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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2-05-01 (일) 10:42
분 류 누가복음
첨부#1 2022년_누가복음_제7강-1.hwp (102KB) (Down: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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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누가복음 제7강]열두 사도를 세우신 예수님
2022년 누가복음 제7강                                                      이 종 하

열두 사도를 세우신 예수님
말씀 / 누가복음 6:1-16
요절 / 누가복음 6:13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예수님이 온 몸에 나병 들린 부정한 사람에게 손을 대시고 깨끗케 해주셨다는 소문이 널리 퍼졌습니다. 그때 갈릴리와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들과 율법 교사들이 ‘예수라는 사람이 누구이며, 무엇을 가르치는가?’ 직접 알아보고자 찾아왔습니다. 이런 그들 앞에서 예수님은 중풍병자에게 죄 사함을 선포하시며 세리 레위를 제자로 부르시고 함께 식사를 하십니다. 그러자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신성모독자로 규정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옛 질서 속에 있는 사람들과는 함께 할 수 없다고 선포하십니다. 이제 예수님은 새로운 사람들을 택하셔서 그들과 함께 하나님 나라 역사를 이루어가고자 하십니다.
오늘 본문은 안식일 문제로 종교지도자들과 2번 논쟁하신 후에 열두 사도들을 세우시는 내용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안식일은 어떤 날인가, 예수님은 안식일을 어떻게 지키시는가, 그리고 열두 사도를 세우신 예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제 1장,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이시다

안식일에 예수님 일행이 밀밭 사이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때에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었습니다. 늘 배가 고팠던 제자들은 평소 습관대로 한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이 남의 밭의 이삭을 잘라 먹은 이 행위는 당시 유대사회에서 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그것을 허락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신명기 23장 25절에 다음과 같이 되어 있습니다. “네 이웃의 곡식밭에 들어갈 때에는 네가 손으로 그 이삭을 따도 되느니라 그러나 네 이웃의 곡식밭에 낫을 대지는 말지니라”. 그런데 문제는 그런 일을 안식일에 행한 것이었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느냐”. 어떤 바리새인들이 이 일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그들은 백성들이 예수님께 모여들자 위기의식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예수님이 하신 일은 너무나 파격적이었습니다. 그냥두면 많은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자신들에게 큰 적이 될 것 같았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일행을 따라다니며 면밀하게 감시를 하였습니다. 그러던 차 안식일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 먹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딱 걸린 것이었습니다. 십계명에는 “안식일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말씀밖에 없었습니다(출 20:10). 문제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것이 어떻게 하는 것인가 이었습니다. 랍비들은 이에 대한 적용으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39가지 일을 규정해놓았습니다. 그 규정에 따르면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은 것은 곡식을 거두어들이고 도리깨로 두드리며 키질을 해서 음식을 장만한 것으로 안식일 규정을 4가지나 어겼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이 볼 때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 법을 어기므로 분명히 유대 사회를 무질서하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이 무엇입니까? 3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 및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예수님은 구약성경에 기록된 다윗의 예를 들어서 제자들의 행동을 변호하십니다(삼상 21:1-7). 바리새인들은 다윗에 대한 구약성경 이야기를 자세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의 핵심은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다만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사울로부터 도피한 다윗은 제사장의 성읍인 놉 땅으로 갔습니다. 그때 그는 매우 굶주렸습니다. 그러므로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다윗 자신과 그리고 함께한 소년들이 허기를 면할 수 있도록 먹을 것을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제사장의 수중에
성전에서 물려낸 거룩한 떡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율법에서 이 거룩한 떡, 진설병은 오직 제사장만이 먹을 수 있었습니다(레 24:5-9). 아히멜렉은 다윗의 형편이 너무 어려운 것을 보고 법을 어기는 줄 알았지만 이 떡을 주어 먹게 하였습니다. 랍비 전승에 의하면 이 날은 안식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떡을 준 제사장, 떡을 먹은 다윗과 소년들 모두 율법 규정을 어긴 것이었습니다. 이 문제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 밀 이삭을 비벼 먹은 것에 비하면 매우 심각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히멜렉이나 다윗에게 어떤 징벌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이를 볼 때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목적은 사람을 살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율법의 목적과 한계를 잘 알고 계셨습니다. 성전법을 지키는 것보다 배고픈 자를 살리는 긍휼과 자비를 더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다윗왕은 당시 유대인들이 가장 존경하던 조상이었습니다. 그들이 내세우는 다윗도 결국은 율법을 어겼으며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되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이 예수님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다윗이고 이 갈릴리 무리는 그와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5절을 보십시오. “또 이르시되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더라”. 