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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3-05-21 (일) 14:09
분 류 사도행전
첨부#1 2023년_사도행전_제11강-1.hwp (159KB) (Down: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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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사도행전 제11강] 안디옥 교회
2023년 사도행전 제 11 강                                                      오정훈
안디옥 교회
말씀 / 사도행전 11:19-12:25
요절 / 사도행전 11:26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오늘 말씀은 안디옥 교회가 어떻게 개척되었고 어떻게 복음적인 모임으로 성장해 가는가 하는 내용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이방 지역에 세워진 최초의 이방인 교회로서 사도바울이 3차에 걸쳐서 소아시아와 그리스 지역을 개척하는데 중심 역할을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인이란 명칭이 처음 사용된 곳입니다. 말씀을 통해 안디옥 교회를 배우고 저희도 말씀이 흥황하고 그리스도인이 충만한 이 시대 안디옥 교회로 세워지고 쓰임받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1. 말씀이 흥왕한 안디옥 교회(11:19-30)
19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스데반의 순교 후 대대적인 박해로 흩어진 성도들은 베니게,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베니게는 두로와 시돈이 중심인 지중해 연안의 남북지역이고 구브로는 지중해 동북부에 있는 현재 키프러스(Cyprus)섬을 가리킵니다. 안디옥은 시리아 주의 수도로 셀레쿠스1세가 BC 300년에 건설하여 자기 부친 안티오쿠스의 이름을 따서 안디옥이란 이름하였습니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로마, 알렉산드리아 다음가는 국제도시로 헬라 문명의 중심지였으며 아름답고 물이 풍부하며 상업이 발달하여 ‘동방의 로마’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이곳에는 로마인, 헬라인, 유대인, 동양인인 인도인과 중국인들도 있었습니다. 안디옥은 다인종 다문화 사회로 동서양의 문화가 만나서 융합하는 곳이었습니다. 이런 국제적인 도시에 박해를 피해서 흩어진 성도들이 한 사람씩 몰려들었습니다. 그들은 이방 땅에서도 잠잠하지 않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아직까지는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했습니다. 20,21절을 보십시오.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안디옥에 와서 복음을 전하던 사람들 중에는 구브로와 구레네에서 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헬라파 유대인들로서 그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은 무명의 전도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복음에 대한 열정과 도전 정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 번도 복음을 들어본 적이 없는 헬라인에게도 복음을 전했는데 이는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일이었습니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고전1:22,23) 당시 헬라인들은 지성을 최고의 덕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로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며 정확한 지식을 추구했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유대인이 인류의 구세주라고 전하면 어떻게 받아들이겠습니까? 그런데도 그들이 아주 확신 있게 전하자 많은 헬라인들이 복음을 영접하고 주님께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들이 안디옥 교회의 주축들이 됩니다. 이처럼 안디옥 교회에 이방인 헬라 사람들이 들어오게 된 것은 무명의 용기 있는 전도자들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지식보다 용기가 더 중요할 때가 많습니다. 고대 로마시대에 용기는 네 가지 중요한 덕목(지혜 용기 중용 절제) 중에 하나였습니다. 위대한 역사를 이룬 사람들은 용기 있는 사람들입니다. (9.28 서울수복에서도 명령을 어겨가면서까지 논두렁을 넘어 돌격한 바로우 대위의 용감한 행동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 사람은 결코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생각하고 입을 닫고 가만히 있으면 아무런 역사도 일어나지 않지만 입을 열어서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면 의외로 말씀을 듣고 영접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누구든지 믿음의 용기를 가지고 도전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권능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헬라인들이 복음을 듣고 주께 돌아오게 된 또 다른 중요한 요인은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주의 손’은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냅니다. 무명의 전도자 몇 사람이 헬라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그들과 함께 했습니다. 그래서 헬라인들이 복음을 들을 때 귀가 열리고 눈이 열려서 말씀을 듣고 자기 죄를 회개하고 복음을 영접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인간의 힘과 노력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한 사람도 변하여 새 사람 되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이 함께 할 때 부족한 자라도 능력 있는 복음의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부족하다고 절망하지 말고 주의 손이 함께 하실 것을 믿고 믿음으로 도전하는 종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안디옥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역사에 대해 듣고 즉시 바나바를 보냈습니다. 23절을 보십시오.