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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1-05-22 (일) 12:41
분 류 누가복음
첨부#1 2011년_누가복음_10강-1.hwp (54KB) (Down: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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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누가복음 제10강]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2011년  누가복음 제 10 강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말씀  / 누가복음  5:17 - 39
요절 / 누가복음  5:32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오늘 본문에서는 죄로 인해 병든 중풍병자에게 예수님은 죄사함을 주시므로 건강한 인생을 살게 하십니다. 또한 이기적이고 불행한 인생을 살아가는 세리 레위에게 예수님은 찾아 오셔서 “나를 따르라” 하시므로 거룩하고 아름답게 변화되는 인생을 살게 하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건강하고 아름다운 인생을 살 수 있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그 비밀을 찾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있는 한 집에 들어가셔서 말씀을 가르치시고 계실 때였습니다. 갈릴리 각 마을과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바리새인과 율법 교사들이 들어와 앉았습니다. 그들은 은혜를 사모함으로 나온 사람들이 아니라 예수님에 대해 고소할 조건을 찾으려고 왔습니다. 그들은 들리던 소문대로 병을 고치는 하나님의 능력이 예수님과 함께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병자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에 뒤늦게 한 중풍병자를 침상 채 매고 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멀리서 뜨거운 뙤약볕을 맞으며 침대를 메고 오느라 늦게 도착하였습니다. 그 사람들이 집에 막 도착했을 때 집 앞은 많은 사람들로 인하여 도저히 예수님 앞에 데려 갈수가 없었습니다. 먼 곳에서 어렵게 왔는데, 참으로 난감 했습니다. 이런 경우 보통 사람들은 몇 번 시도해 보다가 안 되면 다음 기회로 미루거나 포기해 버립니다. 그러나 중풍병자를 메고 온 사람들은 물러설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어찌하든지 중풍이를 낫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 앞에 중풍이를 데려 가고자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때 그들의 눈에 예수님이 계신 집지붕이 보였습니다. 그들은 중풍이를 데리고 지붕으로 올라갔습니다. 그 후에 기와를 벗기고 중풍이를 침상 채 예수님 앞에 달아 내렸습니다. 그들의 작전은 대 성공이었습니다.
  그런데 주위에서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그들의 행동을 보고 막 욕하였습니다. 아! 순서를 지켜야지! 참 기본 상식이 없는 사람들이네! 그러나 이때 예수님은 무엇을 보셨습니까?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20a)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난 행동을 보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속에 있는 믿음을 보셨습니다. 이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어떤 장애물과 방해에도 구하고 찾고 두드려 예수님께 데리고 오는 믿음입니다. 한 영혼을 어찌하든지 살리고자하는 믿음입니다. 예수님께 데리고만 가면 예수님께서 불쌍히 여기사 반드시 치료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능력을 믿는 믿음입니다. 목자는 바로 이 중풍병자의 친구들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양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가면 예수님께서 반드시 구원해 주시고 치료해주실 것을 압니다. 그런데 양들을 예수님 앞에 데려 가고자 할 때 수많은 장애물을 만나게 됩니다. 참으로 어렵습니다. 어떤 양은 너무 교만해서 말씀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또 어떤 양은 자신의 주장만 열심히 내세우고 떠나 가버립니다. 또 어떤 양은 인생 문제가 너무 깊어서 어떻게 도울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어떤 양은 너무 무기력합니다. 어떤 양은 기독교의 유일성을 집요하게 공격합니다. 세상에 순한 양은 한명도 없습니다. 우리들 자신을 봐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순한 양이었습니까? 문제없는 분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저는 막내로서 참으로 이기적이고, 진리를 깨닫기에 둔한 자였습니다. 그래서 목자님의 속을 많이 썩혀드렸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오쉬 지역엔 양들이 아주 많습니다. 푸른 초장에 한가롭게 풀을 뜯는 양들을 보면 한 폭의 그림 같습니다. 그런데 도로에 지나가는 양들을 자세히 보니까 조금 앞서가는 양이 있으면 고개를 푸욱 숙이고 따라갑니다. 양은 시력이 안 좋기 때문에 그곳이 좋은지 나쁜 곳인지 분별하지 못하고 무조건 따라갑니다. 이런 양의 특징을 가진 캠퍼스 양을 도와야 하는 우리가 한계에 부딪히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그냥 주저 앉아 있을 수밖에 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먼저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도록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합니다. 믿음으로 길을 찾는 자에게 하나님은 반드시 그 길을 보여 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열심과 열정을 보시지만 더 귀하게 여기시는 것은 우리의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목자님들의 믿음을 아주 귀히 여기십니다. 또 믿는 자에게 큰 상급을 주십니다. 히11:6절은 말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 그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한 영혼을 예수님께 데리고 가 그 영혼이 구원받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게 하는 것임을 믿습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가 믿음으로 장애물을 극복해야 하고 어찌하든지 예수님 앞에 데리고 나가는 수고를 감당해야 합니다.
