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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2-06-03 (일) 12:42
분 류 마가복음
첨부#1 2012_마가복음12강-1(홍승재).hwp (32KB) (Down: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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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마가복음 제12강] 주는 그리스도

2012년 마가복음12강                                                                       홍승재

주는 그리스도

말씀/ 마가복음 8:14-38
요절/ 마가복음 8:29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여러분은 캠퍼스에서 1학기과정을 마치는 날이 정확히 언제인지 아십니까? 바로 학기말고사 마지막 날입니다. 물론 재시를 보시는 분들은 좀 더 걸릴 것입니다. 학생들은 이제 다음 주부터 시작될 기말고사로 마음이 분주합니다. 이때가 되면 우리 목자님들 역시 본격적으로 여름수양회 준비로 마음이 분주해지기 시작합니다. 주님께서는 바로 이때 오늘 말씀을 주시길 원하십니다. 오늘 말씀은 그 유명한 베드로의 신앙고백입니다.“예수님은 누구신가?”라는 1학기말 시험에 베드로는“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 짧지만 굵은 백점짜리 정답을 고백함으로 인류의 스승이요 교회의 반석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고백을 기초로 제자들에게 2학기 학습목표인 메시야 사역과 그리스도의 길을 구체적으로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이시간 우리도 예수님을 ‘나의 그리스도’로 신앙 고백하는 가운데 예수님을 새롭게 만나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제 1장. 바리새인들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14-26)  

 14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배를 타고 가시는 도중이었습니다. 제자들은 너무 배부른 나머지 칠병이어로 4천명이 먹고 남은 떡조각 일곱 광주리를 챙겨오는 것을 깜박 잊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오늘 식사 당번인 빌립이 미리 챙겨놓은 떡 한 개밖에 없었습니다. 마침 이 때 예수님께서 경고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경고하여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여기서 누룩은 좋지 못한 영향력을 말합니다. 바리새인과 헤롯은 그 시대를 대표하는 지도자들입니다. 종교 지도자인 바리새인들은 그 시대의 양심을 밝히는 등불이요, 정치 지도자인 헤롯은 그 시대를 섬기는 일꾼이 되어야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누룩을 통해서 그 시대의 문제가 드러났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이들의 누룩, 즉 악영향이 무엇입니까?

첫째, 바리새인의 누룩은 외식입니다. 막 7장에서 예수님은 그들의 외식에 대해 책망하셨습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열심히 손도 씻고 목욕도 하며 깨끗한 체했지만 속으로는 불신자와 같이 온갖 탐욕이 가득한 이중생활을 하였습니다. 이들은 백성들로부터 섬김 받기는 좋아했지만 섬기는 생활을 싫어하였습니다. 그중에도 가장 악한 누룩은 하나님 앞에 살지 않고 사람 앞에 사는 인본주의, 형식주의 신앙이었습니다. 이들은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쳤으나 결코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도 인본주의 신앙의 누룩은 우리 믿는 자들에게 무서운 악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인본주의 신앙의 특징은 회개, 결단, 순종, 헌신, 희생, 사명, 절대성 등의 복음적인 단어들은 부담스럽게 생각하고 은혜, 축복, 자유, 평강, 유익 등의 달콤한 단어들만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의 신자의 기본 생활은 무시하고 자기 원하는 대로, 편리한 대로 신앙 생활합니다. 신앙과 생활이 전혀 다른 이중생활을 합니다. 우리는 자기 생각과 욕심을 부인하며 사명의 십자가를 지기 위해 애를 쓰다 보면 이런 십자가 없이도 잘 살고 있는 인본주의 신자들이 부럽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고생만하는 내 삶이 과연 정상적인 삶인가? 하는 의심이 듭니다. 인본주의 누룩에 전염이 되면 갑자기 십자가가 무겁게 느껴지고 심령이 피곤해 집니다. 주님을 향한 열정이 식어버리고 적당히 요령껏 십자가를 지는 기술만 늘어갑니다. 소감, DB, 1:1도 목자 체면 유지할 만큼만 적당히 하게 됩니다. 십자가는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지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십자가가 없고 사명이 없는 신앙은 이미 죽은 신앙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34)