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바나바는 안디옥에 일어난 은혜의 역사를 보고 마치 자기 일인냥 기뻐하였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께 머물러 있으라 권면하였습니다. 이 바나바는 어떤 사람입니까? 24절 보십시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첫째로 그는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는 말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른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말 한마디를 해도 착하게 했습니다. 소감이 너무 짧고 은혜가 좀 부족해도 잘 썼다고 엄지척 해주었습니다. 믿음이 어리고 연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위로하며 용기를 심어주었습니다. 이런 바나바로 인해 사람들이 큰 위로를 받고 힘을 덧입었습니다. 바클레이는 이 바나바를 가리켜 ‘교회에서 가장 관대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라’ 했습니다. 교회에 꼭 이런 사람이 필요합니다. 둘째로 바나바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는 그가 무조건 다 좋다고 하는 인간적인 사람이 아니라 분별력을 가지고 사람들을 돕는 진리의 사람임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바나바는 위로의 아들이었지만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여 사람들을 말씀에 기초해서 돕는 성령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바나바로 인해 사람들이 은혜받고 믿음 위에 서므로 많은 사람들이 주께 돌아오는 역사가 더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바나바는 무엇을 하였습니까? 25절을 보십시오.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면 분위기에 들뜨기 쉬웠지만 바나바는 이들을 제자들로 키울 수 있는 성경 선생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고향 다소에 머물고 있던 사울을 물어물어 수소문 끝에 찾아갔습니다. 사울은 고향 다소에 10년 정도 머물며 구약성경을 깊이 연구하여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성경관을 정립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구약에 기초해서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심을 어떤 상황에서도 변증할 수 있는 빼어난 성경선생이었습니다. 바나바는 이런 사울의 능력을 알아보고 안디옥 교회로 인도한 것이었습니다. 말씀역사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빼어난 성경선생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뛰어난 사람들끼리 함께 동역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시기 질투하다 등을 돌리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바나바는 사울을 하나님의 종으로 영접하고 겸손히 동역하므로 안디옥 교회에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26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우리는 이를 통해 안디옥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로 안디옥 교회는 말씀 중심의 교회였습니다. 바나바와 사울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성경을 체계적으로 일년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에 기초한 인생관, 가치관, 물질관, 결혼관, 세계관을 정립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열심히 성경을 배우고, 배운 말씀대로 행하는 말씀 중심의 교회였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가르치고 말씀 중심으로 살아갈 때 그들은 그리스도인이라 처음으로 불려지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제자들(6:1), 성도들(9:13), 형제들(1:16, 9:30)이라 불렸는데 안디옥에서부터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렸습니다. 이전 신자들은 대부분 유대인으로 복음을 영접했으나 할례를 행하고 안식일을 지키며 율법대로 살고자 하므로 유대교와 별 차이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안디옥 교회는 성경을 체계적으로 공부하면서 점차 복음의 본질이 아닌 유대교 전통을 제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안디옥 교회에서부터 기독교와 유대교가 분명히 구분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 그리스도를 위해서 사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안디옥 교회 신자들은 모였다 하면 예수님에 관해서 말하고, 예수님처럼 행하고자 했고, 예수님을 섬기는 일에 헌신했습니다. 그들의 입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란 말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안디옥에 사는 사람들은 이런 신자들을 보고 ‘예수에게 미친 사람’ 곧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며 조롱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세상적인 관점에서 보면 불명예스러운 호칭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에게 미친 이상 이 이름은 하나님 편에서 보면 영광스러운 이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생을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보면 반드시 한두 가지에 미쳐서 살아갑니다. 돈에 미치든지, 예술에 미치든지, 운동에 미치든지, 학문에 미치든지, 게임에 미치든지 뭔가에 미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에게 미친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예수님에게 미치면 사람들은 제발 좀 적당히 신앙생활 하라고 말합니다. 가족도 좀 생각하고 적당히 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적당히 신앙생활을 하면 이도 저도 아닌 인생이 되고 맙니다. 김장김치도 소금에 푹 절여야 하듯이 예수 그리스도에 푹 젖어서 살아야 참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릴 수 있습니다. 