌측의 전전두피질을 활성화해 스트레스를 완화시켜주고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감사는 두려움을 없애고 적극적이고 열정적이고 다른 사람과 교감을 활발하게 해 마치 승리에 도취된 것과 같은 감정의 선순환을 만들어 행복지수를 높인다고 했습니다. 죤밀러는 사람이 얼마나 행복한가는 그의 감사의 깊이에 달려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둡고 혼란스러운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끊임없이 발생되는 건강문제, 취업과 결혼문제, 자녀문제, 물질문제 등 많은 문제 속에서 무엇을 감사해야 하는가 고민합니다. 감사할게 없다고 말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세상의 것들로 인해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들이기 때문에 감사하기에 한계적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통해 구원받은 신자는 부인할 수 없는 영원한 감사제목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감사가 사라진 자신을 발견하고 예수님을 통해 진정하고 영원한 기쁨과 감사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길 기도합니다.

 11,12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는데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님을 보고 멀리서서 소리를 높여 부르짖었습니다. 그들은 두 지역의 경계에 살고 있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자신들을 보호해줄 성이 있는 곳에 모여 살았지 경계지역에서 살지 않았습니다. 나병환자들이 경계지역에 있다는 것은 그들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버려진 사람들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문둥병이라 불리는 나병은 당시 치료약도 없는 감염병으로 저주받은 천형으로 간주됐습니다. 이 병은 지각상실이 특징으로 손발과 얼굴이 손상 되도 통증을 느끼지 못하므로 심각한 장애를 일으킵니다. 그것은 마치 고통도 없이 무감각하게 한 영혼을 파괴하는 죄의 속성과 비슷해 사람들은 이 병을 저주받은 천형으로 간주했습니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뿐 아니라 가족들과도 헤어져서 고립되어 살아야 했고 사람들이 가까이 오면 율법대로 얼굴을 가리고 “나는 부정합니다. 부정합니다.” 외쳐야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최소한 100보는 떨어져 돌을 던져서 맞지 않을 거리만큼 피해 있어야 했습니다. 병자들은 정상적인 사회생활 뿐 아니라 성전에도 가지 못하고 평생 죄의식과 고독과 두려움가운데 시달리며 죽음보다 못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삶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병이 발견되었을 때 이미 너무 늦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예수님 앞에서는 너무 늦은 병은 없습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입니다.
  그들은 어떤 병이라도 고치시는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것을 알았지만 율법 때문에 가까이 갈 수 없어 멀리서서 큰 소리로 부르짖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우리 몸은 추하게 썩어 들어가고 우리 영혼은 모든 사람들에게도 무시 받고 버림받아 비참히 죽어가고 있습니다. 제발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그들은 병으로 인해 성대가 손상되어 목소리도 제대로 나지 않았지만 필사적으로 예수님을 향해 부르짖었습니다. 자신들이 어떻게 이런 추악한 병에 걸리게 됐는지 알지 못하지만 아무것도 내세울 것 없는 비참한 존재임을 깊이 깨달은 그들은 믿음으로 간절하게 절박하게 소리 질렀습니다. 많은 이들이 호기심으로 구경삼아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가까이서 많은 이적을 보면서도 불신하며 떠났지만 이들은 믿음으로 자신에게 다가온 일생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자 죽기 살기로 매달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또 그들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제사장들에게 가서 너희 몸을 보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나병환자가 병이 낫게 되면 먼저 제사장에게 가서 병이 나았는지 검사를 받고 정결의식을 해야만 가족에게 돌아가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사장들에게 가서 보이라는 말씀은 너는 이제 곧 고침을 받게 되니 가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전에 자신에게 나아온 한 문둥병자를 손을 내밀어 즉시 고쳐주신 적이 있었습니다.(마8;3) 하지만 지금 10명의 병자에게는 그들의 믿음의 순종을 통해 온전하게 하시고자 하셨습니다. 믿음은 순종입니다. 마음속에, 머릿속에 있는 믿음이 순종을 통해 표현되고 믿음의 능력을 덧입게 됩니다. 믿음으로 순종할 때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만약 그들의 믿음이 이론적이었다면 결코 위험을 무릅쓰고 제사장에게 갈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단순히 믿고 순종하여 제사장에게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그러자 어떤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들이 가는 중에 놀랍게도 깨끗하게 됐습니다. 