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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2-02-06 (일) 14:33
분 류 민수기
첨부#1 2022년_민수기_제13강-1.hwp (34KB) (Down: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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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민수기 제13강 ]발람을 통해 이스라엘을 축복하신 하나님
2022년 민수기 제13강                                                         이 인구

       발람을 통해 이스라엘을 축복하신 하나님
말씀/민수기 22-24장
요절/ 민23;19,20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내가 축복할 것을 받았으니 그가 주신 축복을 내가 돌이키지 않으리라.”

  민수기의 핵심적인 두 장소(hot place)는 시내산과 모압평지입니다. 시내산에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율법을 받고 하나님의 군사로 정비돼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한 광야행진을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불신으로 38년을 광야에서 방황하며 연단받은 후 출애굽2세들이 마침내 가나안땅 요단강건너 모압평지에 도착했습니다. 모압평지에서 이스라엘은 가나안 정복을 위한 2차인구조사와 군대를 재정비하며 가나안 입성을 준비하였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이스라엘이 전혀 깨닫지 못하는 사이 이스라엘을 무너뜨리려는 외부의 세력이 등장해 엄청난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놀라운 권능의 손길로 택한 백성들을 보호하시며 섭리의 역사를 이루어 나가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택한 백성들을 지키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권능의 역사를 배울 수 있길 기도합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아모리 남왕국 시혼과 북왕국 옥과 전쟁해 모든 성읍을 완전 초토화시킨 후 모압평지에 진을 치자 모압의 왕 발락이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멸망당한 아모리왕 시혼은 이전에 모압을 침략해 영토를 빼앗은 강력한 왕이었는데 이스라엘은 이런 왕들을 물리치고 모압의 코앞인 모압평지에 진을 친 것입니다. 오래전 애굽을 탈출 후 광야에서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는 부랑족속인줄 알았는데 60만 대군의 200만명의 백성들이 마치 소가 밭의 풀을 뜯어먹을 것 같이 자신의 땅 사방에 있는 것을 다 뜯어 먹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사실 이스라엘의 목표는 모압땅이 아닌 가나안이었습니다. 모압땅은 하나님이 롯 자손에게 기업으로 주신 땅입니다.(신2;9) 만약 발락이 그들의 조상 롯과 아브라함과의 관계를 알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다면 오히려 이스라엘이 자신의 땅을 빼앗은 원수 아모리를 정복한 것을 감사하며 하나님 안에서 형제의 나라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과거 아브라함은 조카 롯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집을 떠난 후 롯이 위험에 빠지자 목숨 걸고 전쟁까지 할 정도로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모압족속은 조상 롯의 신앙을 버리고 우상숭배에 빠짐으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원수처럼 미워하며 두려워했습니다. 모압왕 발락은 두려움 속에서 이웃 미디안의 장로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그들은 동맹해 이스라엘과 맞서기 당시 가장 용하다가 이름난 복술가(무당) 발람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모압장로들과 미디안 장로들이 손에 복채를 들고 640km나 떨어진 (메소포타미아의 브돌에 사는)발람을 데리러 왔습니다.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 그대가 복을 비는 자는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줄을 내가 아노라” 당시 가나안 원주민들은 나름대로의 지방 신들을 숭배하고 있었으나 자신들의 신이 절대적 존재라거나 유일한 신이라는 의식은 없었습니다. 그들은 다른 족속들의 신을 인정했으며 복술가 발람은 하나님의 존재를 알았지만 주로 섬기고 따를만한 믿음은 없었습니다.
  모압과 미디안 장로들의 요청에 발람은 하나님께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발람에게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 그들은 복을 받은 자들이니라.” 분명하게 방향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발람이 비록 이방의 사악한 복술가지만 그에게 초월적으로 강림하셔서 그의 비뚤어진 인격과 계획을 바로 잡고자 하셨습니다. 그것은 택한 백성 이스라엘을 보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인격을 주관하셔서 당신의 거룩한 뜻을 성취해 가십니다. 발람은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에 복채가 아깝지만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신다며 장로들을 돌려보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복을 받은 자들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모압왕 발락은 발람의 숨은 뜻을 깨닫고 더 높은 고관들을 보내며 더 좋은 조건 즉 원하는 데로 해주겠다는 백지수표로 유혹했습니다. 발람은 고관들이 들고 온 백지수표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말했습니다. “발락이 그 집에 가득한 은금을 내게 줄지라도 내가 능히 여호와 내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 덜하거나 더하지 못할 것같은데 어쩌지?”(18) 그러면서 자기 집에 하루 유숙하게 하며 하나님께 물어보겠다고 했습니다. 만약 발람이 조금이라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의지가 있었다면 즉시 장로들을 돌려보냈을 것입니다. 발람의 수법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최대한 얻기 위한 고도의 협상기술이요 밀당수법이었습니다. 그는 수많은 거짓과 우상들이 범람하는 세상에서 살아남은 최고 일인자다운 밀당의 고수였습니다. 발람이 하나님께 묻는다면서 하나님께 나왔지만 이미 그의 마음은 자기 집에 가득 채울 은금을 얻기 위해 어찌하든지 하나님을 설득해 이스라엘을 저주할 심보였습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하나님은 물질에 대한 탐심으로 불타오르는 발람에게 가도록 허락하셨습니다. “함께 가라 그러나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준행할지니라.” 발람은 자신이 바라는 답이라 확신하며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나귀를 타고 모압고관들과 떠났습니다.
