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세계선교 | 각부모임 | 경성소모임 | 성경연구 | 사진자료실 | 영상자료실 | 경성쉼터 | JBF/EBF/CBF | 기타 |

회원등록 비번분실

  Bible Study  
주일예배메시지
성경공부문제지
수양회강의
특강
구약강의자료실
신약강의자료실
강의안책자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리스닝
작성일 2010-05-02 (일) 15:49
분 류 요한복음
첨부#1 2010요한복음_9-1.hwp (53KB) (Down:290)
ㆍ추천: 0  ㆍ조회: 2662      
IP: 61.xxx.74
[2010 요한복음9강]생수의 강


2010년 요한복음 제 9강

생수의 강
말씀: 요한복음 7:25-52
요절: 요한복음 7:37,38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예수님은 초막절 명절 끝날에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목말라 고통하는 인생들을 간절히 초청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예수님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공급하시는 생수의 근원이 되십니다. 이 시간 우리 모두 예수님께 나아가 예수님이 주시는 생수를 마심으로 진정으로 만족한 삶을 사는 자 되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Ⅰ. 나를 보내신 이는 참되시니(25-36)
  예수님이 안식일 날 38년 된 병자를 고치셨다는 이유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였습니다.(1) 이런 적대적인 분위기 가운데서 초막절 명절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초막절은 유월절, 오순절과 함께 유대 3대 명절의 하나입니다. 유월절은 애굽에서 노예 생활하다가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날이요, 오순절은 출애굽 후 50일 만에 시내 산에서 율법을 받은 것을 기념하는 날이요, 초막절은 조상들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장막 생활 하던 때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날입니다. 이 날은 감람나무와 종려나무 등 잎이 무성한 나뭇가지를 취하여 초막을 짓고 일주일 동안 그 안에 거하면서 고난의 때를 기억하며, 물과 길이 없는 광야에서 반석에서 샘물 나게 하시고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안전하게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였습니다. 이 절기는 추수하여 모든 열매를 저장한 후에 지켰기 때문에 수장절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사람이 고난 후에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되면 과거 고생하던 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도와주신 은혜를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면 그 때부터 세상 죄에 물들어 타락의 길을 가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들이 대대로 초막절을 지킴으로 고난의 때를 기억하도록 하셨고 12세 이상의 성인들은 모두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 올라와 명절을 지켰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오셨을 때는 사람들 사이에 예수님이 그리스도신가 아닌가에 대한 논쟁이 한창이었습니다. 심지어 종교지도자들은 아랫사람들을 보내어 예수님을 체포하고자 하던 살벌한 때였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을 수 없었던 이유는 그들의 잘못된 메시야 관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는 홀연히 신비스러운 방법으로 오신다고 믿었습니다.(27) 그런데 그들이 알고 있는 예수님은 갈릴리 나사렛 출신으로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외모로 판단하였습니다.(24) 이에 대해 예수님은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십니까? 28,29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외쳐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알고 내가 어디서 온 것도 알거니와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니라 나를 보내신 이는 참되시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 나는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라 하시니” 그들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고 또 어디서 오셨는지 외적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정작 알아야 할 것, ‘왜 이 땅에 오셨고 누가 보내셨는지’ 무엇보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본질적인 것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오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낮고 천한 이 땅에 보내시므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한마디로 참되신 분(he is true)이라고 증거하십니다. 참되신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 인생들에게 진리를 알게 하시고 참된 생명과 만족을 주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합니까? 30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예수를 잡고자 하나 손을 대는 자가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사람들은 이 증거를 듣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해야 했으나 오히려 예수님을 잡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손을 대는 자가 없는 것은 아직 주님께서 붙잡힐 때가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때가 이르지 않았다’는 말씀은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요 예수님이 체포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일련의 사건들이 모두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임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은 이를 굳게 믿으셨기 때문에 사람들의 평가나 판단, 또 그들의 악한 의도에 방해받지 않으시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담대히 섬기셨습니다. 참되신 하나님의 뜻을 섬기시고 진리만을 선포하셨습니다. 이런 가운데 그들 중 일부분은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을 보고 믿고자 하였습니다.