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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리스닝
작성일 2010-05-10 (월) 17:55
분 류 요한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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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요한복음10강]용서의 은총

2010년 요한복음 제 10강

용서의 은총

말씀: 요한복음 7:53-8:12
요절: 요한복음 8: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오늘 말씀에서 죄에 대해 바리새인들과 예수님의 대조적인 모습이 나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선포한 성경에서 죄인을 어떻게 다루느냐는 매우 중요한 명제입니다. 예수님은 정죄 받아 마땅한 여인을 용서하시고 죄에서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이 시간 정죄하지 않으시는 예수님을 통해 죄사함 받고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신 주님의 명령을 통해 죄에서 벗어나는 비결을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Ⅰ.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7:53-8:7)
  초막절 행사가 모두 끝나고 사람들은 각각 집으로 돌아가고 예수님은 감람산으로 가셨습니다. 감람산은 예수님이 습관을 좇아 기도하시는 곳이요 쉬는 장소였습니다.(눅 21:37, 22:39) 2절을 보십시오.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셔서 나아온 백성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기도하는 일과 말씀사역을 섬기는 것이 주님의 일상생활이었습니다. 예수님이 한창 말씀을 가르치고 계실 때였습니다. 이를 방해하는 한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한 여인을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예수님께 따져 물었습니다.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은혜롭던 분위기는 일순간 험악해지고 이제 사람들의 시선은 여인에게 집중되었습니다. 사실 율법을 잘 아는 그들은 이렇게 물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신명기 22:22절에 기록된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결혼했거나 약혼한 여인이 외간 남자와 간음하다가 잡히면 남녀 모두 돌로 쳐서 죽이라고 했기 때문에 굳이 예수님께 끌고 올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는 악한 의도를 가지고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한 것입니다.(6) 그들은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고자 문제 있는 여인을 이용하고 율법을 이용하였습니다. 이것이 어떤 점에서 예수님을 고소할 조건이 되는 것입니까? 만일 예수님이 돌로 치라 하시면 예수님은 더 이상 구원역사를 섬길 수 없게 됩니다. 또한 당시 사형 권한이 없었던 유대인으로서 살인을 조장했다 하여 로마법에 저촉됩니다. 반면에 돌로 치지 말라 하시면 간음죄를 인정하는 것이 되고 모세의 율법을 어기게 되어 유대인으로부터 고소당하게 됩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백성들의 목자로서 양무리들을 말씀으로 섬기고 생명의 길로 인도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부패하여 도움을 필요로 하는 양무리를 내팽개친 채 시기심의 노예가 되어 예수님을 시험에 빠뜨릴 궁리를 하는데 여념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밤을 새워 죄를 짓는 자가 없나 찾다가 간음 중에 있는 자들을 현장에서 붙잡았습니다. 그들의 고소는 가히 사탄적이었습니다. 구원역사에서 은혜와 진리, 긍휼과 책망 등 양면성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이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어느 한쪽에는 걸려들게 하여 함정에 빠뜨립니다. 예수님은 이렇게도 저렇게도 할 수 없는 진퇴양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6b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예수님은 이 절박한 상황에 땅 바닥에 무엇을 쓰셨을까요? 말씀에 그 내용이 기록되지 않은 것을 보면 그 내용보다 다른 뜻이 있었음이 틀림없었습니다. 예수님이 땅에 무엇을 쓰시느라 흥분한 무리들을 진정시키고 관심을 예수님께로 향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앞에서 조용히 자신들을 돌아보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묻기를 마지아니하자 예수님은 일어나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이 얼마나 지혜로운 답변입니까? 예수님은 이 여인이 죄 없다고 변호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모세의 율법이 시대에 맞지 않는 잘 못된 것이라 하시지도 않으셨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이 말씀이 주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첫째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는 남을 정죄하기에 앞서 먼저 자신을 돌아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라 말씀하심으로 먼저 자신의 죄를 돌아보고 돌로 치는데 대한 분명한 책임을 지도록 하셨습니다. 정말 자신이 죄가 하나도 없다고 할 수 있는 자만이 먼저 돌을 던질 자격이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죄 없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3:10)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 모든 사람은 심판 받아 마땅한 죄인들입니다.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고 정죄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하신 것은 의인된 심정으로 여인을 정죄하는 종교지도자들에게 다 같은 죄인임을 인식시켜주시는 주님의 살아 있는 메시지였습니다.