매일 괴물처럼 추해지는 얼굴을 보며 ‘나는 누구인가’ 탄식하며 본래의 자기의 아름다운 모습을 잊은지 오래됐는데 믿음으로 순종하자 어느 순간 과거의 멋있고 아름답고 개성 있는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의 능력이 그들의 믿음의 순종을 통해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순종할 수 있었지만 또한 순종을 통해 믿음이 온전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순종을 통해 기적적으로 치유된 후 반응이 달랐습니다. 15,16절을 보십시오. “그 중에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아래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10명중 오직 한 사람 유대인들이 경멸하는 사마리아 사람만이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했습니다. 죽음보다도 비참한 병에서 구원해줬는데 10명중 한명만이 감사를 표현했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예수님께서는 고침 받은 후에도 감사하러 오지 않은 9명을 찾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감사하러 온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시고 축복해주셨지만 또한 감사하러 오지 않은 9명을 심히 안타깝게 여기셔서 찾으셨습니다. 감사하지 않는다고 해서 다시 병에 걸리거나 불행이 오는 것은 아닙니다.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 의무는 아닙니다. 하지만 감사는 받은 은혜에 대한 당연한 반응이고 더 큰 은혜의 세계에 들어가는 통로입니다. 사마리아인은 신앙기초는 부족하였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양심의 기초가 살아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추하게 죽어가는 자였던가를 잊지 않았고 그런 자격 없는 자신을 불쌍히 여기고 구원해주신 예수님의 은혜를 잊지 않았습니다. 그는 치유함 받은 후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 돌렸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나아와 발아래 엎드려 감사했습니다. 이것은 한 마디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신자의 삶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입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자신이 잘되고 성공해야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님역사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처럼 자기 의와 교만으로 드리는 열심은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비록 부족하지만 사마리아인처럼 심령에서 우러나오는 감사를 기뻐하십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시50;23)
  감사하지 않을 때 죄가 시작됩니다. 하와는 모든 행복이 다 갖추어진 에덴동산에서 누릴 수 있는 엄청난 자유와 은혜를 감사하지 않고 할 수 없는 한 가지 선악과를 먹지 못하는 것을 불평할 때 불순종의 죄를 짓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할 때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짐으로 결국 하나님을 떠나는 죄에 빠지게 됩니다.(롬1;21) 자신을 지으신 하나님을 떠나는 죄에 빠질 때 그 모든 인생은 뒤틀리게 됩니다. 그러면 감사하지 않은 9명은 왜 엄청난 은혜를 받고서도 감사하지 않았을까요? 그들은 유대인들로서 감사하러 온 사마리아 인과는 달리 신앙기초도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가 그들의 변명을 다 들을 수 없지만 그 생각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 중 1번 병자는 의심이 많은 사람이라 정말 나았는지 의사와 제사장에게 확인하고 또 재발되지 않을까 죽을 때까지 지켜보다가 결국 감사하러 오지 못했는지도 모릅니다. 2번 병자는 회의론자로서 원래 내 병은 문둥병이 아니라 좀 특이한 피부병이었던 같다며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3번 병자는 내 병은 나을 때가 돼서 저절로 나았을 거라며 자연스런 우연으로 보며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4번 병자는 병 가운데 평생 불평만 하며 감사를 해 본적이 없어서 어떻게 감사할지 모른다며 오지 않았습니다. 5번 병자는 병 나은 순간 마음속으로 감사했지만 그 후 과거 문둥병가운데 받은 사람들의 무시와 상처의 기억이 떠올라 감사가 사라졌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돌을 던진 사람들에게 응분의 댓가를 치루겠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9번 환자까지 모두 감사하러 오지 않았습니다. 이들이 왜 감사하지 않았는가 나름대로 이유는 있었겠지만 감사하지 않았을 때 더 큰 축복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미국의 캐리 슉(Kerry Shook)목사님은 자신의 책(내 생애 마지막 한달)에서 열 명의 나병환자 이야기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열 사람 모두가 선물을 받았지만 오직 한 사람만이 포장지를 벗겨서 진짜 선물이 무엇인지를 확인했다.’