예수님은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선포하십니다. 당시 바리새인을 포함한 종교지도자들은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생각하며 자신들이 만든 장로유전을 통해 사회를 통제하였습니다. 안식일법도 그 범주에 속했습니다. 원래는 하나님을 잘 믿고자 한 것이었는데 이제는 변질되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법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났다’고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놓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가장 신본주의 공동체이어야 하는데, 가장 인본주의 이익단체가 된 것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안식일의 주인은 하나님이 아니라 대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 그들 자신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을 헌 옷, 낡은 부대로 규정하십니다. 이제 예수님은 본래 안식일을 회복하고자 하십니다. 그러므로 본래 하나님이신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이심을 선포하십니다. 그러나 이미 마음이 딱딱한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의 말씀 선포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고발할 증거를 찾고자 하였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또 다른 안식일에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사 가르치실새 거기 오른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또 다른 안식일에 예수님은 회당에 들어가셔서 가르치셨습니다. 그곳에 오른손 마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외경 ‘나사렛 사람들의 복음서’에 의하면, 그는 석공이었는데 일을 하다가 오른손을 다쳐서 말라버렸고,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어서 빌어먹고 살았습니다. 현재 그는 한 손 마른 것으로 인해서 마음도 마르고 생각도 마르고 그의 인생 전체가 말라버린 상태였습니다. 그는 더운 한여름에도 늘 긴 소매옷을 입고 오른손을 호주머니 깊숙이 넣고 다녔습니다. 그는 안식일에 회당 안에 있었지만 마음에 참된 안식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를 도와주고자 하십니다.
7절을 보십시오.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가 엿보니”.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여전히 예수님을 엿보고 있었습니다. 당시 랍비들의 해석에 의하면 목숨이 위급한 상황이나 아이를 낳거나 할례를 베풀어야 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이 기준으로 볼 때 손이 마른 경우는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허락되지 않는 의료행위를 하는지 감시하고 있었습니다.
본래 하나님은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를 원하셨습니다(사 40:5). 또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기를 원하셨습니다. 이를 구약의 이사야 선지자가 외쳤고, 예수님 당시는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외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보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나 구원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그 시대 영혼들의 목자로 세움 받았지만 사람들의 인생 문제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사람들이 율법에 맞추어서 사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회당 안에서도 예수님이 병을 고쳐서 안식일 법을 어기는가 하는 것만 주시하였습니다.
8~10절을 보십시오. 사람의 심중을 살피시는 예수님은 종교지도자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아셨습니다. 이제 그들의 잘못된 생각을 드러내기 위해서 도전하십니다. 예수님은 손 마른 사람에게 일어나 한가운데 서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그가 순종하여 일어나 섰습니다.
9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묻노니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며”. 예수님은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는 것이 옳으냐, 그러지 않는 것이 옳으냐'라고 묻지 않고 '안식일에 선행이 옳으냐 아니면 악행이 옳으냐'라고 물으십니다. 이 질문은 병든 사람이 죽을 처지가 되었을 경우에만 안식일에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당시 전통에 대해서 반격하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보시기에 한손 마른 사람이 치료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안식일이라 해서 내버려두는 것은 율법의 근본정신인 사랑을 도외시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악행으로 보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으로서 선을 행하고 생명을 구하는 일을 과감히 실행하려고 하십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한 손 마른 사람에게 “손을 내밀라”고 하십니다. 이 명령은 사실 그 손 마른 사람이 하기 어려운 행동이었습니다. 손을 내미는 순간 오랜 동안 숨겨두었던 앙상 마른 손, 인생을 송두리째 망가뜨린 그 손을 모든 사람이 보게 될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에게 손을 내밀라고 명하십니다. 그는 예수님을 믿고 모든 것을 예수님께 맡기고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러자 그 말라버렸던 손이 완전히 회복되었습니다. 그 부끄럽고 수치스러웠던 손이 이제 더 이상 부끄럽지 않은 손, 당장 일을 할 수 있는 손, 섬기고 봉사하는 손이 된 것이었습니다. ‘내 손이 회복되었다’하며 동네방네 자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이 일을 통해 어떤 것이 진정 선을 행하는 것인지, 생명을 구하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보여주십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행한 일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이성을 잃고 덤비고자 하였습니다. 바로 자기들 앞에서 안식일 규정을 어기고 손 마른 사람을 고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손발을 사용하신 것이 아니라 한 마디 말씀만 하셨기 때문에, 일을 했다고 볼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난감하고 혼란스러운 상황에 빠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들의 분명한 생각은 예수님을 더 이상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음모를 시작하였습니다.
