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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휴화산
작성일 2012-07-18 (수) 21:27
분 류 마가복음
첨부#1 주제강의_3강(최바울).hwp (31KB) (Down: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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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여름수양회 주제3강] 버림받으신 하나님의 아들

2012년 여름 수양회 주제3강                                                                  최바울

                                                             버림 받으신 하나님의 아들

말씀 / 마가복음 15:1-47
요절 / 마가복음 15:34  “제 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의 한 부대가 독일군의 기습 공격을 받았습니다. 당장 인근 부대의 지원을 받지 못하면 전멸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한 무전병이 무전을 치려고 했지만 적의 포격으로 전선들이 끊어져 지원요청을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무전병이 급하게 끊어져 있던 전선들을 복구했는데 전선이 약간 모자라는 것이었습니다. 다급해진 무전병은 자신의 양팔로 끊어진 전선을 잡아 전기를 통하게 하여 무전을 보낸 후 부대원들을 살리고 정작 자신은 감전이 되어 죽었습니다. 무전병 한 사람이 목숨을 버려 부대를 구했다는 일화입니다. 저는 이 감동적인 일화가 실제 일어난 역사적 사실이라고는 믿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다른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는 우리를 살리기 위해 실제로 자기 목숨을 버리신 분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자기의 손과 발에 못을 박아 죄로 인해 끊어져 있던 하나님과 인간들을 다시 이어 멸망으로부터 구원해주신 분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는 예수님의 십자기의 죽으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이 왜 복음인지, 왜 우리를 위한 죽음인지를 알고 십자가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과 십자가에 담긴 구원의 은혜를 충만히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Ⅰ.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1-34)

