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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리스닝
작성일 2010-07-25 (일) 17:51
분 류 요한복음
첨부#1 2010년_여름수양회_주제_1_강(장원규)-1.hwp (29KB) (Down: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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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여름수양회제1강]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2010년 여름수양회 주제 1 강                                                                                        장원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말씀 요 3:1-16
요절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부와 권력입니까? 명예를 얻는 것일까요? 아니면 사랑을 얻는 것입니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영원한 생명, 즉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영생을 얻는 길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거듭날 때 닫혀있던 영의 눈이 열리고, 이를 통해 영의 세계인 하나님 나라를 보게 되며, 그 안에서 참된 평강과 기쁨,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됩니다. 때문에 거듭나는 것은 육신의 한계에 갇혀있는 우리 인간들에게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입니다. 거듭남을 알지 못할 때, 세상에서는 성공할 수 있을지라도, 인생에서는 실패한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세상에서는 성공했지만,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에 내면에 어두움이 가득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니고데모에게 거듭남의 비밀을 가르쳐 주십니다. 이 시간 말씀을 통해서 우리 모두 거듭남의 비밀을 깨닫고, 예수님 안에서 다시 태어나, 변화된 새로운 인생을 사는 자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제 1 장, 사람은 반드시 거듭나야 합니다. (1-8)
첫째, 사람이 왜 거듭나야 하는가?(1-3)
  다함께 1절 말씀을 읽어보시겠습니다. 1절 말씀은 니고데모의 종교적, 사회적 신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는 바리새인으로서 종교지도자였습니다. 바리새인이란 ‘구별된 자’, ‘분리된 자’란 뜻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이방 문화에 물들지 않고 선민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율법을 엄격하게 지킴으로 일반 백성들과는 구별된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율법에 대한 초인적인 열심으로 인해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형식적이 되어 위선자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어쨌든 바리새인이 되는 것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바리새인이 되려면 어릴 때부터 엄격한 훈련을 받아야 했습니다. 모세 오경을 통째로 다 외워야하고 성문화된 율법서인 미쉬나와 그 주석서인 탈무드를 공부해야 했습니다. 또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하고 하루에 세 번 목욕하는 것과 같은 까다로운 규칙들도 지켜야 했습니다. 바리새인으로 입단하기 전에는 평생 율법을 지킬 것을 3명 이상의 증인 앞에서 선서해야 했습니다. 니고데모는 젊은 날 육신의 욕망을 부인하고 자기와의 부단한 투쟁을 하는 가운데 바리새인이라는 존경받는 위치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는 또한 유대인의 지도자로서, 산헤드린이라는 유대 최고 통치 기관에 의원이었습니다. 산헤드린은 전 세계 모든 유대인들의 종교적 문제에 대한 사법권을 가지고 있었으며, 사형까지 선고할 정도로 그 권세는 대단하였습니다. 이곳의 회원이 되려면 가문도 좋아야 하고, 학문적으로도 뛰어나야 했으며, 또한 부자여야 했습니다. 니고데모는 이 모든 조건을 모두 갖춘 인물이었습니다. 니고데모는 최고의 지성과 권세와 명예와 부를 소유함으로, 세상에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행복한 자 같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내면은 이 모든 것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어두움이 지배하고 있었고, 그가 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도우심이 필요했습니다.