(30,31) 그들은 객관적인 증거를 보고 믿고자 하는 겸손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러자 종교지도자들은 백성들 가운데 예수님을 믿고자 하는 분위기를 감지하고 이제 적극적으로 예수님을 체포하고자 아랫사람들을 보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33,34) 알쏭달쏭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조금 더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것은 6개월 뒤에 있을 유월절에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까지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지금 종교지도자들 때문에 체포당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십자가를 지심으로 하나님의 만민 구속역사를 이루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 때에는 그들이 예수님을 찾아도 만나지 못할 것이요 예수님이 계신 곳에 가고자 해도 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그들이 지금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으면 무서운 심판에서 구원 받을 길을 영원히 놓치고 말 것이라는 무서운 경고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의 의미를 모르고 헬라인 중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에게 가서 헬라인을 가르칠 것인가 하며 인간적인 생각만 할 뿐이었습니다. 그들은 편견 때문에 영적인 소경이 되어 예수님을 올바로 알 수 없었습니다. 편견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가를 보여줍니다. 예수님께 대한 편견으로 구원의 주 예수님을 배척하고 영원한 심판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편견과 불신을 전파하여 다른 사람의 구원의 길도 막는 악을 행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올바른 판단 기준에 기초하여 인식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주로 자기 경험이나 상식이나 다수의 의견을 판단 기준으로 삼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단과 적그리스도 세력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외적인 기준, 상대적인 기준입니다. 예수님께 대한 올바른 판단기준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의 하시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여 참되신 하나님이 만민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보내신 구원의 주, 생명의 주이심을 알게 되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24) 우리 신앙의 뿌리도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기초한 복음신앙의 터 위에 믿음의 집이 지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함으로써 실제적인 믿음, 견고한 믿음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이로써 모든 인간적인 생각, 인간적인 판단을 버리고 하나님의 진리에 굳게 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어떻게 도우십니까?

Ⅱ. 내게로 와서 마시라(37-52)
  37절을 보십시오. 드디어 명절 끝날 곧 큰 날이 이르렀습니다. 절기가 계속되는 7일 동안 매일 아침 제사장은 금 주전자를 들고 실로암 못에 가서 물을 길어다가 제단에 부었는데 이때 나팔소리가 울려 퍼지고 백성들은 이사야서 12:3절,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말씀을 합창하였습니다. 이러한 의식은 조상들이 광야에서 목이 말라 울부짖을 때 하나님께서 반석에서 샘물 나게 하심으로 목마름을 해결해주신 그 크신 은혜를 기념하는 것이었습니다. 출애굽기 17장을 보면 이스라엘이 출애굽 하여 르비딤 광야에 이르렀을 때 광야에는 마실 물이 없었습니다. 광야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목마름입니다. 사람이 배고픈 것은 어느 정도 참을 수 있지만 목마름은 참을 수 없습니다. 목이 마르자 그들은 출애굽의 감격도 다 잊어버리고 지도자 모세에게 원망과 불평을 쏟아 내었습니다. 모세가 지팡이로 반석을 치라는 명령에 순종하여 나일 강을 쳤던 그 지팡이로 반석을 내리쳤을 때 물이 솟아나 온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다 마셨습니다. 광야에서 목말라 죽어가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반석에서 시원한 물을 내어 목마름을 일시에 해결해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하였겠습니까? 하나님은 이 사건을 기초로 목마름을 해결해주신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갖도록 자손 대대로 초막절을 지키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하나님을 기억하도록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행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에게 상한 심령으로 외치셨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우리는 이를 통해 몇 가지 중요한 진리를 배웁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인생들의 목마름을 근본적으로 해결해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이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다 내게로 오라고 이들을 초청하신 것은 예수님만이 이들의 목마름을 근본적으로 해결해주시는 유일한 분이심을 깨우쳐주신 것입니다. 일주일간 계속되는 축제기간이 끝나면 큰 은혜를 받고 집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내면의 목마름을 근본적으로 해결 받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은 이들을 예수님 자신에게로 초청하신 것입니다. 모세가 르비딤 광야에서 내리쳤던 반석은 오실 그리스도 예수님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4절은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생수의 근원이시오 구원의 반석이십니다. 사람들은 지금도 예외 없이 목마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사랑에 대한 목마름, 인정에 대한 목마름, 성공에 대한 목마름, 안정에 대한 목마름, 물질에 대한 목마름, 명예, 지식에 대한 목마름, 정보사회에서는 정보에 대한 목마름 등 목마름은 끝이 없습니다. 이를 해결하고자 이 바위, 저 바위를 쳐보지만 어디에서도 영혼을 만족시켜줄 시원한 물, 솟아나는 생수의 물은 나오지 않습니다. 영혼의 목마름은 더해가고 그럴수록 범죄는 커지고 있습니다. 이런 자들에게 예수님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오라고 초청하십니다. 딴 데서 얻고자 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가야 합니다. 이 모임 저 모임을 다닌다고 목마름이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자신에게로 오라고 예수님은 초청하셨습니다. 나는 지금 예수님께로 가서 그가 주시는 생수를 마십니까? 아니면 아직도 여기저기 물을 구하고 다닙니까? 말씀대로 순종하여 예수님께로 가서 마시면 나의 갈증이 해결될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우리의 목마름을 해결해 주십니까?
