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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9-01-11 (일) 15:18
홈페이지 http://ksubf.com
분 류 마태복음
첨부#1 2009년마태복음제34강_최동진.hwp (41KB) (Down: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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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마태복음제34강]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최동진
2009년 마태복음 제 34강                                                                                                    최동진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말씀 / 마태복음 19:1-30
요절 / 마태복음 19:25,26 “제자들이 듣고 몹시 놀라 이르되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결혼의 진리가 땅에 떨어지고 이로 인해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하나님께서 본래 창설하신 성서적인 결혼관에 대해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또한 천국을 얻기 위해서는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야 함을 말씀하셨습니다. 더불어 오늘 말씀을 통해 눈에 보이는 것만 추구하는 이 시대에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가 깨닫고 영생에 대한 소망을 덧입고 천국을 소유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 결혼과 이혼(1-13)

 1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갈릴리를 떠나 요단 강 건너 유대지경에 이르셨습니다. 그때 큰 무리가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그들은 질병으로 고통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영접하시고 저희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이때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시험하여 물었습니다. “사람이 어떤 이유가 있으면 그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3b)” 이런 질문을 한 것을 보면 당시 이혼이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양들 돌보는 일에 전념해야 할 영적 지도자들이 이런 질문하는 것을 보면 이들의 심령이 얼마나 타락하고 세속화 되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이혼에 대해 당연히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이런 생각은 모세오경 중의 신명기 24:1 “사람이 아내를 맞이하여 데려온 후에 그에게 수치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이혼 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낼 것이요” 말씀에 근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인에게 ‘수치되는 일’에 대한 해석이 문제였습니다. 바리새인 중에도 두 학파가 있었는데 샴마이 학파는 보수적이어서 이를 간음으로 보고 간음한 경우에만 이혼해도 된다고 해석했습니다. 반면 힐렐학파는 자유주의 성향이 강해서 이를 광범위하게 적용시켰습니다. 예를 들어 아내가 자식을 낳지 못한다든지, 밥을 태운다든지, 요리를 잘못하는 것도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하여 이혼 조건으로 삼았습니다. 이 질문이 어떤 점에서 예수님께 시험이 되었습니까?  만일 예수님께서 이혼하는 것이 옳다고 대답하신다면 지금까지 예수님이 가르치신 사랑의 도에 위반되므로 백성들로부터 비난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사모님들이 분개할 것입니다. 만일 옳지 않다 하면 모세의 율법을 무시하는 이단으로 고소를 당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들의 질문에 옳고 그름을 답하시기보다 창세기 2장을 근거로 결혼의 진리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모세를 뛰어넘어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두신 결혼에 대한 본래의 뜻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4-6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첫째로, 결혼은 하나님이 창설하신 신성한 제도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 남자만 창조하지 않으시고 남자와 여자를 만드사 조화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남자를 지으실 때 소시민적인 삶을 살도록 만들지 않으시고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위대한 사명인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여자를 만드시되 외모나 가꾸고 남자의 사랑이나 구하는 존재로 지으시지 않고 남자를 위대한 사명인으로 낳고 키우는 돕는 배필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행복을 위해 아름다운 에덴 동산을 창설하시고 또한 에덴 중의 에덴인 결혼을 창설하셨습니다. 그리고 친히 결혼을 주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처럼 결혼에는 창조의 깊은 진리가 숨어 있습니다.  