 1절을 보십시오. “새벽에 대제사장들이 즉시 장로들과 서기관들 곧 온 공회로 더불어 의논하고 예수를 결박하여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겨 주니” 종교지도자들은 밤새 불법 집회를 열어 예수님을 심문하고 사형 선고를 내렸습니다. 그리고 이른 새벽에 빌라도에게 넘겨주었습니다. 이는 로마 총독 빌라도의 공식 판결이 없이는 사형 집행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2절을 보십시오. 빌라도는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심문했습니다. 이는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로마에 반역한 정치범으로 고소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이 불리한 질문에 “네 말이 옳도다” 대답하셨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대제사장들이 여러 가지로 고발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거짓 고발들을 들으시고도 잠잠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과 싸우지 않고 묵묵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재판관 빌라도가 또 물었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아무 대답도 없느냐? 그들이 얼마나 많은 것으로 너를 고발하는가 보라” 그러나 예수님은 털 깎는 자 앞에서 조용한 양 같이 아무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셨습니다. 빌라도는 자신을 변호하기는커녕 오히려 잠잠해야 할 질문 앞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답변을 하는 예수님을 보고 놀랍게 여겼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당시 유대지방에는 명절이 되면 백성들이 요구하는 대로 죄수 한 사람을 풀어주는 전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마침 바라바라 하는 사람이 투옥되어 있었습니다. 바라바는 로마 제국주의 타도를 외치며 민중봉기를 선동하다가 로마 군인을 살해한 죄로 체포된 자였습니다. 빌라도는 이때를 이용하여 예수님을 놓아주고자 했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빌라도가 대답하여 이르되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주기를 원하느냐?” 빌라도가 예수님을 놓아주고자 하는 것은 예수님에게 아무 죄가 없는 것과 대제사장들이 예수님을 시기하여 죽이려고 하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빌라도가 공의로운 재판관이었다면 무죄한 예수님을 석방하는 것이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죄 없으신 예수님에게 무죄 판결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의 거센 반발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백성들의 요구로 어쩔 수 없이 석방시키는 것처럼 하여 종교지도자들의 반발을 무마하고자 꼼수를 부렸습니다. 그러나 11절을 보십시오. 그들은 무리를 충동하여 도리어 바라바를 놓아 달라 하게 하였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이 미리 손을 다 써 놓았던 것이었습니다. 빌라도는 몹시 당황하였습니다. “그러면 너희가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이를 내가 어떻게 하랴?” 그러자 무리들은 다시 소리질렀습니다. “그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 빌라도는 무리들의 이러한 말을 듣고 더욱 놀라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반문했습니다. 그러자 무리들은 더욱 소리질러 십자가에 못박게 하라고 외쳤습니다. 15절을 보십시오.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하여 바라바는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박히게 넘겨 주니라” 빌라도는 무리에게 만족을 주기 위해 무죄한 사람에게 사형 판결을 내렸습니다. 십자가 사형 선고를 받은 예수님은 형집행순서에 따라 먼저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이 채찍은 여섯 가닥의 가죽 끈이 달려있고 끝에는 뼈나 납덩이가 달려 있었습니다. 군병들은 예수님을 기둥에 묶어 놓고 등을 구부리게 하여 채찍으로 내리쳤습니다. 채찍에 맞는 곳마다 살점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유대법정에서는 채찍을 40대 이상 치지 못하게 되어 있었지만 로마법정에서는 채찍을 때리는 자가 지칠 때까지 채찍질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이었지만 로마법정에 계셨기 때문에 이 무시무시한 채찍을 120대나 맞으셨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채찍질한 후에 군병들은 예수님을 끌고 브라이 도리온이라는 총독관저 뜰 안으로 갔습니다. 군병들은 온 군대를 집합시키고 예수님을 희롱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께 왕을 상징하는 자색 옷을 입혔습니다. 왕이 쓰는 금면류관 대신 뜰에 있던 가시나무에서 가지를 잘라다가 가시관을 엮어 씌웠습니다. 이마에 씌워진 가시관의 날카로운 가시들로인해 예수님의 얼굴에는 피가 흘러 내렸습니다. 군병들은 그 앞에 엎드려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하고 비웃었습니다. 그리고 갈대로 가시관이 씌워져 있는 예수님의 머리를 후려쳤습니다. 갈대에 맞은 이마의 가시는 더 깊이 예수님의 머리에 박혔습니다. 군병들은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무릎을 꿇어 절하기도 했습니다. 희롱을 다한 후에 군병들은 다시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이전 옷을 입혔지만 자신들의 손가락이 찔릴까봐 그랬는지 예수님의 머리에 박혀 있는 가시관은 벗겨주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갔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못 박힐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사형장으로 끌려갔습니다. 예수님은 밤새도록 철야 심문을 받고 한 숨도 못 주무셨습니다. 심한 채찍에 맞아 기력이 진하였습니다. 온갖 희롱으로 심신이 지쳐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가다가 수없이 쓰러지셨습니다. 군병들은 그 때마다 사정없이 채찍으로 내리쳤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일어나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셨지만 얼마 못가 또다시 쓰러지셨습니다. 자꾸 시간이 지연되자 짜증이 난 군병들은 군화발로 차고 채찍으로 때렸습니다. 예수님은 일어났다가 또 쓰러지셨습니다. 마침내 더 이상 일어설 수 없었습니다. 군병들은 아무리 때리고 차도 일어나지 못하는 것을 보고 구경하러 나온 구레네 사람 시몬을 붙잡아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게 했습니다. 그는 억지로 십자가를 졌지만 이로 인해 그와 그 가정이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행11:20).

 예수님은 마침내 골고다에 이르셨습니다. 23절을 보십시오.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습니다. 몰약을 탄 포도주는 십자가의 무거운 고통을 덜어주는 잠시 덜어주는 마취제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주신 고통을 회피하고자 하지 않으시고, 모든 고통을 일일이 감당하고자 하셨습니다.

 24,25절을 보십시오. 골고다에 도착한 군병들은 드디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이때가 오전 9시였습니다. 손바닥에 못질하면 체중을 이기지 못하고 찢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군병들은 손목에 못을 박았습니다. 손목은 온몸의 신경이 집중되어 있는 곳이라 더욱 고통이 심합니다. 군병들은 기진맥진한 예수님을 십자가 위에 눕히고 손목과 발목에 대못을 박았습니다. 당시 사용된 못은 오늘날처럼 기계로 만든 예리한 못이 아니라 대장장이가 두드려서 만든 울퉁불퉁한 못이었기 때문에 이 못에 못질을 당하면 뼈와 살이 으스러지면서 박혔습니다. 예수님은 못이 박힐 때마다 온 몸을 비틀며 비명을 지르셨습니다. 우리는 그 고통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시편 기자는 이 그리스도가 당할 고통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나는 물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밀납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시22:14-18)”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사 인간이 당할 수 있는 모든 고통과 모욕과 수치를 다 받으셨습니다. 이런 모진 고통을 당하시는 예수님의 머리 위에는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패가 붙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좌우편에는 두 강도가 함께 못 박혔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군병들은 예수님이 입던 옷을 갖기 위해 제비를 뽑았습니다.

