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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2-04-25 (월) 15:47
분 류 누가복음
첨부#1 2022년_부활절_특강-1.hwp (129KB) (Down: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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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부활절 특강]청년아 일어나라
2022년 부활절 특강                                                               홍승재
청년아 일어나라
말씀/ 누가복음 7:1-17
요절/ 누가복음 7:14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Happy Easter! 죄와 죽음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바야흐로 청년의 계절(청춘), 부활의 계절 봄이 왔습니다. 사명의 땅 캠퍼스에는 꽃들이 만개하고 양들로 인해 간만에 생기가 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겉모습과는 달리 여전히 사람들의 표정은 어둡고 심령은 무기력해보입니다. 이것이 단지 2년이상 지속된 코로나 때문만 일까요? 오늘 말씀에는 죽어가는 종과 이미 죽어버린 청년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예수님은 이들을 고치시고 생명을 살리심으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시오, 생명과 부활의 주님이 되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이 시간 말씀을 통해서 우리도 부활의 권능을 덧입고 나를 덮고 있는 관에서 일어서고 또 양들을 일으켜 세우는 생명력 충만한 인생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Ⅰ. 백부장의 종을 살리신 예수님(1-10)

1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셨을 때 그 곳을 지키던 백부장의 종이 병들어 죽게되었습니다. 백부장은 백명의 정규군을 거느린 로마의 지휘관입니다. 그의 임무는 전쟁에서 적과 싸워 이기고 식민지를 건설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지역 사령관으로 식민지 백성들을 통제하고 로마에 저항하지 못하도록 관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당시 백부장들은 자연히 잔인하고 거만하였습니다. 인간애나 생명의 존엄성을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가버나움 백부장은 달랐습니다. 그는 어떤 사람입니까?

첫째, 한 영혼을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는 인격자였습니다. 백부장에게 어떤 종이 있었는데 그만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당시 종은 주인 재산의 일부로 소모품처럼 취급을 받았습니다. 마음대로 부리거나 매매할 수 있었고 생명에 대한 결정권도 주인에게 있었습니다. 병들어 죽게된 종은 죽이거나 내다버리는 것이 일반적인 관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백부장은 종을 사랑하였습니다. 자신의 가족처럼 아끼고 사랑했습니다. 출신, 신분, 학력, 능력, 체력 등 인간조건에 기초하여 사람을 평가하지 않고 ‘존재 자체’를 귀하게 여겼습니다. 종과 주인의 관계는 깊은 사랑과 신뢰로 맺어져 있었습니다. 종이 병들어 죽게되자 어찌하든지 살려보고자 백방으로 노력하였습니다. 부자들도 입원하기 어렵다는 가버나움의료원 중환자실에 입원시켜 고가의 신약과 임상시험용 의약품까지 투여하였지만 병세는 나날이 악화되어 이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백부장에게 예수님에 대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나병환자, 중풍병자, 열병환자 등 온갖 병든 자들을 고쳐주셨다는 소문을 듣게 되자 즉시 유대인의 장로 몇 사람을 예수님께 보내어 오셔서 죽어가는 종을 구해 주시기를 간청했습니다. 사실 백부장과 유대 장로들은 지배국 장교와 식민지 지도자들로 사이가 좋을 리가 없습니다. 특히 장로들은 율법적이고 비판적이고 자기생각이 강해서 이방인의 요청에 따라 오고가는 존재가 아닙니다. 또한 청원 내용이 한갓 소모품에 불과한 비천한 종을 위해 예수님께 나가 간청한다는 것은 꺼려질만한 일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장로들은 예수님께 나아와 간절히 구했습니다.
4,5절을 보십시오.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니이다. 그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말씀을 기초해서 볼 때 본문의 백부장은 인간애가 넘치는 사랑이 풍성한 지휘관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신앙을 인정해줄 뿐아니라 신앙생활 잘하도록 회당까지 지어주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런 백부장을 존경하고 사랑하고 깊이 신뢰했습니다. 우리도 현재 있는 곳에서 하나님이 맡겨주신 이웃들, 특히 한 영혼을 깊이 사랑하고 겸손히 섬기며 선을 베풀어야 합니다. 이때 선한 믿음의 영향력을 끼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받게 됩니다. 우리가 백부장과 같이 인간애가 풍성한 인격자로 성장하길 기도합니다.