둘째로, 결혼은 두 사람이 하나님 안에서 하나 되는 연합의 의미가 있습니다.
여기서 연합이란 육신의 연합 뿐만 아니라, 정신적 연합, 나아가 영적인 연합을 의미합니다. 결혼을 하게 되면 육적으로나 영적으로 이제는 둘이 아니요 한 몸이 됩니다. 남녀 간에는 다른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신체 구조도 다르고 느끼는 감정도 다르고 생각하는 방식도 다릅니다.  성장 배경도 다르고 기호도 다르고 취미도 다릅니다. 그 차이가 얼마나 크면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란 책까지 있겠습니까? 그러나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음양의 조화를 이루듯이 조화를 잘 이룰 때 아름다운 창조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결혼을 통해서 서로 반쪽으로 존재하던 불완전하던 두 사람이 서로의 부족함을 보충해 줌으로  온전한 인격체를 이루어 완전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 비밀이 크도다(엡5:32a)”라고 하였습니다.
 저와 혜경 동역자도 꽤 오래 부부로서 함께 살고 있지만 아직도 다른 점이 너무나 많습니다. 식성도 완전히 달라서 저는 양식을 좋아하지만 동역자는 한식을 좋아하고 저는 육식을 좋아하지만 동역자는 채식을 좋아합니다. 치약을 쓸때 저는 끝에서부터 짜서 쓰는데 동역자는 중간에 아무데나 꾹 눌러서 씁니다. 양을 섬길 때에도 저는 나름 섬세하게 섬긴다고 하지만 소극적인 반면 동역자는 적극적이고 피싱도 잘하지만 약간 tough한 면이 있습니다. 또 저는 세상일에 관심이 많고 계산적인 반면에 동역자는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진심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도저히 동역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서로의 장점이 상대방의 단점을 보완해줄 때 부조화 속에 조화가 이루어지고 아름다운 동역의 역사를 섬길 수가 있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섭리가 놀라울 뿐입니다. 저희 가정이 계속해서 하나님 안에서 하나 되어 동역을 잘 이룸으로 하나님의 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결혼의 진리에 대해 말씀 하신 후 결론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6b)." 이 말씀은 우리가 어떤 경우에나 절대로 이혼해서는 안될 이유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해서 결혼 진리를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이 진리를 영접치 않고 예수님을 공격했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여짜오되 그러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버리라 명하였나이까?” 그들은 모세의 율법에 최고의 권위를 두었습니다. 그러나 본래 율법은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에 이르렀지만 아직 노예근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악된 본성을 제어하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 주신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율법은 상대적 선이지 절대 선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모세를 잘못 알고 있음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8,9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아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 모세는 어쩔수 없이 이혼을 허락하였지 이혼을 하도록 명하지는 않았습니다. 모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감정적이고 육신적이었습니다. 여자들을 정욕의 대상이나 노예와 같은 소유물처럼 취급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소유물을 버리듯이 내어버렸습니다. 또 만일 모세가 이혼을 금하였다면 완악한 백성들은 아내를 더욱 구박하고 학대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사회적 약자인 여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제한된 경우에만 이혼을 허용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혼의 사유가 될 수 있는 유일한 허물은 음행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음행은 배우자 외에 다른 사람과 관계를 갖는 것으로서 이는 이미 한 몸이 된 관계를 나누고 가정을 창설하신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행위입니다.

 오늘날 이혼 문제는 심각한 사회문제입니다. 최근 한국의 이혼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2위라는 통계에 의하지 않더라도 현재 우리 사회의 가족해체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공감하고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결혼하고 또 쉽게 이혼합니다. 뭇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던 연예인 부부가 이혼을 했다는 소식에 이제는 충격도 받지 않을 정도로 이혼에 대해 무감각해져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결혼을 할 때에도 이혼을 염두에 둔 계약결혼이나 시험결혼과 같은 해괴한 결혼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결혼하지 않고 함께 사는 동거 현상도 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혼은 서로 좋아하는 사람끼리 마음이 맞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정욕을 채우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혼이란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기 위해 남녀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연합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임의로 나눌 수 없습니다. 이혼은 몸을 나누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주권을 범하고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큰 죄입니다. 또한 이혼은 피차간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자녀들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주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혼은 꿈에서 조차도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배우자를 어떤 마음으로 대해야 합니까? 배우자를 경우에 따라서 이혼할 수도 있는 대상으로 여긴다면 상대방의 허물에 대해 용납하고 사랑으로 감싸기보다 미워하고 분노하고 싸우다가 결국 헤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나의 배우자를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suitable helper로서 영원히 나눌 수 없는 한 몸이라고 생각한다면 허물이 발견될 때에도 기도하고 감당해줄 것입니다. 나의 몸처럼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고 존경할 때 가정에 천국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성경적 진리에 기초한 아름다운 믿음의 가정들이 계속해서 세워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10절을 보십시오. “제자들이 이르되 만일 사람이 아내에게 이같이 할진대 장가 들지 않는 것이 좋겠나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던 제자들의 마음에 순간적으로 결혼은 미친 짓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은 만일 마음에 안드는 여자와 결혼하여 이혼도 못하고 일생 여자의 허물을 감당하며 살 바에야 차라리 화려한 싱글로 혼자 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 또한 하나님이 창설하신 결혼의 진리를 거스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독신으로 사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이 있어야 함을 가르쳐주셨습니다.