둘째, 헤롯의 누룩은 음란과 불의입니다. 그는 동생의 아내를 취하였고 이를 책망하는 의인 세례 요한의 목을 베었습니다. 또한 권세와 술수를 남용하여 백성들을 억압하고 임의로 다스렸습니다. 제자들은 음란하고 불의한 헤롯을 비판하고 정죄하였지만 늘 자리에 연연해하는 세상 영광과 권세를 바라는 누룩에 이미 전염되어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경계해야 할 헤롯의 누룩은 물질주의와 육신주의입니다. 세상은 사람의 평가기준을 단연 물질과 소유에 두고 있습니다. 돈만 많으면 어디서고 극진한 대우를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음란과 쾌락 문화가 온 세상을 뒤덮고 있기 때문에 육신주의 누룩에 쉽게 영향을 받습니다. 이런 누룩들은 우리의 복음적인 가치관을 뒤흔들어 놓고 세속화시킵니다. 특히 젊은이들이 많이 모여 있는 우리교회는 육신주의의 누룩이 침투하기 쉽습니다. 이 누룩에 한번 전염되면 형제, 자매들을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 보지 않고 연애 대상으로 바라봅니다. 그러면 영적인 성장이 막히고, 시름시름 앓다가 믿음까지 잃어버리게 됩니다. 우리는 이 시대의 영적 지도자로서 세상 조류를 따라 살고자하는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을 본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이 세대 어둠을 비취는 빛의 역할, 이 세대 누룩을 제거하는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양무리들의 선한 목자요 영혼 구원 역사를 감당할 지도자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런 원대한 소망 가운데 열두 제자들을 부르셨고 예수님과 함께 있게 하시며 전도도하고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제자들은 세상이 주는 악영향과 싸우며 적극적으로 예수님의 믿음과 목자의 심정, 겸손과 섬김의 도리를 배워야 했습니다. 예수님의 인격을 본받을 뿐만 아니라 그가 지신 사명의 십자가도 배워야 했습니다. 무엇보다 이 십자가의 비밀을 깨닫고 십자가의 길을 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현재 제자들의 형편이 어떻습니까? 16절을 보십시오. 그들은 떡 생각만 하고 있다가 예수님이 누룩 말씀을 하시자 즉시 떡과 연결시켰습니다. 그들은 떡을 챙겨오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책망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항상 "너희에게 떡 몇 개가 있느냐" 물으셨기 때문에 최소한 떡이 다섯 개는 있어야 되는데 한 개밖에 없는 것이 심히도 염려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서로‘누가 다시 가서 떡 4개를 더 가져 올 것인가’수군거렸습니다.

 이를 지켜보시는 예수님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아마 속이 터지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적 깨달음이 없는 이들을 강하게 책망하셨습니다. 17,18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 예수님은 마음으로부터 눈, 귀, 머리에 이르기까지 그들을 사정없이 책망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병이어로 5천 명을 먹이신 사건과 칠병이어로 4천명을 먹이신 사건들을 상기시켰습니다. 그리고는 다시“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하시며 한 번 더 책망하셨습니다. 이 책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좀 심하지 않나요? 그러면 왜 이리 강한 책망을 하실까요?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제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기대와 소망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 세대를 감당할 영적 지도자의 큰 비젼을 두셨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바리새인들과 헤롯의 누룩으로 인해 역사성을 상실한 체 불신에 빠져 현실 문제에 갇혀있었습니다. 신앙적 역사성이 없는 사람은 과거 믿음의 체험이 현재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역사성있는 믿음을 소유한 사람은 주님께서 과거뿐 만아니라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변함없이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인도하실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이런 믿음의 사람은 위기의 때에도 염려 대신 주님을 붙들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22-26절은 예수님께서 벳새다 맹인을 고쳐 주시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를 단번에 고쳐 주시지 않으시고 단계적으로 고쳐 주셨습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보이는데 나무 같은 것이 걸어가는 정도로 희미하게 고쳐 주시고 그 후에 만물을 밝히 보도록 하셨습니다. 왜 이렇게 하셨을까요? 이는 세상 누룩에 물든 제자들을 염두에 두시고 제자들에게 희망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제자들은 현재 예수님의 심한 책망을 듣고 절망했습니다. 깊은 불의에 빠졌습니다. 자신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무식한 갈릴리 촌놈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는 운명주의에 빠져 자학하였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잘못 택해 너무 고생하시는 것 같아 민망한 마음에 몸 둘 바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에게 소경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주셨습니다. 제자들의 현재 영적 상태는 나무 같은 것이 걸어가는 것과 같은 희미한 상태입니다. 그들은 나름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 아는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영적 세계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아리송하게 보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벳새다 맹인을 통해서 그들이 언젠가 영적 눈을 떠서 영적 세계를 밝히 볼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소망 가운데 영적으로 둔한 이들을 오래 참으시며 인내로 키우셨습니다.  

