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세계선교 | 각부모임 | 경성소모임 | 성경연구 | 사진자료실 | 영상자료실 | 경성쉼터 | JBF/EBF/CBF | 기타 |

회원등록 비번분실

  Bible Study  
주일예배메시지
성경공부문제지
수양회강의
특강
구약강의자료실
신약강의자료실
강의안책자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3-04-16 (일) 15:06
분 류 고린도전서
첨부#1 2023년_부활절__제_2강-1(학생).hwp (78KB) (Down:54)
ㆍ추천: 0  ㆍ조회: 443      
IP: 211.xxx.102
[2023년 부활절 제 2강(학생)]홀연히 다 변화되리라
2023년 부활절 제 2강(학생)                                         이동원
홀연히 다 변화되리라
말씀: 고린도전서 15:35-58
요절: 고린도전서 15:51,52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Happy Easter! 만물이 소생하는 봄을 맞아 부활의 말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도 예수님과 같이 부활할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부활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먼저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죽음은 끝이 아닌 부활에 이르는 관문일 뿐입니다. 그래서 죽을 것 같이 힘든 순간에도 부활에 대한 믿음으로 담대해질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부활에 대한 소망을 덧입고 장차 나타날 영광을 바라보며 담대한 인생을 살 수 있는 믿음을 덧입기를 기도합니다.

제 1장, 부활의 형체(35~38)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셔서 베드로에게 보이셨고 열두 제자에게 보이셨으며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습니다. 허다한 부활의 증인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힘 있게 증거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 성도들 중에는 육신의 부활을 믿지 않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영혼이 불멸할 것은 인정했으나 육체가 부활하는 것은 믿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겠는가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이는 당연히 묻게 되는 질문입니다. 우리가 죽으면 썩어서 한 줌 흙으로 돌아가는데 어떠한 과정으로 어떻게 부활할 수 있을까? 화재나 전쟁이나 사고 등으로 몸이 온전치 않은 상태로 죽으면 어떤 몸으로 부활하는 것일까? 젊어서 죽을 수도 있고 노인이 되어서 죽을 수도 있고 아기의 몸으로 죽을 수도 있는데 어떠한 몸으로 부활하는 것일까? 이런 복잡한 질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 성도들이 부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데는 부활이 과연 어떻게 가능할까 하는 불신과 의심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부활을 믿지 못하는 성도들을 어리석은 자라고 하시며 씨앗의 비유를 들어서 부활을 설명하십니다. 다 함께 36~38절을 읽어보시겠습니다. “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이로되/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 어리석은 이유는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 만물 속에 부활의 증거가 이미 나타난 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땅에 뿌려진 씨가 땅속에 심겨져 죽고 많은 열매를 맺는 이유는 씨앗 안에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씨가 죽어도 그 안에 있는 생명으로 열매를 맺는 것을 볼 때 우리도 그와 같이 부활할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주요 그리스도로 믿고 고백할 때 예수님의 부활의 생명이 우리의 죽은 생명을 부활하게 하실 것입니다.
  땅에 뿌려진 씨는 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십니다. 땅에 씨를 뿌릴 때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라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를 뿌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씨앗이 자라나면 현재의 모습과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장래의 형체가 나타납니다. 장미꽃 씨는 못생겼지만 그것이 자라서 만개하면 아름다운 장미꽃이 되지요. 겨자씨는 점을 찍은 것처럼 작지만 엄청나게 큰 나무로 자라납니다. 씨앗 속에는 장래의 형체를 이루어갈 DNA가 응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땅에 떨어진 씨앗에서 전혀 다른 새로운 형체가 생겨나듯 몸의 부활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도 부활의 때에 신비롭고 영광스러운 몸으로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그렇다고 전혀 다른 사람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고 본인을 알아볼 수 있는 개성이나 모습은 남아있겠죠. 이 땅에서 우리가 내면을 아름답게 가꾸고 선한 행실을 쌓으며 믿음으로 살면 그에 따라서 각 사람에게 맞는 형체를 주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삶에서 기꺼이 어려움을 감당할 수 있는 것도 이를 통해 더 나은 부활을 소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 2장, 부활의 영광(39~49)