이 시대 문제는 예수님께 미친 참된 그리스도인이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과 양다리 걸치며 무늬만 신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그런 세상 가운데 매주 말씀공부와 소감을 쓰며 말씀대로 살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한테 미쳤다는 소리를 못 들을 때가 있습니다. 이는 완전히 미치지 못하고 적당히 묻혀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적당히 세상과 양다리 걸치며 무늬만 신자로 살지 않고 예수님에게 완전히 미쳐서 예수쟁이란 소릴 들을 정도로 예수님을 따르고 예수님께 헌신하는 종들이 될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둘째로, 안디옥 교회는 구제에 힘쓰는 교회였습니다. 27,28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에 큰 흉년이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렀는데 그 중에 아가보라는 사람이 있어 성령이 충만하여 천하에 큰 흉년이 들 것을 예언했습니다. 그의 예언대로 글라우디오 통치 때(AD 41-54)에 예루살렘에 큰 흉년이 들었고 성도들은 궁핍한 생활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안디옥 교회는 각각 그 힘닿는 대로 부조하여 유대에 사는 형제들을 도와주고자 하였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이렇게 모은 구제금을 바나바와 사울을 통해서 예루살렘 장로들에게 보냈습니다. 이것이 AD 46년경으로 예루살렘 교회에 영적 빚을 진 안디옥 교회가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예루살렘 교회를 도움으로서 두 교회 사이의 결속력이 더욱 공고해지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20장 35절은 말씀하십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거지처럼 받는 생활을 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나눠주는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요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모임도 받기만 하기보다 힘써 주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선교사님들이 오면 이번에는 무슨 선물을 가져왔나 기대하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선교사님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나누고 사랑을 나눠주고 물질을 나눠주므로 이 시대 안디옥 교회같이 귀하게 쓰임 받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저는 지난주 학생동역자들을 통해 일어난 성령의 역사를 전해 듣고 큰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한희영 지도교수님의 지도 아래 학생들이 부스를 열고 20명이 넘는 학생들과 관계성을 맺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화요일에는 관계성을 맺은 양들이 바이블하우스에 나와 이대민 형제가 전한 창세기1강 말씀을 듣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저는 이 역사를 들으며 우리 학생동역자들이 바로 안디옥에 와서 헬라인들에게 겁 없이 복음을 전한 무명의 용기있는 전도자들이 아닌가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임은 성경공부도 열심히 하고 또 (함)바나바와 (최)바울도 있으니 정말 안디옥 교회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령께서 이렇게 저희를 이 시대 안디옥 교회처럼 쓰고자 하시는데 저는 아무런 생각 없이 뒷짐만 지고 지내고자 하였습니다. 용감한 사모님들이 항상 열심을 내고 팀장 목자님들이 있으니 저는 조용히 있어도 된다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보며 안디옥 교회에 말씀이 흥왕하고 또 그리스도인이 충만했던 것은 바나바와 바울 같은 빼어난 성경선생이 있었기 때문임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부족한 죄인도 이 역사에 말씀의 종으로 사용하고자 하십니다. 제가 뒷짐만 지고 안일하게 지내던 것을 회개하고 말씀의 종으로 쓰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말씀의 우물을 더 깊이 파서 나르는 종으로 쓰임받길 기도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 가운데 말씀이 흥왕하고 그리스도인들이 충만해져서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빛과 소금들로 굳게 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2. 택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12장)
12장 1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그 때에”는 바나바와 사울이 구제헌금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올라간 때로 유월절 전후 기간이었습니다. 야고보는 유월절이 시작되기 직전에 순교를 했고, 베드로가 체포되었을 때는 무교절 기간이었습니다. 여기서 헤롯 왕은 헤롯 대왕의 손자 헤롯 아그립바 1세(BC 9–AD 44)로서 그의 여동생은 세례 요한을 목 베어 죽인 헤로디아입니다. 그는 4살 때 부친 아리스토불루스가 그 할아버지 헤롯대왕에 의해 처형되자 로마로 보내져서 황제의 가족들과 친밀한 관계에서 성장했습니다. 한 때 디베료 황제의 의해 투옥되었으나 칼리굴라의 숙부 클라우디우스가 황제에 오를 수 있도록 공헌하므로 유대 지역의 통치권을 거머쥐게 되었습니다. 그는 유대인들과 호의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매우 공을 들였습니다. 그런 가운데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인들을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환심을 사기 위해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울의 회심으로 평온하던 교회는 헤롯의 박해로 또다시 혼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럴지라도 교회는 언제나 고난을 통해서 성장해 나가기 마련입니다. 12:2-4절을 보십시오.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 기간이라.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인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내고자 하더라” 헤롯은 열두 사도 중 한 사람인 야고보를 잡아서 칼로 죽였습니다. 그는 ‘할 수 있나이다’ 자신이 단언했던 것처럼 사도들 중에 최초로 죽음의 잔을 마신 것입니다(막10:39). 