  예수님께서는 감사하러 온 사마리아인을 크게 축복하셨습니다.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19)”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단지 육신의 질병의 치유가 아니었습니다. 육신의 질병의 치유를 통해 예수님께 받은 사랑과 감사의 관계성을 통해 더 좋은 것, 영혼의 구원을 주시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사마리아와 갈릴리사이를 지나는 것은 예루살렘으로 가시기 위해서입니다. 예루살렘에서 모든 영적인 문둥병자 같은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입니다. 사마리아인은 감사함으로 값없는 십자가의 구원의 은혜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통해 이루신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또 감사함으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 얻을 수 있습니다. 감사는 하나님께서, 예수님께서 이루신 은혜의 역사에 공감하는 것이고 또 영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놀라운 구원역사를 감사함으로 동참할 수 있고 축복을 나눠 가질 수 있습니다. 감사는 과거의 죄의 상처를 치료해줍니다. 신자가 믿음으로 구원받았다 해도 과거 죄 가운데 받은 상처의 흔적은 수시로 재발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의 은혜를 깊이 감사하면 내가 준 죄의 상처나 내가 받은 죄의 상처가 (햇빛에) 눈 녹듯이 사라집니다. 감사하는 자는 절대 타락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감사를 통해 예수님과의 영적관계성이 맺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고 나의 아버지가 되어주셔서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은 말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모든 일에 감사할 수 있습니까? 신자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받았습니다. 하지만 구원받은 후 천국이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몰랐던 영적세계와 사단의 어둠을 깨닫게 됩니다. 또 세상의 십자가에 사명의 십자가가 더해집니다. 죄악된 세상과 거스려 좁은 길을 가야 하는 신자의 삶속에서 오히려 더 많은 고난과 어려움이 닥쳐옵니다. 어떻게 감사할 수 있습니까?
  나병은 병균으로 인해 감각이 사라지기 때문에 위험합니다. 몸에 이상이 나타날 때 통증을 느껴야 빨리 치료할 수 있는데 통증을 느끼지 못하므로 결국 세포가 죽을 때까지 깨닫지 못합니다. 해로운 반응에 통증을 느끼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이처럼 인생에서 고난당하는 것은 영적으로 큰 유익이요 감사제목입니다. 죄악된 세상에서 내가 영적으로 살아있기 때문에 고난을 당하고 고통을 느끼는 것입니다. 죄 가운데 영적생명의 위기에도 아무런 고통이나 갈등 없이 행복하다면 그것이 정말 위기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세상의 고난 속에서 오히려 감사할 수 있습니다. 또 예수님을 통해 영혼을 구원받은 신자는 이미 승리가 보장된 싸움을 하기 때문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현재 고난당한다 해도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을 믿을 때 오히려 고난 속에서 감사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크게 쓰시고자 하는 사람을 독수리 날개 업어 훈련하시고 연단하십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살았는데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고난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시고자 하는 증거요 오히려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신자는 현실의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 눈에 보이는 현실만을 바라보지 않고 세상을 선한 뜻 가운데 주관하시고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을 바라볼 때 감사할 수 있습니다.
  본래 추수감사절은 북미대륙을 개척한 청교도들로부터 유래합니다. 그들은 영국에서 신앙의 자유를 찾아 미지의 북미대륙으로 온 경건한 신앙인들이었습니다.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102명의 청교도들이 영국에서 출발해 미지의 땅 미국으로 건너왔지만 도착한 후 말할 수 없는 많은 난관에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11월 중순에 도착한 그들은 강풍과 눈보라치는 혹독한 추위, 질병과 식량부족, 원주민들의 냉대, 들짐승들의 위협 속에서 거할 집하나 없는 절박한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그 해 겨울 102명중 절반이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50명의 생존자도 질병과 굶주림 속에서 힘들었지만 엄동설한이 지나 봄이 오자 믿음으로 땅을 개간하고 씨를 뿌렸습니다. 그러자 그해 가을 기대 이상의 넘치는 추수를 하게 됐고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눈물로 감사했습니다. ‘울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시126;6)’ 그리고 다음해 하나님께 첫 추수감사절 예배를 드렸습니다. 추수한 곡식들과 채소들 중 가장 좋은 것과 처음 익을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면서 엄동설한에 황무지에서 살아남은 것, 신앙의 자유를 허락하여 주신 것, 미 대륙 개척자들로 삼아주신것 등을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들의 감사를 통해 하나님께선 그들과 함께 하시며 그들을 세상의 제사장 나라로 세워주시고 지금까지 외적 내적의 엄청난 축복을 주셨습니다.