II. 어린아이와 천국(13-15)

 13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사람들이 예수님의 안수 기도를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가뜩이나 복잡한데 어린 아이들까지 와서 떠들고 소리지르고 뛰어다니면서 이것 저것 마구 만지고 아무데나 기어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정신이 없었습니다. 어른들이 이혼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데 어린 것들이 귀찮게 군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어린 아이들을 무시하고 함부로 대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여인을 무시하고 제자들은 어린 아이들을 무시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 대해 분노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14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 하시고.” 어린 아이들은 단순하고 순수합니다. 겸손하고 신뢰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예수님께 나아가기만 하면 반드시 사랑으로 영접해 주시고 축복해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조금의 의심이나 불신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품에 안기고자 있는 모습 그대로 나왔습니다. 천국은 바로 이런 자의 것입니다. 바리새인들과 같이 복잡하고 이중적이고 교만하고 불신하고 비판적이고 권위적이고 세속적인 자들은 결코 천국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어른스러움을 벗고 어린아이와 같이 되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와 같이 단순하게 있는 모습 그대로 예수님께 나가기만 하면 순수한 믿음을 귀하게 보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저희가 어른 스러운 마음을 회개하고 어린 아이와 같은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아감으로 천국을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III. 부자 청년과 영생(16-30)

 16절을 보십시오.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물었습니다.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그는 청년이었고 부자였습니다. 눅18:18절에 보면 그는 관리였습니다. 그는 최연소 고시 합격에 초고속 승진으로 젊은 날 사회적 지위와 권세를 얻었습니다. 게다가 계명을 흠이 없이 지킬 만큼 도덕적으로도 깨끗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조건을 다 갖춘 그 시대의 엄친아였습니다. 그는 마땅히 행복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전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어느 것으로도 해결 되지 않는 영혼의 갈급함을 안고 예수님께 나와 물었습니다.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그는 세상에서 모든 것을 소유하고 선한 생활을 했지만 여전히 내면은 허전하고 불안했습니다. 그에게는 영생에 대한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통해 무슨 특별한 선한 일을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셨습니까? 17a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예수님은 그의 선에 대한 상대적인 개념을 바로 잡아주고자 하셨습니다.  근본적으로 죄악된 인간은 선을 행할 힘이 없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선한 일을 많이 한다 할지라도 이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비교해서 선할 뿐, 근본적으로 하나님 앞에서는 선할 수 없습니다. 부자 청년은 선을 도덕적인 차원에서 생각하고 선을 행하면 그 대가로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선이란 상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절대적인 것입니다. “선한 이는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니라.” 이는 하나님만이 모든 선의 절대 기준이 되심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부자 청년의 선의 개념을 바로 잡아 주신 후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17b)."  그러자  그는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물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어떤 특별하고 심오한 계명을 가르쳐 주실 것을 기대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증거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18b,19)” 이 말씀은 십계명의 제5에서 제9계명까지의 말씀과 레위기 19:18절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청년의 기대와 달리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계명들은 전혀 새로운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이에 그 청년은 놀라운 대답을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20)” 그는 모든 계명을 다 지켰다고 자신있게 말할 만큼 흠이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젊고 돈많고 유능한 그에게 인생을 즐기며 함부로 살고 싶은 유혹이 왜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음란하고 부도덕한 세상 분위기에 오염되지 않고 의롭고 선한 삶을 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영생의 기쁨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노력을 했는데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단 말입니까?
이런 그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이것은 부자 청년에게 큰 도전이었습니다. 이 말씀에서 예수님이 부자 청년에게 가르쳐 주고자 하시는 바가 무엇입니까?

첫째로 계명의 정신을 지키도록 하셨습니다. 그는 계명을 문자적으로는 잘 지켰지만 근본 정신은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십계명의 근본정신은 사랑입니다. 처음 4계명은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신6:5), 나머지 6계명은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레19:18). 그는 신앙생활이란 남에게 폐 안 끼치고 도덕적으로 선하게 사는 것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이란 그런 소극적인 것이 아닙니다.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서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자기 소유를 파는 희생이 필요합니다. 부자 청년은 신앙생활을 잘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근본적으로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이어서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위해 희생할 줄 몰랐습니다.