  저는 금년 2월 중순경에 한 친구와 함께 사업상 가는 길에 비-형제를 만났습니다. 그때 눈이 많이 와서 길을 가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다리에 앉아 있는 한 모자(母子)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걷지 못하여 집에 까지만 데려달라고 울부짖었습니다. 저희는 모자를 차에 태워 집에 데려다 주었습니다. 청년은 얼굴을 감싸고 앞을 보지 못하고 어머니는 울고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청년은 큰 화상을 입어 오른쪽 눈은 실명했고, 오른쪽 얼굴 절반이 없었습니다. 태어나서 저는 그렇게 깊은 상처를 입은 사람은 처음 보았습니다. 집에 돌아 왔는데 형제의 얼굴이 잊혀 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제게 이 형제를 보게 하셨을 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실은 저도 경제적으로 어려워 친구의 자동차를 얻어 타고 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제게 이 형제를 보여주신 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 왜 제게 이 형제를 보여 주셨습니까? 기도가 되었습니다. 매년 기아 대책 기구에서 저희 지역에 오는 언청이 수술 무료 의료 봉사하는 분들이 생각났습니다. 담당자에게 전화를 해서 비-형제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도울 방법이 없겠냐고 문의를 하니까 정확한 답변을 줄 수 없지만 사진을 찍어서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형제의 사진을 찍어 한국에 보냈습니다. 한국에서 답이 왔습니다. 작년에 저희 지역에 왔을 때 이 형제의 사진을 보았는데 그동안 사람을 통해 찾고 있었는데 못 찾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교통비와 수술비를 한국에서 지원할 것이니 급히 한국으로 보내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대로 두면 골수염으로 죽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아 하나님이 일하시는 구나! 감동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선한 일을 하는 분들이 있음을 인하여 감사가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비- 형제의 부모에게 알리고 서둘러 한국에 보내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주민등록증도 없었습니다. 참 난감했습니다. 서류를 다 만들어 내무부 여권부에 제출했는데 이번에는 병역의무 불이행이라고 거절하였습니다. 또 그의 어머니는 법원에서 집해유예 때문에 여권을 만들 수가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비-형제는 중간에 또다시 자살을 시도하고 만들어 놓은 서류를 빗속에 던져 버렸습니다. 예전에 현지 병원에서 화상 치료할 때 급히 서두르다가 마취 없이 얼굴을 꿰맨 아픈 기억 때문에 수술을 안 받고 그냥 죽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괜히 이일에 끼어들지 않았는지 한편으로는 근심이 되었습니다. 또 이러다가 늦게 한국에 가면 골수염 때문에 데려가도 치료를 받지 못해 문제만 더 크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일에 주관자는 하나님이심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시작하셨으니까 하나님께서 잘 마무리 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또 이 이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친히 영광 받으시기를 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제가 할 일은 이 형제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돕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결단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한 영혼의 생명을 살리는 일과 그의 가족을 깊은 어두움에서 구원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진행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주고 예배를 같이 드렸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예전에 근무했던 국가 정--을 통해 일을 일사천리로 진행토록 도우셨습니다. 비자와 모든 수속을 마치고 드디어 한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도착해서는 혈액검사에서 C형간염 말기판정이 나와 마취를 할 수 없어 수술을 할 수 없다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새로운 장애물이었습니다. 그러나 포기치 않고 계속해서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일주일 만에 간수치를 낮추어 주셔서 수술을 할 수 있었습니다. 앞주 16일-17일 이틀간 걸쳐 광명성애병원에서 세계적인 의사선생님들의 의해 살과 피부를 얼굴에 이식하는 수술을 마쳤습니다. 자살을 시도하던 비 형제도 삶에 희망을 품고 수술을 잘 감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드립니다.  
