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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2-01-15 (일) 13:41
분 류 이사야
첨부#1 2012년_신년_특강-2_오정훈.hwp (27KB) (Down: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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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신년 특강 제2강] 네 장막터를 넓혀라
2012년 신년 특강 제2강                                                                오정훈

네 장막터를 넓혀라

말씀/이사야서 54:1-17
요절/이사야서 54:2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까지 말고 널리 펴되 네 끈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의 견고히 할지어다”

  오늘 말씀은 메시아의 고난과 죽음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임할 놀라운 회복의 역사에 대한 노래입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포로생활로 인해 안으로 오그라든 택한 백성 이스라엘의 그 직분과 영광의 회복을 바라보았습니다. 이런 회복을 바라볼 때 장막터를 넓히라 외칠 수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 백성으로서 회복을 바라보고 마음을 넓혀 그 역사에 쓰임 받는 종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1. 네 장막터를 넓혀라(1-10)
  1절을 보십시오. “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산고를 겪지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이는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여인이 잉태하고 출산하는 것은 당연지사고 세상이 돌아가게 되는 근본 이치입니다. 여기에는 해산하는 고통과 양육하는 고난이 따르지만 세상의 여인들이 너도나도 다 잉태하고 아이를 낳는 것은 그것이 여인으로서의 기쁨이요 존재의미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여인이 잉태하지 못하고 출산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여인으로서 큰 부끄러움과 수치를 씻을 수 없게 됩니다. 현재 이스라엘은 남편 되신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아 잉태하지 못하고 출산할 수 없는 부끄러운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여인으로서 크나큰 수치와 치욕을 안게 된 것입니다. 이런 그들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며 신세 한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그들에게 노래할지어다 말씀하십니다. 산고도 겪어보지 못한 그들로 외쳐 노래할지어다 하십니다. 이는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까? 이는 메시야의 구속을 통한 택한 백성 이스라엘의 회복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남편 되신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았으나 하나님의 신부로 회복될 때 그들은 남편 있는 여인보다 더 많은 자식을 얻게 될 것입니다. 겨우 한 명, 두 명 정도가 아니라 기본이 다섯이요, 더 많게는 축구팀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뻐서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찬양해야 합니다.

우리는 때로 남편 없는 여인처럼 잉태하지 못하고 출산하지 못하는 자신으로 인해 부끄러움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남는 자가 없어 절망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울고 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때 우리는 절망할 것이 아니라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더 많은 자식을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봐야 하겠습니다. 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쁨의 노래를 외쳐 불러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믿음으로 노래하는 자들을 외면치 않으시고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훨씬 더 많은 역사를 이루실 것을 믿습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 생활이 끝나고 돌아오면 고국에 다시 정착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고국은 황폐해졌고 그들은 겨우 포로에서 귀환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전쟁의 폐허에서 삶을 재건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우리 현대사를 살펴봐도 이를 잘 알 수 있습니다. 6.25전쟁 당시 이북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은 부산으로, 부산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살던 동네에서 조금만 더 가면 피난민들이 모여서 살던 판자촌이라는 동네가 있습니다. 지금은 판자가 아니지만 6.25전쟁 당시에는 판자로 집을 잇대어 지어 많은 피난민들이 살았다고 합니다. 현재도 그곳은 그 당시와 똑같이 가파른 지대에 빽빽이 집들이 들어서 개개인의 집에 화장실이 없어 공동화장실을 쓰고 있을 정도입니다. 아마도 이스라엘 백성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 때 그들의 형편 또한 이와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겨우 자기 식구나 거할 수 있는 장막밖에는 만들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자기 살 궁리만 하며 겨우 자기 식구들이나 살 수 있는 장막을 만들고자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2절을 다 같이 읽어 보시겠습니다.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네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찌어다” 하나님은 네 장막터를 넓히라고 하십니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며 줄을 길게 하고 말뚝을 견고히 하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3절입니다. “이는 네가 좌우로 퍼지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 황폐한 성읍들을 사람 살 곳이 되게 할 것임이라.” 그들은 지금은 소수이지만 좌우로 퍼져 번성하게 되고 그들의 자손은 열방을 얻게 될 것입니다. 또한 황폐한 성읍들은 더 이상 황폐한 상태로 있지 않고 사람 살 곳이 되게 될 것입니다.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개그콘서트를 보면 풀 하우스라는 코너가 있습니다. 