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세계선교 | 각부모임 | 경성소모임 | 성경연구 | 사진자료실 | 영상자료실 | 경성쉼터 | JBF/EBF/CBF | 기타 |

회원등록 비번분실

  Bible Study  
주일예배메시지
성경공부문제지
수양회강의
특강
구약강의자료실
신약강의자료실
강의안책자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리스닝
작성일 2010-07-18 (일) 12:32
분 류 요한복음
첨부#1 2010요한복음20-1.hwp (60KB) (Down:157)
ㆍ추천: 0  ㆍ조회: 2619      
IP: 61.xxx.74
[2010년요한복음제20강]내가 왕이니라

 2010년 요한복음 20강                                                                          최동진

내가 왕이니라

본문; 요한복음 18:1-40
요절; 요한복음 18:37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 ”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종교지도자들에 의해 체포당하시고 심문받으시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심문 받으시면서도 진리의 왕으로서 자신을 분명히 드러내고 계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진리의 왕 예수님을 깊이 영접하고 예수님을 본받아 불의한 이 시대 가운데 진리의 증거자의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 내가 그니라(1-11)
  1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다락방 강해를 마치시고 대제사장적 기도를 하신 후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건너편으로 나가셨습니다. 기드론 시내 저편에는 겟세마네 동산이 있었습니다. 기드론 시내는 예루살렘 성전을 끼고 있었는데 1년에 한두 번 정도만 물이 흐르고 나머지 기간에는 마른 계곡이었습니다. 그러나 유월절이 되면 약 26만 마리의 양들이 희생되어 그 피가 강물처럼 기드론 시내를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예수님은 이번 유월절에는 바로 예수님 자신의 피가 흘러내리게 될 것을 아시고 그곳을 건너 겟세마네 동산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이곳은 예수님께서 평소에 기도하시던 곳이요, 제자들과 교제를 나누고 교육을 하기 위해 자주 찾아오시던 곳이었습니다. 누가복음에는 습관을 좇아 가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곳에서 늘 기도하심으로 영적인 쉼과 하나님의 위로를 얻고 사명을 새롭게 하셨습니다. 이날도 예수님은 큰 일을 앞두고 기도로 힘을 덧입기 위해 이곳에 오셨습니다. 가룟 유다도 이 장소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곳을 피해 다른 곳으로 가서 기도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평소대로 이곳에 오셔서 자발적으로 원수들의 손에 자신을 넘겨주셨습니다. 요한복음에는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에 대해서는 자세히 기록되어있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이 목전에 다가왔을 때 예수님의 심령은 슬픔과 고민으로 압도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기서 주저앉지 않으셨습니다. 마태복음26:38,39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있으라 하시고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고자 결단하셨습니다. 그리고 심령의 모든 슬픔과 고민이 물러가고 십자가를 지실 힘과 능력을 덧입으실 때까지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애써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기도를 마치셨을 때 유다가  군대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서 얻은 아랫사람들을 데리고 등과 횃불과 무기를 가지고 그곳에 왔습니다. 유다는 스승을 배반하고 떠난 것도 모자라 이제는 스승을 체포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유다와 함께 온 군대는 유월절에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유대인들이 몰려들 것에 대비해 예루살렘의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로마에서 파견된 특수부대원들이었습니다. 등과 횃불이 어두운 밤하늘을 밝히고 곳곳에서 창칼이 불빛에 번뜩였습니다. 긴장감이 감도는 살벌한 분위기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장차 닥칠 일들을 다 아셨습니다. 죄인처럼 체포당하시고 심문받으실 것과 채찍에 맞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것을 다 아셨습니다. 두려워 떨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으시고 담대히 나아가서 물으셨습니다.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그들이 “나사렛 예수”라 하자 예수님은 “내가 그니라” 하시며 자신을 분명히 나타내셨습니다. “내가 그니라”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군병들은 일제히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졌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영적 권위에 완전히 압도당했습니다. 예수님의 이런 권위가 어디서 온 것입니까? 이런 권위는 세상 지위나 타이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고자 하는 결단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회피하지 않고 겟세마네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고자 분명한 믿음의 결단과 각오를 하셨을 때 누구도 감히 넘볼 수 없는 영적인 권세를 위로부터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것입니다. 