둘째, 말씀권세를 절대적으로 믿고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한 영혼을 사랑하는 백부장의 사랑과 장로들의 간청에 감동을 받으시고 함께 가셔서 종을 고쳐주고자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소식을 들은 백부장은 벗들을 보내서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6,7절 말씀을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그는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간청을 들어주러 오시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묵상하는 가운데 예수님이야말로 영적인 왕이요 자신은 비천한 죄인임을 깨닫았습니다. 인생들의 생사여탈권을 가진 총사령관께서 직접 내방하신다니 감히 나가서 주님을 뵐 생각조차 못하였습니다. 대신 그저 ‘나으라’ 한 말씀만 해 주시면 하인이 나을 것이라는 믿음의 고백을 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직접 대면하거나 이적을 체험하지도 못했지만, 예수님 말씀권세가 시공간을 초월하여 역사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러면 그의 고백의 근거가 무엇입니까? 8절을 보십시오. “나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병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그는 군인으로 ‘권세의 본질’을 체험적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군대는 상명하복의 규율이 엄격해서 어길 경우에는 명령불복종 죄로 영창을 가거나 전쟁중에는 처형을 당하기도 합니다. 로마 황제의 한마디에 전 세계에 파견된 로마군이 일사분란에게 복종하고 이에 따라 전쟁이 시작되기도 하고 또 멈추기도 하였습니다. 백부장의 병사들과 종들도 명령 한마디에 그대로 복종하였습니다. 이는 결코 저절로 된 것이 아니라 고된 훈련과 체험을 통해 얻어진 결과물이었습니다. 그는 이 원리를 영적 총사령관 예수님께 그대로 적용했습니다. 인간의 한마디 말에도 엄청난 권세가 있는데 상천하지 하나님이신 예수님 말씀권세는 어떠하겠는가! 이것이 백부장의 믿음이었습니다.

이런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고 싶습니까? 그러려면 백부장과 같이 말씀권세를 절대적으로 믿고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인간에게는 아담의 불순종과 가인의 반발심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순종하라고 하면 옳은 말인데도 괜히 자존심이 상하고 반발심이 솟구칩니다. 그러나 불순종하면 결코 믿음을 배울 수 없습니다.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하려면 날마다 자존심과 반발심, 불순종, 인간적인 생각을 회개하고 겸손하게 순종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백부장과 같이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의 능력을 절대적으로 믿고 순종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길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영적인 깊은 세계를 체험하고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복된 인생 살길 기도합니다.

9절 말씀을 다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를 놀랍게 여겨 돌이키사 따르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

예수님은 백부장의 믿음에 놀라시고, 그의 믿음을 크게 칭찬하셨습니다. 여기서, ‘이만한 믿음’은 ‘이렇게 위대한 믿음(such great faith)’이라는 뜻입니다. 선민 이스라엘은 예수님이 행하시는 이적을 직접 보고 체험했으면서도 주님을 믿지 않고 배척했습니다. 반면 이방인 백부장은 영적인 황무지와 같은 환경에서도 이스라엘을 능가하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위대한 믿음은 말씀만 하시면 낫는다는 단순하고도 절대적인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백부장의 이런 위대한 믿음을 크게 축복하셨습니다. 보내었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 보니 종이 이미 나아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권세에 대한 백부장의 순전한 믿음이 죽어가던 종을 낫게 하였습니다.

요즘 캠퍼스개척이 힘들다는 말들을 많이 합니다. 실제로 1대1 양 얻는 것이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우리 본연의 사명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병들어 죽어가는 캠퍼스 양들이 살아나고 제자양성 역사를 섬길 수 있을까요? 이 치열한 전쟁터에 과연 어떤 사람이 필요할까요? 백부장과 같은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백부장이 살리는 것은 아니지만 부활이요 생명되신 예수님께서 한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고 순종하는 백부장과 같은 믿음의 사람을 통해서 살리십니다. 우리가 이 시대 백부장으로 성장하여 사탄과의 전쟁에서 한 영혼을 구원하는 목자요, 예수님께서 놀라시는 믿음의 용사들로 인정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Ⅱ. 죽은 과부의 외아들을 살리신 예수님(11-17)

