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세계선교 | 각부모임 | 경성소모임 | 성경연구 | 사진자료실 | 영상자료실 | 경성쉼터 | JBF/EBF/CBF | 기타 |

회원등록 비번분실

  Bible Study  
주일예배메시지
성경공부문제지
수양회강의
특강
구약강의자료실
신약강의자료실
강의안책자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4-07-13 (일) 13:36
분 류 마태복음
첨부#1 2014_마태23강-1(한아브라함).hwp (64KB) (Down:234)
ㆍ추천: 0  ㆍ조회: 3278      
IP: 61.xxx.95
[2014년 마태복음 제23강] 마음으로부터 용서하라

 2014년 마태복음 제 23강                                                                 한아브라함

마음으로부터 용서하라

말씀/ 마태복음 18:15-35
요절/ 마태복음 18:35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용서하지 못해서, 분노 미움을 다스리지 못해서 많은 문제가 생기고 있습니다. 얼마 전 인문 학자인 정지우라는 분이 분노사회라는 책을 출간하여 크게 주목을 받았습니다. 한국사회를 분노사회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의사를 대하는 환자들의 태도에서 스승을 대하는 학생들의 자세에서 인터넷 댓글에서도 분노와 미움의 숫자가 올라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분노와 미움이 우리사회의 문화로 자리 잡은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세상에서는 그렇다 치더라도 교회에서 가정에서 용서하지 못하고 분노하고 미워하면 이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교회 공동체도 죄인들의 모임이라 문제가 있기 마련입니다. 이를 어떻게 해결해나가느냐에 따라 교회가 성장하기도 하고 때로는 분열하기도 합니다. 용서하지 못하면 건강에도 문제가 생기는데요.“용서의 기술”이란 책을 보면 미국 심장학회 학술지 써큘래이션 2000년 5월호에 가장 자주 화내는 사람은 가장 덜 화내는 사람보다 심장마비에 걸릴 확률이 세 배가 높다고 보고하였습니다. 용서하면 혈압을 낮출 수 있다는 실험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살아가기 위해 용서하라고 결론 내리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진정한 용서의 기술이 무엇인가 진정으로 행복한 길이 무엇인가를 가르쳐줍니다. 먼저 하나님께로 가서 용서의 사랑을 덧입고 그다음 형제의 죄를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1.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15-20)
  18장은 교회 공동체에서의 용서 문제를 말하고 있습니다. 1절에서 14절은 소자 한 사람을 업신여기지 말고 귀하게 여겨야 함을 가르쳐 주십니다. 15절부터는 죄를 범한 형제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한 말씀입니다. 15절을 보십시오.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여기서 죄를 범한 것은 심각한 죄를 범하고 회개치 않는 경우, 죄에 빠져서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파괴 된 경우를 말합니다. 만일 간섭하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덮어 두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면 형제가 마치 늪에 빠진 사람처럼 더 깊이 죄의 늪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치료시기를 놓친 암 환자처럼 돌이킬 수 없고 교회에도 큰 해를 끼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성급하게 감정적으로 서둘러 해결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도울 때는 매우 주의 깊게 사려 깊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죄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여 소문을 내면 안 됩니다. 단 칼에 해결하려고 하다가 화를 부를 수도 있습니다. 1 단계는 일대일로 권고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권고는 판단이나 정죄가 아니고 죄에 대하여 바른 인식을 갖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일대일로 형제에 대한 진실 된 사랑으로 최대한 상처받지 않도록 지혜롭게 돕는 것이 필요합니다. 만일 일대일의 권고를 듣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6-17절을 보십시오.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2 단계로 한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함으로 확증해야 합니다. 여기서 두세 증인은 믿음이 성숙하고 그 형제와의 사랑의 관계성이 깊은 일대일 목자나 선배가 좋을 것입니다. 두세 증인의 말에 형제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허물을 깨닫고 회개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두세 증인의 말도 듣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제 마지막 삼 단계, 교회에 말해야 합니다. 교회는 범죄한 형제를 구하기 위해 합심하여 도와야 합니다. 이처럼 최선을 다해 도왔는데도 그 형제가 교회의 말도 듣지 않는다면 이미 하나님의 말씀도 받아들이지 않는 상태로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하십니다. 불신자처럼 여기라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예수님의 두 가지 방향과 목표가 있습니다. 첫째는, 어찌하든지 형제를 얻으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최소 폭로의 원칙입니다. 즉, 상처를 최소화하라는 것입니다. 1,2,3단계로 조심스럽게 접근하라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마치 환자를 수술할 때 병소를 포함하여 최소한의 조직만을 도려내는 것과 같습니다. 위암인 경우 예전에는 암 초기라 하더라도 위를 무조건 잘라버렸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위암 초기인 경우 그 부위만 내시경으로 걷어내고 위는 살립니다. 