둘째로, 간음한 여인에게는 돌에 맞아 죽어야 할 죄를 지었음을 인정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 없는 자가 먼저’라는 전제조건을 내세우신 다음 ‘돌로 치라’하심으로 여인이 지은 죄가 돌에 맞아 죽어야 할 죄임을 인정하셨습니다. 율법에는 분명 간음행위를 살인이나 우상숭배의 죄와 같이 엄격하게 다룹니다. 그만큼 간음죄는 파괴력이 크고 악영향이 심각합니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정욕의 죄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가볍게 여깁니다. 살인이나 절도는 엄격하게 죄로 인정하지만 정욕은 상업화되고 문화로 여길 정도로 죄의식이 없어졌습니다. 이런 죄악된 문화가 알게 모르게 한 사람의 인격을 파괴시키고 가정과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정욕의 죄에 대해 엄히 경고합니다. 잠언 6:32,33절은 말씀합니다. “여인과 간음하는 자는 무지한 자라 이것을 행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망하게 하며 상함과 능욕을 받고 부끄러움을 씻을 수 없게 되나니” 본문의 여인도 몰래 정욕의 죄를 즐겼지만 결국 그 죄가 백일하에 드러나서 예수님이 돌로 치라 하셨을 때 여인은 수치와 고통과 죽음과 심판의 두려움으로 이미 돌에 맞은 것이었습니다.

Ⅱ.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8-12)
  예수님은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을 쓰셨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그들은 모두 양심에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돌을 떨어뜨리고 그 자리를 피해 나갔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죽었던 양심의 기능을 회복시켜 죄를 깨닫게 하였습니다. 율법은 겉으로 보이는 것을 중심으로 판단합니다. 그러나 양심은 속마음을 판단합니다. 양심의 거울에 비추어 보았을 때 죄 없다고 할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일어나셨을 때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셨습니다. 이는 이 여인을 정죄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은 예수님이심을 말해줍니다. 예수님은 아무 죄가 없을 뿐 아니라 본체가 하나님으로서 심판하시는 권세를 가진 분이십니다.(요5:22) 이제 여인의 운명은 예수님의 판결에 달려 있습니다. 재판장이신 예수님께서 정죄하시면 정죄를 받게 되고, 사면을 내리시면 무죄 석방이 되는 것입니다. 여인은 모든 것을 체념한 채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예수님의 최종 판결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에게 조용히 다가가서 말씀하셨습니다.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예수님은 이 죄 많은 여인을 ‘여자여’라고 사랑이 담긴 호칭으로 불러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지금까지 여인을 정죄하던 자들이 아무도 없음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이제 여인은 사람들의 정죄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게 되었고, 주님만 두려워하고 주님만 의지하고 믿음으로 살아야 함을 말씀하셨습니다. 여인은 떨리는 음성으로 대답하였습니다. “주여 없나이다” 여인은 자신을 정죄하던 사람들이 모두 떠나가고 그곳에는 오직 온유하신 예수님만이 계심을 보았습니다.