둘째로,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성령의 생수를 공급해주십니다. 38절을 보십시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하나님은 선지자 에스겔에게 성전에서 흐르는 물에 대해 보여주셨습니다.(겔47:1-12) 선지자 에스겔이 성전 문에 이르자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서남북 사방으로 흘러내려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물은 내려갈수록 깊고 넓은 강이 되어 바다로 흘러들어갔습니다. 물이 다다르자 죽었던 바닷물이 살아나 각종 물고기가 살아나고 강 주위에는 각종 과실나무가 자라나 달마다 새 열매를 맺히고 그 잎은 약 재료가 되었습니다. 만물을 소성케 하고 죽었던 나무를 살려 열매 맺게 하는 이 물이 바로 예수님을 통해 주시는 생수의 강입니다. 생수의 강은 예수님을 믿는 자가 받을 성령을 가리킵니다. ‘생수의 강이 흘러나온다’는 것은 개울물같이 감질나게 흐르는 것이 아니라 강같이 풍성하고 지속적으로 흘러넘친다는 것입니다. 세상 어디에도 무엇을 해도 강물같이 풍성하고 지속적인 만족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 안에는 사랑이 풍성하고, 은혜가 풍성하고, 진리가 풍성합니다. 이 생수를 마시는 자는 참된 만족과 기쁨이 흘러넘치기 때문에 감질나게 하는 헛된 세상 물을 마시러 이리저리 다니지 않습니다. 늘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이 주시는 생수를 흘러넘치게 공급받고 이를 목마른 이웃에게 나누어주는 진정한 복의 근원이 됩니다. ‘그 배에서(within him)’라고 한 것은 심령 깊숙한 곳, 내면의 깊은 데서부터 생수의 강이 흘러나올 것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영혼의 목마름을 근본적으로 해결해주실 수 있는 것은 믿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은 물질은 풍요롭고 편리한 것들로 가득 차 육신적으로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내면은 갈수록 삭막하고 메마르고 평화가 없고 기쁨과 만족이 없습니다. 각종 흉악범이 판을 치고 사람들은 지독하게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 되었습니다. 인터넷의 발달로 온갖 정보는 풍성하지만 사랑과 영성은 고갈되어 가고 무정과 무자비, 무관심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성령이 없기 때문입니다. 강이 흐르지 않으면 멀쩡한 땅도 사막화가 되어 황폐해지듯이 성령의 강이 흐르지 않으면 사람의 마음이 삭막해지고 포악해지고 공허해집니다. 사막을 통과하는데 가장 필요한 것은 물입니다. 돈도, 명예도, 권세도 쓸데없고, 보석도 짐일 뿐입니다. 낙타가 물 없는 사막을 횡단할 수 있는 것은 필요한 수분을 등에 있는 혹에 저장된 기름을 분해하여 공급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아름다운 뿔을 가진 사슴은 사막에서 몇 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목말라 쓰러집니다. 마찬가지로 영혼을 가진 인간이 광야와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것은 생수의 강입니다. 예수님은 광야와 같은 이 세상에, 우리 심령에 성령의 강을 흐르게 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우리의 몸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성령의 전입니다.(고전 6:19) 성령의 강이 흐르게 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근원이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믿는 자는 “생수의 강이 흘러 나리라” 약속하십니다. 성령의 역사는 예수님을 믿는데서 출발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원의 주로 믿고 십자가 밑에 나아가 죄를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을 때 성령의 생수가 흘러넘치게 됩니다. 성령님은 내 속에 임재 하셔서 심장이 박동하여 온 몸에 피를 공급하듯이 믿는 자의 마음속에 능력으로 역사하여 새 생명과 힘을 공급해주십니다.