둘째로, 하늘 나라에 소망을 두도록 하셨습니다. 부자 청년의 치명적인 약점은 재물에 소망을 두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돈을 많이 벌면 주와 복음 역사를 위해서 또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쓰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돈을 많이 벌게 되자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재물을 사랑하게 되고 재물에 소망을 두게 되었습니다. 그는 영생을 갈구하였지만 그의 소망은 땅에 있었습니다. 세상 보화로 가득찬 그의 가슴에는 하늘의 보화가 들어갈 자리가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물질을 가장 귀한 보화로 생각합니다. 최근 모방송사에서 실시한 설문조사는 한국인의 돈에 대한 철학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10억원이 있으면 양심도 버릴 수 있고 부모 형제 친구 연인도 버릴 결심이 있음을 내비쳤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돈을 행복의 제 1 조건으로 꼽으며 돈이 많을수록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대박을 꿈꾸며 정신없이 살아갑니다. 그러나 소득의 늘고, 좋은 집, 좋은 차를 소유해도 삶의 만족도를 더 크게 하지 못합니다. 실제로 미국의 갑부들이나 케냐의 초원에서 마른 소똥으로 집을 짓고 살아가는 원주민들이나 비슷한 삶의 만족도를 보인다고 합니다. 지난 주 재산 순위 세계94위의 아돌프 메클레란 거부가 금융위기로 어려움에 처해 고민하다가 열차에 투신하여 목숨을 끊은 사건은 전세계적으로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는 세상 보화가 인생에 진정한 의미와 만족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입니다. 재물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세상 보화를 모으는 데에만 집착할 때 하늘의 보화가 임할 수 없습니다. 영생의 기쁨과 만족이 없습니다. 재물을 모으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사용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늘의 보화를 얻으려면 세상의 보화를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어야만 했습니다. 세상의 보화를 팔아서 이웃을 위해 베풀고 이웃을 구원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에게 하늘의 보화가 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십니다. 이것이 영생의 길입니다. 예수님을 배우고 아는 것이 바로 영생입니다. 영생의 구주이신 예수님께로 나와 예수님을 배우고 순종하며 본받는 삶 속에서 참된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청년은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떠나갔습니다. 그는 영생을 얻고 싶었지만 재물을 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는 재물이 주는 인생의 즐거움을 포기하지 못함으로 영생의 문 앞에서 발길을 돌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과거 세상 가치관을 좇아 세상적인 성공을 꿈꾸며 열심히 살던 저에게도 찾아오셨습니다. 대학시절을 의미있게 보내고자 봉사써클에 가입하여 열심히 활동하고 사람들의 인정을 통해 만족을 얻고자 했습니다. 주일을 절대적으로 지키고자 애쓰며 나름대로 신앙생활도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저의 삶에 의미를 가져다 주지 못해 저의 마음은 늘 어둡고 허전했습니다. 본과 1학년초 목자님과 창세기 말씀공부를 하면서 참된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발견하게 되었고 세상 어디서도 느끼지 못했던 진정한 기쁨과 만족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후 저의 삶은 자기만을 위한 삶에서 주와 복음을 위한 삶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지금까지 저와 동행하시며 부족함 없는 가운데 캠퍼스 구원 역사에 쓰임 받는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평신도 목자로 살면서 저의 마음에도 하늘의 보화와 함께 세상 보화를 함께 얻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몇 년 전 펀드열풍에 편승하여 수익률이 좋다는 펀드에 가입을 했습니다. 한동안 수익률이 좋아 만족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주가폭락으로 적지 않은 손해를 보게 되면서 이렇게 없어질 줄 알았으면 하나님의 역사와 주변 사람들을 위해 더 적극적으로 사용했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후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저의 마음에 세상 재물에 소망을 놓지 못하고 있음을 회개하였습니다. 제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물질을 주와 복음역사를 섬기는 일에 적극적으로 사용함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기쁨과 행복을 누리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부자 청년이 떠나간 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23,24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이 말씀대로라면 부자가 구원 받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보다 재물을 사랑하고 재물에 소망을 두고 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어도 천국을 살수는 없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몹시 놀랐습니다. 그들에게는 주님을 따르면 언젠가는 부자가 되리라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말씀을 듣자 근심이 되었습니다. 또 예수님께 나왔다가 세상 보화를 팔수 없어 근심 띤 얼굴로 세상으로 돌아가는 청년을 바라볼 때 누가 과연 그리스도의 청년으로 변화되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 구원 역사가 어떻게 일어날 수 있겠는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제자들에게 어떤 믿음과 소망의 말씀을 주십니까? 26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 제자들의 노력과 열심으로 부자 청년들이 세상의 보화를 팔고 하늘의 보화를 사도록 도울 수 없습니다. 제자들의 힘으로 세상의 보화를 좇은 청년들을 돌이켜 예수님을 좇도록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습니다.