  여인에 대한 예수님의 최종판결이 무엇입니까? 11b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유일한 재판장 예수님마저도 정죄치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여인을 향한 예수님의 사죄의 선포입니다. 주님의 용서는 돌에 맞아 죽어 마땅한 여인에게 두려움과 죄의식과 수치심을 순식간에 사라지게 하였고 대신에 하늘로부터 평강과 기쁨과 소망이 가득 넘치게 하였습니다. 이는 여인에게 임한 놀라운 죄사함과 구원의 은혜였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예수님은 이 여인의 죄를 용서하실 수 있습니까? 아무나 말로 용서한다고 죄가 사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죄는 그 값을 철저히 요구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롬6:23) 그러므로 진정한 용서에는 상대방의 죄 값을 죽음으로써 대신 치르는 희생과 아픔이 수반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용서받을 꼬투리가 전혀 없는 이 여인도 지극히 사랑하셔서 죄의 값을 대신 치르셨습니다. 예수님은 불쌍한 이 여인을 정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대신 정죄당하시고 죽으셨습니다. 갈라디아서 3:13절은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 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사야 선지자도 말하였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5,6) 예수님이 친히 우리를 대신하여 저주 받으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를 용서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1,2) 사도 바울은 담대히 선포하였습니다. 이제 믿는 우리에게는 정죄의 법에서 용서의 법으로 바뀌었습니다. 이 법은 최종 재판장이신 예수님께서 죄의 값을 다 지불하신 후 내리신 최종 판결이기 때문에 누구도 번복하거나 항소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용서의 판결은 집행유예의 판결이 아니라 완전 무죄의 판결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어떤 죄인이든지 예수님의 용서의 사랑을 믿고 영접하기만 하면 죄사함 받고 영생을 누리게 됩니다. 예수님의 용서의 사랑은 우리를 강하게 얽어매고 있던 죄의 사슬을 일시에 풀고 거룩하고 순결한 삶을 살게 합니다. 율법의 세계에서 은혜의 세계로, 영원한 심판에서 영생으로 옮겨지게 합니다. 예수님의 용서의 사랑은 죄인을 변하여 새 사람 되게 하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진실로 죄를 깨닫고 회개한 자에게 베풀어지는 예수님의 용서의 사랑만이 죄 가운데 있는 인생들을 살리는 유일한 구원의 길입니다. 어떠한 인간적인 노력도, 사람들의 죄를 규제하기 위해 만든 율법도, 인간적인 친절도 인간 내면에 뿌리 깊이 박혀 있는 죄의 소욕을 없이 할 수는 없습니다. 레미제라블의 주인공 장발장은 본래 시골의 순박한 청년이었습니다. 일찍 부모를 잃고 과부인 누나 집에서 누나와 일곱 명의 조카를 돌보는 일을 천직처럼 알고 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추운 겨울, 먹을 음식이 떨어져 어린 조카들을 먹이기 위해 가게에서 빵을 훔치다가 체포되어 징역형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년이나 감옥에서 썩다가 풀려나지만 전과자라는 이유 때문에 사람들은 음식도 팔지 않고 숙박도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미리엘 주교는 친절하게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하며 그를 돌보아 주었습니다. 장발장은 “왜 나를 경계하지 않느냐?” 묻자 주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인간은 모두 형제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런 호의에도 불구하고 장발장은 새벽에 주교의 유일한 귀중품인 은 식기를 훔쳐 달아나다가 헌병에게 체포되어 다시 주교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미리엘 주교는 “왜 은촛대는 가져가지 않았느냐?” 하며 그 물건들은 자기가 장발장에게 준 것이라고 하며 감싸주었습니다. 이에 충격을 받은 장발장은 눈물을 터뜨리며 처음으로 용서의 사랑의 힘을 알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올바른 삶을 살겠다는 약속을 한 것으로 알고 이 물건들을 당신에게 주는 것이라’고 속삭여주던 주교의 마지막 당부가 장발장의 인생을 바꿔놓았습니다. 한편 범죄자는 절대로 용서하지 않은 자베르 형사는 장발장의 과거를 알고 그를 다시 감옥에 집어넣기 위해 집요하게 장발장의 과거를 들추어내었습니다. 그러나 자베르 형사는 왕당파의 간첩으로 행동한 것이 들통 나 사형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장발장은 스스로 사형집행인이 되어 남몰래 원수 같은 자베르 형사를 풀어줍니다. 장발장의 용서의 사랑과 율법이 충돌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결국 율법이 사랑을 이겨낼 수 없음을 느끼며 율법의 수호자 자베르는 세느 강에 몸을 던져 자살하고 맙니다. 장발장이 세상을 떠날 때 그가 친 딸같이 키운 코제트에게 이렇게 유언을 하였습니다. “벽난로 위에 있는 두 개의 촛대를 너에게 주마, 그것을 내게 주신 분이 지금 하늘에서 나를 보시고 만족하실지 모르겠구나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했다” 미리엘 주교의 용서의 사랑이 승리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용서의 사랑은 우리를 구원할 뿐 아니라 우리 내면에 파괴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켜 남을 용서할 수 있는 내적인 힘을 공급하사 깨어진 인간관계도 회복시켜 줍니다. 주님의 용서의 사랑은 마르틴 루터를 구원하여 중세 암흑을 벗고 종교개혁을 이루는 위대한 종으로 빚었습니다. 용서의 위력은 어떤 율법이 할 수 없는 죄로부터 자유를 줍니다.