  육체라고 다 같은 육체가 아닙니다. 39절을 보십시오.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짐승에게는 튼튼한 네 다리를 주셔서 잘 달리게 해주셨고, 새는 날개가 있고, 물고기는 잘 헤엄칠 수 있도록 지느러미를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각각 그들이 이 땅에서 생활하기에 맞는 형체를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습니다. 또한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습니다. 그 형체마다 각각의 영광이 있는데 그 영광이 다 다릅니다. 해는 강렬하게 빛나는 태양 광선을 뿜어내는 영광이 있고, 달은 은은하게 빛나며 밤하늘을 비추는 영광이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별들도 각자의 이름을 가지고 밤하늘을 장식하는 영광이 있습니다. 이처럼 해와 달과 별들은 각자 하늘의 영광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습니다. 현재 우리는 썩고, 욕되고, 약한 몸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기 계신 청년 분들은 아름답게 빛나는 시절을 살아가고 있어서 실감하기 어렵겠지만 우리의 몸은 시간이 갈수록 노화되고 썩어갑니다. 당장 30대만 되어도 체력이 꺾이는 것을 느낀다고 하지요. 또한 우리는 빛나는 인생을 살기를 소망하지만 욕된 모습이 많습니다. 겉모습은 세련되고 멋있어 보이지만 내면은 더 많은 죄의 세력으로 흉한 모습이 되어갑니다. 욕심과 위선과 외식과 거짓과 술수를 배워가며 세상과 어울리면서 순수하고 진실된 내면이 사라지고 점점 죄의 흉터가 많아집니다. 어릴 적에는 귀한 자식으로 대접받으며 살지만 세상에 나가면 굴러다니는 자갈돌 취급을 받으며 세파에 시달린 자가 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약한 몸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잘 먹고 근육을 키워도 코로나가 한 번 지나가면 곧 바로 누워 지낼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썩고, 욕되고, 약한 몸을 가지고 있는 우리들이지만 부활의 때에는 썩지 않고, 영광스럽고, 강하고 신령한 몸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죄와 죽음의 세력으로부터 해방되어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으로 변화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보여주셨던 40일간의 모습처럼 신비하고 차원이 다른 빛나는 모습으로 변화할 것입니다.
  불순종으로 인해 사망에 이른 첫 사람 아담과는 달리 예수님은 십자가 공로를 통해 우리를 살려주는 영이 되셨습니다. 다 함께 45,46절을 읽어보시겠습니다.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우리가 썩을 몸을 입고 태어난 것은 아담의 후손이기 때문입니다. 창세기2:7 말씀에서처럼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living being)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흙으로 지음 받은 사람은 이 땅에 살기에 합당한 몸을 가지고 있어서 늙고, 쇠하고, 죽어서 결국에는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먼저 육의 사람을 거친 후에 신령한 사람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우리는 첫 사람 아담과 같이 흙에 속한 자로서 죽을 운명이었습니다. 그러나 둘째 사람 예수님은 하늘에서 나셨으므로 영원한 존재요, 부활의 주님이 되십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부여받음으로써 하늘에 속한 사람이 됩니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도 하늘에 속한 자로서 비록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는 은혜를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따르고 부활 소망 가운데 살다 보면 우리의 모습이 점점 주님 모습으로 변화되어가고 그로 인해 아름답게 늙는 분들이 많습니다. 우리 중에 마더배리 선교사님은 90이 넘는 나이에도 찾아오는 사람들을 안수기도 해주시며 일일이 이름을 기억하고 자녀들의 이름까지 기억하는 놀라운 기억력을 가지고 계시다고 합니다. 100세가 넘은 나이에도 연세대 명예교수로 재직 중인 김형석 교수는 그의 저서 <백 년을 살아보니>에서 자신의 전성기는 65세부터 80세까지였다고 말하며 은퇴가 없는 젊음을 과시했습니다. 이처럼 나이가 들어도 마치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가는 것처럼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을 공급받으며 영원한 청년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우리가 장차 영광스러운 부활을 얻게 될 그 날을 소망하며 이 땅에서 부활의 주님을 바라보고 속사람이 강건해지는 기쁨과 은혜를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제 3장, 홀연히 다 변화되리라(50~58)
  사도 바울은 우리가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합니다. 50절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사람이 죽으면 육신은 썩어서 없어지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입고 있는 혈과 육의 몸으로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마치 지구에서 살도록 만들어진 몸으로 우주에 가기 위해서는 우주복을 입어야 하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하나님 나라에 맞는 부활의 신령한 몸으로 갈아입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러한 일은 언제 일어납니까? 다 함께 요절 말씀인 51,52절을 읽어보시겠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사도바울은 성도들에게 부활의 비밀을 알려주고자 합니다. 이 비밀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자들에게만 가르쳐 주는 아주 특별한 신비스러운 비밀입니다. 바울은 부활의 바로 그 순간에 초점을 맞추어 부활의 때에 어떤 놀라운 광경이 펼쳐지는지 생생하게 증언합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 이 땅에서 얼마나 장엄한 광경이 펼쳐질지 상상해 보십시오. 예수님은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하늘의 형상을 입고 나팔수들과 천사들을 대동하여 구름 타고 오실 것입니다. 머리에는 금 면류관을 쓰시고 가슴에는 금띠를 띠시며 오른손에 일곱별을 쥐시고 해처럼 밝은 광채를 발하며 오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강림하시는 모습은 남반구와 북반구에 있는 사람 모두가 볼 수 있도록 자연법칙도 초월하여 오실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의 재림을 알리는 천사장의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그 나팔 소리는 사이렌 소리보다도 크고 전장의 뿔 나팔 소리보다도 커서 온 세상 사람이 다 듣고 전율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심지어 무덤 속에 잠자고 있던 자들도 나팔 소리를 듣고 부활의 몸으로 다시 살아나게 됩니다.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여 모든 사람이 일시에 다시 살아나는 하나님의 세계가 펼쳐집니다. 