 29-32절을 보십시오. 지나가는 자들이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님을 모욕했습니다.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희롱했습니다.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함께 달린 강도까지 모욕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의 메시야로서 당하시는 고난을 조롱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못 박히신지 약3시간이 지난 제6시 곧 낮 12시가 되자 온 땅에 칠흙 같은 어두움이 임했습니다. 온 세상의 모든 더럽고 추악한 죄를 짊어지신 예수님의 모습을 아버지 하나님은 잠시 눈을 감고 외면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지금까지 모든 아픔을 잠잠히 감당하셨지만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버린 받은 것에 크게 부르짖으셨습니다. 34절을 보십시오.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이 부르짖음은 하나님께 버림받으시는 그리스도의 고통스런 절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고 하셨습니다(막1:11). 변화산에서도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하셨습니다(막9:7). 그러나 이제는 사랑하는 아들이 고통으로 부르짖어도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들의 신음 소리를 외면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아들, 기뻐하는 아들을 버리셨습니다. 버림받는 아들의 고통도 크지만, 그 무서운 고통 속에서 울부짖는 아들을 돌아보지 않는 아버지의 고통은 더 클 것입니다. 그럼 왜 아버지는 아들을 버리고, 아들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받으셔야만 하셨습니까?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이 말씀에 담긴 의미가 무엇입니까?
 첫째,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말해 줍니다. 사람들은 죄를 즐길만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죄가 결코 즐길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예수님이 당하신 십자가형이라는 형벌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에서 인간이 범죄한 후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 외아들을 죽이기로 작정하셨을 때 왜 하필 많은 형벌 중에 십자가형으로 정하셨을까요?(창3:15,민21:8) 이는 십자가형에 인간이 죄를 범했을 때 치뤄야 할 대가가 잘 나타나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형제도에는 사형수에 대한 최소한의 인간적인 배려가 있지만 유독 십자가형만큼은 사형이 선고된 직후부터 죽기까지 무자비한 고문이 지속됩니다. 먼저 무서운 채찍질을 당합니다. 군병들에게 무시와 조롱과 수치를 당합니다. 자기가 못 박힐 십자가를 지고 사형장까지 가서 산채로 못 박힙니다. 단번에 죽지 않고 며칠 동안 심한 기아와 갈증으로 고통하다가 서서히 죽어 갑니다. 죽은 후에는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도록 방치해 둡니다. 이는 죄가 우리에게 주는 고통과 비슷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에 인간은 죄로인해 결국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죄로 인해 죽게 되기 이전에 죄를 지었기 때문에 지불해야 댓가가 있습니다. 우선 죄로인해 생긴 죄의식은 쇳조각들이 달린 채찍처럼 우리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상처들을 남깁니다. 상처를 남기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수치심에 시달리게 됩니다. 어쩌다가 죄가 드러나게 되면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기도 합니다. 죄를 즐길 때와 달리 죄에 대한 댓가를 치룰 때에는 혼자가 됩니다. 당장 심판을 받고 죽지는 않더라도 사는 날 동안 고통을 당하다가 종국에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하게 됩니다. 가끔씩 죄가 주는 고통을 감하기 위해 몰약을 탄 포도주를 마셔보아도 그 고통이 감하는 것은 잠간뿐입니다. 하나님은 죄가 주는 달콤함에 속아 범죄한 아담의 피를 가지고 기회만 되면 죄를 즐기고자 하는 아담의 자손들에게 죄가 얼마나 무서운가, 죄가 얼마나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고 불행하게 하는가를 사랑하는 외아들을 십자가라는 잔인한 형틀에 못박음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셔서 하나님께 버림받는 예수님을 통해 죄가 얼마나 나를 고통스럽게 하고 비참하게 만들며 마침내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어지게 하고 하나님께 버림받게 하는 무섭고 심각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십자가는 죄에 대한 경고일 뿐 아니라 범죄한 인간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여기서 버림받았다는 것은 단순히 쓸모없어져서 버려졌다는 의미가 아니라 지옥 불에 떨어지는 형벌을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인생들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버림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타락한 인간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는 그들을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버림을 받는 것은 인간이 겪는 아픔 중에 가장 큰 아픔입니다.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인생들은 타락한 본성대로 우상 숭배자가 되었고, 온갖 음란과 부도덕, 강포가 충만케 되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기 때문에 지옥과 같은 고통 속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버림을 받은 인생들은 하나님의 엄위한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으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내가 죄로인해 하나님의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데 예수님께서 내 대신 하나님의 버림을 받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대신 저주를 받으심으로 우리가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갈3:13)” 우리 대신 나무에 달리사 우리 죄 값을 치르시고 하나님의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이로서 우리가 율법의 저주와 하나님의 심판에서 속량 받게 되었습니다. 이를 대속의 사랑이라고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의 대속의 사랑을 다음과 같이 예언했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4-6)”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질고와 고통을 짊어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나음을 입게 되었습니까?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까? 어떻게 우리가 운명과 슬픔에서 벗어나 참 생명과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까? 이는 주님께서 우리의 죄악을 십자가에서 담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버림을 받고 징계를 받은 것은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기 위함이요, 주님께서 채찍에 맞아 살이 찢어진 것은 우리의 상처를 아물게 하기 위함입니다. 주님께서 버림을 받으심으로 우리가 택함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주님께서 찔리심으로 우리의 허물이 용서받고, 주님께서 상하심으로 우리의 죄악이 사해졌습니다. 주님께서 징계를 받으심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주님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게 되었습니다. 우리 죄를 위해 나 대신 버림받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사랑을 감사 찬양합니다.