정말 목숨을 내놓고 하나님을 위해 살고자 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이런 권능을 덧입혀주십니다. 우리도 이런 권능을 덧입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생명의 말씀을 주시고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왜 양들 앞에서 위축되어 말도 제대로 붙이지 못하는 것입니까? 양들이 총을 가졌습니까, 칼을 가졌습니까? 무엇이 두렵습니까? 하나님의 뜻에 철저히 복종하고자 하는 분명한 자세와 결단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렇습니다. 만일 주와 복음 역사를 위해 목숨을 내놓고자 한다면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로 담대하게 나아가 양들을 사로잡고 있는 어떤 원수의 세력도 능히 물리칠 수 있습니다. 제가 사명인의 삶을 산다고 하면서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인해 주와 복음 역사를 위해 철저히 희생하려 하기보다 상처받지 않고 적당히 체면만 유지하고자 하였음을 고백하고 회개합니다. 제가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복종하기 위해 날마다 기도의 싸움을 힘써 감당함으로 하나님 주시는 영적인 권세를 덧입고 캠퍼스로 나아가 담대히 복음 증거자의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8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체포당하시는 위기의 순간에도 자신을 잡으러 온 자들에게 제자들을 안전하게 보낼 것을 명하셨습니다. 이렇게 하신 것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매순간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말씀을 이루어나가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해서 말씀대로 싸우셨습니다. 군인들이 전쟁을 할 때에도 Field Manual(FM)이란 것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각 병사별로 각자 맡은바 임무와 임무를 수행하는데 필요한 제반 사항들이 세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군인들은 이를 몸에 익히기 위해 평소 실전과 같은 훈련을 반복해서 받습니다. 훈련을 잘 받은 사람이 실전에서 자신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여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FM대로 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FM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보내라 하신 것도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해서 말씀을 이루어드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인이 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교범으로 삼고 말씀이 몸에 배고 나의 삶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기까지 연단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어떻게 했습니까? 그는 칼을 뽑아서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오른편 귀를 베어버렸습니다. 완전무장한 군인들을 상대로 단독으로 칼을 빼들고 대항한 베드로는 참으로 용기가 있어 보입니다. 또한 스승을 위해 목숨을 내놓고 싸우는 충성스러운 제자처럼 보입니다. 어두운 밤에 횃불 조명 아래서 상대방의 귀만 자른 베드로의 칼솜씨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과연 적의 귀를 자르기 위해 칼을 휘둘렀을까요? 아닙니다. 두려움과 혈기 때문에 아무든지 칼에 맞으면 맞고 아니면 말고 하는 심정으로 마구 휘두른 칼에 아니면 말고의 바로 그 말고의 귀가 잘린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에게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11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베드로더러 이르시되 칼을 칼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검을 쓰는 방법과 잔을 마시는 방법이 있습니다. 검을 쓰는 방법은 무력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때문에 강해보이고 또 그 효과가 빨리 시원스럽게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베드로처럼 위기의 순간에 검을 휘두르기를 잘 합니다. 그러나 검을 사용하는 자는 검으로 망합니다. 반면 잔을 마시는 것은 소극적이고 약하고 손해 보는 것 같아서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검을 집에 꽂으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검을 사용하고자 하셨다면 당장이라도 열두 영이 더 되는 천군천사를 불러 원수들을 싹 쓸어버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어드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시고 희생의 잔, 순종의 잔, 인내의 잔, 십자가의 쓴 잔을 마시고자 하셨습니다. 십자가의 잔은 쓰지만 문제를 근본적으로 확실하게 해결하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데 검을 사용하고 싶은 유혹을 많이 받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많은 은혜를 부인하고 반발하고 대적하는 사람들을 보면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키기 위해 칼을 휘두르고 싶습니다. 그러나 감정적으로 칼을 잘못 휘둘렀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문제해결을 더 어렵게 만들게 됩니다. 진정한 문제 해결은 칼에 있지 않고 잔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하고 칼을 집에 꽂아야 합니다. 대신에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 순종하여 인내의 잔, 기도의 잔, 섬김의 잔을 마셔야 합니다.