  그런데 발람이 떠나자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며 여호와의 사자를 보냈습니다. 지난밤 가도록 허락하신 하나님께서 왜 아침에 마음을 바꾸신 것입니까? 가끔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방향이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내 뜻과 세상적 관점이 아닌 하나님 편에서 볼 때 그 깊고 원대하신 뜻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택한 백성 이스라엘을 저주하지 말 것과 가려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만 하도록 분명히 경고하셨습니다. 만약 발람이 모압 땅에 간다 해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다면 저주가 아니라 축복해야 했고 그러면 은금은 커녕 오히려 모압왕의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발람이 일찍부터 떠난 것은 결국 자신의 탐욕대로 은금을 얻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해 이스라엘을 저주하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칼빈은 이 상황을 해석했습니다. “하나님의 허락은 풍자적이다. 하나님께서 기뻐해서 허락하신 것이 아니라 발람이 하나님의 뜻을 거듭 거역하고 가기를 소원했기 때문에 그의 자유의지에 따라 거역하는 것을 방임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발람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자유의지로 가지 않기를 바라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도 죄를 짓고야 말겠다는 인간의 강한 의지를 강제적으로 꺾지 않으십니다. 자유의지로 하나님을 떠날 수도 있지만 하나님은 자유의지로 하나님의 주신 축복을 감사하며 기쁨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원하십니다. 택한 백성들과 함께 하시며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시지만 신자들이 자유의지로 계속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을 거부한다면 스스로 자각하고 돌아올 때까지 그냥 놔두실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시며 다시 돌이키길 기다리시는 것이고 오래 참는 사랑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오래 참는 사랑도 무시하고 끝까지 죄에서 돌이키지 않는다면 결국 하나님은 마음의 정욕대로 내버려 두실 수밖에 없습니다.(롬1;24) 하나님께서 간섭하지 않는 인생은 세상에서 어떻게 나타나든지 결국은 멸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의 죄를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간섭하시고 책망하시는 것을 오히려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발람의 악한 의지를 강제적으로 꺾지 않으셨지만 그렇다고 그냥 멸망 길을 가도록 방치하지 않으셨습니다.
  발람이 은금의 푯대를 향하여 콧노래를 부르며 나귀를 타고 가는데 여호와의 사자가 칼을 들고 그 앞을 막아섰습니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무당 발람과 오래 함께 했던 나귀는 여호와의 사자를 보고 놀라서 길에서 벗어나 밭으로 들어갔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양쪽에 담이 있는 포도원사이 좁은 길에 섰을 때 나귀는 피하기 위해 옆쪽 담에 몸을 대면서 발람의 발을 짓누르게 됐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더 나오자 나귀는 피할 곳이 없어 주저앉아버렸습니다. 그런데 발람은 나귀도 보는 여호와의 사자를 보지 못하고 자기 발에 상처낸 나귀에게 채찍질하다 주저앉아버리자 지팡이로 때리기까지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나귀의 입을 여셨고 나귀는 왜 3번이나 날 때리는지 항변했습니다. 나귀가 말하는 것도 놀랍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흥분한 발람이 자기 말을 듣지 않는다며 말하는 나귀를 죽이겠다고 엄포하는 것입니다. 말하는 나귀를 죽이려는 발람의 이야기가 믿겨지지 않는다는 분들도 있지만 사실 귀신들린 자와 중풍병자를 고치고 죽은 사람까지 살리신 예수님을 자기 뜻과 맞지 않는다고 결국 죽인 자들이 거짓된 종교지도자들이었습니다. 믿음을 잃을 때 탐욕과 분노에 사로잡힙니다. 하나님이 탐욕에 가득한 발람의 눈을 밝히신 후에야 발람은 자신 앞에서 칼을 들고 있는 여호와의 사자를 볼 수 있었습니다. 나귀가 발람의 요구대로 직진했다면 발람은 여호와의 사자의 칼에 죽었을 것입니다. 