거기에는 한 평 남짓한 좁은 집에 열 명에 가까운 가족들이 들어가서 살아가는 모습이 나옵니다. 장남은 서 있을 곳이 없어서 아예 옷걸이에 걸려 고시공부를 합니다. 거기에다 살이 찔 대로 찐 딸들은 그들의 삶을 더욱 고통스럽게 합니다. 왜 이들이 이렇게 살아가는 것일까요? 그것은 장막터를 넓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가족을 생각하지 못하고 장막터를 넓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사실 이 땅에서 방한 칸 늘리는 것은 그리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전세를 유지하는 것도 때로는 어려워 집을 늘린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엄두도 내지 못할 일입니다. 그래서 네 장막터를 넓히라 이 말씀은 비현실적 얘기로 들릴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는 얼마든지 장막터를 넓힐 수 있고 이 넓어진 장막터를 가득 채우는 역사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 모임의 역사는 장막터를 넓혀서 이루어낸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 모임은 시골 광주의 작은 곳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임을 작은 것으로 여기지 않고 항상 큰 역사를 기대하고 장막터를 넓히고자 했을 때 지금은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에 복음을 증거하는 큰 모임으로 쓰임받고 있습니다. 어떤 그릇으로 어떤 스케일로 쓰임받고자 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완전히 달라지게 됩니다. 간장 종지를 내밀면 간장종지같지 오뎅이나 찍어먹는 그릇으로 쓰임받지만 큰 들통으로 자신을 드리면 많은 사람을 먹이는 그릇으로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장막터를 넓혀야 합니다. 안으로 오그라든 마음, 자기와 가족만 생각하는 마음을 찢어 넓혀야 합니다. 요즘은 사람들이 살기가 점점 어려워져 남을 돌아볼 여유가 없습니다. 겨우 내 한 몸 챙기고 내 식구 책임지는 것만으로도 힘겨워 합니다. 그래서 소시민적이 되어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자기 양 한 사람 돕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택한 백성은 마음의 터를 넓혀야 합니다. 겨우 자기 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 텐트를 만들 것이 아니라 뭇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는 커다란 방주를 지어나가야 합니다. 좁은 마음을 찢어 만민을 품고 섬기는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넓어진 장막터 만큼 휘장을 널리 펴야 합니다. 좁아터진 회기동 이문동 땅에만 관심 갖지 말고 전 세계에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마음과 물질을 드려 사랑의 휘장을 널리 펴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기도의 줄을 길게 해야 합니다. 관심의 범위가 넓어지고 스케일이 커지면 기도해야 할 대상도 늘어나 기도의 줄이 길어지게 됩니다. 이렇게 휘장을 널리 펴고 줄을 길게 하면 그 말뚝은 장막이 좁을 때보다 더 견고하게 해야 합니다. 말뚝을 견고히 하는 것은 말씀의 말뚝을 견고히 박는 것을 말합니다. 말씀의 말뚝이 견고할 때 어떤 시련이 와도 흔들리지 않고 굳건히 서서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역사를 체험할 수 있게 됩니다. 뿌리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현실의 어려움이나 사명의 십자가로 인해 넘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말뚝이 견고하지 않은 사람은 작은 어려움 하나에도 힘들어하고 사명의 십자가를 부담스러워하여 부르심과 구원의 은혜를 던져버립니다. 이렇게 개인신앙이 견고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원대한 비전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좀 부족하더라도 견고한 개인신앙을 갖기에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대로, 우리의 스케일대로 축복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작게 펴면 적게 주시고 넓게 펴면 넓고 편만하게 주십니다. 그래서 시편 81:10은 말씀하십니다.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올 한해 장막터를 넓혀 넓어지고 채워지는 역사 체험하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저는 스스로 항상 스케일 있는 사람, 손이 큰 사람이라 자부하고 살아왔습니다. 그것은 결혼하고 나서 더욱 확고해지게 되었습니다. 저의 기본 신념은 남더라도 풍성히 많이 하자였는데 막상 저의 내면은 그렇지 못하여 주로 자기와 자기 가족에게만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좁은 이문동과 회기동을 오가며 무슨 재미있는 일은 없는가 찾아다녔습니다. 간혹 해외에 관심을 가지긴 하였으나 그건 주로 영국에 진출한 우리나라 축구선수들에게 관한 소식이 들릴 때뿐이었습니다. 좁아터진 내면, 자기중심적으로 오그라든 내면으로 저의 장막터는 좁아질 대로 좁아져 있었습니다. 일대일 300팀, 150명 성경선생양성 이런 것들은 저에게 너무 먼 얘기처럼 들렸습니다. 그냥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고 일을 벌리는 것을 힘들어 하였습니다. 이런 저에게 꽤 오래 전에 목자님께서 평생 기도제목이 뭐냐고 물으셨는데 저는 한 명의 제자를 세우는 것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저는 한 명이면 평생 족하다고 생각하고 이를 위해 기도했는데 천수원 목자님이 가정까지 이루게 되자 다 이루었다 생각하고 더 이상 투쟁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가만히 앉아서 축구도 좋아하고 영적소원도 있는 양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봐도 김바울 이마태오 형제들 말고는 이런 양들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이로 인해 홀로 된 여인처럼 잉태하지 못하고 출산하지 못하는 수치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가혹한 훈련이라고 생각하였지만 실상 좁아터진 저의 내면 때문임을 보게 됩니다. 간장 종지 같은 작은 그릇만 내어 밀고 겨우 저 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 장막에 거하니 더 이상 역사가 있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자기 안으로 오그라든 마음을 회개하고 장막터를 넓히기를 원하십니다. 좌우로 퍼지며 열방을 얻게 될 비전 가운데 일대일의 장막터를 넓히고 기도의 줄을 길게 하길 원하십니다. 제가 자기중심적으로 좁아터진 마음을 회개하고 하나님이 하실 큰 역사를 바라보고 장막터를 넓힐 수 있길 기도합니다. 300팀의 1:1, 단대별 3명의 제자양성역사가 공허한 메아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채워주고자 하는 열매임을 믿고 이를 앞장서서 섬기는 종이 되길 기도합니다.