II. 나는 아니라(12-27)
  마침내 예수님은 체포당하시고 결박되신 채로 먼저 안나스에게로 끌려가셨습니다. 안나스는 로마의 권력을 등에 업고 불법으로 대제사장이 되었고, 권력을 이용하여 성전을 강도의 굴혈로 만든 장본인이었습니다. 그러다가 현재는 그의 사위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실권이 안나스에게 있었기에 군병들은 예수님을 결박하여 먼저 안나스에게로 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끌려가실 때 제자들은 혼비백산하여 모두 흩어졌습니다. 그러나 수제자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님을 멀찍이 따라갔습니다. 베드로는 죽는 데까지 따라가겠노라 큰소리친 것 때문에 차마 도망가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대제사장과 친분이 있던 요한은 그 집에 문제없이 들어갈 수 있었지만 베드로는 그렇지 못해 요한의 도움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지키는 여종이 베드로를 알아보고 말했습니다.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베드로는 얼떨결에 “나는 아니라” 부인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며 종들과 함께 불을 쬐었습니다. 베드로는 항상 예수님의 수제자임을 자부하였고, 한 때는 모든 사람이 주를 버릴지라도 자기는 절대로 버리지 않겠다며 큰소리치던 충성파 제자였습니다. 그러나 막상 힘든 현실에 부딪히자 자기 입으로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라고 부인했습니다. 19절을 보십시오. 한편 예수님은 안나스에게 심문을 받으셨습니다. 안나스는 예수님께 그의 제자들과 교훈에 대해 심문하였습니다. 예수님에게서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아무런 흠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예수님의 교훈에서 꼬투리를 잡아 죄목을 정하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의 동향을 파악하여 모두 잡아들임으로 예수님의 조직을 완전히 뿌리 뽑고자 하였습니다. 이를 멀리서 듣고 있던 베드로는 머리가 쭈삣 서고 오금이 저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악한 의도를 꿰뚫어보시고 당당하게 말씀하셨습니다. 20,21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드러내어 놓고 세상에 말하였노라 모든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항상 가르쳤고 은밀하게는 아무것도 말하지 아니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들은 자들에게 물어보라 그들이 내가 하던 말을 아느니라” 예수님은 지금까지 오직 진리만을 전파하셨기에 숨길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치심은 어두운 세상에 밝은 빛이 되어 사람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반면 안나스는 불법을 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몰래 숨어 재판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진리에 대한 증거는 안나스의 양심을 찔렀습니다. 예수님께서 너무나 당당하게 말씀하시자 곁에 섰던 아랫사람 중 하나가 손바닥으로 예수님을 쳤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내가 말을 잘못하였으면 그 잘못한 것을 증언하라 바른 말을 하였으면 네가 어찌하여 나를 치느냐?” 하시며 예수님이 안나스를 심문하고 계셨습니다. 안나스는 예수님에게서 아무런 죄도 발견하지 못하고 결박한 그대로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보냈습니다. 이때 종들 틈에서 불을 쬐고 있던 베드로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25절을 보십시오. 유난히 안절부절 못하며 떨고 있는 베드로에게 물었습니다. “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그러자 베드로는 또 다시 “나는 아니라” 부인했습니다. 그 때 베드로가 칼로 귀를 베어버린 말고의 친척 중 한 사람이 베드로를 알아보고 동산에서 분명히 보았다고 하며 확실한 증거를 대며 물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도 베드로는 아니라고 끝까지 부인하였습니다. 마가복음에는 저주하며 맹세까지 하면서 부인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막14:71) 베드로가 세 번째 부인하자 닭이 기다렸다는 듯이 슬프게 울었습니다. 유월절 만찬석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오늘 닭이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신 말씀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베드로는 닭 우는 소리를 듣고는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심히 통곡하며 울었습니다. 주를 위해 목숨을 버리겠다고 맹세까지 한 베드로가 왜 이렇게 비참하게 주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였을까요? 그는 인간의 연약함을 알지 못한 채 자신의 인간적인 의리, 충성심을 과신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연약함을 지적하시며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하셨지만 오히려 자신의 진심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섭섭해 하며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 흘려 기도하실 때 그는 육신의 피곤에 져서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를 안타까워하시며 “...너희가 나와 함께 한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26:40,41)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깨어 기도해야 할 절대적인 이유는 우리의 연약함 때문이요, 사단의 시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짓누르는 눈꺼풀의 무게도 이겨내지 못할 정도로 연약합니다. 