발람은 이제야 자신의 죄악된 길을 막으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말할지니라.” 다시 한번 엄히 경고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발람을 깨우쳐주시기 위해 속담에도 어리석고 바보스러운 짐승으로 등장하는 나귀를 이용하셨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고전1;27) 우리는 발람처럼 탐욕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길에서 벗어나지 않는가, 늘 자신을 살펴봐야 합니다. 말하는 나귀를 통해 발람의 잘못된길을 막으시는 것처럼 하나님은 종종 신자의 주변에 힘들게 하는 사람이나 질병이나 불의의 사고를 통해 잘못된 길을 막으십니다. 길을 가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때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앞에 회개하지만 어리석은 자는 돌부리를 걷어차며 죄악된 욕심대로 돌진합니다. 우리는 삶속에서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발생할 때 영적인 위험을 알리는 하나님의 신호가 아닌가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성경말씀을 통해 (또 기도가운데) 세미하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시끄러운 세상일속에서도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그 음성을 무시하지 말고 자신을 돌아보며 회개하고 생명의 길로 돌이켜야 합니다.
  발락은 드디어 발람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모압 국경지대 끝 성읍까지 나가서 그를 영접했습니다. 하지만 말하는 나귀와 칼든 여호와의 사자를 통해 생생한 시청각교육을 받은 발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만 전하겠다 분명히 선언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발람의 3번의 예언을 통해 이스라엘을 축복하시며 하나님의 원대한 섭리를 보여주셨습니다.
1, 첫 번째 발람의 예언
  다음날 발락은 이스라엘 백성의 진 끝까지 보이는 바알의 산당으로 인도해 이스라엘을 저주하도록 했습니다. 발람은 제단 일곱을 쌓고 수송아지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를 준비 했습니다. 발람이 사용한 7은 하나님의 창조에 근거한 ‘완전’이나 ‘거룩’을 상징하는 수가 아닙니다. 이것은 당시 바벨론 사람들이 신성하게 여긴 숫자로 이방의 풍습을 따라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단은 영과 진리로 쌓는 하나면 족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발람의 부족한 제사가운데서도 임재하셔서 당신의 뜻을 보여주셨습니다. “내가 바위 위에서 그들을 보며 작은 산에서 그들을 바라보니 이 백성은 홀로 살 것이라 그를 여려 민족 중의 하나로 여기지 않으리로다 야곱의 티끌을 누가 능히 세며 이스라엘 사분의 일을 누가 능히 셀고 나는 의인의 죽음을 죽기 원하며 나의 종말이 그와 같기를 바라노라 하매”(23;9,10) ‘이 백성이 홀로 산다’는 것은 왕따나 외톨이로 산다는 의미가 아니라 구별된다는 의미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택함 받아 약속관계에 있는 거룩한 민족으로써 세상나라와 뚜렷이 구별되는 영광과 특권을 가진 탁월한 민족이 된다는 것입니다. 고대 세계의 위대한 제국들 곧 애굽, 앗수르, 바벨론등은 역사 속에서 자취도 없이 사라져 갔지만 이스라엘은 온갖 위협 속에서도 오늘날까지 구별되어 여전히 세상 속에서 또 교회 속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끼치고 있습니다. 현재 전세계에 퍼져있는 유대인의 수는 세계인구의 0.2%(1500만명)밖에 안되지만 노벨상 수상자는 30%나 됩니다. 세계강대국 미국내 유대인의 수는 2%(650만명)에 불과하지만 정치와 경제등 모든 분야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며 세상을 움직입니다. 사람들은 그 이유를 거대한 유대자본력 때문이다. 2천년간 핍박을 이겨낸 생존력 때문이다, 답이 없고 질문과 토론만 있는 탈무드식 교육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실상은 하나님의 약속과 인도하심 때문입니다. ‘야곱의 띠끌’은 일찍이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 네가 동서남북으로 퍼져나갈지며”(창28;14a)하신 약속에 근거한 표현으로 번성하는 이스라엘을 의미합니다. 발람은 눈앞에 펼쳐진 이스라엘 민족에게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소망을 깨닫고 자신도 악한 길에서 떠나 의인처럼 살다가 죽기를 간절히 소망했습니다. 하지만 모압왕 발락은 어렵게 초빙한 복술가가 자신의 뜻과는 상반되는 축복을 하자 분노하며 다시 도전하고자 비스가 산꼭대기로 발람을 인도했습니다.