Ⅱ. 새롭고 산 길 되신 예수님(35-47)

 35,36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곁에 섰던 사람들은 “보라 엘리야를 부른다”고 했습니다. 한 사람은 달려가서 해면에 신 포도주를 적시어 갈대 끝에 꽂아 마시우게 했습니다. 그리고 “가만 두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내려 주나 보자”고 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운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운명하실 때 어떤 기이한 일이 일어났습니까? 38절을 보십시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었습니다. 성전은 성소와 지성소로 나뉘어져 있고 그 사이에 이 휘장이 쳐져 있었습니다. 지성소는 거룩하신 하나님이 임재 하는 곳이요 속죄소가 있는 곳입니다. 이곳은 1년에 한 번씩 대제사장만이 어린 양의 피를 가지고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휘장은 인간이 죄로 인해 거룩하신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없음을 상징하는 장벽입니다. 휘장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악된 인간 사이에 가로막힌 죄의 장벽입니다. 이 성소의 휘장은 24가닥의 실로 엮은 끈 82개로 아주 정교  짠 것으로 그 두께가 2.5센티미터나 되었습니다. 그래서 말 네 필에 묶어 당겨도 찢어지지 않을 만큼 튼튼합니다. 그런데 이 휘장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위에서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죄의 장벽이 허물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끊어져버린 전선이 한 사람의 희생으로 이어졌듯 끊어져있던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가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다시 이어졌음을 의미합니다. 성소의 휘장이 찢어짐으로 우리가 누리게 될 축복을 히브리서 기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산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히10:19,20)” 예수님은 자기 육체를 찢으시고 피흘려 죽으심으로 그 육체의 휘장 가운데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새롭고 산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더 이상 번거로운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이 언제 어디서나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가 죄사함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나갈 때 눈과 같이 희게 씻어 주십니다.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심으로 거룩하신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새롭고 산 길을 열어 주신 예수님의 크신 사랑을 찬양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을 본 백부장의 고백이 무엇입니까? 39절을 보십시오.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백부장은 사형 집행 담당 장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죽으심을 보고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이방인 최초로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40,41절에는 멀리서 예수님의 죽으심을 목격하는 여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갈릴리에 계실 때부터 따르며 섬기던 자들이요 예수님의 죽으심을 목격하면서 더욱 더 예수님을 존경하고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43절을 보십시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의 마음 속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는 존경받는 공회원이라는 신분 때문에 은밀히 주님께 지지를 보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으심을 목격한 후 담력을 얻었습니다. 그는 당돌히 빌라도 앞에 가서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하여 자기 무덤에 장사 지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십자가는 소심하던 사람을 대장부가 되게 하는 놀라운 변화의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원수의 마음을 녹이는 힘이 있습니다. 그전부터 예수님을 사랑하던 사람들의 마음에는 더 큰 애정과 믿음을 심어줍니다.