베드로가 깨어 기도하지 않았을 때 사단의 시험에 들어 두려움의 종이 되어 스승을 부인하게 된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 실패를 통해 자신의 연약함과 기도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이후 베드로는 기도의 종이요 담대한 복음의 일꾼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그는 시간을 정해놓고 규칙적으로 성전에 올라가 기도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베드로는 새벽닭 우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벌떡 일어나 회개하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랬을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을 덧입고 담대하게 복음역사를 섬길 수 있었습니다. 기도의 필요성을 깨달은 사람만이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면 기도하는 것처럼 힘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기도 없이 절대로 영적 싸움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가 자신의 부족하고 연약한 점을 인정하고 때마다 하나님께 나아가 간절히 기도함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과 능력을 덧입고 승리의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II. 내가 왕이니라(28-40)
  28절을 보십시오.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안하고 이른 새벽에 예수님을 로마 총독 빌라도의 관정으로 끌고 갔습니다. 공회는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반드시 해 뜬 후 정시에 모여야 했습니다. 특히 사형 판결은 밤에 하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밤에 불법 집회를 감행했고, 새벽에 빌라도 앞으로 끌고 와서 사형을 언도하게 했습니다. 예수님은 밤새도록 심문받으시고 새벽에 총독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끌고 온 유대인들은 유월절을 맞이하여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면 부정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예수님만 총독 관저로 들여보내고 자기들은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무죄한 사람을 살해하려는 음모를 꾸미는 죄를 지으면서도 종교적으로는 거룩함을 지키려고 하는 회칠한 무덤과 같은 위선자들이었습니다. 빌라도가 이른 새벽부터 죄인을 데려온 이유가 무엇인가 물었을 때 그들의 대답이 무엇이었습니까? 30절을 보십시오. “이 사람이 행악자가 아니었더라면 우리가 당신에게 넘기지 아니하였겠나이다.” 그들은 확실한 죄목도 없이 빌라도에게 왔습니다. 머리 좋은 빌라도는 유대인들의 종교문제에 개입하고 싶지 않아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하며 이 문제를 그들에게 넘기려 하였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일 권한이 없나이다”하며 본심을 드러내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가리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이방인들의 손에 넘겨져, 조롱과 채찍질 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하실 것이라 미리 말씀하셨습니다.(마20:19) 예수님은 이방인의 손에 넘겨져 많은 고난을 당하시고 온 인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높이 달리심으로 말씀을 성취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유대인들만의 메시야가 아니라 온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이심을 드러내셨습니다.
  빌라도는 유대인들의 압력에 못 이겨 이른 새벽에 관정에 들어가 다시 예수님을 심문하였습니다.(33)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이는 유대인들의 고소에 근거하여 정치적인 의미로 물은 것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직접 대답하지 않으시고,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냐? 다른 사람들이 나를 대하여 네게 한 말이냐?” 물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빌라도가 단지 다른 사람들의 고소 때문에 질문을 하지 말고 직접 예수님께 대해 알기를 바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방인 빌라도에게도 진리이신 예수님을 알리고 영생에 이르도록 도우셨습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귀찮다는 듯이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물었습니다. 그는 진리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고 사무적이고 정치적이었습니다. 그는 재판을 빨리 끝내고 쉬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구원의 주를 앞에 두고도 영생의 기회를 발로 차버리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빌라도를 불쌍히 여기시고 그를 진리의 세계로 초청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자신의 나라가 어디에 속하였는지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36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다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예수님은 자신의 나라가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 세상 나라와 세상에 속하지 않는 두 나라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에 속하지 않는 나라는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세상 나라는 사탄이 지배하는 나라요,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입니다. 세상 나라는 사탄이 지배하기 때문에 거짓과 비리, 부정부패와 권모술수와 폭력이 끊일 날이 없습니다. 무정하고 무자비합니다. 사람들은 이런 세계에서 보다 나은 행복한 사회를 건설하려 몸부림치지만 남는 것은 상처와 허무와 절망뿐이며 결국에는 멸망에 이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어떠합니까? 