  예수님은 여인에게 죄사함을 선포하신 후 새로운 삶의 방향을 주셨습니다.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이 말씀은 죄를 용서받은 후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쳐줍니다. 과거에는 죄의 종이 되어 죄를 즐기는 생활을 했지만 이제는 죄와 싸우는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죄와 싸우는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죄가 얼마나 무서운 파괴력이 있는가를 알아야 하고, 동시에 그 죄로부터 용서받은 자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롬6:2) 하는 사도 바울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거저 죄사함 받은 것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 주 그리스도의 크신 희생과 값비싼 대가를 통해 치르고 구원받은 자임을 인식할 때 다시 죄 가운데 거하는 생활을 하지 않게 됩니다.
 다시는 죄를 범치 않기 위해서는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예수님은 자신을 세상의 빛이라고 선포하십니다. 이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을 약속하십니다. 이는 방금 용서 받은 여인이나 그를 돌로 치려하였던 종교지도자들 모두에게 해당합니다. 초막절 행사에서 광야의 목마름을 해결하여 주신 은혜와 함께 끝없이 펼쳐져 있는 사막에서 불기둥으로 갈 길을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의 단을 쌓았습니다. 이를 위해 성전 안에 여인의 뜰에 있는 네 개의 금 촛대에 촛불을 밝혔습니다. 광야에서 조상들을 인도한 불기둥은 바로 온 인류를 생명으로 인도하실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전 뜰의 금 촛대는 처음에 환하게 어두움을 밝혀주다가 점점 가물가물 빛을 잃고 꺼져버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원히 어둠을 밝혀주는 빛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이 빛을 생명의 빛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면 생명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사막을 통과하는데 물만큼 경험 많은 인도자가 중요합니다. 인도자가 없이는 결코 목적지까지 갈 수 없고, 잘못된 인도자를 만나면 멸망으로 가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앞서 인도하셨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인도하심 대로 따라 갔을 때 무사히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광야와 같은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는 세상의 빛이신 주님의 인도하심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부모님이나 교수님이나 선배가 인도자가 되기도 합니다. 앞서간 성인을 인도자로 삼기도 합니다. 믿을 것은 나밖에 없다 하며 자신을 인도자로 삼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나를 생명의 길로 인도하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이 홀로 사막 길을 가다가 그만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는 그런 와중에도 정신을 잃지 않고 열심히 길을 찾았습니다. 한참을 찾다가 마침내 사람 발자국을 발견하고는 얼시구 좋다 춤을 추며 그 발자국을 따라 갔지만 그 발자국은 다름 아닌 헤매고 있는 자기 발자국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참된 인도자가 없어서 죄를 지으며 방황합니다. 광야와 같은 인생길에 참 인도자이신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것은 얼마나 감격스런 일입니까? 예수님은 세상의 빛이 되십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따르기만 하면 다시는 죄를 짓지 않고 생명에 이르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돌에 맞아 죽어야만 하는 여인을 정죄하지 않으신 것처럼 죄로 인해 심판받아야 할 우리를 정죄하지 않으시고 일방적으로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이는 죄인들을 향한 주님의 크고 놀라우신 은혜입니다. 이제 우리가 이 크고 놀라운 은혜에 의지하여 살아야 하겠습니다. 빛이신 주님을 좇아 죄에서 벗어나 하루 하루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이 시간 죄인을 정죄치 않으시고 다만 은혜로 구원하사 새 삶을 살게 하시는 주님의 놀라운 은총을 감사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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