  예수님은 친구들과 중풍이의 믿음을 보시고 무엇이라 말씀하셨습니까?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말씀하시지 않고, 예수님은 “이 사람아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왜 중풍병자에게 죄사함을 선포하셨습니까? 이는 중풍병자에게 육신의 병보다도 죄 문제가 더 시급한 근본적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죄는 인간의 영혼을 파괴하고 참으로 고통스럽게 합니다. 중풍병자는 죄를 지어 저주를 받았다는 생각에 사로 잡혀 고통 받고 있었습니다. 중풍병은 그의 신경 세포를 죽였지만, 죄는 그의 영혼을 갉아 먹었습니다. 사람에게는 죄사함이 필요합니다. 죄사함 받기 전까지 안식이 없습니다. 죄사함 받기 전까지 새 출발은 없습니다. 죄사함 받기 전까지 자유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죄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죄사함을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주님이 지신 십자가가 그토록 무겁고 고통스러웠던 이유는 우리가 지은 죄가 그만큼 크고 악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을 다 십자가에서 담당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 피로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케 해 주십니다. 우리가 죄사함 받을 때 비로소 죄의식과 두려움에서 해방되고 안식과 자유를 누립니다. 우리에게 죄사함의 은혜를 주신 예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에게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말씀을 하시자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의 속이 시끄러워졌습니다. “이 신성 모독 하는 자가 누구냐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바리새인들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하나님 외에 죄를 사할 수 없다는 그들의 말은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신성 모독했다는 말은 틀렸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물으셨습니다. 둘 다 사람은 할 수 없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을 일어나 걷게 하심으로 자신이 죄사함의 권세자이심을 나타내시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네 침상을 들고 집으로 가라” 예수님의 말씀이 임하자 그 사람이 일어나 자기 침상을 들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건강하고 씩씩한 청년이 되었습니다. 이 일이 일어나자 사람들은 놀라고 심히 두려워하기까지 했습니다. 사람들은 지금까지 예수님을 이적 베푸는 큰 선지자 정도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예수님께서 “네 죄사함을 받았으니라” 하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예수님은 우리에게 죄사함을 선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예수님이 바로 우리의 주님입니다.