  4절을 보십시오.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놀라지 말라 네가 부끄러움을 보지 아니하리라. 네가 네 젊었을 때의 수치를 잊겠고 과부 때의 치욕을 다시 기억함이 없으리리” 그들은 두 번의 뼈아픔 수치와 치욕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애굽에서 노예로서의 수치와 하나님 백성으로 부르심 받고도 남편 되신 하나님을 버림으로 포로로 끌려가게 된 것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애굽의 젊은 시절 하나님 없이 육신의 소욕과 본성대로 살았습니다. 영혼을 가진 인간이 육신의 만족만을 위해 사는 것은 참으로 수치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B.C시절을 아무리 무용담처럼 자랑해도 그것은 죄를 먹고 마시며 즐기던 수치스러운 때에 불과합니다. ‘그들의 과부 때’는 광야 훈련을 마치고 약속의 땅 가나안에 정착하여 살던 때를 가리킵니다. 이때는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하나님의 뜻을 섬기며 거룩한 열매를 맺어야 할 때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우상숭배의 죄에 빠져 하나님의 버림을 받아 생과부로 사는 치욕적인 역사를 남겼습니다. 하나님도 아시고 자신들도 잘 알고 있는 이 부끄러운 역사로 인해 그들은 자격지심에 빠지기 쉬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수치와 치욕을 다시 기억하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메시야의 구속의 통해 그들의 죄를 완전히 사하시고 다시 정결한 신부로서 그들을 회복하여 주십니다. 이런 놀라운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습니까? 5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이는 너를 지으신 이가 네 남편이시라.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라. 그가 온 땅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실 것이라.” 이스라엘의 남편 되신 하나님은 그들을 지으신 분이십니다. 그들을 지으셨다는 것은 그들의 모든 것을 다 아심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모태로부터 그들을 지으신 하나님은 그들의 모든 연약함과 허물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 부모가 자식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알 듯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다 알고 계시지만 여전히 우리를 영접하시고 신부로 맞아주십니다. 어릴 때 아내 되었다가 버림을 받은 자에게 함과 같이 애틋한 마음으로 다시 부르십니다(6). 이 하나님께 나갈 때 부끄러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이 하나님 앞에 있는 모습 그대로 나올 때 정결한 아내로서 본래의 직분을 회복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냥 사랑이나 받고 은혜나 받는 것으로 만족하는 자기중심적인 자로 머물러 있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의 동역자의 직분을 감당하길 원하십니다. 이를 위해 우리의 구속자가 되어주시고 남편이 되어주십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과거의 수치를 잊고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가길 기도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온 땅의 하나님이심을 드러내는 역사 가운데 귀히 쓰임 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7-10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그들의 수치와 치욕으로 인해 그들을 잠시 버리셨습니다. 잠시 버리신 것은 하나님을 버리고 떠날 때 얼마나 비참하게 되는지 깨닫도록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바벨론의 치욕을 겪게 하시므로 그들 속에 깊이 들어온 세속주의 세력을 빼내고자 하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자 그들을 긍휼히 여기심으로 다시 모으십니다. 다시 모으실 때는 구속자로서 그들을 모으십니다. 앞에서는 아내로 회복하신다고 하셨는데 여기서는 구속자로 그들을 다시 모으신다고 하십니다. 이는 이제 더 이상 법적인 남편과 아내로서가 아니라 메시야의 피로 산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관계로서 회복하고자 하심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부부는 같이 살 때 부부지 돌아서면 완전히 남입니다. 왜냐하면 서로 피가 한 방울도 섞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이스라엘은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바 된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친 백성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더 이상 그들을 인하여 노하지 아니하시고 책망하지도 않으십니다. 산들이 떠나고 언덕들이 옮겨질지라도 하나님의 자비는 그들에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그들과 한 화평의 언약은 옮겨지지 않습니다. 이제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의 긍휼이 그들을 지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한번 택하신 종들을 결코 버리지 않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도 이와 같습니다. 