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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휴화산
작성일 2012-07-18 (수) 21:28
분 류 요한복음
첨부#1 주제강의_4강(최동진).hwp (25KB) (Down:149)
ㆍ추천: 0  ㆍ조회: 2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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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여름수양회 주제4강]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2012년 여름수양회 주제 4강                                   최동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말씀: 요한복음 21:1-17
요절: 요한복음 21: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은혜로운 여름 수양회도 벌써 끝나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수양회 기간 동안 풍성한 말씀의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십자가에서 모진 고통을 당하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 값을 대신 치루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 앞에 무릎 꿇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나의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고백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새 생명을 덧입고 새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제 캠퍼스와 직장으로 돌아가면 나를 위해 목숨까지 내어주신 예수님을 위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아직 뭔가 부족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이곳을 떠나기 전에 한사람 한사람과 깊은 사랑의 관계성을 맺기를 원하십니다. 디베랴 바닷가에 베드로와 제자들을 심방오셨던 예수님께서 지금 이 자리에 오셔서 우리를 만나주고자 하십니다.  이 시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예수님의 사랑을 심령깊이 영접하고 예수님께 진실된 사랑고백을 드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 와서 조반을 먹으라(1-14)
 부활하신 예수님은 디베랴 호숫가로 제자들을 심방오셨습니다. 디베랴 호수는 제자들에게 있어서 아주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처음 만난 첫사랑의 추억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처음 부르셨을 때 베드로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예수님과 함께한 지난 3년은 인생의 가장 행복한 기간이었습니다. 동기 어부들이 돈을 많이 벌어 외제 배를 사서  물고기 잡으러 다닐 때 베드로는 버스와 전철을 타고 발이 부르트도록 걸어서 캠퍼스로 피싱 다니면서도 자신의 BMW-Bus Metro Walking을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남들이 골프 칠 때 베드로는 양을 쳤고, 하늘나라에 예비 된 맨션을 생각하면 타워팰리스도 부럽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하면서 인생의 새로운 비전과 희망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인기가 올라가면서 인생역전의 꿈도 함께 자라났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면서 그들의 꿈은 산산 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지난 3년간의 풀타임 목자생활은 헛수고처럼 보였습니다. 게다가 베드로는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깊은 실의와 절망에 빠졌습니다. 헌신적으로 섬겨주던 풀타임 자매님들의 시선도 예전 같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계실 때는 늘 밝은 얼굴로 맞이해주고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 정성스럽게 아침식사를 차려주고 토요 미팅 후에는 패밀리 레스토랑에서나 먹음직한 특식으로 섬겨주더니 이제는 식사시간이 되어도 밥먹으란 소리도 하지 않았습니다. 배신자를 섬겨줄 자매님이 있을 리가 없었습니다. 냉혹한 현실을 생각할 때 언제까지나 앉아서 괴로워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당장 먹고 사는 문제부터 해결해야 했습니다.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은 함께 모여 비상대책회의를 열었습니다.
“나는 물고기나 잡으러 가야겠어.” 베드로가 말하자 다른 제자들도 “우리도 함께 가세”하며 따라 나섰습니다.
버려두었던 배와 그물을 정비하고 다시 갈릴리 호수에 배를 띄웠습니다. 그리고 밤새도록 열심히 그물을 던졌습니다. 그런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밤에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물고기도 아무나 잡을 수 있는게 아닙니다. 물고기를 잡는 데에도 스피릿이 필요합니다. 목자생활 실패하고 물고기나 잡아야겠다는 마음으로 던진 그물에 걸려들 고기는 없었습니다. 그 밤에 제자들은 물고기들에게조차 무시당하는 굴욕을 맛보았습니다. 무엇보다도 그곳은 제자들이 있을 곳이 아니었습니다. 부활의 스피릿으로 복음을 전하며 사람 낚는 어부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제자들이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 물고기나 잡고 있으니 일이 잘 될 리가 없었습니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5b)"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밤이 깊어갈수록 제자들의 내면도 점점 더 깊은 어둠과 절망 속으로 빠져들어갔습니다.