  그 후에 예수님께서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27). 레위라는 이름을 가진 것을 볼 때 그는 레위 지파 사람 중에 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레위의 부모님들은 레위가 나중에 커서 훌륭한 제사장이 되라고 소망가운데 이름을 붙여 주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제사장이 되지 않고 세리가 되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세리는 공인된 죄인이었습니다. 로마는 세리들을 동원해서 가난한 유대 백성들에게서 세금을 받아냈습니다. 세리는 자신들의 배를 채우려고, 여러 가지 세법을 만들어 과도하게 세금을 징수했습니다. 지금 세관에 앉아 있는 레위도 이렇게 해서 부를 축적했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저주를 했습니다. “벼락 맞아 죽을 놈! 피도 눈물도 없는 잔인한 놈, 매국노 ” 그러나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아마 그는 지난날 가난에 한이 맺혔는지 돈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또 돈이 생기자 돈이 좋았습니다. “당신들은 돈 맛을 몰라서 돈이 얼마나 좋은 데.... ”그는 돈 쓰는 재미에 빠졌습니다. 그는 부동산에 투기를 하고, 좋은 자동차와 멋진 집도 샀습니다. 그런데 그의 즐거움은 얼마 가지 못했습니다. 그는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을 때마다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어느 누구에게도 존경받지 못했습니다. 아내와 자식들도 그를 전혀 존경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이 너무나 후회스러웠습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되돌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다가 이런 그를 보시고 다가오셨습니다. 예수님은 깊은 이해와 사랑의 눈으로 그를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한 영혼이 허무와 고독에서 울부짖고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르라." 이 말씀은 세리 레위에게 임한 놀라운 죄 사함의 음성이요, 구원의 음성이었습니다. 이는 그가 과거 어떤 삶을 살았든지 문제 삼지 않고, 그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또 그의 인생 목적과 방향을 바로 잡아 주고자 하시는 말씀입니다. 레위는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이 능력과 재능을 돈을 쫓아가기 위해 썼습니다. 그가 불행하게 된 원인은 인생의 목적과 방향이 잘못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가 더 이상 돈을 따르지 않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도록 그를 제자로 불러 주셨습니다. 레위는 주님의 부르심 앞에서 주저하지 않고 결단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러자 그의 심령에 전에는 전혀 맛볼 수 없었던 기쁨과 행복이 몰려왔습니다. 그는 감격하여 예수님을 위해 큰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그리고 세리 친구들을 다 초청하였습니다. 이런 잔치는 그의 생애에 있어서 처음이었습니다. 이 잔치는 은혜의 잔치요, 구원의 잔치요, 예수님이 함께 하는 천국잔치였습니다. 그는 참 행복했습니다. “그래 행복이 바로 이런 것이여!” 그의 마음속에 기쁨이 넘쳤습니다.
  그런데 이때 초대받지 않은 손님들이 찾아 왔습니다. 그들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 같은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식사는 한 공동체, 한 가족이 되었다는 상징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 받은 레위는 오늘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가 초대한 친구들은 모두 사회에서 죄인으로 낙인찍힌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함께 누워서 식사를 나누고 있는 이 모습을 보고 바리새인들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예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31,32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 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종교지도자들은 레위가 지은 죄로 인해 하나님께 당연히 심판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죽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죄인들과는 조금이라도 가까이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적의사로서 죄인들을 병든 자로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치료해 주시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들을 구원코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향한 긍휼의 마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충만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레위를 있는 모습 그대로 영접하셨습니다.