  최근 첫째 아이가 중3이 되면서 아이가 받는 스트레스가 나에게도 다가오는 것 같았습니다. 북한군도 무서워한다는 중2를 넘겼지만 중요한 시기에 아직도 사춘기의 반항심으로 말을 듣지 않아 더욱 부딪히게 됐습니다. 직장에서도 직원과 환자문제는 항상 부담이 되었고 더구나 열심히 연습했던 오케스트라공연에서 몇 번 실수를 하면서 더욱 스트레스를 받게 됐습니다. 건강을 위해 해왔던 탁구도 실력이 정체되어 나보다 못했던 상대에게 패배를 당하자 더 큰 스트레스를 받아 내면가운데 불평, 불만이 가득하게 됐습니다. 그런 중에 말씀을 준비하면서 그동안 자신이 감사가 부족했음을 깨닫게 됐습니다. 과거 문둥병보다 심한 교통사고의 위기 속에서 육신을 구원받고 또 감사함 가운데 예수님을 영접하게 하심으로 영혼까지 구원받아 새 인생을 살게 됐습니다. 병으로 힘들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무사히 졸업하고 평신도로 하나님영광을 위해 살면서 병원을 개업하며 가정교회를 이루고 영육간의 자녀들을 낳고 키우는 축복된 인생을 살게 됐습니다. 무엇보다도 목자로써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맡아 생명구원역사가운데 쓰임 받게 하셨습니다. 감사함의 심정으로 다시 세상을 보니 평신도로 살면서 평생 양인 자녀를 양육하는 것도 큰 축복이고 늦은 나이에 악기로 찬양하며 탁구로 동역자들과 기쁨을 나누는 것도 큰 축복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자격 없는 자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것은 더욱 큰 축복이었습니다. 제가 항상 감사함으로 받은 축복을 누리고 나눠주는 자가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십자가 없는 기독교를 생각할 수 없듯이 감사 없는 기독교도 생각할 수 없습니다.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참된 신자라 할 수 없습니다. 범사에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아직도 하나님의 사랑의 넓이와 깊이와 폭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마르틴 루터는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선한 사람은 있는 것을 생각하고 감사하고, 악인은 없는 것을 생각하고 불평한다.” 많은 신자들이 받은 과분한 은혜를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당연히 감사할 상황에서도 감사하는 것을 잊고 삽니다. 우리가 받은 많은 은혜를 잊고 감사하지 않는 것은 부끄러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없는 것만 자꾸 찾아서 불평하는 사람은 믿음도 자라지 않고 자꾸 삶에 문제만 생겨납니다. 행복하게 살려면 감사를 연습하고 훈련해야 합니다. 감사가 행복해지는 습관이라면 불평은 불행해지는 습관입니다. 세상에 불행해지기 위해 훈련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행복해지기 위해 감사가 습관화되도록 훈련해야 합니다. 우리의 감사는 그저 막연한 것일 때가 많습니다. 감사의 표현은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혼자 속으로 고맙다고 생각하지 말고 감사하면 감사하다고 표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은혜를 입고도 감사를 표현하지 않는 자들을 책망하셨습니다. 말과 찬양으로 표현하고 행동과 물질로도 표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기도와 일용할 양식을 통해 또 매주 소감과 헌금과 섬김을 통해 감사를 표현할 수 있습니다. 감사는 건강할 때 인생이 잘 풀릴 때만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을 깨달은 자는 실로 모든 것이 감사의 조건이 됩니다. 보통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복에 감사합니다. 건강, 물질, 명예, 자녀 등 하나님께서 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합니다. 무엇을 주실 때만 감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복 보다 더 큰 감사제목은 하나님이십니다. 감사중의 감사는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셔서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나라가 강대국들의 침략가운데 풍전등화의 상황 속에서 고민하던 하박국 선지자는 놀라운 사실을 깨닫고 감사하게 됐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하박국3;17-19)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창조하시고 심히 기뻐하셨습니다. 인간이 죄 가운데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었지만 그런 인간을 사랑하셔서 구원하시기 위해 연약한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셔서 그들의 죄 사함을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믿음으로 영접한 모든 이들과 함께 하시고자 성령으로 다시 오셔서 영원히 함께 하시며 끝까지 거룩한 천성 길을 가도록 인도하시고 도와주십니다. 이 하나님을 바라볼 때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세상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지 않고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감사가 넘치는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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