 어느새 날은 새어가고 있었습니다. 날이 새어간다는 것은 더 이상 고기를 잡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베드로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좇았지만  현재의 모습은 예수님의 제자로서나 어부로서 모두 실패였습니다. 베드로의 인생도 완전히 날 샌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편에서 볼 때에는 희망의 새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약속하신대로 갈릴리로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새벽바람을 맞으며 디베랴 바닷가에 서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시고 뭐라고 하셨습니까?  “이 배신자들아 아직도 정신 못차렸느냐? 나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거라고 분명히 말했지!"  하셨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자애로운 눈빛으로 제자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얘들아! Friend!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예수님은 변함없이 친근한 친구의 모습으로 찾아오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빈 그물로 인해 어두운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보니 부활의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찾아오신 예수님을 알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없나이다.” 힘없이 대답하였습니다. 이 대답 속에는 인생의 실패로 인한 허탈과 절망감이 묻어 있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들에게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순종하여 그물을 내렸을 때 그물을 들 수 없을 만큼 많은 고기를 잡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세어보니 153마리나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3년전 처음 만났을 때와 동일한 모습으로 제자들을 도와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많은 고기를 잡도록 하심으로 실패의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새 인생을 출발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바로 그 때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 요한이 외쳤습니다. “주님이시다!” 이 말을 들은 베드로는 얼른 겉옷을 입고 물속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보통은 옷을 입고 있다가도 물에 들어갈 때에는 옷을 벗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반대로 옷을 벗고 있다가 겉옷을 입고 물속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이런 베드로의 행동은 누가 봐도 상식 밖입니다. 이는 베드로가 무의식 가운데서도 예수님을 얼마나 깊이 사랑하고 존경하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베드로는 빨리 예수님을 만나고 싶은 일념으로 부지런히 헤엄쳤습니다. 제자들이 있던 곳과 육지까지의 거리는 50칸, 약 90m 정도 되었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거리가 그리 멀지 않음으로 작은 배를 타고 고기든 그물을 끌고 왔습니다. 그들이 육지에 올라와 보니 숯불이 발갛게 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도 숯불과 같이 발갛게 타올랐습니다. 그 숯불 위에는 생선이 지글지글 타고 있었으며 떡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배고프고 지친 제자들을 위해 친히 아침 식사를 요리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돌아가시기 전 종의 모습으로 죄인들을 섬기셨습니다.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왕으로서 모든 인생들로부터 존귀와 영광을 받으셔야 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종과 같이 제자들을 위하여 친히 아침식사를 요리하셨습니다. 육지에 올라온 제자들은 너무나 죄송하고 면목이 없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나아오기는 했지만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던 일이 생각나 더 이상 다가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냥 쭈그리고 앉아서 물고기만 세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더 이상 수제자라고 할 수도 없었습니다. 사도회 멤버에서 제명시키는 것이 마땅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최소한 눈빛 레이저라도 한 번 쏴줘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의 허물과 실수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그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자애로운 어머니처럼 친히 아침 식사를 요리하시고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며 아름다운 비치파티에 초청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떡과 고기를 제자들의 입에 일일이 넣어주셨습니다.  목이 메여서 떡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사랑에 감격하여 그저 하염없이 눈물만 흘릴 뿐이었습니다. 제자들의 내면에 있는 어두움과 패배의식, 절망감, 죄의식이 물러가고  예수님의 사랑이 아침 햇살처럼 임했습니다. 세상 모든 것이 다 변한다 하여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이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사랑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이렇게 사랑하실 수 있었던 것은 이미 십자가에서 제자들의 모든 실수와 죄를 감당하시고 용서하셨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바로 그분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주님이시오, 영광스러운 왕이 되신 분이심을 알았습니다. 어저께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자기들을 사랑하고 계시는 사랑의 주님이심을 알았습니다. 허물많은 제자들을 용서하시고 영접하시고 섬겨주시는 예수님의 변함없으신 사랑에 감사와 찬송을 돌려드립니다.

II.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15-17)
 베드로를 다시 만난 예수님은 할 말이 많으셨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어떻게 네가 나를 세 번이나 부인할 수 있었단 말이냐?” “이제 정말 사명을 떠나서 물고기나 잡으면서 살 작정이냐?” 질문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15a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물으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왜 이렇게 물으셨을까요?