 저는 1972년 가난하지만 사랑이 많으신 부모님 밑에서 2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는 남앞에 서기만 하면 얼굴이 붉어지는 소심하고 내성적인 아이였습니다. 저는 대학만가면 이런 자신이 변화되어 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열심히 공부하여 재수 끝에 1992년 경희치대에 입학하였습니다. 그러나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지만 빡빡한 수업일정과 부족한 것이 없어 보이는 잘난 친구들 사이에서 점점 아웃사이더가 되어갔습니다. 강의실보다 당구장 만화방 호프집 노래방을 전전했고 저녁이면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셨습니다. 훌쩍 배낭 메고 카메라 하나 달랑 들고 산으로 섬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하였습니다. 저의 낭만적인 대학생활은 예과 2학년 1학기 기말고사 때 출석미달로 교수님 얼굴도 잘 생각이 나지 않는 2과목에서 f학점을 받는 것으로 끝이 났습니다. 유급이라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저로 인해 일생 노동일을 하시며 고생하신 부모님께 대한 미안함으로 눈물 흘리는 것 뿐이었습니다. 이런 저를 하나님께서는 학기초부터 제발 그렇게 살지 말고 성경공부 좀 하자고 쫓아다니셨던 UBF 목자님들을 통해 찾아오셨습니다. 간신히 한 과목에서 구제를 받고 계절학기를 듣는 와중에 참석한 93년 밀알동산 여름수양회에서 마 9:2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말씀을 통해 그동안 저의 무기력하고 무절제한 삶이 창조목적에 어긋난 삶이요 하나님께 죄가 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죄로 깊이 병들어 여전히 죄의식과 수치심으로 어정쩡하게 수양회를 참석하고 있던 죄인에게 하나님께서는 저의 죄를 대신 사하시기 위해 제 대신 수치와 조롱을 당하시고 마침내 십자가에 높이 달리신 주님을 바라보게 하시고 그 예수님께 그동안 저를 짓눌러온 추한 정욕의 죄를 고백하게 하셨습니다. 죄사함의 역사로 말미암은 변화는 즉시 나타났습니다. 수양회 이후 술과 담배를 끊었습니다. 출석보다 결석이 많던 자가 지각한번 하지 않고 열심히 수업을 듣고 모범생에게만 주는 모범장학금을 타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구원의 확신이 생기고 죄의식으로부터 자유케 되자 남 앞에 서기만 하면 얼굴이 붉어지고 말문이 막히는 증상이 사라졌습니다. 남 앞에서 춤도 추고 노래도 하고 연극도 하고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도 전하는 캠퍼스 목자가 되었습니다. 졸업 후에 전임사역자가 되고 선교사가 되고 평신도가 되면서 때마다 사단의 유혹과 시험에 실족할 때가 많았지만 93년 밀알동산 여름 수양회에서 만난 십자가 예수님은 제 인생의 닻이 되어 흔들릴지언정 떠내려가지 않게 하시고 끝까지 예수님의 제자의 삶을 살도록 저의 영혼을 붙들어 주셨습니다. 저에게 예수님은 저를 위해 대신 버림받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되십니다. 저에게 예수님은 저를 위해 대신 고초당하시고 조롱당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되십니다. 제가 일생 이 예수님을 저의 그리스도로 경배하며 죄로 고통하는 캠퍼스 지성인들을 섬기는 목자로 살겠습니다. 저는 이번 말씀을 준비하며 빌라도와 같이 평신도로 살면서 힘들게 이루어놓은 것들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무리들처럼 좋을 때 호산나 찬송했다가 틀어지면 배척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군병들처럼 십자가 예수님 앞에 무덤덤한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를 회개하고 다시 십자가 예수님을 바라보겠습니다. 자신을 버려 인생들을 구원하신 예수님처럼 자신을 버려 캠퍼스 지성인들을 살리는 캠퍼스 복음역사에 다시 헌신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과거 십자가 집행 현장에 없었다는 이유로 예수님의 죽으심에 아무 책임이 없다 이야기 할 수 없습니다. 우리도 빌라도와 같이 자기 유익을 위해 진리를 알면서도 진리를 외면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종교지도자들과 같이 시기심에 눈이 먼 적이 있고 지나가는 자들처럼 들리는 거짓 소문만을 가지고 예수님을 조롱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무리들과 같이 자기가 원하는 메시야가 아니라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주지 않는다고 예수님을 정죄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군병들처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가까이서 보고도 무관심하고 무덤덤하게 지낸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우리 모두를 죄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시고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이번 여름 바이블 캠프 전체 타이틀이 ‘예수님은 누구신가?’입니다. 예수님은 나 대신 십자가에 달리시고 나 대신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으신 나의 그리스도가 되십니다. 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가 주는 고통에서 벗어나 복되고 희망찬 새 인생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 예수님의 대속의 사랑이 우리 마음 속에 깊이 새겨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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