그날에 자기 이름이 불리어지는 사람은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할 것입니다. 그날에 예수님을 따르던 자들은 썩지 아니할 신령한 모습으로 하늘에 들려 올라가 주님을 맞이할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이름이 불리어지지 않는 자는 슬피 울며 바깥 어두운 데에 쫓겨나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 이날은 믿는 자에게는 구원의 날이요 믿지 않는 자에게는 심판의 날입니다. 세상에 억압받으며 고개 숙이고 살아가던 수많은 성도들에게 그날은 머리를 드는 속량의 날이요 승리의 날입니다. 우리가 이 부활의 비밀을 아는 자가 되었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은혜요 특권입니까! 우리는 이 세상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면서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생활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세상 사람들보다 더 볼품없는 삶을 살고 있다는 초라한 심정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비밀스러운 부활의 소망을 간직하며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부활의 소망 가운데 강건하여지고 예수님 안에서 홀연히 변화될 그날을 바라보며 부활의 산 소망과 믿음을 간직하기를 기도합니다.
  바울은 이제 이 부활의 영광스러운 소망을 확신하며 선포하십니다. 다 함께 53,54절을 읽어보시겠습니다.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바울은 예수님의 재림의 필연성을 강조하며 이미 성경에 기록된 부활과 승리에 대해 단언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사야 25:8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는 말씀이 성취된 것입니다. 사망은 이 땅에서 왕 노릇하며 모든 것을 삼키는 폭군으로 군림해왔습니다. 연약한 죄인들은 자기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죽을까봐 두려워하고 가슴조리며 살아 왔습니다. 전쟁이 나고 여기저기서 산불이 나고 지진이 나고 빈번한 사고가 난 소식을 들으면 목숨의 위협을 느끼며 숨을 조이는 것도 모두 사망이 왕 노릇하며 우리를 지배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그날에는 사망을 삼키고 완전한 승리를 이루십니다. 바울은 호세아서 13:14 말씀을 인용하여 죽음에 대한 완전한 승리를 노래하였습니다.
  다 함께 55,56절을 읽어보시겠습니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죽음은 죄를 무기 삼아 인생들을 괴롭힙니다. 죽음이 쏘는 독화살을 맞은 인간은 죄를 짓고 율법을 어기게 됩니다. 그러면 율법은 그를 죄인으로 정죄하고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그러나 부활의 때에는 더 이상 사망 권세에 끌려 다니지 않고 죄를 짓지 않고 율법도 필요 없게 됩니다. 주께서 모든 사망의 줄을 끊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바울은 부활에 대한 확신을 덧입고 죄와 사망에 대해 승리를 선포합니다.
  이제 이 모든 승리와 자유를 덧입게 되었으므로, 그러므로 이 부활을 믿는 자들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가르치십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고 명하십니다. 우리는 부활이 없다는 자들의 말에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도 세상에서 잘 먹고 잘사는 사람들을 보면 예수님을 따르는 삶에 대한 믿음이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부활의 믿음과 소망 위에 굳게 서서 예수님께 뿌리내려야 합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자기 기업을 세우기 위해 전 인생을 투자하는 사람들의 삶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 썩고 없어지므로 허무하기 그지없습니다. 인생의 말년이 되어 지금까지 움켜쥐었던 것들을 하나씩 내려놓아야 할 때 예수님을 믿지 않던 자들은 눈앞에 다가오는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두려움에 몸부림칩니다. 그러나 우리의 소망은 장차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데에 있으며 그 소망이 점점 다가오는 것으로 인하여 기뻐합니다. 우리가 항상 충만한 기쁨으로 주의 일에 더욱 힘쓸 수 있는 까닭은 우리의 모든 수고가 주 안에서 결코 헛되지 않은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어느 선교사님이 일본에서 수십 년간 선교사역을 했습니다. 그런데 겨우 한 사람만을 전도하여 세례를 주었을 뿐이었습니다. 더구나 세례를 받은 사람은 자기 집에 있던 일본인 가정부였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선교사역을 실패한 사역이라 단정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임무를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간 후 그 가정부의 아들은 일본 신학교의 학장이 되어 수많은 목회자를 길러내었습니다. 사람들은 나무에 달린 사과의 수를 헤아리지만 하나님은 씨앗 속에 있는 사과의 수를 헤아리십니다. 우리가 장차 하나님 앞에 설 때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세상 열매보다 주님을 위해 산 영적 열매를 보십니다. 주 안에서 수고한 자에게는 “잘 하였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25:23) 칭찬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파하고 생명을 살리기 위해 드리는 수고와 헌신은 하나님 나라에 쌓여서 장차 더 좋은 것으로 갚아주시고 이 땅에 사는 날 동안에도 생명의 열매를 풍성히 맺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활의 믿음으로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번 부활절 말씀을 준비하면서 제가 체험한 부활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죄와 죽음의 세력에 짓눌려 청년의 때에도 무기력하게 지내며 힘들어지면 드러누워 버리는 자였습니다. 