  어느 날 니고데모가 어두운 밤을 틈타 조용히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가 왜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을까요? 요한복음에서 밤은 어두움을 상징합니다. 이는 니고데모의 내면이 밤과 같이 어둡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겉으로 볼 때 니고데모는 아주 성공한 행복한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내면은 어두웠습니다. 니고데모는 자신이 부와 명예와 권력을 얻으면 행복해 질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막상 그것들을 다 얻고 나도 행복하지가 않았습니다. 오히려 목표를 성취한 뒤에 오는 허무함과 공허감이 그를 엄습하였습니다. <영국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자 극작가인 버나드 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의 절망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실패했을 때 오는 절망이고, 다른 하나는 성공했을 때 오는 절망이다. 참으로 무서운 것은 전자가 아니고 후자다.’> 실패할 때 절망은 다시 노력하여 극복할 수 있지만, 성공 후의 절망은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니고데모는 열심히 노력하여 성공의 정상에 섰고, 더 이상 올라갈 정상이 없었습니다. 때문에 이제 그의 인생은 현상유지를 하거나 내려가는 것 뿐이었습니다. 또한 니고데모는 젊은 시절, 정상을 향해 앞만 보고 사는 동안 자신이 늙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열심히 정상에 오른 지금 한숨 돌리고 인생을 돌아보니 어느새 부쩍 늙어버린 자신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머리는 희끗희끗해지고, 감을 때마다 한주먹씩 빠졌습니다. 이가 흔들려서 먹고 싶은 고기도 마음껏 먹지 못했고, 눈은 침침해져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문자 메시지 하나 제대로 보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초인적인 노력을 통해 모든 것을 다 가지게 되었으나, 이제 그 모든 것을 다 내려놓아야 하는 죽음의 그림자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는 너무나 절망하여 어두운 밤에 조용히 예수님께 나오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요3:2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그는 표적 때문에 예수님께 왔습니다. 그가 왜 표적에 관심을 가졌을까요? 이는 자신의 인생에 기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고, 예수님을 통해 자신의 인생 문제를 기적적으로 해결 받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니고데모에게 무엇을 말씀하셨습니까? 다함께 3절을 읽어보시겠습니다. 요3: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예수님은 한눈에 니고데모의 내면문제를 간파하셨습니다. 그의 문제는 거듭나지 못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는 것이라고 지적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의 내면에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음으로 이루어지는 참된 평강과 기쁨, 생명력이 충만한 영적인 세계를 말합니다. 이는 니고데모가 누리기를 바라던 바로 그 세계였습니다. 그는 세상 명예와 권세와 돈으로 이런 것들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세상 것들을 다 얻은 지금 그의 내면은 여전히 밤과 같이 어두웠고, 공허감과 허무함으로 절망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아직 그가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거듭나지 않은 자의 내면은 사탄이 지배합니다. 이런 자는 사탄이 심는 두려움과 불안, 허무와 절망에 시달립니다. 그러나 거듭난 자의 내면은 하나님께서 다스리시기 때문에 하늘나라의 기쁨과 평강을 누리게 됩니다. 세상의 모든 걱정, 근심, 욕심과 죄악 된 본성을 극복하고, 하늘 나라의 산 소망 가운데 진정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됩니다. 니고데모가 이런 기쁨과 즐거움을 맛보려면 거듭나야만 했습니다.

  그러면 ‘거듭난다.’는 말씀의 뜻이 무엇입니까? ‘거듭난다.’는 것은 ‘위로부터 새로 태어난다.’는 뜻입니다. 위로부터 난다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하고, 새로 태어난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아담 안에서의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린도후서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거듭나는 것은 조건 개선이나 환경의 변화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창조입니다. 만약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죄의 본성을 가진 채 본질상 진노의 자식으로 살게 됩니다.(엡2:1-3) 때문에 사는 날 동안에는 죄가 주는 고통 아래에서 신음하며 살아가다가, 죽은 다음에는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고 멸망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 심판은 1, 2년간 감옥살이를 하며 때우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서 영원토록 고통 받는 것입니다. 이를 둘째 사망이라고 합니다.(계21:8) 이처럼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이 받게 될 결과는 끔찍합니다. 사람이 아무리 인간성이 훌륭하고 선한 일을 많이 했다 할지라도, 거듭나지 않으면 영원한 파멸에 이르게 됩니다. 사람이 영원한 파멸에서 구원받고 영원한 행복을 누리려면 반드시 거듭나야 합니다. 여기에는 어느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이라고 말씀하심으로 니고데모를 포함하여 모든 사람이 다 거듭나야 함을 강조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거듭남의 문제는 인간의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죽음을 가르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사람이 세상 모든 것을 다 얻을지라도 그 영혼이 영원한 파멸에 처한다면 이는 너무나 불행한 일입니다. 그러나 세상 모든 것을 잃고 심지어 목숨을 잃는다고 할지라도 그 영혼이 구원받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된다면 그처럼 복된 삶은 없습니다.