위를 자르는 것과 살리는 것, 삶의 질에서 엄청나게 큰 차이가 있겠죠? 이처럼 상처를 최소화하여 그 형제를 얻는데 그 목표가 있는 것입니다. 18절을 보십시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이는 실로 엄청난 말입니다. 교회의 권위를 인정해 준 것입니다. 교회에서 용서하면 하늘에서도 용서하는 것이요 교회에서 출교하면 하늘에서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양들의, 성도들의 생사여탈권을 갖고 있다는 무서운 말씀입니다. 그만큼 교회는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영혼을 어찌하든지 살리라는 것입니다. 끝까지 살리고자 애쓰며 웬만하면 포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기도만큼은 끝까지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하십니다. 19절을 보십시오.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교회가, 성도들이 이 땅에서 생명을 살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이 주신 강력한 무기가 무엇일까요. 바로 합심기도입니다. 무조건 둘이 기도한다고 합심기도가 아닙니다. 먼저 마음을 합하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먼저 하나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합심하여 드리는 합심기도는 마치 미사일 같이 파워가 있습니다. 정확합니다. 합심하여 드리는 부모의 기도는 반드시 자녀를 살립니다. 합심하여 드리는 동역자들의 기도가 양들을 살립니다. 우리가 합심하여 기도할 때 수양회에서 성령의 역사가 있을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무엇을 합심하여 하나님께 구할 것인지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시시한 것 구하지 말고 하나님의 크신 긍휼과 용서가 이 땅에 교회에 임하도록 기도해야합니다. 하나님의 크신 긍휼과 용서가 캠퍼스 영혼들에게 임하기를 기도해야합니다. 죄에 빠져 절망과 낙심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담대하게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께 나아와 새 생명을 얻도록 기도합시다. 수양회를 넘치도록 축복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20절을 보십시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예수님의 말씀권세를 믿는 두세 사람, 죄를 멀리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두세 사람, 합심하여 아름다운 중보기도를 드리는 두세 사람이 있는 곳에 주님은 함께하시며 은혜와 긍휼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주님이 함께하시면 두려워 할 것이 없습니다. 못 이룰 역사가 없습니다. 우리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의 주님의 은혜에 감사 찬송 드립니다.

2.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21-35)
  범죄 한 형제를 끝까지 권면하라는 말씀을 듣자 베드로가 “그렇지, 지금 주제는 용서다.”라는 것을 감지하였습니다. 찬스에 강한 베드로가 이번에도 재 빨리 예수님께 질문했습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당시에 랍비들은 세 번까지는 상대방의 허물을 용서하라고 가르쳤습니다. 베드로는 자랑스럽게 일곱 번까지 용서할까요? 내심 예수님의 칭찬을 기대하고 한 말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아마도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요한과 야고보를 용서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22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하라. 와우! 490번을 하라니 무한대의 용서를 하라니 제자들은 특히 베드로는 멘붕이 왔을 것입니다. 할 말을 잃었습니다. 제자들이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것을 아시고 예수님은 우리가 왜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해야 하는지를 비유로 알기 쉽게 말씀하십니다. 23-35절까지의 비유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우리는 먼저 하나님께 나아가 용서함을 받아야 하고 때마다 받은바 용서의 은혜를 늘 기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3절을 보십시오. 어떤 한 종이 임금에게 만 달란트를 빚졌습니다. 1 달란트가 6천 데나리온이고 1 데나리온은 일꾼 하루 품삯입니다.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일하고 쓰지 않고 다 모은다 해도 16만년 넘게 일해서 모을 수 있는 돈입니다. 상상이 안 되시죠. 돈으로 계산하면 대략 4조원 이상 되는 돈입니다. 지금보다 훨씬 적은 경제 규모를 생각할 때 이정도의 빚은 한 개인이 갚을 수 있는 규모가 아니었습니다. 목숨, 천하보다 귀한 이 목숨을 자신과 가족, 모두의 목숨을 내 놓아도 부족한 것입니다. 25절을 보십시오. “그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다 팔아 갚으라.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임을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십니다. 죄 범한 인간을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의 죄와 허물을 철저히 계산하시고 대가를 치르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는 1만 달란트 빚진 자입니다. 인간은 다 죄인이며 용서받아야 할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용서받고 또, 용서해야 하는 존재인 것입니다. 십계명이 있지만 십 일계명이 있다고 하죠? “들키지 말라.” 십 일 계명을 잘 지켜서 잘 넘어가서 그렇지 다 시커먼 죄인인 것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습니다. 다 죄인입니다. 신상 털기 하면 죄인이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 누구나 하나님의 용서가 필요한 존재입니다.