2, 두 번째 발람의 예언
  발락이 인도한 비스가 산꼭대기는 아바림 산맥의 한 봉우리로 여러 봉우리로 둘러쌓여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이스라엘 진영이 머물고 있는 모압평지를 보면 다른 봉우리들에 가려 이스라엘 전체 진영을 볼 수 없고 끝부분만을 보게 됩니다. 발락은 발람이 위용에 찬 이스라엘진영의 전체를 보며 기가 질려 저주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비스가산에서 일부만보며 기죽지 말고 마음껏 저주하도록 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백성은 전체로만 보면 하나님의 종 모세가 이끄는 60만군대의 200만명의 정비된 민족이지만 일부 개개인들만을 보면 죄악되고 형편없는 오합지졸의 노예같은 이들입니다. 40년 전 애굽에서 노예로 살 때는 말할 것도 없고 하나님의 권능으로 출애굽후에도 끊임없는 불신과 불평으로 40년을 광야에서 방황했던 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 중에는 모든 나라가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왕이 그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그들과 함께 하는 왕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23;19) 하나님은 후회가 없으십니다. 코로나 시대 홈쇼핑방송에서 쇼핑호스트들은 항상 숨이 넘어갈 듯 외칩니다. “이번기회를 놓치면 반드시 후회할 것입니다!” 하지만 과감하게 저지르고 후회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최근 많은 대입수험생들이 깊은 고민 끝에 지원한 대학에 떨어진 후 후회합니다. “엄마 말 듣고 공대지원했다 결국 떨어졌어. 내 적성대로 의대에 지원했어야 되는데” 인간은 후회하는 동물입니다. 개나 고양이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후회없이 매일 똑같은 삶을 반복하는 동물들에 비해 인간은 후회하므로 놀라운 인류발전을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나이들어 죽음앞에서 후회하는 것만큼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것은 없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후회 없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까? 후회없는 하나님안에 있으면 됩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은 피조물인 인간과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분이고(독립성)(출3;4, 시33;11), 그 존재와 본체가 변함없이 불변하시는 분이고(불변성)(말3;6, 히6;17) 시간, 공간 등 모든 제한으로부터 자유로우신 무한하신분이고(무한성)(시90;2, 행17;27) 또 유일하신 영이십니다.(유일성)(신4;35) 하나님은 독립적이고 불변하시며 무한하신 분이시오, 한번하신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권능으로 모든 환경을 주관한다 해도 하나님께서 바꿀 수 없는 단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자유의지이고 인간이 자유의지로 하나님을 떠나 죄를 지을 때 하나님도 어쩔 수 없고 약속을 지킬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전능의 손길로 출애굽시켜도 그들이 시내산 앞에서 은혜를 버리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길 때, 또 약속의 땅 앞에서 불신에 빠져 돌이킬 때, 또 오랜 광야훈련에도 끊임없이 죄악에 빠질 때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을 지킬 수 없고 후회하실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택한 자의 허물을 보지 않으십니다.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시며 이스라엘의 반역을 보지 아니하시는도다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니 왕을 부르는 소리가 그 중에 있도다”(23;21) 그것은 그들의 죄악을 못본 척 하시는 것이 아니라 감당해주시는 것이고 용서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큰 죄를 지은 죄인이든지 그가 자신의 회를 회개할 때 용서하시고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합니까? 하나님은 공간뿐 아니라 시간까지도 주관하시는 세상역사의 주관자이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골리앗을 무너뜨린 다윗은 10년 동안 사울의 위협에도 믿음을 지켜 결국 왕위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충신의 아내를 범하는 정욕의 죄를 지은 후 그는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했던 아들 압살롬이 자기여동생에게 정욕의 죄를 지은 이복형을 죽이고 다윗을 반역했습니다. 다윗은 자식에게 죽지 않기 위해 도망치면서 죄의 결과가 얼마나 저주스러운가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죄에 대한 처절한 회개를 통해 하나님의 용서의 사랑을 깊이 체험했고 그 죄 사함의 은혜가 평생 다윗의 믿음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믿음의 후손을 통해 인류를 죄에서 구원할 메시아를 보내셨습니다. 만약 다윗이 죄에 대한 처절한 회개가 없었더라면 훌륭한 왕은 될수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의 죄사함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메시아의 조상도 되지 못했을것입니다. 