헤롯은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까지 잡아서 죽이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무교절 기간이라 죽이지 못하고 옥에 가두어놓고 16명의 군인들을 네 패로 나누어 철통같이 지키게 했습니다. 한번에 4명이 지켰는데 2명은 좌우에 손이나 발에 쇠사슬을 같이 하였고 나머지 두 명은 옥문 앞과 정문에서 번을 섰습니다. 이처럼 베드로는 손발이 쇠사슬에 묶여 꼼짝할 수 없었고 건장한 군인들이 곁에서 감시하고 있어 이제 무교절이 지나면 꼼짝없이 죽게 될 처지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는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5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베드로가 옥에 갇히자 성도들은 모여서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12절을 보면 천사의 도움으로 옥에서 빠져나온 베드로가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도착했을 때도 그들은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잡혀서 풀려날 때까지 성도들은 계속해서 기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교회가 해야할 일은 이처럼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갇힌 자가 풀려나고 병든 자가 낫도록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합니다. 6절을 보십시오. “헤롯이 잡아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베드로는 밤이 지나면 사형에 처해질 상황이었는데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인 체 자고 있었습니다. 믿음이 좋은 것인지, 원래 잠이 많아서 그런 것인지 어떻게 이런 상황 속에서도 잠을 잘 수 있는 것일까요? 마치 예수님께서 광풍 가운데서도 잠자던 모습을 연상시키고 있습니다. 이때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되었습니까? 7절은 “보라 (ijdouv, behold)”로 시작합니다. 이는 곧 일어나게 될 놀라운 일을 주목하여 보라는 뜻입니다. 7-10절입니다.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나매 옥중에 광채가 빛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이르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천사가 이르되 띠를 띠고 신을 신으라 하거늘 베드로가 그대로 하니 천사가 또 이르되 겉옷을 입고 따라오라 한대 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갈새 천사가 하는 것이 생시인 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니라 이에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시내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저절로 열리는지라 나와서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더라” 성도들이 옥에 갇힌 베드로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는 동안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셨습니다. 주의 사자가 쇠사슬에 묶인 채 깊이 잠든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파닷소) 급히 일어나라고 했습니다. 그때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졌습니다. 베드로는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천사가 시킨 대로 했습니다. 천사가 하는 것이 생시인가? 환상인가? 생각했습니다. 첫째와 둘째 파수를 그냥 지나치고 시내로 향하는 쇠문은 저절로 열리는 것이었습니다. 미션 임파셔블이나 메트릭스에도 불가능한 놀라운 일이 주의 사자를 통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런 내용이 5절과 12절 사이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성도들이 모여 베드로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일어난 일들입니다. 때로는 세상 권력 앞에서 교회와 성도들은 무력감을 느낍니다. 옥에 갇힌 베드로처럼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도는 감옥문도 열게 하는 성도들의 강력한 무기입니다. 사단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도 성도의 포기치 않는 기도입니다.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은 놀라운 능력을 나타내십니다. 스코틀랜드를 통치하던 메리 여왕은 가톨릭 신자로서 종교 개혁자를 심하게 박해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항상 존 녹스를 두려워했습니다. “나는 군인 수만 명보다 존 녹스의 기도가 더 두렵다. 의로운 자의 기도에 맞서느니 차라리 악한 자의 대포에 맞서는 것이 낫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큽니다(약5:16). 하나님은 그 자녀들에게 기도할 수 있는 특별한 권세를 주셨습니다. 이 권세를 가지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마다 반드시 응답하여 주십니다. 우리가 이를 믿고 갇힌 자 병든 자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므로 갇힌 자가 놓임받고 병든 자가 낫게 되는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 체험할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옥에서 벗어난 베드로는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으로 갔습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마지막 만찬을 한 곳이요 오순절 때 120명의 제자들이 모여서 합심기도 하던 곳이었습니다. 13-16절입니다. 베드로가 대문을 두드리자 로데라 하는 여자 아이가 영접하러 나왔다가 베드로의 음성인 줄 알아차리고 너무 기쁜 나머지 미쳐 문을 열어 주는 것도 잊어버리고 사람들에게 달려가서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섰다고 하였습니다. 