  26절을 보십시오. 이에 종이 엎드려 절하며 애원했습니다.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종은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다 갚겠다는 말은 괜한 변명이요 지킬 수 없는 거짓말이지만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긍휼을 구했을 때 이를 불쌍히 여기시고 다 탕감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은혜와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죄인인 것을 인정하고 자신의 죄를 애통해 할 때 이를 용서하시고 무조건적인 긍휼을 베풀어 주십니다. 헬라어로 빚은 죄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죄라는 천문학적인 빚더미에 눌려 심판받을 수밖에 없는 자였습니다. 우리는 일생 수고해도 다 값을 수 없는 일만 달란트 빚진 자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 피로 다 탕감해 주셨습니다. 죄에서의 해방과 자유, 새 생명을 주셨습니다. 마땅히 감사하고 이 은혜를 일생 감당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다윗을 생각해 보십시오. 과거에 그는 망가져도 처참하게 망가졌었습니다. 간음죄, 충신을 죽인 살인 죄, 은폐하려고 거짓말한 죄까지……. 이런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내 마음에 합한 자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습니까.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듣고 눈물이 침상에 젖도록 회개했습니다. 그의 심정을 담은 것이 바로 시편 51편이죠. 51편 7절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17절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그 이후 다윗은 자신도 용서하며 긍휼을 베푸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용서는 죄 때문에 망가진 사람을 다시 고쳐서 귀하게 쓰시는 놀라운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용서와 긍휼을 체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매일 하나님 앞에 나아가 회개하기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용서의 은혜를 늘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마땅히 형제를 용서해야합니다. 일만 달란트 탕감 받은 종은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이제 용서받았으니 자신도 용서하며 살아야 했지요. 그런데 어떻게 했습니까? 28절을 보십시오. 너무나 기뻐 콧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종은 집으로 가다가 자신에게 백 데나리온의 빚을 진 동료를 만났습니다. 백 데나리온은 6,7백만 원 정도의 금액입니다. 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 받은 종이 자신보다 육십만 분의 일 정도밖에 안 되는 돈을 빚진 동료의 목을 잡고 협박했습니다. “빚 갚아라. 안 갚으면 죽는다 끝.” 동료가 간청했습니다. “나에게 참아주소서. 갚으리이다.” 이는 자신이 임금에게 똑같이 했던 말입니다. 아무리 못된 사람이라도 자신의 과거의 처지를 생각하고 자비를 베풀어야했습니다. 그러나 용서를 구하는 동료를 옥에 가두어버렸습니다. 긍휼도 없고 자비도 없고 가혹했습니다. 보다 못한 동료들이 임금에게 가서 이 사실을 고했습니다. 32-34절을 보십시오. 이 때 임금이 대노하여  말했습니다.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빛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그를 옥졸에게 넘겼습니다. 여기서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용서는 일만 달란트인데 형제가 내게 진 빚은 고작 100데나리온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의 죄와 허물 실수를 용서해야 하는 것입니다. 몇번 언제까지 용서해야 합니까? 1만 달란트 나누기 100데나리온, 무한대로 무조건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먼저 용서의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하셨던 마지막 말씀이 무엇입니까?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죽어갈 때 한 마지막 말도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한국은 물론 세계 교회사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 중 한사람으로 꼽히는 목회자가 누굴까요? 순교자 손양원 목사입니다. 1948년 여수 순천 반란사건 때 첫째 둘째아들 손동인 손동신 두 형제를 동시에 잃었습니다. 공산당원이 죽창으로 찔러 죽임으로 순교 했습니다. 장례식장에서 10가지 감사기도를 하였습니다. 