11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나인이라는 성으로 가실 때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이 함께 따라갔습니다. ‘나인’은 ‘기쁨, 즐거움’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세상에서 가장 슬픈 장면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성밖으로 사람들이 상여를 메고 나오는데 과부의 외아들 장례 행렬이었습니다. 죽음의 세력은 사람들에게 고통과 슬픔을 줍니다. 특히 지인의 갑작스런 부고소식은 큰 충격과 함께 삶의 의욕을 빼앗아 갑니다.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말하기조차 꺼려하고 무조건 피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아무도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죽음은 늘 가까이 있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옵니다. 과부의 외아들이라고해서 봐주지 않습니다. 이를 생각하면 솔로몬의 고백과 같이 인생이 헛되고 허무할 뿐입니다. 나인성 사람들은 청년의 죽음을 숙명으로 생각하고 슬퍼하며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생명의 행렬을 이끌고 나인성에 오심으로 슬픔과 죽음의 세력이 사라지고 생명의 역사가 시작됐습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불쌍히 여기셨다는 것은 단순한 동정심이 아니라 창자가 끊어지는 것 같은 비통과 연민을 느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과부의 슬픔에 깊이 동참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죽음 문제를 해결해주고자 말씀하셨습니다. “울지 말라.” 아무도 이 여인의 울음을 그치게 할 수 없고 위로해 줄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참된 위로를 주실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슬퍼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죽은 청년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부활의 주님이시요 생명의 수여자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14절을 보십시오. 생명의 예수님께서 청년의 관에 손을 대셨습니다. 당시 장례 방식에 따라 시체는 세마포로 감싸고 얼굴은 손수건으로 덮어서 뚜껑이 없는 관에 넣었습니다. 관에 손을 대는 행위는 당시 율법을 어기는 것입니다(레22:4). 그러나 예수님은 사랑과 긍휼의 법으로 율법을 초월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관에 손을 대시자 메고 가던 사람들이 멈췄습니다. 아담 이후 무한 반복되는 장례 행렬을 그 누구도 멈출 수 없었습니다. 오직 부활과 생명의 주 예수님만이 죽음의 행렬을 멈추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14절 후반절 말씀을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예수님은 관에 누워 있는 청년을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Young man, I say to you, get up!)” 예수님의 말씀이 선포되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죽었던 청년이 벌떡 일어나 앉더니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태초에 인간을 창조하시고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이 청년을 죽음에서 일으켜 세웠습니다.

죽은 청년을 다시 살리신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부활이요 생명의 주님이십니다. 이 예수님만이 이미 죽어 관속에 누워있는 청년을 능히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청년’은 신체적ㆍ정신적으로 한창 성장하거나 무르익은 시기에 있는 사람으로, 인생의 봄을 의미하는 ‘청춘세대’를 지칭합니다. 통계청에서는 만 15~29세 남녀를 청년으로 정의하고, 정당에서는 19~45세를 청년당원, 의학계에서는 젊은 연구자상 수상 기준을 만 45세 이하로 정하고 있습니다. 최근 UN에서는 ‘새로운 청춘’의 나이를 18세에서 65세까지로 발표하였습니다. 문제는 나이가 젊다고 다 청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청년이라면 청년다워야 청년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청년다움’이란 어떤 삶일까요? 청년은 가능성에 도전하는 시기입니다. 비록 성공 확률이 희박해도 계산하지 않고 도전하는 사람이 바로 청년입니다. 또한 비전을 품고 사명을 위해 달려가는 시기입니다. 개척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는 열정을 가진 사람이 바로 청년입니다. 유명한 설교자 스펄전은 17세 때 설교를 시작했고 리빙스턴은 23세에 아프리카 선교사로 떠났습니다. 예수님도 청년의 때 인류구속역사를 완성하셨습니다. 일찍이 조선시대 남이장군도 ‘남아이십미평국 후세수칭대장부’(남아 이십에 나라를 평정하지 못하면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 일컫으리오) 고백하였고, 20세에 왕위에 올라 세계를 정복한 알렉산더 대왕은 “최고의 보물은 내 안에 있는 꿈이다. 꿈이 있기에 오늘의 내가 존재하고 나의 미래가 존재하는 것이다. 고난을 견디고 극복한 자의 삶이 진정한 삶이다“ 외쳤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나오는 청년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죽어서 관속에 누워 있습니다. 생명도 없고 꿈과 희망이 없습니다. 주위 사람들에게도 큰 슬픔과 절망감을 안겨 줍니다. 아무리 똑똑한 수재라고 해도 사망권세에 사로잡히면 두려움과 슬픔과 허무 가운데 살 수밖에 없습니다. 계절은 봄이건만 내면은 여전히 추운 겨울입니다. 중간고사 기간에도 헛생각으로 집중을 못합니다. 안일과 나태와 무기력증에 빠져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합니다. 청년들은 이런 어둡고 슬픈 현실 앞에 취업과 장래에 대한 두려움의 관에 갇혀 자기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비단 양들만의 문제입니까? 우리는 ‘목자’라는 타이틀 갖고 살지만 캠퍼스개척이 어려워 심방포기, 전도포기, 1대1포기, 제자양성포기, 기도포기 등 영적인 N포세대로 전락하기 쉽습니다. 도전, 변화, 개척이라는 단어가 부담이 되십니까? 그러면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안일과 소시민의 관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청년답게 일어날 수 있습니까? 청년다움을 회복하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바로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요5:24절은 말씀합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내 힘으로는 관에서 일어날 수 없지만 사망권세를 깨고 부활하신 주님의 음성을 들을 때 능히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회당장 야이로의 죽었던 딸을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달리다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그러자 죽었던 소녀가 일어나 걸었습니다.(막5:41) 죽은 지 나흘이나 되고 썩어 냄새가 나던 무덤 속의 나사로를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나사로야 나오라.”(요11:43) 그러자 죽었던 그가 손발이 베에 묶인 채 무덤에서 걸어 나왔습니다.