둘째, 사람이 어떻게 거듭날 수 있는가?(4-6)
  그러면 사람이 어떻게 거듭날 수 있습니까? 다함께 5절 말씀을 읽어보시겠습니다. 요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사람은 물과 성령을 통해서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물’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키고, ‘성령’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영접한 자의 내면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영을 가리킵니다. 거듭나는 것은 니고데모가 생각하는 것처럼 특별한 표적이나 인간적인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혈서를 쓰면서 결심을 해도 안되고, 수도원에 들어가서 수행을 해도 안되고, 동굴 벽을 마주보고 앉아서 참선을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거듭나는 역사는 인간의 힘이 미칠 수 없는 영역으로서 전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영접한 자에게 성령으로 역사하셔서 거듭나게 하십니다. 베드로전서 1:23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육을 입고 있는 어떠한 못쓸 죄인도 거듭나게 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가 꾸준히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또한 가르쳐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이 니고데모와 같이 허무와 무의미로 가득한 자신의 내면을 직시하거나, 죄악된 자기 내면을 직시하게 되면 누구나 변화되고 싶어합니다. 때문에 대학에서의 다양한 경험, 많은 지식과 자격증, 성공적인 인간관계, 또는 사랑하는 대상을 통해서 변화를 이루고자 합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일시적인 도움이 될 수는 있어도 존재 자체를 변화시키는, 근본적인 변화는 줄 수 없습니다. 사람이 다시 태어나는 것은 오직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니고데모에게 거듭남의 비밀을 가르치십니다. 요3: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사람은 짐승과 달리 육의 세계와 함께 영의 세계가 있음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 둘은 서로 완전히 다른 세계로서 육에서 난 것은 모두 육에 속한 것이요, 성령에서 탄생되는 것은 영적인 것입니다. 육으로 난 것은 아무리 교육을 많이 받고 변화되어도 여전히 육입니다. 육에는 종류가 많습니다. 세련된 육, 천박한 육, 고상한 육, 타락한 육, 잘생긴 육, 못생긴 육, 부자 육, 가난한 육, 공부 잘하는 육, 공부 못하는 육, 잘 노는 육, 못 노는 육. 취직한 육, 취직 못한 육, 수양회에 참석한 육, 수양회에 참석 못한 육 등등, 사람들은 자신이 더 좋은 육이 되기 위해, winner가 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이 모든 육들이 지금은 서로 달라보일지라도 마지막 날에는 모두 하나님의 의의 심판대 앞에서 멸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난 것은 영으로서 멸망당할 육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니고데모는 지금까지 영의 세계를 완전히 무시하고 오직 육의 완성에만 인생을 투자했습니다. 이런 니고데모의 인생은 모든 것을 다 가진 성공한 인생 같았지만, 예수님께서 보실 때 영의 세계가 전혀 없는 실패한 인생이었습니다. 사람이 육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다 된 것은 아닙니다. 영적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육신이 성장하여 열매를 맺듯이 영적으로도 성장하여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육의 열매는 아무리 풍성한 듯 해도 결국 허무와 무의미로 끝을 맺게 되지만, 영적인 열매는 참된 평강과 기쁨, 영원한 생명, 그리고 하나님의 영원하신 칭찬과 상급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성령의 역사에 대해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요3: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성령의 역사는 바람이 부는 것과 같습니다. 바람이 임의로 부는 것 같이 성령께서도 인간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하나님의 뜻대로 역사하십니다. 또한 우리가 바람의 소리를 듣고 그 흔적을 보고 바람이 부는 것을 알 수 있듯이 성령의 역사도 거듭나 변화된 모습을 보고 알 수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도 거듭나는 것, 다시 태어나는 것이 기이하게 느껴지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이는 거듭난다는 것은 우리의 이성과 감성으로는 다 깨달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거듭남을 깨닫기 위해서는 이해가 아니라, ‘믿음’이라는 열쇠가 필요합니다. 단지 믿을 때, 그 믿음 위에 성령께서 주권적으로 역사하셔서 거듭남의 비밀을 체험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지금까지 니고데모에게 거듭나야 할 필연성과 거듭나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제 거듭남의 비밀을 배운 니고데모가 가져야 할 신앙 자세가 어떤 것이어야 합니까?