제 2장. 베드로의 신앙고백 (27-30)

  27절을 보십시오. 이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데리고 1학기말 고사장인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으로 가셨습니다. 가이사랴 빌립보는 갈릴리 북쪽 40km지점에 위치한 청정지역으로 앞에는 메론 호수가 있고, 뒤에는 만년설로 뒤덮힌 헬몬산이 병풍처럼 휘감겨 있어 여름 수양회하기에 딱 좋은 장소였습니다. 가는 길에서 예수님은 느닷없이 제자들에게 2가지 질문으로 학기말 고사를 보셨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27) 예상치 못한 갑작스런 질문이었지만 나름대로 수제자 그룹을 형성하고 있던 안드레와 야보고, 요한 등은 그 동안 들었던 풍월을 기초로 어렵지 않게 대답했습니다.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28). 사람들은 예수님을 그 당시 최고의 존경을 받았던 세례 요한이나, 구약의 열정적인 선지자였던 엘리야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를 볼 때 그 시대 백성들은 예수님을 위대한 하나님의 종으로 보았습니다. 요즘 사람들도 예수님을 위대한 분으로 생각합니다. 보통 4대 성인중 하나로 여깁니다. 어떤 이들은 수많은 이적을 행한 마술사나 외계인으로 보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불치병도 고친 신통한 의사로 보기도 합니다. 또한 소망없던 제자들을 위대한 인류의 스승으로 키운 훌륭한 교육자로 보기도 하고, 아주 단순하게 공휴일 하나 더 주신 참 고마운 분으로 보기도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예수님을 어떻게 보십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단지 위대한 인간으로 본다면 존경의 대상이 될 수는 있어도, 경배의 대상은 될 수 없습니다.

   객관적인 대답을 요구하는 첫 질문으로 제자들의 관심을 상기시킨 예수님께서는 바로 두 번째 질문을 하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29) 이것이 바로 오늘 시험의 핵심이었습니다. 이 질문은 대충 대답할 수 없는, 제자들의 개인적, 인격적 그리고 고백적인 답을 요구하시는 질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말하던 간에, 나는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생각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의 인격적이고 주관적인 관계성, 즉 무리신앙이 아닌 개인 신앙을 요구하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은 신앙인이라면 반드시 한번은 집고 넘어가야 하는 절대적인 주제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아는 것은 나와 내 양의 생명 구원에 관한 직접적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사람들의 관심사가 무엇입니까? 팔도 프로야구 현재 1위 팀은 어디인가? 이석기, 김재연 의원이 과연 제명될 것인가? 대선 D-200일 현재의 판세는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가? 유로존 위기에서 우리경제는 괜찮을까? 등입니다. 이런 주제들이 우리의 호기심을 만족시키고, 또 국가적으로 중요하긴 하지만 결코 내 생명의 구원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아느냐는 것은 곧 구원이냐 심판이냐를 결정짓는 중대한 결과를 초래합니다. 요한복음 17:3절은 예수님을 아는 것이 곧 영생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과연 어떤 분이십니까? 예수님의 두 번째 질문에 다른 제자들이 주춤하고 있는 사이, 방금 전까지 침묵으로 일관하던 베드로가 결정적인 한마디 고백으로 역시 수제자란 어떤 자인가 보여주었습니다.“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29) 이 대답은 짧지만 예수님께서 원하셨던 백점짜리 정답이었습니다.
   여기서 그리스도란 첫째, 약속된 메시야, 곧 구세주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인류를 죄에서 구원할 창세기부터 약속된 바로 그 언약의 구주이십니다. 행4:12절을 보면 베드로는 공회에서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증거하였습니다.  
둘째, 예수님은 영원한 대제사장이라는 뜻입니다. 히10:11,12절은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셋째,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라는 뜻입니다. 계17:14절에 요한은“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기록하였습니다. 즉 예수님은 나의 구원자요, 대제사장이요, 나의 왕으로 참 경배의 대상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내가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할 의미요, 내 삶의 목적이요, 나의 전부가 되십니다. (찬송가 96장)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이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고백으로, 기독교 신앙의 근간을 이룬 고백이었습니다. 로마서 10:9절은 말합니다.“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고, 믿는 자에게 구원이 임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막상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것이 아주 간단하고, 쉬워 보이면서도, 실제로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왜 굳이 고백을 해야 하는가 회의가 들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이 모르게 나 혼자 조용히 믿고자 합니다. 그러나 고백이 없는 신앙은 구원의 확신이 없고, 생명력이 없습니다. 고백을 꺼리는 사람은 아직도 세상과 주님사이에 양다리를 걸치고 이중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고백은 사랑과 진심의 표현입니다. 확신있는 고백 속에서 예수님은 나의 구주가 되십니다. 또한 이 고백은 내가 예수님을 끝까지 믿고 따르겠다는 결단입니다. 당시 초대 성도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것은 공동체에서 박해 받고, 맹수에게 찢기고, 심지어 화형을 당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어떠한 불이익과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면서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했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그들의 구주요, 중보자요, 왕의 왕이 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신앙고백은 구원의 기초요 신앙생활의 출발점입니다. 이 신앙고백을 하게 될 때 예수님과 나와의 관계는 구주와 죄인, 왕과 신하, 주인과 종의 끊을 수 없는 절대적인 관계가 됩니다. 또한 이 신앙고백을 하게 되면 나는 더 이상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예수님께 속한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예수님은 진실된 신앙고백을 한 사람을, 마치 신랑이 신부를 사랑하고 책임지듯이 사랑하시고 그 인생을 책임져주십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 베드로와 같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 해야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왕이 되시고, 나의 전부가 되심을 고백합시다. 이때 주님께서 나를 구원해 주시고, 내 인생을 책임져 주십니다. 이 시간 예배에 참석하신 분들 모두 확신가운데 큰 소리로 신앙고백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아멘!”