끊임없이 경쟁해야 하는 세상에 지쳐 있었고 마음이 어두워서 아무런 소망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가대를 중퇴하고 30대의 나이에 대학 중퇴생이 되었을 때는 내 인생이 여기서 끝난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제게 누가복음 7:14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말씀을 주셔서 부활을 선포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제 마음에 심어지고 자라났을 때 부활의 생명이 제 안에서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역사하는 힘이 있어서 죽은 자와 같았던 제가 다시 살아나고 일어나 걷는 새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믿음으로 고려 사이버대학에 편입하여 학위를 따고 고려대 대학원에 진학했을 때 저를 알던 한 친구는 제게 “네가 부활했구나” 하고 농담 섞인 격려를 하였습니다. 제가 연약하여 자기 한 몸 감당하지 못하던 자였는데 이제는 양 무리를 먹이는 목자의 인생을 살게 하신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을 입어 믿음의 결혼도 이루어 주시고 가정 교회로 쓰임 받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예수님으로부터 임한 구원의 은혜가 제 안에 부활 생명으로 살아 역사하신 기적의 역사임을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예수님께서는 죄로 병들어 쓸모없는 인생을 살아가던 저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죽은 자였던 저를 살리셨습니다. 제가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한 부활의 증인으로서 이 부활의 복음을 널리 전파하고 부활 소망으로 살아가는 자 되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장차 얼마나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할 것인가 생각할 때 놀라운 부활의 소망을 인하여 기쁨과 소망이 넘칩니다. 한 번뿐인 우리 인생을 하나님 역사를 위해 뿌리고 심어서 생명의 열매를 거두어야 하겠습니다. 복음 진리 위에 굳게 서서 부활의 믿음을 덧입고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하늘에 속한 자로 살아야 합니다. 특히 청년의 때에 예수님을 영접하고 부활 생명으로 충만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요 생각하며 그 은혜를 감당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에게 영광스러운 부활의 소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려드립니다. 우리에게 진정한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우리가 부활의 믿음으로 강건하여져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자 되기를 기도합니다.
  0
3500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821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19강]바울의 밀레도 고별 메시지 관리자 2023-07-16 643
820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18강]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관리자 2023-07-09 489
819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17강]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관리자 2023-07-02 419
818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 16강]이제는 다 회개하라 하였으니 관리자 2023-06-25 365
817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15강]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관리자 2023-06-18 611
816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14강]예루살렘 공회 관리자 2023-06-11 502
815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13강]환난과 하나님 나라 관리자 2023-06-04 716
814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12강]이방의 빛 바울 관리자 2023-05-28 406
813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11강] 안디옥 교회 관리자 2023-05-21 584
812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10강]일어나 잡아먹어라 관리자 2023-05-14 495
811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9강]택한 나의 그릇이라 관리자 2023-05-07 688
810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8강]전도자 빌립 관리자 2023-04-30 569
809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7강]예수님을 따라 순교한 스데반 관리자 2023-04-23 722
808 고린도전서 [2023년 부활절 제 2강(학생)]홀연히 다 변화되리라 관리자 2023-04-16 443
807 고린도전서 [2023년 부활절 제 2강(학사)]홀연히 다 변화되리라 관리자 2023-04-16 628
806 고린도전서 [2023년 부활절 말씀 제1강(학생팀)]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 관리자 2023-04-09 611
805 고린도전서 [2023년 부활절 제 1강]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 관리자 2023-04-09 633
804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6강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말하라 관리자 2023-04-02 664
803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5강]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관리자 2023-03-26 521
802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4강]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관리자 2023-03-19 759
12345678910,,,44
서울 동대문구 이문2동 264-231
Tel:070-7119-3521,02-968-4586
Fax:02-965-8594
서제임스목자님메일:Suhjt@hitel.net
[UBF한국본부] [유럽UBF] [UBF국제본부] [UBF TV] [시카고UBF] [Mother Barry's Homepage]
[뉴욕UBF] [워싱턴UBF] [노스웨스턴UBF] [콜롬비아UBF] [코스타리카UBF] [프랑크푸르트UBF]
[키에프UBF] [상파울루UB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