첫째로, 예수님은 베드로와 먼저 사랑의 관계성을 회복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마지막 유월절 만찬 자리에서 베드로는 “내가 주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겠나이다(요13:37)” 큰소리 쳤습니다. 그는 정말로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다분히 수제자로서의 책임감과 의리에 기초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기는 했지만 자기의 목숨보다 더 사랑하지는 못했습니다. 결국 그는 예수님의 수난 기간에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부르십니다. 시몬은 베드로가 부르심 받기 전의 이름입니다. 수제자로서의 타이틀을 내려놓고 연약한 자연인의 상태에서 진실되고 인격적인 대답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이 질문 속에는 베드로를 향한 예수님의 변함없는 사랑이 담겨져 있습니다. 나와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질문하지는 않습니다. 길에 지나가다가 아무나 붙들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질문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는 질문은 정말로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할 수 있는 질문입니다.  제가 이 질문을 할 수 있는 대상은 한 사람 뿐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가는 큰일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사랑하셨습니다. 사랑하시되 십자가에서 목숨을 내어주시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을 때에나, 사명을 버리고 물고기 잡으러 갔을 때에나 여전히 변함없이 베드로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베드로가 예수님의 질문에 대해 진실된 사랑고백으로 응답해주기를 원하셨습니다.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예수님의 이 질문은 참으로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었습니다. 베드로는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직장도 버리고 가정과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그러나 다른 것들도 사랑했습니다.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있던 자신의 꿈을 버리지는 못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베드로를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따르면서도 남몰래 가슴 속 깊이 간직하고 있는 꿈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 안에서 인생의 회복을 꿈꾸며 살아갑니다. 돈을 많이 벌어서 무너진 집안을 다시 일으킬 꿈을 꾸기도 하고, 교수가 되어 학문적으로 큰 업적을 내고자 하는 꿈을 꾸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장차 수많은 양떼를 거느린 위대한 목자가 되리라는 꿈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래도 이런 꿈은 조금 고상해 보입니다. 복음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우리가 진심을 드려 사랑할만한 대상이 되지는 못합니다. 이런 꿈을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는 한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물으시는 예수님의 질문에 대해 순수하고 진실된 애정고백을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다른 제자들이나, 물고기나 배나 다른 어떤 것보다도 예수님을 더 사랑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이나 반복해서 질문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처음 두 번은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자기의 진심을 몰라주시는 예수님께 서운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세 번째 질문하셨을 때 마음에 근심이 생겼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 앞에서 자신에 대해 깊이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으로부터 예수님께 대한 사랑과 진심을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과거 자기 확신에 기초하여 예수님을 사랑했을 때 그는 철저히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의 무조건적이고 변함없으신 사랑에 비해 자신은 얼마나 부족하고 연약한 자인가 깊이 발견하였을 때 그는 “내가 주를 사랑합니다” 확신 있게 말할 수 없었습니다. 대신에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주님께서 내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마음을 다 아십니다. 베드로가 얼마나 예수님을 사랑하는지 느끼고 계십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이 베드로를 사랑한만큼 베드로도 예수님을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진실된 사랑의 관계성을 맺기를 원하십니다. 그럴러면 반드시 사랑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이제 베드로는 자기 확신이 아닌 예수님의 사랑에 기초해서 사랑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은 비치파티를 통해 주님의 변함없으신 사랑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예수님의 사랑을 영접했을 때 마음에 모든 슬픔과 운명이 사라졌습니다. 장래에 대한 염려와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그 대신 하늘나라의 기쁨과 평화가 그의 심령에 강같이 흘렀습니다. 그가 예수님의 사랑을 영접했을 때 그의 모든 인생문제가 순식간에 해결되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려면 먼저 십자가에서 나의 모든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부활하신 후에도 변함없이 사랑해 주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심령 깊이 영접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내 마음속에 살아 있을 때 비로소 주님을 위하여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방향과 힘과 용기를 얻게 됩니다. 주님은 이 시간 나와 인격적이고도 깊은 사랑의 관계성을 맺기 원하십니다. 그리고 질문하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또한 주님은 나의 진실된 사랑고백을 원하십니다.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우리도 이 시간 주님의 질문에 자기 이름을 넣어서 질문하고 사랑고백을 해보겠습니다. “○○○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둘째로, 예수님은 베드로를 예수님의 양무리들의 목자로 세우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실 때마다 동시에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 번이나 같은 질문을 반복하신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습니다. 베드로가 과거 죽는 데까지 예수님을 따라가겠다고 고백했을 때에는 그에게 양을 맡기실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예수님께 겸손히 진실된 사랑 고백을 하였을 때 그를 양무리들의 목자로 세우시고 예수님의 피의 값으로 산 예수님의 양들을 맡겨주셨습니다. 사랑은 사명을 감당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 됩니다. 사랑은 표현하는 만큼 느낄 수 있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모두 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베드로는 예수님의 양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모든 허물과 약점을 감당해주셨습니다. 그는 예수님께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베드로가 예수님의 뒤를 이어 예수님의 양무리를 먹이는 선한 목자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대한 사랑을 구체적으로 나타내는 길은 예수님의 양을 돌보는 것입니다.  영육간에 굶주린 자들을 먹이고, 상처받은 자를 싸매주며, 실패로 인한 깊은 절망에 빠져 있는 자들에게 힘과 위로를 주며 다시 일어서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죄와 죽음의 권세아래 신음하며 고통하는 자들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죄사함 받고 영생을 얻기까지 섬겨야 합니다. 예수님의 양을 먹이는 목자의 삶은 희생과 아픔이 따릅니다. 그러나 이는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고 아름다운 삶입니다.