예수님께서는 제 인생에도 그리스도가 되셨습니다. 저는 어릴적부터 인생에 대한 외로움과 막연한 두려움에 시달리며“왜 그리고 어떻게 살 것인가?’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진리의 상아탑이라는 대학에 들어와서 그 해답을 얻고자 많은 모임에 참석하고 캠퍼스를 싸돌아 다녔지만 그 어디에서도 분명한 답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 과정에서 교만과 이기심, 정욕의 죄를 먹고 마시며, 유한한 인생 아무리 발버퉁치며 살아도 결국은 도토리 키재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허무한 생각에 시달렸습니다. 이런 죄인을 예수님은 인내와 사랑으로 목자님들을 보내사 꾸준한 1:1말씀으로 섬겨주시고, 결국 늙은 양들의 천국잔치 문학산 보강수양회에서 주님은 죄인의 그리스도요, 메시야로 만나주셨습니다. 죄인된 자아발견이 부족했던 제게 주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지만 이 고백과 함께 죄와 허물로 가득찬 인생이 끝나고 새 인생, 거룩한 인생이 시작되었습니다. 구원과 부르심의 은혜에 감사하여 캠퍼스 목자의 삶을 결단하였을 때 주님은 영육간에 넘치는 은혜를 주시고 제 인생을 책임져 주셨습니다. 이제 2012년 여름수양회를 앞두고 주님은 먼저 제 심령에 주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성을 다시 한 번 굳게 하시길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제 인생의 그리스도가 되십니다. 또한 제 양과 우리 모두의 그리스도가 되십니다. 종이 이 고백을 기초로 양들의 생명을 구원하는 천국 구원 잔치를 힘써 섬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기뻐하시고 이 일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경계하셨습니다(30). 이는 아직 십자가와 부활을 통한 복음이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복음 역사가 방해를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제 3장. 그리스도의 길과 제자의 길 (31-38)