제 2 장,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9-16)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하며 성령의 역사를 듣고 나서 바로 배척하였습니다. 니고데모는 거듭남이 그의 이성과 지성으로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에 믿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믿음은 이해가 되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닙니다. 믿고 나면 이해되는 것이 믿음의 비밀입니다. 예수님은 믿음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던 니고데모에게 한 사건을 예로 들어주시며, 믿음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셨습니다. 요3:14,15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모세가 광야에서 놋뱀을 든 사건은 믿음과 구원의 길이 어떤 것인지를 잘 말해 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권능으로 구원받아 출애굽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가는 새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애굽에서의 오랜 노예생활로 인해 노예근성이 몸에 배었고, 때문에 조금만 힘들어도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며 불평했습니다. 배고프다고 불평하고, 목마르다고 불평하고, 길이 험하다고 불평하고, 서빙시킨다고 불평하고, 연극시킨다고 불평하고, 댄싱시킨다고 불평하고, 메시지를 시킨다고 불평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 불뱀을 보내어 불평하는 그들을 물게 하셨습니다. 그러자 순식간에 많은 사람들이 뱀에 물려 죽게 되었습니다. 그때서야 백성들은 하나님을 믿지 못한 죄와 불평하는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깨닫고 회개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할 때,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높이 달게 하시고, ‘이 놋뱀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자는 누구든지 살리라.’ 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장대 위에 달린 놋 뱀을 바라본 자는 살게 되었습니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믿음은 ‘바라보는 자는 누구든지 살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단순히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를 믿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생각을 극복해야 합니다. 뱀에 물렸으면 뱀독을 제거해야 하고, 나를 향해 기어오는 뱀을 피하기 위해 땅을 쳐다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땅을 보지 않고, 장대에 달린 놋 뱀을 올려다본다는 것은 비합리적입니다. 그러나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믿고 위를 바라보는 것이 믿음입니다. 위를 쳐다보는데 특별한 기술이나 지식, 학벌과 능력이 필요 없습니다. 돈이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물린 상처가 아무리 커도, 또한 물린 곳이 수십 곳이나 되어도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나 자신이 ‘뱀에 물려 죽어가는 자’라는 자아인식을 가지고, ‘쳐다보면 살리라.’는 약속의 말씀을 믿는 믿음만 있으면 구원을 얻습니다. 니고데모는 철저히 율법을 지키는 생활을 해 왔기 때문에, 자기 의로 가득한 사람이었습니다. 때문에 자신이 거듭나야 할 죄인이라는 자아인식이 없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때 거듭난다는 단순한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우리도 좁은 이성의 한계에 갖혀 있을 때,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하지만 좁은 이성의 한계를 인정하고, 겸손히 말씀을 믿으면 성령께서 친히 우리를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구원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위해 베푸신 구원의 길이 무엇입니까? 다함께 요 3:16절 말씀을 큰 소리로 읽어보시겠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은 성경 전체의 요절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는 우리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또한 영원한 멸망 길에서 벗어나 영원한 생명의 길로 들어설 수 있는 구원의 길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요한복음 3:16절을 ‘작은 복음’이라고 불렀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십니까?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세상은 어떠한 곳입니까? 사단이 공중권세를 잡고 있기에 죄와 사망, 고통과 슬픔이 가득한 곳입니다. 그 세상 속에 누가 있습니까? 바로 내가 있습니다. 그 죄의 구덩이 속을 굴러다니며 나 스스로도 외면하고 싶을 정도로 추하고 더러운 죄악 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온갖 탐욕과 정욕, 시기심과 질투심, 운명주의와 열등감, 교만과 분노, 자의식과 반발심으로 병든 채 고통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세상 속에 살고 있는 내 안에는 나 스스로도 외면하고 싶은 온갖 죄의 더러움이 가득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어떻게 하셨습니까? 