우리도 이 시간 부활하신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겠습니다. “청년아! 일어나라!” ‘청년’에 섬기는 양 이름을 넣어서 힘차게 외쳐보겠습니다. 양들은 자신의 목자님 이름을 넣으시면 됩니다. “OO~일어나라!” 우리가 주님의 음성을 깊이 듣고 두려움과 무기력과 절망의 관에서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허무와 운명의 관에서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안일과 게으름, 정욕의 관에서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청년이 살아나야 교회가 살아나고 캠퍼스가 살아나고 나라가 살아나게 됩니다. 우리 모두 관에서 일어나서 청년다움을 회복하고, 진정한 청춘의 인생 살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어려운 현실 앞에서도 믿음으로 도전하고 개척하며 힘차게 자기 십자가를 지고 복음전파의 사명을 잘 감당하길 기도합니다.

관속의 청년은 어머니뿐만 아니라 나인성 사람들에게 슬픔의 근원이었지만, 일어난 청년은 큰 기쁨과 확신과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주는 귀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돕는 한 사람이 변화되어 일어나면 요회와 팀과 교회와 세상을 기쁘게 할 것입니다. 이런 믿음과 희망으로 이 시대 영적으로 죽어있는 청년들에게 열심히 말씀을 전해야겠습니다.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확신을 갖고 믿음으로 도전하는 봄학기가 되길 기도합니다.

저는 부활절 말씀강사를 맡게되자 큰 부담이 되었습니다. 지난 2년간 코로나 관속에 갖혀 살았으나 죽은자처럼 조용히 살았는데 ‘청년아 일어나라’ 말씀을 보는 순간, 바로 ‘승재야! 일어나라’ 하시는 주님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올초에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행6:4) 말씀으로 출발했지만 허송세월하다가 봄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정신차리고 12누가 제자양성을 위해 캠퍼스심방과 대면 1대1에 도전하려고 했지만 코로나에 한방 맞은 채로 연구실에 드러누워 있었습니다. 비문증에 이명에 잔기침과 피곤에 시달리자 건강에 대한 염려와 두려움이 들었습니다. 올해도 어렵겠다는 어두운 생각과 무기력에 시달렸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죄인에게 일어나야 할 청년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제 자신임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제가 영육간에 피곤과 무기력으로 인해 드러눕고자 했던 것을 애통히 회개합니다. “승재야! 일어나라!” 명령하시는 주님께 순종해서 무기력의 관에서 일어나겠습니다. 제가 부활의 생명력을 덧입고 캠퍼스에 도전하여 관에 누워 있는 청년들을 살리는 역사를 힘써 섬기길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의 말씀에는 죽음 권세를 파하고 생명을 살리는 권능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병들어 죽어가는 백부장의 종을 살려주셨습니다. 이미 죽어 관속에 누워 있는 청년을 살려주셨습니다. 이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의 주님이십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복음역사를 섬길 때 영적으로 죽은 청년들이 살아나는 놀라운 생명구원 역사가 일어날 것을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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