 하나님은 과거 열심히 자기만을 위해 살던 저를 캠퍼스 시절 찾아오사 예수님의 제자로 삼아주시고 사람 낚는 어부의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학창시절 경희 의대와 음대 양들을 말씀으로 먹이게 하시고 현재는 가대 캠퍼스 책임 목자로까지 세워주셨습니다. 지난 10년간 줄기차게 가대 캠퍼스를 심방하며 말씀과 기도의 씨를 뿌리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캠퍼스에 나아가는 것이 힘들고 부담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주님 역사를 위해 시간과 물질과 진심을 드렸지만 손에 잡히는 열매는 없었습니다.  갈수록 의료 환경은 나빠지고 개원가의 경쟁이 심해지면서 병원 경영에도 점점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저의 인생은 예수님의 제자로서나 개업의로서나 완전히 실패한 것 같았습니다. 장래 문제를 놓고 간절히 기도하였을 때 작년 여름에 회기역에서 5분 거리에 있는 현재의 장소로 이전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셨습니다. 아무도 관심두지 않는 자리였지만 순종하여 이전하였을 때 첫 달부터 많은 환자를 보내주심으로 실패를 만회시켜 주셨습니다. 때때로 점심시간에도 캠퍼스에 나아가 양을 만나기도 하면서 어느 때보다 행복한 목자생활을 하였습니다. 양들과 주님 역사를 섬기며 분주한 생활을 하면서 저는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자라고 자부하였습니다. 그런데 10년 넘게 공들여 섬기던 양이 떠나면서 의욕을 잃어버렸습니다. 캠퍼스에 나가 봐도 반겨주는 사람은 없고 목자를 무시하고 말씀에 반발하는 양들로 인해 마음이 상했습니다. 매번 캠퍼스에 나갔다가 힘든 현실만 확인한 채 빈 그물만 가지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힘이 빠지고 마음이 어두워졌습니다. 반면 나를 반겨주고 찾아와 주는 환자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밝아지고 위안이 되었습니다. 손 등에 뽀로로나 로보카 폴리 도장만 찍어줘도 울다가 활짝 웃으면서 90도로 배꼽 인사를 하고 ‘사랑해요’ 하면서 행복해 하는 어린 아이들을 보면 저도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의 은혜와 함께 많은 축복을 받았지만 감사할 줄 모르고 사명이 힘들다고 불평하며 사랑고백에 인색한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고생스럽게 캠퍼스에서 양들과 부딪치기보다 시니어 목자로서 적당히 체면 유지할 정도로 역사 섬기면서 편안하고 품위 있게 살고 싶은 마음이 많았습니다. 그럴 때 주님을 위해 순수하게 자신을 드리지 못하였습니다. 이런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면 목자라고 불리우는 것조차도 부끄러워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의 이런 허물과 죄악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여전히 저를 사랑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제가 서울의 갈릴리 냄새나는 중랑천 옆에 있는 병원 진료실에 쭈그리고 앉아서 아기들 코딱지나 파주고 환자 수나 세면서 적당히 살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죄악 되고 허물 많은 저를 통해 이 시대 캠퍼스 양무리들을 먹이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저에게도 찾아오셔서 질문하십니다.  “동진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제가 주님을 믿고 따른다고 하면서도 세상을 사랑하고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만족을 구하며 적당히 살고자 하였음을 회개합니다.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제가 날마다 예수님께서 먼저 보여주신 사랑에 기초하여 예수님께 진실된 사랑고백을 드림으로 주님과 깊은 사랑의 관계성을 회복하고 그 사랑에 기초하여 주님이 맡겨주신 어린 양을 먹이는 목자의 사명을 힘써 감당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이 시간 우리 각자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내 어린 양을 먹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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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0 로마서 [2015년 가을 준비 특강 제4강] 거룩한 산 제물 관리자 2015-09-06 2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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