 요즘 가대캠퍼스에서 양들을 만나 보면 본문의 청년과 같은 양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부족함 없는 환경 속에서 눈에 보이는 현실에 얽매여 자신의 이상과 계획을 붙들고  사는 이들을 말씀으로 돌이켜 영생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구원은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믿는 자에게 은혜로 주시는 선물입니다. 하나님은 부자나 가난한 자나 높은 자나 비천한 자나 누구에게나 구원을 주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이 하나님을 믿음으로 우리 눈에 소망이 없어 보이는 양들을 위해서도 기도하고 섬김의 수고를 감당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에 베드로가 물었습니다. 27절을 보십시오.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그는 부자 청년과 달리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좇은 것에 대해 어떤 보상을 해 주실 것인가 궁금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에게 귀한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28,29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이 말씀은 주와 복음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한 자는 반드시 영육 간에 축복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고난을 받는 자는 장차 예수님과 함께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예수님과 함께 자기를 희생한 자는 예수님과 함께 영원토록 왕노릇하게 됩니다. 그러나 먼저 된 자가 나중 될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됩니다(30). 항상 허리를 굽히고 겸손하게 예수님을 좇아야 하겠습니다.

 세상 보화를 팔고 진정한 보화 되신 예수님을 좇음으로 영생을 소유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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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616 마가복음 [2012년 마가복음 제22강] 언약의 피 관리자 2012-08-19 2648
615 요한복음 [2010부활절수양회2강]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부활(문대범) 리스닝 2010-04-11 2646
614 요한계시록 [2009년요한계시록제10강]여자와 용 관리자 2009-11-15 2640
613 마가복음 [2010년 가을제자수양회 주제1강] 열둘을 세우신 예수님 관리자 2010-10-31 2638
612 로마서 [2012년 로마서 제8강]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관리자 2012-12-02 2636
611 이사야 [2010년 이사야서 제4강]포도원의 노래 리스닝 2010-10-03 2633
610 요한복음 [2010 요한복음7강]오병이어를 축사하신 예수님 리스닝 2010-04-18 2632
609 야고보서 [2010년야고보서제2강]참된 믿음 리스닝 2010-08-15 2630
608 출애굽기 [2009년출애굽기제15강] 영화롭고 아름다운 제사장 관리자 2009-07-19 2630
607 요한복음 [2010 요한복음2강]변화의 능력자 예수님 리스닝 2010-03-08 2626
606 마태복음 [2009년마태복음제41강]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관리자 2009-03-01 2621
605 요한복음 [2010부활절수양회2강]부활하신예수님(이인구) 리스닝 2010-04-11 2620
604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31강] 장사하라 관리자 2011-11-20 2616
603 이사야 [2010년 이사야서 제2강]율법이 시온에서 리스닝 2010-09-19 2616
602 열왕기하 [2009가을제자수양회주제2강]역사를 계승한 엘리사(시니어팀_양용.. 관리자 2009-11-09 2609
601 시편 2010년 신입생 바이블 아카데미 4강 리스닝 2010-04-01 2608
600 로마서 [2010신년말씀제1강]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서홍일 휴화산 2010-01-14 2608
599 야고보서 [2010년야고보서제4강]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리스닝 2010-08-29 2604
598 마태복음 [2009년마태복음제34강]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최동진 관리자 2009-01-11 2601
597 요한복음 [2015년 요한복음 제10강]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관리자 2015-05-24 2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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