다윗처럼 우리는 지나온 길을 후회하기보다 회개함으로 왕되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후회할 때 절망에 빠지지만 회개할 때 하나님의 역사안에 들어갈수 있습니다. 왕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신자)과 함께 계시고 또 그들이 하나님을 진정한 자신들의 왕으로 부르며 섬길 때 세상 어떤 나라와 군대도 함부로 맞설 수 없습니다. 그 힘은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들소같고, 움킨 것을 먹으며 죽인 피를 마시기 전에는 눕지 않는 사자같습니다. 어떤 사람도 후회하지 않는 완벽한 인생길을 갈수 없습니다. 하지만 신자는 후회가 아닌 회개함으로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부족하지만 회개하는 삶을 통해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며 하나님의 권능과 사랑 안에서 후회 없는 인생, 마지막 날 웃는 인생을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발람은 자신이 아무리 용하고 발락이 아무리 많은 복채로 유혹한다 해도, 하나님을 왕으로 부르는 이스라엘을 저주할 복술이 없음을 깨닫고 축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다시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발람앞에서, 발락은 이제 그들을 저주하지도 말고 축복하지도 말라며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습니다.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면서도 발락은 또 다른 장소인 모압광야가 내려다보이는 브올산 꼭대기로 옮기면서 어떻게 하든지 발람 안에 있는 저주의 본성을 이끌어내고자 했습니다.
3, 세 번째 발람의 예언
  발람은 두 번의 예언을 통해 자기가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선히 여기심을 깨닫고 세 번 째는 전과 같이 점술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가 헛된 점술을 쓰지 않고 자신을 하나님께 맡겼을 때 하나님의 영이 임해 놀라운 예언을 하게 됐습니다. 발람은 이스라엘을 강가의 동산이나 물가의 백향목같이 아름답고 풍요롭다고 축복하며 이스라엘의 왕은 강력한 세상왕 (아말렉왕)아각보다 높게 될 것이며 그 나라는 흥왕할 것이라 예언했습니다. 또 “너를 축복하는 자마다 복을 받을것이요 너를 저주하는 자마다 저주를 받을지로다” 축복했는데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받은 복이 후손 이스라엘에게 그대로 전해진 것입니다. 이렇게 축복의 통로가 되는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것은 무모한 것이고 죄악된 것입니다. 하지만 발락은 마지막 기대했던 저주가 없자 더욱 노하여 이제 네 고향으로 도망가라고 발람을 저주하였습니다. 발락의 저주에 발람은 이제 이스라엘과 모압의 먼 미래에 대해 예언했습니다. “내가 그를 보아도 이 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규가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쪽에서 저쪽까지 쳐서 무찌르고 또 셋의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24;17) 별이나 규는 먼 훗날 나타날 왕을 상징합니다. 이 예언은 가까이 400년 후 다윗왕(BC 1010)을 말하고 궁극적으로 1400년 후 오실 메시아에 대한 예언입니다. 발람은 먼 미래에 한별, 한규가 이스라엘 중에 나타나서 하나님과 그 백성들을 대적하는 모압같은 세력을 완전히 쳐서 멸할 것이라 예언했습니다. 또 그동안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대적했던 애돔, 아말렉, 가인족속(미디안)도 결국 멸망될 것이라 예언했습니다. 에돔과 아말렉은 이삭의 아들 에서의 후손들로서 모압족속처럼 본래 하나님 안에 있던 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하며 하나님을 대적했을 때 결국 멸망의 길에 들어서게 됐습니다. 마지막으로 발람은 깃딤 해변에서 온 막강한 세력인 헬라인들이 앗수르와 이스라엘을 괴롭힐 것이나 결국 그도 로마에게 멸망당할 것까지 예언했습니다. 발람이 B.C. 1400년대에 하나님의 영으로 한 예언은 그 후 A.D.1세기 전까지 모두 성취되었습니다. 발람의 예언은 더 나아가 인류의 마지막날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도 이어집니다. 결국 모든 세상나라들은 이스라엘에게서 나온 한 별 메시아가 통치하는 하나님의 나라로 멸망되고 오직 그분이 통치하시는 나라만이 최후의 승리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역사는 수많은 나라들이 흥망성쇠를 반복하지만 결국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는 셋의 후예와 하나님을 대적하는 가인의 후예와의 싸움입니다. 아말렉, 모압, 애돔 등의 세상나라가 당시에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보다 더 강해보였지만 결국 이스라엘의 승리는 정해져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부족할지라도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고 따르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사건은 이스라엘이 모르는 사이 이루어졌습니다.