죄 사함 받고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었는데도 틈만 나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마음을 빼앗겨 하나님께는 관심조차 두지 않고 살아갈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우리를 다시 받아주시고 사랑하는 신부요 아내로 회복시켜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은 바다보다 넓고 하늘보다 높습니다. 하나님은 한번 하신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는 노아의 홍수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의 홍수로 세상을 멸절하셨지만 이제 다시는 물로 세상에 범람케 하지 않겠다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약속대로 심판을 내리셔야 마땅한 아브라함 시대에 심판 대신 아브라함 한 사람을 통하여 구원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 긍휼과 소망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2. 이스라엘의 영광의 회복(11-17)
  11-14절에서는 이스라엘의 영광의 회복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11,12절을 보십시오. 다시 결합한 남편과 아내가 살 집의 모습이 어떠합니까? 그 집은 모두다 각종 보석으로 꾸며진 아름답고 영화로운 집입니다. 기초석은 청옥이요 성벽은 홍보석이며 성문은 석류석으로 지어집니다. 번쩍번쩍하고 휘황찬란한 집에서 살게 됩니다. 우리 센터1층에 까페가 지어져 많은 분들이 신기하게 여기고 너무 좋아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우중충한 부엌만 보다가 화사하고 은은한 냄새가 나는 깔끔한 공간을 보니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회복된 이스라엘이 거할 곳은 나무좀 쓴 까페와는 족히 비교할 수 없는 화려하고 영광스러운 곳입니다. 한마디로 계시록에 기록된 천국의 모습입니다. 이는 이 땅에서 직분을 회복하고 그 직분을 힘써 감당할 때 얻게 될 영광이 이와 같이 아름다운 것임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성전에서 하나님의 일을 섬긴 제사장에게 영광이 있었듯이 이 땅에서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는 우리에게 영광이 있습니다. 그 삶이 영광스럽고 그 열매가 영광스럽게 될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의 삶과 우리 모임이 기도와 말씀으로 채워질 때 영광스러운 집으로 지어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데 귀하게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이 땅에서 직분을 힘써 감당할 때 그 자녀들에게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13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네 모든 자녀는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것이니 네 자녀에게는 큰 평안이 있을 것이며” 그 직분을 힘써 감당하는 자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교훈이 임하고 이로 인한 평강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 시대는 어그러지고 패역한 시대로 아이들이 어른의 교훈을 받아들이지 않고 대드는 악하기 그지없는 시대입니다. 요즘 뉴스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들어오면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올 정도입니다. 왕따 당한 학생이 괴로워서 자살하는 사건이 속출하는 이 비극적인 현실을 볼 때 이런 세상에 어떻게 아이들을 내보내 키울까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가운데도 하나님께서는 그 택한 백성의 자녀들을 진리로 양육하여 주시고 친히 보호하시므로 평강을 주십니다. 지난 주 JBF 아이들이 수양회를 가지면서 기뻐하고 은혜 받는 것을 보고 저도 기쁨이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세상에서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일이요 특권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직분을 힘써 감당하므로 그 영광을 누리는 종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14-17절은 택하신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온전한 보호를 나타냅니다. 택한 백성은 공의로 서게 되기 때문에 더 이상 공포가 가까이 하지 못하게 됩니다. 세상나라가 그들과 분쟁하려고  무기를 들고 일어나도 그들을 이길 수 없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새해에는 과거의 잉태하지 못하고 출산하지 못한 수치와 치욕을 잊고 장막터를 넓히는 역사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안으로 오그라들고 자기중심적으로 되어버린 마음을 찢어 넓혀 하나님이 하시는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기도와 말씀으로 섬기는데 열심을 내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할 때 우리 가운데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좌우로 퍼지고 열방을 얻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이런 믿음과 소망가운데 일대일의 장막터를 넓히고 기도의 줄을 길게 하므로 우리 가운데 남는 자의 역사가 충만하게 일어나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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