  성령님이 역사하시면 마음속에 죄의식과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무거운 죄의 짐을 벗고 진리 안에서 자유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성령님이 역사하실 때 작은 문제에 얽매어 마음을 닫고 쫀쫀하게 살지 않고 자녀들은 예언을 하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늙은이들은 꿈을 꾸게 됩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으로서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셔서 죄에 대하여 불신이 죄임을 깨우치시고, 의에 대하여 무엇이 믿음인지 깨우치시고, 심판에 대하여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으로 두려워하지 말도록 깨우치고, 또한 참된 위로를 주십니다. 또한 성령의 역사로 사랑, 희락, 화평, 인내,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의 성령의 열매를 맺고 변화된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됩니다. 성령의 강이 흐르는 사람은 사막과 같은 세상에서 살지라도 목마르지 않고 피곤치 않고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사람같이 그 속에서 기쁨과 은혜와 감사와 생명력이 충만해집니다. 요즈음 너나 할 것 없이 피곤하다고 말합니다. 이는 우리 영혼이 예수님 안에서 쉼을 누려야 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목마른 우리 인생들을 초청하셔서 성령의 생수를 값없이 마시며 생수의 강이 흘러넘쳐 복의 근원의 인생이 되게 하신 주님의 은혜를 진실로 감사 찬송드립니다.
  예수님의 말씀으로 인해 무리들 가운데 쟁론이 일어났습니다.(40-44)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사역을 막고자 예수님을 체포하고자 하였으나 오히려 체포하러 왔던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만 감동을 받고 말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그들의 변화를 인정하기보다 율법을 알지 못하는 무지한 자라고 비난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대한 편견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도, 객관적인 말씀의 역사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이때 니고데모가 일어나 객관적인 사실에 기초하여 판단해야 한다고 이들의 오류를 책망하며 예수님을 변호하였습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이 시간에도 헛된 물을 전전하는 영혼들을 향하여 상한 심정으로 외쳐 초청하십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그리고 약속하십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우리 모두 예수님 자신께로 가서 생수의 물을 충만히 마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0
3500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594 창세기 [2013년 창세기 제2강]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관리자 2013-03-24 2671
593 요한복음 [2010부활절수양회1강]다이루었다(최바울) 리스닝 2010-04-11 2670
592 마가복음 [2012년 마가복음 제16강] 섬기러 오신 예수님 관리자 2012-07-01 2668
591 누가복음 2010년 신입생 바이블 아카데미 3강 리스닝 2010-04-01 2667
590 마태복음 [2014년 마태복음 제7강] 은밀한 중에 보시는 아버지 관리자 2014-03-16 2665
589 마가복음 [2012년 마가복음 제11강] 이 말을 하였으니 관리자 2012-05-27 2665
588 느헤미야 [2011년제자수양회 제2강]위기를 극복한 지도자 느헤미야- 노아자.. 리스닝 2011-06-13 2665
587 요한복음 [2010 요한복음9강]생수의 강 리스닝 2010-05-02 2662
586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25강]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 관리자 2011-10-09 2661
585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17강]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관리자 2011-07-24 2655
584 야고보서 [2010년야고보서제5강]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리스닝 2010-09-05 2655
583 시편 [2011년 추수감사절] 여호와께 감사하라 관리자 2011-11-27 2654
582 신명기 [2014년 신명기 제1강] 올라가서 차지하라 관리자 2014-09-14 2653
581 마가복음 [2012년 마가복음 제10강] 마음을 깨끗하게 관리자 2012-05-20 2651
580 이사야 [2010년 이사야서 제7강]한 왕의 통치와 성령 강림 관리자 2010-11-07 2651
579 요한계시록 [2010 요한계시록 제12강] 자기 옷을 지키는 자-고영훈 휴화산 2010-01-14 2651
578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13강]죄사함과 사랑 관리자 2011-06-26 2646
577 마가복음 [2012년 마가복음 제7강] 군대 귀신을 쫓아내신 예수님 관리자 2012-04-29 2643
576 시편 [2013년 추수감사절] 새 노래를 내 입에 두셨으니 관리자 2013-12-01 2642
575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 2강]비천함을 돌보신 주님 관리자 2011-03-20 2641
12345678910,,,39
서울 동대문구 이문2동 264-231
Tel:070-7119-3521,02-968-4586
Fax:02-965-8594
서제임스목자님메일:Suhjt@hitel.net
[UBF한국본부] [유럽UBF] [UBF국제본부] [UBF TV] [시카고UBF] [Mother Barry's Homepage]
[뉴욕UBF] [워싱턴UBF] [노스웨스턴UBF] [콜롬비아UBF] [코스타리카UBF] [프랑크푸르트UBF]
[키에프UBF] [상파울루UB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