이 나라는 진리와 공평과 정의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 나라는 부정부패가 없고 상함도 해함도 없습니다. 이 나라는 검으로 세운 나라가 아니고 잔으로 세운 나라입니다. 이 나라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건설된 진리의 나라이기 때문에 결코 쇠하거나 망하지 않고 영원무궁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배피로 구원받고 이 나라의 시민이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우리는 현재 대한민국 서울시민으로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살고 있지만 이곳은 잠시 머물다 가는 정거장과 같습니다. 우리가 소망하고 영원히 거할 최종 목적지는 주님께서 세우신 하나님 나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므로 이 세상 가치관을 좇아 살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과 법도대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법도는 하나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 판단 기준이요, 최고 가치 기준으로 삼고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하여 살아야 합니다. 특별히 중요한 인생방향을 정해야 할 때나 위기의 때를 만날 때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말씀대로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때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고 승리의 인생을 살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던 빌라도는 “그러면 네가 왕이냐?” 물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무엇이라 대답하십니까? 37b절을 보십시오.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를 듣느니라.” 예수님은 자신이 왕이심을 밝히십니다. 그러나 세상 왕과는 달리 진리를 증거하시기 위해 이 땅에 왔음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물질주의, 육신주의, 인본주의에 깊이 빠져 있는 거짓된 세상에 진리를 증거하시기 위해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이 때문에 핍박과 미움과 조롱과 죽음의 위험을 당하셨지만 조금도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증거하신 진리는 구원을 주는 참된 진리입니다. 죄로 인해 멸망으로 치닫고 있는 인생들에게 참된 구원을 주는 진리를 전파하시고 마침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므로 구원의 진리를 완성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은 진리의 왕이십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주님의 다스림을 받는 자는 누구든지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며 영원히 진리의 길을 가게 됩니다.
  하나님은 과거 세상 가치관을 좇아 사람들의 인정을 구하며 살던 저에게도 찾아오셔서 진리의 길을 가도록 은혜 베풀어주셨습니다.  약속시간은 철저하게 지키고 맡은 일을 착실히 하는 저를 보고 친구들은 칼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하였습니다. 1982년 하나님의 은혜로 경희의대에 입학한 저는 봉사 써클에 가입하여 활동도 열심히 하며 보람을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의 내면은 늘 만족이 없고 갈급하였고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저를 본과 1학년 초에 말씀으로 초청해주시고 84년 인천 문학산 여름 수양회에서 ‘주는 그리스도(막8:29)’ 말씀으로 주님을 구원자로 만나게 역사하셨습니다. 85년 여름수양회 때에는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막10:17)” 묻는 부자 청년의 고민을 통해 내게 필요한 것이 영생이었음을 알게 하시고 주님을 좇는 진리의 인생을 살도록 도우셨습니다. 이후 예수님의 제자로서 주님을 섬기는 삶은 의미 있고 기쁘고 행복하였습니다. 학창시절 경희의대와 음대 개척역사를 섬기는데 모든 진심을 드렸습니다. 레지던트 시절에는 애매하게 핍박과 고난을 당하면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믿음을 지키고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청춘을 다 바쳐 예수님을 따르고 섬겼지만 눈에 보이는 열매가 없음으로 인해 이 길이 많은 인내와 희생을 요구하는 고난의 길임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개원 후에는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는 현실 속에서 무리하게 희생하기보다 형편에 맞게 적당히 살고자 하였습니다. 2000년 의약분업을 앞두고 개원 의사들이 파업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개원의사로서 가장 암울한 시기였지만 이때가 목자로서의 저의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기고 진리의 말씀대로 살고자 결단하고 캠퍼스에 나갔을 때 문대범 목자를 만나게 하시고 1:1 말씀으로 섬기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 모임에 없어서는 안될 귀한 동역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얼마 후에는 홍영호 형제님도 맡겨주셨습니다. 그리고 2002년도에는 창15:5말씀을 붙들고 가대 개쳑역사를 섬기도록 하시고 기라성 같은 자매 목자들을 세워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캠퍼스에는 진리를 사모하는 양들이 말씀 안에 자라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캠퍼스 사명의 땅은 잠시도 방심할 수 없는 영적인 전쟁터와 같습니다. 우리의 힘과 의지로는 양들을 사로잡고 있는 사탄의 세력을 물리칠 수 없습니다. 이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한 영적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아무 자격 없는 자를 일방적인 은혜로 구원하시고 진리의 왕이신 예수님의 좋은 군사로 불러주시고 진리의 인생으로 인도하여주신 은혜에 감사 찬송을 돌려드립니다.