‘안식’이란 ‘멈춤’, ‘쉼’이란 뜻입니다. 그러면 안식일에 무엇을 멈추는 것입니까? 안식일의 기원은 창세기 2장 2절 하나님이 천지창조를 완성하시고 쉬신 것입니다. 6일 동안 천지창조를 완성하신 후, 하나님은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편에서 안식일은 자신이 완성하신 창조세계에 대해 만족하시고 즐거워하신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들과 함께 안식일을 누리고자 하셨습니다. 십계명의 네 번째 계명 “안식일을 거룩히 구별하여 지키라”는 말씀에는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참된 안식을 누리는 복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들어있습니다. 그러면 참된 안식이란 무엇입니까? 단지 하던 일을 멈추는 것입니까? 물론 일을 멈추는 것은 쉼이 됩니다. 그러나 인간이 쉼을 누리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죄 때문입니다. 인간이 죄를 지음으로서 하나님도 안식하지 못하게 되었고, 인간도 안식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시편 95편 10, 11절 “내가 사십 년 동안 그 세대로 말미암아 근심하여 이르기를 그들은 마음이 미혹된 백성이라 내 길을 알지 못한다 하였도다 그러므로 내가 노하여 맹세하기를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도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순종 때문에 하나님은 광야 40년 동안 늘 근심하셨습니다. 쉼이 없고 평안이 없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였습니다. 이렇게 죄로 인해서 쉼이 없는 삶을 살아가던 사람들이 어떻게 안식을 누리게 되었습니까? 로마서 8장 1, 2절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이 말씀은 우리가 어떻게 참된 안식을 누리게 되었는가 알려줍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로 말미암아 영혼의 안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안식일에 담긴 뜻이 예수님 안에서 완전히 성취된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로 인해서 하나님도 안식하게 되었고 인간도 안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초대 교회는 이전 안식일 대신에 ‘주님의 날’에 모여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수님 안에서의 새 안식일은 모든 얽매이는 것에서 해방되어서 하나님과 사람이 평안을 누리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판단하고 정죄하는 마음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어떤 잘못을 했더라도 예수님 안에서 죄 사함을 받고 안식을 누려야 합니다. 그리고 참된 자유함을 주신 하나님과 예수님을 찬양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제 2장,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시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해하고자 본격적으로 음모를 꾸밀 때 예수님은 무엇을 하셨습니까? 12절을 보십시오.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이때에 예수님은 기도하러 산으로 가셔서 밤이 새도록 기도하셨습니다. “밤이 새도록”은 밤새 깨어 있었다는 뜻입니다. 상황이 어려울 때 예수님은 인간적인 갈등을 하지 않으시고 기도의 싸움을 하셨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갈까 하나님의 뜻과 지혜를 구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밤새 기도하시고 찾으신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제자를 세워서 복음역사를 섬기는 사람으로 키우시는 것이었습니다.
13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날이 밝자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습니다. 성경에서의 숫자 열둘 즉, 12는 완전수 중의 하나로 ‘하나님 통치의 온전하심’을 나타냅니다. 또 ‘하나님나라와 그 백성’, 그리고 ‘이스라엘 전체 구원’ 등의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사도행전 1장에서 가룟 유다를 대신하여 맛디아를 뽑는 것을 보면, ‘열둘’이라는 숫자의 중요성을 알 수 있습니다. 본래 하나님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통해서 온 세상 만민들을 구원하고자 계획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우상숭배 하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열두 명의 사도들을 부르셔서 그들로 새 이스라엘을 세우시고 새로운 구원역사를 계획하십니다. 한편, 예수님이 열둘을 택하신 것은 예수님이 인격적으로 양육하고 훈련할 수 있는 숫자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무리보다 소수의 사람들을 택하여 훈련을 하시고 사도로 키우고자 방향 잡으셨습니다. 13절에서 특별하게 주목해야 할 단어는 ‘사도’입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 한 번 사용되지만(마 10:2; 막 6:30), 누가복음에서는 9번이나 나옵니다(6:13; 9:10, 12; 11:49; 17:5; 22:14; 24:9, 10, 11). 이처럼 누가복음에서 열두 제자들은 사도의 권위를 지닌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제자가 부름을 받은 자라면, 사도는 보냄을 받은 자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로 칭함을 받은 현재 제자들은 장차 예수님의 권한을 위임 받아서 보내심을 받을 예수님의 대리자들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이 열두 명의 제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가고자 분명한 방향을 잡으셨습니다. 이후 공생애 기간 동안 일관되게 이 일에 집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영육 간에 참담할 정도로 어두운 그 시대에 낡은 가죽부대가 되어 도저히 복음을 담을 수 없는 종교 지도자들을 멀리하시고, 새 가죽부대와 같은 제자들을 사도로 임명하셔서 그들로 하여금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게 하는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면 열두 사도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14~16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사도로 칭하신 사람들은 베드로라고도 이름을 주신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과,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셀롯이라는 시몬과, 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예수를 파는 자 될 가룟 유다였습니다. 예수님이 택하신 열두 사도들은 대부분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어부출신, 세리 출신, 정치적인 급진주의자,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명확한 증거를 보기 원했던 회의주의자, 장차 예수님을 배반할 자 등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세움을 받은 것은 믿음이 좋았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인간적이었고 자주 믿음이 흔들렸습니다. 