  결국 돈밖에 모른 던 세리 레위가 마태복음의 저자 성마태가 되었습니다. 무엇이 세리 레위를 성 마태로 바꾸었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의 부르심입니다. “나를 따르라!” 이 부르심에 응답하여 레위는 모든 것을 다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과거 세리로서 저지른 모든 악행과 죄악을 용서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먹여주시고 사랑으로 참고 감당해 주셨습니다. 그럴 때 그는 위대한 성자가 되었습니다. 레위에게 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예수님은 의사이시요 구원자가 되십니다. 예수님 앞에서는 바리새인과 서기관처럼 겉으로 강한 척, 의로운 척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아십니다. 우리가 얼마나 병들었는지, 우리가 어떤 죄인인지 다 아십니다. 우리가 얼마나 무너지기 쉬운 자인지 나를 나보다 더 잘 아십니다. 예수님은 이런 우리를 구원코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이기적인 나만의 세계 속에 갇혀 있는 우리들에게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나를 따르라” 부르십니다. 이 예수님은 우리를 장차 큰 소망가운데 부르십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선하신 일을 위하여 부르십니다. 우리를 부르신 예수님은 우리가 연약하다고 버릇없다고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은 우리를 끝까지 책임지시겠다는 또 하나의 약속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기를 원하십니다. “나를 따르라” 이 예수님의 부르심에 순종할 때 우리는 아름답게 변화됩니다. 우리가 이 부르심에 적극적으로 따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저를 부르신 구원의 주 예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어릴 때 빼지 않는 뻐드랑니로 인해 사람 앞에 말도 못하였습니다. 위아래에 솟아있는 치아는 드라큐라와 비슷하였습니다. 남자답게 하하하! 웃고 싶은 데 웃을 수가 없었습니다. 웃어도 손을 가리고 웃어야 했습니다. 저는 거울을 보며 치아를 뻰치로 이리저리로 시도해 보았지만 아프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고 심히 자학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병든 인생을 살 수 밖에 없는 자를 87년 대학 1학년 때 UBF목자님을 통해서 불러 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통해 예수님은 제게 찾아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제게 손이 마른 병자에게 말씀하시듯이 “네 손을 내밀라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저의 인생문제-치아문제를 내밀었습니다. 그리할 때 예수님은 이 문제를 치료해 주셨습니다. 그때 제게 가장 힘들고 어려운 율동 찬송 하하하--하하하 히히히--히히히를 은혜롭게 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하나님이 주신 인생을 자학하며 헛되이 보낸 죄악과 지난날의 저의 죄악을 진실 되게 회개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제게 죄 사함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는 크고도 놀라왔습니다. 사람들 앞에 말 한마디 못한 자가 친구들과 만나는 사람들에게 저를 구원해 주신 예수님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저를 영혼을 돕는 목자요 성경선생으로 빗어주시고, 선-로 불러 주셨습니다. 금년이 중앙 아--선-로서 12년입니다. 키--탄은 위로는 카-- 중-  아래로는 우- 타- 둘러싸여 있습니다. 해발 3-7천미터의 산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알피니스트들이 찾습니다. 또 1년 내내 만년설을 볼 수 있는 곳이며, 호수가 아름다운 나라입니다. 중-의 스위스로 불리는 곳입니다. 그러나 모--으로 자립하며, 역사를 이룬다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피싱은 할 수 없고, 전도하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비자도 잘 내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는 함께 해 주셨습니다. 먼저 현지에서 살아남게 도우셨습니다. 영적으로 지치고 힘들 때가 많았지만 때를 따라 주시는 생명의 말씀을 통해 저희 가정에 많은 은혜 주시고, 4자녀들에게도 축복하셨습니다. 또 센타를 구입해 영적 환경을 준비케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때가 되자 3년 전에 실버 선-- 1호 임--선- 보내주시고, 오-공-대학에 한국어 교수로 채용되게 하셨습니다. 이제는 학교의 손님이 아니라 학교의 주인이 되어 학생들을 돕게 하셨습니다. 때가 되자 하나님께서 양들을 많이 보내주십니다. 그 1호로 사라--자매가 정부 초청장학생으로 한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이제 이들을 주의 말씀으로 잘 도와 제자 양성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저희 센타의 비전은 100명의 제자들을 양육하여 중--와 아-권 실-로드로 선-를 파송하는 것입니다. 저는 6-7월 한국어 교원양성과정을 마치고 공- 한국어 교수로서 일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부르심에 순종하는 저와 함께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름으로 저의 인생을 아름답게 빚어 가심을 인하여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평생 예수님을 배우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선-로서 인생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하는 말씀으로 죄로 얼룩진 우리 인생을 깨끗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나를 따르라’하시는 음성으로 병들어 못 쓰게 된 우리 인생을 치유하십니다. 믿음으로, 순종으로, 우리 삶을 주님께 맡길 때 예수님은 우리 인생을 건강하게 하고, 최고의 아름다운 작품으로 만들어 가실 것입니다. 죄사함의 권세자이시며 영혼의 의사가 되시는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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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8 이사야 [2010년 이사야서 제4강]포도원의 노래 리스닝 2010-10-03 2735
617 요한복음 [2010 요한복음7강]오병이어를 축사하신 예수님 리스닝 2010-04-18 2734
616 야고보서 [2010년야고보서제2강]참된 믿음 리스닝 2010-08-15 2733
615 마가복음 [2012년 마가복음 제22강] 언약의 피 관리자 2012-08-19 2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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