  예수님은 빌라도에게도 이 진리 편에 설 것을 촉구하셨습니다.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그러나 빌라도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그는 “...진리가 무엇이냐?” 반문하며 진리의 세계로의 초청을 거절하였습니다. 그는 세상을 살아가며 진리가 권모술수에 패배하고, 정의가 무력에 무참히 짓밟히는 것을 수없이 많이 보아왔습니다. 그는 힘이 곧 진리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예수님과 같이 힘 앞에 무력한 초라한 이스라엘의 왕이 증거하는 진리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진리가 구원을 주는 진리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빌라도와 같이 진리의 세계로 초청을 받지만 자기 욕심대로 살고 싶은 마음 때문에, 세상 유익을 줄 것 같이 보이지 않는다고, 진리의 세계로 나오지 않습니다. 또 진리를 알지만 진리대로 살다가는 세상에서 손해보고 낙오자가 될 것 같은 두려움과 염려 때문에 진리대로 살지 않고 세상과 진리 사이에 양다리 걸치고 살아갑니다. 이런 자는 현명한 것 같지만 실상은 죽음과 함께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진리의 실용성을 따지는 자는 진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돼지에게 진주가 무가치하듯이 당장 유익을 따지는 자에게는 진리는 거추장스러운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우리가 진리에 속하여 예수님의 진리의 증거를 믿음으로 영접하고 이에 순종하여 사는 자 되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체포당하시고 심문 받으시는 과정에서도 진리만을 증거하시는 진리의 왕이십니다. 예수님은 진리를 증거하시고 진리를 위해 십자가의 쓴 잔을 마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 시민답게 진리를 수호하고, 진리를 선포하고, 진리대로 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0
3500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125 이사야 [2010년 이사야서 제1강]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리스닝 2010-09-12 3646
124 야고보서 [2010년야고보서제5강]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리스닝 2010-09-05 3152
123 야고보서 [2010년야고보서제4강]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리스닝 2010-08-29 3251
122 야고보서 [2010년야고보서제3강]온전한 사람 리스닝 2010-08-22 2602
121 야고보서 [2010년야고보서제2강]참된 믿음 리스닝 2010-08-15 3232
120 야고보서 [2010년야고보서제1강]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리스닝 2010-08-08 3694
119 요한복음 [2010년요한복음제21강]사랑과 사명 리스닝 2010-08-01 3379
118 요한복음 [2010년여름수양회제3강]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리스닝 2010-07-25 3019
117 요한복음 [2010년여름수양회제2강]다 이루었다 리스닝 2010-07-25 4085
116 요한복음 [2010년여름수양회제1강]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리스닝 2010-07-25 2773
115 요한복음 [2010년요한복음제20강]내가 왕이니라 리스닝 2010-07-18 2619
114 요한복음 [2010년요한복음제19강]예수님의 기도 리스닝 2010-07-11 2609
113 요한복음 [2010년요한복음제18강]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리스닝 2010-07-04 2821
112 요한복음 [2010년요한복음제17강]열매를 맺으려면 리스닝 2010-06-27 3121
111 요한복음 [2010년요한복음제16강]참된 생명의 길 리스닝 2010-06-21 3267
110 요한복음 [2010년요한복음제15강]서로 발을 씻어주라 리스닝 2010-06-13 3579
109 요한복음 [2010년요한복음제14강]한 알의 밀이 죽으면 리스닝 2010-06-07 4165
108 요한복음 [2010년요한복음제13강]부활과 생명 리스닝 2010-05-30 3153
107 요한복음 [2010년요한복음제12강]참 목자 리스닝 2010-05-30 3128
106 요한복음 [2010 요한복음11강]세상의 빛 리스닝 2010-05-16 3293
1,,,31323334353637383940,,,44
서울 동대문구 이문2동 264-231
Tel:070-7119-3521,02-968-4586
Fax:02-965-8594
서제임스목자님메일:Suhjt@hitel.net
[UBF한국본부] [유럽UBF] [UBF국제본부] [UBF TV] [시카고UBF] [Mother Barry's Homepage]
[뉴욕UBF] [워싱턴UBF] [노스웨스턴UBF] [콜롬비아UBF] [코스타리카UBF] [프랑크푸르트UBF]
[키에프UBF] [상파울루UB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