학식이나 탁월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사도행전 4:13,14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고 비난할 말이 없는지라”. 예수님은 갈릴리 바닷가에서 평범하게 물고기나 잡고 있던 초라한 사람들을 예수님의 위대한 역사에 부르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왜 이런 사람들을 사도로 세우신 것입니까? 첫째로, 자신들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을 돕도록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둘째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를 만한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배우고 예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셋째로,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탄력성이 있는 새 부대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율법과 전통에 얽매여서 예수님이 전해주시는 복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열두 명의 사도들은 예수님의 복음을 스펀지와 같이 빨아들였습니다. 현재 그들은 다듬어지지 않은 돌덩어리와 같았지만 예수님이 위대한 조각가가 되셔서 장차 3년 동안 그들을 갈고 또 갈아서 불멸의 작품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장차 위대한 하나님의 종들이 될 소망을 두셨습니다. 예수님이 이런 뜻을 두셨기 때문에 결국 이들은 예수님의 뜻대로 위대한 하나님의 종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각 시대마다 그 시대 영혼들을 품고 섬길만한 사람들을 택하여 그들을 통해서 구원 역사를 이루어 오셨습니다. 그러면 오늘날에는 누가 이 시대 영혼들을 마음에 품고 섬길 수 있습니까? 누가 복음을 알지 못해서 방황하며 죽어가는 이 시대 영혼들에게 생명의 복음을 전하여 구원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셨고 사용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과연 내가 이 시대의 목자요 영적인 지도자라고 할 수 있는가 반문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아시면서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 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신축성 있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아들이고 순종하기에 힘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주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이 시대를 섬길 수 있는 영적인 지도자들을 양성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과거 두려움, 허무주의, 가난한 현실 등으로 인하여 한손 마른 자와 같이 불쌍한 자였습니다. 지난 40년간 주님은 저를 양육하시고 영육간에 많은 복을 주셨습니다. 최근에는 몇 년간 새벽기도를 하게 하시고 제가 보기에도 정말 많이 변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사도의 직분 가운데 중요한 하나인 전도에 정말 자신이 없었습니다. 제가 변화되는데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렸는데 한 사람이 제자로 성장하기까지 섬기는 것은 심히 부담스러웠습니다. 이미 집안의 4아들을 감당하느라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이 전도 문제에 대해 맞닥뜨리게 되었습니다. 사실 요나와 같이 숨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메시지를 쓰면서 장시간 묵상하는 가운데 주님이 저를 얼마나 준비시키셨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직장이 바로 학생들이 우글거리는 대학이었고, 환자들을 통하여 수없이 감당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무엇보다 말씀을 오랫동안 공부하였고, 저의 든든한 영적 후원자인 순영 동역자가 있었습니다. 문제는 저의 마음이었습니다. 요즘 PC앞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을 보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21세기 대명천지에 약소국이 침탈당하고 주민들이 죽고 삶의 기반을 잃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무겁고 아무것도 하기 싫었습니다. 한편 진료실 창밖의 많은 학생들을 보면서 전도해야 한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무시받기 싫은 마음, 이전에 실패했던 경험으로 인해 실행하기 어려웠습니다. 주님은 이런 저에게 오늘 말씀을 통해 주님을 바라보도록 하십니다. 지금 저 앞에 놓인 캠퍼스 미션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다시 생각하게 하십니다. 제가 이 미션을 위해 이 시대 택함을 받았음을 붙들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저를 통해 역사하실 것을 믿고 새롭게 복음 전도에 도전해야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십니다. 그분은 어떤 오해가 있을지라도 제자들을 보호하셨고, 한 손 마른 자의 인생이 회복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으로부터 사랑을 배웠고 안식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를 이 시대 제자로 삼으시고 함께 하십니다. 이제 우리가 예수님의 좋은 사도가 되어 우리에게 맡겨주신 캠퍼스 구원역사를 충성스럽게 섬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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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0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5강]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관리자 2022-04-10 662
749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4강]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관리자 2022-04-03 408
748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3강]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신 예수님 관리자 2022-03-28 430
747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2강]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관리자 2022-03-20 437
746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1강]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관리자 2022-03-13 572
745 민수기 [2022년 민수기 제17강]이스라엘의 노정과 기업 분배 관리자 2022-03-06 415
744 민수기 [2022년 민수기 제16강]형제들은 싸우러 가거늘 관리자 2022-02-27 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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