두 아들을 순교자로 바칠 수 있게 됨을 감사 했습니다. 두 아들을 죽인 자를 진심으로 용서한 것입니다. 취미가 사냥인 35세 된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어느 날 사냥을 나갔다가 멀리 노루 한 마리를 보고 총을 쐈는데 사람을 쐈어요. 죽었습니다. 목사가 총으로 사람을 죽였습니다. 교회와 언론이 들끓었습니다. 신문기자들이 비난하느라 신이 났습니다. 교인들도 비난 했습니다. 목사가 목회는 안하고 무슨 사냥이냐 사람을 죽이냐. 이분이 좌절과 죄책감으로 고민하다가 사임하고 떠나려 하는데 장로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여러분 사람을 죽인 젊은 목사가 어디서 목회를 하겠습니까. 우리가 용서하지 않으면 목사님은 평생 갈 곳이 없습니다. 우리가 목사님을 한 번 용서합시다.” 이 한 사람의 용서의 제안을 교인들이 받아주고 믿어주고 용서를 베풀었습니다. 그분의 목회 철학은 용서가 되었습니다. 십자가의 용서의 사랑을 설교할 때마다 교회는 울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사십년을 그곳에서 목회했고 교인 수만 수만 명으로 성장하고 메가 처치가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세계 침례교 총재를 지냈고 54권의 책을 쓴 크리스 웰 목사입니다. 교회가 세상과 다른 점은 서로 용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못하는 것이 바로 용서입니다. 용서가 없는 세상은 경쟁과 정죄와 비난 냉정한 책임 추궁만이 있을 뿐입니다. 정죄하는 곳은 차갑습니다. 답답합니다. 생명이 살아나질 못합니다. 용서하는 곳은 따뜻합니다. 사랑의 꽃이 핍니다. 치유의 역사, 생명이 살아나는 역사가 있습니다. 35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똑같이 용서치 않으시겠다고 무시무시한 말씀을 하십니다. 마음으로 용서한다. Forgive from your heart 라는 뜻은 보다 적극적인 의미입니다. 마음으로 용서한다는 것은 가벼운 의미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음, 나 용서했어. 쿨하게 다 잊었어.” 라고 말하고는 상대방과는 말도 섞지 않습니다. 적극적으로 비난하거나 복수하지 않는다고 심지어 잊었다고 용서한 것이 아닙니다. 마음으로 용서한다는 것은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는 주안에서 형제자매의 관계로 복원된 것을 의미합니다. 마음으로 용서했다면 이제는 주안에서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쉽지 않지요. 그래서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라 강한 명령의 말씀으로 주신 것입니다. 야고보서 2장 13절은 말합니다.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에베소서 4장 32절은 말합니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십자가의 은혜를 깊이 깨닫는 사람이 용서를 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이 어떤 자인지 자신의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집 나간 탕자를 용서하고 은혜를 베푼 탕자의 아버지가 돼야겠습니다. 용서하기보다 정죄하고 판단한 큰형이 되지 말아야겠습니다. 의학적으로도 잘 먹고 잘 배설해야 건강한 삶을 삽니다. 이와 같이 때마다 하나님께 나아가 용서를 받아야하고 형제를 용서해 주어야 영육 간에 건강합니다. 그런 교회가 건강하고 강합니다. 용서 못하고 마음에 담고 있으면 영육 간에 여러 가지 질병에 걸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왜 받은바 은혜를 쉽게 잊어버리고 형제의 작은 허물을 용서하지 못할까요? 인간은 죄악 되기 때문입니다. 은혜는 물에 새기고 원한은 돌에 새기기 때문입니다. 받은바 은혜를 기억하고 늘 감사하고 가슴에 새겨야할 것입니다. 양을 도울 때도 자신의 양 시절의 모습을 모두 잊어버리고 힘든 소리하는 양을 정죄하고 비난하길 잘합니다. “어찌 저럴까.” 자신이 과거 얼마나 형편없는 자였는지 분명히 기억해야할 것입니다.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베풀어 주신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늘 감사해야할 것입니다. 저도 양들 돕다가 소망이 안 보일 때 저의 양 시절을 떠올리곤 합니다. 제가 양 시절 의대 본과 4학년 임상병리 실습하던 중에 우연히 일대일 목자님이셨던 제임스 목자님의 일용할 양식을 훔쳐보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저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매일 반복적으로 쓰여 있는 내용은 자기 자랑하길 좋아하고 교만한 한국경 형제를 품을 수 있도록 기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당시 제가 정말 잘나고 특별한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실상 그렇지 않았던 거지요. 이 사건을 통해 제가 과거 얼마나 교만하고 자기자랑하길 잘하고 두려움이 많던 자였나, 늘 기억하고 힘든 양을 만나도 나도 전에 그랬지. 나보다는 낫다 여기며 소망 두고 돕고 있습니다. 