다 쓸어버리셨습니까? 사랑하셨습니다. 얼마나 사랑하셨습니까? 사랑하는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나 대신 십자가의 희생 제물로 내어주실 정도로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인생들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의 대가가 다 치러졌습니다. 이제 이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로 믿는 자는 누구든지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시간 죄로 인해 죽어가는 나를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묵상하시길 바랍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영접하는 자는 아무 조건 없이, 누구든지 구원과 영생을 얻게 됩니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시간 우리 모두가 요 3:16절 말씀을 심령 깊이 믿음으로 영접하는 가운데, 성령의 임재하심을 덧입고, 거듭남의 은혜를 누리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구원의 은혜는 죄악된 세상 가운데에서 죄를 즐기며 살아가던 저에게도 임하였습니다. 저는 중고등학교 시절 대학만 가면 자유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1995년 연세대학교 기계공학과에 입학하였고, 이후 자유로운 대학 생활을 즐겼습니다. 하지만 대학 생활은 늘 공허하고 허무하게만 느껴졌습니다. 그러던 중 IMF 때 이공계 학생들이 의학계열로 대거 이탈하는 붐을 타고, 안정적인 타이틀을 좇아 한의대 입시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때 요 6:27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말씀을 통해서, 성령의 바람을 저에게 살짝 불어주셔서 아주 잠시 동안 영적인 눈을 뜨게 도우셨습니다. 이 때 이 말씀 앞에서 썩어 없어질 것들을 좇아 살아가는 자신의 삶이 너무나 허무하게 느껴졌고, 내 삶에 예수님이 필요하다는 것을 겸손히 인정케 되었습니다. 하지만 한의대 입학 후 그때 살짝 불었던 성령의 바람은 기억 저편으로 바람같이 날아가고, 새로운 대학생활을 즐겼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해 여름 수양회에서 사 53:5절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말씀을 영접케 하심으로 다시금 죄인이 잠시 동안 영적인 눈을 뜨도록 도우셨습니다. 하지만 새롭게 시작된 군대 생활에서 다시 육을 좇는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3년간의 공익근무기간동안 무엇인가 남기자는 생각으로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해서 늘씬한 차 한 대를 장만했습니다. 그리고는 부러워하는 친구들을 태우고 동해안으로 서해안으로 가고 싶은 곳은 방방곡곡 마음껏 누비며 다녔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차를 산지도 10년이 다 되어 가끔 시동도 꺼지고, 계기판 불도 안 들어오고 기름도 많이 먹어서 하루 빨리 바꾸고 싶은 애물단지가 되었습니다. 복학 후 하나님의 은혜로 말씀 안에 거하며 하나님의 역사에 쓰임 받는 은혜를 누렸습니다. 하지만 개원 후 다시 육을 좇는 삶을 살며, 하루하루 환자 수와 매출에 일희일비하는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5월 종합소득세를 한꺼번에 내고 나니 다시금 육을 좇는 인생에 대한 허무와 무의미에 깊이 밀려왔습니다. 반복해서 영의 세계를 좇다가 육의 세계를 좇다가 왔다 갔다 하며 영육간에 정함 없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한심스러웠습니다. 그러던 중 거듭남이란 주제로 메시지를 준비하게 되자 심령이 너무나 답답해졌습니다. 육을 좇아 사느라 거듭남에 대한 확신조차 흐려지고 있는 상황에서, 지극한 영적인 세계의 비밀을 전하고자 하니 자신이 없었습니다. 다시금 저에게 예수님이 필요했고 저는 니고데모와 같이 밤중에 홀로 요한복음 말씀을 펴고 예수님을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말씀을 통해서 나의 인생 가운데 임한 하나님의 일방적이고 무조건적인 사랑과 구원의 은혜를 확신케 하시고, 영적인 눈을 감은 채 육의 세계를 좇아 살고 있는 모습을 회개케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으로 하나님의 생명구원 역사를 섬기게 하심을 감사드리게 하셨습니다. 육은 허무와 무의미로 끝나지만 성령을 통해 들어가는 영의 세계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누리는 참된 평강과 기쁨, 감사와 은혜가 충만합니다. 제가 영육간에 왔다 갔다 하던 자신의 모습을 회개하고, 날마다 예수님과 동행하며 깊은 영적인 세계에 들어가기에 힘쓰는 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이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십니다. 이 무조건적인 사랑을 믿고 영접하는 자는 누구나 거듭남과, 구원과 영생의 은혜를 맛보게 됩니다. 니고데모는 세상에서 모든 것을 소유한 자였지만 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잃을 자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소유한 자는 모든 것을 얻은 자입니다. 우리 모두 이번 수양회 기간 동안 이 하나님의 사랑을 소유하는 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들을 믿음으로 영접하고, 진실되게 회개하는 가운데,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거듭남과 영생의 은혜를 충만히 얻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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