   예수님이 어떻게 그리스도가 되십니까? 31절을 보십시오.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예수님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받으시고 비로소 예수님이 메시야로서 하실 일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십자가의 길 “고난-죽임-부활”의 모든 과정을 "must"라고 하심으로 반드시 겪어야 할 일임을 강조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왜 그리스도가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해야만 합니까? 이에 대한 선지자 이사야의 메시지는 간결하고도 분명합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사53:5,6). 바로 우리의 죄와 허물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보내사 십자가에서 희생하심으로 우리 죄를 대속할 영원한 속죄제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고난과 죽으심을 통해 그리스도요 왕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예언의 성취요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다 살기를 원하지 죽기를 원치 않습니다. 살아도 고난없이 편히 살기를 원합니다. 또한 죽더라도 아무 고통없이 편안히 죽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 죄 때문에 많은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멸시와 간고, 외면과 무시 속에서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온전한 희생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그 능력으로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주요, 그리스도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고난과 죽으심을 통해 사랑의 왕이 되시고 평화의 왕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심으로 주의 주가 되시고 왕의 왕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대속의 희생으롤 그를 믿는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는 생명의 주가 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결단의 말씀에 대한 베드로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32절을 보십시오. 베드로는 거의 반사적으로 예수님을 붙들고 그런 말씀은 아예 입에 담지도 말라고 항변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모든 희망을 걸고 가족과 직장도 버리며 주님을 좇았습니다. 그는 주님의 능력의 역사를 보고 이스라엘을 회복할 그 메시야이심을 믿었습니다. 영광스러운 메시야 왕국이 도래할 때 자신이 국무총리가 될 것을 믿었습니다. 그는 남몰래 총리 취임 연설문을 준비해 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많은 고난을 받고 버린바 되고 죽으신다니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또한 그는 예수님을 지극히 사랑했습니다. 충성을 다해서 섬겼습니다. 그러나 그의 애정은 다분히 인간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고난보다 영광을 중요시 하였습니다. 베드로의 내면에 숨겨있던 세상 누룩의 세력은 예수님께 시험이 되고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하는 악함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위해서 그를 심하게 책망하셨습니다. 33절을 보십시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사람의 일이 아무리 선해도 그 기초가 하나님의 뜻에 있지 않을 때 결국 사탄의 종의 노릇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비결, 생명을 얻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34절을 보십시오. 34절 말씀을 다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예수님의 자녀들의 생활방식은 기본적으로 예수님과 같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크신 뜻을 이뤄드리기 위해 인간적인 심성을 부인하셨습니다. 또한 끝까지 사명의 십자가를 지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자녀들인 우리도 자기 생각과 계획, 자기 이상과 욕심을 부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주시는 사명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그러면, 왜 주님의 자녀들은 날마다 사명의 십자가를 져야 합니까? 우리가 이 바쁘고 힘든 세상 살아가기도 벅찬데 왜 사명의 십자가까지 져야만 하는 것입니까? 이는 사명의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애써 버렸던 죄와 사망의 십자가를 져야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사명의 십자가 없이 자기 유익을 따라 살 때 편하고 행복할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바리새인과 헤롯의 누룩의 세력에 사로잡혀 이전 보다 더 비참한 인생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저의 학창시절 신앙 동역자였던 한 분이 캠퍼스 사명의 십자가가 부담스러워 좀 세상을 즐기면서 편하게 하는 무리 신앙을 꿈꾸며 제자의 부르심과 사명을 떠났습니다. 처음 얼마 동안은 정말 즐겁고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내 세상 누룩이 들어와서 무겁고, 힘든 죄짐에 짓눌려 신음하였습니다. 교회에서 만난 하나님은 결코 다른 하나님이 아니셨습니다. 그는 주님 앞에 나갈 때마다 부르심과 사명을 거절했다는 죄책감과 주님께 버림받은 자라는 패배감에서 괴로워했지만 다시 돌아올 수도 없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였습니다. 사명이 없는 삶은 고독하고, 권태로운 삶입니다. 삶은 삶이로되, 생명력을 잃은 죽은 삶입니다. 누구든지 자신만을 위해 꾸리는 삶을 사는 자는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예수님은 35-37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자기 목숨과 바꾸겠느냐" 요즘 세상은 가치관이 전도되어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알지 못합니다. 사람이 만일 부와 명예, 권세와 인정,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얻었다 할지라도 죽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아무리 귀한 것들을 다 끌어 모아도 생명을 잃음으로 쓸 기회가 없다면, 이처럼 허무한 것이 없습니다. 제가 질문 한가지 할까요? 내가 평생 끌어 모은 것이 내 재산일까요? 내가 평생 쓴 것이 내 재산일까요? 어느 것인 진짜 내 재산이었을까요? 임종이 임하기 전까지 한번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인생은 시행 착오할 여유가 없습니다. 한 번의 기회만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젊은 시절 주와 복음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할 때 결국 모든 것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은 내 전 인생을 바쳐서 섬길 만한 절대 가치가 있는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나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진정으로 행복한 길이요, 생명을 얻는 길입니다.

  38절은 예수님의 경고입니다. 다함께 읽어보시겠습니다.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나의 그리스도시요, 메시야가 되십니다. 내 인생의 왕이요 진정한 경배의 대상이 되십니다. 우리가 매일 첫 시간 예수님께 신앙고백 드림으로, 개인 신앙을 굳게 해야 되겠습니다. 또한 이 고백을 기초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예수님의 제자의 길을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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