여자 아이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네가 미쳤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베드로가 보고 싶었으면 저런 헛소리를 할까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참말이라고 하자 그의 천사라고 말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그 사람과 똑같은 외모와 목소리를 가진 수호천사가 있어 그 사람을 지켜준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아마 베드로가 살아 돌아왔다고 믿을 수 없었던 사람들은 그의 수호천사가 말한 것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이처럼 베드로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었지만 막상 베드로가 대문 밖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는 믿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를 보고는 모두 놀랐습니다. 기도를 간절히 해도 응답받을 때는 항상 놀라는 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17절입니다. “베드로가 그들에게 손짓하여 조용하게 하고 주께서 자기를 이끌어 옥에서 나오게 하던 일을 말하고 또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이 말을 전하라 하고 떠나 다른 곳으로 가니라” 소란이 일어나자 베드로는 손짓으로 사람들을 조용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탈출하게 되었는지 상세하게 이야기했습니다. 베드로는 이 소식을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전하라고 지시한 후에 다른 곳으로 갔습니다. 어디로 갔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습니다. 이로써 하나님은 택한 종들과 교회를 보호하시고 지켜나가신다는 것을 알려주십니다. 사도 야고보는 순교했지만 아직 할 일이 많은 베드로는 살려주심으로서 교회는 큰 위로와 소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다른 곳으로 가니라” 예루살렘 교회에 남아 있던 베드로가 다른 곳으로 감으로서 예루살렘 교회를 중심으로 한 복음 역사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18,19절을 보십시오. 날이 새자 군인들은 베드로가 어떻게 된 것인지 알지 못해 소동하였습니다. 로마법에 의하면 죄수를 탈출하도록 놔둔 간수는 죄수가 받아야 할 형벌을 대신 받게 되어 있었습니다. 헤롯은 파수꾼들을 심문한 후에 모두 죽이라고 명령하고 가이사랴로 내려갔습니다.  20절입니다. 베니게 연안에 살고 있던 두로와 시돈 사람들은 무역 문제로 헤롯의 노여움을 사고 있었습니다. 화가 난 헤롯은 두 도시에 식량 공급을 중단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뜻을 모아 왕궁을 찾아와서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설득하여 헤롯에게 화목하기를 청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야 갈릴리에서 나는 옥수수를 공급받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21-23절입니다.  헤롯은 그들의 제안을 수용해서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단상에 앉아 백성에게 연설했습니다. 백성들은 헤롯 왕과 화해하기 위해서 아첨하는 말로 크게 외쳐댔습니다.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헤롯은 그 말을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데 자기가 그 영광을 가로챘습니다.  하나님께서 받아야 할 영광을 가로챘을 때 하나님의 사자가 교만한 헤롯왕을 치셨습니다.  여기서 치다는 말은 앞에서 주의 사자가 베드로의 옆구리를 쳤을 때와 같은 단어<파닷소> 입니다. 그 결과 왕은 벌레에게 먹혀 죽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은 주의 사자가 침으로서 구원을 얻었지만 한 사람은 죽임당하고 말았습니다.  외경 마카비서에 의하면 배에서 벌레가 나고 그로 인해 악취가 날 정도로 몸이 썩어들어가다가 5일만에 죽었다고 합니다. 고대에는 벌레에 의해서 먹혀 죽는 것을 가장 수치스러운 일이라 여겼습니다. 헤롯은 벌레만도 못한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헤롯을 죽이심으로서 그가 더 이상 교회를 박해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폭군들은 잠시 교회를 억압하고 자신의 권세를 자랑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반드시 심판을 받는다는 것이 역사의 진리입니다. <현재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푸틴은 승승장구하는 것 같지만 헤롯이 그랬고 히틀러가 그랬듯이 머지않아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받아 반드시 무너지고 망하게 되고 말 것입니다. 이를 통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택한 자를 지키시고 보호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크신 권능과 은혜가 나타날 것을 믿습니다.>
24,25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바나바와 사울이 부조하는 일을 마치고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리고 예루살렘에서 돌아오니라.”  “말씀은 흥왕하여” 헤롯왕은 죽고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널리 퍼지므로 교회는 더욱 견고해지고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박해 가운데서도 언제나 교회는 승리를 거두고 더욱 성장하게 됩니다. 이는 마치 봄이 오면 얼었던 땅에서 새싹이 돋아나듯이 핍박받던 신자들은 다시 일어날 것이며 그들을 통해서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돌아오니라” 바나바와 사울은 부조하는 일을 마치고 마가 요한을 데리고 안디옥 교회로 돌아왔습니다. 이제 그들은 마가 요한을 데리고 새로운 일을 시작합니다. 안디옥 교회를 중심으로 이방 선교의 대장정이 시작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안디옥 교회는 이름 없는 무명의 용감한 전도자들에 의해 세워지고 바나바와 사울이 그 기초를 닦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한 교회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공부하고 실천함으로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이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우리 모임도 어느 곳보다 말씀을 많이 공부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한 모임입니다. 우리가 공부한 말씀을 삶 가운데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증거함으로 어두운 세상에 예수님의 빛을 드러내는 그리스도인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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