용서를 모르는 사람, 용서가 없는 가정의 자녀들, 용서가 인색한 교회의 성도들은 불행합니다. 우리는 용서가 풍성한 사람, 은혜가 풍성한 사람, 다른 사람이 어려울 때 기댈 수 있는 너도 밤나무 같은 사람이 돼야겠습니다. 용서, 은혜라는 단어가 참 좋은 것 같아요. 은혜라는 이름이 참 아름다운 것 같아요. 용서하는 종 은혜의 종이 되도록 기도해야겠습니다. 주기도문의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진자를 용서한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해 주옵시고’의 기도를 드리고 실천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지금도 용서하지 못하는 한 사람 생각이 났습니다. 병원에서 직원으로 일 하던 사람이었는데 불만을 품고 악의적으로 저와 병원을 고발했습니다. 조사 받느라 검찰, 경찰, 법원에 불려 다니며 죄인 취급을 받아야 했습니다. 저는 때때로 하나님께서 직접 이 자를 심판해주시도록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도 마음에 상처로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 기초해 볼 때 저는 일만 달란트 탕감 받고 백 데나리온의 빚을 갚지 않는 동료를 용서치 않는 본문의 어리석은 자와 같았습니다. 제가 주님의 용서의 사랑을 체험한 자로써 용서 못할 사람이 없습니다. 마음으로부터 용서하는 자가 되겠습니다. 교회에서도 용서의 사랑을 실천하는 자가 되겠습니다. 앞으로도  형제로부터 서운하거나 상처 받더라도 적극적으로 용서하는 자가 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일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 받은 자들입니다. 혹시 우리 가운데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 있습니까? 형제를 용서함으로 부어지는 영적인 축복을 누려야겠습니다. 서로 용서하는 용서의 사랑이 넘치는 공동체를 이루길 기도합니다.
  0
3500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685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30강] 영생을 얻는 길 관리자 2011-11-13 3265
684 고린도전서 [2011년 부활절수양회 제2강] 성경대로 부활하신 예수님 - 최바울.. 관리자 2011-04-24 3259
683 출애굽기 [2009년출애굽기제10강] 내 말을 잘 듣고 지키라 관리자 2009-06-14 3259
682 야고보서 [2010년야고보서제4강]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리스닝 2010-08-29 3254
681 이사야 [2010년 이사야서 제4강]포도원의 노래 리스닝 2010-10-03 3253
680 누가복음 [2015년 추수감사절 특강]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관리자 2015-11-15 3252
679 마가복음 [2010년 가을제자수양회 주제1강] 열둘을 세우신 예수님 관리자 2010-10-31 3252
678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31강] 장사하라 관리자 2011-11-20 3247
677 누가복음 [2017년 누가복음 제25강]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관리자 2017-07-30 3243
676 요한복음 [2010 요한복음2강]변화의 능력자 예수님 리스닝 2010-03-08 3243
675 요한복음 [2015년 요한복음 제19강]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관리자 2015-07-19 3238
674 요한일서 [2019년 요한일서 제5강] 세상을 이기는 믿음 관리자 2019-03-03 3234
673 야고보서 [2010년야고보서제2강]참된 믿음 리스닝 2010-08-15 3234
672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 7강] 무엇으로 사는가 관리자 2011-05-01 3233
671 출애굽기 [2009년출애굽기제8강] 하늘에서 양식을 내리리니 관리자 2009-05-31 3233
670 요한계시록 [2008년송년감사예배]처음 행위를 가지라 사무실 2008-12-29 3233
669 요한복음 [2010부활절수양회1강]다이루었다(최바울) 리스닝 2010-04-11 3225
668 마가복음 [2012년 마가복음 제12강] 주는 그리스도 관리자 2012-06-03 3223
667 이사야 [2010년 가을제자수양회 준비특강]율법을 제자들에게 봉함하라 관리자 2010-10-10 3223
666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25강]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 관리자 2011-10-09 3219
12345678910,,,44
서울 동대문구 이문2동 264-231
Tel:070-7119-3521,02-968-4586
Fax:02-965-8594
서제임스목자님메일:Suhjt@hitel.net
[UBF한국본부] [유럽UBF] [UBF국제본부] [UBF TV] [시카고UBF] [Mother Barry's Homepage]
[뉴욕UBF] [워싱턴UBF] [노스웨스턴UBF] [콜롬비아UBF] [코스타리카UBF] [프랑크푸르트UBF]
[키에프UBF] [상파울루UBF]