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 가나안 앞에서 위험한 외부세력으로 큰 위기에 빠졌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사랑과 권능으로 약속하신 백성들을 보호하시며 지켜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현재 우리의 인생길에서도 우리가 모르는 사이 수많은 사단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시며 지켜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아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을 통해 구원받아 하나님의 백성이요 자녀가 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고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 한 우리 인생길에는 늘 하나님의 축복이 깔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고난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발락처럼 하나님의 자녀들을 해치고 저주하려는 사단의 음모는 집요하고 끈질깁니다. 최근 코로나전염병은 누구도 믿지 못하는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친구나 가족이나 심지어 내가 전혀 모르는 내 옆에서 식사하던 이가 나를 죽일 수 있는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고 나도 다른 이들에게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인생길에서도 수많은 사고와 사건과 저주와 음모가 나를 공격하려고 합니다. 이 모든 가능성을 생각하면 근심 걱정으로 잠을 잘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약속)은 어떤 위험이나 고난이나 대적의 음모와 저주보다 강력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그래서 어떤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희망의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항상 하나님 안에서 이것을 믿고 받아들이고 누리는 것입니다.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성경속의 수많은 믿음의 증인들 같은 인생을 삽니다. 그들처럼 믿음으로 고난과 저주를 극복하기도 하고 또 믿음으로 고난과 저주 앞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인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믿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이 세상 저주에 얽매이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자녀)들로서 믿음으로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고 개척하며 역사를 창조하는 인생을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어떤 사단의 공격에도 견디며 후회없는 인생, 마지막날 웃는 인생을 살 수 있기 기도합니다.
  발락은 바라던 이스라엘의 저주가 실패로 끝나자 자기 길로 갔고 발람도 자기 곳으로 갔습니다.(24;25) 하지만 발람은 자기고향 메소포타미아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발락이 제시한 재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미디안으로 가서 미디안 장로들과 발락에게 이스라엘을 무너뜨릴 치명적인 계략을 알려줬습니다. 발람은 놀라운 하나님역사의 비밀을 깨닫고 또 하나님역사의 증인으로 쓰임 받았는데도 물질에 대한 탐심을 버리지 못하고 사악한 꾀로 결국 심판을 받게 됐습니다. 이스라엘이 미디안을 정복할 때 그는 미디안의 왕들과 함께 죽음을 당했습니다.(민31;8) 발람은 하나님의 축복을 저버리고 하나님을 대적함으로 역사 속에서 재물을 사랑함으로 하나님을 거역한 대표적인 인물로 낙인찍히게 됐습니다.(벧후2;15, 유1;11)  
  작년 코로나가 더욱 기승을 부리며 항상 마스크 속에서 살며 직장에서는 항상 감염의 위험속에서 또 동생의 병은 더욱 악화됐고 둘째 자녀가 고3 중요한 시기에 기흉에 걸리면서 답답하고 긴장되는 한해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현재 작년 한해를 돌아볼 때 저의 많은 부족함속에서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지켜주시며 축복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작년 코로나속에서 치과에서 많은 감염자가 지나갔지만 저와 직원들은 보호해주셨고 또 극심한 자영업자들의 수입감소 속에서도 크게 타격받지 않게 도와주셨고 무엇보다 매년 진상환자들과 직원 때문에 큰 스트레스를 받았었지만 작년에는 거의 그런 문제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또 둘째가 수능을 망쳤지만 끝까지 믿음으로 도전했을 때 마지막으로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게 도와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가족문제 때문에 고통하는 중에 다른 외적 문제들을 막아주심으로 하나님의 주신 사명을 감당하며 하나님의 역사가운데 쓰임 받도록 도우셨습니다. 부족하지만 형제들을 말씀으로 섬기며 또 다른 목자님들과 함께 남동희 형제의 믿음의 결혼도 돕도록 도우셨습니다. 제가 올 한해에도 받은 은혜가운데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백성들을 축복하는 하나님의 역사가운데 쓰임받을 수 있길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는 발락과 발람의 죄악된 음모 속에서도 크신 권능과 섭리로 택한 백성 이스라엘을 보호하시며 축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시대 택함 받은 우리도 항상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시며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우리 내면의 발람의 탐욕의 죄를 경계하고 회개함으로 하나님 안에서 승리의 인생을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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